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글은 엠마 골드만이 1910년 『아나키즘과 그 외 에세이들Anarchism and Other Essays』이라는 제목으로 펴낸 책에 실린 에세이다.

한국어 번역은 『저주받은 아나키즘』(김시완 역, 우물이있는집, 2001)이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나 현재는 절판되었다.

엠마 골드만의 에세이들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별도로 하나의 문건으로 취급하게 되어 여기서는 〈여성 매춘〉만을 옮긴다.


우리의 개혁자들이 갑자기 발견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백인 노예 매매the white slave traffic이다. 신문들은 “처음 접하게 된 이 상황”을 지면에 대서특필했으며 법률가들은 이런 무서운 사건을 막기 위한 법조문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

대중이 엄청난 사회적 비리에 무관심할 때마다 외설과 도박과 술집을 비난하는 바람이 분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런 비난 열풍의 결과는 무엇인가? 도박은 증가하고, 술집은 뒷문을 열어놓고 더 번성하고, 매춘은 최고조에 달하고 포주들의 활동 체계는 더욱 은밀하게 강화된다.

아이들도 다 아는 제도가 새삼스럽게 발견되었다니 어찌된 일인가? 모든 사회학자들이 다 아는 악이 이제 중요한 이슈가 되다니 어찌된 일인가?

최근에 진행된 백인 노예 매매 조사(아주 피상적인 조사에 불과하지만)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면 이 말 자체가 우스운 말이다. 매춘은 과거부터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던 현상이다. 인간은 이 일을 계속 해왔고 매춘으로 인한 희생자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했다. 마치 우리의 산업체제에 대해 사람들이 전혀 관심이 없듯이 경제활동으로서의 매춘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다.

인간의 슬픔이 알록달록한 색깔을 띤 장난감처럼 돌변한다면 잠시나마 그 슬픔에 관심을 가질까. 사람들은 너무나 변덕스러운 아이와 같아 매일 새로운 장난감을 안겨줘야 할 형편이다. 백인 노예 매매에 반대한 의로운 외침도 장난감에 불과하다. 이 외침이 잠시 동안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이와 관련된 정치적 직업들이 넉넉하게 창출된다. 즉 이런 현상과 관련해 곁다리로 붙어사는 기생충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조사관, 검사, 형사 등이 나서서 설치게 되는 것이다.

백인 노예 매매는 주로 여성 인신매매다. 이 여성 인신매매의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물론 여기에는 백인 여성만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황인종 여성과 흑인 여성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당연히 착취이다. 자본주의가 무자비하게 강요하는 희생이다. 이 희생 위에 자본주의는 살찐다. 이렇게 수많은 여성들과 소녀들이 매춘으로 내몰린다. 워렌(Warren) 여사는 매춘 소녀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왜 이 구석진 방에 처박혀 일주일에 몇 푼 받지도 못하면서 하루에 8시간씩 이런 짓거리를 하며 인생을 소모하느냐?”

당연히 우리 개혁자들도 이런 물음에 대해 할 말이 없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기는 종교적 위선자들의 입장에서는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기보다는 도덕적인 체 하면서 도덕을 유린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젊은 작가인 카우프만(Reginald Wright Kauffman)은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려고 했다. 그의 저서 『속박의 집The House of Bondage』은 여성 인신매매라는 사회악을 진지하게 파헤친 최초의 시도였다. 그는 감상적인 입장에서 접근하지 않았다.

경험이 많은 기자인 카우프만은 우리의 산업체제가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매춘 외의 대안이 없게 만들고 있음을 입증했다. 『속박의 집』에서 묘사된 여성들은 노동계층에 속한다. 저자가 매춘 외의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다루었더라도 똑같은 결론에 직면했을 것이다.

