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본주의와 비인간적인 유통 세계]

​2021년 3월 23일 수에즈 운하에서 발생한 에버기븐호 좌초 사고에 의해 422척의 유통 선박의 발이 묶여 있었다. 이후 29일에 에버기븐호는 준설기의 도움으로 완전 부양에 성공했고 이후 수에즈 운하는 다시 정상적으로 개방되었다. 하지만 에버기븐호는 이집트에서 떠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에버기븐호는 이집트 정부의 피해 보상을 위한 인질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 경제 논리상 이집트 정부의 행동이 잘못된 것은 전혀 없다. 이집트 정부 입장은 사고의 원인에 강풍과 같은 수에즈 운하 자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선박의 기술적인 결함이나 사람의 실수가 있었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려면 배를 함부로 놔줄 것이 아니라 잡아두고 조사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자칫하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과 더 연관이 있는 선주 ‘쇼에이 기센’이나 선박 운용사 ‘에버그린’ 대신 10억 달러 가량의 배상금액을 책임져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잠깐 대만 vs. 일본 같은 국가주의적 대결구도 상상이나 밈질은 그만두고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피해를 간단히, 대신 알아보기 쉽게 짚고 가자. 우선 앞서 말했듯이 422척의 유통 선박의 발이 묶여 있었다고 했는데 이런 선박 하나에 나름 제각각이지만 수천개의 컨테이너를 적재하고 한 컨테이너에 20톤 넘게 들어간다. 즉, 수에즈 운하에 발이 묶여 있던 수많은 유통 선박은 지구 각 지역의 항구에 다다라서 수많은 공장과 산업 현장에 어마무시한 양의 각종 자원을 조달해야 했었다. 그래야 했었는데 그 선박들은 약 일주일, 상황에 따라 이주 가깝게 발이 묶였고 여기서 원재료 등을 조달받지 못한 수많은 공장과 산업 현장이 계획대로 생산을 못하여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이 피해는 단순히 그 만큼 수익을 못 냈다 정도가 아니라 예정과 다르게 생산에 차질이 생겨서 계약 위반 등으로 배상금액을 떠맡게 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몇몇 기업에서는 파산 및 실직 뿐만이 아니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이집트 정부가 요구하는 10억 달러 가량의 배상금액이 납득이 가긴 할 것이다. 그 많은 배상금액은 이집트 정부가 형식적으로는 홀로 독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수에즈 운하에 의존하던 수많은 유통업체와 유통 사용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과연 이것이 옳은 것인가 묻고 싶다. 선주와 선박 운용사에게 책임을 묻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끼친 피해는 자본주의적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어마무시하게 크다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과연 모든 사사로운 것까지 자본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가치가 부여되고, 그래서 단순히 예정대로 생산을 못했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빚의 노예로 만들거나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이 거대한 도박장이 과연 바람직한 것이냐는 것이다.

잠시 주관적인 상상을 펼쳐 이야기 하자면, 만약 전 세계가 필자가 꿈꾸는 대로 아나키즘적 코뮌으로 형성된 거대한 공동체라면, 위와 같은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나 확실한 것이라면 적어도 유통선박에게서 물자를 받아서 생산을 해야 했던 공장 관계자들에게 어마무시한 빚을 떠넘기거나 실질적인 사형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와 같은 코뮌, 혹은 코뮌 조합을 유지하는 민중은 모두 생산 실패의 원인이 그들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자신들도 비슷한 처지에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에게 책임을 묻기 보다는 생산 실패의 결과, 즉 일시적 빈곤을 담담히 모두가 분담하여 수용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원리는 에버기븐호에 의해 정체되었던 모든 유통 선박 관계자들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에버기븐호의 관계자들은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기에 추후 사고 방지를 위한 재훈련 및 패널티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부여되는 책임감에 비하면, 수많은 빚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책임에 비하면 가벼울 것이다. 모두가 잠시 빈곤을 분담하게 되어 불편을 겪게 된 일에 대한 책임은 전자에 비하면 짊어지기 쉬울 것이다. 많은 이들은 이를 듣고 이상주의적이라고 말할 것이지만 필자는 이것이 이상주의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올바른 것이다. 아나코 코뮌주의는 인류의 미래에 필수적인 것이다.


