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II.

I.

벤자민 R. 터커는 1845년 순진한 독일 사상가 카스파르 슈미트가 막스 슈티르너라는 필명으로 쓴 『유일자와 그 소유Der Einzige und sein Eigentum』을 번역 출판했다. 이 책은 스티븐 T. 바잉턴이 엠마 헬러 슘과 조지 슘의 도움으로 번역하였다. 터커 씨는 그가 쓴 서문에서 “오류와 불완전성에 대한 책임”은 그가 지겠다고 밝혔다. 그렇기에 그는 고 J.L. 워커가 주장한 바, 슈티르너가 개인주의적 우상화를 수용하였다는 견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슈티르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어떠한 대의로부터도 비롯하지 않는다.”[1] 그리고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은 슈티르너로부터 비롯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이미 슈티르너의 탄생과 죽음의 장소에 추모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돈을 베이루스와 베를린으로 보내고 있다. 그들은 신실한 순례자들처럼 베이루스로 향하고, 음악의 천재 리하르트 바그너를 흠모한다. 조만간 슈티르너의 숭배자들은 베이루스를 감염시키기 시작할 것이고, 우연히도 베이루스의 호텔 숙박료를 인상시킬 것이다. 가이드북 출판자들은 이 예언서를 잘 활용할 것이고, 여행객들을 위한 슈티르너 사원 같은 것을 건설할 것이다.

무해한 부르주아 사이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른 이론적으로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인 피에르 조지프 프루동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파리의 2월 혁명에 대해 “싫건 좋건, 우리는 불레셋인들에게 항복해야 한다”고 적은 바 있다.

아마도 J. L. 워커 박사는 슈티르너의 책 서문에서 1848년의 “소위 혁명운동”에 대해 거만하게 언급할 때 이러한 항복을 고려했을 것이다. 이 저명한 박사가 죽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프러시아를 보고 혁명이, 최소한 하나의 국가에 대해서는, 봉건주의의 잔재를 쓸어낸다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타협노선을 택하고, 결과적으로 반동을 초래한 것은 혁명가들이 아니다. 오히려 소극적 저항의 대전사들이 반동을 초래했다. 터커나 마카이 같은 자들 말이다.

워커 박사는 니체가 슈티르너를 읽었고, 아마도 슈티르너의 사상을 도용하여 스스로를 치장하면서도, 세상이 그 표절을 발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슈티르너를 언급하지 않았다 말하면서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듯하다. 워커 사도는 그의 신과 같은 주인에게 상당히 집착한다. 그는 “니체는 수백 명의 저자들을 언급한다. 그가 모든 것을 읽었으면서, 슈티르너를 읽지 않았단 말인가?”라고 의심한다.

이러한 오명은, 심리학적 이유들로 지울 수 있다.

그 저작들 속에서 니체는 스스로를 진실성의 신도라 칭한다. 그는 성실함과 진실함을 갈망한다. 그 스스로를 다른 이들에게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니체는, 슈티르너가 그러했을 것처럼, 이러한 것을 꾸짖을 것이다) 니체의 내적 성향과 순수함이 그를 진실한 인간으로 만든다. 니체가 “Ich wohne in meinem eignen Haus”[2]라고 자평할 때, 이것은 다른 그 어떤 동료 저자들보다 더 정당하다. 그리고 이러한 니체가 왜 표절을 해야 하는가? 니체가 아이디어를 훔칠 필요가 있었는가? 니체를 죽인 것은, 그 아이디어의 과도한 충만함인데?

이에 더하여, 니체가 그 영웅적 행보를 더 할수록, 그는 더욱 고독해져 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도록 하자. 그는 염세주의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 넘쳐흐르는 재능을 들어줄 수 있는 귀도, 잡아줄 손도 없었기에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이 정신적 고립에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는 그의 수많은 저작들을 통하여 드러나고 있다. 그는 조화로운 합의를, 그의 본성과 어울리는 이념과 감정을 위해 과거와 현재를 탐색했다. 그가 리하르트 바그너를 얼마나 열렬히 숭배하였는가! 그 길이 너무 멀다는 것을 발견함에 그의 슬픔이 얼마나 깊어졌는가! 니체는 그의 후기 작품에서 쇼펜하우어 철학의 가장 단호한 적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니체가 쇼펜하우어라는 사상가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을 멈추게 하지는 않았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에 대해 “보라. 누구도 그의 주인이 되지 못하니”라고 쓴 바 있다.

