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차별이 잘못된 줄 몰라서 할 리가…]

2021년, 역병과 더불어 세상에 차별이 점점 만연하고 있다. BLM 운동 이후 대중의 차별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한 저항은 점점 발전하는 듯 하면서도 이에 못지 않게 전세계에서, 특히 한반도에서도 차별의 합리화와 노골화도 심해지고 있다. 혹자는 기존에 존재하던 차별이 공론화된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단언하기에는 최근 개인 매체 및 커뮤니티에서 차별을 정당화하고, 심지어 차별을 못해서 아쉬워하는(?!) 현상까지 발견되고 있다. 이렇게 차별옹호적인 사회 현상을 막기 위해 현재 한국 국회는 물론 많은 국가의 의회에서 차별금지법을 도입했거나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우리 <아나키스트 연대>는 차별에 저항하기 위한 소수자들의 자주적인 저항과 투쟁을 지지하며 이들과 연대하고자 한다. 때문에 이런 소수자들이 당장의 해결책으로서 차별금지법 도입을 주장하면 우리는 이 해결책에 의문을 품더라도 함부로 반대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는 이 해결책, 차별금지법에 명확한 한계가 있기에 이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 밖에 없다. 차별금지법의 세부적인 조항도 따지고 들면 지적할 만한 문제점이 있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그걸 개정한다고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기에 차별금지법 자체의 한계에 대해 살펴보겠다.

일단 차별이 왜 일어나는지부터 알아보자. 보통 차별이 상대방에 대해 이해를 못할 때 발생한다고 하지만 이는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다.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는 차별이라는 폭탄에 있어서 심지 부분에 불과하며, 직접적으로 터지게 되는 화약 부분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이해관계, 그리고 물질적 토대의 불안정성이다. 먼저 이해관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차별도 상당량은 실제로 물질적 손익을 두고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사용자들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 개인 매체들의 차별을 조장하면서 인기를 얻는 사례가 있다. 이런 차별을 조장하는 이해관계는 자본주의 및 국가 체제가 직접적으로 조장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관련 사업을 배불리는 대신 수많은 소수자들을 불행에 빠뜨린다.

그러나 차별 중에는 단순히 이런 물질적인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한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론 및 개인 매체들의 이해관계적 기반이 되는 대중의 소수에 대한 차별은 물질적인 손익과 거의 무관하다. 그러면 왜 차별이 발생하는 것인가? 바로 물질적 토대가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한번쯤 임금체불, 실직 위기, 갑작스런 해고 등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갑자기 자신의 임금 등의 물질적 토대가 흔들리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그리고 그럴 때 자신이 얼마나 지식이 풍부하고 똑똑하든 간에 자신의 비극의 원인을 자신이나 체제보다는 체제가 합리화하는 대로 다른 곳에서 찾고 싶어한다. 그렇게 대중은 소수에 대해 차별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차별은 이렇게 발생하기에 이를 차별금지법 등의 제도를 통해 규제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차별금지법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하더라도 이해관계 면에서 범법자에게 제제를 가하거나 소수의 경우 구속하는 방식이기에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차별, 예를 들어 개인 매체나 언론의 차별 조장적 보도 정도는 제한할 수 있어도 물질적 토대의 불안에 의한 차별은 막기 힘들다. 아니, 오히려 불안에 내몰린 대중을 더더욱 압박하기에 그들은 ‘표현의 자유’ 등을 내세우면서 차별 정당화에 더더욱 힘을 쓸 것이다. 이렇게 더더욱 열내는 대중을 본 기존의 이해관계적 차별자들은 이 열기를 사업삼아 법의 제제를 감안하고도 차별을 더욱 은밀하게 조장하면서 수익을 내려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저항해야 할 것인가? 운이 좋게 물질적 기반에 불안을 안 느끼거나 이를 극복한 우리는 이런 대중에게 ‘과연 우리가 느끼는 불안의 원인이 차별하고자 하는 대상인 게 맞는가?’라는 질문을 꾸준히 던져줘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체제의 차별에 대한 합리화를 눈치챌 것 같으면 그들을 도와 차별의 거짓에 대해 깨닫도록 도와줘야 한다. 대중은 흔히 어리석다고들 볼셰비키, 의회주의자, 계몽주의자들은 말하지만 그들은 절대 그렇지 않으며 약간이라도 합리화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 저절로 거짓에 대해 깨달을 수 있다.

나머지 이해관계적으로 형성된 차별주의자들은 어찌하는가? 이해관계에 충실한 자들은 이해관계에 맞춰서 대응하면 된다. 그들의 차별과 선동을 폭로하고 이들의 부정에 맞서 불매운동 등으로 조직적 투쟁을 실시하면 된다. 그러면 그들은 저절로 살아남기 위해 그러한 차별적인 행동을 멈추거나 역으로 물질적으로 유지하지 못하면서 붕괴될 것이다. 결국 차별에 대해 맞설 때도 필요한 것은 대중의 조직화된 투쟁이다. 우리 대중은 성별이 어떻든, 인종이 어떻든, 신체 상황이 어떻든 간에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우리 중 하나의 상처는 우리 모두의 상처이니, 인민대중이여, 단결하여 나아가자!