“"수에즈 운하 정체 사태 끝" 10억 달러 배상, 이제…”:

https://www.ytn.co.kr/_ln/0134_202104041043517217


2. [언제나와 같은 사기극]

4.7 재보선 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와있다. 특히 주목 받고 있는 곳은 단연 서울 시장 선거일 것이다. 반동 양당의 후보들이 제각기 각자의 서울을 외치며 투표를 독려하고 있지만 이 소위 민주적 선거라는 체제가 언제나 민중에게 몇 년에 한번 몇 명의 사기꾼 중 자신을 지배할 독재자 한명을 택할 권리를 줬을 뿐인 사기극이었듯 이번 선거 또한 다른 한편의 사기극에 불과하다.

부자들의 배를 불리고자 용산에서의 참사를 불러일으킨 오세훈이나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며 탄력근로제 확대를 주장했던 박영선의 이중성 등 후보 개인의 추악함을 말할수 수도 있으나 중요한 점은 선거 따위는 민중의 삶을 개선시킬 수 없다는 체제 본연의 문제다.

어느 당이 얼마의 표를 받아 집권을 하던 그들은 민중을 대변할 수 없다. 그들이 민중을 소위 대변한다는 정치 행위는 결국 모두 자의에 근거한 것일 뿐이다. 민중은 그들에게 책임을 물수도, 통제할 수단도 없다. 하물며 가장 강력한 압제의 주체인 자본은 그들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대상이며 민중의 직접 권력 행사는 애초부터 막혀있다.

이번 재보궐도, 서울 시장 선거도 마찬가지다. 쪽방촌의 주민들에게 집을 줄수도, 농성하며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도울수도 없다.

추악한 반동 양당 후보를 넘어 저 부패한 권력을 탐하는 모든 이들은 민중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민중에 의한 직접 행동만이 답일 따름이다.


"사전투표율 20.54% 역대 최고치" :

http://www.shina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95550


3. [훌륭한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MBC와 국가기관을 비롯하여 수많은 자본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비호하기 위해 온갖 논리들을 갖다 붙이고 있다. 미얀마 항쟁에 있어 군부에 포스코는 결코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느니, 미얀마에서 철수하는 것은 어렵다느니 하는 해명을 기업은 물론이거니와 공영방송인 MBC에서조차 펼치고 있다. 사실 이는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다. 국가권력은 자본의 하수인 아니던가. 그들이 비호해야 할 것을 비호하는 것 뿐이다.

​그들의 자기위로는 너무나도 어설프고 허탈해, 보는 우리로 하여금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든다. 군부에게 배당을 멈추고 있었다던가, 철수를 하지는 못한다던가 하는 말은 결국 '아무튼 도우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돕고는 있는 건데, 아무튼 도운 건 아님.' 이라는 말을 돌리고 또 돌려서 표현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필사적으로 자신들을 비호하는 미얀마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한국 기업들에게 묻고 싶다. 진정으로 당신들은 미얀마 군부를 돕지 않았나?

그들이 그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 군부와의 관계성을 거부한다 한들, 미얀마에서 여전히 돌아가거나 활동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결국 미얀마 군부의 ‘묵인’ 혹은 ‘허가’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다. 포스코와 한국 기업들이 미얀마 군부를 성토하고, 그들과 함께 일하지 않겠다 선언한 적이라도 있던가? 그들은 ‘기업 활동을 위해 어쩔 수 없다’ 라고 변명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것이 그들의 본질이라는 것을. 인민의 자유를 향한 투쟁과 연대는, 그들에게 있어 돈이 되지 않는, 그리고 리스크가 매우 큰 일이란 것 말이다.

이미 드러난 사실을 부정하는 것도 비웃음만 나올 뿐이다. 그래서 민 아웅 흘라잉과 유착, 이전부터 없었나? 예전부터 그들과 거래하고 있던 것은 다 사라지는가? 그래서 지금 미얀마에서 사업 안 하고 있나? 그들의 투자와 사업이 미얀마 군부가 아니라 미얀마 인민에게 돌아가고 있나? 전혀 아니지 않은가?

박수를 보내자. 포스코와 대한민국은 훌륭한 제국주의 국가의 첨병이자 그 자체가 되었다. 이제 너무나도 확실하지 않은가? 미얀마던 대한민국이던, 모든 정부기관과 국가권력은 자본의 하수인이자 대변인이란 것 말이다. 그리고 그 자체로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에 복무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한국 기업이 미얀마 군부의 돈줄?" 속사정은…" :

https://imnews.imbc.com/news/2021/world/article/6128811_348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