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저희는 흥미롭고도 동시에 위험한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당당하게 반자본주의 미래를 외치는 활력 넘치는 새로운 운동이 일반 정치권에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 전역에서 반동이 세력을 넓히고, 자본주의의 가장 적나라한 형태인 신자유주의는 만연해 있습니다. (이 글은 원래 2001년에 썼는데, 세상은 여전하군요!)
이런 와중에 우리는 반동에 맞서 '단결'해야 한다는 의견과 서로의 정치적 견해를 비난하는 것은 '파벌주의'라는 지적도 이해할 만합니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은 이러한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단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동시에 적극적으로 다른 활동가의 정치적 견해와 활동을 교묘하게 비판하니, 당연히 의심스러운 일입니다. [1] 이런 식으로 우리 사이 견해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흔히 목적의식 없는 운동과 자각 없는 행동으로 이어질 뿐이며, 궁극적으로 자유와 평등을 위한 투쟁을 약화합니다.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역사의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모순되게도, '노동계급의 기록기관'으로서 자기 세력의 중요성과 '이론의 정립'의 시급함과 '역사 공부'의 필요를 가장 적극적으로 강조하는 이들이 '단결'을 가장 열심히 주장하곤 합니다. 별로 놀랍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볼셰비키나 다름없는 세력이야말로 자기 선구자의 주장과 활동이 자유의지주의 변혁을 제시하는 이의 손에 재발견된다면 숨겨야 하는 과거와 잃을 것이 가장 많은 쪽이기 때문입니다.
대중은 자신만의 대안을 만들어가고 있고, 더 많은 이들은 아직 대안을 찾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 이바지하고자 우리도 이 소책자를 씁니다. 누군가는 이 소책자를 무의미하거나 파벌주의적 시도라고 치부할지도 모릅니다. 자기들만 손해 보라죠. 바라건대, 앞으로의 운동이 과거의 실패를 이해하고 반복하기를 거부함으로써 희망차고 건설적이며 진정으로 반자본주의적인 운동을 만들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데 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반자본주의 운동이 등장했을 때, 옛 좌파는 당황했습니다. 런던에서 개최된 J18, 즉 '자본주의에 맞선 카니발(Carnival Against Capitalism)' 행사에서 전통 '혁명 정당'의 모습은 코빼기도 볼 수 없었습니다. 미국 시애틀(Seatle)에서 일어난 여러 시위 또한 '전위' 세력이 대비하지 못한 순간에 일어났습니다. 이 전위 세력들은 뒤늦게 흐름에 합류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참고로 거의 모든 혁명과 대중 운동에서도 그래왔습니다.
과연 이 전위 세력들은 대중에게서 배우고 대중과 동등한 위치에서 운동의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운동에 합세하는 것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 노동자당(Socialist Workers Party, SWP)을 살펴보면, 현실은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정당의 주요 인물인 크리스 뱀베리(Chris Bamberry)는 정당의 목표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반자본주의 운동의 형태와 방향을 어떻게 지도하는지는 SWP에게 내려진 시험이다." 또 다른 인물인 줄리 워터슨(Julie Waterson)은 자신들이 이 운동에서 얻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고백합니다. 바로 '볼셰비키 간부 집단(a cadre of Bolsheviks)'입니다.
SWP와 그 밖의 여러 '혁명 정당'이 볼셰비키의 역사를 재현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볼셰비즘은 무엇인가?"와 "과연 반자본주의적인가?"라는 질문이 뒤따릅니다. 답하려면 먼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이해해야 하며, 다음 볼셰비즘 지도자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논해야 합니다.
일부에게 자본주의란 '시장'이나 '사유재산'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됐습니다. 아나키스트의 오랜 주장처럼, 자본주의는 임금노동이라는 구체적인 사회관계로 정의됩니다. 자본주의는 자기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다수의 대중으로 특징지을 수 있으며, 따라서 "노동자는 일정한 기간 동안 자신의 인격과 자유를 판매,”해야 하며, 그 결과 “노동자는 일정한 기간만 계약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노동자에게 주어진 권리는 오직 고용주를 떠날 권리뿐이기에, 일종의 자발적이고 일시적인 농노제를 형성,”합니다. [2] 때문에 아나키스트들은 자본주의를 '임금 노예제'라고 불러왔습니다.