그 어디에서도 여성은 적성과 능력에 따라 대접받지 못했다. 단지 성적 대상이었다. 따라서 여성은 성적인 매력을 발해야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고, 자기 직업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여성이 결혼을 했든 안 했든 한 남자나 여러 남자에게 몸을 파는 것은 당연하고 정도만 다를 뿐이다. 우리 개혁자들의 의견을 인정하든 안 하든 이렇게 여성이 매춘을 하게 되는 원인은 여성이 사회적 · 경제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뉴욕에서 조사된 사실이다. 이 사실은 선량한 보통 사람들에게 충격적이다. 여성 열 명 중 한 명이 공장에서 일을 한다. 그 평균 임금은 일주일에 48시간 내지 60시간 일하면서 6달러를 받는다. 그리고 다수의 여성 임금 노동자들은 일 년 중 몇 달은 일이 없어 놀아야 한다. 그 결과 연간 평균 임금은 280달러 정도가 된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비참한 상황에서 매춘과 백인 노예 인신매매가 성행하게 되었다.

위의 수치가 과장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매춘에 관한 권위 있는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자.

“여성 착취의 주된 이유는 여러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 여성이 타락하기 전에 어떤 고용상태에 있었는지, 임금은 얼마나 되는지도 중요한 변수이다. 정치경제학자들 입장에서 볼 때, 고용주들이 사업이 힘들다는 핑계로 임금을 적게 주는데 이를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인지가 문제다. 임금은 적게 주면서도 사악한 사회경제 시스템 때문에 막대한 세금이 대중들에게 부과되고 있다. 많은 경우 정직한 노동에 대한 불충분한 보상 때문에 직접적으로 이런 결과가 생긴다.”[1]

현재의 개혁론자들은 생어(Sanger) 박사의 저서에 주목해야 한다. 그의 저서에는 2천 개의 사례를 관찰한 기록이 담겨있다. 그 사례 중 안정적이고 쾌적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중산층이 매춘부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다수 사례는 노동자 출신의 소녀들과 여성들이다. 일부는 순전히 원해서, 일부는 가정에서 학대받는 삶 때문에, 또 일부는 신체적 불구 때문에 매춘으로 내몰렸다. 2천 명 중 490명만이 순결과 도덕을 유지하며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산다. 결혼에 있어서 “안전과 순결”은 결코 많이 보장되지 않는다.[2]

『19세기의 매춘Prostitution in the Nineteenth Century』에서 알프레드 블라스코(Alfred Blaschko) 박사는 매춘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경제적 여건을 보다 더 강조했다.

“모든 시대에 매춘이 존재했지만 특히 19세기에 매춘이 본격적인 사회 제도로 발전했다. 대도시가 성장하고 인구가 밀집되었다. 고용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에서 대중들이 매춘시장에 경쟁적으로 참여하여 매춘은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한 것이다. 매춘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매춘의 경제적 원인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 하벨록 엘리스(Havelock Ellis)도 경제적 궁핍이 매춘의 직간접적 원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알아낸 사실은 매춘부의 상당수가 하층민에서 충원된다는 점이다. 물론 하층민은 상대적으로 보살핌을 못 받고 불안한 삶을 가족애와 기쁨에 동참할 수 없는 처지가 매춘이라는 환락에 빠져들게 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천한 대우를 받는 하녀는 전혀 자기 권리라는 게 없고, 여주인의 변덕에 시달림을 받으며 살다보면 여공이나 가게 여점원처럼 매춘에서 탈출구를 찾게 된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의 “선량하고 존경스러운 사람들”, 특히 기독교도 신사들이 매춘에 대해 분개한다는 사실이다. 매춘에 반대하는 운동이 있으면 항상 이들이 전면에 나선다. 그런데 이들은 과연 종교의 역사, 특히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가? 매춘과 관련하여 교회가 과거에 자행한 행위를 현 세대에게 숨기고 싶어 저렇게 나서는 것인가? 그 이유야 무엇이든 저들은 오늘날 이 불행한 여성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좀 배웠다는 사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매춘이 종교적 기원을 갖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종교적으로 매춘은 부끄러운 짓이 아니라 하나의 미덕으로서 신들의 환호에 의해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매춘의 기원은 주로 종교적 관습에서 발견된다. 사회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는 종교는 조금 변형된 형태로 전반적인 사회생활에 통용되었던 원시적 자유를 보존하고 있다. 가장 전형적인 예가 기원전 5세기에 밀리타Mylitta 사원, 바빌로니아 비너스에서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가 기록한 것이다. 여성은 여신에게 경배하기 위해 평생에 한 번은 이 사원으로 와 자기 무릎에 맨 먼저 동전을 던지는 낯선 남자에게 몸을 바쳐야했다. 이와 유사한 풍습이 서이사아와 북아프리카, 사이프러스, 동지중해의 여러 섬들 그리고 그리스에도 있었다. 코린토스Corinth 성채 위에 서 있는 아프로디테 사원에는 여신에게 예배하기 위해 바쳐진 일천 개 이상의 동전들이 쌓여 있었다.

