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의 주제로 아나키즘의 철학과 이상을 선택하는데 망설임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아나키즘을 미래에 대한 망상 혹은 모든 존재하는 문명을 파괴하려는 근거 없는 열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편견은 교육을 통해 주입되었고, 편견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강연에서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세심한 검토가 필수적입니다. 실제로 몇 년 전만 해도 파리의 신문들은 아나키즘의 유일한 철학은 파괴이며, 유일한 논거는 폭력이라고 진지하게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언급이 상당히 늘어나고 있으며, 그 결과 드디어 일부 독자들은 우리의 이론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하였으며, 때로 고민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 우리는 적어도 한 가지 점에서는 승리를 쟁취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사람들은 아나키스트들이 이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선민들만으로 구성되지 않은 사회에서 그 이상은 지나치게 고상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의견처럼, 먼 미래의 흐릿한 환상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영역의 철학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지나치게 무모한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아나키즘을 사회주의로 전혀 인정하지 않는 지금, 아나키즘은 철학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요?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가능하면 명백하고 정확하게 답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선 말씀드릴 몇 가지 사례들은 내가 런던에서 행한 강연 중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여러분께 양해를 구합니다. 이 예시들은 아나키즘의 철학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내가 자연과학 분야에서 몇 가지 간단한 예를 든다고 불평하지는 마십시오. 그 예들을 우리의 사회적 입장에 대한 근거로 삼으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절대 아니지요. 단순히 나는 몇몇 관계들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 사회의 복잡한 삶에서 선택한 예시들보다는 자연과학적 예시들이 더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관계들은 정확한 과학의 영역에 속한 현상들 속에서 더 쉽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자연에 대한 이해와 연구의 방법에서 심오한 변화가 일어났으며, 과학 분야에서의 변화는 우리에게 큰 놀라움을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인간이 자신을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인간은 태양, 달, 행성들, 별들이 지구의 주변을 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살고 있는 행성이 창조세계의 중심이었습니다. 자신의 눈으로 볼 때, 인간은 지구의 최고 존재였으며, 조물주의 선민이었습니다. 태양도, 달도 그리고 별들도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하였습니다. 신은 인간의 가장 작은 행동까지 관찰하고, 인간을 위해 태양의 운행을 멈추고, 구름 위를 비행하며, 들판과 도시에 비를 내리고, 혹은 선행에 대한 상으로 또는 범죄행위에 대한 벌로 뇌우를 보냅니다. 이렇게 신의 관점은 온통 인간에게로만 향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은 우주를 이런 식으로 상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태양계의 모래일 뿐이며, 다른 많은 행성들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구球일 뿐입니다.

태양 자체는 하늘에서 빛나는, 거대한 은하수를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별들 중 하나일 뿐이란 사실이 16세기에 증명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인간의 세계관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무한과 비교할 때 인간은 얼마나 보잘것없고, 인간의 불평은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보였겠습니까! 우주관의 변화는 모든 철학, 당시의 모든 사회 그리고 종교관에 반영되었습니다. 바로 그때부터 우리가 지금 그토록 자랑하는 자연과학의 발견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훨씬 더 심오하고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나키즘은 바로 이 무수한 진화현상들 중의 하나, 이 태동 중인 새로운 철학의 여러 줄기 중 하나일 뿐입니다.


지난 세기 말 혹은 금세기 초에 나온 천문학 서적 중 어떤 것이든지 한번 보기 바랍니다. 우리의 작은 행성이 우주의 중심을 차지한다는 주장은 당연히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대신 도처에서 여러분은 인력으로 지구를 통제하는 거대한 천체인 태양에 대한 서술을 발견할 것입니다. 행성들의 운동 방향을 결정하고 모든 시스템의 조화를 유지하는 힘은 이 중심 천체로부터 나옵니다. 행성들은 어떤 중심 질량으로부터 생성되며, 말하자면 그것은 분열과 번식의 산물 이상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빛나는 태양이 이제 중심 질량의 위치를 갖게 되고, 행성들에 나타나는 현상들, 즉 운동의 리듬, 절묘하게 나누어진 궤도, 행성의 표면에 생기와 아름다움을 주는 생명은 중심 질량 덕분입니다.

어떤 이유 때문에 그들의 운행이 파괴되고 궤도로부터 이탈하려 한다 해도, 중심 천체는 시스템의 질서를 회복시킬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중심 천체는 질서를 유지하고, 시스템이 영원히 존속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낡은 세계관이 그랬던 것처럼, 이 세계관도 때가 되면 사라질 것입니다. 예전에 태양과 거대한 행성들에 관심을 집중하던 천문학자들은 이제 우주에 존재하는 무한히 작은 물질들의 연구로 눈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행성들 그리고 별들 사이의 모든 공간이 작은 물질덩어리로 가득 차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개별적으로는 보이지도 않고 보잘것없지만, 숫자는 엄청납니다. 이 덩어리들 중에는 굉장히 큰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스페인에 공포를 불러일으킨 운석이 그런 것입니다. 반대로 몇 그램 정보 밖에 되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을 더 작은, 거의 마이크로 단위의 모든 공간을 채우고 있는 입자와 가스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바로 공간을 빠른 속도로 모든 방향으로 움직이고, 부딪치고, 섞이고, 끊임없이 모든 곳으로 떨어지는 이 입자들과 무한히 작은 물질에서, 현대 천문학자들은 우리 시스템인 태양, 행성, 위성의 기원뿐만 아니라, 이 다양한 물체의 고유한 운동, 전 태양계의 조화에 대한 설명을 찾고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가능한 모든 방향으로 흩어지는 원자들은 무한히 작은 진동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만유인력은 이 무질서하고 비인과적인 진동운동의 합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지구에서 태양으로 옮겨갔던 힘의 중심이 이제 모든 곳으로 갈라지고 나누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즉 힘의 중심은 모든 곳에 있고 이와 더불어 어느 곳에도 있지 않습니다. 천문학자와 함께 우리는, 태양계는 무한히 작은 입자들의 결합의 산물일 뿐이며, 항성계恒星系는 서로를 채우고 균형을 유지하며 조직되는 무수한 운동들의 일정한 합력, 일정한 적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세계관의 관점에서 보면, 우주는 다른 종류들을 받아들입니다. 세계를 관장하는 힘, 예정된 법칙, 예정된 조화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푸리에(F.Fourier)가 어느 정도 예견하였던 예정조화는 상호간의 균형을 유지하며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무수한 물질의 총합, 즉 운동의 합력일 뿐입니다.


그러한 변화가 천문학에서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다루는 학문에서뿐만 아니라 예외 없이 모든 과학에서, 혹은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에서도 같은 변화를 발견합니다.

물리학에서는 열, 자력, 전기에 대한 추상적 개념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자가 가열되고 충전된 물체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에, 이미 그는 이 물체를 초자연적 힘이 내재한 무생물 덩어리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 물체에서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 속에서 무수히 작은 원자들의 운동과 진동을 찾으려 합니다. 이 원자들은 모든 방향으로 운동하고, 진동하고, 살아 있으며, 자신의 진동과 충돌과 생명으로 열과 빛과 자력 혹은 전기 현상을 만듭니다.

생물체를 연구하는 과학에서 종과 종의 변화에 대한 개념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개체에 대한 개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생물학자와 동물학자는 개체를, 개체의 삶과 환경에 대한 적응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공기의 습도, 더위와 추위, 먹이의 과부족, 환경의 영향에 대한 민감성의 크기에 따라, 개체 속에 발생한 변화들은 종의 발생으로 이어집니다. 생물학자에게 종의 변화는 각각의 개체에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변화들의 총합, 합력일 뿐입니다. 개체들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무수한 영향을 받으며, 자신의 방식에 따라 이 영향에 반응합니다. 그리고 종의 특성은 종을 구성하는 개체들의 특성에 의해 결정됩니다.

생리학자가 어떤 식물 혹은 동물의 생명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에도, 그는 유일하고 분리할 수 없는 개체보다는, 오히려 수백만의 개별적 개체들로 구성된 전체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는 소화기관, 감각기관, 신경 시스템 등의 연합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 기관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개별 기관들의 좋은 혹은 나쁜 상태를 반영하고, 그럼에도 각각 고유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반대로 각각의 기관, 기관의 각 부분은 불리한 존재 조건과의 투쟁을 위해 서로 연합된 독립적인 세포들로 구성됩니다. 각각의 개체는 완전한 연합체이며, 그 안에 완전한 우주를 포함합니다.

이 세계에서 생리학자들은 혈액, 조직, 신경의 독립적인 세포들을 찾습니다. 세균에 감염된 신체 조직에 투입되어 싸우는 수십억 개의 백혈구를 찾습니다. 나아가 이제 생리학자는 각각의 세포에서 독립된 요소들의 완전한 세계를 봅니다. 이 요소들 덕분에 개체는 고유의 삶을 살고, 다른 요소들과 집단을 이루고 연합함으로써 자신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한마디로 각각의 개체는 기관계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각각의 기관은 완전한 세포의 세계이고, 각각의 세포는 무한히 미세한 것들의 세계입니다. 이 복잡한 세계에서 전체의 행복은 유기체의 가장 작은 미세분자들이 향유하는 행복의 크기에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이렇게 생명의 철학에서 완전한 변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변혁의 결과는 심리학 분야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리학자는 유일하고 분리될 수 없는 전체로서의 인간에 대해 말했습니다. 종교적 전통에 따라 그는 인간을 선한 자와 악한 자,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 이기주의자와 박애주의자로 구분하였습니다. 전체로서의 정신에 대한 표상은 18세기의 유물론자들에게도 존재했습니다.

가령 심리학자가 지금 그와 유사한 것에 대해 말한다면, 오늘날 학자들은 뭐라고 할까요? 심리학자에게 인간은 많은 개별적 능력들, 많은 독립적 욕망입니다. 이 능력과 욕망은 서로 동등하며, 서로로부터 독립적으로 기능합니다. 또한 서로를 지속적으로 균형 있게 하고, 서로간의 모순 속에 지속적으로 존재합니다. 현대 심리학자에게 전체로서의 인간은 이 모든 다양한 능력들의 총합, 뇌세포와 신경조직의 독립적인 욕망들의 영원히 변화하는 총합입니다. 그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그들 중 각각은 독립적인 삶을 살고 어떤 중심기관에도, 어떤 정신에도 종속되지 않습니다.


내가 더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오늘날 얼마나 심오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 변화의 원인은 전에 무시하던 세부사항들을 지금 그들이 연구한다는데 있지 않습니다. 즉 사실(facts)은 예전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이해의 방법 자체가 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경향의 특징을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과거에 과학은 거대한 결과들과 총합의(수학에서 말하는 적분이 바로 총합입니다.)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반면에 오늘날 과학은 주로 무한히 작은 것들을, 즉 총합을 구성하는 개체들을 연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개체들 속에서 독자적이며 개체화된 그러나 동시에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요소들을 발견합니다.

인간의 지혜가 자연에서 찾는 조화에 대해 말하자면, 현대의 학자는 과거 어느 때보다 오늘날 그것을 더 많이 알아내고 있습니다. 이 조화는 본질적으로 일정한 현상들의 지속적 발현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조화를 어떤 이성적 의지에 의해 예정된, 정해진 계획에 따라 창조된 ‘법칙들’의 활동으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앞에서 ‘자연법칙’이라고 한 것은 일정한 현상들 사이에서 우리가 포착한 관계일 뿐입니다. 각각의 그러한 ‘법칙’은 이제 인과성이란 조건적 형식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즉 ‘그러한 조건들에서 그러한 현상이 발생한다면, 이 현상의 뒤를 이어 또 다른 그러한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법칙은 현상의 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각각의 현상은 법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에 선행한 현상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의 조화라고 부르는 것에는 어떤 선입견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조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연적 충돌과 결합으로 충분합니다. 예를 들어, 한 현상은 수세기 동안 존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건에 완전히 적응하기 위해, 현상이 표현하는 균형에 이르기 위해 수세기가 요구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현상은 한 순간만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이 일시적인 균형 상태는 한 순간에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태양계의 행성들이 날마다 부딪치거나 서로 충돌하지 않고 수백만 세기를 존재한다면 수백만 우연한 힘들의 총합처럼, 그것은 수백만 년 걸려 만들어진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륙이 화산폭발의 결과로 날마다 붕괴되지 않는다면, 그 원인은 부분과 부분이 차례로 솟아올라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되기까지 수천세기가 필요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번개는 단 한 순간만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번개는 균형의 일시적 파괴와 불균형한 힘의 갑작스런 분할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연에서의 조화는 서로 다른 힘들 사이에 만들어진 일시적 균형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어느 정도 잠정적인 적응은 지속적인 형태변화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매순간 모든 대립하는 힘의 총합으로 표현됩니다. 이 힘의 총합 중 어느 하나가 일시적으로 활동의 제약을 받는다면, 조화는 사라질 것입니다. 그때 다시 활동능력이 이 힘 속에 서서히 축적되기 시작하여 언젠가 반드시 발현되고,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다른 힘들이 이 힘과 대립한다 해도, 이 힘은 사라지지 않고, 균형을 파괴하며 조화를 파괴할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균형과 적응형식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화산 폭발도 그렇습니다. 내부에 갇힌 힘은 결국은 가스, 용해된 마그마 그리고 뜨거운 재의 분출을 방해하던 암석을 뚫고 나옵니다. 혁명도 그렇습니다.