니체가 슈티르너를 읽어본 적이 있다면, 그는 그가 스탕달과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하여 그러했듯이, 슈티르너에 대해 적합한 인정과 감사를 표했을 것이다. 특히 니체가 친밀한 영혼이라 생각한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 니체는 그가 (도스토예프스키로부터) 그 어떤 교과서보다 더 많은 인간 심리를 배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니체가 그 학술적 영감을 얻은 근원을 숨기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내가 보기에 슈티르너와 니체 간에 큰 학술적 연관성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둘 모두는 개인성의 해방을 위해 투쟁한다. 둘 모두는 개인이 모든 “신성함”에 맞서, 모든 신성불가침의 자기부정에 맞서, 모든 기독교적 · 도덕적 청교도주의에 맞서 개인의 무제한적 진보를 긍정한다. 하지만 니체의 개인주의는 슈티르너의 개인주의와 다르다.

슈티르너의 개인주의는 울타리를 치고 스스로를 그 안에 가둔다. 울타리 안에는 너무도 추상적인 내가, X-ray 아래에 있는 것처럼 개인으로만 한정되어, 울타리 바깥을 향해 “내 벽을 넘지마!”라고 울부짖는 내가 배회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슈티르너의 〈유일자〉가 처음 본 것은 좁은 베를린 거리 쿠페르그라벤의 빛이라며 비꼬았다. 악의로 가득한 비판이었다. 하지만 슈티르너의 개인주의가 완고함과 경직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면 니체의 개인주의는 의기양양한 슬로건이자 전투함성이다. 무엇보다 니체의 개인주의는 인간성과 모든 세상을 포용하고 흡수함으로써 풍요로워지고, 삶에 기본적인 힘을 침투시킨다.

하지만 왜 이 두 위대한 인물들을 비교해야 하는가? 차라리 M. 메서(M. Messer) 씨(슈티르너에 관한 에세이를 쓴 바 있다)가 인용한 괴테가 그와 쉴러의 관계에 대해 한 말 말을 반복하도록 하자. “이처럼 중대한 사람들을 가졌다는 것에 감사하라.”

순수하고 단순한 개인주의의 대변인들이 다른 개인들, 이를테면 평범한 도덕주의자들에게 짓궂고 옹졸하다는 사실은 터커의 서문이, 슈티르너의 연인인 마리 댄하르트에 대하여 극도로 무신경하게 서술했다는 것으로 증명된다. 슈티르너는 『유일자와 그 소유』를 연인에게 헌정했다. 이를 맥케이와 터커는 다음과 같이 검열한다.

“맥케이의 조사는 마리 댄하르트가 슈티르너와 어떤 것도 공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그렇기에 슈티르너는 그녀에게 어떠한 존중을 바칠 필요도 없다. 그렇기에 나는 슈티르너의 헌정을 역사적 정확성의 측면에서 다시 쓰기로 결정했다.”

터커가 개인주의나 〈유일자〉를 터커주의와 혼동한 것이 틀림없다.

막스 슈티르너와 마리 댄하르트가 당대에 서로 어떠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지는, 슈티르너-댄하르트가 터커-맥케이보다 더 잘 아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슈티르너는 그 숭배자들과 문학적 집행관들 때문에 정리할 수는 없는 범주에 속한다. 트라우벨씨와 「더 컨서베이터」가 아직 내가 월트 휘트만을 경멸하게 하지는 못한 것처럼,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은 아직 내가 슈티르너를 혐오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번역의 심대한 오류는 슈티르너 시기 독일의 학술적 환경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게 한다. 미국의 독자들은 여전히 슈티르너가 지향하던 조건과 성격에 대해 무지한 채로 남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무엇보다 코뮌주의자들에 관하여는 정직하지 못하다. 슈티르너는 빌헬름 베이틀링과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베이틀링의 코뮌주의는 크로포트킨이나 레클루스가 주창한 현대 코뮌주의와 외형적으로라도 닮지 않았다. 현대 코뮌주의는 생물학, 심리학, 경제학에 근거한 세계관의 발명이었다.

영어판 『유일자와 그 소유』는 번역자가 정확하고 완성된 작업물을 내놓기 위한 노력을 이토록 해태할 수 있다는 사실로 놀라움을 준다. 영어판 『유일자와 그 소유』는 너무나도 문헌학적인 반면, 너무나도 비직관적인 작업물의 사례라 하겠다. 슈티르너 자체도 이에 책임이 있다. 그는 모든 망령들에 대해 저항하지만, 동시에 추상의 명수이기 때문이다.

