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코 말라테스타

카페에서

1922년

      일러두기

      영어판 서문

      첫 번째 대화 : 사회의 악은 왜 생기나

      두 번째 대화 :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세 번째 대화 : 우리는 왜 가난한가

      네 번째 대화 : 가진 자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다섯 번째 대화 : 소유란 무엇인가

      여섯 번째 대화 : 누가 소유를 독점하나

      일곱 번째 대화 : 자유로운 코뮌주의란 무엇인가

      여덟 번째 대화 : 정부가 대중을 대변할 수 있나

      아홉 번째 대화 : 자유로운 결사란 무엇인가

      열 번째 대화 : 가족은 자유로운가

      열한 번째 대화 : 범죄자의 자유도 존중되나

      열두 번째 대화 : 혁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열세 번째 대화 : 대중의 의지가 대변될 수 있나

      열네 번째 대화 : 정부 없이 혁명이 가능한가

      열다섯 번째 대화 : 경찰은 왜 폭력적인가

      열여섯 번째 대화 : 애국심은 왜 보수적인가

      열일곱 번째 대화 : 누가 평화로운 변화를 가로막는가

일러두기

이 책에 실린 대화 원고들은 1899년부터 잡지나 팸플릿 등에 일부 소개되다가 1922년에 이탈리아어판 『Al caffè』로 처음 출간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재출간이 이루어졌으며, 2005년 영어판 『At the Café: Conversation on Anarchism』이 출간되었다.

영어판 서문

23년에 걸친 대화로 완성한 위대한 팸플릿

에리코 말라테스타(Errico Malatesta, 1853~1932)는 1897년 3월부터 이 책에 담긴 일련의 대화들을 쓰기 시작했다. 훗날 루이지 파브리(Luigi Fabbri)는 이 시기의 말라테스타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이 책의 1922년 판(Bologna, Edizioni di Volontà) 서문에 적고 있다. 그리고 1961년에 출간한 재판(Torino, Sargraf)에서는 말라테스타의 이러한 모습도 소개된다. 말라테스타는 수염을 말끔히 밀어 변장을 하고 입에 파이프를 물고 도심에서 돌아다니면서, 그의 안전을 걱정하여 다른 곳으로 피하기를 바라는 친구들을 향해 뻔뻔스럽게 웃어줬다는 것이다.

이 대화에 관한 구상은 바로 이러한 이유로 제안되었다. 말라테스타가 평상시에 자신과 같은 위험인물들의 소굴이 아니라 오히려 카페에 종종 들린다는 사실 말이다. 실제로 정기적으로 카페에 드나들던 사람들 중에는 경찰관도 있었는데, 그조차 손을 뻗치면 닿을 곳에 의외의 소득이 있다는 걸 모르고서 말라테스타와의 대화에 빠져들고는 했다. 도시의 아나키스트들이 여러 차례 재판에 연루되며 동료 시민들에게 선전 공세를 계속 퍼부어온 터라 당시 아나키즘은 확실히 중요한 대화거리 중 하나였다.

대화는 재판 이야기와 말라테스타 자신의 경험을 다루는 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복잡한 사상을 간단명료한 언어로 묘사해서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말라테스타의 특별한 능력과 딱 들어맞는 문학적인 형태로 이루어졌다. 대화라는 형식은 말라테스타가 자신의 아나키스트 관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는 조건으로 독자들과 그런 주장의 정치적 의미와 실제 적용 가능성을 소통하는 데 목적을 두면서도 상대의 생각을 토론할 수 있게 했다. 더구나 대화의 장점 중 하나는 허수아비가 없다는 점이다. 대화를 통해 아나키즘에 대한 엄밀한 조사가 성실히 진행됐고, 때로는 상대방이 아나키즘의 약점이자 취약함이라고 여기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것은 그에 대한 말라테스타의 기운찬 변호를 아주 설득력 있게 만들었다.

1897년 말이 되자 안코나Ancona의 경찰이 말라테스타를 알아보고 추적해왔다. 말라테스타는 체포되었지만 곧 석방되었다. 그 즉시 말라테스타는 잡지와 미완성의 대화 모두를 단념하고 대신 연이어 강연회를 열었다. 1898년에는 가택연금을 당하고, 1899년 3월에는 해외로 달아나면서 또다시 망명객이 되었다. 대화는 10회로 중단되었고 이대로 잡지와 팸플릿으로 출판되었다.

앞선 10편의 대화에서 주요한 등장인물들은 말라테스타의 분신인 아나키스트 조르지오(Giorgio)와 부유한 부르주아지인 프로스페로(Prospero), 카페 주인인 체사레(Cesare), 치안판사인 암브로지오(Ambrogio)이다. 따라서 말라테스타는 폭넓은 사회적 스펙트럼에서 각자의 정치적인 입장과 견해를 대변할 수 있었다. 프로스페로가 부자와 기득권층을 대변한다면 체사레는 소지주와 중간계급을 대변한다. 이들은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조르지오의 설득을 흔쾌히 받아들이지만 그 해결책이 현재의 사회질서를 붕괴시키지 않아야만 한다는 걱정도 드러낸다. 암브로지오는 법과 자유주의 국가의 대변자이고 권리와 정의에 관한 공인된 사상을 대변한다. 암브로지오는 조르지오의 주요한 반대자로서 인간본성과 인간행동에 관한 상식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암브로지오는 불가피한 현실의 명령이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인장하자면서 (자유에 관한) 완화된 자유주의적인 권리 이론을 말한다. 말라테스타는 이렇게 다양한 관점들과 암브로지오의 견해가 유도하는 수많은 비판들에 응답하면서 아나키스트 세계관을 능숙하고 상세하게 그릴 수 있었다.

이 짧은 원고를 통해 말라테스타는 코뮈니스트 아나키즘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모두 소개하면서 주요한 반대 입장의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특히 관심의 초점이 되는 내용은 사적 소유와 소유권이라는 주제이다.

두 번째 대화와 세 번째, 네 번째 대화에서는 소유의 원인이 체제의 올바른 성격 및 그와 연관된 계급구조에 있다는 주장이 펼쳐진다. 한편 맬서스의 저작 및 자유무역에 관해 토론하면서 사적 소유의 권리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강력한 공격이 시작된다. 동시에 소유제도의 완전한 변화와 정부 없는 사회의 창조라는 생각이 소개된다.

다섯 번째 대화에서는 소유와 소유권의 기원이 다루어진다. 조르지오는 만일 착취가 사라져야 한다면 소유권이 폐지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여섯 번째 대화에서 공동소유가 주장되고 코뮌주의에 관한 생각이 등장한다.

이 코뮌주의에 관한 토론은 일곱 번째 대화에서도 이어지고, 코뮌주의를 전제적이고 억압적인 체제로 보며 반대하는 암브로지오의 입장을 다룬다. 조르지오는 아나키스트 사회를 결사체들의 자발적이고 복합적인 연합으로 묘사하면서 그 입장을 반박하고 그 과정에서 아나키스트의 자유로운 코뮌주의라는 형식과 권위주의 학파의 형식을 대비시킨다.

여덟 번째 대화에서는 정부와 국가의 문제, 그리고 그것이 없이도 사회가 움직일 수 있는 방법으로 초점이 이동한다. 이 장에서는 의회정치와 대의제도를 구체적으로 비판한다. 그리고 자유로운 동의와 자발적인 대표 파견으로 유지되는 사회질서로서 아나키즘을 옹호하면서, 정부 없는 사회에 대한 반대 입장과 재차 토론한다.

아홉 번째 대화에서는 앞서 여섯 번째 대화에서 처음 등장했던 상호부조의 보편성에 관한 크로포트킨의 주장을 더욱더 발전시키는 대화를 이어나가고, 열 번째 대화에서는 성과 사랑, 가족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페미니즘과 관련된 여러 주제를 다루면서 성의 불평등을 낳는 원래의 기반들을 설득력 있게 해체한다.

1899년에 10회로 대화를 중단한 뒤, 14년이 지난 1913년에 말라테스타는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이 시기에 말라테스타는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이 시기에 말라테스타는 또다시 안코나에 자리를 잡고 새로운 잡지인 「의지Volontà」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말라테스타는 이 잡지에 원래의 열 편의 대화를 편집하고 수정해서 싣고 네 편의 대화를 추가했다. 초기에 열한 번째와 열두 번째 대화에서 조르지오의 대화 상대자였던 체사레와 프로스페로, 암브로지오가 다시 등장한다.

열한 번째 대화에서는 범죄 행위에 대해 토론한다. 정부와 법, 그리고 법정이나 교도소가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범죄자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조르지오는 이것이 코뮌의 방식으로 다루어져야만 한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토론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비에 대한 이야기와 아무도 원치 않는 직업을 맡아야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이동한다.

열두 번째 대화에서는 혁명이라는 만일의 사태를 분석해본다. 혁명은 현재의 질서가 폭력으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한편 기득권 계급은 공포에 질리지 않은 한 결코 손에 쥔 권력을 놓지 않으리라는 점에서, 폭력 혁명이라는 슬픈 필연성으로 향한다.

열세 번째 대화에서는 새로운 인물인 젊은 공화주의자 빈센초(Vincenzo)를 만난다. 토론은 (사회) 변화에 대한 공화주의적 접근의 장점과 한계를 다루는 것으로 이어진다. 공화주의의 주요한 약점은 그것이 정부와 민주적인 대표 체계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아나키즘의 입장에서는, 공화주의가 현재의 정치체제라는 악惡에 여전히 붙잡혀 있기 때문에 그것의 지지자들이 믿는 만큼 급진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1913년에 새로 추가한 대화들 중 마지막 편인 열네 번째 대화에서는, 다시 혁명이라는 주제로 돌아간다. 조르지오가 강조하는 바는 국가와 정부를 제거하려는 아나키즘의 열망이 역사에서 새로운 요인이고, 단순히 정치체제의 변화를 목표로 삼았던 이전의 혁명과 완전히 다르면서 더 심오한 변화를 계획한다는 점이다.

또다시 정치적인 사건이 이 대화를 가로막는다. 1914년 6월에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폭풍의 기운이 드리우고, ‘붉은 주간Red Week’으로 알려지는 심각한 대중봉기가 마르케Marche와 로마냐Romagna에서 일어난다. 말라테스타는 이 대중봉기에 개입했고 그 결과 런던으로 망명을 떠나게 된다. 6년이 지나 말라테스타는 이탈리아로 돌아왔고 「신인류Umanità Nova」라는 신문을 편집하며 밀라노Milano에 머물렀다.

파브리는 말라테스타가 당시에 매우 바빠서 예전의 대화 원고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고 새로운 대화를 추가할 의지도 없었다고 얘기한다. 그렇지만 파브리는 말라테스타와 2주일을 보낸 어떤 손님이 이 계획을 계속하도록 설득했다고 언급하는데, 그 신비로운 손님이란 파브리 자신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 결과 전체의 결론 장이라기보다는 이야기들의 속편이라고 볼 만한 세 번의 대화가 더 이루어졌다.

이 마지막 세 편의 에세이에서는 현대적인 의미에서 몇 개의 새로운 주제들이 관심을 끈다. 열다섯 번째 대화에서는 노동자인 지노(Gino)와 함께 국가 없는 사회에서 사회질서가 위태로워지리라는 평범한 사람들의 공포와 더불어 경찰의 필요성을 토론한다. 말라테스타는 아나키스트 조르지오를 통해 자신의 이전 저작인 『아나키Anarchy』에서 늑대나 범죄자가 없다면 공무원의 각 기구들의 생존이 위험해지기 때문에 늑대 사냥꾼이 늑대를 기른다고 주장했을 때처럼, 범죄자를 만드는 것은 바로 경찰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회의 안전이 공동체의 책임이라는 점을 다시금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 주제가 이미 열한 번째 대화에서도 다루어졌다는 사실은 그가 이 주제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을 나타낸다.

열여섯 번째 대화에서 우리는 전쟁으로 불구가 된 상이군인 피포(Pipo)를 만나는데, 그와 민족주의 및 애국주의라는 문제를 토론한다. 여기서 말라테스타의 논점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분열적이고 파괴적인 민족주의에 맞서 계급연대를 호소한 레닌의 목소리를 되풀이한다. 자신이 보기에 애국주의는 부르주아지가 현재의 소유질서와 그 질서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의 영토적 야망에 대한 노동계급의 지지를 늘리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마지막 열일곱 번째 대화에서는 사회주의자인 루이지(Luigi)가 등장해서 의회 사회주의나 권위주의적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을 구별하기 위한 내용의 토론을 이어간다. 이 토론은 의회노선과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이 진화 사회주의라고 불렀던 형태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핵심으로 다루면서 혁명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일련의 대화들을 이 책에서와 같은 형태로 엮는 일은 1920년 10월에 끝났다. 10월 16일에 말라테스타는 체포되었고 산비토레San Vittore의 감옥에 갇혔다. 그의 아파트에서 무기와 폭발물을 찾으려는 대대적인 경찰수색이 있었지만 이 대화의 초고는 발견되지 않았거나 발견되고도 무시된 듯하다. 이 초고는 1922년에 파브리의 서문을 포함해서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말라테스타의 대화는 아나키스트 정치이론에 중대한 공헌을 한 책일 뿐 아니라 중요한 역사적 문헌이다. 무려 23년 이상의 시간에 걸쳐 작성된 이 대화는 격동의 시기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논평이다. 특히 유럽을 가로지르는 좌파의 선전과 조직이 두드러졌던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세계는 제2차 인터내셔널, 볼셰비즘의 성장, 제1차 세계대전, 파시즘의 탄생, 1904년과 1917년의 러시아혁명을 목격했다. 이런 사건들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 대화들은 그 사건들이 제기했던 많은 주제들을 생생한 토론에 참여시켜 다루고 있다. 실질적인 의미에서 말라테스타는 아나키스트 이론을 그 시대에 관한 생생한 논평으로 정교하게 다듬었다. 이는 지적이고 독창적이며, 진정 예술적인 작품이다.

2005년

폴 너시 브레이(Paul Nursey-Bray)

첫 번째 대화 : 사회의 악은 왜 생기나

프로스페로[1]┃ 물론… 당연히… 우리는 그 점을 잘 알아. 배고픔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 몸을 파는 여인들, 보살핌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지. 넌 항상 같은 것을 말해. 그러니 지루해지지. 나는 젤라또를 좀 편하게 먹고 싶은데… 분명 우리 사회에는 기아, 무지, 전쟁, 범죄, 전염병, 끔찍한 재난 같은 많은 악惡이 있어. 그래서 어쨌는데? 왜 네가 관심을 갖는 거지?

미켈레[2]┃ 뭐라고요? 왜 내가 관심을 가지냐고요? 당신에게는 편안한 집과 먹을거리가 가득 차려진 식탁과 시키는 일을 해주는 하인이 있지요. 하긴 당신이야 모든 것이 쾌적하겠죠. 당신과당신 가족이 무사하다면 세계가 무너진대도 상관없겠죠. 정말 당신이 조금이라도 인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프로스페로┃ 그만, 됐어…. 잔소리하지 말라고…. 이봐 청년, 화내지 말라고. 내가 감정이 없고 다른 사람의 불행에 무관심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내 마음도 아프다고(웨이터, 여기 코냑과 담배 하나만!). 마음이 아프다니깐. 그런데 심각한 사회문제들은 감정으로 해결되지 않아. 자연법은 변하지 않는 것이고 위대한 연설이나 눈물을 흘리는 감상으로는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할 수도 없어. 현명한 사람은 운명을 받아들이고, 무의미한 꿈을 좇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서 최선을 다하지.

미켈레┃ 아, 우리가 자연법을 다루고 있었던가요? 가난한 사람들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생각해야 할 게 자연법이라면 어쩌죠? 나는 그런 상위법들을 지지하는 연설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는데요.

프로스페로┃ 아, 물론. 네가 만나는 사람들을 잘 알아. 네가 진정한 친구로 선택한 그 불한당 같은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트들에게 내 대신 말해달라고. 그들과 그들의 사악한 이론을 실험하려는 무리들에 대비해서 우리는 좋은 군인과 훌륭한 경찰을 가지고 있다고.

미켈레┃ 이런! 당신이 군인과 경찰을 끌어들일 셈이라면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군요. 그건 내 생각이 잘못임을 증명하기 위해 주먹다짐을 하자는 거잖아요, 별다른 논리가 없더라도 잔인한 폭력에는 의지하지 마세요. 내일이면 당신이 약자의 입장에 설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면 어떻겠어요?

프로스페로┃ 어떻겠냐구? 글쎄, 그런 불행이 온다면 많은 혼란이 있겠지. 사악한 열정과 학살, 약탈이 벌어지고. 그러면 모든 것이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겠지. 아마 소수의 가난한 사람들은 부유해지고 몇몇 부유한 사람들은 빈곤해지겠지만 전체적으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세상은 변할 수 없으니까. 너나 네 가족이 그런 아나키스트 선동가들 중 한 명을 내게 데려다주면, 그냥 데려다만 주면, 내가 그에게 어떻게 주먹을 먹이는지를 보게 될 거야. 머릿속이 비어 있으니까 그들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들로 너 같은 사람들의 머릿속을 쉽게 채우는 거야. 내게도 그런 어리석은 말들이 먹히는지를 보라고.

미켈레┃ 좋아요. 사회주의자나 아나키스트의 원리를 고집하는 친구들 중 한명을 데려오지요. 당신이 그와 즐겁게 토론을 벌이면 좋겠군요. 오늘날 만들어진 사회가 상식이나 품위를 거스르는 것임을 지금은 명백히 밝히지 못했으니까요. 자, 당신은 아주 뚱뚱하고 또 건강하니 약간 흥분하더라도 건강에 나쁘지 않을 거에요. 오히려 당신의 소화를 돕겠죠.

프로스페로┃ 좋아, 그렇다면 토론해보자고. 하지만 이건 알고 있게. 더 많이 배우고 현명한 다른 사람의 일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대신에 공부나 더 하는 게 나을 거야. 나는 네게 20년 정도는 양보할 수 있다고 믿거든.

미켈레┃ 이러는 것이 당신이 더 공부를 많이 했다고 증명하지는 않아요. 당신이 지금까지 말한 걸로 판단해보면, 당신이 더 많이 공부를 했다손 치더라도 그로부터 더 많이 깨달은 것 같지는 않네요.

프로스페로┃ 이봐 청년. 거참, 나를 좀 존중해달라고.

미켈레┃ 좋아요, 당신을 존중하지요. 그러나 나이를 걸고넘어지진 말자고요. 당신도 내 말에 반대한답시고 경찰을 부르려는 건 아닐 텐데요. 주장이란 오래되었든 새롭든, 좋든 나쁘든, 주장일 뿐이잖아요.

프로스페로┃ 좋아, 좋아. 계속 얘기해보자고.

미켈레┃ 나는 괭이질하고 씨를 뿌리고 추수하는 농부들이 충분한 빵과 와인과 고기를 갖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어요. 왜 집을 짓는 벽돌공이 비를 피할 집을 갖지 못할까요. 왜 제화공이 신발을 신지 못할까요. 달리 말하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흥청망청 거리는데도, 그 모든 것을 생산하는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인 필수품이 부족한 걸까요. 나는 경작되지 않는 땅이 많고 일굴 수 있다는 사실에 아주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누군가는 굶주리게 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어요. 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왜 많은 벽돌공들은 실업자일까요? 신발과 옷, 일상생활의 필수품들이 한참 부족한데도 많은 제화공, 제봉사들이 놀고 있어요. 이런 부조리들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자연법에 관해 당신이 말해주면 좋겠군요.

프로스페로┃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하고 분명하게 말해줄게. 생산을 하려면 인간의 노동력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땅과 자원, 도구, 가게, 기계가 필요하고 상품이 만들어져서 시장으로 배달되는 동안의 수단들도 필요하다고. 간단히 말해서 네게는 자본이 필요해. 너의 농민과 노동자들은 달랑 노동력만 가지고 있어. 그러니 땅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의 요청이 없다면 그들은 일할 수 없어. 소수의 우리들은 잠시 땅을 경작하지 않은 채 남겨두거나 자본을 쓰지 않더라도 괜찮지. 반면에 다수의 노동자들은 언제나 당장 필요한 것들로 인해 압박감을 느끼지.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원할 때,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편한 기간 동안 일해야만 하는 거야.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 그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 일에는 이익이 없다고 계산한다면, 노동자들은 비록 자기가 만들 수 있는 그 물건이 꼭 필요하더라도 그저 놀아야만 하지. 이제 만족하나? 이보다 더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미켈레┃ 분명 모두들 당신 말을 솔직하다고 여길 거에요. 더 궁금할 게 없군요. 그러나 무슨 권리로 소수의 사람들만이 땅을 가지나요? 자본이 소수의 사람들 손에, 특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손에 있는 이유는 무엇이죠?

프로스페로┃ 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 다른 사람들이 네 말에 반대하며 떠들어댔을 어설픈 주장들도 알 것 같고. 소유자의 권리는 그들이 땅을 비옥하게 개량했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노동력을 자본으로 바꾼 저축에서 생기지. 더 솔직하게 말할까? 이 모든 상황은 역사적인 사실의 결과이자 수백 년의 인류 역사의 결과로 지금처럼 만들어진 거야. 인간이라는 존재는 끊임없는 투쟁을 겪어왔고 지금도 겪고 있고 앞으로도 항상 겪을 거야. 운이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누군가 손해를 보는 만큼 누군가는 이득을 보겠지. 승자에게도 불행이 있을지니! 이건 거스를 수 없는 위대한 자연법이라고.

어쩌겠어. 다른 누군가가 내 돈으로 배불리 먹는 동안 나는 가난에 허덕이기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겨야 할까?

미켈레┃ 그건 내가 정확히 원하는 바는 아니에요. 그러나 이런 건 생각해보겠어요.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다수라는 점을 통해, 삶이 투쟁이고 권리가 사실에서 나온다는 당신 이론에 따라 당신의 땅과 자본을 빼앗고 새로운 권리를 만들어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만들겠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어쩌겠어요?

프로스페로┃ 아, 그건 분명 복잡한 문제군. 그러나 다음 기회에 계속 이야기하자고. 지금 나는 극장에 가야 해서 말이야. 좋은 밤 보내시게나.

두 번째 대화 :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암브로지오[3]┃ 프로스페로 씨, 지금은 우리 훌륭한 보수주의자들만 있으니 내 말 들어보세요. 지난 저녁에 당신이 그 멍청한 녀석, 미켈레와 말할 때 나는 끼어들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은 그런 대화가 우리의 제도를 옹호할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은 거의 아나키스트처럼 보이던데!

프로스페로┃ 이거 원, 나는 절대 아니야!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암브로지오┃ 당신 이야기의 핵심은 현재의 모든 사회기구가 힘에 의지한다는 점이었고, 그래서 이 기구를 힘으로 파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논리를 제공했으니까요.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시민사회, 권리, 도덕, 종교들을 지배하는 최상의 원리는 도대체 어떻게 되었나요?

