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아니 나는 우리만 이러다 망한 줄 알았지
Subtitle: 바딤 다미예 동지의 <20세기의 아나키즘적 조합주의> 한국어판의 역자 서문
Date: 2021.01.03
Source: <20세기의 아나키즘적 조합주의>, 바딤 다미예, 아연북스, 2021

조선 땅의 아나키즘 운동은 망했다. 내가 사회운동이라는 것에 관심을 두었을 때에는 이미 망해있었고, 그로부터 15년가량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금이라도 덜 망할 낌새를 보이지 않는다. 아나키스트 조직을 찾아 헤매어 본 적은 많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노동현장을 조직하고, 대중을 조직하고, 그 조직의 투쟁을 만드는 것이었지,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를 추모하거나 펑크밴드를 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냥 나에게 선택 가능한 아나키즘 운동은 없었다.


한반도의 아나키즘 운동이 망한 것은, 분명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유럽 어딘가에서는 봉건영주들이 자기 영지를 국가/준국가로 만들면서 “지방”이 형성되던 무렵, 그 “지방국가”들의 연합을 통해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던 10세기 무렵 중앙집권 단일국가를 만든 곳. 국가의 주권과 영주의 영주권중 무엇이 앞서냐 놓고 백년간 전쟁을 벌이던 무렵, 자연스럽게 국가가 지방관을 파견하고 주민등록을 실시한 곳. 중앙집중 민족국가의 이상향인 한반도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식민지 시대에는 민족해방운동에 치이고, 해방이 되고 나니 냉전의 한복판이라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해보자. 민족해방의 이데올로기로서 아나키즘을 이야기하기에는, 500만 붉은 군대를 등에 업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겠다 이야기할 수 있는 스탈린주의자들을 이길 도리가 없었지 않겠는가. 냉전의 최전선이자 냉전이 열전이 되었던 현장, 시장자본주의와 국가자본주의의 국경선인 땅에서 모든 인민들에게 주어진 것은 볼셰비즘이냐 매카시즘이냐의 극한의 선택지뿐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망한 것은 그렇다 치고, 문제는 어쩌다 망했는가,라고 하겠다. 조선 아나키즘운동은 그 최대 규모에 비해 너무 깔끔하게 폭발했다. 혹은, 굴복했다. 북만주 일대에 자유코뮌(비슷한 것)을 만들었던 마적떼 두령, 코리안 마흐노 김좌진은 공산주의자들과의 헤게모니 투쟁 과정에서 죽었다. 그리고 그는 한국에서 반공주의의 상징이 되었고, 그의 아들 김두한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코리안 핑커튼이 되어 백색테러를 일삼는 정치깡패가 되었다. “지나땅에서 십만 공인을 이끌”었다던 조선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의 거두 단주 유림은, 조선 민족의 해방을 위해 임시정부에 합류했고, 해방 후 귀국 인터뷰에서 “나는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라 유정부주의자”라고 밝혔고, 조선인 아나키스트들의 역량을 한 데 모아 독립노농당을 건설하여 선거운동에 나섰다. 참으로 깔끔하게, 민족주의에 굴복하고, 국가주의에 항복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합류했다.


진짜로. 나는 우리만 이러다 망한 건줄 알았다. 민족주의/국가주의에 야합하는 것이 한민족의 특질같은 것이면 어쩔까 걱정했다. 한국 땅에서 아나키즘을 하는 것이 그냥 돌연변이 같은 것으로 끝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리고 바딤 다미예 동지의 <20세기의 아나키즘적 조합주의>를 읽었다. 아아, 안심했다. 그냥 전부 다 이러다 망했구나.


먼 땅에서 아나키즘이라는 것을 바라보다보면, 어렴풋이 스페인 혁명과 그 안에서 CNT-FAI가 진행한 사회의 재조직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된다. 우리 CNT-FAI는 아름다운 사회혁명을 집행했고, 공화국 부르주아지들과 모스크바의 붉은 차르가 뒤통수를 치지 않았다면, 자유 코뮌의 자유로운 연방으로 재조직된 이베리아 반도를, 나아가 자유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환상 뒤에 가려진, 어찌보면 절망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CNT의 지도부들은 국가와 의회라는 편안한 길에 투항했다. FAI의 구성원들은 파시스트들을 물리치는 것이 ‘개인’과 ‘노동계급’의 해방보다 더 큰 대의라고 여기고, 그 ‘대의’에 우선적으로 복무했다. 노소트로스의 구성원으로서 그 누구보다 원칙적이고 투쟁적인 목소리를 내던 가르시아 올리베르는 공화국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 되었고, 그 순간부터 갑작스레 스페인 공화국이라는 부르주아 국가의 수호자가 되었다.


국가 권력을 이용한다는 편안한 길에 빠지는 것은, 더 큰 대의 앞에 자신의 목소리를 포기하는 것은, 어찌보면 조선 아나키스트들의 숙명이었던 것이 아니라, 사회혁명의 가장 좌익에, 가장 급진적인 곳에 존재해야만 하는 아나키스트들의 숙명이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나는 그 오류와 실책들 속에서 아나키즘을 지속할 희망을 본다. 프랑스와 독일의 혁명적 조합주의자들은 정치적 중립성의 환상에 빠져 1차대전에 찬성했다. 프랑스의 CGT도, 스페인의 CNT도 규모가 가져다주는 IWA 내부에서의 헤게모니에 취해 노동자의 단결보다 조직의 이익을 선택했다. 스페인 내전 당시 CNT-FAI가 범했던 오류와 실책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나키즘은, 아나키즘적 조합주의는 아직 존재한다. 스스로 저지른 오류들로 조직이 반토막나는 일을 겪더라도, 반복된 실책으로 노동자의 국제연대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더라도, 다시금 조직을 세워내 왔다.


그리고 이것은, 자본주의와 국가가 만들어내는 억압의 체제를 무너트리고, 모든 인민대중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노동자가 자기 노동의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그 세상을 건설하는 것을 누군가 주인님의 지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으로부터 시작하겠다는 것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테제이기 때문이리라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우리는 여전히 아나키스트다. 아나키스트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운동이 무시당하고, 비웃음을 사고, 오해받고, 비난당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건설하는 조직이 분열하고, 무너지고, 좌절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어떠한 오류와 실책을 범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다시 일어나 아나키스트로서 활동하고, 조직을 건설하고, 대중의 투쟁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이러한 영감을 줄 수 있는 역작을 번역할 기회를 제공해준 바딤 다미예 동지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