사유방식에서의 유사한 변화는 인간을 다루는 과학에서도 실현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한때 역사는 황제의 역사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역사는 민중과 유명한 개인들의 역사가 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역사가는, 여러 민족의 구성원들이 특정한 시대에 어떻게 살았는지, 그들의 신앙과 존재수단은 어떠했는지, 그들은 어떤 사회적 이상을 그렸는지,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 그들은 어떤 수단들을 갖고 있었는지 알려고 노력합니다. 전에 주목을 받지 못하던 이 모든 힘의 활동은 위대한 역사적 현상을 규명하기 위한 열쇠를 제공합니다.

바로 이것과 똑같이 풍속을 연구하는 학자도 이러저러한 법전을 연구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인종학자처럼, 그는 일관된 유형의 제도 발생을 규명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수세기 동안 진행된 제도의 발전을 추적하려 애씁니다. 그래서 그는 문자로 기록된 법보다는 오히려 모든 시대의 이름 없는 민중들의 독창적 창조성이 표현되어 있는 지방관습, 즉 ‘관습법’을 연구합니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오늘날 완전히 새로운 과학 분과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분과는 멀지 않아 학교에서 우리에게 주입된 모든 개념들을 폐지하고, 자연과학이 자연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설명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치경제학, 즉 초기에 민족들의 부에 대한 연구였던 경제학은 이제 개인들의 부에 대한 연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경제학은 한 나라가 얼마나 큰 규모로 무역을 하는가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농민과 노동자의 오두막에 빵이 충분한가에 관심을 갖습니다. 경제학은 궁궐과 산골마을 집의 문을 모두 두드리며, 부자에게도 가난한 자에게도 ‘생활필수품 그리고 사치품에 대한 여러분의 수요는 어느 정도 충족되고 있습니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인류의 10분의 9는 가장 긴급한 것도 공급받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한 경제학은 바로 그 질문을, 즉 동물 혹은 식물을 연구하는 생물학자가 스스로에게 제기했던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 질문은 ‘어떤 방법으로 모든 사람의 수요를 최소의 비용으로 충족시킬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사회는 개인에게,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최고의 복지와 행복을 보장할 수 있을까?’입니다. 경제학의 변화는 이러한 경향 속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경제학은 몇몇 부자들의 이익을 위해 연구된 현상들을 단순히 나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진실한 의미에서의 과학, 즉 인간 사회의 생리학이 되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더 사실대로 말하면, 이를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학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일반적 시각, 새로운 철학이 지금까지 어떠했는지를 보았습니다. 사회의 과거와 현재 삶에 대한 새로운 이해 수단이, 미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아나키즘의 이름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은 조금 전 자연에 대한 연구를 근거로 언급했던 정신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아나키즘은 새로운 세계관을 구성하는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바로 여기에 아나키스트들이 위대한 사상가들과 우리시대의 흐름과 많은 접촉점을 공유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실제로, 인간의 지혜가 소수에 의해 주입된 개념들로부터 해방되는 정도에 따라, 인간의 지혜가 노예적 과거가 채운 족쇄를 걷어버리는 정도에 따라, 사회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만들어집니다. 이 소수는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애쓰고, 사제, 군대, 사법권 그리고 이 지배를 영구불변하게 하기 위한 노력의 대가로 돈을 받는 학자들로 구성됩니다. 그러나 새로운 개념의 사회에는 위와 같은 소수의 사람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지배하는 소수를 만들지 않으면서도 지난 세대의 노동으로 축적된 모든 사회적 자본을 소유합니다. 이 자본을 모든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도록 조직된 사회가 이미 우리 앞에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사회는 개인적 능력, 자질 그리고 힘의 무한한 다양성을 포함하고,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 사회는 이런 다양한 힘들의 투쟁을 원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다양한 견해들이 자유롭게 논의되고 자유롭게 투쟁할 때, 기존의 어떤 권력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때, 바로 그때가 인간의 지혜가 가장 위대한 발전을 이룩한 시대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는 과거에 축적된 재산에 대한, 모든 구성원의 동일하고 실질적인 권리를 인정합니다. 이 사회는 착취자와 피착취자, 통치자와 피통치자,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분을 알지 못합니다. 이 사회는 자신의 환경 속에 조화로운 합의를 실현하기 위해 자유로운 자기주도, 자유로운 활동, 자유로운 연합을 발전시키는 것을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방법으로 노력합니다. 동시에 사회 전체의 대표자라고 하는 권력에 모든 구성원을 종속시키는 방법과 획일화를 실현하려는 시도를 거부합니다.

모든 형식과 가능한 수준에서 모든 가능한 목표를 갖는 그런 사회는 자발적인 연합의 최대의 발전을, 이와 더불어 개인의 가장 완전한 발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 연합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그 내부에 지속성의 요소들을 갖고 있으며, 무엇보다 모든 사람의 다양한 열망에 적합한 형식들을 매순간 수용합니다. 이 사회는 법 때문에 경직된 기존의 모든 형식들을 거부합니다. 이 사회는 여러 다양한 힘과 영향 사이의 지속적이면서도 변화하기 쉬운 균형 속에서 조화를 찾습니다. 이들 힘과 영향은 각각 고유의 길을 갑니다. 그러나 이들 전체는 자유롭게 발현되고, 상호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 덕분에 진보의 증표로서 기능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 속에서 자신의 에너지를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간에게 제공할 것입니다.

그러한 사회적 표상과 사회적 이상이 새로운 것이 아니란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씨족제도, 마을 공동체, 초기 수공업 조합 혹은 길드, 심지어 초기에 나타난 중세 도시 민주정치와 같은 민중들의 제도를 연구할 때, 우리는 이러한 성격의 사회를 창조하려는 민중들의 열망을 모든 곳에서 발견합니다. 물론 지배하는 소수는 언제나 이 열망을 방해했습니다. 모든 민중운동은 많건 적건 이러한 흔적들을 갖고 있습니다. 비록 그 시대에 특징적인 종교적 표현수단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재세례파에게도 그들의 선배들에게도 바로 이러한 사상들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불행하게도 지난 세기 말까지 이런 이상에는 언제나 교회적인 요소들이 섞여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에야 비로소 그 이상은 종교적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사회현상의 연구에 기초한 아나키즘적 사회 개념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그러한 사회적 이상은 즉 각자의 의지만이 (이 의지는 개인 각각이 체험한 사회적 영향력의 결과입니다.) 개인을 지배하는 사회적 이상은 경제적, 정치적, 윤리적 형태로 동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상은 공산주의의 필연성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생산의 사회적 성격 덕분에 공산주의는 현대사회에서 불가피해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경제적 노예상태가 존재하는 한 자유에 대해서 논할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내게 자유를 말하지 말라,

가난한 사람들이 여전히 노예로 남아 있는 한!


이와 같은 시인의 말은 이미 노동대중의 생각과 우리 시대의 모든 문학에 침투해 있습니다. 이 말은 가난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까지도 굴복시키고 있으며, 타인에 대한 착취를 권리라고 주장하던 과거의 확신을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사회적 자본을 수탈하는 현대적 방식은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구세계와 신세계의 수백만 사회주의자들도 이 점에 대해 동의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자들조차도 그러한 수탈 방식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과거처럼 무모하게 그것을 옹호하려 들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의 모든 주장은 우리가 아직 더 좋은 것을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로 귀결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현 소유방식의 치명적 결과를 부정할 것인지도, 그것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방어할 것인지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허용되는 한 그들은 이 권리를 이용하지만, 그 권리에 대한 근거를 어떤 원칙에 따라 주장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납득할 만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파리는 수세기 동안의 창조적 작업을 보여주는 도시이고, 전 국가적 천재성의 산물이며, 20 혹은 30 세대에 걸친 노동의 결과입니다. 파리를 장식하고, 건강하게 하며, 먹여 살리고, 사상과 예술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꾸준히 일하고 있는 이 도시의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파리의 거리를 장식하는 궁전들이 현재 법적인 소유자들에게 속한 것이라고 이 모든 것을 창조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가치는 우리 모두에 의해 창조되었고, 우리가 없다면 아무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민중을 가르친다는 교활한 훈육자들의 노력 덕분에 이런 기만은 여전히 한동안은 유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동자 대중 스스로도 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유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모든 사람 앞에 이 문제를 제기하고 제시하는 순간, 그에 대한 답변은 의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민중의 지혜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물론, 개인이 이 모든 부를 소유한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들을 착취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농부가 주면 20㎞ 안에 있는 모든 땅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할 때, 그 농부를 설득하여 지주가 소유한 땅들이 합법적으로 지주의 소유가 되었다고 믿게 만들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기뻐하며 땅을 경작할 농민들이 주변에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토지들이 특정 지주의 영지와 정원이 되는 것이 더 좋다고 그 농민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노동자도 광부도 이 모든 거대한 철도와 석탄광의 착취와 강탈의 의미를 이해하고, 부유한 주인들이 합법적 강탈의 방식으로 땅과 공장을 긁어모았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공장과 광산이 진정한 정의에 따라 현재의 소유자들에게 속하게 되었다는 것을 믿으라고 공장노동자 혹은 광부들에게 강요할 수 있을까요?

경제학자들은 노동자들을 설득하기보다는 오히려 부자들이 강탈의 합법성을 확신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런 경제학자들의 계략을 대중이 믿은 적이 있었겠습니까? 가난에 찌들고 사회 특권층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한 농부들과 노동자들은 단순히 본성의 흐름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그들은 때때로 폭동을 통해서만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였습니다. 가령 도시노동자들은, 자본의 사적 소유가 많은 부를 축적하여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분배함으로써 보편적 이익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제 많은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망상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착취당하고 있음을 확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자신들의 노력으로 축적된 부 중에서 작은 부분만이라도 주인들에게서 빼앗기 위해서는, 폭동이나 파업을 감행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굶주리거나 감옥에 가는 것을 감수하던지 아니면 제국, 황제 혹은 공화국 군대의 총탄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또 다른, 더욱 심각한 현 체제의 결함이 점점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유재산제도에서 삶과 생산을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들(토지, 주택, 식량, 생산도구)은 소수의 손에 있으며, 이 소수가 밀을 재배하고 집을 짓고 옷감을 생산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바로 여기에 현 체제의 결함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술과 기계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납니다. 하지만 자본가들과 국가가 모든 곳에서 이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노동자는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농민과 노동자들이 풍족하게 갖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즉 그들은 이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배부른 사람들과 싸우는 것은 굶주린 사람들과 싸우는 것보다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에게 충분한 것 이상의 밀, 식량, 옷을 생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한 것들도 생산하지 않고 있습니다.

경작되지 않으면서도 무장 경찰과 재판관들의 보호를 받는 지주의 토지와 영지 그리고 숲을 보면서 현대국가의 농민들은 바로 그러한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들판을 경작하여 시골에 부족한 밀을 재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농민이 생각하는 것은 괜한 일이 아닙니다.

영국에서 늘 일어나는 일을 예로 들어봅시다. 일이 없어 일주일에 3일을 쉬는 광부는 석탄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 자신이 석탄을 많이 캘 수 있으며, 각 가정에서 난로를 때면 참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공장에 일이 없을 때 노동자는 하는 일 없이 어슬렁거립니다. 그는 또한 일 없이 어슬렁대는 석공을 만나고, 일이 없다고 불평하는 제화공 등을 만납니다. 노동자는 사회에 무엇인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게 됩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절망적인 빈민굴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맨발로 다닌다는 것을, 노동자에게는 모든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다만 누군가가 이 모든 것을 건설하고 만드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빈민들에게 비싼 값으로 빌려주고, 굶주린 노동자들을 가장 싼 임금으로 공장에 내몰기 위해서입니다.