고용 계약 덕분에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에 명령과 복종의 관계가 반드시 생깁니다. 노동자가 단순히 자기 노동력을 팔 때, 실제로 그녀[sic]는 자기 신체를 조종할 권리와 자기 자신을 팔고 있는 것입니다. 노동자는 복종하라고 임금을 받습니다. 임금 노예제가 착취의 결과가 아니라, 노동자의 종속에서 착취가 비롯됨을 의미합니다. 군주가 된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하며, 그 결과 착취 행위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아나키스트 프루동이 『소유란 무엇인가?』에서 소유를 '도둑질'이자 '독재'라고 주장한 이유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핵심은 임금노동입니다. 생산수단이 생산자가 아닌 다른 집단에 의해 관리된다면, 이는 소유주가 누구인지와 무관하게 자본주의입니다. 생산관계가 혁명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생산수단이 예를 들어 사적 소유에서 국가 소유로 주인을 바꾼다 하더라도, 사회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법과 형식상 재산을 어떻게 취급하던 간에, 노동자가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고 생산수단을 직접 관리하지 못한다면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볼셰비키는 러시아에서 무엇을 이룩하고자 했을까요? '국가자본주의'라고 레닌은 분명히 밝혔습니다. 레닌은 볼셰비키가 권력을 쥐기 전과 쥔 후에도 계속해서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예컨대 1917년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진정으로 혁명적이고 민주적인 국가가 탄생한다면, 국가독점자본주의는 필연적이고 불가피하게 사회주의를 향한 한 걸음, 아니 그 이상의 여러 걸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사회주의란 국가자본주의적 독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에 불과하다…. 사회주의란 전체 인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도록 만들어진 국가자본주의적 독점이며, 그만큼 자본주의적 독점과 다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3]
볼셰비키에게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길은 국가자본주의라는 지형을 통과하는 것이었고, 실제로는 자본주의적 자원의 분배와 산업 제도 위에 그대로 증축했습니다. 레닌의 말에 따르면, "현대 국가는 은행과 노동조합과 극도로 유사한 기구를 보유했으며, 이를 통해 방대한 회계와 사무적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이 기구는 파괴되어서도, 파괴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자본가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와야 한다.” 그 기구는 “프롤레타리아 소비에트에 종속되어야” 하며, “더 포괄적으로 되도록 확장되고 전국으로 확산해야 한다.” 따라서 볼셰비키는 “노동을 조직할 새로운 형태를 발명할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로부터 이미 완성된 형태를 받아들일 것”이며, “선진국들이 제공한 최상의 형태를 차용”해야 함을 의미했습니다. [4]
권력을 장악한 이후, 레닌은 독점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제도들 위에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이상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 이상은 우연히 채택된 것도, 대안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한 역사가가 지적하듯이, “소비에트 집권 시작 후 몇 달 동안 [공장] 위원회 지도자들은 세 차례에 걸쳐 [노동자가 경제를 자주관리하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다. 그러나 매번 당 지도부가 이를 뒤집었다. 볼셰비키의 대안은 관리 권한과 통제 권한 전부를 중앙 당국이 설립하고 자신에게 종속시킨 국가 기관에 부여하는 것이었다.”[5]
아래로부터의 노동계급 자기조직에 사회주의 재건을 기반 두기보다는, 볼셰비키는 차르 정부가 1915년과 1916년에 만든 중앙 기관을 토대로 “‘통일된 행정’을 위로부터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6] '사회주의'를 향한 전환에 자본주의의 제도와 틀이 유일한 것과 다름없는 수단으로 활용됐습니다.