프로스페로┃ 당신은 역시 권리를 항상 입에 달고 사는군. 그 나쁜 버릇은 당신 직업 탓이겠지. 생각해보라고. 내일 정부가 국유화에 관한 법령을 발표한다면, 당신은 오늘 아나키스트들을 비난하는 것과 똑같이 태연하게 사적 소유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것이오. 그러고는 언제나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권리라는 최상의 원리들에 의지하겠지. 아시겠소, 이건 단지 어떻게 부르는가의 문제라고. 당신은 권리를 말하고 나는 힘을 말하지.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신성한 경찰이야. 그걸 꼭 자기 편에 두도록 하라고.

암브로지오┃ 이봐요, 프로스페로 씨. 궤변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매번 당신의 보수적인 본능을 억누르는 건 불가능해 보이는군요.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씩이나 되는 당신 같은 사람들의 그러한 관점들이 질서를 위협하는 최악의 적들에게 얼마나 많은 논리들을 제공하는지를 모르고 있군요.

나를 믿으세요. 우리끼리 언쟁하는 건 적어도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그만둬야 해요. 사나운 광풍이 격동의 시대에 몰아치고 있으니 우리의 제도를 방어하기 위해 모두 단결하자고요. 우리의 위협받는 이익을 돌보기 위해 단결하자고요.

프로스페로┃ 단결하자고? 좋고말고. 그러나 강력한 조치가 없다면, 그리고 자유주의 정책들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할 텐데.

암브로지오┃ 오, 물론이죠. 우리에게는 엄하게 적용되는 엄격한 법이 필요해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요. 힘으로는 대중을 오랫동안 복종시킬 수 없어요. 특히 오늘날에는요. 선전에는 선전으로 맞설 필요가 있고, 우리가 올바르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설득할 필요가 있어요.

프로스페로┃ 당신 농담을 정말 잘하시네! 불쌍한 친구여, 우리의 공도이익을 위해 부디 선전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생각하시길. 보수주의자들이 선전을 한다면 그건 위험한 말이지. 당신의 선전은 언제나 사회주의자나 아나키스트, 그들이 자기편이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이득이 될 거라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가서 너희들이 먹지 못하는 건 정당하다고 설득해보시오. 더군다나 그들이 식량을 생산하는 사람들인데도 말이야! 그들이 생각해보지 않고 그저 자신들의 몫에 대해 신과 주인에게 계속 감사하도록 두는 일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라고. 그러나 자신들의 처지를 돌아보기 시작하는 그 순간 그건 끝이야. 그들은 당신이 결코 통제하지 못할 적이 될 거야. 절대로 안 돼! 우리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선전을 피해야만 하고 합법적이든 아니든, 때로는 법을 어기더라도, 신문을 폐간시켜야만 한다고.

암브로지오┃ 그건 맞아요, 맞아.

프로스페로┃ 모든 집회를 금지하고 모든 단체들을 해산시켜야 해. 머리로 생각하는 놈들은 모조리 감옥에 보내야 하고.

체사레[4]┃ 좀 침착하세요. 그 열정이 당신을 집어삼키겠어요. 이걸 기억해야죠. 더 좋았던 시기에 다른 정부들이 당신이 말하는 조치들을 취했었다가 결국 붕괴해버렸다는 사실 말이에요.

암브로지오┃ 쉿, 쉿! 저기 미켈레가 아나키스트와 함께 와요. 작년에 불온한 성명서 때문에 저 아나키스트에게 6개월 형을 선고했어요. 사실 법적으로 보면 문제없는 성명서였는데…. 허나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어요? 죄를 범하려는 의도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사회를 보호해야 하잖아요!

미켈레┃ 신사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밤 프로스페로 씨가 던진 도전장을 받아들인 아나키스트 친구 한 명을 소개할게요.

프로스페로┃ 도전은 무슨 도전! 우리는 단지 시간을 보내려고 친구들끼리 토론했던 것뿐이야. 그래도 궁금하긴 하네. 어디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사상인 아나키즘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한번 설명해보시오.

조르지오┃ 나는 아나키즘 선생이 아니고 이 주제로 강의를 하기 위해 온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내 사상을 옹호할 수는 있지요. 더구나 (암브로지오 치안판사를 보면서 비꼬는 어조로) 여기 이 신사 분은 틀림없이 아나키즘에 관해 저보다 더 많이 알고 계시겠죠. 이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나키즘이라며 유죄 판결을 내렸으니까요. 게다가 분명 양심적인 분이실 테니 무엇보다도 관련된 논리들을 충분히 연구하지 않은 채 그렇게 했을 리는 없겠죠.

체사레┃ 이봐요, 인신공격은 하지 말고 아나키즘에 관해 이야기할 거라면 지금 당장 시작합시다. 실은 나 역시 상황이 나빠지고 있고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어요. 그러나 몽상가가 될 필요는 없고,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는 폭력을 피해야만 합니다. 분명 정부는 노동자들의 주장을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정부는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국가산업을 보호하고 상업을 권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조르지오┃ 이 어설픈 정부에게 바라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그러나 정부는 노동자들의 이익에 관심이 없을 겁니다. 그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요.

체사레┃ 그것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인가요? 실제로 지금까지 정부는 능력이 부족했고 아마도 국가의 재난을 바로잡으려는 욕구가 거의 없었죠. 그러나 앞으로의 계몽적이고 양심적인 장관들이라면 다를 수 있어요.

조르지오┃ 아니지요. 그건 장관 하나의 문제가 아니죠. 그건 모든 정부, 즉 어제와 오늘과 미래의 정부가 지난 문제이지요. 정부는 가진 자들에게서 나오고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가진 자들의 지지를 필요로 해요. 정부와 구성원들이 바로 가진 자들이니까요. 그러니 정부가 어떻게 노동자들의 이익을 만족시킬 수 있겠어요?

정부는 설령 그러고 싶어도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사회문제는 한 정부가 해결할 수 없는 총체적인 원인들의 결과이고, 사실상 그런 원인들이 정부의 성격과 방침을 결정하기 때문이죠.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는 정부에게 방어 임무를 준 체제 전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만 합니다.

당신이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주자고 말했죠. 그러나 그런 일자리가 없다면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정부가 사람들에게 쓸모없는 일자리를 제공한다면 누가 사람들에게 돈을 줄까요? 사람들의 채워지지 않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가 생산을 통제할까요? 그런데 가진 자들은 노동자들에게서 빼앗은 생산물을 팔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 스스로 가진 자이기를 그만두려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정부는 가진 자들이 독점해온 땅과 자본을 빼앗으려 들 테니까요.

이것이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는 사회혁명입니다. 당신은 노동자와 농민, 특권을 빼앗긴 사람들이 이런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정부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 겁니다.

산업과 상업을 보호하자는 당신 말도 그래요. 정부는 기껏해야 다른 계급에게 손해를 입히면서 특정 산업계급을 지원하고 다른 지역의 무역업자를 희생시켜서 특정 지역의 무역업자를 지원할 수 있을 뿐이죠.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실현되지 않고 다소의 편애와 부조리, 더욱더 비생산적인 지출만이 남지요. 모두를 보호하는 정부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정부는 어떤 것도 생산하지 못하고 다른 이가 생산한 부를 이전시킬 수 있을 뿐이니까요.

체사레┃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정부가 일을 하려고 들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다면 어떤 조치가 가능합니까? 당신이 혁명을 일으키더라도 당신은 다른 형태의 정부를 만들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당신은 모든 정부가 똑같다고 말했지요. 그렇다면 혁명 이후에도 모든 건 예전과 똑같을 겁니다.

조르지오┃ 만일 우리의 혁명이 단지 정부만을 바꾼다면 당신 말이 옳을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소유제도의 완전한 변화, 생산과 교환체제의 완전한 변화를 원합니다. 쓸모없고 해롭고 기생하는 기관인 정부와 관련해서는 우리는 무엇도 원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달리 말해 사회를 위에서 지배하고 자신의 의지를 강제로 요구할 수단을 가진 기관이 존재하는 한 진정한 해방이나 대중의 평화란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당신은 내가 아나키스트고 아나키가 정부 없는 사회를 뜻한다는 점을 알고 있겠지요.

체사레┃ 당신은 무슨 말을 하고 있나요? 정부 없는 사회라니! 어떻게 그런 사회가 존재할 수 있나요? 누가 법을 만드나요? 누가 법을 집행하나요?

조르지오┃ 당신은 우리가 원하는 바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듯하네요. 본론을 벗어나는 시간낭비를 피하려면 내가 짧지만 체계적으로 우리의 강령을 설명하도록 해주세요. 그런 뒤에야 서로에게 이득이 될 사안을 토론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지금은 너무 늦었어요. 다음 기회에 계속하죠.

세 번째 대화 : 우리는 왜 가난한가

체사레┃ 오늘은 정부 없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주시겠죠?

조르지오┃ 최선을 다하죠.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사회의 상황이 지금처럼 된 이유와 사회구성을 바꾸는 것이 정말 필요할지에 관해 집중해봅시다.

우리가 사는 사회를 봐요. 우리 눈에 띄는 첫 번째 사건은 대중에게 고통을 주는 빈곤, 어느 정도 모두에게 부담을 주는 미래의 불확실성, 굶주림을 이기기 위해 모든 이가 다른 모든 사람과 싸우는 무자비한 투쟁입니다.

암브로지오┃ 이봐요, 당신은 계속 그런 사회의 악들에 관해 말하려는 듯한데, 불행히도 그런 사례는 너무 많아요. 하지만 그런 나열은 목적에 맞지 않고, 모든 걸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우리의 살림살이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해요. 인류를 괴롭히는 건 빈곤만이 아니라 전염병과 콜레라, 지진 등도 있어요. 당신이 그런 자연에 맞서 혁명을 지휘하고 싶다면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죠. 나쁜 일은 자연적으로 일어나기 마련이니까요.

조르지오┃ 그렇지만 사실상 빈곤이 현재의 사회기구 모델에서 생긴다는 점을 증명하고 싶군요. 더 평등하고 합리적으로 조직된 사회에서 빈곤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요.

우리가 악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 그 해결책도 없다면, 글쎄요, 우리가 그와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겠지요. 그러나 해결책이 발견되면 곧바로 그것을 실천하는 일은 모든 이의 관심이자 의무입니다.

암브로지오┃ 그것이 당신의 실수입니다. 빈곤은 인간의지와 인간의 법이 어쩔 수 없는 원인에서 생겨요. 빈곤은 (모든)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킬 만큼 충분한 생산물을 공급하지 못하는 자연의 부족함 때문에 생기죠.

동물을 보면서 자본주의의 악명이나 전제정부를 비난할 수 없어요. 동물은 먹을 것을 위해 싸워야만 하고 때때로 굶주려 죽으니까요.

찬장이 텅 비었어요. 그런 때라고요. 진실은 세상에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점에 있어요. 사람들이 자신을 통제할 수 있고 아이들을 기를 수 없는 조건에서 아이를 갖지 않을 수 있다면…. 맬서스를 읽어보셨소?

조르지오┃ 네, 조금요. 그러나 맬서스의 책을 읽어보지 않았어도 변하는 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책은 읽지 않았더라도, 당신이 참으로 뻔뻔한 말을 했다는 것은 말해야겠네요!

빈곤이 자연의 부족함 때문에 생긴다고 말했는데, 경작되지 않는 땅이 있다는 건 당신도 알고 있겠죠?

암브로지오┃ 경작되지 않는 땅이 있다면 그건 그 땅이 경작될 수 없거나 경작하는 데 드는 비용만큼 충분히 생산할 수 없다는 걸 뜻하겠지요.

조르지오┃ 그렇게 믿으세요? 실험적으로 농민에게 땅을 주면, 그들이 만든 정원을 보게 될 겁니다. 이런, 내가 진지하지 않은 건가요? 그런 땅의 대부분은 농업기술이 발달하지 못했고 화학기술과 농업기술이 거의 없던 시기에도 경작되었어요. 오늘날에는 심지어 돌도 비옥한 땅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세요? 가장 현실적인 농경학자들조차도 이탈리아 같은 땅도 합리적으로 경작된다면 1억 명이라는 엄청난 인구를 유지할 수 있다고 계산했던 사실을 모르세요?

땅이 경작되지 않는 진짜 이유는, 그리고 기름진 땅에 발전된 농기구를 써도 원래 생산할 수 있는 것보다 적은 양을 생산하는 이유는 가진 자들이 그 생산량의 증가에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진 자들은 대중의 복리를 걱정하지 않아요. 그들은 팔기 위해 생산하지요. 그들은 물건이 많으면 가격이 떨어지고 이윤이 줄어든다는 점을, 그러면 물건이 귀해서 자기들 마음에 드는 가격에 팔 수 있을 때보다 훨씬 낮은 값에 팔아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어요.

이런 일은 농업에서만 일어나지 않아요. 사람들이 일하는 모든 분야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보죠. 모든 도시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지저분한 헛간에서, 깨끗함을 유지하고 생활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불가능한 조건에서, 위생학이나 도덕을 무시하고 떼를 지어 살아야만 해요.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요? 집이 없어서일까요? 왜 모든 사람을 위해서 튼튼하고 편안하며 아름다운 집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집 짓는 데 필요한 돌과 벽돌, 석회, 철, 목재 등등 모든 재료들은 풍부합니다. 오직 일자리만을 바라지만 일자리를 못 구한 벽돌공과 목수, 건축가들이 그 재료를 이용하면, 그 능력을 모든 이에게 이롭게 활용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많이 놀리고 있어요.

그 이유는 간단하지요. 만일 집이 무수히 많다면 임대료는 떨어지겠지요. 다른 집을 지을 재료를 가진 사람들이자 이미 세워진 집을 가진 자들은 단지 가난한 자의 지지를 받기 위해 자신들의 임대료가 떨어지는 걸 진정 보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요.

체사레┃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나라를 괴롭히는 고통스러운 일들을 설명할 때 잘못 생각하는 부분도 있어요.

땅이 덜 개간되거나 놀고 있고, 사업이 망하고, 빈곤이 널리 퍼진 이유는 부르주아지의 열의가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자본가들은 소심하거나 무식해서 산업을 발전시킬 방법을 찾거나 알려고 하지 않아요. 지주들은 노력하지 않고 할아버지들이 썼던 방법을 버리려고 하지 않아요. 상인들은 새로운 판매처를 찾으려고 하지 않아요. 정부는 민간의 기업정신을 격려하기는커녕 재정정책과 어리석은 관세정책으로 그것을 방해하고 그들을 초보적인 단계에 머무르게 하고 있어요. 프랑스와 영국, 독일을 보세요.

조르지오┃ 부르주아지가 나태하고 무식하다는 점엔 저도 동의해요. 그러나 우리 부르주아지의 열등함은 세계시장을 정복하려는 투쟁에서 다른 나라의 부르주아지에게 패배한 이유만을 설명해줄 뿐이죠. 그 열등함은 민중이 굶주리는 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해요. 그 분명한 증거는 빈곤과 일자리의 부족과 그 밖의 사회적인 악들이 이탈리아보다 훨씬 더 활동적이고 지적인 부르주아지가 있는 나라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노동자들이 조직화나 저항, 반란을 통해 더 나은 생활조건을 얻을 수 없다면 이런 사회적인 악들은 보통 산업이 더욱더 발전된 나라들에서 더 심각하지요. 자본주의는 어디에서나 똑같습니다. 자신이 살아남고 확산되기 위해 자본주의는 불공평한 부족 현상을 계속 필요로 합니다. 자본주의는 그 가격들을 유지하고자 하며, 어떤 조건에서건 일하려는 굶주린 대중을 만들 필요가 있으니까요.

사실 생산이 생산자에게 소비를 늘릴 수단을 제공하지 않고 계속 해외시장에 판매하는 나라에서 가장 활성화된다는 걸 당신도 알 겁니다. 국내소비가 증가한다면 그것은 노동자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이런 상황에서 이득을 볼 수 있고 그 결과 더 많은 상품을 구매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지요. 이런저런 이유로 생산한 물건을 해외시장이 더 이상 구매하지 못하면 위기가 닥치고 작업이 중단되고 임금이 삭감되고 끔찍한 빈곤이 다시 대혼란을 야기합니다. 어쩌면 대다수에게 모든 것이 부족한 나라에서는 (수출보다) 자신의 소비를 위해 일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지 몰라요! 자본가들은 정말 그 나라를 떠나고 싶겠죠!

암브로지오┃ 그러면 당신은 그것이 모두 자본주의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까?

조르지오┃ 당연히 그렇죠.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 잘못은 소수의 사람들이 땅과 모든 생산도구를 독점하고 자신들의 의지를 노동자들에게 강요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생깁니다. 그런 방식은 대중의 필요를 고려하면서 그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생산하는 대신에 고용주의 이득을 위해 생산을 조절하지요.

당신이 지금까지 부르주아지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생각해 낸 모든 정당화들은 완전히 잘못되었거나 대부분 거짓말이에요. 조금 전에도 당신은 빈곤이 물건이 부족해서라고 말했죠. 다른 예로 실업의 문제에 직면해서도 당신은 이렇게 말하겠죠. 창고가 꽉 찼다고, 상품이 팔리지 않는다고, 가진 자들이 물건을 내다버리기 위해 사람을 고용할 수는 없다고 말이에요.

사실 이 말은 체계의 부조리를 대표하는 말입니다. 창고가 꽉 차서, 땅을 경작할 필요가 없어서, 또는 지주가 땅을 경작하는 걸 원치 않아서 우리는 굶주려 죽으니까요. 신발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제화공은 일하지 못하고 너덜너덜해진 신발을 신고 돌아다니니까요. 이런 식이지요.

암브로지오┃ 그러면 자본가는 굶주려 죽어야 하나요?

조르지오┃ 이런, 절대로 아닙니다! 자본가도 다른 사람들처럼 일하면 되지요. 이 말이 모질게 들릴지 모르지만 당신은 잘 먹어야 일이 위험하지 않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인간본성의 요구이자 실현이라는 점을 당신에게 실제로 증명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내일 일하러 가야하고 이미 늦었으니 다음에 보는 게 공평하겠죠. 그럼 이만.

네 번째 대화 : 가진 자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체사레┃ 나도 당신 의견에 동의하오. 당신은 정확하게 사안을 설명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군요. 정말 당신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의 사회질서에는 분명히 어떤 부조리함이 있어요. 예를 들어 관세정책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좋은 품질의 빵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굶주림이나 그로 인한 병으로 죽어가고 있는데도 정부는 미국에서 곡식을 수입하는 걸 어렵게 만들어요. 미국은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보다 많이 가지고 있고 기꺼이 우리에게 곡식을 팔려고 할 텐데요. 단지 먹고 싶어 하지 않아서 굶주리는 것처럼 보여요. 그렇지만….

조르지오┃ 정말 그래요, 정부는 굶주리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정부가 밀에 매기는 관세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이탈리아에서 밀을 대규모로 기르는 사람들도 굶주리지 않죠. 만일 굶주린 사람들이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다면, 그들은 밀을 거부하지 않을 겁니다.

체사레┃ 이런 종류의 논쟁이 평범한 사람들도 사안을 넓게 바라보고 반정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만든다는 점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문제의 모든 측면에 주목해야만 합니다. 아까 당신이 내 말을 끊었을 때 막 말하려던 참이었어요.

가진 자들의 이해관계가 수입세를 매기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반대로 자유로이 물건이 오간다면 우리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에서 밀과 고기를 생산할 수 있는 미국인들이 결국 우리 시장 전체를 장악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농부들이 어떡해야 하나요? 가진 자들이 파산하겠지만 노동자들도 더 나쁜 대우를 받을지 몰라요. 빵 가격은 떨어지겠지요. 그러나 그 돈을 치를 방법조차 없다면 당신은 여전히 굶어 죽을 수 있어요. 게다가 곡식의 가격이 싸든 비싸든 간에, 이탈리아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곡물이라면 미국인들에게 무엇으로 지불할 건가요?

당신은 이탈리아에서 우리 땅과 기후에 맞는 곡식을 재배해서 그것을 외국과 교환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와인이나 오렌지나 꽃 같은 것들이죠. 그러나 우리가 좋은 조건에서 생산할 수 있는 것들을 외국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쓸모가 없거나 스스로도 생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원치 않는다면 어떡하죠? 생산체계를 바꾸려면 자본과 지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은 말할 필요가 없겠죠? 그러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할까요?

조르지오┃ 완벽해요! 잘 알고 있군요. 자유무역은 보호무역주의보다도 빈곤이라는 문제의 해결책이 더욱더 못돼요. 자유무역은 소비자에게 이롭지만 생산자에게 해롭고, 반대로 보호무역주의는 보호받는 생산자에게 이롭지만 소비자에게 해롭죠. 그리고 노동자가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언제나 같은 상황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가 폐지될 때까지 이런 상황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겁니다.

노동자가 소유자의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일한다면, 모든 나라는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킬 만큼 충분히 생산할 수 있고, 토질과 기후, 자원의 이용가능성, 주민의 선호 등을 고려해서 생산적인 노동을 분배하기 위해 다른 나라와 협약을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가능한 적게 노력하면서도 최상의 것을 즐기기 위해서요.

체사레┃ 그렇죠, 하지만 그건 공상에 지나지 않아요.

조르지오┃ 지금은 그런 생각이 공상일 수 있어요. 그러나 대중이 자신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깨닫는 순간 그 꿈은 곧장 현실로 변하게 될 겁니다. 그 길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은 누군가의 이기주의와 무지뿐입니다.

체사레┃ 다른 장애물도 있지요. 당신은 가진 자들만 사라지면 금이 남아돌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군요.

조르지오┃ 그건 내가 말하려는 바가 아닌데요. 오히려 나는 자본주의가 유지시켜온 이 결핍된 조건을 극복하고 모든 이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대규모로 생산을 조직하려면 당신이 더 많이 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기꺼이 일하려는 자발성이 부족할 수 있지요. 우리는 몇몇 게으름뱅이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이유로 현재의 체제를 불평하는 게 아닙니다. 비록 그런 일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지 않는 건 분명하지만요.

우리는 일자리를 통제하고, 우리가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모두를 위해 풍부하게 생산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그러한 게으름뱅이들 때문에 현재의 체제에 관해 불평하고 있는 거라고요.

체사레┃ 너무 과장하시네요. 가진 자들이 물자의 부족함을 계산해서 사람들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대개는 그들에게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해요.

땅과 자연자원이 생산에 충분한 건 아니에요. 아시다시피 노동자들이 일할 때엔 그들에게 줄 도구와 기계, 토지, 자산, 즉 자본이 필요해요. 이 자본은 느린 속도로만 축적되죠. 자본의 부족 때문에 시도되거나 시도 중인 실험들이 실패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당신이 바라듯이 사회혁명이 일어난다면 그 결과를 상상할 수 있을까요? 자본이 사라지면서 뒤이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나고 총체적인 빈곤이 발생할 겁니다.

