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아연 주간 뉴스 단평 2021-05-30
Topics: 단평, 시사, 정세
Date: 2021.05.30
Source: https://blog.naver.com/anarchistleague/222375319287

1. [우리 노동은 우리가 알아서 하렵니다.]

2021년, 노동자의 안전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긴 세월 동안 오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어떤 청년 일용직 노동자는 컨테이너 철판에 깔려 아버지의 눈 앞에서 세상을 떠났고 어떤 젊은 일용직 노동자는 손전등이 없어서 칠흑 같은 밤에 감싸인 크레인 꼭대기 위에서 손전등 하나 없어서 발을 헛디뎌 하늘나라로 떠났다. 게다가 비록 다른 산업 현장이지만 어떤 50대 일용직 노동자도 용접 작업을 하다 철판에 깔려 우리 곁을 떠났다. 이 모두가 현장 노동자들은 안전 장비 및 교육, 인력에 대한 투자를 요구해왔었지만 어떻게든 ‘효율성’과 ‘이윤’을 추구하던 자본가들이 비용을 아끼려고 무시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임금노예제를 비판하면서도 ‘청년에게 고함’이라는 참으로 따뜻한 글을 썼던 크로포트킨이 별세한지 100년이 되는 지금도 자본주의는 여전히 임금노예제를 유지하면서 노동자들을 소모품처럼 착취하다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쓰다보면 누군가는 꼭 ‘그래도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지지 않았는가? 앞으로 더 나아지면 되지 않는가?’라고 되물을 것이다. 보통은 이에 대해 과거보다 나아진 면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산업 현장 운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비극이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반론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본 기사를 보면 과연 과거보다 나아지기는 했나 의문이 들기도 한다.

2021년 5월 25일, IT 대기업 네이버의 한 직원, 그것도 개발부서 책임자급이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한 메모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에 네이버 직원들은 개발 담당 임원의 상습적인 폭언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을 제기했다. 어찌보면 산업재해보다는 그냥 개인 간의 불화가 아닐까 싶겠지만 웃기게도 2년전에 퇴사했다 돌아온 이 임원의 복귀를 많은 직원들이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반려되고 결국 많은 직원들이 어럼풋이 예상했던 대로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가버렸다. 이는 엄연히 산업재해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이에 대해 네이버 노동조합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IT 인력이 참으로 귀중한 이 시대에, 개발자 책임자급마저도 기업의 이기적인 판단과 무자비한 임원의 폭력 끝에 죽음을 택하고 만다. 게다가 여전히 고된 현장의 일용직 노동자들 역시 너무나도 쉽게 죽어나가고 있다. 이게 어찌 과거 자본주의보다도 나아졌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는가? 민중은, 결국 하나의 노동자인 민중은 더 이상 이런 무책임하고 반공생적인 기업의 폭정을 용인해서는 안된다. 민중은, 노동자는 노동 현장을 조금이라도 더 자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노동은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가 가장 잘 아니 우리가 알아서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노동 조합을 필히 조직해야 한다.

""손전등 못 받아서 어둠 속 추락"...3년 새 12명 사망" :

https://imnews.imbc.com/.../article/6189005_34936.html

""또 300kg 철판에 깔려"..50대 노동자 참변" :

https://imnews.imbc.com/.../article/6189360_34943.html

"네이버 개발자의 갑작스런 죽음..."임원이 상습폭언"" :

https://imnews.imbc.com/.../article/6201948_34936.html


2. [땅고기들에게 고함]

반갑습니다. 범고래입니다. 지난 주, 땅고기들이 종차별적 언어를 개선해야 한다며 몇몇 단어들의 개선을 주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먹는 고기들을 칭할 때, “살아 있는 존재에 식용하는 동물의 살을 뜻하는 ‘고기’를 붙일 수 없다”며 ‘물고기’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대신 ‘물살이’라는 단어를 쓰자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물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뿐 아니라 물개도, 듀공도, 고래도, 상어도, 불가사리도, 말미잘도 물에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모두를 하나의 단어로 합쳐서 부릅니까? 우리는 유령이 아닙니다. 우리 또한 물에 살아가는, 그들이 일컫던 바, 물고기가 아닌 존재들입니다. 단지 어류가 수가 많고, 땅고기들의 집에서 기르는 애완용 어항에 더 많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이토록 무시하여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 봅시다. 우리는 고기를, 아니 “물살이”를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아니, 저들도 그러합니다. 고기를 먹지 않으면 저들은 살 수 없습니다. 설혹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해도, 지력을 소진해가며 “농사”라고 불리는 대량 사육을 하고, 그렇게 길러진 농작물, 아니, “땅살이”들을 먹어야 살아갑니다. 모든 생물은, 다른 생물을 식용해야 살아갑니다. 왜 “고기”라고 부르면 안 됩니까?

땅고기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차별적 언어를 개선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런 흐름에서 동물과 인간을 차별하는 언어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땅고기들과 다른 존재입니다. 왜 자기들 마음대로, 우리를 칭하는 언어를, 자기들 기준에 맞추어 바꾸려고 합니까? 우리가 언제, 그런 것을 요구한 적이 있습니까?