레닌은 “대형 은행 없이는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은행이야말로 “사회주의를 실현에 있어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국가기관’이며, 우리는 이를 자본주의가 완성한 상태 그대로 물려받을 것이다. 우리의 과제는 이 훌륭한 기관을 자본주의적 요소로 오염하는 원인을 잘라내고, 그것을 더욱 크게, 더욱 민주적으로, 더욱 포괄적으로 만드는 것뿐이다.” “하나의 단일 국가은행, 그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은행은…. 사회주의적 기구의 9할에 해당할 것이다. 이것은 전국적인 장부 정리와 생산 및 분배의 회계 기반이 될 것이다.” 비록 이것이 “자본주의하에서는 완전한 국가기구는 아니지만”, “우리 손에 들어와, 사회주의하에서는 마침내 그렇게 될 것이다.” 레닌에게 사회주의 건설은 쉬운 일이었습니다. 이 “사회주의적 기구의 9할”은 “하나의 선포, 단 한 번의 조치로”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7]
이제 레닌이 노동자가 일터를 통제하는 이른바 '노동자 자치'를 옹호했다는 주장을 설명하겠습니다. 이는 사실이지만, 매우 국한된 의미에서의 '노동자 자치'였습니다. 레닌은 '노동자 자치'를 노동자가 생산을 직접 관리·감독하는 것이 아닌, 관리감독을 하는 이들을 노동자 아래 둔다는 의미에서 '자치'라고 여겼습니다. 이는 단순히 “전국적이고, 포괄적이며, 항상 존재하고, 가장 정확하고 가장 성실한 생산 및 재화 분배에 대한 회계”를 의미했습니다. 다시 말해, 생산을 관리하는 자본가는 계속해서 존재하나, 단지 이들을 '감독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 현상은 “사회주의를 향한 두 번째 단계, 즉 노동자에 의한 생산 통제"로 이어진다는 주장이었습니다. [8]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런 '노동자 자치'는 언제나 국가주의적 맥락에서 다뤄졌습니다. 1917년 5월, 레닌은 “모든 은행을 국가의 통제 아래 두고, 이들 모두를 하나의 중앙은행으로 통합하는 것, 나아가 보험 사업과 기타 대규모 자본가 연합체까지 국가의 통제 아래 놓을 것"을 주장했습니다. 레닌은 그해 말에도 이 논리를 재차 강조하며, “새로운 통제 수단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군사-제국주의 단계의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것”이므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로부터 무기를 취할 뿐, 그것을 ‘무(無)에서 발명’하거나 ‘창조’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습니다. [9] 따라서 '노동자 자치' 행사는 노동자 조직이 아닌 국가자본주의 제도의 몫이었습니다.
권력을 장악한 이후, 볼셰비키는 자신만의 노동자 자치를 실행에 옮겼고, 다른 대안을 공격했습니다. 한 철도 위원회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러시아에서 무언가가 '아나키즘적 생디칼리즘적'이라는 비난은 늘 반(反)노동 우익에서 나오게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볼셰비키 권력의 대표들이 이제 비슷한 비난에 가담하고 있다니,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10] 각 공장 위원회는 서로 연합하려 시도했으나, 방해 끝에 노동조합과 통합돼 국가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됐습니다.
얼마 안 가 레닌은 이 축소된 규모의 노동자 자치에마저 등을 돌려 '1인 관리' 제도로 관심을 틀었습니다. 이는 국가가 임명한 "개별 경영인에게 독재할 권한 또는 '무제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사회주의의 토대"인 대규모 산업은 “수천 명이 한 사람의 의지에 복종하는 것”을 요구하며, 따라서 혁명은 “노동을 지휘하는 한 명의 단일한 의지에 인민은 '의문을 품지 않고' 복종해야만 한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레닌이 말한 “우월한 형태의 노동 규율”이란 단지 극도로 발달한 자본주의일 뿐입니다.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의 역할은 전과 같았지만, 한 가지 새로운 요소가 추가됐습니다. 바로 “노동자는 소비에트 정부의 개별 대표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할 것"이었습니다. [11]
이러한 임금 노예제는 동시에 자본주의적 관리 기법과 결합해 내세워졌습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도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성과급제를 현실에서 시험해 도입 여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테일러 제도에서 과학적이고 진보적인 요소를 추출하는 것과 임금이 생산된 총 재화중량에 상응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12] 노동자가 생산 현장에서 쥔 집단교섭의 힘을 해체하기 위해 고안되고 사용된 기법들을 당이 강요할 때는 어째서인지 “중립적인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누군가는 우리의 분석을 두고 1918년 5월 말에 발발하여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사회를 한계까지 내몬 내전을 논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제기할 것입니다. 오늘날 볼셰비즘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 사건을 볼셰비키의 행적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근거로 제기합니다. 합당한 주장입니다. 우리가 내전을 논하지 않은 이유는 본문에서 다룬 정책은 전부 내전 이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시작도 안 한 사건을 볼셰비키의 국가자본주의 정책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내전의 발발은 이러한 정책을 단지 가속했을 뿐입니다. 자본가를 '노동자 자치' 아래 두려던 계획이 수포가 되고 동시에 노동자의 압박과 반발이 거세지자, 볼셰비키는 양 계급 모두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자 대규모 산업을 국유화했습니다. 그러나 “1인 관리”에 기반한 사회주의 이상은 계속됐으며 트로츠키는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약 내전이 우리 경제의 가장 강하고 독립적이고 주도적인 요소를 모두 약탈해 앗아가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경제 정책의 영역에서 훨씬 더 이르고 훨씬 덜 고통스럽게 1인 관리 체제의 길로 들어섰을 것이다.” [13] 실제로 “'전시 공산주의' 경제의 정점은 내전이 사실상 끝난 이후에 나타났는데,” 이는 “1920년 초에 공산당 지도부가 더 이상 [내전으로] 사고와 노력을 노동 정책의 구상과 실행에서 관심을 분산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4] 그해 말, 공장의 거의 90%가 1인 관리 체제에 놓였습니다.