일반적인 법칙으로서, 인간의 생식활동이 자연의 비옥함을 촉진시키는 신비하고 신성한 영향력을 갖추었다는 종교적인 믿음이 종교 매춘을 발전시켰다는 이론은 권위 있는 학자에 의해 주장되었다. 매춘이 성직자들의 영향 하에 조직화된 하나의 제도로 정착하게 되자 종교적 매춘은 공익적 측면으로 발전했다. 즉 대중의 수입을 증대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다.

기독교가 정치권력을 잡았지만 정책상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고위 신부들은 매춘을 허용했다. 시의 보호를 받은 매음굴들이 13세기에 발달하였다. 매음굴은 일종의 공공서비스였다. 매음굴 관리자는 거의 공무원으로 인식되었다.”[3]

이에 덧붙여 생어 박사의 저작에 담긴 내용을 살펴보자.

“교황 클레멘스 2세(Clement Ⅱ)는 매춘부가 일정액을 교회에 바치면 매춘 일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교황 교서를 발표했다.

교황 식스토 4세(Sixtus Ⅳ)는 보다 현실적이었다. 자신이 직접 지은 한 매음굴에서 금화 2만 냥의 수입을 거두어들였다.”

현대에 와서 로마 가톨릭 교회는 보다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교회가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매춘부에게 헌금을 요구하지는 않고 있다. 교회 측에서는 부동산에 더 탐을 내고 있다. 예를 들어 트리니티 교회 같은 곳은 아주 위험한 건물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매춘계에서 은퇴했거나 매춘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빌려주었다.

중세의 이집트와 그리스와 로마의 매춘에 대해 말하고 싶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어쨌든 중세 후기 이들 지역의 매춘은 증가했고, 매음굴 포주brothel queen가 주도하는 길드를 조직하기도 했다. 이런 길드들은 자신들의 환경개선과 매춘 표준가격 유지를 요구하는 수단으로 파업을 하기도 했다. 파업까지 할 수 있었으니 이들은 현대사회의 임금 노예들보다 현실적인 대응을 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경제적 요인이 매춘의 유일한 요인이라는 주장은 일면적이고 지나치게 피상적이다. 경제적 요인 못지않게 중요한 다른 요인들도 많다. 우리 개혁론자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 서민들의 삶의 기름을 짜내는 현 사회경제제도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요인에 대해서는 덜 논의하게 되었다. 나는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도덕적 경기를 일으키는 성 문제를 언급하려 한다.

여성이 성적 상품으로 길러지고 있다는 것은 다들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여성 자신은 성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성을 주제로 다루는 모든 것이 금기시되고, 성의 문제를 암흑에서 끄집어내려고 하는 사람들은 박해를 받고 감옥에 들어간다. 자신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도 모르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성의 기능을 모르고 있는 한 그녀가 쉽게 매춘부로 전락한다고 해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반드시 매춘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타락시키고 단순한 성적 노리개감으로 전락하게 되는 상황이 일어난다.

“무지하기 때문에 여성의 전체 삶과 본질이 왜곡되고 불구가 된다. 남자아이를 야성적으로 자라도록 유도하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사실이다. 말하자면 남자아이는 자기의 성을 스스로 주장하고 자기의 성적 본능을 충족할 수 있다. 그러나 도덕주의자들은 여자가 자기 성을 주장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문제 삼는다. 도덕주의자에게 매춘은 여자가 자기 몸을 판다는 사실이 아니라 결혼하지 않고 여자가 몸을 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돈 때문에 결혼하는 것은 완전히 합법적이고, 법적으로도 여론으로도 정당한데 결혼이 아닌 다른 형태의 결합은 비난받는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매춘이란 정확히 정의하자면 이득을 얻기 위해 섹스를 하는 것이 아니다.”[4]