조르지오┃ 그건 잘못된 생각이고 현재의 질서를 옹호하는 자들의 또 다른 거짓말입니다. 즉 자본이 부족하다는 거짓말이지요.

자본을 독점해온 사람들 때문에 여러 가지 일에서 자본이 부족할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사회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면 사회에 경작되지 않는 땅이 많은 것처럼 많은 양의 잠자는 자본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될 겁니다. 얼마나 많은 기계들이 녹슬고 있고 얼마나 많은 공장들의 문이 닫혀 있는지, 얼마나 많은 집들이 비어있는지를 알잖아요.

노동자들이 일하는 동안 그들에게 영양을 공급할 음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실업상태에 있을 때에도 당연히 먹어야 합니다. 나쁜 음식으로 때우는 노동자들이래도 고용주들이 자신들을 필요로 할 때 곧바로 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노동자들이 일하지 않는 건 생계수단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만일 노동자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그들은 (그런 조건이 정말 필요하다면) 실업상태일 때처럼 견디며 살지언정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을 받아들일 겁니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은 일시적으로는 먹고살기 부족하지만 이를 거부했을 때 결국에는 그 뒤에 빈곤과 복종이라는 사회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입니다.

상상해보세요. 이 사실은 오랜 시간 동안 증명되어왔고, 지진이 한 도시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을 때도 증명되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는 이전보다 더 아름답게 재건되었고 재난의 흔적은 남지 않았어요. 당시 가진 자들과 자본가들은 사람들을 고용하는 데 관심을 뒀고 자원은 신속하게 마련되었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도시가 재건되었지요. 그전에 자본가와 가진 자들은 몇 채의 ‘노동자 주택’을 지을 자원이 부족하다고 계속 주장했었죠.

혁명기간 동안 발생할지 모를 자본의 파괴에 관해서라면 사회 재산의 공동소유를 목적으로 삼는 의식적인 운동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어요. 대중은 자신들의 것이 될 자본을 파괴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 어떤 경우든 지진처럼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분명 일이 최상의 상태로 진행되기 전에 어려움이 생길 겁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두 가지 심각한 장애물만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건 민중의 의식 부족과 경찰 때문입니다.

암브로지오┃ 잠깐, 조금 더 얘기해주시오. 자본과 일, 생산, 소비 등에 관해서는 말하면서 권리나 정의, 도덕, 종교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소?

땅과 자본을 가장 잘 이용하는 방법에 관해 논쟁하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더 중요한 건 도덕의 문제이지요. 나 역시 모든 이가 잘 살길 바라지만 그런 유토피아에 다다르기 위해 도덕법칙을 어겨야만 한다면, 그리고 모든 시민사회가 의지하는 영원한 권리의 원리를 부정해야만 한다면, 나는 오늘날의 고통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더 바라겠소.

더구나 세계를 조절하는 최고 의지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라고요. 세계는 자기 힘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분명 세계를 초월한 어떤 것이 존재합니다. 분명히 당신은 신이나 천국이나 지옥조차 믿지 않을 수 있으니 그것에 관해 말하지는 않겠소. 내 말은 이 세계를 초월해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이곳의 명백한 부조리에 대한 보상을 찾을 수 있는 어떤 것이 분명히 있다는 거죠.

당신은 우주에 이미 만들어진 조화를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당신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어요. 우리는 그것에 복종할 수밖에 없소.

이번 한 번만이라도 대중을 선동하는 일을 그만두시오. 그리고 재산을 적게 가진 자의 마음에 공허한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그만두시오. 유감스럽게도 폐허 속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불씨를 부채질하는 일을 그만두시오. 당신을 비롯한 근대의 야만인들은 심각한 사회변동을 일으켜 우리 선조들과 우리 자신의 명예인 문명을 파괴하고 싶겠죠? 당신이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면, 가난한 자의 고통을 가능한 많이 덜어주고 싶다면, 그들에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따르라고 말하시오. 왜냐하면 참된 행복은 만족에 있으니까요. 다른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있어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반드시 부유하게 사는 사람은 아니란 말이오.

조르지오┃ 이보시오, 친애하는 판사님, ‘위대한 원리’에 관한 고백이나 상투적인 분노는 잠깐 접어두시죠. 이곳은 법정이 아니에요. 지금 이 순간은 내게 판결을 내리지 않아도 돼요.

당신 말을 들으니 당신이 권리를 빼앗긴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누구라도 알아맞힐 수 있겠군요. 가난한 자의 체념은 그들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말 유용하죠.

우선, 당신도 믿지 않는 초월적이고 종교적인 주장은 접어두길 부탁합니다. 우주의 신비에 관해서는 나는 아는 바가 없고 당신도 더 이상은 모르겠지요. 그러니 그걸 토론하는 건 무의미합니다. 그 밖에도 조물주에 대한 믿음, 창조자이자 조화의 아버지인 신에 대한 믿음이 당신을 위한 안전한 무기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언제나 부유한 자들의 편이고 그들을 위해 일하는 사제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이 가난한 자의 의무라는 생각을 이끌어낸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에 맞서 정의와 평등을 위한 권리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역사 속에서 그렇게 생각되어왔듯이). 만일 신이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면 우리 모두가 친척입니다. 신은 자신의 아이들 중 몇몇이 다른 아이들을 착취하고 박해하는 걸 원하지 않을 겁니다. 부자와 지배자들은 신의 저주를 받은 다수의 카인들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그만두죠.

암브로지오┃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당신에게 무의미할 터이니 당신이 원한다면 그만 말하지요. 그런데 당신은 권리와 도덕, 상위의 정의를 인정했어요.

조르지오┃ 들어보시오. 권리와 정의, 도덕이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억압과 불행을 요구하고 유지시킨다면 나는 권리와 정의와 도덕이 거짓말이고 기득권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악명 높은 무기일 뿐이라고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에게 말할 수 있어요. 당신이 그 말들로 나타내는 바를 (실제로) 그 말로 의미하는 순간 그건 거짓말이자 악명 높은 무기일 뿐이에요.

권리와 정의, 도덕은 가능한 한 모든 사람에게 최고로 이로운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고,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들은 오만한 행동이나 부조리와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개념이 생활의 필수조건이자 인간의 사회적 협력의 발전과 일치한다는 점은 확실한 진실입니다. 이런 개념이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해온 자들의 온갖 방해를 받으면서도 인간의 양심을 구성하고 그것을 지속시켜왔으며 계속 힘을 길러왔다는 점도 확실히 사실입니다. 도덕과 정의라는 추상적인 원리들에 대한 당신의 해석에 따르면, 그것이 처량한 궤변이 아니라면, 당신 자신도 현재의 사회제도를 옹호할 수 없다고요.

암브로지오┃ 정말 당신은 뻔뻔하군요. 내가 보기엔 당신의 얘기는 소유의 권리를 부정하기에 충분치 않아요. 그런데도 당신은 우리의 원리들로 그것을 옹호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군요.

조르지오┃ 네, 맞습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다음번에 그걸 증명하지요.

다섯 번째 대화 : 소유란 무엇인가

조르지오┃ 친애하는 판사님. 내가 잘못 듣지 않았다면 우리는 소유의 권리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지요?

암브로지오┃ 그럼요, 약탈과 도둑질을 제안하는 주장을 당신이 어떻게 정의와 도덕의 이름으로 옹호할지 정말 궁금하군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소유물을 안전하게 지키지 못하는 사회는 더 이상 사회일 수 없어요. 사나운 짐승들의 무리가 금방이라도 서로를 잡아먹겠지요.

조르지오┃ 그런 상황이 바로 오늘날의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당신은 우리가 약탈하고 도둑질한다고 비난하고 있어요. 하지만 끊임없이 노동자를 약탈하고 노동자에게서 노동의 결실을 도둑질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가진 자들이 아닌가요?

암브로지오┃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최선이라 믿는 방시긍로 물자를 활용하지요.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자유로이 팔 듯이 그들은 그럴 권리를 가지고 있소. 소유자와 노동자는 노동의 대가에 관해 자유로이 계약을 맺고 계약이 맺어지면 어느 누구도 불평할 수 없는 거요. 자선행위가 심각한 문제들, 부당한 문제들을 개선시킬 수 있지만 권리는 손대지 않은 채로 남아야만 하오.

조르지오┃ 당신이 자유로운 계약을 이야기하는군요! 일하지 못하는 노동자는 먹을 수 없으니, 그의 자유는 도둑들에게 공격당한 여행자의 자유와 같아요. 그는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지갑을 포기했지요.

암브로지오┃ 그건 그렇소. 그러나 각자가 소유를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처분할 권리를 부정하기 위해 그런 논리를 이용할 수는 없어요.

조르지오┃ 각자의 소유, 각자의 소유라! 그러나 지주들이 땅과 농작물을 자기 것이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자본가들은 인간의 활동이 만드는 다른 자본과 생산수단을 자기 것이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소유가 생긴 게 아닐까요?

암브로지오┃ 법이 그런 권리를 승인합니다.

조르지오┃ 아! 만일 그것이 유일한 법이라면, 거리의 자객도 암살하고 도둑질할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요. 그는 이런 권리들을 승인하는 몇 개의 법조항을 제정하기만 하면 되지요. 달리 보면 이것이 바로 지배계급이 완성시킨 바입니다. 이것은 이미 범해진 권리 침해를 정당화하는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새로운 착취수단으로 만들었죠. 만일 당신의 ‘최상의 원리들’이 법전에 의지한다면, 내일 사유재산의 폐지를 선포하는 법이 만들어지는 걸로 충분할 겁니다. 그러면 오늘 당신이 도둑질과 약탈이라 말하는 것이 곧바로 ‘최상의 원리들’로 변할 겁니다.

암브로지오┃ 오! 그러나 법은 정당해야만 하오! 법은 권리와 도덕의 원리들을 따라야만 하고 억제되지 않는 일시적인 변덕 등으로 끝나면 안 된단 말이오.

조르지오┃ 그렇다면 권리를 만드는 건 법이 아니라, 법을 정당화하는 법이지요. 대체 어떤 권리가 현재 존재하는 모든 부, 즉 자연적인 부와 인간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부 모두를 소수의 사람들에게 바치고, 권리를 박탈당한 대다수 사람들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그들에게 주는 겁니까?

암브로지오┃ 그것은 모든 사람이 가진 권리이고 자기 활동의 생산물을 자유로이 처분하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권리요. 이것은 인류에게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권리가 없다면 문명은 가능하지 않았을 거요.

조르지오┃ 설마요! 여기서 노동의 권리를 옹호하는 분을 지금 만났군요. 브라보, 진심입니다! 그러나 들어 봐요, 어찌 해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실제 재산을 모으는 반면 일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걸까요?

당신 이론의 논리를 따르면 현재의 가진 자들이 도둑놈들이라고 생각되지 않나요? 그래서 정의를 실현하려면 가진 자들이 노동자들에게서 빼앗은 부를 돌려주기 위해, 그들의 재산을 빼앗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나요?

암브로지오┃ 만일 일하지 않는 가진 자들이 존재한다면, 그건 그나 그들의 선조들이 남보다 앞서 일한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저축하는 장점과 자신들의 저축이 결실을 맺게 할 재주를 가졌어요.

조르지오┃ 저런, 법에 따라 근근이 살 만큼만 버는 노동자, 벌이와 지출이 똑같은 노동자를 생각해보세요. 당신은 재산의 기원이 합법이든 불법이든 폭력과 강도질, 도둑질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러나 누군가가 일해서 생산한 것을 절약하고 싶어 한다면 그렇게 가정해보지요. 그가 나중에 그것을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즐기길 원한다면 그건 좋아요.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그의 저축이, 당신 말대로 결실을 맺기 시작하면, 관점이 완전히 바뀌죠. 결실을 맺는 건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고 그들이 생산한 것의 일부를 빼앗는 것을 의미해요. 이것은 어떤 재화를 저장하고 그 비용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파는 것을 의미해요. 이것은 투기를 위해 일부러 부족함을 만드는 걸 뜻해요.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싼 임금에 일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그들이 자유로이 일해서 만든 살림살이의 가치를 줄이는 것을 뜻해요. 그것은 정의가 아니고, 다른 많은 비슷한 사안에서도 노골적이고 공개적인 강도질 이상으로 다른 사람의 노동에서 빼앗았다는 점은 정당화되지 못해요. 가진 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다른 사람의 노동을 자신에게 득이 되게 만들지요.

(우리가 양보해서) 자신의 노동과 재능으로 약간의 자본을 모았다면 다른 사람이 일해서 만든 것을 강탈할 수 있고 그게 정당하다고 여기는 건가요? 나아가 자신의 후세에게 노동자를 등쳐먹으며 나태하게 살아갈 권리를 물려주는 게 정당한가요?

당신 말의 핵심인 소수의 근면하고 검소한 사람이 약간의 자본을 축적했다는 이유로 대다수 인류가 끝없는 가난에 시달리고 짐승처럼 생활해야 한다는 일이 정당해 보이나요?

다른 한편, 어떤 이가 다른 사람을 착취하지 않고 자기 근육과 머리를 써서 열심히 일했더라도, 심지어 어려움을 무릅쓰고 사회 전체의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협력 없이 필요한 것 이상을 생산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이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거나 생존수단을 빼앗을 권한을 가진다는 점을 뜻하지 않아요. 만약 어떤 이가 해안가를 따라 도로를 만든다고 해도, 그들은 다른 이가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할 권리를 주장할 수 없어요. 어떤 이가 그 지역의 모든 토지를 비옥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그들이 그 지역의 모든 거주민들을 굶겨죽일 수는 없듯이 말이죠. 어떤 이가 새롭고 강력한 생산수단을 만들었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의 규칙을 따르도록 하고 심지어 그가 미래의 후손들까지 영원히 지배하고 착취할 권리를 가진 건 아니라고요.

그리고 나는 노동자나 노동자의 자식들이 그런 소유권자가 되는 순간에도 이 생각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고대의 귀족과 새로운 부자들을 포함해 우리 사회에서 모든 신사들의 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말해드린다면 좋겠어요?

암브로지오┃ 오, 음. 개인적인 문제는 접어두자고요. 만약 의심스런 방법으로 부를 획득한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소유권을 부정할 근거는 되지 못하잖소. 과거는 과거이고, 지난 일들을 다시 캐는 건 이롭지 않으니까.

조르지오┃ 당신이 원하는 게 그거라면 이 문제는 묻어두지요.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다소 의문스러운 방법으로 획득되어서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노동을 착취할 권리와 수단을 허가하고 궁극적으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의존하도록 만들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소유권은 폐지되어야만 합니다.

그건 그렇고 당신의 저축 이론에 따르면 개인의 토지소유권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나요? 그 권리가 소유권자나 그들의 선조의 노동으로 만들어졌다고는 당신이 말하지 않았는데요.

암브로지오┃ 그건 이렇소. 개간되지 않고 메마른 땅은 가치가 없소. 사람들이 그것을 점유하고 개간하고 수확을 만들면 자연적으로 그 곡물에 대한 권리를 가져요. 땅을 일구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생산되지 않을 테니까.

조르지오┃ 맞아요. 그건 노동자들이 자기 노동의 성과에 대해 갖는 권리죠. 그러나 이 권리는 그가 더 이상 땅을 일구지 않을 때 중지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자, 그럼 땅을 가진 현재의 소유권자가 거의 일하지 않거나 일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면서도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일하지 못하도록 하는 건 어떤가요? 한 번도 경작되지 않은 땅이 사적으로 소유되는 것은요? 이런 경우에도 노동이 소유권이고 소유권의 기원이 땅을 개간한 것일 수 있나요?

사적 소유권의 기원은 폭력이라는 점은 땅만이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일에도 진실입니다. 그리고 권리와 무력이 동일하다는 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 점을 정당화하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겁니다. 단 하루라도 당신이 최하층의 사람이 된다면 하늘이 돕길 기대해야 할 겁니다.

암브로지오┃ 잠시만요. 당신은 사회적인 유용성, 시민사회에 고유한 필요라는 점을 놓쳤소. 소유권이 없다면 안전도 없고 정규 일자리도 없을 겁니다. 사회도 혼돈 속에 해체되겠죠.

조르지오┃ 이런, 사회적인 유용성을 말하는군요. 앞서 대화를 시작할 때 소유권이 만든 피해에 관해 논의를 집중하겠다고 말했는데, 당신은 추상적인 권리를 다루는 논쟁을 다시 불러들이는군요!

이제 밤이라 저는 가야겠네요. 다음번에 다시 시작하죠.

여섯 번째 대화 : 누가 소유를 독점하나

조르지오┃ 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어보세요. 누군가가 지난 밤 우리가 나눴던 대화를 신문사에 얘기했더군요. 그것을 신문에 싣고 난 뒤 신문은 탄압을 받고 있습니다.

암브로지오┃ 아!

조르지오┃ 물론 당신은 아무것도 몰랐겠죠. 당신은 기가 막히게도 자기 생각은 확실하다고 주장하면서 시민들이 우리의 토론을 듣는 것은 매우 걱정하지요. 신문은 당신과 나의 주장을 성실하게 죄다 기록했어요. 이제 시민들이 현재의 사회적인 규칙들이 만들어진 합리적인 배경을 인식할 수 있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하찮은 비판을 바로잡게 되었으니 기뻐할 일입니다. 사람들의 입을 막고 침묵을 강요하는 대신에요.

암브로지오┃ 나는 조금도 개입하지 않았소. 나는 사법부에 속해 있지 행정부에 속한 게 아니라오.

조르지오┃ 그렇죠. 아무렴요! 그렇지만 당신은 그들과 동료이고 당신이 퍼뜨리는 생각과 (그들의 생각은) 같겠지요.

만약 나의 말이 당신을 노엽게 만든다면 얘기하세요. 다른 곳에 가서 수다를 떨 테니까요.

암브로지오┃ 아니오, 그렇지 않소. 나는 오히려 토론하고 싶소. 계속합시다. 원한다면 금지명령과 관련해서 검찰관에게 좋게 말해보겠소. 어쨌거나 현재의 법에서는 누구도 토론할 수 있다고요.

조르지오┃ 그렇다면 다시 시작하지요. 지난번에 우리는 현재의 기본적인 실정법, 달리 말해 민법으로 인정되는 소유권을 옹호하다가 정의에 관한 이야기, 사회적인 유용성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갔지요. 괜찮다면 그와 관련된 생각들을 내가 짧게 정리하지요.

내가 보기에 사적 소유권은 노골적인 폭력과 사기, 다른 사람들의 노동에 대한 합법적인 착취에 의존하는 부당하고 비도덕적인 권리입니다. 그것은 생산을 방해하고, 땅과 노동에서 얻어지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지 못하게끔 방해하고, 대중을 빈곤하게 만들고, 근대사회를 어지럽히는 증오와 범죄와 수많은 악을 조장합니다. 때문에 사적 소유권은 해로운 것입니다.

이런 이유들로 사적 소유권을 폐지하고 공동 소유에 바탕을 둔 소유체제로 대체하길 바라죠. 그래야 일정한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최대한의 생활을 누릴 수 있을 테니까요.

암브로지오┃ 솔직히 당신이 공동 소유라는 (결론에) 이르는 방식을 이해 못하겠어요. 당신의 설명에 따르면, 폭력과 다른 사람의 노동에 대한 착취에서 소유권이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당신은 자본가들이 자신의 이윤만 따지며 생산을 통제하고, 공적인 필요를 만족시키는 데 드는 노동자들의 노력을 줄일 생각을 않는다고 말하고 있군요. 당신은 스스로 경작하지 않는 사람이 땅에서 소득을 얻을 권리를 부정하고 있소. 자기 돈을 굴려서 이득을 얻거나 건설이나 다른 산업에 투자해서 이득을 취할 권리도 마찬가지요.

그렇지만 당신은 자기 노동의 생산물에 대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했고, 사실상 그걸 옹호했소. 꼼꼼히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당신은 이런 기준에 따라 소유라는 개념의 타당성에 도전하고, 돈과 사적인 소득에 대한 권리를 폐지하자고 요구할 수 있소. 심지어 지금의 사회를 타파하고 기꺼이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땅과 생산수단을 나눠주자고 요구할 수도 있소. 그러나 당신은 코뮌주의communism를 주장할 수는 없소. 노동자의 경우를 들어, 자기 노동에 따른 생산물을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오. 곧장 이득이 없어도 일해야만 하는 저 해방된 노동자들이 미래에도 안전하길 원한다면, 그들이 사용할 토지와 생산수단의 개인 소유를 인정해야만 하니까.

조르지오┃ 좋아요. 이거 재미있군요. 당신은 사회주의socialism의 높은 파도에 휩쓸리고 있군요. 당신은 우리와는 다른 사회주의 학파에 속해 있지만 그것도 사회주의입니다. 사회주의자 치안판사라니 흥미로운 현상이네요.

암브로지오┃ 아니요,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오. 나는 그런 논리대로라면 당신은 상호주의자일 뿐 코뮌주의자가 아니고, 소유의 분배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증명하고 싶을 뿐이오.

그리고 소유를 작은 몫으로 나누는 일은, 보다 큰 기업이 등장하지 못하게 하며 그로 인해 엄청난 빈곤이 이어질 거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군요.

조르지오┃ 나는 상호주의자가 아니고 소유의 분배를 지지하는 사람도 아니랍니다. 내가 아는 한 다른 근대 사회주의자들도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소유의 분배는 자본가의 손에 전부를 넘겨주는 것보다는 덜 나쁘겠지요. 그렇지만 이 분배가 가능하다 해도 생산에 큰 해를 입힐 것이라는 점은 나도 알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이런 분배가 지속될 수 없고 다시금 거대한 부의 형성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대중의 프롤레타리아화, 더 나쁘다면 빈곤과 착취로 이어지겠지요.

나는 노동자가 자기 노동의 생산물 전체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말했어요. 그러나 나는 이 권리가 추상적인 정의의 공식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착취를 없애고 모든 사람이 일하고 자신들이 합의한 관행에 따라 자기 노동의 성과를 즐겨야 한다는 점을 뜻해요.

노동자는 혼자서 자기를 위해서만 사는 고립된 존재가 아니에요. 노동자는 다른 노동자와 서비스를 계속 교환하며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죠. 그리고 노동자는 다른 노동자의 권리와 자기의 권리를 조절해야만 해요. 더구나 기름진 토지, 생산도구의 질, 지리적인 이점, 사회 환경에서 오는 장단점의 차이가 커서 각 노동자나 노동자 집단의 각기 다른 생산성을 (미리)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노동자 개인이 투여한 정확한 노동력을 정하기 어렵고 생산방법이 근대화될수록 더 그렇지요. 따라서 해결책은 각 개인의 권리를 엄격하게 존중하는 것보다 우애적인 동의와 연대에서 찾아야 해요.