학자들은 밀 재배와 옷감 생산이 너무 많다는 것에 대하여 두꺼운 책을 쓰고, 이런 것을 예로 들어 공장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왜 영국, 프랑스, 독일 혹은 러시아에서 그토록 많이 발생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가에 대한 답을 우리가 요구한다면, 학자들은 답변하느라 진땀을 뺄 것입니다. 많은 밀이 매년 러시아에서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러시아에서 재배되는 밀이 모두 러시아에 남는다면, 연간 1인당 165㎏의 밀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굶주리지 않을 만큼의 양입니다. 숲이 아주 많습니까? 러시아인의 절반은 아주 좁은 통나무집에서 살며, 한 방에서 열 명씩 잠을 잡니다. 도시에 집이 너무 많은가요? 그렇지요, 궁전은 많습니다. 그렇지만 노동자를 위해 제대로 된 방은 그렇지 않습니다. 역시 한 방에서 다섯 내지 열 명이 살고 있습니다. 책이 너무 많을까요? 수백만의 사람들은 한 해에 단 한 권의 책도 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정말 한 가지 너무 많이 생산되는 것이 있습니다. 필요한 것보다 천 배는 더 많습니다. 그것은 관리입니다. 관리를 너무 많이 제조해내고 있습니다. 이 물건에 대해서만은 학자들의 책에 쓰여 있지 않습니다. 물건이 부족하다! 그러면 원하는 만큼 사십시오!

학자들이 ‘과잉생산’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고용주들과 국가에 의해 파산당한 노동자들이 구매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현 시스템에서 과잉생산은 필연적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프루동(P.-J.Proudhon)이 지적한 것처럼 노동자들은 임금으로 자신들이 생산한 것을 구매하고 동시에 목에 매달린 한 때의 식솔들에게 충분한 식량을 공급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현대 경제체제의 본질상, 노동자는 노동의 결과인 행복을 절대로 향유할 수 없습니다. 노동자의 희생으로 사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증가할 것입니다. 나라의 산업이 발전할수록 이 수는 더 증가합니다. 왜냐하면 유럽인이 더 많은 아시아인들, 아프리카인 등을 착취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산업은 모든 사람의 욕구충족을 위해 부족한 것을 해결하는 방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기업주들에게 막대한 이윤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필연적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부자들의 부는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가난 위에 건설되고, 이를 위한 대다수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은 필수적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벌 수 있는 것의 일부만을 받으며 자신을 팔고 일할 준비가 된 노동자들을 언제나 준비해 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본가는 부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경제체계의 특징들이 이것의 본질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이 없다면 이 체제는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아의 공포가 강요하지 않는다면, 누가 노동으로 벌 수 있는 것보다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체제의 이 본질적이며 필연적인 특징들은 그 내부에 결정적 결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기술발전이 낙후된 나라들 사이에서 제 1의 산업국가로 있는 동안, 높은 가격으로 면직물, 모직물, 비단, 철, 기계, 일련의 사치품을 판매하는 동안, 이들 나라는 이익의 상당 부분이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거짓 희망을 노동자들이 품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높은 가격은 이들 나라가 구매자들의 돈으로 부유하게 될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조건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30년 전에는 뒤떨어졌던 나라들이 이제는 면직물과 모직물, 비단, 기계, 사치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몇몇 산업분야에서 그들은 영국인들과 프랑스인들을 추월하기도 하였습니다. 먼 나라와의 무역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그들은 이미 선배 국가들과 경쟁에 돌입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선배국가들과 그들의 국내시장에서도 경쟁을 시작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미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그리고 일본은 거대 산업국가가 되었습니다. 멕시코, 인도, 세르비아가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일본인을 모방하여 중국인이 사라사 천, 비단, 철, 기계로 세계시장을 범람시키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이런 이유로 산업위기, 즉 정체의 시기가 점점 더 자주 오고, 더 오래 지속되고 있습니다. 어떤 생산 분야에서 정체는 거의 항구적인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때문에 유럽인들은 동양과 아프리카 시장에서 점점 더 많은 전쟁을 수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럽의 전쟁, 즉 시장 때문에 발생한 유럽인들 사이의 다툼은 그치질 않고, 모든 유럽 민중의 머리위에 위협을 드리우고 있으며, 그들을 군비경쟁으로 파산시키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아직 발발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국가가 더 깊이 부채에 빠지는 것이 돈 장사하는 금융업자들에게 유리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고리대금업자들은 전쟁에서 이익을 본다면, 군중을 부추겨 서로를 죽이게 만들 것입니다. 그 사이에 금융계의 황제들만이 부자가 될 것입니다.

현대 경제체계에서 모든 것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은 서로 얽혀있으며, 모든 것은 우리를 둘러싼 산업체제와 상업체제의 필연적 붕괴로 귀결될 것입니다. 이 체제의 종말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그 시간을 세기의 단위가 아니라 연 단위로 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시간의 문제라면, 그와 함께 그것은 우리 고유의 역량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게으름뱅이는 역사를 창조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수동적으로 감내할 뿐입니다.


바로 이것이 앞선 세대의 노동으로 이룩된 모든 부를 사회로 환원할 것을 요구하는 단체들이 모든 문명국에서 결성되는 이유입니다. 토지, 탄광, 공장, 주택, 교통수단 등의 사회화는 이 단체들이 공통으로 제기하는 전투적 요구사항이 되었습니다. 유산계급과 지배계급이 탄압의 수단을 애호하지만, 탄압만으로는 봉기하는 이성의 승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수백만 노동자들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착취자들에게서 토지와 공장을 무력으로 빼앗지도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국제적 운동의 지원을 받아 현 체제의 붕괴를 위해 돌진하기에 적절한 시간, 즉 1848년에 나타났던 것과 비슷한 시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순간은 조만간에 나타날 것입니다. 1872년 이후, 특히 국제 노동자 조합이 정부들에 의해 괴멸된 그때부터, 노동자들 사이의 국제적 연대의 정신은 큰 노력과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국제 노동자 조합의 지지자들도 이점을 명료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대는 일, 사상, 감정, 지속적인 국제교류에 정착되었습니다. 반면에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의 금권정치는 서로 적대하고 있으며, 매순간 유럽을 무력충돌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다시 코뮌이 선포되고 사회혁명이 시작되는 그날에, 프랑스는 다시 독일, 이탈리아, 영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 민족의 공감을, 즉 프랑스가 1848년과 1793년에 누렸던 공감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공화혁명에 더 가까운 독일이, 유감스럽지만 자코뱅식 혁명의 깃발을 올리고, 고양된 발전을 경험한 젊은 나라답게 격렬하게 운동에 돌입한다면, 프랑스로부터는 공감을 얻고, 용감한 혁명가들을 사랑하고 오만한 금권정치를 혐오하는 모든 나라들로부터는 지지를 얻을 것입니다. 이 두 적대적인 나라가 혁명의 순간에 형제로서 함께 간다면,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혹은 러시아에서의 혁명 운동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전 세계 노동자들의 심장에 반향을 일으킬 것입니다.

유럽에서 이 불가피한 혁명적 폭발을 지금까지 방해하고 있는 이유는 많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전쟁의 위험은 프랑스로 하여금 즉각 그리고 단호하게 혁명의 길에 나서지 못하게 하고, 관심을 거짓 애국주의의 길로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다른 더 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이유에 관심을 갖기 바랍니다. 많은 징후들은 사회주의자들의 관점에도 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내가 과학 일반에 대해 말하면서 언급했던 것과 유사한 변화입니다. 추구하는 사회조직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애매모호한 관점은 그들의 에너지를 상당히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발생 초기인 40년대에 사회주의는 종속적 공산주의의 형태로, 즉 단일하고 통일된 공화국, 독재, 경제적 토대로 옮겨간 정부 주도적 자코뱅주의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그 시대의 이상은 그러했습니다. 기독교인이든 자유사상가든 그 시절의 사회주의자는, 정부가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 경제적 관계의 개혁에 착수한다면, 모든 강력한 정부에 심지어 제국에 종속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오십년 동안, 특히 라틴국가와 영국에서, 사회적 인식의 깊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노동자들은 정부 주도적 공산주의와 기독교적 공산주의를 적대적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로 국제 노동자 조합에 새로운 방향인 집산주의가 나타났습니다. 집산주의는 처음에 노동수단의 집단적 소유, 즉 사회적 소유를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생활에 필수적인 대상들을 고려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집산주의는 각 집단이 구성원을 위한 분배 방법을 집단적인 방법 혹은 개인적인 방법 중에서 원하는 대로 채택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들이 공장, 토지, 철도 등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조합을 이루어 공동으로 일합니다. 그러나 각각의 조합은 자신들이 생산한 것을 나름대로 자유롭게 처리합니다. 조합이 선택하는 대로, 공동으로 가계를 꾸리며 공동으로 살거나 혹은 임금을 분배합니다. 바로 이것이 당시 70년대 초기에 집산주의라고 불렸던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스페인의 아나키스트 사이에서는 그렇게 불리고 있습니다. 기욤(J.Guillaume)은 자신의 저서 『사회구성론(Idées sur l’organisation sociale)』에서 이 시스템을 아주 훌륭하게 서술하였습니다. 그는 이 시스템이 당시에 어떻게 이해되었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옹호하는 국가공산주의와 대립하는 이 시스템을 아나키스트들이 어떻게 선전하였는지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집산주의를 공산주의와 국가자본주의(국가는 중요한 자본주의자입니다.) 사시의 협정과 같은 것으로 서서히 개조해버렸습니다. 그 결과 현재 집산주의자들은 생산에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한 공동소유를 추구하지만, 동시에 각각의 구성원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로 일한 시간에 따라서 ‘5, 10, 20 시간 노동이라고 기록된’ 전표 혹은 영수증 형식의 보수를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전표로 공동상점에서 각각의 상품을 생산하는데 소요된 시간의 양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 모든 상품을 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21,000리터의 호밀을 재배하는데 (평균) 400시간이 필요하다고 합시다. 그러면 210리터의 호밀 가격은 4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석탄 16㎏의 가격은 30분이 되고, 비누 500g의 가격은 5분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여러분은 집산주의는 본질상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생산수단과 교육에 대해서는 부분적(불완전한) 공산주의, 동시에 개인들과 집단들 사이에는 의식주를 위한 경쟁이 존재함.

― 인간 이성의 작품과 예술작품에 대해서는 개인주의.

― 이 제도의 약점을 보완하는 장치 : 아동, 노약자에 대한 사회적 지원.

한마디로 우리들은 여기에서 생존을 위한, 자선을 통해 약간 부드러워진 투쟁을 보게 됩니다. 즉 이것은 ‘우선 사람들을 상처투성이로 만들고, 그 다음에 그들을 치료한다.’는 교회·전쟁의 법칙을 적용한 것일 뿐입니다. 이 경우에, 개인이 스스로 생존을 위한 투쟁에 가담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그에게 국가의 도움을 제공할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한 경찰 조사만 확대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전표와 관련된 발상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로버트 오언(R.Owen)이, 다음에는 프루동이 이미 적용한 바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발상은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것의 실현불가능성은 말할 것도 없고, 불편함을 예감하는 민중대중은 이 이론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첫째로, 노동에 소요된 시간은 여전히 이 노동의 사회적 유용성에 대한 기준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아담 스미스(A.Smith)부터 마르크스(K.Marx)에 이르는 모든 가치이론들은 가치에 대한 문제를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이 이론들은 소요된 노동만을 기초로 계산된 생산가치에 근거한 것입니다. 교환이 발생하면 상품의 가치는 복잡한 양상을 보입니다. 상품의 가치는 전에 몇몇 정치경제학자가 생각한 것처럼, 주로 그것이 개인의 필요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필요를 어느 정도 충족시키는가에 달려있습니다.

