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 연대
아연 주간 뉴스 단평 2021-01-24
1. [사실상 계엄령 상황인 것 아닌가?]
2020년 작년부터 지금까지 온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달라진 생활상을 보내고 있다. 사실 이렇게 시작하는 글조차 이제는 피로감이 누적되어 읽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비상 상황에서, 아니, 오히려 이런 비상 상황이기에 국가는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에 더 자유롭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는 것 같다.
한국경제는 지난 한 해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횟수가 28만 건을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판 일정조차 한동안 차질을 겪어야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의외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모든 사회적 관심이 코로나19로 쏠린 틈을 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쉽게 행할 수 있는 수단을 사용하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방역에 사활을 걸고 계시니 이 과정에서 철저한 방역지침이 지켜졌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호기심이 일지만 그것은 우선 제쳐두기로 하자.
이에 그치지 않고 정부는 방역지침인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를 어긴 사람들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제공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른바 '코파라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일 평균 1,060 건의 신고가 이루어지고 있는 꼴인데, 정부는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우수신고자 100명에게는 온누리상품권 10만원, 최우수신고자에게는 5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하게 하고 신고하게 만드는 전략이 공안 정국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지쳐 있다. 정부 역시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하여 서로의 자유를 억압하는 최악의 방식을 사용하는 곳이 인권 지수가 최악인 북조선인민공화국이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데에 통탄을 금할 길이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사람들이 서로를 미워하고 감시하고 경계하게 만들어 이미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삭막하게 만들고 싶은 것인가?
이 계엄령에 맞먹는 국가 권력의 폭주를 멈추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이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고, 우리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서로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있다. 이 틈을 타 사람들을 더욱 옭죄는 행정 방식을 사용한다면 머지 않아 사람들은 이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고 말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고 있는데 정부의 의견은 어떠한가?
"코로나19 확산세에도 지난해 압수수색 증가"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15&aid=0004488494
"코로나 파파라치 신고 급증…정부 "우수 신고자 10만원 드려요"" :
https://news.imaeil.com/Society/2020123122064086293
2. [버블보블 2021]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전 세계의 공장과 물류는 멈춰 서 있다. 초기에는 과거 대공황 수준의 경제불황이 올 것이라는 우려도 컸으며 실제로 노동자와 민중은 여전한 고용불안과 악화된 노동조건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증권시장은 흡사 축제의 분위기다. 지난해 1400선에 불과했던 코스피는 올해 들어 3000선을 웃돌면서 2배까지 뛰어올랐고 이달 들어서는 종가가 코스피 사상 최초로 3100선을 넘어서기까지 했다.
백신이 개발되고 이제 막 접종이 시작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실물경제가 코로나 사태 이전의 생산과 소비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했음은 누가 봐도 분명하다. 심지어 백신은 아직 한국에는 접종 시작은커녕 도달하지도 못한 상태이다. 이런 불안정한 실물경제의 와중에도 자본은 정부가 코로나를 명목으로 배푸는 자금은 독점하고 노동유연화는 적극 이용하여 노동자들로부터 추가적으로 착취해낸 이윤을 투기에 쏟아부으며 언젠가 거품을 부풀려가고 있다. 자본주의의 특징 중 하나인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괴리가 또 다시 극에 달한 것이다. 이런 괴리속에서의 금융 호황은 결코 좋은 결말을 맞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의 주식 시장이란 투기시장에 불과하다. 자본가들은 생산부문에서의 이윤, 특히 노동자들로부터 착취해낸 이윤을 금융시장에 투기해가며 자산가치를 부풀림으로서 추가적인 이윤과 착취를 도모하고 있다. 이런 거품 호황 속의 과실은 결코 노동자들에게 돌아오지 않지만 거품이 꺼졌을 때 자본과 정부는 언제나 그랬듯이 그 고통만큼은 노동계급에게 넘기려고 들었다.
노동계급은 주식시장이 자신을 착취하는 또 다른 자본의 사이클임을 인지해야 하며 이런 해악적 도박으로의 참여를 단호히 거부하고 그 총본산인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코스피, 2.61% 급반등...3,100선 근접"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52&aid=0001540499
3. [그러니까 법이 유권자의 의견을 어쩐다고요?]
필자는 대충 10년 정도 전부터 투표를 거부해 왔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들어야만 했던 이야기는, 우리가 우리를 대변하여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을 직접 뽑지 않으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뭐, 실제로 (대의)민주주의를 조금이나마 위협하고 싶어 투표를 거부한 것이 맞고, 높으신 양반들이 인민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척이라도 하게 하려면, 특정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투표율을 한자리수로 낮추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일단 제쳐두자. 그 분들이 말한 대로 투표를 열심히 했다고 해보자.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고용노동부는 주 12시간 이상의 연장근무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올해부터, 해당 법률의 준수 여부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300인 이상 사업장에 한정해서.
주 최대 노동시간의 한도를 정한 법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문재인 씨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내건 공약이었고, 그렇게 그는 당선되었다. 즉각적인 노동시간 제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토록 많았음에도, 문재인 씨와 집권당은 ‘정치적 타협’을 선택했고, 2020년 12월까지 유예기간을 둔 노동시간 제한과 유연근무제의 확대시행을 들이밀었다. 유권자들은 ‘정치적 타협’이 필요없을만큼 표를 몰아주었고, 문재인 씨의 당은 의회내 압도적 다수당이 되었다. 그러자 고용노동부는 3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감독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법정 노동시간 한도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입법가들의 자비와, 정치꾼들의 합의와, 그에 의존하는 누군가의 청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번 주 52시간제 도입 시도에서 보이는 촌극과 같이, 지난한 합의와 타협의 과정은 높으신 분들의 야합 앞에 너무 손쉽게 무릎 꿇는다. 그 야합의 결과물마저도 관료 집단의 “단속하지 않겠다”는 결정에 유효성을 상실한다. 법은, 국회의원들을 인민이 직접 선출하건 말건, 결국 그들과 관료들의 야합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를 이야기해보자. 노동대중은 “이대로 가면 죽는다”는 절박한 필요로 꾸준히 투쟁했다. 누군가는 기계를 때려부쉈고, 누군가는 총파업을 조직하였고, 누군가는 현장에서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 물론 그러다가 “이러지 말고 의회에 진출하자”는 모리배들에게 넘어가기도 했고, 자본과 국가의 폭력 앞에 피흘리며 죽어가기도 했지만, 그렇게 조금씩, 노동대중은 직접 세상을 바꿔왔다.
아직도 사회적 합의를 이야기하거나, 노동자 계급정당의 의회진출을 통한 제도적 개선을 이야기하는 분들과 이 기사를 함께 읽고 싶다. 우리가 통제하지도 못하고, 지배계급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부르주아 정치의 장이 아닌, 우리가 장악할 수 있는 산업과 생산의 장에서, 우리의 현장투쟁으로 세상을 바꿔내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노동부 "주 52시간 근로감독, 300인 이상 사업장 위주로""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2158846?s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