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정답인가]

2020년 9월 10일, 고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또다시 특수고용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고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한지 불과 2년이 채 지나기도 전의 참극이다.

물론 이렇게 반복되는 책임의 가장 큰 주체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기업이다. 더군다나 위험한 일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투입하여 '인건비를 절약'하려는 기업의 자세 역시 기업의 책임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업의 책임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한다고 하여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간의 법들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법을 만든다고 하여 그것이 제대로 시행되리라는 보장이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기업이 솜방망이 처벌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으로 노동자는 노동자 스스로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 언제든 또다시 이러한 비극이 벌어질 수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노동자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노동자의 단결된 힘 뿐이다.

기계를 멈추고, 물류를 멈추고, 노동자가 죽으면 모든 노동자는 반드시 그 기업이 가장 무서워하는 일, 그들에게 이익을 줄이는 것 따위가 아닌 극심한 손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때, 이 모든 비극은 멈출 수 있을 것이다.

http://omn.kr/1ow0c

2. [의대생들의 패배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전훈에 관하여]

결국 의대생들이 백기를 들었다. 그냥 패배도 아니고 완전히 항복하고, 심지어 의료계 원로들이 대국민 사과까지 해야하는 완전패배, 무조건 항복이다. 선배라는 의사들이 사실상 완승을 거두고,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료 확충을 저지한 것에 비하면 웃음만 나올 뿐이다.

사실상 예견된 패배였다. 의협이 정부와 서명한 이후, 이들은 굉장히 빠르게 대중의 관심 바깥으로 사라졌다. 페북과 포털사이트 댓글에 간헐적으로 출몰하여 자기들끼리 ‘좋아요’ 누르고 댓글다는 것이 이들이 눈에 띄는 전부였다. 이러면 지는 것도 당연하다.

이들의 패배는 이들의 명분이 약하거나, 대중을 설득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의협의 집단 무단 휴진 역시 명분도 없고, 대중의 분노를 산 것은 마찬가지였다. 의대생들의 집단행동이 패배한 것은, 그들이 명분싸움, 정치적 행동말고는 할 수 있던 것이 없다는 데에 근거한다.

의협이 아무리 가증스러운 요구를 내걸고, 선전도 못하고, 여론 조직도 못 해냈다하더라도, 그들은 의료산업 현장에서 그 산업영역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자기 요구를 관철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의료 영역을 멈춘다는 광기에 찬 행동을 통해서이긴 하지만, 어쨌든 말이다.

우리가 의대생들의 패배에서 얻을 수 있는 전훈도 이와 같다. 투쟁을 명분으로, 정치력으로, 교섭술로 하려고 하지 말자. 산업의 영역을 확보하고, 그것을 멈추어내는 노동대중의 직접행동만이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1&aid=0011878451


3. [우리는 산불을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 서부지역에서 이번 9월부터 시작된 산불로 인해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사상자는 수십명에 달하며 피해 규모는 남한 면적의 20%에 이르는 등 참담한 실정이다. 10여년전의 그리스 산불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졌던 호주 산불까지 산불의 규모와 피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가고 있다.

이러한 원인은 근본적으로 기후변화에 있다. 산불이 주로 발생하는 시기는 대기 중의 수분이 부족해져 날이 건조한 8~9월 사이에 발생하는데 기온상승으로 인해 건조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우리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인류의 공통과제임이 갈수록 확연해지고 있다. 탄소 배출 감소와 대체 에너지의 모색 등 이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이 어느때보다 중요해지고 있지만 세계 각국의 정부들은 무관심하며 최선의 경우에 조차 신경쓰는 척만 할 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소위 그린 뉴딜은 탄소배출량을 국제기준의 50%에도 못미치는 목표로 설정했으면서 그에도 못미치는 턱없이 부족한 자원과 의지로 인해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고 해외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며 기후변화가 허구임을 짖고 있다. 성장률을 최고의 지수로 여기며 자본에 복무하는 이들의 논리로는 이러한 행동은 당연한 것이다.

결국 사익과 생산성만을 추구하는 작금의 자본주의 체제와 그 하수인인 정부에게 현 상황을 개선하리란 희망은 품을 수 없다. 공해와 오염으로 얼룩진 환경을 바꿀 유일한 희망은 의회와 높은신 분들이 아닌 민중과 변혁에 있다. 반자본주의 투쟁과 기후변화에 대한 투쟁은 분리될 수 없으며 전 세계적 위험에 맞서 세계와 이 땅에사는 모든 민중은 자본과 부패에 대항하여 인류의 미래를 지키고자 연대해야만 한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28&aid=0002512701


4. [이 희극을 어찌 바라봐야 하는가]

근래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복무 과정 중의 휴가 논란에 대해 논란이 매우 거세다. 그 과정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인 국민의힘 (지극히 국가주의적이다) 간의 파워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서 민주당의 한 의원에 의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휴가의혹에 대해서 폭로한 당직병의 신상이 유포되는 등, 가히 희극이라고 불릴 만한 일들이 정치권에서 자행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애당초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로 징집된 인민이 없었다면 이러한 논란은 없었을 것이며, 애당초 국가권력의 존재와 군이라는 국가권력이 독점중인 폭력이 없었더라면 이런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이 논란에서 한반도 남쪽에 거주하는 인민의 대변자를 참칭하는 양 보수세력 (민주당, 국민의힘) 의 책동은 특히 주목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온건한 보수세력에서는 군 문제를 정상적으로 이행했으며 이를 비판하는 것은 ‘국민’ 들이 거부감을 느낀다 주장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강경한 보수세력에서는 군 문제를 정상적으로 이행하지 않았으며 이를 저지른 여당세력에게 ‘국민’ 들이 분노를 느낀다고 주장하지 않던가? 정작 그들이 말하는 그 ‘국민’ 은 파쇼적 강제징집 행태에 고통받고 있는데 말이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인민의 대변자라 참칭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정작 그들 스스로의 존재가 인민을 탄압하고 강제징집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들이 인민을 대변한답시고 ‘강제징집’ 을 더 정당하게 했냐, 아니냐를 논할 수 있는가? 강력한 정부, 자본과 정부에 인민을 강제로 부역시키는 군, 그리고 이를 어떻게든 정당화하며 문제의 근본에서 눈을 멀게 하는 정치세력에 맞서 인민대중의 단결과 투쟁이 필요하다. 대신해줄 정당, 정부가 아닌 인민 그 스스로의 투쟁만이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일굴 수 있다.​

http://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9131440309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