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대들이 하는 사찰은 착한 사찰인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언유착 의혹에 연루된 한동훈 검사장의 휴대전화 비밀번호 해제 비협조를 비난하며 피의자의 비밀번호를 강제로 해지할 수 있는 법안 재정을 추진했다가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개인의 자유에 대한 또 다른 공격 시도의 아이러니한 점은 추미애가 4년 전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에 참여했던 의원으로서, 국가와 정보기관의 개인 사찰을 비판한 전력이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무슨 근거로 개인의 사적 영역을 침범하며 범죄의 낙인을 찍으려 하는가? 심사와 심판 권력을 독점한 채 대중과 유리된 권위 위에서 자의적으로 이를 휘두르는 존재, 그것이 보수정권이건 ‘진보’정권이건 어떠한 개인의 자유에 대한 모독도 허용할 수 없다. 정부는 급히 공개 절차를 법원 명령으로 제한하는 등 진화에 나선 모양새지만 이는 단순히 꼬리자르기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보수정권이 아닌 참여정부부터 이미 개인의 권리를 욕보인 민간인 사찰은 광범위하게 계속되어 왔고, 이번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이후에도 이들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국정원을 위시로 한 민간인 사찰 논란이 계속되어 왔다.

결국 문제는 한나라당 정권이냐 민주당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민중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민중의 권리를 제한하기를 거리낌 없이 행하는 저들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으며, 보수정부와 진보정부의 차이란 다시말해 개인을 윗도리부터 벗겨내느냐 아랫도리부터 벗겨내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휴대폰 비밀번호는 물론 개인의 정보에 대한 정부의 어떠한 침해도 허용될 수 없으며 모든 종류의 사찰행위를 규탄한다.

https://www.yna.co.kr/view/AKR20201113129700004


2. [그러니까 전태일 정신이란게]

전태일 열사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한지 50년이 지났다. 열사의 기일을 앞두고 여러 집단에서 소위 ‘전태일 정신’의 계승을 이야기한다. 어느 대통령은, 열사에게 무궁화장을 추서하면서 열사를 국가적 영웅으로 만들었다. 어느 국회의원은 노동시간 제한의 도입을 유예하는 것이 전태일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거기에 어느 노동운동가는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약자들과 연대하는 것이 전태일 정신이라고 한다.

대통령께서는 행동이 보여주는 것과는 다르게 노동존중사회를 만들겠다는 선언을 철회하지 않고 계시니 열사를 추서했다. 그 국회의원의 당은 언제나처럼 노동자의 처우 따위를 신경쓰는 위선보다는 자본의 이익에 대놓고 복무를 하고 있으니, “더 일할 자유”를 주는 것이 전태일 정신이 되었다. 그 노동운동가는 사회적 합의를 주장하고, 민주노총이 투쟁을 멈추라고 말하고 있으니, 자기 이익은 내려놓고 더 약자를 향한 희생을 하는 것이 전태일 정신이 된다.

아무래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고, 대충 ‘전태일 정신’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는 게 이번 주 노동계의 트렌드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렇기에, 우리 <아나키스트 연대>역시, 트렌드에 민감한 조직으로써,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아 보기로 하자.

전태일 동지는 법을 번지르르하게 만들어 놓고, 그 집행은 오직 자본의 이익에만 복무하는 현실을 규탄하며,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거행했다. <전태일 3법 제정>같은 입법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노동자를 지켜줄 수 없음을 폭로하고, 노동자의 직접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전태일 정신이다.

전태일 동지는 노동자였다. 그리고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스스로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조직을 만들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투쟁하던 중, 국가 폭력에 탄압당하고, 스스로를 불살랐다. 노동자의 경제적 조건 개선을 위한 노동자의 조직과 그 직접행동이, 국가권력의 철폐가 전태일 정신이다.

전태일 동지는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온전히 지켜지는 사업체를 설립하고, 이로써 더 좋은 조건을 찾아오는 노동자들을 바탕으로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겠다는 “모범업체 사업계획”을 작성했다. 노동자의 사업장과 산업에 대한 자주경영과 직접통제가 전태일 정신이다.

열사가 산화하신 후, 한국의 사회운동은 허울좋은 반독재 민주화투쟁에서, 노동대중의 조직과 그 투쟁의 건설로 돌아섰다. 활동가들은 현장으로 들어가 노동조합을 조직했고, 구로공단파업, 87년 노동자 대투쟁 등 노동대중의 투쟁을 조직했다. 정치적 영역을 벗어나 노동자들의 조직을 건설하고 투쟁하는 것이 전태일 정신이다.