가치는 사회적 현상입니다. 교환의 결과로서 가치는 이중적 성격을 갖습니다. 한편으로 가치는 일정한 상실을, 다른 한편으로 일정한 만족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양 측면 모두 개인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 고찰되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현대 경제체제의 결함을 관찰할 때, 우리는 결함의 본질이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데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노동자 역시 이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일 없이는 2주일을 버틸 수가 없습니다. 노동자들이 지주에게, 공장주에게 혹은 국가에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국가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을 사용하고 이익이 되는 노동에 힘을 투입할 가능성을 빼앗아 버립니다. 그러면 노동자는 강제에 의해, 배고픔에 의해 자신의 노동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들을 거부하도록 강요받게 됩니다. 노동자는 자기가 재배하거나 생산한 것들 중에서 터무니없이 많은 부분을 주인에게 양도하게 됩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자유를 희생하고, 심지어 자신이 생산한 이윤에 대해 그리고 생산수단에 대해 입장을 밝힐 권리도 희생합니다.

이렇게 자본의 축적은 잉여가치를 집어 삼키는 능력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잉여가치라는 개념 자체가 불충분한 지불, 즉 착취의 의미를 포함합니다. 오히려 자본의 축적은 노동자가 노동력을 팔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달려있습니다. 노동자는 노동력이 생산한 것에 대한 보수도 받지 못하고, 이익이 존중되지도 않고, 노동력을 구매하는 자본가와의 관계에서 훨씬 불리한 위치에 처할 것이란 것을 아주 잘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령 이것이 없다면, 가령 수백만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과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이 불리한 조건에서 노예가 되도록 강요받지 않았다면, 자본가는 절대로 노동력을 구매하거나 빌릴 수 없을 것입니다. 농노제 지지자들과 공장주들의 카트코프(M.H.Katkov) 당파는 농민들의 땅을 빼앗고 있습니다. 그들은 공장에서 필요한 것보다 10배는 더 많은 수백만 주민들을 배고프고 착취당한, 몇 푼에 노예로 만들 수 있는 날품팔이로 전락시키기 위해 분주할 [1] 뿐입니다. 바로 이로부터, 현 체제의 혁신을 위해 바로 원인 자체 즉,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 자체를, 그것의 결과인 자본주의를 폐기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노동자들은 어렴풋이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혁명이 모든 삶의 수단들을 장악하는 것으로부터, 즉 경제학자들이 말하듯이, ‘분배’로부터 시작되지 않고, 삶에 필요한 의식주를 각자에게 보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이제 노동자들은 점점 자주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강력한 생산수단에 기초해서, 그러한 것을 완전히 보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피고용 노동자로 있는 한, 그는 자신의 노동력을 구매하는 자의 노예로 남게 될 것입니다.

민중적 지혜, 사람들의 머리에 떠오르는 무수한 생각의 총체는, 그것이 개인이든 국가든 국가가 노동력을 구매하는 고용인의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에 그 결과는 다시 가장 혐오스런 농노제가 될 것임을 미리 보고 있습니다. 민중 속에 있는 사람은 추상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일상생활의 사실들을 통해 판단합니다. 때문에 그는 책에서 떠들어대고 있는 국가는 과거의 직장 동료들 중에서 선발된 무수히 많은 관리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노동자는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뛰어난 동료들이 한번 우두머리가 되면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노동자는 현재의 악이 다른 악으로 대체되지 않고, 완전히 폐지되는 그런 사회체제를 추구합니다.

바로 이것이 집산주의가 결코 민중대중의 관심을 끌 수 없는 이유입니다. 민중대중은 공산주의로, 40년대의 교회와 자코뱅적 색채에서 점점 더 자유로워지는 공산주의로, 즉 자유롭고 아나키즘적인 공산주의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15년간 유럽 사회주의 운동에서 경험한 모든 것을 되돌아볼 때, 현대 사회주의는 자유로운 공산주의로 즉각 진일보할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내가 방금 언급한 것처럼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중들 생각 속의 모호함 때문에 사회주의 선전의 지속적인 성공은 저지당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모든 정황으로 볼 때, 모든 사회구성원의 생존을 위한 물질적 보장이 사회주의 혁명의 제1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사회주의자는 우선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와 함께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보장은 국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완전히 국가 밖에서, 국가의 개입 없이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을 사회주의자는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축적된 모든 부를 사회가 장악하면, 생산 분야에서 하루 4-5시간 노동한다는 조건 아래 모든 구성원의 수요를 충분히 충족시킬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한번이라도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에 동의할 것입니다. 먹는 빵, 사는 집과 배우는 책 등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 있다면, 어떤 생산 분야에서든지 각자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능숙하게 결합시킬 수 있다면,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생산수단의 단순화를 고려하지 않고도 사회는 이것을 쉽게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각각의 회사가 얼마나 많이 벌어들일 수 있는지, 이를 위해 얼마나 적은 양의 노동이 개인에게 요구되는지, 그런 회사는 얼마나 거창한 일들을 지금 언급할 수 없는 사안들입니다. 실행할 수 있는지를 상상하느라, 지금 이 순간 엄청나게 많은 힘이 낭비되고 있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유감스럽지만, 형이상학적 정치경제학은 모든 본질을 구성하는 문제, 즉 노동력의 경제학 [2]을 연구하지 않습니다.

사회과학의 영역에는 정치경제의 과학을 위한 자리도 있습니다. 그것을 연구하기 시작하면 그 과학은 현재의 과학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생리학의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식물생리학은, 식물이 최소의 에너지를 소비하여 개체와 종의 보존이란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하여 어떤 장치를 사용하는가를 연구합니다. 사회생리학은 사회를 위해 같은 것을 행합니다. 즉 이 장치들을 연구하고, 그 결과들을 비교하여 개체와 종의 최상의 생존을 위해 어떤 장치가 에너지를 무분별하게 낭비하는가를 말해줍니다. 경제적이지 않지만 유익한 장치도 있습니다. 모든 자연법칙의 조건성에 대해 고찰하지도 않고, 사회발전에 대한 3부작을 집필하고 법칙을 찾는 것은, 지질학과 생리학이 아직 과학이 아니었던 시절에 했던 것과 같은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지만, 정치경제의 과학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대의 발전된 기술 조건 아래 공산주의 사회가 부유하게 될 가능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개인이 국가의 통제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고도 그와 유사한 사회가 존재할 수 있는가, 그리고 물질적 행복을 위해 유럽사회가 금세기 동안 많은 희생을 대가로 성취한 독립의 자유를 희생시킬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에만 의문을 제기할 뿐입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 중 어떤 분파는 자유를 국가의 제단 앞에 희생 제물로 바치지 않고는 그런 결과를 성취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다른 분파는 - 우리도 이 분파에 속해있습니다. - 공산주의를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폐지, 개인의 완전한 자유 성취, 자발적 협약, 완전히 자유로운 조합과 조합 연방 결성의 방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유산을 함께 지배하며 모든 부를 함께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질문은 가장 중요한 현안이 되고 있습니다.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사회주의는 이 질문에 대해 즉각 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예의 주시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주의가 자초한 것입니다.


토지와 자본에 대한 사적 소유의 폐지가 역사적으로 필연적이라는 것을 처음 듣거나 생각했을 때, 얼마나 많은 편견이 자신 속에 있었는가를 모든 사회주의자들은 쉽게 회상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법, 행정 시스템, 연맹 관계를 포함해 국가의 폐지는 역사적으로 필연적입니다. 또한 자본주의의 폐지는 국가의 폐지 없이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오늘날 같은 경험을 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교회와 국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주관하는 교육이 우리 안에 주입한 모든 개념과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권력의 필요성에 대해 많이 배우고 읽었습니다. 우리는 매우 겁에 질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자기 자신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비이성적인 군중’을 더욱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반란, 무질서, ‘혼돈’, ‘아나키’의 위험에 대해 많은 것을 들었습니다. 그 결과 무권력無勸力의 이념은 처음부터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는 이유로 무권력의 이념이 덜 정의로운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자유를 위해 우리는 이미 주인, 소유권, 종교와 관련된 편견들을 버렸는데, 우리가 국가란 편견 앞에서 멈춰야 할까요?


국가의 비판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이미 여러 번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역사적 역할도 고찰하지 않고, 나의 다른 논문인 「국가 - 역사에서 국가의 역할」을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몇 가지 공통적인 사항만을 언급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인간 사회는 지구에 인류가 나타난 처음부터 존재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국가는 우리 유럽사회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사회생활의 형식일 뿐입니다. 인간은 최초의 국가가 수립되지 전 수천 년 동아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는 마케도니아 왕국과 로마제국이 나타나기 수세기 전에 이미 번성하였고, 사실 우리 현대 유럽인에게 국가는 16세기 이후에야 나타난 현상입니다. 바로 그 당시에 자유공동체의 파괴가 완료되었고, 군대권력과 사법권력, 토지소유자와 자본주의자 사이의 상호보험 사회가 창조되었습니다. 이 사회를 국가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유로운 조합과 조직들, 모든 단계에서 자유로운 독립적 집단들의 연합은 도시와 농촌의 독립성을 대표하였고, 지금 국가가 장악하고 있는 의무를 수행하였습니다. 16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그때까지 우세하던 독립성의 표상은 결정적인 상처를 입게 됩니다. 농민운동, 후스파 운동, 재세례파 운동 [3] 그리고 자유도시들을 정복한 이후에, 교회와 태동하던 왕권 사이의 동맹은 비로소 연방적 자유조직들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하지만 이 체제는 9세기 이후 15세기까지 존속하였고, 전혀 새롭고 강력한 문명을 창조했던 중세 자유도시의 탁월한 시대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티에리(J.Thierry)와 시스몽디(J.Sismondi)가 이 문명의 성격을 잘 포착하였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시대의 역사가들은 이들의 저서를 거의 읽지 않습니다.

귀족, 성직자, 상인, 재판관, 군인 그리고 왕 사이의 협약이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지배를 강화하였는지는 알려져 있습니다. 중세 도시와 농촌 공동체에 존재했던 모든 길드, 수공업자조합, 장인조합, 도제조합, 형제단, 이웃공동체 등 자유 조합들은 도처에서 파괴되었습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에서는 황제들이, 러시아에서는 모스크바의 차르가 공동체에 속한 토지를 약탈하였습니다. 길드가 소유했던 부는 몰수당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모든 자유로운 협약은 무조건 엄격하게 금지되었습니다. 지배를 확고히 하고, 다음에는 서로의 관계를 모두 상실한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교회와 국가는 어떤 만행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은밀한 개인 살해 혹은 집단 살육, 거열형車裂刑 [4], 교수형, 참수와 화형, 고문, 모든 도시민의 강제 추방 등 모든 것이 동원되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살해당한 수많은 농민들, 라인과 스위스에서 살해당한 많은 사람들, 노브고로드에서 자행된 이반 뇌제의 만행을 기억해 보십시오.

최근 20년 전부터 지금에야 비로소, 우리는 투쟁과 혁명의 방법을 통해 자유조합과 중세의 수공업자, 농민, 심지어 농노들까지도 향유하였던 가능한 모든 연합에 대한 권리의 부스러기들을 되찾기 시작하였습니다. [5]

우리들은 이 권리들을 다시 찾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이 현대의 문명국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책은 이에 대해 말하지 않지만, 그들의 삶을 살펴보십시오.),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열망은 현대인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수천 개의 가능한 모든 종류의 조합과 단체를 만들려는 열망입니다.