“성행위를 위해 자기 몸을 팔고 이것을 직업으로 삼는 여성들이 매춘부이다. 매춘부의 행위는 경제적 이유로 결혼이라는 계약을 맺는 남녀의 행위와 본질적으로 같다.”[5]

물론 결혼은 모든 소녀들의 목표이지만 모든 소녀들이 결혼을 할 수는 없고, 불합리한 사회 관습상 결혼할 수 없는 소녀들을 수녀가 아니면 매춘부로 만든다. 인간의 본성은 어떤 법으로도 제약할 수 없고 본성이 전도된 도덕 개념에 맞춰 적응해야 할 타당한 이유도 없다.

사회는 남자의 성 경험을 일반적 성장의 특징으로 간주하면서 여성의 성 경험은 끔찍한 재앙으로 인식한다. 즉 인간으로서의 모든 선량함, 고상함과 명예를 다 상실한 것처럼 본다. 이런 이중적인 도덕 잣대가 매춘의 발생과 성장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성적 억압의 분위기에서 젊은이들은 ‘순수’라는 이름하에 성적인 문제에 아주 무지하게 되었고, 거기에 과도한 성적 본성이 결합해 청교도들이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상황 조성에 일조하게 되었다.

성적 만족을 위해 매춘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매춘은 비정상적으로 쾌락을 찾는 자들이 저지르는 잔인하고 무정하고 범죄적인 행위이다. 이들에게도 매춘에 대한 책임이 있다.

아직 나이가 어린 소녀들이 덥고 밀폐된 공간에서 하루에 10시간 내지 12시간씩 기계에 붙어 일한다. 이런 상황에 있으면 계속 성적으로 과도하게 흥분된 상태에 있게 된다. 이들 중 많은 소녀들이 집도 없고 어떤 형태로든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거리나 값싼 유흥업소에서 자신들의 지겨운 일상을 잊으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녀들은 이성과 가까이 하게 된다. 어떤 요인에 의해서 소녀들이 과도한 섹스를 탐하고 오르가즘을 느끼게 되는지는 불확실하다.

섹스로 오르가즘을 경험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매춘부로 가는 첫걸음이다. 물론 그 책임이 소녀들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이건 전적으로 사회의 잘못이다. 우리의 이해 부족, 성장하는 아이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 부족이 잘못이다. 특히 사회의 도덕주의자들의 잘못이다. 이들은 항상 소녀를 탓한다. 왜냐하면 소녀의 첫 성 경험이 교회의 허가 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가정과 사회의 문이 완전히 닫혀있는 상황에서 소녀는 버려진 자라는 느낌을 받는다. 전통적 측면에서 교육적 측면에서 혼전관계를 맺은 여자는 자신을 빼앗기고 타락했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설 자리도 없고 자신을 일으켜 세워주는 어떤 의지할 곳도 없이 스스로 무너진다. 이런 식으로 사회는 희생자들을 만든다. 나중에 이 희생자들을 구제하겠다고 나서봐야 다 소용없는 짓이다.

아무런 가치도 없고, 가장 저급하고, 가장 노쇠한 남자라도 그런 여자를 돈으로 살지언정 무기력하게 팽개쳐진 그런 여자를 아내로 삼지는 않는다. 결혼을 할 수 있으면 이런 여자도 비참한 삶에서 구제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아니, 이런 여자의 여동생마저 자기 언니에게 등을 돌린다. 어리석게도 자기 자신은 너무나 정숙하고 순결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위상이 여러 면에서 거리에 나선 자기 언니의 위치보다 더 한심한 상태인데도 말이다.

하벨록 엘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매춘부와 비교해 볼 때 돈 때문에 결혼한 여자는 더한 노예이다. 자신이 받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살림살이 등으로 갚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종속된다. 매춘부는 절대 자기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자기의 자유와 개인적 권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남자의 요구에 항상 응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매춘부보다는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은 다음 말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몸을 파는 여자는 아주 사악한 부류인지 모르지만, 동시에 가장 효율적으로 덕을 수호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녀에게 가정이란 전혀 거룩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아주 부자연스럽고 나쁜 짓거리들이 늘상 넘쳐나는 곳이다.”