암브로지오┃ 그러나 거기에는 자유가 없지 않소.

조르지오┃ 외려 그곳에서야말로 분명 자유가 존재할 겁니다. 자유주의자라 불리는 당신은 자유를 무언가를 하는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권리라 부릅니다. 필요한 음식을 구할 수 없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도 먹을 자유가 있다는 말을 당당히 하고 미소를 짓겠지요. 반대로 우리는 자유를 무언가를 할 가능성이라 부릅니다. 정녕 참된 자유라면 그것은 사람들 사이의 합의나 서로에게 제공하는 지원이 늘어날수록 더욱 중요해집니다.

암브로지오┃ 당신은 만약 소유가 나눠진다면, 대규모 축적이 곧 회복되고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소. 왜 그렇소?

조르지오┃ 모든 이가 똑같이 나눈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목적이니까요. 땅의 종류가 각기 다르고, 어떤 이는 적게 일하고 많이 생산하는데, 다른 이는 많이 일하지만 적게 생산하니까요. 지역마다의 장단점도 다르고요. 사람마다의 육체적, 지적 차이도 크니까요. 그러니까 이런 차이에서 경쟁과 투쟁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겠죠.

좋은 땅, 좋은 도구, 좋은 장소가 가장 강하고 지적이거나 가장 간교한 사람에게 가겠죠. 따라서 재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최고로 좋은 물질적인 수단을 손에 넣으면서 이들은 재빨리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려 할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자리에서 시작하니 그들은 쉽게 힘을 키우면서 약자를 착취하고 독점하는 새로운 과정을 만들어 부르주아 사회를 다시 구성할 겁니다.

암브로지오┃ 정말 진지하게 묻는 건데, 그렇다면 당신은 코뮌주의자요? 당신은 각 개인의 몫이 양도될 수 없도록 하고 약자를 위한 보장제도를 마련하는 법을 원하는 거죠?

조르지오┃ 당신은 무엇이든 법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군요. 당신은 진정한 치안판사네요. 법은 강자에게 이롭게만 만들어지거나 폐지된다고요. 조금이라도 강한 사람들은 법을 파괴하고, 엄청나게 강한 사람들은 법을 폐지하여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따르도록 만들지요.

암브로지오┃ 그래서요?

조르지오┃ 이미 말했듯이 대중들 사이의 투쟁을 합의와 연대로 대체해야 해요. 이를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개인의 소유를 폐지하는 게 반드시 필요해요.

암브로지오┃ 성인聖人들만 살아야 아무런 문제가 안 생기겠군. 모든 것이 모든 이에게 속하고, 누구라도 원할 때 일할 수 있고, 누군가는 사랑도 식사나 음료도 결혼도 하지 않을 수 있다니. 이런, 축복의 땅이네! 정말 좋은 삶이야! 얼마나 멋진 정신병원이야! 하! 하! 하!

조르지오┃ 야만적인 폭력을 감수하는 사회를 효과적으로 지키길 원한다는 당신의 구상을 생각하면, 그렇게 마냥 웃지는 못할 텐데요.

그래요, 신사 양반. 나는 코뮌주의자요. 당신은 코뮌주의를 낯설어 하는 것 같군요. 다음번엔 당신을 납득시키도록 노력하지요. 이제, 안녕.

일곱 번째 대화 : 자유로운 코뮌주의란 무엇인가

암브로지오┃ 당신이 말하는 코뮌주의가 무엇인지 설명을 더 듣고 싶소.

조르지오┃ 기꺼이 그러지요. 코뮌주의는 오늘날의 사회처럼 자연적인 이득을 독점하기 위해 서로 싸우고 서로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대신에, 대중이 모두에게 가장 이롭도록 서로 연합하고 협력하도록 사회를 조직하는 방법이지요. 땅과 광산, 모든 자연 자원이 모두의 것이라는 원리, 이전 세대가 축적한 부와 자산이 모두에게 속한다는 원리에서 시작하는데, 코뮌주의에서 대중은 함께 일하고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하고 싶어 합니다.

암브로지오┃ 알겠어요. 그것은 아나키스트 재판 때 발견되었던 선전물에 적혀 있던 내용이군요. 모든 이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생산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한다, 각자는 능력껏 제공하고 필요한 것을 받는다, 이걸 원하는군요. 안 그래요?

조르지오┃ 사실 그건 우리가 자주 되풀이해서 말하는 원리이지요. 지금 코뮌주의 사회가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설명하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분명히 코뮌주의는 한 사람의 모든 필요를 만족시킬 절대적인 원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필요는 무한해서 그것을 만족시킬 방법보다 더 빠르게 늘어나고, 우리의 만족감은 생산 능력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코뮌주의가 지나친 필요, 달리 말하면 소수의 사람들의 변덕스런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생산의 효율을 고려하지 않고 일해야 한다는 건 유익하지도 정당하지도 않습니다. 물건을 생산하는 사람의 힘을 완전히 고갈시키자고 말하는 게 아니니까요. 말 그대로 그건 한 사람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하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그런 건 인류애를 파괴하면서 인간의 만족감을 극대화시키는 걸 의미할 뿐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가능한 만큼 최선의 삶을 사는 겁니다. 모든 이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만족을 얻는 거죠. 그런 상태를 정확하게 묘사할 이론적인 공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우리가 사회에서 사장들과 경찰을 없앴을 때 대중은 다른 사람을 가족이라 여기고 서로를 착취하는 대신에 서로 도우려 할 겁니다. 사회생활을 위한 실천적인 방식이 곧 발견될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알고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대부분을 더 좋은 상황이 되도록 배우면서 조금씩 수정할 겁니다.

암브로지오┃ 알겠어요. 프랑스에서 온 당신 동료들이 말했던 “일하는 만큼 가져간다prise au tas”는 주장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군요. 각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생산하고 난 뒤 더미에 던져두거나 공동체 창고로 가져가는 것 말이죠. 그리고 각자는 자신이 좋아하고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더미에서 가진다. 이런 건가요?

조르지오┃ 당신이 이 주제에 제법 관심을 갖기 시작했군요. 우리를 감옥으로 보냈을 때, 관례대로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주의 깊게 제 재판 문서를 읽은 것 같군요. 모든 치안판사나 경찰들이 그렇게 한다면, 조사를 빌미로 그들이 우리에게 훔쳐간 것들이 조금은 유용하게 활용되겠군!

여튼 다시 토론으로 돌아갑시다. 더미에서 취한다는 구호는 말의 형식일 뿐입니다. 이 표현은 오늘날의 시장정신을 박애와 연대의 정신으로 대체한다는 의도를 드러낸 겁니다. 그렇지만 이 표현은 확실히 사회구성의 방법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못합니다. 아마도 당신은 우리 중에서 이런 구호를 말 그대로 이해하는 사람을 봤을 수 있어요. 일이 자동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가 언제나 많고, 그들은 생산물이 많고 다양해져서 생산과 소비에 관한 규칙이 무의미해질 거라고 예상하니까요.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말했듯이, 인류는 항상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필요를 가집니다. 이런 필요가 발전으로 이끄는 박차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반깁니다. 다만, 그렇게 생각할지라도 실제 필요를 계산하고 가능한 최소한의 노력으로 그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조직하지 않고 모든 가능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맹목적으로 생산하는 것은 에너지를 어리석게 낭비하는 겁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해결책은 인민의 협력에, 우리가 평등의 조건을 얻고 연대감에 고무되었을 때 실현될 인민의 공개적이거나 암묵적인 동의에 있습니다.

구호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구호란 것이 강령의 정신을 받아들이려 노력하지만 다른 정파들처럼 우리도 간결하고 분명한 것보다 폭넓게 표현하려다 보니 다소 애매해지기 마련이에요.

암브로지오┃ 하지만 코뮌주의가 자유와 인류의 개성을 부정한다는 점은 깨닫지 못한 거요? 아마도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거의 발전하지 못한 인간도 행복을 느끼고, 그들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물질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었던 때가 인류 초기에는 있었겠죠. 아마도 (코뮌주의는) 인간의 열정을 억압하려 들고 개인을 종교 공동체로 통합하는 걸 자랑스러워하거나 복종을 최고의 의무라며 주장하는 곳인 종교 공동체나 수도원의 질서에서나 가능할 거요.

그러니 근대인을 골치 아프게 하지만 고상하게도 만드는 독립성과 자유에 대한 욕구를 가진 사회, 자유로운 개인의 활동이 낳은 위대한 문명이 개화된 근대사회에서 코뮌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겁니다. 모든 활동이 마비될 겁니다. 모두가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고 자신의 개성을 옹호할 수 있는 경쟁을 약속하는 일은 사라질 거요.

조르지오┃ 계속해봅시다. 그러나 말을 낭비하지는 맙시다. 유명한 말이 있지요…. “뻔뻔스러움과 무책임만이 숱하게 남았구나. 굶주려 죽는 사람의 자유와 개성이라니! 잔혹한 역설이어라! 심오한 위선이어라!”

당신은 절대 다수가 짐승처럼 사는 사회, 노동자가 결핍과 굶주림으로 죽는 사회,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수천 수백만씩 죽는 사회, 여성이 굶주림으로 몸을 파는 사회, 무지가 이성을 혼탁하게 만드는 사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재능을 팔고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사회, 아무도 내일을 확신할 수 없는 사회를 옹호하고 있어요. 그런 당신이 자유와 개성을 감히 입에 담다니요.

아마 자신의 개성을 발전시킬 자유와 가능성이 당신들 소수의 기득권층에게는 있겠지요. 그리고 아마 그들에게조차도 영원하지는 않겠지만, 이 특권 계층들도 모든 사회생활을 오염시키는 사람 간의 투쟁에 똑같이 희생됩니다. 서로 신뢰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에 살 수 있다면 그들도 실질적인 이득을 볼 겁니다.

그런데도 연대가 개인의 자유와 발전을 해칠 거라는 생각을 고집할 건가요? 가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으면서도―언제든 당신이 원할 때 토론하겠지만―당신은 그 신성한 제도, 그 주춧돌에 대한 일상적이고 전통적인 찬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군요. 좋아요. 항상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매우 찬양하는 가족에서는 가족 간의 사랑과 연대가 넘쳐납니다. 당신은 서로 사랑하고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함께 일하는 대신에 서로 빼앗고 미워하고 공격할 때 다양한 가족구성원들이 더 자유롭게 그 개성을 더 발전시킬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암브로지오┃ 하지만 사회를 가족처럼 조절하며 코뮌주의 사회의 기능을 조직하고 만들려면 엄청난 중앙집중화와 철의 군주, 전지전능한 국가가 필요할 겁니다. 모든 사회적인 부를 처분하고 해야만 하는 일과 소비할 수 있는 물품을 모두에게 할당할 수 있는 정부야말로 얼마나 억압적이겠소!

조르지오┃ 분명히 당신이 상상한 것처럼 코뮌주의가 소수의 권위주의 학파가 고안한 방식으로 실현된다면 성과 없이, 어쩌면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전제정으로 끝이 날 겁니다. 그것은 불가피하게 엄청난 반발을 불러올 것이구요.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코뮌주의에는 그런 점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코뮌주의, 당신이 이 말을 공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나키즘을 원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상향식으로 자유롭게 조직되며 조금씩 더 복잡한 단계의 연합으로 성장하는 결사체에 소속된 개인들로 시작해서 협동과 연대라는 보편적인 협정으로 모든 인류를 끌어안는 코뮌주의를 원합니다. 이 코뮌주의가 자유롭게 조직되듯이, 그것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의지도 자유롭게 유지되어야만 하지요.

암브로지오┃ 그렇지만 그게 가능하려면 모든 사람이 천사나 이타주의자여야 하겠지! 하지만 대중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이고 사악하고 위선적이고 게으르단 말이오.

조르지오┃ 분명히 코뮌주의가 가능하려면, 한편으로 사회성을 향한 충동과 다른 한편으로 각자의 이해관계를 분명히 알고 있기에 서로의 나쁜 뜻을 참지 않고 서로 마음을 맞추고 상호부조를 실천하려는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불가능성만을 생각하는 관점을 버리면, 지금도 이런 상태가 일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현재의 사회구조는 영원히 계급이나 개인 간의 적대와 갈등을 부르는 구조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사회가 계속 유지될 수 있고 말 그대로 서로를 잡아먹는 늑대 무리로 타락하지 않는 것은, 그 모든 순간에 드러나는, 심지어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수많은 연대와 공감, 헌신, 희생의 활동을 낳는 인간의 심오한 사회적 본능 때문입니다. 사회를 해체시키는 요인들이 내부에서 작동함에도 사회를 지속시키는 것은 바로 이 본능이라고요.

본성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이자 이타적이에요. 나는 이미 사회에 앞서 생물학적으로 결정된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인간이 이기적이지 않다면, 즉 인간이 자기보존의 본능을 가지지 않는다면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겠지요. 그리고 만일 인간이 이타적이지 않다면, 다시 말해 아이에 대한 사랑을 깨달으면서 처음으로 드러내는 본능,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들은 (자연계의) 한 종種으로 존재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회적인 삶을 발전시키지 못할 겁니다.

이기적인 감성과 이타적인 감성이 공존하고, 지금 사회가 이 두 감성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오늘날 누구나, 심지어 특권을 가진 사람에게도 똑같이 해당됩니다. 반면 코뮌주의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가 섞이는 사회구조이지요. 모든 사람에게 이롭기 때문에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일 겁니다.

암브로지오┃ 당신이 말한 대로라면 그렇겠지. 그러나 코뮌주의 사회가 부과하는 의무에 적응하는 방법을 모든 사람이 원하고 또 알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하나? 예를 들어 사람들이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물론 당신은 모든 상황에 대한 이론적인 답을 가지고 있겠지. 당신의 주장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으로. 그리고 당신은 노동이 생명체의 욕구이자 즐거움이고 모든 사람이 그런 즐거움을 가능한 많이 누리려 할 거라고 말하겠지.

조르지오┃ 그렇게 말하는 내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는 걸 알겠군요.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내게 생명체의 욕구와 즐거움인 것은 운동, 즉 신경과 근육의 활동이죠. 그중에서 일은 신체 외부의 객관적인 목적을 위해 규율에 따르는 활동입니다. 누군가가 말 타기를 원할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양배추를 재배해야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인간이 계획을 세울 때 그 계획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다룰 수 있고 또 다룬다고 믿어요.

일을 통해 얻은 물품들이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고 어느 누구도 자신을 위해 일하도록 타인에게 강요할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모든 사람은 일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일이 덜 피곤하지만 더 생산적으로 나아지는 구조, 즉 코뮌주의 구조를 좋아할 겁니다.

코뮌주의에서 노동자들이 일을 조직하며 직접 일하고, 그러면서 그 일을 가볍고 즐겁게 만드는 모습을 생각해보세요. 코뮌주의에서는 게으름이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다고 비난할 공개적인 여론이 자연스럽게 발달할 거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럼에도 빈둥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떠한 큰 해악이 없어 참을 수 있을 만한 소수의 구성원일 겁니다.

암브로지오┃ 하지만 당신의 낙관적인 예측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빈둥거리면 어떻게 하시겠소? 당신은 그들을 지원할 거요? 만일 그렇게 한다면 당신이 부르주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지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텐데.

조르지오┃ 실제로는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지요. 왜냐하면 부르주아지는 우리가 생산하는 것을 차지할 뿐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생산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게으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힐 만한 수가 된다면, 우리가 게으름뱅이를 부양해야 한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을 겁니다. 게으름과 타인에게 기생하는 생활 습관이 지배를 욕망하는 것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점 때문이죠. 코뮌주의는 자유로운 협약이에요. 그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코뮌주의 밖에서 지내면 돼요.

암브로지오┃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는 새로운 계급이 생기는 건 아니오?

조르지오┃ 천만에요. 모든 사람이 땅과 생산수단, 인류가 도달한 문명의 단계에 누릴 수 있는 모든 이득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니까요. 어떤 이가 코뮌주의의 삶이나 그것이 요구하는 의무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건 그들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합의에 이를 것이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쁜 상태에 처해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면, 코뮌주의의 우월성을 깨닫고 코뮌주의자와 연합하게 될 겁니다.

암브로지오┃ 그래서 누군가는 코뮌주의를 인정하지 않기로 자유로이 선택한다면?

조르지오┃ 누구라도 그럴 수 있어요. 누구라도 자연자원이나 이전 세대가 축적한 상품에 관해 코뮌주의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질 거라구요. 참, 어이가 없군요. 나는 계속 자유로운 협약과 자유로운 코뮌주의에 관해 말했어요. 어떻게 반대가 없는 자유를 생각할 수 있어요?

암브로지오┃ 그렇다면 당신의 생각을 힘으로 강요하지는 않소?

조르지오┃ 당신 미쳤군. 경찰이나 치안판사를 데려올 셈이오?

암브로지오┃ 음, 그게 어때서. 모든 사람이 자유로이 자신의 꿈을 추구한다면서!

조르지오┃ 큰 실수를 범하지 말길! 사상을 강요하는 것과 도둑이나 폭력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권리를 되찾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요.

암브로지오┃ 아, 그렇다면 당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단 말이오?

조르지오┃ 그 점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군요. 재판장에서 고발항목을 나열하는 건 당신에게 이로운 일이겠죠. 당신에게 분명하게 말해줄 것은 대중이 자신의 권리를 의식하고 이 상황을 끝내고자 한다면, 당신은 더욱더 거칠게 다뤄질 위험을 안게 된다는 거요. 그러니 이 역시 당신의 저항에 달려 있어요. 당신이 선한 의도로 포기하면 모든 것이 평화롭고 친절하게 진행될 겁니다. 반대로 당신이 비뚤어진다면, 최악을 경험하게 될 거요. 잘 가요.

여덟 번째 대화 : 정부가 대중을 대변할 수 있나

암브로지오┃ 솔직히, 자유로운 코뮌주의에 관한 당신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할수록 당신이 정말 독특한 사람이라고 생각돼요.

조르지오┃ 왜 그렇죠?

암브로지오┃ 당신은 항상 노동과 즐거움, 조화, 협약에 관해 말하지 사회적인 권위나 정부에 관해서는 절대로 말하지 않으니까요. 누가 사회생활을 조절할까요? 누가 통치자가 될까요? 정부는 어떻게 구성될까요? 누가 선거로 당선될까요? 대체 무슨 방법으로 법이 존중되고 범죄자가 처벌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어떤 방식으로 다양한 권력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구성될까요?

조르지오┃ 우리는 그 모든 권력을 어떻게 할지 몰라요. 우리는 정부를 원하지 않는다고요. 아직도 내가 아나키스트라는 점을 모르나요?

암브로지오┃ 글쎄, 나는 당신이 독창적인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나는 코뮌주의를 이해할 수 있고 모든 점에서 잘 계몽된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면 많은 이득을 볼 수 있다고 인정해요. 그 정부는 모든 이들이 법을 따르도록 만들 만한 힘을 가져야겠죠. 그런데 정부도 없고 법도 없다니! 대체 어떤 혼란이 뒤따를까요?

조르지오┃ 그 점은 이미 예측했는데요. 처음에 당신은 강력하고 중앙집권화된 정부가 필요하다고 말했기 때문에 코뮌주의와 대립했지요. 이제 당신은 정부 없는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심지어 코뮌주의를 인정하기도 했는데, 정부가 철권을 휘두르는 한에서 그렇다고 하네요. 간단히 말해 다른 무엇보다도 당신을 두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자유에요.

암브로지오┃ 갈수록 태산이군요! 확실한 건 정부 없는 사회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에요. 어떻게 당신은 그 모든 일이 규칙이나 어떤 조절 없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하죠? 누구는 배의 키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다른 사람은 왼쪽으로 돌리려고 한다면 배가 뒤집히지 않고 멀쩡할가요?

조르지오┃ 나는 규칙과 조절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나는 정부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내가 말한 정부는 법을 만들고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는 권력입니다.

암브로지오┃ 만일 그 정부가 선거로 구성된다면 대중의 의지를 대변하지 않겠어요? 당신은 뭐가 불만인 거요?

조르지오┃ 그건 거짓말에 지나지 않아요. 일반적이고 추상적이며 대중적인 의지는 형이상학적인 상상에 지나지 않아요. 공공公共은 대중으로 구성되고 각기 다른 기질과 환경에 따라 대중은 수천 개의 다양하고 다른 의지를 가지고 있어요. 투표함이라는 마법 상자를 통해 뽑아낼 수 있다고 기대되는, 모두에게 공통된 일반의지는 사실 부당한 것이에요. 그건 한 개인이 주어진 시간 동안 생길 수 있는 모든 문제들을 다른 누군가의 뜻에 따라 처리하도록 위임하더라도 불가능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도 자신들의 의지가 각기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될지를 미리 말할 수 없기 때문이죠. 대체 어느 누가 요구안을 만드는 바로 그 순간에조차 벌써 이미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대변할 수 있을까요?

선거가 진행되는 방식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모든 대중이 교육을 받고 독립적이라서 투표가 완전히 의식적이고 자유롭다고 하더라도 투표가 이루어지는 방식에 관해서는 말할 게 있어요. 예를 들어, 우리의 이해관계를 잘 보장하고 우리의 생각을 실현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투표할 수 있겠죠. 이건 이미 상당 부분 패배를 인정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많은 생각과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에 모든 사안에 관해 항상 우리처럼 생각하는 사람을 만날 방법을 알 수 없으니까요. 즉 우리가 지지를 보내고 지배를 받을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불가능해요. 우리의 후보는 당선되기 어려울 거고 우리의 의지는 소위 대중의 의지로 모이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면 당선되었을 때를 생각해봅시다. 지금 상황에서 이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요? 꿈도 꾸기 어려울 겁니다. 그는 무수히 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일 뿐이고(예를 들어 이탈리아 의회 535석 중 1석), 사실상 그는 당신의 위임을 받은 적 없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지배될 겁니다. 그리고 이 다수(매우 다양하거나 서로 모순되는 위임을 받았고, 어떤 특별한 요구가 없다면 일상적으로 권력을 대리하는 다수)는 설령 그들이 원하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일반의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를 행복하게 만들 수도 없고 특정한 순간에 자신들을 지배하는 자의 바람대로 행동하거나 그들의 바람을 따를 겁니다.

이봐요, 이제 정부가 대중의 뜻을 대변한다는 이 케케묵은 변명을 이제는 포기하자구요.

어떤 특정한 순간에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만한 보편적인 질서에 관한 물음은 분명 필요하겠지요. 그렇지만 그것이 정부의 목적일까요? 모든 사람이 무언가를 원한다면 그들은 그것을 규칙으로 만들면 된다니까요.

암브로지오┃ 간단히 요약하자면 당신은 어떤 규칙이, 생활의 규범이 있을 필요를 인정하는군요. 누가 그것을 만듭니까?

조르지오┃ 관련된 당사자들이지요. 그러면 그들은 그 규칙들을 반드시 따를 겁니다.