트로츠키는 나아가 자신이 생각하는 “새 사회”의 “노동 조직”을 구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1인 관리자” 아래 “노동의 군사화”에 기반했으며, “국가의 인구 전부를 필요한 노동력의 저장고로 취급”했으며, 노동조합에는 “노동자를 규율하고, 노동자에게 생산의 요구를 노동자 개인의 필요보다 우선시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라는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이는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원칙과 실천의 관점 전반에서 올바른 것”이었습니다. [15] 전폭적인 당 지도부의 지지를 받아, 트로츠키는 1920년 9월 철도 노동자에게 이 구상을 적용했습니다. 그의 하향식 통치는 1920~1921년 겨울에 철도망이 참담하게 붕괴하는 데 이바지했습니다. 노동 계급의 항의가 점점 거세지자, 당 지도부는 1920년 11월 “노동의 군사화”의 뜻을 접고 거리를 뒀습니다.
요약하자면, 볼셰비키 전통은 자본주의의 조직 구조를 활용하고 그것을 더 크고 중앙으로 집중시키는 데 기초하고 있으며, 사회주의 구조로 새로운 대안을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볼셰비키는 테일러주의 같은 관리 기법과 '1인 관리' 같은 관리 구조를 계속해서 사용했습니다. 유일한 차이는 생산수단과 생산수단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윤이 국가 소유가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이 주장했듯이, 이는 실질적인 차이가 아닙니다.
산업 국유화는 노동자를 개별 자본가의 손에서 떼어내어, 더욱 탐욕스러운 단 하나의 자본가 지배자, 즉 국가의 손에 넘겨주었다. 노동자와 이 새로운 지배자 사이의 관계는 이전의 노동과 자본의 관계와 동일했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공산주의 지배자인 국가가 노동자를 착취할 뿐만 아니라 직접 처벌까지 한다는 사실이었다. (…) 임금노동은 국가에 대한 의무라는 성격을 띠게 되었을 뿐, 이전과 변함없었다. (…) 이로써 단순히 사적 자본주의를 국가 자본주의로 대체하는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분명하다.”[16]
반자본주의 운동은 대부분 비자본주의적이며 탈중앙적이며 다양성에 기반한 사회를 적정한 기술과 규모로 이루는 이상을 품었지만, 볼셰비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볼셰비즘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문제는 오히려 자본주의의 제도가 충분히 중앙에 집중되지 않고 아주 크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그 때문에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모든 시민은 국가의 고용된 직원으로 전환된다…. 모든 시민은 단일하고 전국적인 국가 ‘조합’의 직원이자 노동자가 된다…. 사회 전체는 노동과 임금의 평등이 실현된 하나의 사무실이자 하나의 공장이 될 것이다.” [17]
엥겔스가 아나키스트에게 공장은 복종과 권위와 자유의 부재, 그리고 “모든 사회 조직과는 독립적인 진정한 전제정치”를 필요로 한다고 반박했던 점을 고려하면, 레닌이 세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공장으로 만들겠다는 발상은 극도로 섬뜩한 의도를 드러냅니다. [18] 아나키스트 알렉산더 버크먼(Alexander Berkman)은 1927년에 다음과 같이 정확히 지적했습니다.