도덕주의자들은 세상의 절반인 여성을 언제라도 희생시킬 태세이다. 매춘부들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불행한 제도에 갇혀있을 뿐이다. 사실 매춘 덕분에 일반 가정의 순결이 지켜지지 않는다. 법으로 매춘을 막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결혼한 남성 중 50%가 사창가에 드나든다.

이런 경로를 통해 결혼한 여성, 더 나아가 어린아이까지, 성병에 감염된다. 그러나 사회는 남성을 비난하지 않는다. 반면 법은 괴물처럼 아무런 힘도 없는 희생자들을 옭아맨다. 매춘 여성은 자신을 이용하는 자의 먹이가 되고 경찰과 야비한 형사들의 먹이가 되고, 기차역의 관리들과 감옥의 당국자들에게 먹이가 된다.

12년 동안 속칭 하우스라 불리는 매음굴을 운영한 한 여성이 최근에 쓴 책에는 다음과 같은 수치들이 등장한다.

“공무원들은 매달 14.70달러에서 29.70달러까지 벌금을 강요했고, 몸을 파는 애들은 경찰에 5.70달러에서 9.70달러까지 돈을 바쳐야 했다.”

이 책의 저자가 매춘업을 중소도시에서 했다는 사실과 이 액수에는 별도의 뇌물과 특별 벌금을 포함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매춘으로 번 피 같은 돈 중 얼마나 많은 돈이 경찰국의 수입으로 들어갔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경찰들은 매춘부들을 보호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매춘부들은 벌금을 내지 않으면 화를 입기 때문에 달라면 달라는 대로 줘야했다.

“이 도시의 일반 시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또 권력자들이 별도의 자금이 필요할 때 … 돈을 상납해야 한다.”

타락한 여성에게는 인간적 감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매춘부들이 몸을 팔려고 방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느끼는 슬픔과 수치와 눈물과 상처 받은 자아를 이해할 수 없다.

매춘 여성이 이런 식으로 느낀다는 것이 이상한가? 진짜 더 이상한 것은 선량한 기독교계가 이런 여성들의 피를 빨아먹고 그 보답은 못할망정 욕설과 박해를 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독교 세계의 자비는 어디 갔는가?

미국에 수입된 백인 노예들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유럽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이 미국에서 어떻게 보호될 수 있겠는가? 물론 유럽 매춘부가 많은 곳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적 노예로 미국에 유입된 독일 등 여러 국가 출신 여성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매춘부를 상당수 유럽에서 충원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뉴욕의 매춘부 대다수가 외국인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뉴욕의 외국인의 인구비율 자체가 높기 때문이다. 시카고나 중서부 쪽의 다른 미국 도시로 가면 매춘부 중 외국인은 소수임을 알 수 있다.

뉴욕 거리에서 몸을 파는 소녀들 대다수가 미국에 오기 전에도 매춘업에 종사했다는 소문도 역시 과장된 것이다. 이들 매춘부 중 다수가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 습관이나 외모도 미국화 되어 있다. 이런 모습은 미국에 오래 살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즉 이들은 미국적 풍토에서 어쩔 수 없이 매춘으로 내몰린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미국적 풍토란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런 치장을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고, 그런 돈은 공장이나 가게에서 벌 수 없다.

달리 말해 미국적 상황에서 시장에 수천 명의 몸 파는 소녀들이 넘쳐나는데 어떤 남자들이 부담을 무릅쓰고 외제품을 사겠는가. 그럴 만한 이유가 없다. 오히려 매춘을 목적으로 미국 소녀들을 수출하는 경우도 결코 적지 않다.

과거 쿡 카운티에서 주검사보를 지냈던 클리포트 로(Clifford G. Roe)는 뉴잉글랜드의 소녀들이 배에 실려 파나마로 떠났다고 공개했다. 이 소녀들은 파나마의 미국 기업체 남자들의 매춘 상대로 급히 보내진 것이다. 로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보스턴과 워싱턴 사이에는 많은 소녀들이 오가는 지하 철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철길이 바로 연방 당국의 사무실로 바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로는 이 이상의 비밀을 폭로하다 결국 공직에서 잘렸다.