암브로지오┃ 누가 규칙을 따르도록 강제하나요?

조르지오┃ 아무도 필요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자유롭게 받아들이고 자유로이 따르는 규범들을 말하고 있으니까요. 내가 말하는 규범을 혼동하지 마세요. 이 규범은 연대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모든 이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져야만 한다는 점을 고려한 실천적인 관습이니까요. 이 규범은 소수가 만들어서 모든 사람에게 힘으로 강요하는 법과 다르답니다. 우리는 법이 아니라 자유로운 협약을 원해요.

암브로지오┃ 만일 누군가가 협약을 어긴다면?

조르지오┃ 왜 자신이 함께 만든 협약을 깨려 할까요? 그래도 어떤 범죄가 발생한다면 그 범죄는 협약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고 수정되어야 한다는 징조로 활용될 겁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은 더 나은 협약을 고민할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누구도 불행하지 않은 모두의 이익이기 때문이죠.

암브로지오┃ 당신은 모든 이가 자급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소규모이고 기본적이며 제한된 원시사회를 갈망하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조르지오┃ 천만에요. 사회관계들이 다각화되고 더 복잡해진 순간부터 인류는 도덕적이고 물질적인 만족을 더 많이 경험하고 있지요. 우리는 가능하담녀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를 추구할 겁니다.

암브로지오┃ 그렇다면 당신은 합의를 만들기 위해 기능을 위임하고 역할을 할당하고 대표를 임명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조르지오┃ 그렇겠죠. 하지만 이것이 정부를 세우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정부가 법을 만들고 법을 강요한다면, 자유로운 사회에서 권력의 위임은 아주 특수하고 일시적인 일이자 한정된 의무입니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권력의 위임은 어떠한 권위나 특별한 보상을 받을 권리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리인의 결정은 언제나 그들이 대변하는 사람들의 승인을 받아야만 합니다.

암브로지오┃ 그런데 당신은 모든 이가 항상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는군요. 당신의 사회질서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조르지오┃ 어떠한 것이든 협약을 만들 사람들이 그것을 가장 잘 적용할 것이고, 우리는 서로를 괴롭히지 않는 합의에 이를 겁니다.

암브로지오┃ 만약 외부의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싶어 한다면?

조르지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을 방어하겠죠.

암브로지오┃ 아! 그런 방위의 필요성 때문에 새로운 정부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은 생각하지 않나요?

조르지오┃ 확실히 그 점도 생각하지요. 정확히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가장 심각한 갈등의 원인이 제거도리 때까지 아나키즘이 가능하지 않다고 늘 말해왔어요. 사회협약이 모든 이의 이익에 기여하고 연대의 정신이 인류 사회에 무르익을 때까지 말이죠.

만약 당신이 사적 소유와 그 소유에서 비롯된 다른 사회제도들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채 오늘 당장 아나키즘을 실현하려 한다면 즉각 내전이 터져서 정부, 심지어 독재정부조차 축복으로 감사히 받아들여질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아나키즘을 실현하는 동시에 사적 소유를 폐지한다면, 그때는 갈등의 원인들을 극복하면서 우리는 합의에 이를 겁니다. 왜냐하면 그 합의로 모든 이가 이득을 보기 때문이죠.

무엇보다도 제도는 대중이 그것을 관리하는 한에서만 가치를 가진다는 점을 이해해야 해요. 특히 아나키즘에서도 대중이 연대의 이득을 이해하지 못하고 동의하지 않는다면 자유로운 협약의 힘은 생길 수 없으니까요.

우리가 널리 선전을 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죠.

아홉 번째 대화 : 자유로운 결사란 무엇인가

암브로지오┃ 당신의 아나키즘 코뮌주의로 돌아가도 될까요? 솔직히 나는 참을 수가 없어요.

조르지오┃ 아! 그렇고말고요. 국가와 가진 자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법전을 끼고 살아온 당신이니 국가와 가진 자들이 없는 사회, 더 이상 반란도 없고 굶주린 대중을 노예선으로 보낼 일도 없는 사회란 분명히 딴 세상처럼 보일 겁니다.

그러나 그런 관점을 버리고 싶다면, 당신이 선입견을 극복할 힘을 가지고 있고 편견 없이 이 사안을 바라본다면, 사회의 목적이 모든 사람의 행복이어야 한다는 점을 쉽게 이해할 겁니다. 그러면 아나키즘 코뮌주의가 해결책이라는 생각을 반드시 받아들일 겁니다. 반대로 사회가 대다수를 희생시켜 충성스런 개인들만이 즐거움을 누리도록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한다면, 글쎄요….

암브로지오┃ 아뇨, 아니에요. 사회가 모든 이의 행복을 목표로 삼아야만 한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당신의 시스템을 받아들일 수가 없소.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 관점을 속속들이 알기 어려워. 이 토론에 관심을 가진 뒤로 적어도 내 나름대로는 당신이 원하는 바를 분명히 이해하고 싶었는데. 그렇지만 당신의 결론은 아주 유토피아적인 것 같아. 아주….

조르지오┃ 간단히 말해서 내 설명 중에 모호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무엇이죠?

암브로지오┃ 뭐랄까. 잘 모르겠어. 전체 시스템이랄까…. 일단 우리가 합의하지 못할 권리의 문제는 남겨두고 당신이 주장하듯이 우리 모두가 현재의 부를 동등하게 즐길 권리를 가진다고 생각해봅시다. 나는 코뮌주의가 가장 빠르고 아마도 최선의 합의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요. 그러나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점은 정부 없는 사회에요.

당신은 결사체 구성원들의 자유의지로 전체 체계를 구성하자고 말하거든.

조르지오┃ 정확하게 보셨네요.

암브로지오┃ 바로 그게 잘못된 생각이지. 사회는 위계질서와 규율, 집단에 대한 개인의 복종을 뜻하거든요. 권위 없이는 어떤 사회도 가능하지 않아요.

조르지오┃ 정확히 그 반대죠. 엄밀한 의미로 따지만 사회는 평등한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할 수 있어요. 이런 평등이 즐거움과 편리함을 찾으려는 대중들의 협약을 가능하게 합니다. 평등한 사람들은 서로에게 복종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사회의 본질이라고 여기는 위계질서와 복종의 관계는 노예와 주인의 관계에요. 바라건대 당신은 가축이 가축을 소유한 사람의 동지가 아니듯이 노예는 확실히 주인의 동지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해요.

암브로지오┃ 당신은 각각의 개인이 원하는 바대로 행동하는 사회를 진심으로 믿고 있군요.

조르지오┃ 대중이 그 사회에 살기를 원하고, 그래서 사회생활의 필요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렇지요.

암브로지오┃ 만약 그들이 원치 않는다면?

조르지오┃ 그렇다면 사회는 가능하지 않지요. 하지만 적어도 근대적인 의미에서 인류가 물질적인 필요와 도덕적인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회를 만들었다면, 생명과 행복의 전제조건을 포기할 거라고 가정하는 건 좀 이상하지요.

인민이 추상적인 용어로 사안을 토론할 때에는 합의를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곧바로 그 일을 진행할 것이 틀림없어요. 모든 이와 연관된 일은 중요하니까요. 자신의 의지를 타인에게 강요하고 자기 식대로 일하도록 억압할 수단을 가진 사람이 없는 한, 편협함과 어리석음은 곧 사라질 것이고, 대중은 서로 타협하며 가능하다면 모든 이를 최대한 만족시킬 일을 할 겁니다.

인류애를 향한 의지가 없다면 인류도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만 해요. 우리가 처한 모든 문제는 이 의지를 바꾸는 겁니다. 즉, 서로 전쟁을 벌이고, 증오하고, 착취하는 것이 모든 것을 잃게 만든다는 점을 대중이 이해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대중이 서로 돕고 연대하는 사회질서를 바라도록 설득하는 겁니다.

암브로지오┃ 그래서 모든 이가 그렇게 설득되고 그런 의지를 가질 때까지 당신의 아나키즘 코뮌주의를 실현하는 건 미뤄지겠군요.

조르지오┃ 아, 아닙니다. 농담이 과하군요! 의지를 결정하는 건 바로 사회운동이라고요. 지금 현재의 상황이 계속되는 한 이 사회의 절대 다수는 사회가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될 수 없다고 믿을 겁니다.

암브로지오┃ 그러면요?

조르지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코뮌주의와 아나키즘을 만들 겁니다. 그렇게 할 만큼 충분한 수가 되면, 우리가 스스로 잘 하고 있다고 다른 사람들도 생각할 만큼 확신하면 곧바로 우리의 카드를 보여줄 겁니다. 아니면 코뮌주의와 아나키즘을 완성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의지를 바꾸는 한 방법으로 사회조건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할 겁니다.

의지와 그를 둘러싼 사회 상황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상에 다가서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어떤 일이든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이 점은 분명하게 이해했으면 해요. 우리는 누군가의 의지를 억압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다른 사람이 우리의 의지나 공화국의 의지를 억압하는 것도 원하지 않아요. 우리는 폭력으로 대중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소수에 맞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일단 우리 힘으로 모두를 위한 해방이 실현되면, 즉 자본이 해방되어 땅과 생산수단의 이용에 관한 권리가 확보되면, 우리는 말의 힘에만 의존할 것이고 다양한 사례들이 우리의 이상을 실현할 겁니다.

암브로지오┃ 좋아요. 그런 식으로 단순히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합의가 스스로 지배하는 사회로 이끌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그렇다면 선례가 없지 않겠지요?

조르지오┃ 당신의 생각만큼 많지는 않겠지요. 사실 본질적으로는 언제나 그럴 수밖에 없지요. 즉, 사회의 한 부분으로 사실상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들, 인류의 가장 하층으로 떨어진 패배한 사람들, 지배당하는 사람들,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요.

오늘날에도 그래요. 지배당하는 계급에서만큼 지배하는 계급에서도 사회생활의 본질적인 부분들은 개인들의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합의, 자발적인 합의를 통해 실현됩니다. 관습이나 명예, 약속의 존중, 여론에 대한 두려움, 정직, 사랑, 연민, 예의범절 같은 것들이죠. 법이나 정부의 간섭 없이도 말이에요. 법과 정부는 우리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맺을 때에만 필요해집니다. 평등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모든 사람이 경찰을 부르거나 법정으로 가는 걸 부끄러워할 겁니다!

모든 국민을 지배자 한 명의 종처럼 취급하는 독재국가에서는 어느 누구도 주권의 의지를 가지지 못합니다. 주권을 가진 자는 대중을 계속 복종하는 인간으로 만들 필요가 있겠지요. 그러나 점차 외부인이 들어오고 기존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지배계급이 되면서, (이들이) 정부체계에 직접 참여하거나 부를 소유하는 방식으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사회는 모든 지배자의 의지를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입법부와 행정부 전체는, 법과 군대, 경찰, 판사 등을 갖춘 정부 전체는 대중을 통제하고 착취를 보장하는 쪽으로만 활용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가진 자들도 그들 스스로 합의하는 게 더 쉽고 경제적이라는 점을 알게 되어 국가를 없앨 겁니다. 부르주아지 스스로도 똑같이 말해요. 그때 부르주아지는 군대와 경찰이 없다면 인민이 (자신들의) 파티를 망칠 거라는 점을 잊어버리고 있어요.

계급차별을 없애고 더 이상 통제를 받아야하는 노예가 없다고 보장하는 순간, 더 이상 국가는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암브로지오┃ 과장하지 마요. 국가는 모두에게 이로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국가는 교육을 시키고 공중보건을 돌보고 시민의 생명을 지키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요. 이런 게 의미 없다거나 해롭다고는 말하지 마시오!

조르지오┃ 이런, 국가가 보통 일하는 방식대로군요.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진실은 그런 일을 실제로 하는 건 노동자밖에 없다는 점이죠. 조정자를 자처하는 국가는 그런 서비스를 지배의 도구로 바꾸고 지배자와 가진 자들의 특혜로 전환시키죠.

사람들이 교육에의 열망을 가지고 가르칠 능력이 있는 교사가 있다면 교육은 확산될 겁니다. 공중公衆이 공중위생의 규칙을 알고 판단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으면, 사람들에게 충고할 의사가 있으면 공중보건은 확립됩니다. 대중이 생명과 인간의 자유를 신성한 것으로 여기면 시민의 생명은 안전해집니다. 야만적인 사례를 만드는 판사와 경찰이 없어도 대중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공공서비스는 조직될 겁니다.

국가는 아무것도 만들지 못합니다. 잘해야 국가는 남아도는 잉여일 뿐이고 에너지를 의미 없이 낭비합니다. 그냥 쓸모없기만 해도 좋으련만!

암브로지오┃ 이쯤에서 마치죠. 어쨌든 당신 말은 충분히 알겠어요. 이야기를 되짚어보고 싶군요. 다시 만날 때까지….

열 번째 대화 : 가족은 자유로운가

암브로지오┃ 대화를 나누면서 당신이 했던 이야기들을 되짚어봤어요. 이제 논쟁을 관둬야겠어요. 패배를 인정하는 건 아니에요. 당신의 주장대로라면 미래는 당연히 당신 편이겠죠.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판사이고 법이 존재하는 한 법을 존중해야 하며 법이 존중되도록 보장해야 해요. 이해하시겠지만….

조르지오┃ 잘 이해했어요. 그래요. 그렇게 말하고 싶으면 그러세요. 법을 없애는 건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요. 당신은 양심과 반대로 행동하는 의무에서 자유로워지세요.

암브로지오┃ 잠깐,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아요.

나는 약간 다른 설명을 하고 싶소. 아마도 우리는 사회의 소유제도와 정치기관의 문제에 합의할 수 있을 거에요. 다른 무엇보다도 그 문제는 수없이 많이 변했고 아마도 다시 변하게 될 역사적인 구성물이죠. 그런데 당신의 끊임없는 공격 대상에는 몇몇 신성한 제도, 인류의 심오한 감정도 포함되어 있어요. 예를 들자면 가족과 조국 같은 것이죠.

예를 들어 당신은 모든 걸 공유하고 싶겠죠. 자연히 여자도 공유할 거고 첩도 만들 거고. 안 그래요?

조르지오┃ 잘 들으시오. 당신이 나와 토론을 하고 싶다면 제발 어리석은 소리 좀 관두시오. 썰렁하다고요. 우리가 다루는 문제는 매우 진지하니 그런 천박한 농담 말라고요!

암브로지오┃ 하지만 나는 심각한데요. 여자를 어떻게 할 거요?

조르지오┃ 이거 점점 더 안 좋아지는군요. 당신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네요.

여자를 공유한다고! 왜 남자도 공유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나요? 당신의 생각을 설명할 유일한 방법은 뿌리 깊은 편견에 따라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가축이나 남성의 성적 쾌락을 위한 도구로 이 세계에 자리매김하는 것이군요. 그래서 당신은 여성이 마치 물건인 것처럼 말하고 우리가 물건을 사용하듯이 여성의 운명을 결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거라고요.

그러나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는 우리는, 남성이 누리는 모든 권리와 자원을 즐기고 즐겨야만 한다고 보는 우리는 의문을 품습니다. “당신은 여성과 무엇을 할 건가요?”라는 물음은 의미 없는 얘기에요. 대신 이렇게 물어야죠. “여성은 무엇을 할까요?” 그러면 나는 여성은 여성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것이라고 답할 겁니다. 왜냐하면 여성도 사회에서 생활하기 위해 남성과 똑같은 필요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자기 자신이나 모두에게 가장 이로운 방향으로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동료 남성이나 여성들과 합의하고 싶어 할 거라는 건 분명합니다.

암브로지오┃ 알겠어요. 당신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다고 생각하는구뇽. 그렇지만 여성의 신체를 해부하고 생리를 연구한 많은 과학자들은 자연적인 능력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해요.

조르지오┃ 네, 물론이죠. 어떤 주장이든 그 뒤에는 언제나 과학자가 있지요. 어떤 과학자들이 여성의 열등함을 주장한다면 반대로 다른 과학자들은 여성의 이해능력과 발전능력이 남성과 똑같다고 주장하지요. 만약 오늘날 여성이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능력이 부족해 보인다면 그건 여성이 받은 요귱과 여성이 사는 환경 탓입니다. 당신이 주의 깊게 관찰했다면, 어떤 과학자들은, 특히 남성이 열등한 존재라고 주장하는 여성 과학자들은 여성을 육체적으로 힘든 일에서 해방시키고 어떠한 방법으로든 여성이 자신의 능력을 자유로이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는 점을 깨달았을 겁니다. 이런 생각은 미국에서 오래 전부터 주장되어온 것이죠.

그렇지만 무슨 상관이에요. 이것은 과학적인 문제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 맹세와 인간의 이상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능력을 개발할 모든 수단과 자유를 여성에게 제공하면 기대하던 일을 보게 될 겁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다면, 아니, 여성이 대체로 지적이라면, 실제로 그 사실이 증명될 겁니다. 사실적인 증거에 바탕을 둔 긍정적인 자료들을 얻게 되니 과학도 이득을 볼 겁니다.

암브로지오┃ 당신은 개인의 타고난 능력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건가요?

조르지오┃ 그런 능력이 특권을 만든다면 그렇지요. 자연적으로 똑같은 두 사람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요. 하지만 우리는 모든 사람의 사회적인 평등을, 달리 말하면 평등한 자원과 동등한 기회를 주장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평등이 인류 역사에서 발전되어온 정의와 박애라는 감정에 호응할 뿐 아니라 그 사람이 강하든 약하든 모든 이의 이득을 보장하리라는 점을 생각합니다.

심지어 남성과 여성 사이에도 더 지적이거나 지적이지 못한 사람들이 있지만 이 사실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점을 뜻하지 않습니다. 금발이 흑발보다 더 뛰어나다고 보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원형 두개골을 가진 인종이 평평한 두개골을 가진 인종보다 뛰어나다거나 그 반대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체적인 사실을 따른다면 그 논쟁은 분명히 과학에 이롭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감정상태와 인류의 이상을 고려할 때, 금발과 뾰족한 머리의 사람이 갈색과 납작한 머리나 다른 식의 두개골을 가진 사람을 지배해야 한다고 꾸미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지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암브로지오┃ 좋아요, 가족의 문제로 넘어갑시다. 당신은 가족을 폐지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구성하길 원하나요?

조르지오┃ 보세요. 가족과 관련된 일이라면 우리는 경제적인 관계, 성적인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고려할 필요가 있어요.

가족이 경제제도인 한에서 사적 소유가 폐지되면 결괒거으로 유산도 지속될 이유를 갖지 못하고 사실상 사라질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족은 노동계급으로 구성된 대다수 인민에게 이미 폐지된 겁니다.

암브로지오┃ 성적인 관계와 관련해서는요? 당신은 자유연애를 원하나요?

조르지오┃ 이봐요! 노예들의 연애가 정말 가능하리라고 봐요? 꾸며낸 연애, 강요된 연애가 있듯이 강요된 동거도 이해관계나 사회적인 편리함 때문에 생깁니다. 아마도 종교나 도덕의 신념 때문에 결혼이라는 굴레를 존중하려는 남성, 여성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면 참된 사랑이 존재할 수 없고 말로 설명될 수도 없어요.

암브로지오┃ 그건 사실이지만 사랑의 신이 고무시킨 환상을 모든 사람이 좇는다면 더 이상 도덕은 존재하지 못하고 세계도 매춘굴로 변할 겁니다.

조르지오┃ 도덕에 관해서라면 당신은 제도의 결과들을 자랑할 수 있겠죠! 간통, 온갖 종류의 거짓말, 오랫동안 간직한 증오심, 아내를 죽인 남편, 남편에게 독을 먹인 아내, 유아살해, 스캔들과 가족의 말다툼 속에서 자란 아이 등등. 자유로운 연애가 위협한다며 두려워하는 것은 이런 도덕인가요?

오늘날의 세계는 매춘굴입니다. 왜냐하면 종종 여성은 굶주림 때문에 자신의 몸을 팔도록 강요당하니까요. 종종 이해관계만을 계산해서 맺어진 결혼은 평생 사랑이 끼어들 자리가 전혀 없거나 액세서리처럼 끼어드는 관계입니다.

정당하고 독립적으로 살 방법을 모든 이가 가지고, 여성이 자신의 몸과 관련된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편견과 종교, 남성과 여성을 노예의 삶에서 나온 관습, 그것을 영원히 지속시키려는 것들을 없애야 해요. 그러면 성관계도 사랑으로 채워지고 개인과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올 겁니다.

암브로지오┃ 간단히 말해 당신은 영원하거나 일시적인 성관계를 좋아하는군요? 이혼이나 각양각색의 성관계, 난잡한 성관계도 원하나요?

조르지오┃ 우리는 자유를 원하지요. 지금까지의 성관계는 개인과 인류의 육체적이고 도덕적인 행복과 가장 잘 어울리는 성관계 형태를 가로막는 잔혹한 폭력이나 경제적인 필요, 종교적인 편견, 법적인 규제 때문에 심한 고통을 받았어요.

분명히 오늘날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위선적이고 억압적으로 만드는 조건들을 제거하면 곧바로 즐겁게 성을 즐기는 방법과 성적인 도덕이 확립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법이 아니라 경험에 바탕을 둔 신념 때문에 존중될 것이고 우리와 인류의 행복을 보장할 겁니다. 이것은 자유의 영향으로서만 실현될 수 있어요.

암브로지오┃ 아이들은요?

조르지오┃ 일단 우리가 재산을 공유하고 사회적인 연대의 원리에 따라 강한 도덕적이고 물질적인 기반을 강력하게 만드는 순간, 아이들의 양육은 공동체의 책임이 되고 아이들의 교육은 모든 이의 관심과 책임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만 해요.

아마도 모든 남성과 여성은 모든 아이들을 사랑할 겁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자기 자식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쏟는 부모라도 자기 자식들이 사회 전체의 도움으로 성장하고 교육을 받으며 걱정 없이 미래를 살아간다는 점을 알고 기뻐할 겁니다.

암브로지오┃ 그렇지만 적어도 자식들에 대한 부모의 권리는 존중되어야 하는 것 아니오?

조르지오┃ 자식들에 대한 권리는 의무라고 봐야겠지요. 부모는 자식들에 대한 많은 권리들, 예를 들어 아이들을 지도하고 돌보고 사랑하고 걱정할 많은 권리들을 가지지요. 보통 부모들은 다른 사람들 이상으로 자기 자식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는 건 보통 그들의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이걸 누가 침해할 것이라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주 소수의 특이한 부모들만이 자기 아이들에 대한 사랑에 인색하고 돌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육아에서 해방시킨다는 점에 만족할 겁니다.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권리라는 말을 아이들을 학대하고 더럽히고 착취할 권리로 이용하는 거라면 나는 그 권리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사회라는 이름값을 하려면 사회는 아이들의 가치를 알아보고 인내해야 합니다.

