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서가 두려워서야]

지난 23일 교보문고를 통해 온 오프라인으로 판매되고 있었던 김일성의 자서전인 ‘세기’와 더불어가 교보문고에 의해 판매중지 조치됬다. '세기'가 과거 이적표현물로 규정된 바 있어 고객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해 중지했다는 교보문고 측의 설명이다.

교보문고쪽에 대한 판단은 뒤로 두더라도 먼저 이번 사건의 배경이 과거 대법원의 이적표현물 규정에 의한 것인만큼 국가에 의한 검열과 규정제도를 먼저 거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오래전부터 그들의 체제 수호를 위해 국가보안법을 통한 표현물의 규제를 시행해왔다. 기본질서를 위태롭게하고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표현물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이나 검열되는 표현물이 옳냐 그르냐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국가가 과연 어떤 자격을 가지고 옳은지 그른지, 민중에게 읽히는게 바람직한지 말지를 결정하는가?

검열제도는 결국 현 체제의 민중의 지지에 대한 지배층의 자신감의 결여를 의미한다. 진실로 현 체제가 민중에게 이득이 된다면 어떤 표현물이 있건 체제에 대한 민중의 지지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민중에 의한 질서가 아닌 자본과 권위, 압제에 의해 세워진 국가 질서는 그들의 위치를 두려워 할 수밖에 없고 민중의 눈과 귀를 막으려든다. 국가는 민중이 무엇을 읽을 수 있나를 정할 자격이 없다.

무엇을 읽을지 결정하는 것은 민중 그 자신이다. 그것이 허풍과 헛소리로 점철된 불쏘시게건 아니건간에 말이다.

https://www.vop.co.kr/A00001565738.html ​

2. [가난한 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부자들에 의해 훔쳐지다]

지난 한 주간 유럽 축구에 거대한 격변이 불어닥쳤다. UEFA (유럽축구연맹) 의 챔피언스리그 개편에 반대하는 거대 축구클럽들이 UEFA를 탈퇴하고, 새로운 리그를 창설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여기에 선두에 선 클럽은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같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거대 클럽들이었고, 이들은 미국 JP모건의 지원을 받아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거대 스포츠 클럽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막대한 이윤을 벌어들이고자 했다.

당연하지만 이에 대해서 현지 축구팬들은 열렬히 반발했고, 특히 노동자 계급들의 반발은 더더욱 거셌다. 슈퍼리그는 부유한 클럽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소위 '천룡인'이나 다름없는 리그였음과 동시에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재정난에 있어 부유한 클럽들만 살아남음을 넘어 이윤을 착취하겠다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나선 사태였기 때문이다. 유럽 축구의 스포츠성과 노동계급성을 잊지 않은 유럽 축구팬들에게 있어 이는 재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에 편승해 각국 정부와 UEFA, FIFA, 심지어는 IOC 까지 나서 슈퍼리그를 반대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압력에 결국 영국 프리미어리그 6개 구단을 시작해, 여러 구단들의 슈퍼리그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슈퍼리그의 반발에 있어 나선 축구팬들의 강력한 반자본주의적 열정이다. 물론 축구팬들 또한 스스로 알고 있다. 이미 축구는 실질적으로는 자본주의화 되어 있고, 상업적인 면모를 띤지 오래다. 더 이상 축구라는 한 스포츠는 노동계급의 스포츠가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자본가들의 돈놀음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실질적임이 허울을 벗고 나서 당당하게 나서려는 시도에 있어 적극적인 반대를 표명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상징할 구호를 외쳤다.

"가난한 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부자들에 의해 훔쳐지다."

축구팬들은 알고 있다. 슈퍼리그와 UEFA, 정부, 축구연맹들은 슈퍼리그를 만들고자 했던 JP모건과 거대자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UEFA를 지지한 것이 아닌, 축구라는 스포츠와 그 역사와 전통을 지지하며, 노동계급의 스포츠를 수호하고자 했을 뿐이다.

더 이상 스포츠가 거대자본의 손아귀에 의해 흔들리는 것이 아닌, 진정한 노동계급의 스포츠로서 다시 재탄생되기를 빈다. 그리고 이를 위한 노동자 계급의 사회혁명 그 길로 우리는 끝까지 나아갈 것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424005700072?input=1195m



3. [재미와 자본주의가 반비례한다면...]