파나마의 고위관료들은 문하 지역에는 매음굴이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진실에 맞서지 않는 위선적인 세계가 회피하는 일상적인 방법이다. 문하 지역에도 매음굴이 없고, 도시 외곽에도 매음굴이 없으니 매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변명한다.

로 다음으로 제임스 브론슨 레이놀즈(James Bronson Reynolds)는 아시아에서의 백인 노예 인신매매에 관해 철저하게 연구했다. 강인한 미국의 시민이자 미합중국 나폴레옹이 된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친구인 레이놀즈는 아마 조국 미국의 미덕을 전혀 신뢰하지 않은 마지막 인물이 아닌가 한다. 어쨌든 이 사람 덕분에 우리는 홍콩과 상하이와 요코하마에 미국적 악이 우글거리는 더러운 마구간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곳의 미국인 매춘부들은 너무나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매춘을 하는 바람에 동양에서 “미국 여자”라는 말은 곧 창녀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레이놀즈는 미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중국에 있는 미국인들은 미국 영사관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미국에 있는 중국인들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태평양 연안에 사는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잔인하고 야만적인 박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미국인이라면 레이놀즈의 말에 동의할 것이다.

이상의 사실들을 근거로 판단해 본다면 미국의 모든 사회적 악은 유럽이라는 습지에서 왔다는 지적이 부당함을 알 수 있다. 이는 마치 유대인이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희생자로 자처하고 나섰다는 신화와도 같은 주장이다. 나에게 민족적인 성향이 있다고 비난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유대민족으로 성장했고 그로 인한 많은 편견을 받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유대인 매춘부들이 수입되고 있다는 말에 나는 분개한다. 내가 분개하는 이유는 유대인에 대한 동정심 때문이 아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재된 유대인에 대한 편견 때문에 분개하는 것이다.

아주 피상적으로만 유대인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미국에 어떤 연고도 없으면서 유대인 소녀들이 미국에 이주하는 것을 두고 미국을 해치려는 시도라는 식의 주장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대인 소녀는 모험적이지 않다. 최근까지도 유대인 소녀는 친척 방문이 아니고는 이웃마을 나들이도 삼갔다. 그런데 유대인 소녀들이 자기 부모와 가족을 떠나 수천 마일을 여행해 와서는 이상한 마력을 동원해 한 나라를 해치려 한다는 주장이 말이나 되는가? 이민자들을 태우고 오는 커다란 증기선 아무 데라도 가서 유대인 소녀들이 부모와 형제 및 친척들과 함께 오지 않는 경우가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라.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유대인 소녀들이 매춘부로 수입된다는 말, 혹은 그와 유사한 다른 목적으로 수입된다는 말은 유대인의 심리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다.

유리창 안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돌을 던지면 그 사람이 다칠 수 있다. 미국 가정의 유리는 특히 더 얇아 쉽게 깨진다. 멋지게 보이도록 장식해 놓았을 뿐이다.

매춘의 증가를 해외로부터의 매춘부 유입이나 포주제도의 발달을 원인으로 돌리는 것은 아주 피상적인 판단이다. 매춘부 수입의 문제는 이미 언급했고, 이제는 포주제도에 대해 언급하겠다. 포주제도는 그 자체로 혐오스럽지만 현대 매춘업의 핵심은 포주제도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포주제도는 사회악 일소라는 사회운동을 산발적으로 펴면서 매춘에 대한 억압과 뇌물과 연계되어 강화되었다.

포주는 말할 것도 없이 불쌍한 인간 말종이다. 하지만 어떤 측면으로 보아서 그가 거리의 사람들로부터 돈을 뜯고 경찰서 유치장에 처넣는 경찰보다도 더 비열한 자인가? 왜 단지 창녀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포주가 희생자의 단물을 빨아먹고 살찌는 백화점이나 공장의 주인보다 사회에 위협적인가? 내가 포주를 변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포주는 무자비하게 색출되어 잡혀간다. 하지만 진짜로 사회적 불평등을 자행하는 자들은 특권을 누리고 존경을 받는다. 포주가 매춘을 양산하는 것은 아니다. 매춘과 포주를 양산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허위의식과 위선이다.