서로 다른 존재면, 다르게 살아가면 됩니다. 땅고기들은 본인들의 역사에서 배우는 것이 없습니까? 식민주의의 시대에, 제국주의자들이 “야만인”을 만났을 때, 그 “야만인”들에게 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부터 시작했나요? 아닙니다. 저들은 우리와 같은 존재이지만, 안타깝게도 “문명화”가 되지 못한 존재들이기에, 불쌍한 야만인들을 같은 인간으로 대하여, 교화하려 했습니다. 백인의 짐을 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왜, 우리를 불쌍하게 바라봅니까?

나는 한 명(名 말고 命이요. 네.)의 범고래로서, 땅고기들의 어류 중심주의를 규탄합니다. 물에서 사는 존재들의 독립적인 삶을 무시한 채, 땅고기 자신들의 기준을 들이대어 일괄적 ‘물살이’로 만들어버리는 그들의 만행은, 결국 ‘정규-물살이’와 ‘비정규-물살이’ 사이의 분할을, 그 사이의 차별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분할책동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가 아닙니다. 나는 갑작스레 팁으로 취급당한 귤 동지와 연대할 것입니다. 나는 좋거나, 웃김의 대명사가 될 권리를 빼앗긴 개 동지와 연대할 것입니다. 나는 ‘자웅(암컷과 수컷)’이 한 몸에 있는 존재에서, 갑작스레 땅고기들마냥 남녀가 되어 버린 전복동지와 함께 싸울 것입니다.

세계 물살이의 사회혁명 만세!

"'몇마리가 아니라 몇명(命)' 종차별적 언어 바꿔야" :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076949


3. [노무현 정신 운운은 이제 그만하자, 제발]

노무현이 죽은 날이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노무현 정신을 운운하면서 현 대통령을 까내리거나, 현 대통령을 비판-비방하는 세력을 까내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부터 계속 나오던 소위 '노무현 정신 계승' 드립 때문이다. 그 사람이 죽고 난 뒤 그 사람의 정신을 계승하겠답시고 나서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에, 심지어 무슨 변화니 진보니 추구한다는 사람들도 그런 말을 쓰고 앉았다.

여기 기사에 나오는 소위 '친노반문' 이랍시고 진보세력의 대표주자로 나선 이들과 진 석사님을 포함해서 말이다. 솔직히 그 사람들, 부끄럽지도 않은가? 지금은 그렇게 표현의 자유와 열린사회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 때에는 뭐 했나? 노무현이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라고 말했을 때, '지금 시대에 노동자들이 자살을 자제해야 한다는 내부지시'를 내렸을 때, 그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이제는 문재인이 노무현을 배반했다느니 하는 말이 너무나도 우습다. 애초에 노무현을 배반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노무현이 엄청나게 신성화됐기 때문에 나오는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찍어 누르고 대추리에서 군인을 동원해 시위대를 해산시키던 노무현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경찰권력을 통해 시위대와 노동자 민중을 해산하고 있지 않은가?

대체 어떤 노무현 정신을 말하는 것인가?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을 주장하지만 그걸 찍어 눌렀던 노무현 정신을 말하는 것인가? 대체 왜 그런 표현을 자꾸 사용하는 것인지 우리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이제 그만하자, 제발. 노무현 정신은 없다. 있다 하더라도 환상이거나, 폭압의 연장선일 뿐이다. 이제는 그 환상에서 벗어나자, 제발.

""문재인은 노무현을 배반했다" 진중권의 말이 뼈아픈 이유" :

https://mnews.joins.com/article/24069404#home


4. [그 짐을 노동자에게 지우려하지 마라]

콜롬비아에서 정부의 생필품 세금 인상안으로 인해 촉발된 노동 대중의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대중의 투쟁앞에 정부가 굴복하여 인상을 철회하기로 했지만 빈곤, 불평등, 부조리에 대한 콜롬비아 대중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세계 어디든간에 작금의 코로나 사태에서 가장 고통받고 있는 대상은 노동대중이며 콜롬비아에서도 또한 그러했다. 콜롬비아의 노동대중은 부실한 사회보장과 실업률로 고통받았지만 지배계급은 코로나 사태라는 짐까지 노동대중에게 지우려 했다.

지금 이시기, 지배계급은 그들 입은 자본의 손실을 노동대중 더욱 착취하려 함으로서 만회하려 하고 있다. 어려운 시기에 자본을 수호하는 것에 노동자들의 경제적 삶이 달린 것인 양 말이다. 우린 선전에 넘어가지 아니해야 한다. 위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건 자본계급이다. 그들의 의료민영화 때문에 노동계급 환자들이 병실없이 죽어가고 사내에 노동자로부터 착취한 돈을 쌓아두기에 일자리 없이 나앉는 실업자들이 늘어가며 생산성, 경쟁력 확보를 명목으로한 과로와 안전부재로 노동자들이 죽어나간다. 짐을 져야할 쪽은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다.

세계의 모든 곳에서, 콜롬비아에서도 이곳 한국에서도 위기상황을 이용한 자본계급의 공격에 대한 노동대중의 저항이 이어지고 있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노동자들의 연대를 견고히하고 자본에 대한 투쟁을 이어나간다면 위기속에서 착취와 탐욕이나마 벗어나 보다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콜롬비아 시위 : 코로나19보다 무서운 불평등과 폭력" :

https://www.vop.co.kr/A000015725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