잠시 무거운 시사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게임 커뮤니티에서 발생한 ‘논란’에 대해 알아 보겠다. 소니 PS4 독점 AAA급 게임으로 출시된 ‘데이즈 곤’이라는 게임의 작가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존 가빈이 ‘정가로 안 샀으면 후속작 불평 말라’라는 식으로 말해서 논란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왜 발생했는지 간략히 알아보자면 ‘데이즈 곤’이라는 게임이 2019년 처음 출시 되었을 때에는 AAA급 치고는 많이 낮은 퀄리티를 보여줘서 혹평을 받았고 결국 빠른 타이밍에 할인 판매로 전환되었다. 그래도 이후 패치와 업데이트를 통해서 많이 개선되었고 그 결과 팬층이 두터워지면서 후속작을 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수익성이 낮아서 후속작 개발을 하기 어려웠던 존 가빈이 홧김에 앞서 나온 막말을 하게 된 것이다.

개발자와 팬들이 이런 싸움을 한다는 것도 상당히 씁쓸하지만 이번 일을 다르게 보자면 기업의 자본이 얼마나 게임 개발에 큰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고 자본을 움직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생각해보면 이 영향은 주로 부정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AAA급 게임 만들려면 되려 자본이 많을 수록 좋지 않은가?’라고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자본화가 된 생산 수단(개발 관련 하드웨어, 부동산 등)과 소비 재화(생필품 등)가 필요한 것이지 자본이라는 개념이나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만약 데이즈 곤 개발사가 자본주의 체제에 휘둘리지 않고 자본 확보에 자유로웠다면 후속작 개발도 순수히 팬층의 피드백을 받고 결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 체제가 되려 해가 되는 사례를 좀 더 알아보자. 2013년 5월, 인디 개발팀 래디언트 엔터테인먼트의 스톤하스(하스스톤 아니다)라는 게임이 성공적으로 킥스타트를 했다. 그리고 2015년 6월에 온라인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에 얼리 엑세스로 출시했다. 이후 꾸준히 유저와 소통하면서 업데이트를 해오던 스톤하스는 주목을 점점 받으면서 2016년 4월, 라이엇 게임즈에 인수되었다. 팬들은 개발팀이 안정적인 자본의 지원을 받으면서 개발팀이 킥스타트 때 약속한 계획대로 꾸준히 개발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8년 7월, 뜬금없이 한참 개발이 덜 된 상태에서 게임은 정식 출시되었고 개발 중단이 선언되었다. 당시 공지대로라면 게임의 개발 중단과 라이엇 게임즈의 인수와는 아무 상관 없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개발자들은 라이엇 게임즈의 다른 프로젝트 쪽으로 차출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자본주의 체제는 게임의 재미를 깎아먹거나 심하면 게임의 미래 자체를 없애버리기나 하지 게임의 재미를 향상시키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 우울하게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욕을 하는 대신 꽤나 희망적인 뒷이야기를 전하겠다. 스톤하스라는 게임은 그렇게 ‘얼리엑세스가 얼리엑세스했다’라고 끝날 뻔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다행히 스톤하스는 모드 제작 및 적용이 매우 용이한 게임이어서 많은 모드 제작자들과 팬들이 게임에서 손을 떼지 않고 오히려 뭉쳐서 정식 커뮤니티 확장판(Authorized Community Expansion)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이는 2021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앞서 말한 경우가 다소 극단적이어서 그렇지 이렇게 게임이 자본주의적이기만 한 개발 체계 대신 유저들의 자발적인 모드 제작 등을 통해 재미를 확보하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이 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모드 제작자들도 일종의 노동자라고 생각해보면 게임의 재미는 개발자들의, 노동자들의 자발성과 자주성에 비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미와 자본주의가 반비례 한다는 점, 대신 재미는 노동자들의 자발성과 자주성에 비례한다는 점은 게임 뿐만 아니라 거진 모든 문화 컨텐츠에 해당된다. 대표적으로 유튜브가 가장 눈에 띄는 사례인데 어떻게든 클릭 유도를 하려고 거의 사기를 치려 드는 양산형 유튜브 채널은 재미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귀와 눈을 물리적으로 씻고 싶을 정도로 역겹다. 그에 비해 썸네일 제작에 공을 들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매번 특이하고 새로운 걸 시도하거나, 일관된 컨셉을 유지하면서 꾸준한 재미를 주려는 유튜브 채널은 취향 차이가 있을지언정 왜 사람들이 즐겨보는지 납득이 간다. 결국 재미를 만드는 주체도 사람, 노동자라는 것이다.