II.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 소유』는 혁명적인 작품이었다. 그 저작은 압제받고 대상화된 이들의 이름으로, 그 “신성한 원칙들”에 대한 개인의 반란이었다. 슈티르너는 폭압적 세력의 형이상학을 드러낸다.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대학의 문에 게시한 것처럼, 슈티르너의 개별자적 독립성의 선언은 도덕, 가족, 국가 등 모든 “신성한” 것에 도전장을 던진다. 슈티르너는 “불가침의 기구”의 가면을 벗기고, 그 가면 뒤에는 망령들만이 있음을 드러낸다. 신, 영혼, 이상, 진실, 인간성, 애국심 모두는 슈티르너에게 가면에 불과하고, 그 뒤에는 칸트적 정언명령들이 개인을 억압하고, 조련하면서 개인의 모든 주도권 · 자주성 · 소유를 빼앗는다. 이 모든 것들은 스스로가 훌륭한 것이라 주장하고, 모든 부문에서 세련된 것이라 주장하며 존경과 숭배를 요구하고, 개인이 그 앞에 무릎 꿇을 것을 요구한다.

이 모든 것에 저항하는 것은 “나”의 개별성과 유일성을 통한 반란이다. 이 반란은 존중과 복종을 억제한다. 이 반란은 “영원불멸한 진실”의 잔재에서 그 발을 떨쳐 일어나, 이상과 개념이라는 주인들로부터 개인을 해방할 것을 부르짖는다. 이로써 자유롭고, 자주적인 에고가 개인들의 주인이 될 것이다. 개인은 더 이상 “선”으로부터 고통 받지도, “악”을 피하지도 않을 것이다. 모든 개인은 종교도, 도덕도, 국가도 없이 살아갈 것이다. 정의, 올바름, 일반선의 개념은 더 이상 개인을 옥죄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모든 개인은 이 개념들을 스스로의 관점에서 사용할 것이다.

슈티르너에게 세상의 중심은 에고다. 에고가 바라보는 곳에, 에고의 세상이 탄생하여 그 힘을 발산한다. 에고가 온 세상을 전용할 수 있다면 그로부터 그 스스로의 올바름이 확립된다. 에고는 세상을 독점할 것이다. 슈티르너는 한 개인의 자유가 다른 이들의 자유로부터 제약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슈티르너는 개인의 자유와 개별성은 오직 그 힘에 의해서만 제약된다고 주장한다. 나폴레옹이 인류를 축구공으로 사용했다면, 왜 인류는 반란하지 않았는가?

슈티르너에게 민주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요구하는 자유는, 거지에게 던져주는 동냥일뿐이다.

J.L. 워커의 서문은 슈티르너의 이러한 정신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 그는 “슈티르너를 통해 우리는 정치적 자유의 철학적 근간을 얻을 수 있다”고 언급한다. 슈티르너는 정치적 자유를 경멸할 뿐이다. 그는 정치적 자유를 권력 있는 자가 권력 없는 자에게 주어준 의심스러운 호의로 바라본다. 슈티르너는 유일자로써, 정치적 자유를 요청하는 이들을 꾸짖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그들에게 속하는 것을 가져가는 대신 인권을 요청하고 자유와 독립을 구걸하는 자들을 비웃는다.

슈티르너의 책에서 가장 진솔한 부분은, 정치적 자유에 대한 비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 인용부분에서 이것이 잘 드러난다.

“‘정치적 자유’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것을 국가와 그 법으로부터 개인의 독립이라 이해해야 하는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이 국가와 국법에 대한 개인의 복종이라 바라본다. 하지만 왜 ‘자유’인가? 아마 모든 사람이 더 이상 국가로부터 분리되지 못하고, 국가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사람은 이제 시민이고, 왕을 포함한 다른 이의 신민인 것이 아니라 ‘국가의 최고 주권자’라 칭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적political 자유는 국가polis가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종교의 자유는 종교가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양심의 자유는 양심이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가 국가와 종교와 양심으로부터 자유롭다거나, 내가 그것을 치워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자유들은 나의 자유가 아니다. 오히려 나를 지배하고 예속하는 권력의 자유다. 이 자유들은 국가 · 종교 · 양심과 같은 전제군주들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국가 · 종교 · 양심, 이 전제군주들은 나를 노예로 만든다.”

슈티르너는 반도덕적이고 그만큼 반민주적이었다. 그는 루드비히 포이어바흐가 말하는 바 “신을 인간으로 체현하는 것”이 도덕적 속박으로부터 개인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 믿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도덕적 전제주의를 종교로 대체할 뿐이다. 신은 노망이 났고 활력을 잃었다. 인간을 복종시키기 위해서는 더 활력 있는 것이 필요했다.

