1. [노사협력? 노오사아혀업려억?ㅋㅋㅋ]

​문재인 대통령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찾아 코로나 위기에 대응한 '노사상생'을 극찬했다고 한다. 코로나 초기부터 노사가 힘을 합쳐 사내 예방 활동은 물론 지역사회, 부품 협력업체도 지원하는 공동활동에 나섰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면서 현대차 노동조합이 '분규 없이', '임금을 동결'시키는 '통 큰' 합의를 했다고도 치하하시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물은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갈아넣은 결과가 아니던가? 지난 2월 28일, 현대차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자 정규직에게는 마스크가 지급되고 선별진료와 퇴근조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마스크가 지급되지 않거나, 하청업체로부터 비웃음을 당하듯 '방한대'를 지급받았다. 선별진료를 받지도 못했다. 어느 작업장에서 확진자가 나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2월 25일, 현대차 노사가 '코로나19 관련 특별합의'를 통해 마스크 10만 개를 확보하고 사내 확진자 발생 시 KF94 마스크를 지급하겠다는 합의를 한지 사흘 만의 일이었다.

문 대통령이 이러한 일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관심이 없다. 알고서 현대차를 칭찬했다면 그는 그야말로 반反노동의 화신일 것이고, 몰랐다면 직무유기일 것이니 어느 쪽이든 분노를 피해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大를 위해서는 소小를 희생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묻겠다. 어차피 희생되어야 할 소는 무엇하러 나를 지킬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는 국가에 충성해야 하는가?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2&sid2=251&oid=001&aid=0011984200

https://n.news.naver.com/article/002/0002125690

https://cm.lawissue.co.kr/view.php?ud=2020030413571247909a8c8bf58f_12


2. [WTO도, '우리' WTO 대표도 필요없다 ]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의 선출과정이 마지막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후보와 한국의 유명희 후보가 총장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웰라 후보가 앞서는 가운데 미국이 유명희 후보를 지지하며 경쟁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정부나 혹자는 자국의 이익이나 위상을 위해 유명희 후보가 ‘우리’ 대표로서 선출되기를 바라지만 WTO가 어떤기관이던가?

WTO는 만들어진 이래로 자유무역이라는 기치 아래 신자유주의를 확산시켜 개발도상국들의 시장 개방을 압박하며 경제식민지화에 앞장섰던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의 신식민주의 기관이다. WTO는 철저하게 다국적 기업, 특히 미국계 기업의 이윤을 보호하는 기구로서 다국적기업이 그들의 이윤을 추구할 수 있도록 타국 민중을 착취하기 용이한 환경과 제도를 도입시키는데 종사하였다. WTO에 의해 개방된 시장의 결과로 보조금과 기술력의 차이에서 선진국과 경쟁할 수 없었던 개도국 경제부문, 특히 농업부문은 무너져갔고 미개발 산업구조상 거기에 종사하고 있던 다수의 빈자와 소농들 또한 극빈 상태에 빠졌다. 이 과정에서 지적재산권이라는 미명 아래 악명 높은 몬산토는 살아남은 이들에게 마저 종자값까지 갈취해가며 마지막 한 톨까지 착취해 갈 수 있게 해왔던 것이 WTO의 일이다. 한국도 그 예외는 아니며 WTO 출범 이래 농산물 시장 개방을 계속 압박 받아왔으며, 오직 쌀만이 관세를 통해 그나마 보존되어 왔으나 TQR(쌀 저율할당관세)등으로 이마저도 위협 받는 중이다.

WTO는 그들의 주장처럼 만인의 이익을 위한 자유무역기구가 아닌 가진 자의 착취를 위한 국제착취기구에 불과하며 개혁의 대상도, 친목의 대상도 아닌 타파 되어야 할 대상이다. 이번 총장을 둘러싼 경쟁은 그저 착취할 파이를 둘러싼 자본간의 탐욕스런 경쟁일 뿐인데 누가 대표가 되든 민중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WTO도, '우리' WTO 대표도 필요없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16&aid=0001745003



3. [짭새는 짭새다]

내년부터 경찰이 1차 수사권, 수사종결권을 가지게 되었다. 경찰은 이를 계기로 그간 검찰과의 권력 게임에서 한 스코어를 따 냈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하지만 김창룡 경찰청장이 스스로도 이야기했듯, 수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들에게는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든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김 청장의 말마따나 '수사를 받을 때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고 수긍할 만한 결과를 받을 수 있도록 책임을 다' 하는 자세가 억울한 일을 막을 수 있는 그나마의 최소한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경찰이든 검찰이든 이러한 것에 진정 관심이 있기는 한 것인가? 수사권이 경찰에게 옮겨 왔다고 해서 그들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하지 않게 될 것이며 자본가들을 성실히 잡아넣을 것인가?

짭새는 짭새다. 수사권이 있는 짭새든 없는 짭새든 짭새는 짭새다. 위상은 수사권 운운이 아니라 공권력이 스스로 제 위상을 버리고 억울한 이가 없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때 비로소 높아지는 것이다. 경찰은 검찰에게 엿을 먹였다고 의기양양해 하지 말고 스스로 그것을 어떻게 그나마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무겁게 고민해야 할 때일 것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1/0003819131?s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