암브로지오┃ 그러나 양육을 공동체의 책임으로 넘기면 모든 사람이 누리기에 충분하지 않을 만큼 인구증가를 자극할 거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겠죠. 물론 당신은 맬서스의 인구증가론에 관해 듣기를 원치 않고 그것이 부당하다고 하겠지만요.

조르지오┃ 현재의 빈곤이 인구과잉 때문이라고 주장하거나 맬서스의 경험에 따라 해결책을 제안하려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은 다음번에 설명하지요. 하지만 인구문제의 심각성은 기꺼이 인정하겠어요. 그리고 미래에 새로이 태어날 모든 아이들이 원조를 받을 경우 실질적인 인구과잉 때문에 빈곤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하지요. 해방되고 교육을 받은 사람은 지나치게 빠른 인구증가를 조절할 것이고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들이 진지하게 생각할 거라는 점도 덧붙이고 싶어요.

가진 자들의 탐욕이 낳은 생산품의 매점과 특권, 장애물들과 빈곤의 모든 사회적인 원인들이 사라지는 순간, 모든 사람들은 살아있는 생명과 생산능력, 쓸모 있는 공간 사이의 균형을 잡을 필요성을 단순하고 분명하게 알게 될 겁니다.

암브로지오┃ 만약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요?

조르지오┃ 그건 그들에게 최악의 선택이겠죠! 당신은 궁금하지 않은 거군요. 인류의 행복을 돌보는 건 신성하거나 자연적인 섭리가 아닙니다. 대중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용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하면서 자기 자신의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당신은 항상 말하지요. 그들이 원치 않는다면요? 그럴 경우 그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고 자신들을 둘러싼 냉혹한 폭력에 항상 노출될 겁니다.

그래요, 그게 현실이죠. 대중은 자유로워지기 위해 무얼 하면 되는지 모르거나, 설령 알더라도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하기를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노예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빨리 대중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라 믿지요.

그러면 대중은 자유로워질 겁니다.

열한 번째 대화 : 범죄자의 자유도 존중되나

암브로지오┃ 요전에 당신은 모든 것이 의지에 달려 있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만약 대중이 자유로워지길 원한다면, 평등한 사회에 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말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대중은 아주 불행해진다고 말이죠.

만약 그들 모두가 똑같은 것을 원한다면 이 말이 옳겠지요. 하지만 어떤 사람은 무질서 속에 살고 싶고 다른 사람은 정부의 보호를 받고 싶다면, 어떤 사람은 공동체의 필요를 고려할 준비가 되어 있고 다른 사람은 사회생활의 이득만을 누리고 이에 따른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미칠 피해는 생각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만 하려고 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하물며 사회적인 의무를 결정하고 강요할 정부도 없다면요?

조르지오┃ 만일 정부가 있다면 지배자나 그들의 정당의 의지, 그들의 유착된 이해관계가 승리를 거두겠지요. 모든 사람의 의지를 만족시키는 방법이 문제라면 정부는 그에 대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들겠지요. 힘을 가진 파벌은 다른 사람의 의지를 무시하거나 파괴하기 위해 자신의 자원을 사용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기 위해 사회 전체의 힘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어요. 노동계급이 정부의 병사가 되고 자본가들의 노예노동자인 오늘날의 현실이지요.

이미 나는 당신에게 말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살 수단을 가진 사회를 원합니다. 그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위해 일하라고 강요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지를 따르라고 다른 사람을 강요할 수도 없지요. 모든 사람의 자유와 모든 이를 위한 생산수단이라는 두 개의 원리가 실현되는 순간 모든 건 환경의 영향에 따라 자연적으로 진행될 겁니다. 새로운 사회는 모든 사람의 이해관계와 가장 일치하는 방향으로 조직될 겁니다.

암브로지오┃ 누군가 노골적인 폭력을 사용하려 든다면요?

조르지오┃ 그런 사람들은 정부나 정부의 하수인일 것이고, 우리는 힘으로 그들과 맞설 겁니다. 만일 오늘날 우리가 정부에 맞서 혁명을 일으키길 원한다면 그것은 무기력하게 새로운 억압자들에게 복종하지 않겠다는 것임을 알았으면 해요. 만약 억압자들이 이긴다면 혁명은 실패할 것이고, 다시 시작되어야 합니다.

암브로지오┃ 그런데 당신도 인간의 의지나 능력보다 우월한 원리들,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는 몇 가지 윤리적인 원리들을 분명히 인정하는 것 아닌가요? 어떤 도덕 같은 것들을?

조르지오┃ 인간의 의지보다 우월한 그 도덕이란 것이 뭘까요? 누가 그것을 정하나요? 어디서 그 도덕이 내려오나요?

도덕은 시간과 지역, 계급, 환경에 따라 변합니다. 도덕은 그 순간,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최선의 행동이라고 여기는 것을 나타냅니다. 간단히 말해서 각자에게 좋은 도덕은 물질적이거나 정서적인 면에서 그들이 좋아하거나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과 일치합니다.

당신의 도덕은 준법, 즉 당신 계급이 누리는 특권에 따르라고 명령하는 것이고, 우리의 도덕은 억압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고 모든 이의 행복을 찾으라고 요구하지요. 우리에게 모든 도덕적인 규범들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암브로지오┃ 범죄자들도요? 당신은 범죄자들의 자유도 존중할 건가요?

조르지오┃ 우리는 범죄행위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믿어요. 다수의 범죄자들이 강력해져서 오늘날 가진 자들과 지배잗르이 그러하듯 안정된 기반 위에 자신들의 지배를 조직하는 때에는,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려는 혁명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범죄행위가 적절하지 않은 행동이나 병과 같은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라면, 우리는 그 원인을 찾고 적절한 처방전을 제공할 겁니다.

암브로지오┃ 그러는 사이에는요? 당신에게도 경찰력과 치안판사, 법전, 감옥 등이 필요할 겁니다.

조르지오┃ 그러니까 당신은 정부를 재구성하자고, 오늘날 우리가 사는 억압적인 상태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거군요.

사실 범죄에 따른 중요한 손해는 몇몇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회적이고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에요. 그보다는 권위를 구성할 기회를 제공하고, 그런 구실을 만들 기회로 활용되는 겁니다. 사회를 보호한다는 표면적인 구실로 억누르고 억압하는 거죠.

이미 우리는 경찰과 치안판사의 목적을 알고 있고, 그들이 수많은 범죄의 대책이라기보다는 원인이 되어온 과정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원인을 제거해서 범죄를 없애려 할 겁니다. 범죄자의 흔적이 남아있을 때 직접 관심을 가진 집단은 범죄자를 학대하는 특별한 기능을 누군가에게 위임하지 않으면서 범죄자들이 해를 입힐 수 없는 곳에 그들을 가둘 생각을 해야 합니다.

당신도 인간에게 보호를 요청했던 말馬의 이야기를 알고 있겠죠. 그 말의 등에 다시 사람을 앉힐 건가요?

암브로지오┃ 좋소. 지금은 정보를 얻고 싶을 뿐 토론하고 싶진 않아요.

다른 이야기를 해보죠. 당신의 사회에서 모든 이가 사회적으로 평등하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모든 이는 똑같이 교육을 받을 권리와 똑같이 발전할 권리를 가지고 있겠지요. 모든 이는 자신의 삶을 선택할 완전한 자유를 누리겠죠. 필요한 일들을 어떻게 제공할 생각이죠? 그곳에도 즐거운 일자리와 고된 일자리, 건강한 일자리와 유해한 일자리가 있을 겁니다. 자연히 사람들은 더 나은 일자리를 선택할 겁니다. 가끔씩 가장 절실히 필요한 일들은 누가 할까요?

그리고 가장 크게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구분될 테죠. 모든 사람은 의사나 지식인, 시인이 되고 싶어 하지 농사를 짓고 신발을 만들고 싶지 않으리라 생각하지 않아요?

조르지오┃ 당신은 오늘날의 도덕과 물질적인 조건들이 계속 유지될 거라 가정하면서 미래사회를, 평등과 자유, 무엇보다도 연대와 자유로운 협약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예견하려 하네요. 그러니 당연히 일을 그르치지요.

모든 사람이 재산을 갖고 자신의 타고난 능력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의 물질적, 지적 발전을 이루게 되는 순간, 그들은 지적인 즐거움과 생산적인 노동에 기꺼이 나설 겁니다. 육체와 두뇌는 조화롭게 발전될 것이고, 능력과 성향에 따라 각기 다른 차원에서 모든 사람들은 과학자가 되거나 문학을 쓰는 지식인이 되거나 노동자가 될 겁니다.

그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수천 명의 의사와 기술자, 지식인, 예술가들이 넓고 비옥한 섬으로 이주해서 작업도구를 제공받은 뒤 남겨질 경우를 상상해보세요.

그들이 자기 손으로 일하지 않고 굶어 죽을 거라 생각하나요? 협약을 만들고 자신들의 성향과 능력에 따라 일을 나누는 것보다 서로를 죽일 거라 생각하나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이 있다면 모두가 차례차례 돌아가며 할 겁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유해하고 즐겁지 않은 일자리를 안전하고 즐거운 것으로 만들 방법을 찾을 겁니다.

암브로지오┃ 됐어요, 됐어.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엄청나게 많지만 당신은 완전한 유토피아를 방황하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이상적인 방법을 찾을 것 같군요.

당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제안할 방법과 수단에 관해 말해주면 더 좋겠어요.

조르지오┃ 기꺼이 그러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궁극적인 목적을 가리키는 방법으로서 이상理想이 유용하고 필연적이더라도 가장 시급한 문제는 오늘과 가까운 미래에 해야만 하는 일이겠죠.

다음번엔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죠.

열두 번째 대화 : 혁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암브로지오┃ 오늘밤엔 당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아나키즘을 실현하기 위해 생각해둔 방법들을 이야기해주시오.

상상할 수는 있어요. 폭탄, 학살, 즉결처형, 약탈과 방화, 비슷한 행동들요.

조르지오┃ 판사나리, 번지수를 잘못 짚었어요. 정부관료나 아프리카나 아시아, 국내의 다른 지역을 개화시키라고 유럽 군대에게 명령하는 사람과 그동안 대화해온 거에요? 그건 내 방식이 아니에요. 나를 믿어요.

체사레┃ 친애하는 판사님, 결국 우리 아나키스트 친구는 자신이 많은 꿈을 꾸지만 합리적인 청년임을 증명하네요. 이 친구는 사회가 자연스레 발전하고 교육이 확산되고 과학과 생산이 발전하면서 이상이 실현될 때까지 기다릴 만큼 합리적이라네요.

결국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아나키즘이 실현되고 있고 실현될 거라면, 그 필연적인 도래를 피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힐 필요는 없어요.

아, 너무 멀리 나갔군요! 평화롭게 살자고요.

조르지오┃ 하지만 자아도취에 빠지는 건 좋지 않아요. 체사레 선생, 나는 과학에 관해서든 다른 것에 관해서든 진화를 믿지 않아요.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고요! 더 나쁜 건 헛된 기다림일지 모른다고요!

인간의 진화는 인류의 의지에 따라 진행되고, 진화가 두 개의 계급으로, 내가 말했던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영원히 나누어진 사회보다 반드시 해방을 향할 수밖에 없다고 보장할 자연법은 없어요.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의식적이고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지배자에게 저항하지 않는 한, 어떤 사회 상태든 충분한 근거들을 가지기 때문에 영원히 지속될 수 있어요.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사회의 힘을 배치하고 관리하는 사람의 기술은 모든 정권에서 나타났던 분열과 자동적인 붕괴의 요소들을 언제나 조절할 수 있거든요. 그런 위기의 순간에도 해독제 기능을 할 재건과 지속력이라는 반대되는 요소들이 있거든요.

나는 선생에게 증명할 수 있어요. 시간이 좀 주어진다면 부르주아지가 이런 자연적인 경향을, 자신들의 죽음을 기대하는 몇몇 사회주의자들을 방해하는 방법을 증명할 수 있어요.

과학은 선과 악 모두에게 이용될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에요. 그리고 현재의 불평등한 조건들이 억압을 당하는 사람들보다 기득권에게 더 활용되기 쉽고 그들에게 이로워요.

적어도 천박한 지식을 넘어서는 교육은 권리를 박탈당한 대중에게 거의 쓸모없거나 접근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들에게 교육은 교육자들이나 교육자들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들이 택한 방식으로만 실시될 수 있습니다.

암브로지오┃ 그러면 남는 건 결국 폭력이군!

조르지오┃ 다시 말하면 혁명이지요.

암브로지오┃ 폭력혁명? 무장봉기?

조르지오┃ 바로 그렇지요.

암브로지오┃ 그러니까 폭탄들을….

조르지오┃ 암브로지오 선생, 명심하세요. 당신은 치안판사이지만 이곳이 법정이 아니라는 점을 되풀이해서 말하고 싶지는 않군요. 적어도 지금 당장은 내가 피고인이 아니란 말이오. 당신은 내 입에서 경솔한 주장을 끌어내고 싶겠지만.

혁명은 당신과 같은 지배계급이 폭력을 고집하고 평화롭게 항복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폭력적이 될 겁니다. 그래서 총성이 들리고 폭탄이 터지고, 멀리 당신 군대의 폭탄과 탄약을 저장한 곳이 폭발할 겁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겠죠. 당신이 좋다면, 기술적인 질문들은 기술자들에게 맡기고 싶군요.

당신에게 보장할 수 있는 건 폭력의 사용이 우리에게 달려 있는 한, 당신이 우리에게 강요해온 폭력은 투쟁의 필요에 따라 제한된 형태를 넘어서지 않을 거라는 점이요. 즉, 무엇보다도 폭력은 당신이 저항하는 정도에 따라 결정될 겁니다. 최악의 경우가 발생한다면 그건 당신이 사람들에게 제공해온 유혈이 낭자한 교육과 당신의 완강함 탓일 겁니다.

체사레┃ 그렇지만 당신의 무리가 정말 소수라면 어떻게 혁명을 일으킬 거죠?

조르지오┃ 아주 소수의 사람으로도 가능하지요. 정말 그러길 바라는 것 같은데, 당신에게서 달콤한 환상을 빼앗고 싶진 않네요. 그건 우리의 수를 계속 두 배씩 늘려가야 한다는 점을 뜻합니다.

무언가를 더할 기회가 없을 때에도 우리의 분명한 숙제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알고 그 일을 하면서 개입하는, 의식화된 소수의 개인들을 모으기 위해 선전을 활용하는 겁니다. 우리의 과업은 사건이 터졌을 때 대중이, 가능한 대다수 대중이 올바른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준비시키는 겁니다. 우리가 말하는 올바른 방향이란 현재 사회의 부를 쥐고 있는 자들의 부를 몰수하고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특권과 새로운 정부의 구성을 가로막으며 노동자의 활동으로 직접 생산과 분배를, 사회생활 전체를 다시 조직하는 겁니다.

체사레┃ 만약 사건이 터지지 않는다면요?

조르지오┃ 글쎄, 우리는 일이 터지도록 만들 방법을 찾겠지요.

프로스페로┃ 이 친구, 정말 대단한 몽상가군! 우리가 아직도 석기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현대식 무기와 전술은 네가 나서기도 전에 너희들을 박살낼 거라고.

조르지오┃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 새로운 무기와 전술이 적절한 대응을 방해할 수는 있겠지.

다시 말하건대 이런 무기는 실제로 인민의 아들들의 손에 있고 징병제를 강요하는 당신은 모든 이에게 무기를 다루는 법을 가르치고 있소. 반란자들이 충분히 모이는 날이 온다면 당신이 정말 얼마나 무기력할지 상상해보시길!

전기공이자 가스배관공이고, 기관차를 몰고 폭탄을 만들고 지뢰를 만드는 건 우리 노동계급, 억압당하는 계급이야. 자동차와 비행기를 몰고 군인이 되는 것도 우리들이고. 불행하게도 우리로부터 당신을 보호하는 것도 우리지. 당신은 당신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동의로만 살아남는다고. 그들의 의식이 깨어나는 걸 조심하라고.

그리고 당신도 알다시피 아나키스트들 모두가 자기 자신의 활동을 통제하고, 경찰은 진짜 위험이 존재하는 곳을 제외한 곳만 감시하고는 한다고.

하지만 반란의 기술에서 어떤 방침을 제공할 의도는 없다고. 그건 당신과 관계 없는 사안이겠지.

좋은 밤 되라고.

열세 번째 대화 : 대중의 의지가 대변될 수 있나

빈센초[5]┃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약간의 의견도 내며 대화에 끼어들어도 될까요? 조르지오 동지는 아나키즘에 관해 말하면서 아나키즘은 강제 없이 대중의 의지에 따라 자유로이 도래해야만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동지는 대중의 의지에 자유로운 배출구를 마련하기 위해 오늘날 대중의 의지를 억누르고 배신하는 군주정이나 군사정권에 맞서 봉기를 일으키고 그것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이것은 공화주의자들이, 적어도 혁명적 공화주의자들이, 말하자면 진정한 공화주의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이기도 해요. 그렇다면 왜 당신은 자신을 공화주의자라고 선언하지 않나요?

공화국에서는 대중이 주권자이니,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아는 대중이라면 아나키즘을 택하고 아나키즘을 실현할 겁니다.

조르지오┃ 사실 나는 항상 대중의 의지가 아니라 인류애의 의지에 관해 말해왔어요. 내가 대중의 의지라고 말했다면 그건 하나의 어법이고 언어를 정확하지 않게 사용한 겁니다. 이 대화에서 모두 바로잡아야겠네요.

빈센초┃ 언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게 무슨 말이죠? 공화국은 인류애로 구성되는 것 아닌가요?

조르지오┃ 이건 단지 단어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건 내용의 문제이지요. 대중의 정부를 뜻하는 민주주의와 정부가 아니라 각자와 모두를 위한 자유를 뜻하는 아나키즘의 차이 말이죠.

대중은 분명 인간애로 구성되고 각각의 대중이 선택하는 독립적이고 의식적인 하나의 결합체이지만 각자는 상황에 따라 서로의 힘을 강화시키거나 무효화하는, 차례로 서로를 강화시키거나 중화시키는 각자의 감성과 이해관계, 열망, 특수의지를 갖잖아요!

한 개인이나 집단이나 계급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잘 무장된 의지는 자신의 의지를 전체의 의지인 것처럼 지배하고 강요하고 관철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어요. 인민의 의지 자체라고 불리는 현실은 지배하는 자의 의지, 또는 어느 누군가의 의지에 정확하게 일치하지도 않고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산술적인 계산들의 기묘한 결과물입니다.

그 자신의 주장에서도 민주주의자들, 즉 공화주의자들(이들이야말로 참된 민주주의자이기 때문에)은 소위 대중의 정부가 대표들을 통해 의지를 드러내고 집행하는 다수의 정부일 뿐이라고 이미 인정했어요. 따라서 소수의 ‘주권’은 실행에 옮길 수 없는 단지 명목적인 권리입니다. 종종 국민 중 가장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사람들이자 ‘소수’인 이들은 이해관계나 이념의 공동체로 단합될 경우 산술적인 다수가 될 수도 있고 한 명의 지도자에게 복종하면서 많은 파벌들과 대립하기도 합니다.

이런데도 그 후보들을 당선시켜서 다수의 이름으로 지배하는 정당은 실제로 다수의 의지를 표현하는 정부일까요? (작고 고립된 독립코뮌이 아닌 모든 공화국에서 요청되는) 의회체계의 운영에서 각각의 대표들은 지역구를 대변하는 유일한 사람이자 다수의 유일한 사람,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백 명, 수천 명을 대변하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결국 이들은 유권자 대다수의 의지를 대변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제 공화주의 체제가 모든 사람의 의지를 실행할 수 있는지 아닌지의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적어도 당신이 원하는 바를 내게 말하면 좋겠어요. 당신은 이 공화국이 무엇을 하기를 바라는 겁니까? 공화국은 어떤사회제도들을 실현하나요?

빈센초┃ 음, 그건 분명하죠. 내가 원하는 건, 그리고 모든 참된 공화주의잗르이 원하는 건 사회정의, 노동자들의 해방, 평등, 자유, 박애죠.

손님┃ 그건 프랑스나 스위스, 미국에 이미 있는 것들이네요.

빈센초┃ 그 나라들은 참된 공화국이 아니에요. 당신은 우리가 추구하는 참된 공화국이 아니라 수많은 정부들, 부르주아 정부, 공화국의 이름을 내건 전 세계의 군사정부, 종교정부에 냉소를 보내야 해요. 그런데도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이 대립하기 때문에, 나는 무언가를 같이 할 소위 아나키스트들을 소환하면 좋겠어요.

조르지오┃ 잘 말했어요. 하지만 왜 지금 존재하는 공화국들이 참된 공화국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보죠? 사실 당신의 이상이자 나도 말했던 평등과 자유, 박애의 이상으로 시작한 거의 모든 일들이 노동자들을 극단적으로 착취하고 자본가들에게 매우 강력한 힘을 주고 대중을 엄청나게 억압하고 군주정처럼 완전히 불신을 받는 정부를 지키는 기득권 체계로 귀결되는 이유는 뭘까요?

정치제도들, 사회의 통제기관들, 헌법의 승인을 받은 개인권과 집단의 권리들은 당신의 공화국에서도 똑같이 존재할 겁니다.

결과들이 나쁘거나 주로 매우 부정적으로 변하는 이유는 뭘까요? 당신네 공화국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빈센초┃ 왜냐면… 음….

조르지오┃ 내가 이유를 말해줄까요? 그 공화국에서도 대중의 경제적인 조건은 실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에요. 기득권층과 노동계급으로 분열된 사회가 변하지 않아서 실질적인 지배권은,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권리를 가지지 못한 대다수 대중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들 손에 있는 거죠. 자연히 기득권층은 공화국을 탄생시킨 혁명의 열정에 흔들려왔어도 최대한 자신의 지위를 강화시키려 하지요. 그래서 모든 것은 이전에 존재하던 상태로 돌아갑니다. 다만 그 차이를 만드는 발전과정은 정부의 형태에 달려 있지 않고 자신의 힘에 대한 믿음이 커지는 노동자 의식의 성장에 달려 있을 겁니다. 그 힘으로 대중은 매번 정부를 붕괴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빈센초┃ 우리도 경제적인 문제의 중요성을 절대적으로 인정합니다. 우리는 부자의 어깨에 공공지출의 부담을 더 지우는 누진세를 만들고 보호관세를 폐지하고 경작하지 않는 땅에 세금을 부과할 겁니다. 최저임금을 지불하고 최고가격제도를 만들고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법을 제정할 겁니다.

조르지오┃ 당신이 그 모든 일을 실시하더라도 자본가들은 또다시 그 조치들을 무력화시키거나 그것을 자신들의 이득으로 만들 방법을 찾을 겁니다.

빈센초┃ 그럴 경우 당연히 우리는 보상 없이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코뮌주의를 세울 겁니다. 그럼 만족하시나요?