https://www.gamemeca.com/view.php?gid=1658433 https://www.pcgamer.com/stonehearths-development-will-end-this-month-without-meeting-all-its-kickstarter-goals/



4. [효율의 깃발 아래 톱니바퀴가 되다.]

최근 배달 앱 ‘요기요’의 배달 기사들이 인공지능의 일감 배분 시스템 때문에 화장실도 제대로 못간다는 뉴스를 봤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인공지능이 일감을 배분할 때 배달기사들에게 매겨지는 등급에 따라 배분한다. 그런데 이 등급 책정이 신속한 배달, 꾸준한 스탠드바이 등 극도로 효율을 중시하다보니 급하게 화장실을 가기 위해 휴식 신고를 잠깐 했는데도 다음주에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필자는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막상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비슷한 사례로 미국의 국제적인 쇼핑 중개 회사 ‘아마존’에서도 택배 운전 기사들이 빠른 배송, 효율을 강요받아서 차량 안에서 소변통을 사용해야만 하는 열악한 근로 환경이 폭로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가 점점 ‘빨리빨리’, 신속, 효율을 노동자들에게 강요함에 따라 노동자들은 점점 인격이 잊혀진 톱니바퀴가 되어간다.

처음 이 기사를 봤을 때 필자는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그 기술의 사용자가 노동자들 본인이 아니라면 바람직하게 사용되지 않는다.’라고 비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물론 그 비판도 전반적인 현대 사회를 생각하면 절대로 틀리지 않고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일단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다들 쉽게 알 수 있기에 이번에는 말을 아끼기로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딱히 기술이 아니다. 왜냐하면 굳이 인공지능이 감정이 메마른 채 택배 기사들의 등급을 매기지 않아도 담당 직원이 상사에게 받은 매뉴얼대로 휴식을 일정량 사용하면 일정 점수 차감하고, 그 점수대로 줄 세워서 몇등부터는 1등급, 그 밑은 2등급, 이런 식으로 책정해버리면 위와 같은 문제가 똑같이 발생하고 만다. 즉, 이는 근본적으로 기술의 올바른 활용보다는 비정상적으로 효율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우리가 얼마나 어렸을 때부터 ‘빨리빨리’와 ‘효율’을 들으면서 서열매기기와 상대평가, 능력주의를 당연시하게 되었는지 조금만 스스로의 인생을 되돌이켜 보면 알 수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우리의 머릿속에 새겨놓은 거짓된 목표상 때문에 우리는 무언가 배달이 조금만 늦어도 툭하면 화를 내도록 변질되었다. 그리고 이런 소비자들의 불만을 충족시킨다는 명분으로 배달 기사들은 점점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당연히 이의 기반이 되는 자본주의와 이를 수호하는 국가 권력의 철폐가 정답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아나키스트가 알 것이다.

하지만, 비록 필자가 믿는 유물론적인 관점과는 다소 어긋나기는 하지만, 당장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자발적으로 탈효율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개개인이 연습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비록 자본주의 체제가 우리의 머릿속에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새겨놓았어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상호부조의 중요성을 느끼기에 ‘빠른 배송을 위해 배달 기사들의 생존권까지 위협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우리는 외친다. 또한 우리는 빠른 배송, ‘효율적인 배송’을 포기함에 따라 좀 더 꼼꼼한 배송 완료 확인, 배송 내용물 훼손 감소 등 더 질 좋은 배송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자발적으로 생각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자주적으로 탈효율적인 사고를 연습을 하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해방의 깃발 아래에 모두 모일 것이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21/nwdesk/article/6157415_34936.html http://www.ddaily.co.kr/news/article/?no=21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