전 유럽은 연구, 산업훈련, 상업, 과학, 예술, 문학을 목적으로 하는 조합, 착취를 목적으로 하는 조합, 착취로부터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조합, 오락과 진지한 노동, 즐거움과 자기희생을 목적으로 하는 조합 등, 한마디로 말해서 행동하고 사유하는 존재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위한 자발적인 조합들로 넘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과 유럽의 정치, 경제, 예술, 학문적 삶의 모든 영역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단체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 중 일부는 빨리 사라지지만, 일부는 이미 10년을 살아남은 것도 있습니다. 각각의 집단, 서클, 동아리 혹은 분야는 서로 독립성을 유지하며 동시에 서로 결합함으로써, 종횡으로 교차하는 그물로 문명화된 모든 인간을 감싸 안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단체는 이미 수만 개에 이르며, 수백만의 사람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체들 중 일부가, 그것도 일부만이 교회와 국가로부터 독립한 것은 50년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곳에서 이 단체들은 전에 국가의 의무라고 생각되던 것들을 장악하고 있으며, 자발적인 활동으로 국가의 단일하고 관료적인 권력 활동을 대체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우리는 절도보험사,[6] 수해보험사, 국가방위 자원단체, 해변수호를 위한 단체 등 끝없이 많은 단체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국가는 물론 이 모든 단체들을 자신의 보호 아래 두고, 그것을 권력 강화 수단으로 삼고 싶어 합니다. 때로 국가는 성공하기도 합니다. 적십자가 그러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단체들의 제1목적은 국가 없이 해결해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와 국가가 아니라 자유로운 단체들이 교육과 훈육의 영역을 담당하기를 원합니다. 물론 국가가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제공하는 거짓 교육보다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유로운 단체들은 이미 이 영역에 개입하기 시작하였고, 이미 모든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지난 3세기 동안 탈취한 지배권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국가와 상관없이 그리고 국가에 대항하여 많은 것이 실현되고 있습니다. 자발적 조합들이 조금씩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지만 국가의 힘에 굴복하여 발전이 정지되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면 우리는 여기에 강력한 열망이 나타나고 있으며, 현대 사회의 새로운 힘이 관통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럴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권리입니다. 오년, 십년, 이십년 후가 되든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궐기하는 노동자가 성공적으로 지주, 은행가, 성직자, 재판관, 군인 사이의 소위 상호보험 관계를 분쇄한다면, 민중이 몇 개월 동안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되고, 자신이 창조하고 법적으로 자신에게 속한 부를 장악한다면, 노동자가 약탈적인 국가의 부활에 관심을 갖게 될까요? 반대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나아가는, 이에 상응하게 다양하고, 개별적 지방조직의 요구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상호간의 협약에 근거한 조직을 창조하려 노력하지 않을까요? 성취한 부를 사용하며 살고,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하는 가능성을 스스로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사회변혁을 완성하기 위해 현대국가 조직을 파괴할까요,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국가를 즉, 오래된 민중 탄압 무기를 다시 만들까요? 혹은 국가 없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까요?

민중은 한 세기를 지배한 열망을 따를까요? 반대로 그 열망을 거슬러, 자신을 파괴하는 권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까요?


푸리에가 미심쩍은 투로 ‘문명화된 인간’이라 일컫는 문화적 인간은 사회에서 재판관, 헌병, 교도관 등이 언젠가는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떨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과거에 쓴 책의 내용을 아주 잘 알지만, 민중과 그들의 일상생활에 대해서는 거의 모릅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런 학자들이 정말 우리에게 필요할까요?

우리는 경찰이 우글거리는 파리의 거리뿐만 아니라, 보행인을 자주 만나기 힘든 시골길에서도 안전하게 거닐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요? 경찰일까요 아니면 통행인을 살해하거나 강탈하려는 사람이 없는 상태일까요? 물론 나는 많지 않은 백만장자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힘들게 번 몇 푼이 든 돈지갑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걱정하는 보통 시민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의 두려움은 근거가 있는 것일까요?

최근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살인마 잭(Jack the Ripper)은 런던에서 문자 그대로 경찰들 가운데 가장 부지런하다는 즉, 런던 경찰의 코앞에서 만행을 저질렀고, 화이트채플(Whitechapel)의 시민들이 추적하기 시작했을 때야 비로소 만행을 중단했습니다.

다른 시민들과 우리의 일상적 관계는 어떻습니까? 재판관, 형무소 그리고 헌병들이 반사회적인 행위를 실제로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재판관은 법률적 광기에 사로잡혀있고 그 결과 언제나 잔혹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시나요? 밀고자, 스파이, 교도관, 사형집행인, 경찰 같은 사람들이 없으면 재판관은 어떻게 살까요? 그리고 이런 온갖 의심스런 인물들이 재판소 주변에 자리를 잡고서 실제로 그들 하나하나가, 사회에 만연된 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시나요? 이 재판소 생활을 좀 보시기 바랍니다. 재판보고서를 읽어 보십시오. 광고를 훑어보기 바랍니다. 경험 많은 형사의 도움으로 남편과 부인들의 행동을 저렴한 비용으로 몰래 조사해 주겠다는 사설 흥신소 광고가 신문에 가득합니다. 단편적으로나마 스코틀랜드 야드[7], 거리의 여인들의 도움을 받는 파리 비밀경찰 그리고 러시아의 제3부[8]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재판소의 속을 들여다보십시오. 장엄한 돌벽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십시오. 여러분은 깊은 혐오감을 느낄 것입니다. 감옥은 인간의 모든 자유의지와 개성의 힘을 말살하고, 지구상의 어떤 곳보다 더 많은 악덕을 벽속에 가두고 있습니다. 그런 감옥이 늘 범죄의 최고학부 역할을 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그리고 법정은 가장 추악한 잔인함을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란 말입니까?

우리가 국가와 모든 국가조직의 폐지를 요구할 때, 현실에 존재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꿈꾸고 있다고 사람들은 우리를 반박할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전혀 당치도 않습니다! 우리는 이 추악한 국가기관들이 사람들을 지금보다 더 나쁘게 만들지 않는다는 그 한가지만을 요구합니다.


독일의 저명한 법률가인 예링(R. von Jhering)은 자신의 학문 연구를 저서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는 저서에서 사회생활을 유지시키는 수단들을 규명하려고 하였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법의 목적(Der Zweek im Recht)』이고, 합당한 명성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는 연구계획을 세우고 풍부한 지식을 동원하여 본질적인 두 가지 강제수단을 연구하였습니다. 그것은 임금과 법에 명시된 강제의 형식들입니다. 마지막에 그는 두 장을 첨가하였습니다. 법률가에게는 당연한 것이었겠지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두 가지 비강제적 수단에 대해 환기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의무감과 동정심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강제수단들에 대해 연구하는 동안 그것으로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전적으로 불충분하며, 불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강제수단들에 대한 연구에 책 한권을 바쳤습니다. 그렇지만, 연구 결과를 볼 때 그것의 중요성은 매우 약화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두 장을 앞두고 사회생활의 비강제적 수단에 대한 고찰에 착수하였을 때, 그는 이 수단들이 매우 크고 압도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것보다 더 두꺼운 두 번째 책을 - 이 두 수단, 즉 자발적 자제自制와 상호부조에 대해 - 써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연구대상의 미미한 부분만을 탐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사회활동의 실현을 위한 자유로운 협약의 문제를 약간 다룬 후에, 그는 개인적 동정심에서 유래한 것에 대해서만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학교에서 배운 공식만을 되풀이하는 대신, 이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예링이 경험한 것을 여러분 각자가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예링이 한 것처럼, 강제가 자발적 협약과 비교하여 사회에서 얼마나 보잘것없는 의미를 갖고 있는지 여러분도 알게 될 것입니다.

다른 관점에서, 벤담(J.Bentham)의 오래된 충고에 따른, 모든 법적 강제의 치명적이고 직접적인 결과와 특히 간접적인 결과들에 대해 생각해 보면,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와 우리들처럼 여러분은 폭력의 사용에 대해 분노하게 되고, 반사회적 행위의 예방에 훨씬 더 효율적인 수천 가지 다른 수단들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사회는 이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와 국가의 지도로 이루어진 사회의 양육이나, 사회의 소심함과 나태한 생각이 이 문제에 대한 명료한 이해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간단히 벌을 주면 됩니다. 그때는 적어도 어떤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고용된 사형집행인이 있고, 영국에서는 사형수 당 1푼트, 즉 10루블이면 되는데, 사람을 사형에 처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일까요? 더 좋은 것이 있지요! 1년에 몇 백 루블만 주면 범죄의 원인에 대해 귀족들의 골머리를 썩이지 않아도 됩니다! 시베리아로 보내거나 크레스티[9]에 가두는 것은 훨씬 더 간단합니다! 그러나 이 얼마나 혐오스런 일입니까! 우리들에게 흔히들 말합니다. 우리 아나키스트들은 꿈의 세계에 살며 현대의 현실을 보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현실을 너무 잘 보고, 잘 알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신으로부터 혹은 이 세상으로부터 유래된’ 모든 권력의 문제에 대한 오래된 편견의 숲 속에 있는 나무들을 도끼로 찍어내어 길을 내려고 합니다.

우리들은 환영의 세계에 살지 않고, 인간을 실제보다 더 좋은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반대로 우리들은 인간을 있는 그대로 봅니다. 때문에 우리는 권력이 가장 좋은 인간들을 망가뜨린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의 상층부는 자신들이 재배하고 있다고 믿게 만들기 위해서 이 모든 ‘권력의 균형’과 ‘정부에 대한 통제’ 이론들을 만들었습니다. 이 이론들은 권력 편에 선 사람들이 고안한 흔한 공식일 뿐이라고 우리는 주장합니다. 사실, 절대로 민중이 국가를 지배하지 않습니다. 도처에서 부자들과 식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조종할 뿐입니다.[10] 지배자들은 자신들이 없으면 사람들이 서로 물어뜯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간에 대한 지식에 근거해, 그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생각해 보라, 외국으로 쫓겨난 프랑스 왕이 ‘내가 없다면 나의 불행한 종복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외친 것을!”

물론 인간이 권력 유토피아주의자들의 묘사처럼 고상한 존재라면, 그들처럼 우리도 지배의 소명을 받았다는 자들이 도덕적으로 고상하다는 환상에 빠져 살 수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들도 그들처럼 생각하고, 그들처럼 지배자들의 덕성을 믿을 것입니다. 실제로, 노예제도 유토피아주의자들이 묘사하는 것처럼, 노예소유자들이 정말로 경건한 대천사와 같다고 한다면 노예제도에 무슨 나쁜 것이 있겠습니까? 30년 전만 해도 미국 노예소유자들과 농노제 지지자(지주)들이 얼마나 장밋빛으로 묘사되었는지 여러분은 아마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노예와 농노들을 아버지처럼 돌본다! 주인이 없으면 이 게으르고, 만사태평하고, 분별없는 자식들은 배고파 쓰러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농노제 지지자들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주인은 노예들에게 강제노동의 짐을 지우고 혹은 그들을 회초리로 다스릴 것이다! 노예들을 잘 먹이고, 그들을 잘 대해주고, 자기 자식들처럼 돌봐주는 것이 그의 직접적인 이익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러시아의 지주들, 미국의 신문기자, 영국의 사제들이 얼마나 달콤하게 그것을 찬미하였습니까! 이 외에도, 심지어 조금이라도 의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노예소유자를 벌하는 ‘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브라질 여행에서 돌아온 다윈(C.Darwin)은 브라질에서 들었던 불구자 노예들의 비명 때문에, 사슬에 묶인 손의 통증으로 신음하는 여인들의 흐느낌 때문에 평생 동안 괴로워했습니다. 과거 지주들의 후손인 우리들은 선조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생각만 해도 얼굴이 붉어집니다.

국가 찬미자들이 우리에게 묘사하는 것처럼 권력 편에 있는 자들이 정말로 현명하고 사회적 사업에 헌신적인 사람들이라면, 맨 윗자리에 정부와 주인들이 있는 멋진 유토피아를 창조할 수도 있겠지요! 주인은 폭군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아버지가 되겠지요! 공장은 가장 매력적인 장소가 될 것이고, 모든 노동자들이 신체적으로 불구자가 되는 운명에 빠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국가가 백린을 적린으로 아주 쉽게 바꿀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린으로 성냥을 만들게 하여 노동자들을 독극물로 중독 시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노동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그 결과 그들의 아내와 자식들을 굶주림과 빈곤에 살게 하거나 병으로 죽게 만드는 재판관들, 그런 짐승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검사들은 자신들의 변론술을 자랑하기 위한 목적으로 피고들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 실행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형집행인을 찾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플루타르코스라 해도 그 축복된 시대의, 검은 돈을 싫어하는 대의원들의 온갖 덕행을 나열하기에는 어휘가 모자랐을 것입니다! 훈련된 부대는 모든 선행의 발상지가 되고, 상비군은 시민을 위한 오락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기는 군인을 선망하는 유모나 아이들 앞을 행진하는 군인들에게만 필요할 테니까요.

권력 편에 있는 사람들은 평범한 인간들에게 있는 약점이 없거나 거의 없는 최상급의 사람들이라고 전제하는 순간, 우리의 상상 속에서는 훌륭한 유토피아와 멋진 크리스마스 동화가 창조됩니다! 관리들이 관등에 따라 서로를 통제하게 만들고, 가령 어딘가에서 국가소유의 나무가 바람에 쓰러진 경우에 관청이 교환할 수 있는 보고서와 왕복문서를 다만 25개로 제한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바람에 쓰러진 국가소유 나무를 판매하기 위해, 현재 통일 프랑스의 주무관청은 53개의 서류를 교환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필요한 경우에 평범한 관리들에 대한 감독을 실시할 수 있습니다. 관리들은 서로간의 관계에서 엄청난 도덕적 타락을 보이지만, 지배자를 뽑아야 할 때는 지혜의 화신化身이 됩니다.