전태일은 한명의 노동자였다. 자기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해, 자기 동료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조직을 건설하고 투쟁한 조직가였다. 전태일을 “노동존중사회”라는 프로파간다 수단으로, “일할 자유”를 외치는 자본가의 선봉으로, “더 낮은 이와 연대”하는 정치인으로 전용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1ZADO4AN4L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1151012001&code=910100

https://newsis.com/view/?id=NISI20201112_0016886062


3. [민족정론지, 항상 우익, 프롤레타리아 슬레이어]

민족정론지 조선일보와 한반도 남쪽을 구원할 위대한 당, 더불어민주당이 모처럼 한 목소리를 냈다. ‘집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치는 데에 있어서 말이다. 조선일보에서는 한목소리를 내면서 개천절 집회 때는 그리 엄중히 막더니 이제는 왜 막지 않냐 떼를 쓰고 앉았고, 민주당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공권력의 준엄함을 보여 달라고 행정부에 혀를 내밀면서 헥헥댔다. 이에 따른 우리 이‘Always Right’낙연 대표님과 문‘The Proletariat Slayer’재인 각하께서는 이렇게 교시하셨다.

국민걱정을 존중해 대규모 집회를 자제해 달라! 코로나 확산의 원인이 되는 경우에는 엄정히 법집행 하겠다! 정말 무서운 이야기다. 우리 아나키스트 연대는 파쇼들이 혐오스럽지만, 그들이 헛소리를 입에서 쌀 자유는 있다는 논평을 개제한 바 있다. 우리의 주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같다. 자본과 국가권력, 정당, 정치인, 언론인들은 그 입을 다물라. 결국 인민들이 결정할 문제임에도 그들은 끝까지 국가권력에 모두를 종속시키려 들고 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그것을 위해 탄생한 것이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혐오스러운 것은 매한가지다.

집회의 자유를 그렇게나 사랑하면서 파쇼들의 개천절 집회를 옹호하더니 이제는 ‘좌빨’들의 집회를 폄하하는 모순적이면서도 정말 민족정론지다운 말도, 항상 우향우를 외치시는 이낙연 대표님도, 프롤레타리아 학살을 즐기시는 문재인 각하께서도 노동자들의 분노를 피할 수는 없다. 자본가들의 폭압적인 행보와 정부, 정치권의 말뿐인 개혁, 말뿐인 개량, 퇴보의지에 노동자 계급은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기 이전에도 노동자 계급은 이미 항상 죽음의 위협에 처해있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났다고 해서 그것이 변했는가? 오히려 더더욱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체제로 전환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자본은 인민의 자유로운 의사표출 욕구를 막지 말라. 그리고 인민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말고는 인민이 결정할 문제이지, 정부와 자본이 결정할 것이 아니다. 당신들은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서, 투쟁적 역사의 흐름 속에서 노동자 계급에 의해 사라질 존재들이다.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20/11/13/2020111390025.html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074537&plink=ORI&cooper=NAVER

https://www.nocutnews.co.kr/news/5447038


4. [색즉시공 공즉시색]

요사이 혜민스 님에 관한 이야기가 뜨거웠다. 혜민스 님이 남산타워가 보이는 삼청동에 거주한다느니, 이 건물이 본인 것은 아니지만 한 불교 단체의 소유이고, 2년 전 혜민스 님이 이것을 그곳에 매각했는데 그곳의 단체가 혜민스 님이라던가.

인터넷 곳곳에서 풀소유 드립이 넘쳐나고 현각 스님도 이에 가세해 혜민스 님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혜민스 님은 결국 모든 활동을 내려놓고 대중 선원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어찌 참새가 대붕의 뜻을 알겠으며 용맹정진하는 수행자의 마음, 성과 속이 다르지 않다는 선禪의 가르침을 사바에 얽매여 사는 우리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부처님 뜻에 따라 대중이 대오각성하지 위해서는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것이 중요함을 어찌 방편에 불과한 무소유 따위로 묶어두려 한다는 말인가. 아집과 몽상에 사로잡힌 마군들의 소행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혜민스 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저 대중에게 더욱 친숙한 방법으로 전하고자 했을 뿐이다.

거 혜민스 님의 마음치유학교에서 사용하는 레이키靈氣가 허경영도 사용하는 대체의학이며 메이지 천황의 시를 읊으라고 하기도 하지만, 불교는 분명 인과 연에 따라 생기는 고통을 끊어내는 것이 최종목적이지만 그러면 거 타로카드 같은 것도 좀 사용할 수 있는 거고, 불자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남녀 주선만남도 해 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어쨌거나 이러한 좋은 일들을 혜민스 님이 이제는 내려 놓으신다니 그저 안타깝고 착잡할 따름이다.

그래도 뭐 그간 벌어둔 돈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니 된 것인가? 무릇 쪽팔림은 일순이고 돈은 영원한 것 아니던가.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023&aid=0003576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