“혁명에서 산업의 분권화가 차지하는 역할은 불행히도 지나치게 과소평가되고 있다…. 대부분의 대중은 중앙집중이 ‘더 효율적이고 더 경제적’이라는 마르크스주의 교리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다. 대중은 이러한, 이른바 ‘경제성’이 노동자의 팔다리와 생명을 대가로 얻어진다는 사실, ‘효율성’이 그를 단순한 산업의 톱니바퀴로 전락시키고 그의 영혼을 무디게 하며 그의 육체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나아가 중앙집중 체제에서는 산업의 관리가 점점 더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산업의 지배자로 이루어진 강력한 관료제를 낳게 된다. 이것이 혁명의 목표라면 결과는 모순되게도 새로운 지배계급의 창출이 될 것이다.” [19]
볼셰비즘이 자본주의적 사상에 깊이 물들었다는 사실은 레닌의 말에서도 드러납니다. “개별 사업체가 하나의 조합으로 합병될 때, 엄청난 규모의 경제가 탄생함은 경제학이 증명하는 사실이다.” [20] 그렇습니다. 레닌의 말은 자본주의적 효율성과 경제성의 정의에 기반한 자본주의 경제학입니다! 볼셰비즘이 중앙집중적이고 대규모 산업을 더 '효율적'이고 더 '경제적'이라는 이유를 토대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볼셰비즘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 동일한 우선순위를 두고 있음을 의미할 뿐입니다. 이는 러시아가 선진 자본주의 국가로부터 배워야 하며, 생산을 발전시키는 방법은 자본주의적 '합리화'와 관리 방식을 채택하는 것뿐이라고 했던 레닌의 생각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는 다른 우선순위를 가질 수 있고, 생산을 조직하는 데 서로 다른 방법이 필요하며, 경제 구조를 두고 다른 이상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볼셰비즘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레닌은 부르주아 경제 권력의 제도와 산업 구조와 자본주의 기술과 기법을 '장악'하여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수단과 조직은 오직 자본주의적 결과만을 낳을 수 있습니다.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점은, 레닌 아래 지지받고 실행되었던 '1인 관리'와 성과급과 테일러주의 등이 훗날 레닌의 추종자가 스탈린주의로 인한 폐해와 스탈린주의의 반사회주의적 성향을 입증하는 증거로 열거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볼셰비키 정책이 혁명이 전개되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러나 사회주의를 이루는 다른 이상도 존재합니다. 이 대안적 이상은 당시 러시아에도 존재했으며, 볼셰비키는 국가 권력을 통해 이를 짓밟아야만 했습니다. 이 대안의 주요한 옹호 세력은 아나키즘이었습니다.
러시아 혁명 동안 이 이상의 일부는 실제로 구현됐습니다. 레닌이 자신만의 '노동자 자치'를 주장할 때, 러시아 전역의 노동자는 공장위원회를 만들고 각 위원회를 연합체로 조직했으며, 회의를 통해 생산을 노동자 자주관리라는 발상을 제기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마흐노주의 아나키스트 반군이 백군과 적군의 독재에 맞서 자유 소비에트와 노동자와 농민 자주관리를 위해 싸웠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공장위원회는 힘을 잃고 아나키스트는 탄압당했으며, 마흐노주의자는 배신당한 끝에 레닌의 국가자본주의가 승리했습니다.
21세기의 문턱에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볼셰비즘의 국가자본주의를 거부하고, 노동계급의 투쟁과 자기조직화와 연대와 직접행동과 자기해방에 뿌리를 둔 진정한 반자본주의를 선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낡은 주인을 새로운 주인으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 반자본주의 말입니다.
[1] See, for example, the leaflet "The SWP’s very peculiar anarchism" in reply to Pat Stack’s article "Anarchy in the UK?" in Socialist Review available at http://struggle.ws/pdf/leaflets.html
[2] Bakunin, The Political Philosophy of Bakunin, p. 187
[3] Lenin, Selected Works, Vol. 2, p. 211
[4] Ibid., p. 365 and p. 369
[5] Thomas F. Remington, Building Socialism in Bolshevik Russia, p. 38
[6] Maurice Brinton, The Bolsheviks and Workers’ Control, p. 36
[7] Lenin, Selected Works, Vol. 2, p. 365
[8] Ibid., pp. 364-5 and p. 366
[9] Ibid., p. 112, p. 367 and p. 599
[10] quoted, Daniel H. Kaiser (ed.), The Workers’ Revolution in Russia, 1917 , pp. 116-7
[11] Lenin, Op. Cit., p. 610, p. 611, p. 612
[12] Ibid., pp. 602-3
[13] quoted by M. Brinton, Op. Cit., pp. 66-7
[14] J. Aves, Workers Against Lenin, p. 17
[15] quoted by M. Brinton, Op. Cit., p. 66
[16] Peter Arshinov, History of the Makhnovist Movement, p. 71
[17] Lenin, Ibid., p. 312
[18] Marx-Engels Reader, p. 731
[19] The ABC of Anarchism, pp. 80-1
[20] Lenin, Op. Cit., p.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