조르지오┃ 아니, 노동자들의 직접적이고 자발적인 협력이 아니라 정부의 의지로 만들어진 코뮌주의는 내게 아무런 끌림이 없어요.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그건 인간사회가 복종해온 가장 숨 막히는 전제정치가 될 수 있어요.

당신 자신이 정부가 될 공화국이 선포되는 공화국의 전야에 당신이 공화주의자라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라고 말하겠죠.

공화국은 당신이 인민주권이라 부른 체계이고 이 주권은 보통선거를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내고 공화주의 정부는 국민투표로 지명된 사람들로 구성될 겁니다.

그리고 혁명적인 방식으로 자본가들의 재산을 몰수해서 그들의 힘을 파괴하는 공화주의 혁명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처음 만들어진 공화주의 (제헌)의회는 자본가들과 어울릴 겁니다. 제헌의회가 아니라도 분명히 그다음 의회는 자본가들이 바라는 대로 움직일 겁니다. 혁명이 그저 우연히 만들 수 있었던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파괴할 겁니다.

빈센초┃ 설령 그렇더라도 아나키즘은 오늘날 가능하지 않으니, 언제까지 갈지 모를 군주정을 묵묵히 지지해야만 하나요?

조르지오┃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저항운동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든다는 조건으로 우리가 요청하는 협력을 고려할 수 있지요. 자연히 우리가 저항운동에 제공하려고 할 노력의 범위는 당신들보다 훨씬 넓어질 겁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모두를 억누르는 지배의 굴레를 벗어던진다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없애지 않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함께 널리 선전하고 다음의 혁명운동이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훈련을 시작하도록 대중을 준비시키려 노력합시다. 더 나은 진전을 향한 길을 분명하고 단순하게 만듭시다.

열네 번째 대화 : 정부 없이 혁명이 가능한가

체사레┃ 다시 평소대로 대화를 해볼까요. 분명히 지금 당장 당신의 흥미를 가장 끄는 부분은 봉기겠죠. 그 점은 나도 인정해요. 아무리 어렵게 보여도 조만간 봉기는 계획되고 승리할 겁니다. 본질적으로 정부는 군대에 의존합니다. 어쩔 수 없이 막사에 들어간 징집된 병사는 영 믿을 수 없는 병력입니다. 대중의 광범위한 봉기에 직면하면 대중의 편인 병사들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규율의 매력과 두려움이 무너지자마자 병사들은 해산하거나 대중에게 결합할 겁니다.

따라서 나는 노동자와 병사들, 내일 병사가 될 청년들에게 끊임없이 선전을 해서 경제위기나 패전, 총파업, 기근 등 정부를 무너뜨리기에 좋은 조건의 이득을 누릴 위치를 점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해요.

그렇지만 그 다음은요? 당신은 말하죠. 대중 스스로 결정하고 조직할 거라고. 하지만 그건 말일 뿐이에요. 아마도 벌어질 일은 어쩌면 무질서나 대학살과 같은 짧거나 긴 혼란일 테고, 그 뒤에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겁니다. 정부가 새로운 질서를 다시 만들 겁니다. 모든 건 예전으로 돌아갈 겁니다. 이런 에너지 낭비가 무슨 소용인가요?

조르지오┃ 당신이 언급한 대로 일이 진행되더라도 봉기는 결코 쓸모없지 않아요. 혁명 이후에는 상황이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해요. 왜냐하면 대중이 자유의 시간을 경험했고 자신들의 힘을 판단했으니까요. 그래서 또다시 예전의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설령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다고 한들, 어떠한 만족감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안전하게 권력을 쥘 수 없다고 느낄 것이고, 보통 혁명의 해석자나 계승자라는 이름을 빌려 집권을 정당화하려 할 겁니다.

물론 정부가 정한 실질적인 과제는 혁명이 더 진행되는 것을 막고 지배의 목적을 위해 혁명의 성과를 제한하고 바꿀 겁니다. 이것이 지난 모든 혁명들에서 나타났던 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 혁명에서 한결 더 나아지리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체사레┃ 어째서요?

조르지오┃ 과거의 혁명들에서 모든 혁명가들, 모든 혁명의 선구자들과 주연배우들은 법으로 사회를 바꾸기를 원했고 이런 법률을 만들고 강제할 수 있는 정부를 원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정부를 만드는 것이 불가피했죠. 즉, 새로운 정부는 다른 무엇보다도 통치governing, 즉 권력의 집중을 가장 먼저 생각했고, 이를 위해 영원히 권력을 쥐겠다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진 하나의 정당과 하나의 특권계급을 구성하는 것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역사에 새로운 요인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아나키스트들이 대변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주 분명하게 정부를 반대하는 목적을 가진 혁명가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정부의 설립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반대에 직면할 겁니다.

더구나 과거의 혁명가들은 법을 수단으로 삼아 자신들이 바라던 사회변화를 이루기를 원했습니다. 과거의 혁명가들은 자신이 제안할 수 있는 기본적인 협력을 위해서만 대중을 호출했고, 대중이 더 희망할 수 있는 바와 자신들의 열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자연히 대중은 스스로를 파괴하기 쉬웠고 매일의 사회생활을 재조직할 필요가 생기자 스스로 정부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선전과 노동자 조직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를 알고 대중과 뒤섞여서 당장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고 솔선수범할 수 있는 자기의식적인 소수를 구성한다는 목적을 우리는 가지고 있어요. 정부와는 거리를 둘 겁니다.

체사레┃ 잘 알겠어요. 그러나 당신들은 소수파로만 남을 것이기에 아마도 대다수 지역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고, 정부가 예전처럼 세워질 것이니 당신은 그걸 견뎌야 할 겁니다.

조르지오┃ 정부가 다시 성공적으로 세워졌다면 그럴 법도 하지요. 우리가 정부를 견뎌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알고 있어요.

이 점을 잘 생각하세요. 과거의 혁명들은 새로운 정부를 세우는 것을 최우선의 관심사로 두었고 질서는 이 정부가 수립된 뒤로 미뤄졌습니다. 그러는 동안 상황은 사실상 똑같아졌고, 산업과 상업에의 간섭으로 대중의 경제적인 조건은 더 나빠졌습니다. 따라서 대중은 순식간에 이 모든 것에 싫증을 내게 됩니다. 하루빨리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를 원하고, 대중의 봉기를 더 오래 지속시키길 원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끊고, 그들에게 적개심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부자의 사병이든 약삭빠르고 대담한 정치인이든 이미 버려졌던 주권자이든, 질서를 회복할 능력을 증명한 사람은 그 누구든 대중으로부터 평화 유지자이자 해방자로 찬사를 받을 겁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혁명을 이해하고자 해요. 우리는 혁명이 목표로 삼는 사회변화가 처음 봉기했을 때부터 실현되길 원합니다. 우리는 대중이 지금 존재하는 부를 당장 점유하길 원합니다. 신사들의 대저택을 공공의 소유로 선언하고,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조치로 모든 주민에게 최소한의 주거를 보장하는 동시에 필요한 많은 새로운 집들을 짓도록 건축가 조합의 활동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모든 가용한 식재료를 공동체의 소유로 만들고 언제나 자발적인 활동과 공공의 참된 통제를 통해 모두를 위한 평등한 분배를 조직합니다. 우리는 농업 노동자들이 경작되지 않는 땅과 지주의 땅을 점유하기를 원하고 그렇게 하여 지주들의 땅이 이제 노동자들에게 속함을 보장합니다. 우리는 노동자들이 공장주의 명령을 스스로 거부하고 자기 자신과 공공公共을 위해 계속 생산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그 즉시 다양한 생산조합과 각기 다른 코뮌들 사이에 교환관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사적 소유나 국가지배와 관련된 모든 권리와 흔적을 태우고 파괴하고 싶습니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시작부터 대중이 혁명의 이로움을 느끼도록 만들고 싶고 그렇게 함으로 과거의 질서가 다시 세워질 수 없도록 상황을 막을 겁니다.

체사레┃ 그 모든 게 쉽게 될 것이라 생각하세요?

조르지오┃ 아니오. 나는 직면할 그 모든 어려움들을 잘 알고 있어요. 우리의 계획이 동시에 모든 곳에 적용될 수 없다는 점도 잘 알고, 그 계획을 적용한 곳에서 수많은 논쟁과 실수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곳에도 계획을 적용하려는 사람들이, 불가능해 보이는 곳에도 계획을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단 한 가지 사실은 이 시점에서 혁명이 더 이상 단순한 정치적인 변화일 수 없음을, 사회생활 전반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이룰 준비가 되고 있음을 이미 증명하고 있어요.

더구나 부르주아지는 18세기 말 위대한 프랑스 혁명에서 아주 미세한 정도이지만 그와 비슷한 역할을 했고 구체제는 제국과 왕정복고의 시도에도 다시 수립될 수 없었습니다.

체사레┃ 당신의 의도가 선하든 악하든 간에 정부가 세워진다면 당신의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고 당신도 다른 모든 사람처럼 법에 복종해야 할 겁니다.

조르지오┃ 왜 그렇다고 보죠? 하나 혹은 다수의 정부들이 세워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 가능성이 높습니다. 명령을 내리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복종하고 싶어 하니까요!

하지만 이 정부가 자기 존재를 내세우고 자신을 받아들이게 만들고 보통의 정부가 될 방법을 찾는 것은 무척 어려울 겁니다. 만약 지금 세기에 충분한 수의 혁명가들이 있다면, 그들은 강하고 안정적인 존재가 되려고 방법을 찾는 새로운 정부를 막는 일에 대중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점을 충분히 깨닫고 있습니다.

정부는 군인을 필요로 하는데, 우리는 가능한 대중이 군대를 거부하도록 모든 일을 할 겁니다. 정부는 돈을 필요로 하는데, 우리는 누구도 세금을 내지 않고 그 신용을 인정하지 않도록 설득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할 겁니다.

이탈리아에는 혁명가들이 제법 많고, 노동자들이 자신의 자율성을 선언하고 자신의 삶을 돌보는 여러 지방자치단체와 지역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정부의 대리인을 받아들이거나 대표를 정부에 보내기를 거부합니다.

이런 지역과 지방자치단체들은 혁명적인 영향력의 중심이 될 겁니다. 우리가 재빠르게 행동하면서 정부가 무장하고 자신을 강화시킬 시간을 주지 않는다면 어떤 정부도 무기력해질 겁니다.

체사레┃ 그건 내전이군요!

조르지오┃ 물론이죠. 우리도 평화를 원하고 평화를 갈망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평화에 대한 열망을 위해 혁명을 희생시키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는 이 길을 통해서만 참되고 영원한 평화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혁명을 희생시키지 않을 겁니다.

열다섯 번째 대화 : 경찰은 왜 폭력적인가

지노[6]┃ 저녁마다 사회문제를 토론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여기 신사분들의 허락을 받아 우리 친구 조르지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군. 너희 아나키스트들이 경찰을 없애고 싶어 한다는 게 사실이야?

조르지오┃ 물론이지! 너는 동의하지 않아? 네가 경찰들의 친구였던 적도 있나?

지노┃ 너도 알다시피 나는 그들의 친구가 아니지. 하지만 나는 살인범이나 도둑의 친구도 아니야. 나는 내 재산과 내 생명을 잘 보호받고 싶어.

조르지오┃ 그 보호자들로부터 너를 보호해줄 사람은 누구지? 어떤 이유로 사람들이 도둑이나 살인자가 된다고 생각하나?

보호한다는 구실로 우리를 억압하고, 억지로 빼앗고, 모든 도둑과 살인자들보다 천 배는 더 많은 피해를 입히는 갱단에게 너의 목을 바치는 게 안전을 확보할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나? 그보다는 다른 사람의 빵을 빼앗지 않고도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 모두가 교육받고 자신을 발전시키며 시기와 증오, 복수의 사악한 열정을 마음속에서 떨쳐버릴 수 있는 방식으로 사는 게 악의 원인을 더 잘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지노┃ 바보 같은 소리 말라구!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악하고, 법이나 판사, 군대, 경찰이 막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로를 늑대처럼 먹어치울 거야.

조르지오┃ 설령 그럴지라도 그것조차 타인에게 명령하고 그의 자유를 다룰 권력을 누군가에게 주지 않아야 하는 좋은 이유가 될 수 있어. 모든 사람에게 맞서 싸우도록 강요당하는 개인은, 평균적인 힘을 가진 각 개인은, 투쟁에서 똑같은 위험을 겪을 것이고 승자나 패자 둘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하지만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 적어도 정글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맹수의 사나운 감정을 즐길 수도 있고. 설령 우리가 자발적으로 소수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의지를 강요할 권리와 권력을 줘야 하더라도, 인간이 서로를 잡아먹도록 되어 있다는 단순한 논리에 따르는 건 노예와 빈곤으로 이끌도록 투표하는 것과 같다고.

그리고 친구, 너는 자신을 속이고 있어. 인류애는 사회조건에 따라 선하거나 악해져. 인류에게 공통된 것은 자기보존의 본능과 행복에의 열망, 자기 자신의 힘을 완전히 발전시키려는 열망이야. 잘 살기 위해 친구가 다른 사람을 사납게 대해야만 하는 사회라면,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유혹에 저항하는 데 꼭 필요한 힘을 가질 거야. 하지만 동료들과 함께 행복하고 발전적인 조건을 갖춘 시민사회에 살게 된다면 오늘날 선해지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그 사회에서는 악해지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거야.

지노┃ 좋아. 그럴 듯하게 들리는군. 그러나 사회변화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경찰은 범죄를 막아야 해.

조르지오┃ 막는다고?

지노┃ 그럼. 경찰은 수많은 범죄를 예방하고 미처 예방할 수 없었던 불법행위들의 가해잗르을 재판해서 처벌하잖아.

조르지오┃ 말도 안 되는 소리. 경찰이 범죄의 양과 질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어. 사실 치안판사와 경찰이나 감옥이 상당 부분 개혁되고 경찰의 수가 줄거나 늘어나더라도, 대중의 경제적이고 도덕적인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 범죄는 계속될 거야.

반면에 가진 자와 노동자의 관계가 아주 조금이라도 바뀌거나, 밀이나 기타 생활필수품의 가격이 조금이라도 바뀌거나, 위기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거나, 우리의 사상이 대중에게 새로운 희망의 미소를 줄 새 지평을 열거나 하면 그 즉시 범죄의 수가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데 미치는 효과가 증명될 거야.

경찰이 범죄자를 잡을 수 있으면 감옥에 보낸다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이것이 새로운 불법행위를 막지는 못하기 때문에 악은 계속 가중되고 인간에게 필요하지 않은 고통을 가하게 돼.

경찰이 범죄자를 성공적으로 체포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이건 경찰이 공격을 유발하고 공공을 괴롭히는 행동들과 비슷한 거야.

경찰이 행하는 기능 자체는 공공 전체를 의심하면서 공공과 싸우는 거라고. 이러면서 경찰은 인류를 사냥하는 자들이 되지. 이건 범죄행위의 몇 가지 ‘중요한’ 원인들을 찾으려는 경찰의 야심을 자극하고 때때로 매우 반사회적인 본능을 실현하도록 이끄는 특수한 심성을 만들어. 범죄를 예방하거나 조사하는 경찰관리가 승진을 위해 자기 존재를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오히려 범죄를 유발하거나 범죄를 만드는 사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아.

지노┃ 그렇지만 경찰관 자체가 범죄자와 같다니! 그런 일이 가끔 일어나지만 경찰관 전체가 항상 가장 뛰어난 사람들 중에서 뽑히는 건 아니니 더더욱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보통은….

조르지오┃ 보통은 성장배경이 뚜렷한 영향을 미치지만 비뚤어진 직업관이 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조차 공격하게 만들지.

말해 봐. 어떤 사람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범죄자인지 천사인지에 상관없이 상급자가 지목한 누군가를 괴롭히고 체포하고 고문하는 것이 봉급을 받는 일인 사람들의 도덕은 어떻게 될까? 경찰의 도덕에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지노┃ 음, 아마도….

조르지오┃ 그 질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다시 말해 경찰이 억제하거나 예방한다는 소위 불법행위들에 관해서 몇 마디 덧붙이지.

분명 법이 처벌하는 행동들 중에는 어떤 경우에도 나쁜 행동인 것도 있어. 하지만 빈곤이 대중을 야만과 절망에 빠뜨린 상태에서 생겨난 예외들도 있거든.

그렇지만 보통 처벌되는 행동들은 상위층의 특권을 공격하는 행동이나 정부의 권력 행사를 공격하는 행동들이야. 효과적이든 그렇지 않든 이런 식으로 경찰은 전체로서의 사회가 아니라 상위층을 보호하고 대중의 복종심을 유지시키는 데 기여해.

너는 도둑에 관해 말했어. 노동자의 노동의 생산물을 빼앗아 부를 얻는 가진 자들보다 더한 도둑은 누구일까?

살인자에 관해 말했지. 명령하고 일하지 않고 생활하는 특권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의 학살은 말할 것도 없고 수백만 노동자의 끔찍한 궁핍과 때 이른 죽음의 원인을 제공하는 자본가보다 더한 살인자는 누구일까? 자신이 처한 끔찍한 조건들 때문에 범죄로 내몰리는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죄를 짓고 더 위험한 이런 도둑과 살인자들은 마땅히 경찰의 관심사가 되어야 하겠지.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야!

지노┃ 간단히 말하자면 너는 혁명이 이루어지는 순간, 인류가 갑자기 수많은 작은 천사들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군. 모두가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며 서로 돕는 그런 천사들의 세상. 더 이상 증오나 질시도 없을 지구상의 천국. 말도 안 돼!

조르지오┃ 천만에. 도덕의 변화가 갑자기 이루어지리라 믿지는 않아. 물론 빵이 확보되고 자유가 달성되었다는 단순한 사실로 인해 엄청난 변화가 생기겠지. 하지만 노예상태와 대중 간의 싸움이라는 오래된 영향이 우리 속에 뿌리 내리게 만든 그 모든 나쁜 열정은 한꺼번에 사라지지는 않을 거야. 폭력으로 타인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사람들, 자기 자신을 위한 특권을 만들기에 좋은 조건을 활용하고 싶은 사람들, 오늘날 일하기를 강요당하는 노예상태에서 생긴 일에 대한 혐오를 가진 사람들 등에게는 여전히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지노┃ 혁명 이후에도 우리는 범죄자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하는 거로군?

조르지오┃ 아마도. 만일 굶주림으로 죽어가기보다는 저항하려는 사람을 범죄자로 간주하고 있다면, 하물며 현재의 사회구조를 공격하며 더 나은 것으로 대체하려는 사람을 범죄자로 간주하는 거라면 더더욱 잘못된 거지. 하지만 모두에게 해를 입히려는 사람, 타인의 인격적인 고결함과 자유, 행복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은 범죄자이지.

지노┃ 좋아, 그러니 너도 항상 경찰을 필요로 하겠군.

조르지오┃ 천만에. 게으름과 폭력을 위한 학교를 열고 살인자 집단을 만들어서 소수의 폭력적인 사람과 어리석은 자들, 타락한 자들을 막으려는 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야. 그들은 시민을 범죄를 저지를 만한 인물로 간주하는 데 익숙해질 거고 자신들의 승진과 직업을 위해 대중을 사냥할 거야.

지노┃ 그럼 어쩌라고!

조르지오┃ 글쎄. 우리 스스로 방어해야지.

지노┃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조르지오┃ 대중이 사회를 보호하는 특별한 기능을 누군가에게 위임하지 않고도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그것이 유일하게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확신해.

말해 봐! 내일 경찰의 추적을 당하는 사람이 네게 온다면, 그를 고발하겠어?

지노┃ 아니, 미쳤어? 그가 가장 나쁜 살인자라도 그건 아니지. 내가 경찰관인 줄 알아?

조르지오┃ 아! 경찰관이라는 직업은 끔찍한 것임에 틀림없지. 자존감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 일을 하는 걸 명예롭지 않게 생각할 거야. 아마 경찰관이 사회에 유용하고 필요하다고 여겨질 때조차도 그럴 거야.

이제 말해 봐. 전염병에 걸린 아픈 사람이나 위험한 미친 사람을 우연히 만난다면 그들을 병원에 데려다줄 건가?

지노┃ 그럼.

조르지오┃ 힘을 써서라도?

지노┃ 물론이야. 그들을 내버려두면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수 있으니까!

조르지오┃ 필요하다면 힘을 써서라도 미친 사람이나 전염병에 걸린 사람을 병원으로 데려가면서도, 왜 살인자를 고발하는 데는 많은 관심을 쏟지 않나?

지노┃ 음, 환자를 돌보는 건 명예롭고 인도주의적인 일로 생각하지만 살인의 경우라면 썩 내키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경찰을 찾게 되잖아….

조르지오┃ 경찰이 맨 처음 하는 일은 시민이 사회적인 안전으로부터 손을 떼게 만드는 것임을 이미 잘 알고 있잖아. 사실상 경찰은 경찰이 적법하게 또는 부당하게 박해하는 사람으로 시민을 만들어버리잖아.

지노┃ 어떤 사람을 병원에 데려다줄 때는 그들을 고쳐줄 의사의 손에 그 사람을 맡기는 것이지. 그래서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때는 자유롭게 되리라는 걸 잘 알아. 어떤 경우에도, 심지어 고칠 수 없는 경우라도 의사들은 고통을 덜어주려 할 거고 딱 필요한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치료로 괴롭히지는 않을 거야. 만약 의사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겠지. 왜냐하면 대중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지 고문을 당하면 안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니까.

반대로 만약 누군가 경찰에게 어떤 사람을 넘겨준다면 경찰은 그들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고 기소하려는 욕심으로 수사를 해. 그래서 사랑스럽게 돌보면서 더 나은 삶을 만들기보다는 그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고 고통을 주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더 나쁘게 만들어서 감옥에 가기 전의 상태보다 사회에 더 위험한 적으로 만들어서 그들을 풀어주겠지.

그러니 급진적인 개혁을 통해서 이것을 바꿀 수 있겠지.

조르지오┃ 친구여, 개혁을 하거나 제도를 파괴하려면 다른 무엇보다도 그것을 보존하는 데 관심을 가진 집단을 만들면 안 된다고.

대중을 감옥으로 보내고 기회가 생기면 대중을 때리는 직업을 수행하는 경찰(내가 말하는 경찰에는 치안판사도 포함되는데)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공공과 반대되는 존재로 여길 거야. 그들은 사냥꾼이 사냥대회를 쫓아다닐 때와 같은 욕망으로 진짜 범죄자나 가짜 범죄자를 열정적으로 추적하지. 그러나 더 많은 범죄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경찰의 이해관계야. 왜냐하면 범죄자는 자신들의 존재 근거니까. 범죄자의 수와 위험성이 더 커질수록 경찰의 권력과 사회적인 중요성도 커지니까!