"외국인이라, 사투리 쓴다고..."정당한 차별이란 없다" 피해자들 호소" :

https://youtu.be/5P4XD8EIQOU


2. [중국공산당 망해라]

비단 아래 기사에 나오는 홍콩에서의 일만 가지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중국공산당이 중국내 당시 아나키스트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출범한 이래 1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들이 쌓아 온 죄악을 헤아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주 가까운 시일의 사례로는 홍콩의 언론들을 강제로 폐간시킨 것부터 시작해 홍콩 인민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을 만든 것,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만든 민주노조를 탄압하고 박살내고 활동가들을 잡아다 가두고 두들겨 패서 내다 버린 것, 조금 멀리 가보자면 국제 행사를 위해 자국 인민들의 삶의 터전을 국가의 이름으로 부수고 철거한 것, 공산당이라는 이름을 걸고 제국주의적인 경제식민지 정책을 끊임없이 획책하는 것 등, 이루 열거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천안문 사태는 굳이 적지 않아도 스스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인지 황금방패 전사님들이 열과 성을 다해 자국 내에서 접근하기 어렵게 하고 있으니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일군의 독자들에게도 분명히 묻고 싶다. 중국공산당이 여러분 마음 속의 그 공산당이 맞기는 한가? 자국의 이익만을 좇아 민족주의적 광기를 전 세계에 내뿜으며 칼춤을 추는 모습이 정말 노동자 대중을 위한 '공산당'의 모습이 맞는가? 물론 우리 강철의 대원수 스탈린도 그랬으며 특수한 상황이 어쩌고 자본주의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노동자국가를 수호 운운하는 대답들이 돌아올 것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그러면 굳이 더 첨언할 것은 없을 것 같다. 다만 쓴웃음이 지워지지 않는 착잡함만이 남을 뿐이다.

이제는 차라리 중국이 사회주의연 하는 것을 그만 멈추고 솔직하기라도 했으면 어떨까 싶다.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대로 받아들이고, 민족주의는 민족주의대로 광풍을 일으키고, 제국주의는 제국주의대로 밀어붙이는 것이 어디를 봐서 사회주의라는 말인가. 차라리 사회주의 간판을 떼고 스스로에게 솔직하기라도 하면 안 먹어도 될 욕은 적어도 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인간사 백 년이면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일 때도 된 것이다. 백 년 동안 중국공산당이 무얼 얼마나 이루었고 노동자 대중을 위해 노력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했다고 치고, 이제 그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그 뒤는 중국 각지의 여러 대중들, 티벳의 여러 대중들, 위구르의 여러 대중들, 홍콩의 여러 대중들, 대만의 여러 대중들이 알아서 스스로의 삶을 잘 꾸려 나갈 것이다. 아무리 중국공산당이 파쇼적인 행태로 대중들의 투쟁을 짓밟아도 끝내 다시 일어서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제 그만 망해라.

"홍콩의 ‘분서갱유’"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01034.html

"시진핑, 공산당 창당 100주년 앞두고 '새로운 업적' 주문" :

https://www.yna.co.kr/view/AKR20210627028300083?input=1195m

3. [그들의 민낯]

지난 18일, 함안의 제조업체에서 채용된 직원에 대해 ‘충성 서약’을 강요하고 있던 관행이 금속노조 경남지부에 의해 밝혀졌다. 내용은 지시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 전근·전입·출입·기타에 관한 사측 명령에 대한 순종과 수습기간 중 사퇴 권고시 즉각 사퇴, 자신이나 회사의 타 직원의 연봉 및 시급에 대한 정보 누설 금지 등 가히 전근대적인 수준이다.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가 밖으로는 몇몇 대자본이 무노조 경영 구호를 내리는 등 자신의 겉모습을 좀 더 세련되게 포장해보이려 하지만 안으로는 여전히 이런 야만적 관행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다. 주류 기득권 언론의 관심과 시선에서 벗어난 지방, 비정규직, 계약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착취당하고 있고 그나마 이미지를 챙긴다는 기업들조차 노조 파괴와 UHP를 위시한 최대한의 육체 착취를 일삼는다. 노동자들은 이런 한국 자본주의의 민낯을 직시하고 상생을 운운하는 정부와 우파의 선전 선동이 얼마나 가식적인가를 직시해야한다.

21일 자로 해당 업체의 대표는 이 복종 서약서에 대해 사과하며 근절하겠다고 말한 상태다. 정말 착취적 관행을 폐지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앞으로도 직접 투쟁하는 노동자의 손에 달려있다.

"함안 제조업체, 노동자에 ‘복종 서약’ 논란" :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353821

4. [아, 이게 좌우 넘나들기였구나...]

우리 준석이형이 국민의힘 당대표가 된 이래로 봉하마을을 찾아 황교안을 만났고, 이승만과 대립한 백범김구 묘소도 참배했답시고 좌우를 넘나들기 했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20대 청년을 대변하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줄 당대표, 준석이형!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일단 가장 먼저, 김구와 노무현 묘지를 찾았답시고 '좌' 에도 손을 내밀었다고 판단하는 언론들의 판단이 참 역겹기 그지 없고, 동시에 '중간지대 넓히기' 라는 이름조차도 너무 역겹다. 이준석이 이야기하는 소위 '공정' 진짜 공정이 맞는지조차도 신뢰성이 드는 때에, 이준석을 띄워주고자 하는 수많은 시도들이 많이 보이는 것 또한 너무나도 역겹다.

좌우를 넘나들며 중간지대를 넓힌다고? 틀렸다. 이준석은 자신이 안티페미니즘과 20대 남성 청년을 대변한다는 것을 넘어, '평범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것을 행동으로써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이준석 신드롬에, 그리고 연례행사와 같은 좌우통합 코스프레에 더 이상 속지 말자. 그 어떤 사람보다도 18~19세기 영국을 간곡히 원하고 있는 이준석을 그냥 저 먼발치에 치워두자.

그리고 우리가 일하고 있는 곳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곳에 집중해보자. 그리고 불만이 있거나 무언가 더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 내 옆에 있는 친구와 함께 같이 싸워보자. 이준석에게 기대는 것 보다, 그것이 진짜로 내 삶을 바꾸는 힘이 될 것이다.

"이준석, 좌우 넘나들며 ‘중간지대 넓히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2&aid=0003594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