지배자들 스스로가 만든 모든 국가 통치술은 이런 유토피아로 충만하여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꿈에 헌신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배자 혹은 피지배자에 따라 서로 다른 두 개의 잣대를 적용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완전하지 않으며 우리 중에 가장 뛰어난 사람도 권력을 잡으면 곧 부패할 것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선택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인간에 대한 인간의 모든 권력을 미워하고, 불충분할 수도 있지만, 온 힘을 다하여 그 권력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파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또한 창조의 능력을 보여야 합니다. 모든 혁명에서 민중은 언제나 기만당했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낡은 것을 파괴한 후, 언제나 민중은 부르주아의 미래에 대해 걱정했습니다. 부르주아는 민중과 비교하여 특권을 소유했고, 무엇이 필요한가를 어느 정도 분명하게 알고 있었으며, 그렇게 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권력을 새롭게 재건하려고 노력합니다.

아나키즘은 권력이 드러나는 모든 현상 속에서 권력을 폐기하고, 종속을 강요하기 위한 법과 메커니즘을 폐기하며, 모든 문벌 조직을 부정하고 자유로운 협약을 옹호합니다. 그러면서 그것과 더불어, 아나키즘은 사회적 관습의 고귀한 정수를 지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사회적 관습의 고귀한 정수가 없다면 그 어떤 인간사회도 동물사회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몇몇 사람들의 권력이 사회적 관습을 지지하기를 기다리는 대신, 아나키즘은 모든 사람의 지속적 활동으로부터 나오는 지지를 기대합니다.

공산주의적 제도와 습관들은 경제적 곤란의 해결 수단으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긴밀하게 만들고, 인간 사이에 사회적 관습을 발전시키고 지원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그러면 사회적 관습은 각각의 이익을 모든 사람의 이익으로 돌리는 관계와 사람들을 분리하는 대신 통합하는 제도를 창조할 것입니다.

인간 혹은 동물 사회에서 일정한 도덕적 수준이 어떤 수단을 통해 유지되는가의 문제를 제기할 때, 우리는 무엇보다 세 가지 수단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반사회적인 행위의 억압과 형벌, 도덕 교육, 생활에 폭넓은 상호부조의 적용입니다. 이 세 수단은 검증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의 결과를 근거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형벌의 무용성은 현대사회가 처한 흉악한 상황에 의해, 혹은 혁명의 불가피성에 의해 증명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혁명을 추구하고, 그것의 필요성을 모두 느끼고 있습니다. 경제영역에서 강제 시스템은 우리를 공장에서의 강제노역 상태로 이끌었고, 정치 영역에서는 국가로, 즉 시민들 사이에 존재하던 모든 관계의 파괴로 이끌었습니다.(1793년 자코뱅주의자들은 왕권에 대한 싸움의 수단이었던 관계들까지도 끊어버렸습니다.) 목적은 시민을 모든 관계에서 중앙 권력에만 종속된 무정형의 신민臣民 대중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국가의 법과 형벌은 현대 정치, 경제, 사회체제의 불행을 만드는데 일조했을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사회의 도덕수준을 높이는 데는 무능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국가의 법과 형벌은 사회가 예전에 갖고 있던 수준조차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갑자기 어떤 선한 요정이 문명사회에서 익명으로, 고위층과 법의 비호를 받아 자행된 범죄들을 모두 우리 눈앞에 펼쳐 보였다고 한다면 사회는 전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12월 2일의 나폴레옹 쿠데타[11] 혹은 코뮌에 대한 피의 폭력, 혹은 강제노동수용소와 슐리셀부르그[12]에서 자행된 황제의 만행과 유사한 거대한 정치적 범죄와 관련해서, 책임자들은 절대로 벌을 받지 않습니다. 네크라소프(Николай Алексеевич Некрасов)는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큰 도둑들의 만족을 위해 좀도둑을 때린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권력이 ‘죄인들에 대한 형벌’을 수단으로 사회적 도덕성을 높이려고 시도하지만, 권력은 재판소와 감옥에 새로운 범죄를 만들 뿐입니다.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강제의 수단을 사용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과거의 강제제도를 폐기하고, 폐지하는 것 외에는 탈출구가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언급한 도덕교육 수단들의 중요성을 절대로 부정하지 않습니다.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전수되며, 일상의 사건에 대해 사람들 각자가 언급한 입장과 견해의 총합으로부터 나오는 수단들은 특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힘은 한 가지 조건 아래에서만, 즉 다른 비도덕적 교육, 즉 현존하는 국가제도로부터 나오는 교육이 그 힘을 방해하지 않는 경우에만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국가의 교육은 영향력을 전혀 행사하지 못하거나, 해롭기까지도 합니다. 기독교 도덕을 봅시다. 어떤 다른 도덕이 기독교의 도덕처럼 이성에 대한 강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 도덕은 십자가에 달려 처형된 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불가사의의 힘을, 순교의 시학을, 사형집행인의 죄를 용서할 것을 청원하는 위대함을 수단으로 행동합니다. 그러나 국가제도의 영향력은 기독교보다 더 강한 것 같습니다. 기독교는 본질상 로마제국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란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기독교는 로마에 길들여져 로마의 원칙, 습관, 언어를 수용하였습니다. 로마법의 원칙들이 기독교에 침투하였고, 그 결과 역사에서 기독교는 국가의 동맹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국가는 초기 기독교가 추구했던 반半공산주의적 제도의 가장 열렬한 적입니다.

내각의 명령에 따라 수립된 도덕교육이 기독교에 없었던 창조적 힘을 가질 것이라고 우리는 단 1분간이라도 생각할 수 있을까요? 교육이 진정 인간을 사회적으로 만들기를 추구한다 해도 온갖 반사회적 관습과 제도의 총합에서 나오는 다른 일상적 교육이 앞의 교육과 대립한다면, 교육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세 번째 요소가 남습니다. 그것은 사회적 감정이 표현된 행동들이 관습으로 흡수되고, 본능이 되도록 영향을 행사하는 제도입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처럼, 이 힘은 절대 무기력하지 않았고, 절대 양날의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이 힘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관습이 조금씩 정체되고 결정화되어 범할 수 없는 종교로 변하고, 개인을 집어 삼켜 모든 행동의 자유를 앗아가며, 개인이 계속적인 발전을 방해하는 것들과 싸우게 만드는 때에만 그럴 것입니다.

사실상, 과거에 발전과 진보의 요소로 혹은 인류의 도덕교육과 지식교육의 무기로 사용되었던 모든 것은 상호부조 원리의 실천으로부터,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평등을 인정하고, 서로 연합하고, 생산과 소비를 위해 단결하고, 공동의 방어를 위해 조합을 결성하고, 그들 사이에 발생한 분쟁의 해결을 위해 중재자에게 요청하던 관습으로부터 유래하였습니다.

이 제도들은 민중이 자신의 자유를 쟁취한 그 시대에 민중적 창조의 산물로서 탄생하였습니다. 이들이 역사에서 가장 큰 발전을 이룰 때마다 사회의 도덕적 수준, 물질적 행복, 자유, 지적 진보, 개성의 발전도 제고提高되었습니다. 반대로, 해외 정복 혹은 국가에 관한 편견이 발전하고, 그 결과 사람들이 점점 더 지배자와 피지배자, 착취자와 피착취자로 나뉠 때마다, 사회의 도덕적 수준은 낮아졌습니다. 다수의 행복 대신에 소수의 손쉬운 돈벌이가 나타났고, 시대의 보편정신은 급속히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배웁니다. 역사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운 공산주의 제도가 국가의 관습에 의해 추락한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얻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서로 모르는 채 다른 사람들과 나란히 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선거 때가 되면 우리는 유세장에서 만나 후보자들의 거짓 약속이나 맹목적인 연설을 듣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국가는 사회적 이해를 갖는 모든 일들을 관리합니다. 국가는 개인들이 같은 시민들의 이익을 훼손하지 않도록 주시하고, 필요한 경우 죄인을 벌함으로써 개인이 저지른 해악을 교정하는 의무를 갖습니다. 국가는 굶주리는 자에 대한 보살핌, 교육, 적으로부터의 방어 등과 같은 의무를 갖습니다.

여러분의 이웃은 배고파 죽거나 자기 자식들을 찔러 죽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와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경찰의 업무란 것이지요. 여러분의 이웃들을 모릅니다. 어느 것도 여러분과 그들을 연결해 주지 않습니다. 모두가 각각입니다. 더 좋은 것이 없다는 이유로, 여러분은 반사회적 열정을 극단으로까지 허용하지 않기를 절대자에게 간청합니다. 예전 절대자는 신이었고 지금은 국가라 할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다르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국회, 도시 혹은 농촌 의회와 같은 어떤 입법의회에도 공산주의 체제의 조직업무를 위임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일이 되어야 하고, 그것은 민중 자신의 독창적 지혜를 통해 창조되어야 합니다. 공산주의를 위에서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지원이 없다면, 공산주의는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권력의 대기 속에서 질식하고 말 것입니다.

그 결과 공산주의는 사회적 사안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 수천의 접점을 창조하는 것 외에 다른 식으로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각각의 거리, 몇 개의 건물, 구역, 도시공동체라는 가장 작은 단위별로 독립적이며 고유한 삶을 살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르게 살 수 없습니다. 사회가 물질적 풍요, 호화로운 생활, 학습, 오락 등 모든 욕구의 충족을 위해 활동하는 협동조합과 단체들의 그물로 덮인다면, 그때야 비로소 공산주의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단체들은 순순히 지방적인 것으로 남아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들은 이미 학회, 자전거 동호회, 해양 인명구조 동호회 등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불가피하게 전 국민적인 것, 그리고 국제적인 것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필연적으로 만들어낼 사회적 관습들은 이미 존재하는 사회적 관습의 핵을 모든 가능한 징벌수단보다 더욱 강력하게 지원하고 발전시킬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상호협약 정신의 발전을 어떤 삶의 형식으로부터, 어떤 사회 체제로부터 기대하고 있는가하는 물음에 대한 답입니다. 이 견해는 공산주의와 아나키즘이 공존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한 답변이라는 것을 추가로 언급하고자 합니다. 개인과 개인 능력의 완전한 발전이 가능해지는 것은, 우리 동료들 중 하나가 올바로 표현한 것처럼 식량과 의복에 대한 인간의 1차적이고 주된 욕구가 충족될 때, 삶을 위한 투쟁과자연력에 대항한 투쟁이 간단해질 때, 존재의 유지를 위한 수천가지의 자잘한 수고들이 개인의 시간을 집어삼키지 않을 때일 뿐입니다. 그때야 비로소 이성, 예술적 취향, 발명의 재능, 그리고 인간의 모든 능력들이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공산주의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서로 간의 투쟁 속으로 사람들을 밀어 넣는 개인주의의 발전이 아니라 개성의 발전을 위한, 그리고 모든 인간 능력의 완전한 개화, 인간 속에 있는 모든 창조성의 최상의 발전, 이성과 감정과 자유의지의 최고의 활동을 위한 최상의 토대입니다.