1894년까지도 미국에서 포주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때 우리는 덕을 지키라는 전염병 같은 공격을 받았다. 악은 폐지되어야 할 대상이었고 미국 전역은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정화되어야 했다. 시야에서 없어져야 할 사회적 암은 오히려 몸 속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 매음굴 소유자들과 그 속에 일하던 불쌍한 희생자들은 경찰의 손에 넘어갔다. 그렇게 되자 윤락여성 선도시설이 세워지고 많은 뇌물이 경찰에 들어갔다.

이전의 윤락여성은 사창가에서는 나름대로 가치있는 존재로 비교적 보호를 받는 편이었지만 대대적인 단속이 시작되자 이제는 거리로 나서게 되었고, 거리에서는 탐욕스러운 경찰의 밥이 되고 말았다. 절망적인 상태에서 보살핌이 필요해진 거리의 여성들은 자연히 포주들에게 포섭되었다. 포주 자체는 상업주의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그리하여 포주집단은 경찰의 박해와 탈취를 능가하는 수준으로 성장했고 매춘에 대한 억압을 이겨낼 수준이 되었다. 이렇게 포주제도는 현대적 사회악의 결과로 부상한 것인데 이것을 사회악의 원인으로 혼동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단속과 야만적인 법 집행만으로는 어리석고 무지하고 불쌍한 희생자들을 더욱 고통스럽고 타락하게 만들 뿐이다. 법에서는 매춘을 범죄로 규정하고 매춘부를 숨겨준 자에게는 5년 이하의 징역과 1만 달러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매춘의 진정한 원인에 대한 이해 없이 내려진, 매춘의 원인도 아닌 포주를 벌하기 위한 가혹한 규정이다. 그런 태도는 명백한 주홍글씨 시대의 청교도적 정신일 뿐 아니라 매춘의 진정한 이유인 사회적 요소에 대한 일천한 이해를 드러낼 뿐이다.

매춘 문제를 다루는 글을 쓰는 사람 치고 이 문제에 대처하는 법적 대응 방식이 전혀 효용이 없음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블라스코 박사는 정부의 단속이나 도덕적 캠페인이 매춘이라는 사회악을 더욱 지하로 숨게 하고 사회에 대한 해악의 위험을 더 높이는 것 외에는 아무런 효과도 발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 매춘에 대해 가장 인간적이면서 철저한 연구를 한 하벨록 엘리스는 풍부한 자료를 통해 단속을 엄하게 하면 할수록 매춘이라는 악은 더욱 심해진다는 것을 입증했다. 프랑스의 경우를 예로 보자.

“1560년 샤를 9세(Charles Ⅸ)는 칙령을 내려 매음굴을 폐지했지만 매춘부의 수는 도리어 증가했다. 매음굴들이 예상치 못한 형태로 새롭게 생겨났고, 더 위험한 양태를 보였다. 매춘 근절 법안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법안 때문에 모든 지역에서 매춘은 더욱 지하로 숨어들었다.”[6]

매춘을 법이나 도덕으로 말살하려 하지 말고 보다 성숙하고 교양 있는 여론이 조성된다면 현재와 같은 매춘 상황을 줄일 수 있다. 매춘이 발생하게 된 근대사회의 사회적 요인에 대해 애써 눈감고 모른 척 한다면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우리 모두는 “나는 너보다 더 낫다”라는 어리석은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매춘이 사회적 산물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깨달음이 있을 때 위선적인 태도도 없어질 것이고 매춘에 대해서 보다 인간적인 이해와 대처를 하게 된다. 매춘을 완전히 근절하려면 모든 기존의 가치관을, 그 중에서도 도덕적 가치관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특히 산업노예를 폐지할 수 있는 가치관을 세워야 한다.


[1] Dr. Sanger, 『The History of Prostitution』.

[2] 생어 박사의 책이 당국으로부터 판매금지 조치를 받은 사실은 중요한 사실이다. 미국 당국자들은 대중들이 매춘의 진정한 원인을 알게 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3] Havelock Ellis, 『Sex and Society』.

[4] Guyot, 『La Prostitution』.

[5] Bangert, 『Criminalité et Condition Economique』.

[6] Havelock Ellis, 『Sex and Socie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