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 연대
아연 주간 뉴스 단평 2020-09-20
1. [그러면 그 쉰내 쓰지 말라]
2020년 9월 18일, 기안84는 네이버 웹툰에 연재중인 '복학왕' 내 표현이 여성혐오적이라는 논란으로 인해 4주만에 "나 혼자 산다"에 출연했다. 방송에 나온 그는 프로그램 시작 전 자신의 부족했던 여성주의적 감수성에 대해 사과했다. 같은 날, 한겨레 신문은 "황진미의 TV 새로고침"이라는 코너에 "'기안84' 지키려는 쉰내 나는 가치 무엇인가"라는 칼럼을 내보냈다.
혹자는 웹툰 내 여성혐오적 표현이 오프라인 세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제재해야 할 것은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여성혐오적 행위의 현실이지 이를 표현하는 비현실 내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아울러 설령 작품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현실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게임을 많이 하면 사람을 죽인다는 말 만큼이나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다.
비판할 지점이 한 두 군데가 아니지만 개인의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파쇼적 행태는 구역질나며 부족한 점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하는 이에 대한 조롱은 분노를 일으킨다.
앞서 한겨레는 칼럼에서 '기안 84 지키려는 쉰내나는 가치'가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그렇게 질문한 "황진미의 TV 새로고침"의 2020년 9월 5일자 칼럼 제목은 "'여은파' 극강 패션, 19금 토크, 거침없는 여성 예능'이었다. 같은 표현의 자유를 두고 이렇게 정반대의 입장을 표현하는 한겨레 역시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의 보호를 받고 있다. 기안84를 지키려는 쉰내나는 가치란 한겨레가 편향된 편을 들 수도 있는 표현의 자유 그 자체인 것이다. 만약 이 쉰내가 그리 싫으시다면 한겨레는 그 쉰내를 사용하지 않으셔도 괜찮지 않은가.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62757.html
2. [민주노총발 “아바타 집회” 유감]
아래 기사를 클릭하면, 귀엽다. 솔직히 말해서 요 근래에 본 노동관련 기사 중에 가장 귀엽다. 이토록 정성스럽게 인형 사진을 찍고, 그 사진 아래 캡션마저 포덕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너무 귀엽다보니 오히려 불편하다.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인형으로 대체해서 집회를 개최한 날, 타워플랜트노조 동지들은 사측의 노조파괴에 항의하는 집회를 진행하다 감염병예방법 위반, 집시법 위반이라는 명목으로 구속되었다. 각지의 경찰서에서는 코로나-19 상황을 빌미로, 노동자들의 집회신고가 반려되고 취소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단체교섭이 감갑하지만, 단체행동을 할 수 있을지 우려되어 쟁의행위를 하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많다. 그리고 이들 또한 민주노총이 대변해야 할 조합원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노동과 세계>에 없다.
물론, 코로나-19 창궐이라는 상황에서, 대규모 대면집회를 최소화하겠다는 결심 자체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현재 상황에서의 대규모 집회가 큰 지지를 얻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것 역시 우리의 자유에 대한 포기이자 양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형을 세워놓고 집회를 개최하는 것은 민주노총이 자랑스러워 할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코로나-19의 창궐은 분명한 사회적 위기다. 이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해야할 일은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라는 허상에 목매어 대면집회를 없애고 입법청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아파 죽으나 굶어 죽으나” 똑같다며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조합원들을 찾아가고, 그들을 대변해야 한다.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아바타 집회”를 진행하고, 그것을 자랑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목숨걸고 집회를 개최하다 구속당한 타워플랜트 동지들에 대한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임을 알아달라. 대중성과 정치투쟁에 함몰되고, 현장에서의 투쟁을 바라보지 않는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아바타 집회”에 유감을 표한다.
http://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401668
3. [같은 '파업', 다른 잣대]
택배 노동자들이 추석 연휴 간에 과중한 노동시간에 항의하며 파업결의에 들어갔다. 21일부터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에서 택배 분류작업을 전면 거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택배 노동자들은 부족한 인력과 살인적인 물류량에 시달리면서 그 동안 끔찍한 노동환경 속에서 묵묵히 일해왔지만, 이번 추석에 쌓여왔던 분노가 터진 것이다.
파업이 결의되자 추석 연휴를 앞두고 파업을 결의한 택배노동자들에 대한 언론 보도가 우후죽순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대한민국에 있었던 가장 파장이 컸던 '파업' 인 의사파업. 파업의 요건조차도 갖추지 못했던, 사실상 이름뿐인 파업을 자세하게 다뤘던 한국 보수언론들이 이번 파업을 어떻게 다뤘을까?
아니나 다를까,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택배 노동자들의 파업은 '대란'을 일으키는 일로서 소개되었다. 특정 보수 언론의 경우에는 이러한 택배 파업에서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간 노노갈등이 있다고 선전하면서 파업의 정당성과 그 힘을 약화시키고자 시도했고, 여러 자극적인 단어선정을 통해 끊임없이 부정적인 기류를 확대재생산했다.
이는 의사들의 '파업' 때는 보기 힘든 일이었다. 그들의 집단휴진이 있었을 때에는 정부의 공공의료 정책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정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분석하고 가능한 한 중립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언론들의 시선은 마치 신기루와 같아졌다. 그들의 잣대는 고작 한 달 사이에 너무나도 빠르게 바뀌었다. 과연 그들의 이중잣대가 언론으로서의 올바른 태도인지, 그리고 자신들이 그렇게 비판하던 '빨갱이 정부' 와 다를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27/2020082702658.html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9/18/20200918010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