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활동가

조직 없이는 혁명도 없다

러시아 아나키스트 운동의 진실한 지성들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시대 아나키스트 활동의 상당부분이 단지 활동의 모방이라고 이야기해왔다. 가장 서글픈 모방은 조직의 모방이다.


우리가 아직 어렸던 십 수 년 전에도 우리 중 상당수는 이를 인지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소중한 멘토들로부터 격리되었고, “집을 그 주춧돌부터 세우”도록 강요받는 처지가 되었다. 당시 우리는 소규모 그룹이, 비공식적 동맹이,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주도성이 “공상적인” 조직들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라고 결론지었었다.


이는 우리의 미숙함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혁명적 투쟁의 작동원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단계이기도 했다.


지난 수 년 간의 사건들, 혹은 타히르와 마이단, 시리아 등에서의 “광장” 혁명들은 이전부터 미묘하게 추측될 수 있던 사실을 보여주었다. 자발적 혁명 봉기의 시기, 인민에 내재한 자기 조직과 자유의지가 얼마나 크건 간에 인민은 피할 수 없이 잘 조직되고 구조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정치 세력에 의해 지배되게 된다.


이는 하나의 결론을 제안한다. 사회를 직접적 자기주도의 원칙으로 재건하고자 하는 세력 역시 응집력 있고 의욕적인 구조를 만들어 혁명적 사건의 폭풍 속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이것이 적들에게 귀결되도록 하지 않아야 한다. 아나키스트의 혁명조직의 과업은 대중의 자기 조직과 자발적 창조의 앞길을 열고, 특정 방식으로 새 히에라르키를 제시하려고 하는 세력들을 청산하는 것이다. 이 조직의 또 다른 중요한 과업은 스스로 실질적 사례를 보여주고 지치지 않는 선전을 집행하며, 사회가 자유의지주의적 경로로 나아갈 수 있게끔 하는 사회적 기구의 창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 과업들은 소규모 그룹들의 느슨하고 비정형적인 집합체의 역량을 뛰어넘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협업과 중요 영역에 집중된 역량을 요한다.


모든 혁명의 추동력은 적극적 소수였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유용할 것이다. 거대한 인민대중이 혁명 과정에 참여한 경우에도 말이다. 역사상 가장 크고 대중적인 아나키스트 조직인 조합주의적 노동조합들은 백만 명 이상의 지지자를 확보하였을 때조차 소수 노동계급의 조합이었다. 아나키스트들 역시 이 단순한 수식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모든 사회적, 경제적 과정들을 그에 직접 연관된 모든 사람이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혁명적 방식으로 가능하며, 심지어 필수적이라고 바라본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회가 “전체 사회의 의식적 의지”의 결과로 떠오를 것이라 희망할 수는 없다. 필연적으로 적극적 소수가 어느 방식으로건 혁명적 변혁의 추동력이 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운동이 가능한 광범위해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 소수에게 필요한 도구는 혁명적 조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유의지주의적 조직에서 일하는 것은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에서의 삶에 대한 학교와 같다. 이 작업은 동지들과 합의하는 것과 타협하는 것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이 작업은 평등한 의사결정 구조와 책임감을 가르쳐준다. 무엇보다도 이 작업은 혁명에 필수적인 가치인 질서와 꾸준함을 만들어낸다.


지금의 현실에서 “세계적 단일 아나키스트 조직”의 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명확하다. 이 이유 역시 명확하다. 하지만 “관심의 중심”이 되는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아나키스트 조직의 연방들 몇몇을 건설하고, 각각이 응집력 있는 실체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가능할 뿐 아니라 투쟁의 현 단계에서 필연적이다. 동지들, 소매를 걷어붙이자!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혁명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