인간에 “신의 개념”을 체화함으로써 도덕적 명령은 정신적 요체로 변모한다. 그리고 이로써 인간을 외적인 것이 아닌 스스로의 정신에 예속시킨다. 그리고 이로써 이전의 외적 노예제가 비도덕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도덕적 공포에 근거한 내적 노예제로 대체된다. 우리는 외적 신으로써의 도덕에 대하여 반란할 수 있다. 하지만 도덕이 인간과 등치된다면, 도덕은 더 이상 근절할 수 없다. 신의 인간화를 통해 신은 최종적으로 승리한다. 인간이 외부 세력의 노예제로부터 자유를 얻고, 그 “내적 도덕적 필요”에 더욱 예속된 노예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모든 선한 기독교인은 그 가슴에 신을 모신다. 모든 선한 도덕주의자들과 청교도들은 가슴에 도덕적 경찰관을 모신다.

자유사상가들은 개인적 신을 철폐한 후 신의 도덕적 세균을 흡수했다. 이로써 그들은 도덕적 역병에 대한 면역력을 확보했다. 자유사상가들은 자랑스럽게도 그들이 신의 도움 없이도 도덕적이 될 능력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 도덕이 인간 예속의 사슬을 만들고 있다고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도덕적 정언명령이 인간을 지배자에게 더 예속할 것이기에, 지배자들은 행복하게도 신에 대한 믿음을 버린다. “더럽게도 지독한 양심”이 각 인간의 뼈와 피에 새겨지고 흐르는 이상, 예속은 보장된다.

이 연결에 대해 슈티르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기 포기의 피해자를 마주하지 않을 방법은 없는가?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여자아이는 지난 10년간 그녀의 영혼을 위한 빌어먹을 희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저 풍만한 몸매는 죽을 만큼 피곤한 머리를 감춘다. 그녀의 창백한 뺨은 어린 날의 혈기를 배신하고 있다. 저 불쌍한 어린아이의 심장에 얼마나 자주 열정이 몰아쳤을지, 젊은 날의 풍족한 힘이 그 권리를 요구했을지! 머리가 부드러운 베개에 파묻힐 때, 자연이 그 팔을 파고들고, 피가 혈관을 돌고, 공상이 눈에 관능적으로 맴돌았을지! 그리고 여기에 영혼과 그 외적인 지복의 망령이 나타났을 때, 저 아이가 두려워하고, 손을 꽉 쥐며, 고통 받는 눈으로 위를 바라보며 기도했을지. 자연의 폭풍은 멈추고, 욕망의 바다는 평온해진다. 천천히 피곤한 눈꺼풀이 그 망령 아래 사라진 삶을 덮을 때, 긴장감은 그 팔 사이로 몰래 빠져나가고, 심장의 활기찬 파도가 마르고, 접힌 손은 저항하지 못하는 가슴 위에 무력하게 놓인다. “아아!”라는 단말마와 함께 영혼이 평안해진다. 이렇게 개인은 잠에 빠지고 다음날 아침 새로운 전투와 새로운 기도로 일어난다. 포기하는 습관이 열망의 열기를 식힌다. 그리고 젊음의 장미는 그 천국 같은 빈혈로 창백해진다. 영혼은 구원받았으니, 몸은 사라지리라! 노래여, 비단이여! 너희가 이 창백한 선함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보라. 한 자유로운 창녀가 천명의 처녀들의 선을 회색으로 만들지니!”

이렇게 개인을 지배하는 예속의 사슬이 하나하나 떨어져나가고, 다시금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신성한 정언명령”이 개인을 휘감는다.

슈티르너는, 참으로 해방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하겠다.

추상적으로 생각해서, 에고는 이제 유일자가 된다. 하지만 그의 소유는 어떻게 되는가? 이 지점에서 슈티르너의 철학은 단지 불충분한 추상에 불과해진다.

사회를 완전한 개인으로 분해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정반대의 것을 만들어낸다. 슈티르너의 삶 그자체야말로 개인이 현존하는 조건에 대한 고독한 전투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증명한다.

슈티르너는 모든 망령을 파괴한다. 하지만 슈티르너는 빚을 갚지 못한다는 물질적 필요에 휘둘렸다. “망령”의 힘이 그의 “유일자”의 힘보다 더 강했다. 슈티르너의 채권자들은 그를 감옥으로 보냈다. 슈티르너는 자유경쟁이 단지 아첨꾼과 식충이들에게 인공적 우월성을 제공하는 도박일 뿐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슈티르너는 동시에 (그가 보기에는) 우리 모두의 개별적 소유를 박탈하여 모두를 거지로 만들 코뮌주의에도 반대했다.