우리의 이상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다소 먼 미래에 이상이 완전히 성취될 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그 이상을 지금 우리 자신들 사이에 부분적으로 실현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시도 지체하지 말고 그 이상을 가능한 넓게 확대시켜야 합니다. 앞으로의 노력이 사회가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우리의 노력들이 지금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견해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모든 개인적 문제와 어떤 관련을 맺는지를 우리는 그때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과제는, 무엇보다 현대사회체제를 연구하여, 현 단계의 발전에 고유한 지향과 방향을 찾고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 노력들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미 지금 그리고 특히 혁명이 도래함에 따라, 이 노력들의 발전을 억압하는 제도와 편견을 폐지하기 위해 힘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평화적인 방법으로, 또 혁명적인 방법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노력들이 발현되게 함으로써 진보를 촉진하는 것이며, 그것에 대립하는 모든 것은 진보를 저지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사회가 거쳐야만 하는 중간공격단계에 대해 말합니다. 그들은 제 1단계 지점으로 제시된 것을 성취하기 위해 투쟁할 것을 우리에게 제안합니다. 결국 그들은 1단계를 성취한 후에야 참된 길로 나설 수 있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판단하는 것은 인류 진보의 참된 성격을 불완전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전쟁과 관련된, 그렇기 때문에 본질상 적절하지 못한 비유를 사용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인류는 구르는 공도 아니고, 행진하는 군대 행렬도 아닙니다. 인류는 전체이며, 그것의 발전은 인류를 구성하는 수백만 명의 발전 속에 존재합니다. 우리가 꼭 비유를 사용하기 원한다면, 무생물의 운동법칙이 아니라 생물의 발전 법칙에서 비유의 재료를 가져와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사회발전에서 각각의 발걸음은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단위들의 동등하게 작용하는 정신활동이며, 그것은 구성원 각각의 자유의지라는 특징을 갖습니다. 20세기가 우리에게 마련하고 있는 새로운 발전 유형이 어떠하든지, 그것은 지금 이미 깨어나기 시작한 비국가적 자유사상들의 특징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 운동의 깊이는 국가와 관련된 편견들과 단절하는 이성적 인간의 숫자에, 낡은 제도를 파괴하는 그들의 에너지에, 그들이 사회에 주는 인상의 강도에, 대중의 이성이 그리는 해방된 사회체제의 선명도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지금, 예를 들어, 무無국가적 자유사상의 각성은 프랑스 사회에 상당한 자극을 주었고, 프랑스에서 미래의 혁명은 어떤 경우에도 자코뱅식의 중앙집권적 혁명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혁명이 20년 전에 일어났다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아나키즘이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날조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모든 사상운동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미래 혁명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우리는 이 혁명이 중앙집권적이며 독재적인 40년대의 공산주의로도, 국가 집산주의로도 우리를 인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제1단계 지점’은 결국 20년 전에 이 첫 번째 발걸음을 이해했던 것과 동일한 것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가 이미 지적한 것처럼 우리의 관찰에 기초하여 판단할 수 있다면, 지금 모든 사회주의당 앞에 가장 거대한 과제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경제적 이상을 이미 대중의 생각 속에서 시작되고 있는 개인의 자유를 향한 운동과 어떻게 일치시키는가하는 것입니다. 선행한 혁명들에서는 민중적 자기주도의 정신을 각성시키는 것을 충분히 배려하지 않았습니다. 민중적 자기주도의 각성이 없다면, 가장 거대한 경제적 변혁의 완성 가능성도 - 도시와 시골 모든 곳에서 - 전혀 없음을 사람들은 이제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민 대중 속에 조직적인 창조적 자기주도의 부재는 과거의 모든 혁명을 좌초시킨 암초였습니다. 민중은 공격에 관한 판단에서 매우 강한 면모를 보이지만, 새 건물의 건설에서 자기주도와 창조적 사유를 보이지 못했습니다. 민중은 바리케이드에서 싸우고, 궁전을 점령하며 낡은 지배자들을 쫓아내었지만, 교육받은 계급에게 즉 자본계급에게 새로운 건설의 과업을 위임하였습니다. 자본계급에는 자신들만의 이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고유의 이익을 위해 사회적 폭풍 속에서 무엇을 끌어내야 할 것인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혁명이 구체제를 타파하자마자 자본계급은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건설에 착수하였습니다.

혁명에서 파괴는 혁명가의 업무 중 일부일 뿐입니다. 그 외에도 혁명가는 새로 건설해야 합니다. 이 건설은 새로운 것을 철저히 사유할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책에서 배운 처방에 따라 진행될 수도 있고, 구체제의 옹호자들이 민중에게 강요한 낡은 처방에 따라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개혁의 새로운 원칙 위에서 진행될 것입니다. 사회주의 사회의 독자적 건설은 - 각 지역에서, 지역에 고유한 복잡한 관계 속에서 원칙의 실천적 실현을 모색하는 대중이 습득한 몇 가지 공통된 원칙의 영향 아래에서 - 각각의 마을과 각각의 도시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민중에게는 자신의 이상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그의 주변에 진취와 주도권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13] 건설은 민중적 자기주도에 의해서만, 위에서가 아니라 아래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한 도시에서만이라도 건설을 완성할 수 있을까요? 무엇부터 시작할까요? 우리는 이에 대해 고민할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답은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모든 사람을 먹이고, 모든 이에게 주거를 제공하는 것, 현학적으로 말하면 분배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생산은 분배의 필요에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당은, 사회주의자들마저도 당의 훈육을 위하여 노동자와 농민의 주도권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억압하였습니다. 모든 명령은 중앙과 위원회로부터 나왔고, 조직의 통일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지방조직들은 복종하는 일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런 목적을 위해 모든 교육체계, 모든 거짓 역사, 모든 납득할 수 없는 과학이 연구되었습니다.

낡고 해로운 방식을 폐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개인들과 집단 속에 자기주도의 정신을 각성시키려는 사람들, 이 원리를 자신의 행동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토대 위에 성공적으로 놓은 사람들, 생명은 다양성 속에 심지어 투쟁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단일성은 죽음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 이들이 미래의 세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눈앞의 혁명을 위해 일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몇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우리들은 ‘자유의 남용’을 겁내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만이 오류를 범하지 않습니다. 복종만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는 사람들만큼의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실책과 오류를 범합니다. 후자의 사람들은 사회의 교육을 받았지만, 자신의 이성이 이끄는 방향으로 행동하려고 애씁니다. 잘못 이해되고 특히 잘못 해석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이념은, 특히 연대성의 개념이 충분히 수립되지 못한 곳에서, 사회적 양심을 분노하게 만드는 행위로 이어질 수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미리 가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것이 자유의 원칙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기 위한 충분한 이유가 될까요? 해방된 출판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검열을 옹호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일성과 훈육을 유지하기 위해 진보적인 당의 당원들을 단두대에서 처형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유의 남용이 이런 사람들의 견해에 찬성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까요? 1793년의 경험[14]이 보여주듯이 결국 이것은 반동세력의 승리를 준비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입니다.

반사회적 행동을 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개인은 자신을 위해, 국가는 모두를 위해’와 같은 규칙을 거부하고, 우리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충분한 용기를 스스로 찾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투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투쟁은 삶입니다. 그때 그런 투쟁은 우리가 대부분의 행위에 대해, 이미 확립된 개념의 절대적 영향 아래에서 하는 것보다, 더 정당한 평가를 할 수 있게 합니다. 이를 통해 통용되고 있는 많은 도덕 개념들은 재평가되어야 합니다.

사회의 도덕적 수준이 우리 사회에서와 같은 단계로 추락할 때, 그런 사회에 대한 저항은 우리가 아주 싫어하는 형태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저항을 비난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미리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1789년에 잘려 창에 매달린 머리는 우리를 심히 불쾌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빅토르 위고(V.Hugo)가 우리에게 말했던, 낡은 왕정체제와 감옥이 낳은 교수대의 산물이 아닌가요? 1871년 티에르(L.-A.Thiers)가 자행한 3만 5천명의 파리시민 학살과 파리 봉쇄가 프랑스 민중의 성격에 너무 큰 잔인성을 남기지 않았기를 우리는 바랍니다. 최근의 재판에서 드러난 상류계급의 도덕적 타락이 국민의 심장을 결정적으로 부식시키지 않기를 우리는 바랍니다. 우리는 이것을 바라고, 이를 위해 협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희망이 우리를 기만할 수 있고 현 지배계급의 잔인성이 민중의 정신에 흉터를 남겼으며 위에서 지배하는 진흙탕으로부터 사방으로 오물이 튄다고 해서 젊은 전문가인 여러분들은 봉기하는 민중에게 등을 돌리겠습니까?


정신 속에서 완성된 심오한 변혁은 사유의 영역에만 머무를 수 없으며, 행동의 영역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일찍 사망한 젊은 철학자 마리-장 기오(M.-J.Guyau)의 『의무와 강제 없는 도덕에 관한 시론(Esquisse d'une morale sans obligation ni sanction)』은 지난 30년 간 발표된 것 중 최고의 저작중의 하나입니다. 이 저서에서 정당하게 언급한 것처럼, 사유와 일 사이에 분명한 심연은 없습니다. 적어도 현대의 궤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렇습니다. 사유는 일의 시작입니다.

모든 나라에서 모든 가능한 형태로, 아나키즘이 수많은 저항 활동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우선 자본과 국가에 대한 개인의 저항이고, 다음에는 동맹파업과 노동자 폭동 형태의 집단적 저항입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유형의 저항들이 의식 속에서도, 생활 속에서도, 대중적 봉기 즉 혁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에서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은 일로 이어지는 사유인 ‘이념-힘’의 발전을 따라갑니다. 이런 발전은 거대한 민중봉기가 도래할 때 언제나 관찰됩니다.

바로 이것이, 모든 치열한 저항은 아나키즘 때문이라는 것이 우리의 입장에서는 오만이고, 다른 쪽의 입장에서는 오류가 되는 이유입니다. 지난 이십 오년간 일어난 유사한 현상들을 다시 살펴보면 우리는 그것들이 모든 곳에서 유래하였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전 유럽에 걸쳐 많은 노동자와 농민 폭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에 ‘팔짱 낀 전쟁’이었던 동맹파업이 이제는 연속적으로 폭동으로 옮겨가고, 때로 예를 들어, 미국, 벨기에, 안달루시아에서처럼[15] 큰 규모의 봉기가 되기도 합니다. 봉기로 이행하는 파업형태의 폭동은 유럽에서처럼 신대륙에서도 수십을 헤아립니다. 다른 한편 개별 저항의 행동들은 가능한 모든 형태를 취하고, 모든 혁명적 정당은 그것을 사용합니다. 우리 앞에 다음과 같은 운동가들이 있습니다. 트레포프를 저격한 젊은 여류혁명가이자 사회주의자인 베라 자술리치(Ве́ра Ива́новна Засу́лич), 독일황제를 저격한 사민주의자 회델(Emil Max Hödel)과 공화주의자 노빌링(K.E.Nobiling), 스페인 왕을 저격한 통 제작 노동자 오테르, 이탈리아 왕의 살해를 기도했던 종교적 마치니주의자인 파사난테(Passanante) 등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이 - 이들은 사회주의와 아나키즘 모두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 조직한 아일랜드에서의 농업 살인과 런던의 폭발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러시아의 젊은 세대를 봅니다. 그들은 사회주의자, 입헌주의자, 자코뱅주의자로서 알렉산드르 2세에게 가차 없는 전쟁을 선포하였고, 전제권력에 대항한 투쟁에서 35명이 교수대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수백 명이 슐리셀부르그와 시베리아에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벨기에, 영국, 미국의 광부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저항과 함께 아나키스트들이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등장합니다.

이와 함께 이 모든 기간 중에 정부들이 자행한 집단살육과 개별살육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베르사유 회의는, 전 유럽 자본계급의 동의 속에서 3만 5천명의 노동자 그리고 패배한 대부분의 파리코뮌의 포로들을 처형하였습니다. 부유한 미국 자본가들에 의해 유지되는 사병인 ‘핀커튼(A.Pinkerton)의 강도들’은 모든 기술을 동원하여 파업노동자들을 살해합니다. 사제들은 정신적으로 허약한 젊은이를 교사하여 루이제 미셀(Louise Michel)에게 총격을 가하게 만들었습니다. 진정한 아나키스트였던 그녀는 암살자를 재판에서 구해 보호해준 적이 있습니다. 유럽 밖에는 캐나다에서의 인디언 학살, 리엘(L.Riel)의 처형, 마타벨레 족[16] 학살, 알렉산드리아 폭격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전쟁의 이름으로 자행된 통킹, 마다가스카르 등지에서의 학살도 있습니다.[17] 마지막으로 매년 구세계와 신세계에서 봉기한 노동자들에게 보통 수백 명 심지어 수천 명씩 수년의 징역을 선고하고, 그런 방식으로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을 가장 처참한 가난으로 몰아냅니다. 이들은 소위 가부장의 죄 때문에 보복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봉기한 다른 노동자들을 시베리아로, 판텔라리야(Pantellaria), 비리비(Biribi)[18], 누메아(Noumea), 기아나(Guiana)로 유형을 보내고, 이 유형지에서 아주 사소한 반항을 구실로 유형자들을 처형합니다.[19]

누군가 지난 25년 동안 노동자계급과 그 옹호자들이 당한 모든 고통 목록을 작성한다면, 얼마나 무서운 책이 될까요? 내가 여러분께는 알려지지 않은, 그것에 대해 말씀드린다면, 여러분을 악몽처럼 따라다닐 그런 끔찍한 사실이 드러날 것입니다! 위대한 사회혁명을 알리는 현대의 예언자들의 수난사는 엄청난 분노를 폭발시킬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는 피와 소름끼치는 고통으로 가득한 이 책의 한 부분을 지나왔습니다.

