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21년 4월 22일, 경기도 평택항에서 한 청년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대학 3학년생인 이선호씨는 판데믹 때문에 학교를 못 가던 터라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역사 (주)동방의 하청업체에서 작업반장인 아버지와 함께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다. 그는 본래 컨테이너 안 검역을 주로 했었지만 그날은 대신 FR컨테이너 관련 업무에 처음 투입됐다. 하지만 그는 안전 교육도 못 받았고 안전 매뉴얼도 실질적으로 부재했다. 이런 안전 관리의 소홀은 최저입찰제로 외주를 입찰받는 식으로 하청업체를 선정하다 보니 안전 관리 역할을 할 인력 고용을 못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2인1조로 작업할 일을 그보다 부족한 인력에게 떠넘겨버린 것이다. 즉, 이런 산업’재해’는 재해라기 보다는 이윤을 핑계로 한 기업들과 이들을 움직이는 자본주의의 ‘살인’인 것이다.

이렇게 이윤에 눈이 먼 기업들이 안전을 일부러 내팽개치고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건들은 2018년 발전소 안에서도, 2016년 구의역에서도, 그리고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도 있어왔다. 하지만 정부의 규제 정책은 여태껏 무의미해왔으며 기업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발뺌하기 바쁘다. 이런 와중에도 판데믹 이후로 올해 1분기에 신규채용이 다시 늘었지만 주로 늘어난 임시/일용직 임금노동자들은 여전히 앞서 말한 산업’재해’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는, 그들의 가족이고 친구인 우리들은 더 이상 이를 용납하여서는 안된다. 필자는 진지하게 이대로면 점점 더 많은 청년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 내몰려 제2의, 제3의 이선호씨가 등장하게 되지 않을지 심히 걱정이다.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아야만 한다. 그렇기에 필자는 주장한다. 좌파니 우파니, 아나키즘이니 아니니를 잠시 접어두고 모두 산업재해에 맞서 일어서자! 정부도 기업도 아닌 노동자들이 직접 안전에 필요한 것들을 점검할 수 있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당당히 기업에게 청구하고 요구할 수 있는 노동자 자주적인 노동환경을 요구하자! 더 이상 노동환경에 불합리에 의한 노동자의 피가 흐른다면 다음에는 누구의 피가 흐를지 알려주자!

2.[경찰은 세계의 누구보다 아나키즘을 사랑하면서 왜 본심을 숨기는 것일까?]

조금, 혼란스러웠다. 제목과 같이, 공화국 대한민국의 경찰은 사실 그 누구보다 세상의 아나키즘적 재편을 바라마지 않는 사람들인 것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접근금지명령을 어긴 남편을 발견했음에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으면서 "이건 그냥 종이일 뿐이다", "(집행은) 판사가 해야할 일", "법원이 이렇게 종이 '딱지'만 보내놓은 건 무책임한 것", "우리는 법원하고 다르다. 우리한테 강제력을 요구할 수 없다", "떼쓰지 말고 서로 한 발씩 양보하라"는 이야기를 망설임 없이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여태 우리가 "경찰"이라는 제도와 거기 종사하는 이들에 대해 사실 크나큰 오해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사건을 근본적으로 사전에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으며, 사후라고 하여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그놈의 '법치주의'라는 것이 제 기능을 못한다는 좋은 실례를 보여주는 것이자 법률에 의한 대중의 억압을 실행하는 '척'만 하는, 뭐라고 할까, 그래, 다크나이트 같은 존재들인 것이다. 국가라는 거대 권력기구가 효율적으로 독점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온몸으로 일선에서 막아서고 조롱하는, 대중의 자유를 위해 묵묵히 짭새라며 욕을 먹으면서도 제 할 일을 하는 침묵의 수호자, 어둠의 기사 말이다.

앞으로 집회에서 경찰들을 마주치면 전보다는 조금 상냥하게 그들을 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그 전에는 그들이 다치든 말든 방패도 뺏고 하이바도 뺏고 했다면 이제는 '요요요 앙증맞은 가식쟁이 샤이 아나키스트☆'하고 딱콩 한 방 주먹으로 때려주는 정도로 말이다. 그러면 그들도 우리에게 '드디어...! 우리의 본심을 알아주는 이들이 나타났구나...!'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는, '그래도 아직은, 아직은 국가가 이것을 눈치 채면 안 된다'며 눈물을 다시 삼키며 우리를 열심히 잡아가려는 '척'을 할 것임에 분명하다. 오이오이, 짭새쿤...! 믿고 있었다구...!