하지만 어차피 어떠한 재산도 가지지 못하는 개인들에게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 않은가. 이 개인들은 그들이 소유와 재산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배제되어, 그들의 “개별성”과 “유일성”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기에 거지가 되었는데 말이다.

우리 시인들, 사상가들, 예술가들, 발명가들의 삶이 왜 그리도 순교자적이었는가? 이 개인주의자들이 너무나도 유일하고 유일자이기에 소유와 존재를 위한 최소한의 투쟁도 하지 못해서가 아닌가? 이러한 투쟁의 과정에서 그들은 그 개인성을 생계를 위해 파는 수밖에 없다. 우리(코뮌주의자)들이 ‘본질적으로 타락했고’ ‘위선적으로 신념을 억압하는’가? 왜냐하면 개인은 스스로를 소유하지 못하며, 참된 자신이 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은 사실상 시장에 팔리는 자산이 되고, 타인의 소유를 불리는 도구로 전용된다.

사업체가 개인을 전용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신문사에 슈티르너적인 유일자가 있다고 해보자. 이 일터에서 유일자의 지적 능력은 출판사와 주주들의 부를 위해 팔려나간다. 개인성은 사업 속에서 프로크루테스의 침대[3] 위에 놓인다. 생계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경우 마음에 들지 않는 방식으로, 그 개인은 자신의 개별성을 희생한다. 이로써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장 즐기는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의 개별성이 호흡만큼 중요한 것이라면 이에 대한 폭력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가! 하지만 아직 우리의 음식, 음료, 집에 대한 권리는 개인성의 상실 아래 만들어진다. 이것들은 소유가 없는 수백만의 개인성이 산업의 도구로 전용될 때에야 (옹색하게도) 주어진다.

슈티르너는 소유가 개인성에 반한다는 사실을 고아하게도 무시한다. 경쟁에 있어, 우리가 개별성을 배반하고 포기하는 것에 비례하여 승리하게 된다는 것을 무시한다. 아마도 상속을 받아 부자가 된 일부만이 일정부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조차도, 그것이 상속자에 대한 개인성의 독자성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상속의 특권은 멍청하게도 다양한 선입견과 “개인성”과 같은 망령들로부터 비롯한다. 프티 부르주아지와 졸부들의 개인주의는 “개별자”의 지평을 넓히기보다는 오히려 좁힌다.

현대 코뮌주의자들은 슈티르너보다 더 개인주의적이다. 코뮌주의자들은 종교, 도덕, 가족, 국가만이 아닌 사유재산 역시 망령이라 여긴다. 사유재산의 이름으로 개인은 예속된다. 오늘날의 개별성은 국가, 종교, 도덕의 총합보다 더 사유재산에 예속된다.

현대 코뮌주의자들은 사회의 이름으로 개인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코뮌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유와 개별성을 통해 경제적 조건(생산, 분배)가 조직되어야 하고, 이로써 그 자유와 개별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로써 조직을 통해 복종과 전제주의를 몰아내어야 한다. 이 주된 조건은 개인이 소유나 생계를 위해 스스로 무릎 꿇거나 낮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코뮌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개별성의 근간을 건설한다. 나는 개인주의자이기에 코뮌주의자다.

슈티르너의 저작에서 ‘요구’라는 단어들을 사적재산의 해소와 수용으로 바꾸어낸다면, 코뮌주의자들은 슈티르너에 온전히, 진심으로 동의할 수 있다.

개인주의와 코뮌주의는 함께 가는 것이다.

[1] 바잉턴은 이를 다음과 같이 오역했다. “나에게,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All things are nothing to me)"

[2] 직역하자면, “나는 내 집에 산다.”

[3] 역자 주 : 프로크루스테스(그리스어: Προκρούστης)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다. 신화에 따르면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아티카의 강도로 아테네 교외의 언덕에 집을 짓고 살면서 강도질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집에는 철로 만든 침대가 있는데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누이고는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 잘라내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추어 늘여서 죽였다고 전해진다. 그의 침대에는 침대의 길이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가 있어 그 어느 누구도 침대에 키가 딱 들어맞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말은 바로 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이야기에서 유래된 말로 자기 생각에 맞추어 남의 생각을 뜯어 고치려는 행위,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횡포를 말한다.(출처 : 한국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