이 많은 고통, 처형, 기아나, 시베리아, 누메아로의 유형생활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봉기하는 노동자들이 인간생명을 경시한다고 감히 비난합니다!

하지만 우리 현재의 삶에서 모든 것은 인간 생명의 존엄을 억압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교수형이나 참수형을 선고하는 재판관, 그들의 하수인인 사형집행인(이들은 구경하러 모인 사회의 인간쓰레기들의 웃음 속에서, 대낮에 마드리드에서 교수형을 집행하거나 파리의 아침 안개 속에서 참수형을 집행합니다.), 통킹 혹은 투르크메니아에서 살육을 지휘하는 장군, 칭찬으로 살인을 은폐하는 신문기자, 아연이 함유된 백린으로 노동자들을 중독 시키는 기업주, 흑인 마을에서 소리 질러 깨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인을 살해한 영국 지리학자 스탠리(H.Stanley), 동거녀로 취한 흑인 처녀를 ‘부정’을 이유로 교수형 시킨 독일 지리학자, 살인행위가 드러난 비리비의 교도관에 대한 재판에서 2주 구류로 형을 제한한 군사재판 등 현대 사회의 모든 것은 마치 시장에서 값싸게 살 수 있는 물건철머 현저하게 인간생명의 경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값싼 물건인 인간을 사형시키고, 죽이며, 처형하는 자들, 사회를 구하기 위해 교수형, 총살, 살인이 필요하다는 규정을 교리에 포함시키는 종교인들, 여전히 그들은 혁명가들이 인간 생명을 경시한다고 감히 불평합니다!

아닙니다. 지금 사회가 피의 복수 법칙을 따르는 동안, 신앙과 법, 병영과 재판소, 감옥과 공장에서의 강제노동, 출판과 학교가 계속하여 인간생명의 완전한 경시를 가르치는 동안에는 이 사회에 대항하여 봉기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생명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현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선과 관용을 그들에게서 요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와 함께 자유를, 그 결과 개인의 생명을 존중하기 원한다면, 형태에 상관없이 여러분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경멸했던 아나키즘의 원칙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서, 여러분은 우리와 함께 무엇보다 이 이상에 적합한, 그리고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모든 폭력행위들에 종지부를 찍을 사회 형식의 모색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1] 지난 150년간 영국의 귀족들과 금권 정치가들의 전술은 이런 방향에 서 있다. 즉 이 전술을 위해 의회는 공유지 점유법을 만들었다.(이 19세기 동안 수백만 에이커가 점유되었다.) 최근 보어인들과의 전쟁은 흑인들의 공동토지소유를 폐지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고, ‘노동자 집단숙소’로 쫓아내고, 공장과 광산에서 - 기아와 형벌 때문에 - 헐값으로 일하게 만들려는 요하네스부르그의 금광산업가들의 요청에 따라 일어났다. 결국 흑인들은 킴벌리의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일하고 있다.

[2] 자본주의적이든 사회주의적이든 정치경제학은 지난 세기말 신학이 있던 바로 그런 상태에, 즉 여전히 순수한 형이상학에 머물러 있다. 예를 들어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법칙들을 혹은 양적인 법칙들을 양적으로 조사해야 할 필요성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양적인 관계들을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비과학적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5층에서 떨어지는 돌이 1층에서 떨어지는 돌보다 더 빠르다는 것을 보고, ‘돌이 지나온 공간은 그것이 떨어진 시간에 비례한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숫자로 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물리학자가 있다. 우리는 그런 물리학자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그런데 교환가치의 문제에 대하여 사람들은 우리에게, 교환가치는 필요한 노동의 양에 의해 측정된다고 (즉, 교환가치는 노동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말하면서도, 이런 주장을 위해, 두 양 사이에 직접적인 비례관계가 성립하며(‘한쪽의 기능이 다른 쪽의 기능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고 수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러한 관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무적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에서 다이아몬드를 많이 채굴한 이후,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줄어들지 않았단 말인가?’라고 언급하고, 경제학자는 이 어설픈 언급으로 만족한다. 각각의 자연법칙은 조건적 형식 속에 표현된다. 즉 ‘하나가 존재한다면 다른 것도 발생할 것이다.’라는 것에 대해서 마치 들어보지도 않은 것처럼, 그는 ‘가치의 기준은 곧 노동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존재하는 조건도 존재한다. 그리고 모든 관심은 이 조건들을 연구하는 것에 있다. 즉 이 조건들이 언제나 존재하는가 아니면 가끔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물론 나는 우리 동시대의 연구가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가치의 노동이론과 관련해서, 창시자인 아담 스미스도 그런 종류의 주장에 대해 약간 잘못이 있다.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긴다는 주장에서 뉴턴이 그런 것처럼.

[3] 역주 - 재세례파 혹은 재침례파(Anabaptist)라고 한다. 재세례파는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급진적인 개혁을 따른 개신교 종파를 가리킨다. 이들은 유아세례뿐만 아니라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받은 세례도 무효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4] 역주 - 사형수의 사지와 척추를 철봉으로 부러뜨린 다음, 두 다리와 머리가 닿도록 바퀴에 묶은 후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놔두는 중세의 형벌.

[5] 독자들은 이 시기에 대한 자세한 사항을 「국가 - 역사에서 국가의 역할」이란 논문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저서 『상호부조론』의 3장 「야만인의 시대」와 4장 「중세의 도시」에서도 볼 수 있다.

[6] 1년에 몇 루블의 보험료로 여러분은 1,000루블까지 보상받을 수 있다. 도난당한 것이 무엇이든지, 보험에서는 아무 말 없이 도난물에 해당하는 보험금을 여러분에게 지불한다. “물론 도둑을 잡기 위해 경찰에 신고하시겠지요?” 우리가 직원에게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절대 아니죠. 전혀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보험사가 모든 비용을 지불하니까요.”

[7] 역주 - Scotland Yard. 영국 런던경찰국의 별칭.

[8] 역주 - 정치적인 사안과 관련된 수사, 검열 등을 주로 다루는 황제 직속의 비밀경찰로 1826년 만들어졌다.

[9] 역주 - 러시아서 ‘크레스티’는 ‘십자가’의 복수형이다. 이것은 옛 페테르부르그 감옥의 속칭으로, 십자가 모양의 건물에서 유래하였다.

[10] 영국, 미국, 그리고 여전히 스위스에서 민중이 국가적 사안에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이들 나라의 모든 작은 마을에, 작업장에, 나아가 큰 도시들에 ‘이와 발톱을 세워’ 자신의 인간적이며 개인적인 권리를 지키고 자신과 자신의 권리가 진흙탕에서 짓밟히지 않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굶주린 노동자들이 하이드 파크로 시위행진 하는 것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최근(1886년) 런던에서 떠들기 시작했을 때, 모든 언론이 목청을 높였다. “진정 1878년을(몇 년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잊었는가? 군중이 공원으로 가는 것을 경찰들이 막았던 때를. 군중들은 철제 울타리를 뽑아 그 끝으로 경찰들을 찔렀다. 우리 민중을 희롱해선 안 된다. 우리의 ‘서민’은 런던 전체를 부술 수 있다.” 아마 부술 수 있었을 것이다. 1886년 정부는 이것을 아주 잘 알았다고 덧붙일 수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자유는 싸워 성취해야 한다. ‘가장 높은 곳에서 하사한’ 헌법이 자유를 주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11] 역주 - 1799년에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은 나폴레옹은 1804년 5월 황제세습제를 발표하고 그 해 12월 2일 노트르담 사원에서 황제 대관식을 거행했다.

[12] 역주 - 페테르부르그로 연결되는 네바강 발원지에 위치한 러시아의 도시로, 슐리셀부르그 요새는 악명 높은 감옥이었다.

[13] 1871년의 파리코뮌을 예로 들어보겠다. 학자들도, 민중의 지도자들도, 심지어는 노동자 국제연합의 지도자들도 파리 민중에게 코뮌을 선포하라고 말하지 않았고, 독립도시에서(독립도시는 프랑스가 근본적이며 사회주의적인, 혹은 적어도 평등한, 공화국 이념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릴 의도가 없음을 선언한 바 있다.) 그러한 공화국의 실현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파리 민중에게 말하지 않았다. 이 이념은 1793년 이래 파리에서, 민중 속에 살아 있었다. 1848년에 프루동이 이 이념을 발전시켰다. 이념은 노동자들의 머릿속에 절반 정도 인식되어 - 절반은 감정적으로 절반은 생각으로 - 둥지를 틀게 되었다. 그리고 심지어 그들은 코뮌을 선언하였고, 그것은 대부분의 지도자들에겐 뜻밖의 일이었다. 그들은 국가로서의 프랑스에는 관심이 없으며, 그들은 사랑하는 도시 파리에서 새로운 것을 시작할 의도가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것은 1793년 동 프랑스의 여러 도시와 마을에서 지역의 로베스피에르와 마라(Jean Paul Marat)가 새로운 비봉건적 길로 나아갔던 것처럼, 아직 불분명하지만 새로운 사회주의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구체제의 관리들을 축출하였고, 무장하였으며, 공유 토지를 되찾고, 법령집을 소각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고, 파리의 블루칼라들, 노동자들은 도시의 군사 방어 조직을 구축하였고, 우편제도를 조직하였고(이에 대해 영국 특파원들이 감탄한 바 있다.), 공동취사를(불행하게도 마지막에 가서야)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평등사상과 코뮌 사상 이외에, 코뮌이 소유자들에게서 주택을 몰수하고, 코뮌이, 즉 노동자들이 모든 민중의 취사를, 그리고 이에 필요한 모든 것의 생산을 조직해야 함을 이 시기 파리 민중들이 어렴풋하게라도 인식하고 있었다면, 코뮌은 괴멸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코뮌은 35,000명이 아니라, 그보다 세배 더 많은 방위군을 확보할 수 있었고, 비스마르크(Bismarck)와 티에르(Thiers)도 코뮌을 군사적으로 처리하지 않았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당시 노동자들에게는 이런 생각이 없었다. 물론 자본계급, 심지어 중간계층 출신의 선명성이 뚜렷한 혁명가들에게서도 이런 것을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이렇게 파리 코뮌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사회혁명은 각 지역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4] 역주 -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1793년에 국민공회는 공화정을 선포한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의 자코뱅 파는 국민공회에서 혁명세력 중 하나인 지롱드 파를 숙청하고, 공안위원회를 중심으로 혁명정부를 수립한다. 결과적으로 로베스피에르는 많은 사람들을 단두대에서 처형하는 공포 정치를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공포정치가 계속되자 로베스피에르는 반대파에 의해 숙청되어 단두대에서 처형당한다. 이 사건이 혁명력 2년 테르미도르 9일에 일어났다고 하여 ‘테르미도르 반동’이라고 부른다.

[15] 또한 밀라노와 시칠리아에서도 그렇다.

[16] 역주 -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원주민(Matabele).

[17] 아프리카에서 영국인이 그리고 만주에서 러시아인이 자행한 학살로 이 목록이 늘어날 수도 있다.

[18] 알제리의 프랑스 교도부대가 그렇다. 그곳에서는 니콜라이의 사형집행자들이 꿈도 꾸지 못할 그런 전대미문의 만행이 자행되고 있다. 기아나에서 (공식적 통계에 따르면) 유형자들의 3분의 1이 매년 죽어나간다. 그곳으로 유형을 떠나는 것은 아나키스트들이다.

[19] 여기서 마지막으로 스페인 감옥에서 자행되는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고문에 대해 말해야 한다. 처음에 우리들은 그런 만행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다. 3일간의 구타, 나사 박힌 철모 씌우기, 손톱 뽑기 등.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이 처음으로 카노바스(Canovas) 장관을 살해하고, 지속적으로 여왕을 위협하고, 결국 여왕이 이 일에 개입했을 때, 그들은 명백한 사실과 의사의 증언 앞에 굴복해야 했다. 그 후에 여론이 비등하였고, 고문당한 자들 중에서 몇몇이 석방되었다. 고문당한 후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사람들은 지금 모두 자유의 몸이 되었다. 고문당한 사람들 중의 몇몇은 런던에 우리와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