부디 대한민국 경찰 제군이 앞으로도 국가의 강제력에 대항해 법원의 명령서라는 것이 사실은 대중이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저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적극 홍보하는 일에 나서 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들의 모두의 미움을 받을 용기에 다시 한 번 속으로 응원과 연대를 보내며, 현장에서 이 마음을 숨기고 서로 욕으로 주고 받는 츤츤을 끝낼 날이 하루빨리 도래하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바라 본다.

https://news.joins.com/article/24048788

3. < 이 시국에도 가격표를 붙이려드나 >

백신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19 사태의 종식은 멀어만 보이는 가운데 백신의 지적 재산권을 면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약사인 화이자는 당연하게도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화이자측의 “지재권 보호가 없어지면 세계 각국의 제약사가 너도나도 백신 생산에 뛰어들면서 화이자처럼 풍부한 노하우를 갖춘 기존 기업들의 원재료 공급망에 지장이 초래될 위험이 있다”는 주장은 그저 황당할 따름이다. 바로 그 지적 재산권을 통해 약품의 생산을 규제하고 독점하며 고액에 팔아치워 민중을 착취하고 있는 기업이 할말이라니. 화이자가 속한 미국제약협회는 그들의 수출 약품 가격을 높게 유지하기 위해 방해가 되는 타국의 제약 산업을 대상으로 미 정부에 무역제재를 요청해온 단체다. 화이자는 백신 공급문제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

모든것을 이윤추구의 대상으로자 삼고자 하는 자본주의는 오늘날에는 지식과 정보에마저 소유를 주장하고 있다. 이 소위 ‘지적 재산권’이라는 것의 가장 큰 수혜자는 거대 자본이요 가장 큰 피해자는 민중이다. 우리는 오늘날 앞서 언급한 제약회사는 물론 몬산토의 농민 착취와 같은 거대 자본의 지재권에 의한 착취를 목도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들이 구축한 질서 속에서 독립적인 개발자들과 창작가들 또한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생계를 위해 지재권 체제 안으로 들어가야하는 상황에 쳐해있음을 알고 있으며, 알약 하나, 씨앗 하나, 글자 하나에까지 착취당하는 민중의 실정을 보고 있다.

지재권의 해악성은 비단 코로나 백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약만이 아닌 약만드는 지식에조차 가격표를 붙이려드는 이 또 하나의 착취제도는 그 자체로 문제이며 자본주의 체제와 함께 철폐해야 할 대상이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55&aid=0000892861

4. [아! 인민재판 마렵다!]

5월 10일 광주에서 예정된 전두환의 사자명예훼손 항소심 재판에, 살인마가 불출석을 통보했다. 법정에 서고 싶지 않으면 항소심을 제기하지를 말던가, 항소심을 제기하여 국가의 보호에 스스로의 처지를 위탁하기로 결정하셨으면 잠자코 법정에 서던가 둘 중 하나만 했으면 좋겠지만, 이 대머리 학살자는 그러한 상식조차 없는 것 같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가놈이 40년 전 5월 광주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를 돌이켜보면, 하필이면 “5월”에 “광주”에 가면, 솔직히 조리돌림 일직선일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자기가 사람 수천수백의 몸에 총탄을 박아넣을 때는 아무 감정도 없다가도, 정작 자기의 머리에 계란 하나가 던져지면 광분하는 것이 세상 모든 권력자들의 심성이니 말이다. 어쩌면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은” 놈들이 쏟아내는 욕을 처먹는 것이 심히 억울하실 지도 모르겠다.

안타까운 일이다. 광주시민들이 직접 전씨를 단두대에 올리는 것이야말로, 금남로에 그 새끼를 묶어놓고 조리돌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광주라는 도시에게 행복한 일이 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결국 그것이 인민재판이 아니냐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맞다. 인민재판을 하자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 나쁜가. 인민들을 학살하였던, 인민들의 삶을 파괴하였던, 인민들의 공동체를 파괴하였던 지상에 현현한 대머리 사탄을 인민들이 직접, 인민들이 합의한 규칙에 따라 처벌하는 것이, 그 사탄이 건설에 일조한 ‘법’이고 ‘체제’인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서도, 위대한 법치공화국, 대한민국에서는, 이러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을 안다. 지난 40년간, 정권이 어떻게 바뀌건, 정세가 어떻게 변하건, 전두환에 대한 국가의 ‘배려’는 변함이 없지 않은가. 아니, 세계 역사를 돌아보아도, 폐주(廢主)를 인민의 바람대로 처분하여 준 신정권이 존재하기는 하는가. 정권을 잃은 뒤의 자신들이 그렇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라도, 그 어떠한 체제도, 지난 지도자를 처분하지 못했다.

크로포트킨은 “억압의 피비린내 나는 집행인들은 절대로 기소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크로포트킨이 이 글을 쓰고도 한세기 반이 지났고, 이제 막 근대국가 비슷한 것들이 태동하던 당시에 비하여 국가운영의 경륜이 쌓인 그들은 더욱 세련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억압의 피비린내 나는 집행인들”을 기소하지만, 절대로 (인민들이 합당하다고 여길만큼) 처벌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렇게, 인민들을 조련한다.

제발, 전가놈이, 사회혁명의 그 날, 우리가 직접 그를 재판하는 순간까지,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79&aid=0003501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