합리적으로 범죄를 다루려면, 범죄의 원인을 캐서 가능한 없애기 위해 모든 방법을 실제로 사용하려면, 이 과제는 범죄의 존재가 권력과 소득의 근원인 사람들이 아니라 범죄에 노출되어 있고 범죄로 고통 받는 사람들, 다시 말해 공공 전체의 신뢰를 얻어야만 한다고.

지노┃ 그래, 네가 맞는 것 같아.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열여섯 번째 대화 : 애국심은 왜 보수적인가

피포[7]┃ 이제 그만!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을 끊어야겠어요. 아주 다양한 의견들이 논의되고 있지만 본질적인 질문, 즉 모국에 대한 질문, 우리 이탈리아의 위대함과 영광을 지키는 문제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겠죠? 열불이 나서 내가 말해야겠군요.

프로스페로, 체사레, 빈센초, 조르지오와 루이지(청년 사회주의자)를 제외한 이 자리의 모든 분들은 요란스럽게 이탈리아에 대한 사랑을 주장했고, 암브로지오는 자기가 모든 사람의 편이라고 말했어요. 이 토론에서 우리는 엄마에 관한 이야기는 해도 이탈리아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네요. 이미 이해된 바나 다른 의견이나 주장보다 우월하다고 입증된 바에 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요. 제발 제가 우리의 애국심을 의심하지 않게 해줘요. 조르지오의 애국심도 말이죠.

조르지오┃ 아뇨, 내 애국심은 확실히 의심스러워요. 나는 애국자가 아니니까요.

피포┃ 이미 눈치챘어. 당신은 이탈리아를 타도하자고 외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지. 당신의 나라를 욕보이고 패배시키고 외국의 지배하에 두고 싶어 하는 것 같더군.

조르지오┃ 천만에요. 그건 우리에 대한 편견을 사람들에게 심어줘서 대중을 속이려는 사람들이 주로 쓰는 비방이에요. 선한 마음 탓에 이 헛소리를 믿는 사람들까지 배제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다만 무지와 이해 부족 때문이니까요.

우리는 어떤 종류의 지배도 원하지 않아요. 따라서 이탈리아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기를 원하지 않듯이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것도 원하지 않아요. 우리는 전 세계를 모국으로 여기고 모든 인류를 형제, 자매로 생각해요. 따라서 우리가 사는 나라를 파괴하고 모욕하기를 원한다는 건 정말 헛소리에요. 이 나라에서 우리는 친구를 사귀고, 이 언어는 우리가 말하는 최선의 언어입니다. 우리는 일과 사상, 감정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나라의 것을 최대한 활용하고 우리도 나라에 최상의 것을 제공하죠.

암브로지오┃ 이 나라가 바로 조국인데 당신은 계속 이를 저주하고 있잖소.

조르지오┃ 우리는 조국이나 다른 누군가의 나라도 저주하지 않아요. 우리는 애국심에, 당신이 애국심이라 부르는 것에, 국가의 오만함에, 다른 나라에 대한 적개심을 설교하는 것에 저주를 퍼부을 뿐이죠. (애국심은) 사악한 자본가의 이익과 지배자나 시시한 정치인들의 절제되지 않는 야망을 위한 저주받은 전쟁통에 대중을 빠뜨리기 위한 핑계에요.

빈센초┃ 천천히, 천천히 말해줘요…. 만약 나라에 대한 사랑이 실제로는, 그걸 핑계거리로만 삼는 수많은 자본가와 군주제주의자들의 애국주의 따위를 뜻한다면, 나도 당신처럼 나라를 위해 아무런 위험도 무릅쓰지 않으면서 조국을 내세우며 노동자와 성실한 사람들의 땀과 피로 자기 배만 불리는 사람들을 경멸하고 진저리를 낼 겁니다. 그러나 정말 애국자인 사람들, 즉 희생해온 사람들, 나라를 위해 자신의 재산, 자유, 생명을 바칠 준비가 된 사람들이 있어요.

공화주의자들이 항상 최고의 애국심에 불타올랐고 언제나 충직하게 책임을 졌다는 점을 아셔야 해요.

조르지오┃ 이념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사람들을 항상 존경해요. 하지만 공화주의자의 이상과 확실히 모든 정파에서 발견되는 헌신적인 애국자들도 이 점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졌어요. 애국심은 (공화주의) 이념의 실질적인 목적을 은폐하고 의식 없는 대중과 열정적인 청년을 동요시켜서 정부와 자본가들만 돕는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해요.

빈센초┃ 뭐라고, 낡은 방식이라고요? 나라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정서이고 결코 시대에 뒤처질 수 없는 거라고요.

조르지오┃ 당신이 나라에 대한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신이 나라에 거는 가장 강한 도덕성이고, 물질적인 행복을 가장 확실히 보장하는 애정입니다. 분명히 이것은 자연적이고 언제나 그렇게 남을 겁니다. 적어도 모든 사람이 전 세계 어느 곳에서건 실질적으로 자기 나라를 찾을 때까지 문명이 발전된다면 말이죠. 하지만 이것은 당신이 다른 민족을 열등한 존재로 보게 만드는 ‘조국’의 신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이 신화는 당신이 소위 외국인의 일을 감사히 여기며 활용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우리 노동자들이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보다 그 나라의 두목이나 경찰처럼 여기게 만들어요. 그 나라의 노동자들도 똑같은 이해관계와 열망을 공유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결국 지속적인 진보의 과정이 만들어온 국제주의적이고 사해동포적인 감정은 지금도 발전되고 있어요. 여러 정서적이고 물질적인 이유로 당신은 태어난 마을이나 지역에 더 애착을 느낄 겁니다. 그런다고 당신이 편협하거나 지역에 묶여 있다고 보지는 않아요. 당신이 이탈리아인인 것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필요하다면 이탈리아 전체의 이익을 지역이나 마을의 이익보다 우위에 둘 수도 있어요. 만일 나라라는 개념을 코뮌에서 민족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발전이라고 믿는다면, 왜 나아가 인류의 보편적인 사랑과 모든 대중의 우애와 협동을 위해 전 세계를 껴안지 못할까요?

오늘날 국가들의 관계에서 천연자원 및 농업과 산업 생산물들의 교환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기를 원하고 더 나쁘게는 다른 나라와 갈등하는 나라가 완벽하고 무조건적으로 실패한다는 비난을 받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그 관계의 연구와 일의 종류, 경제적인 위치 때문에 이미 자신을 진정 세계시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세계적으로 위대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전 지구적이고 초국가적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해요. 과학은 공통된 것이고 예술도 마찬가지죠. 종교도 어느 나라에서 생겼든 인류의 가장 위대한 정신적인 활동입니다. 암브로지오 씨가 말했듯이 모든 사람이 모든 인간에게 그 개념을 적용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권리와 도덕도 보편적입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 발견되었든 새로운 진리나 어떤 발명, 인간두뇌의 독창적인 산물은 인류 전체에게 유용해야 합니다.

고립으로 돌아가는 것은, 인간들의 경쟁과 적대로 돌아가는 것은, 편협하고 염세적인 애국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인류를 평화와 우애의 미래로 인도하는 위대한 진보의 흐름 밖으로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흐름은 문명의 밖으로 나가 문명에 반대하게 만들 겁니다.

체사레┃ 항상 평화와 박애를 말하는데요, 실질적인 질문을 하나 할게요. 예를 들어 독일이나 프랑스가 우리의 예술적인 유적을 파괴하기 위해 밀라노나 로마, 나폴리로 온다면, 우리 국민을 죽이거나 억압하기 위해 온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당신은 가만히 있을 건가요?

조르지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나는 분명히 (그 문제를) 아주 깊이 고민하고 있고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할 거에요.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나는 이탈리아인들이 파괴하고 억압하고 죽이기 위해서 파리와 빈, 베를린 또는 리비아로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똑같이 무엇이든 할 거에요.

체사레┃ 정말 둘 다를 똑같이 고민하나요?

조르지오┃ 아마도 실제로는 아니겠죠.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잘못된 일들에 더 슬퍼하지요. 내 친구들이 많은 곳이 이탈리아이고 이탈리아를 더 잘 알기 때문에 내 감정이 더욱 깊고 직접적이니까요. 하지만 이것이 베를린에서 벌어지는 잘못된 일들이 밀라노에서 벌어지는 일들보다 더 나쁘지 않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아요.

그건 그들이 형제를 죽이고 친구를 죽이는 것과 같지요. 확실히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그들이 죽였을 때보다 아는 사람이 죽었을 때 더 고통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친구를 죽이는 것보다 덜 나쁜 범죄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잖아요.

피포┃ 맞아. 그러나 독일이 앞으로 밀라노를 침략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당신은 무얼 할 건가?

조르지오┃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사실 내 친구들과 나는 분쟁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했지만요. 정작 유용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할 수 없었거든요.

피포┃ 대체 무슨 말이오?

조르지오┃ 당연히 우리는 사장들과 억압자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처지, 우리 형제들을 죽여서 그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듯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도 그들의 사장들과 억압자들 때문에 도살장으로 끌려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정한 적인 자들, 즉 우리 사장들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거부해야 하지요.

일단 우리가 내부의 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우리는 사장들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의 나라를 방어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에 맞서 파병되는 외국의 노동자들에게 우애의 손을 내밀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에게 맞서 자신들의 지배자들에게 계속 봉사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방어할 겁니다.

암브로지오┃ 당신은 국가가 계급의 이해관계 이상이라는 점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에만, 당신 계급의 이해관계에만 관심을 쏟는군요. 조건의 차이와 그 모든 계급의 적대관계가 존재하더라도 같은 나라의 모든 대중을 단결시키는 어떤 감정과 전통과 이해관계들이 있어요.

한편 그 근원에는 자긍심이 있지요. 당신은 이탈리아인이라는 점을, 문명을 세계에 전하고 심지어 오늘날에도 아무튼 진보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라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진 않나요? 게르만족의 야만에 맞서 라틴 문명을 지켜야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하나요?

조르지오┃ 제발 이 나라와 저 나라의 문명이나 야만주의에 관해서는 말하지 맙시다. 만일 노동자들이 당신네 ‘라틴 문명’의 진가를 인정할 수 없다면, 그건 당신들의 잘못이라고, 노동자들에게서 스스로 학습할 수단을 빼앗은 부르주아지의 잘못이라고 즉각 답할 수 있어요. 노동자들을 무지에 가두고 있으면서 무언가에 열광하기를 원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엉뚱한 소리 말아요. 아마도 지난 몇 년 동안 당신 자신은 독일에서 온 무언가에 감탄하면서도, 독일인들이 다른 어느 나라 사람보다도 더 야만적이라고 우리가 믿기를 원할 테지요? 만일 내일 정치 상황이 변하고 자본가들의 이해관계가 달라진다면 당신은 다시 한 번 독일인들이 문명의 최전선에 있고 프랑스인이나 영국인이 야만적이라고 말할 겁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발전되려면, 그 나라는 자신의 문명을 확산시키고 뒤처진 동료를 도와야하는 한편 그 우월한 위치에서 억압하고 착취하며 이득을 취하지 말아야 해요. 왜냐하면 권력의 남용은 부패와 타락으로 이끄니까요.

암브로지오┃ 어떤 경우든 계급과의 경쟁보다 상위의 가치인 전국의 단결을 존중해야 합니다.

조르지오┃ 이해해요. 당신을 특히 유혹하는 것이 바로 이 전국의 단결이라는 핑계일 테니까요. 우리가 특히 맞서 싸우려고 하는 것도 바로 이 전국의 단결이고요. 전국의 단결은 자본가와 노동자, 억압하는 자와 억압당하는 자의 단결을 뜻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억압을 당하는 사람들이 이 복종의 상태를 묵인하는 거지요.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는 고용주들의 이해관계와 반대되고 특수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일시적인 합의를 구할 때도, 인간해방과 미래의 모든 진보가 노동자와 가진 자의 투쟁으로 결정된다고 가정하기에, 우리는 적대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 관계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억압을 완전히 끝내도록 이끌어야만 하니까요.

당신은 여전히 민족주의라는 거짓말로 노동자들을 속이려고 해요. 하지만 헛된 일이에요. 노동자들은 이미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이 동지이고 국내외의 모든 자본가와 모든 정부가 적임을 알고 있어요.

이만 나는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 내 말을 듣는 치안판사나 가진 자들 어느 누구도 납득시키지 못했다는 점을 알아요. 그렇지만 아마도 나와 같은 노동계급인 피포나 빈센초, 루이지에게는 헛된 말이 아니었기를.

열일곱 번째 대화 : 누가 평화로운 변화를 가로막는가

루이지[8]┃ 여기 모인 사람들이 다들 자기 의견을 말했으니 나도 의견을 말해도 될까요?

몇 가지 생각이 드는데요, 우선 저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거부와 아나키스트를 구분하고 싶어요.

조르지오┃ 그 말은 아주 놀라운데요. 우리는 모두 노동자이기에 우리 자신을 친구이자 동지로 여길 수 있고 그렇게 생각해야만 해요. 하지만 당신은 아나키스트가 사회주의자의 적이라고 믿는 듯하군요. 오히려 우리는 사회주의자들의 친구이자 조력자라고요.

알려진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을 대립시켜왔고 여전히 대립시키려고 해도, 만약 사회주의가, 인간이 우애롭게 사는 사회, 모든 이의 행복이 각 개인의 행복을 위한 조건이 되는 사회, 누구도 노예가 되거나 착취당하지 않고 각자가 가능한 가장 많이 자신을 발전시키는 수단을 가진 사회, 문명과 함께 하는 일의 혜택을 평화롭게 누릴 수단을 가진 사회 또는 그 사회에 대한 열망을 뜻한다면, 우리도 사회주의자, 가장 급진적이고 일관된 사회주의자로 인정되어야 해요.

결국 많은 동지들을 감옥으로 보내는 암브로지오 선생조차도 우리가 솔선수범해서 사회주의를 도입하고 설명하고 선전하고 있음을 알고 있어요. 우리가 그 이름을 조금씩 버리고 단지 아나키스트로 우리 자신을 부르게 된다면, 그건 우리 본성과 모순되는 이론과 우리의 이념, 우리의 방법을 조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한데도, 사회주의를 그런 짬뽕되고 편의적인 이론으로 설득하고 그렇게 만들려고 시도하는 독재적이고 의회주의적인 다른 정파가 우리 주위에 있기 때문이에요.

루이지┃ 사실 당신의 주장을 이해했고 특히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같은 많은 점에 분명히 동의합니다.

그러나 모든 점에 동의하지는 않아요. 첫째, 오직 아나키스트들만이 혁명을 믿고 아마도 옛날에나 필요했을 법한 폭력적인 방식을 대체해온 더 고상한 투쟁방법들을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폭력혁명으로 결론이 난다고 하더라도 질서를 잡고 모든 일을 자의적인 행동이나 대중의 열정에 남겨놓지 않을 새로운 정부가 필요할 겁니다.

조르지오┃ 글쎄요, 더 토론해봅시다.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특권을 폐지하는 것이,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이, 힘에 의존하지 않고 부르주아지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진심으로 믿나요?

가진 자와 지배자들이 저항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폭력을 사용하지도 않고서, 우리에게 항복하면서 희생제물 역할을 맡을 거라고 착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르게 생각한다면 여기 이 신사들에게 물어보세요. 그들은 할 수 있다면 아주 기뻐하며 순식간에 당신과 나를 제거할 겁니다.

루이지┃ 아뇨, 그런 환상을 품지는 않아요. 그러나 오늘날 노동자들이 유권자의 대다수이고 공직선거나 정치인을 뽑는 선거에서 투표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자의식과 의지를 가진다면 너무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신들이 믿을 수 있는 사회주의자들이 집권하도록 만들 수 있을 거라고요. 당신이 원한다면 심지어 아나키스트들도 땅과 가게를 국유화하고 사회주의를 도입하는 좋은 법률을 만들 수 있어요.

조르지오┃ 물론 노동자들이 자의식을 가지고 헌신적이라면요!

하지만 자기 문제의 원인과 그것에 대한 치유법을 이해할 만큼 충분히 발전된다면, 노동자들이 자신을 해방시키기로 진심으로 결의한다면, 혁명의 최소한의 폭력이나 폭력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어요. 그렇다면 노동자 스스로 자신이 바라는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심지어 불행히도 우연히 나타나는 권력의 유혹에 중독되고 부패되지 않는다면, 사회적인 필요를 제공할 수도 없고 유권자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도 없는 사람들을 의회나 정부로 보낼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자기의식적이거나 헌신적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물질적인 조건이 먼저 나아지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도덕적으로 해방시킬 가능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조건에서 살고 있어요. 그래서 사회변화는 운이 좋은 환경 탓에 공통된 수준 이상으로 자기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소수집단의 솔선수범과 활동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소수집단은 결국 뒤처진 대중을 끌어당길 수 있는 유력한 세력이 될 겁니다.

이 사실에 주목하면 노동계급이 깨달은 도덕적이고 물질적인 조건들 때문에, 자본가계급과 정부가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조건들을 항상 의회에서 성공적으로 확보했다는 점을 당신도 금방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들이 보통선거권을 양보하고 선거를 실시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만일 자본가계급과 정부가 법적으로 소유권을 박탈당할 위험을 알아챈다면, 그들은 가장 먼저 법률상의 의무를 벗어나 자신들이 대중의 의지라고 부른 것에 폭력을 가할 겁니다. 법률이 실수로 자신들에 맞서게 되는 모든 경우들에서 그들은 이미 그렇게 했어요.

루이지┃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사회주의 의원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언젠가 그들은 다수가 될 거라고요.

조르지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이 의회에 입성하는 순간, 그 즉시 길들여지고 현존 질서를 위협하던 사람에서 현존 질서의 협력자와 지지자로 변한다는 걸 모르겠어요? 결국 사회주의자를 의회로 보내서 자본가계급의 종으로 만든느 거죠. 왜냐하면 가장 활동적이고 능력 있고 대중적인 사람이 대중의 심장에서 나와 자본가의 환경으로 보내지는 일이기 때문이죠.

더구나 이미 말했듯이 사회주의 의원의 수가 정말 위협적이면 정부는 그들을 의회에서 총검으로 몰아내고 보통선거권을 금지할 겁니다.

루이지┃ 언제나 극단적인 위기로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에 당신이 그렇게 보는 것 같아요. 진실은 그 반대입니다. 세계는 매순간 조금씩 점진적으로 진화하고 있어요.

노동계급은 자신을 교육하고 조직하면서 법을 결정하고 만드는 의회로 대표들을 보내고 자본가계급에게서 권력을 넘겨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는 순간 우리가 열망하는 새로운 사회가 세워질 겁니다.

모든 문명화된 나라에서 사회주의자 의원의 수가 늘어나고 자연히 대중적인 지지도 역시 높아지고 있어요. 언젠가 그들은 분명 다수가 될 것이고 자본가계급과 그들의 정부가 평화적으로 물러나지 않고 대중의 의지를 폭력으로 억압하려 든다면 우리는 폭력에 폭력으로 답할 겁니다.

시간이 필요해요. 자연법칙과 역사의 법칙을 거스르려 하는 건 쓸모없고 위험한 일이에요.

조르지오┃ 루이지 동지, 자연법칙은 변호인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자연법칙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지요. 대중은 부지런히 그 법칙을 발견하고 좋은 쪽이나 나쁜 쪽으로 그 발견을 이용하지요. 하지만 이해관계를 가진 분파(우리의 경우 자본가계급을 옹호하는 경제학자와 사회학자들)들이 자연법칙으로 묘사하려는 사회적인 사실들을 자연법칙으로 받아들이는 걸 경계해야 해요.

‘역사법칙’에 관한 한, 그 법칙은 역사가 만들어진 뒤에 구성됩니다. 그러니 역사부터 먼저 만들어보자고요.

자연적인 요인과 인위적인 요인이 무수히 영향을 미치기에 세계는 서서히 또는 빨리 움직이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합니다. 그리고 항상 똑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지속적인 진화를 확신하는 건 오류입니다. 현재 사회가 지속적이고 느리게 진화하고 있다는 건 분명 사실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진화는 변화를 의미하고, 만약 어떤 변화가 우리에게 좋은 방향으로, 인류가 공동체와 자유라는 더 나은 이상을 향해 발전하는 것을 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반대로 다른 변화는 현재의 제도를 강화하거나 이미 실현된 진보를 후퇴시키고 취소하려 듭니다.

대중이 서로 대립하는 한 어떤 성과도 지속되지 못하고 사회 조직의 진보도 결정적인 승리를 장담할 수 없어요. 우리는 진보의 모든 요소들을 활용하고 장려해야만 하고 퇴행적이고 보수적인 세력과 싸우며 그들을 방해하고 약화시켜야 해요.

오늘날 인류의 운명은 노동자와 착취하는 자들 사이의 투쟁에 달려 있어요. 두 적대적인 계급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어떠한 형태의 화해도, 자본가와 노동자, 정부와 대중 사이에 의도적으로 수행되거나 사회분쟁을 약화시킨다는 명분과 의도로 맺어진 어떠한 형태의 협력도, 억압하는 자의 계급에게 유리하고, 붕괴하는 제도를 강화시키고, 가장 나쁘게는 대중을 분열시키는 데 기여할 뿐입니다. 가장 선진적인 노동계급도 대다수 대중의 열악한 처지와 종속된 상태를 유지시키면서 산업과 금융, 정치의 지배자들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새로운 특권계급으로 변할 겁니다.

당신은 진화를 이야기하면서 대중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류가 사회주의에,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의 평등한 이해관계를 위해 만들어진 사회에, 모든 사람에게 생산수단이 속하는 사회에, 모든 사람이 일하고 문명의 모든 이득을 평등하게 즐길 사회에 이르는 게 불가피하고 필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사회주의는 대중이 원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할 때에만 실현될 겁니다. 다른 경우라면 사회주의 대신에, 사회 상황은 결국 두 계급의 차이가 더 멀어지고 더 영원해질 수 있어요. 그러면서 인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인종으로, 양반과 상놈으로 나뉘고 그 중간에 있는 계급은 지성과 야만적인 폭력을 결합하면서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더 굳건히 만드는 데 기여할 겁니다. 아니면 그곳에서는 경제위기와 주기적인 전쟁으로 끊임없는 투쟁과 개혁의 변질, 상태의 악화와 같은 현재 상태가 지속될 겁니다.

실제로 우리가 상황을 자연적인 흐름에 맡긴다면 아마도 사회는 우리가 원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특권계급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현재의 지배자들에게 이롭게 만들어진 안정적인 균형상태로 나아갈 겁니다. 왜냐하면 강자들이, 상대방보다 확실한 이점을 가지고 경쟁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투쟁의 과정에서 언제나 이득을 보는 것이 자연적이니까요.

루이지┃ 당신이 맞는 것 같아요.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가 쓸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즉 교육, 조직화, 정치투쟁 등을 모두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

조르지오┃ 맞아요, 모든 방법들을 말이죠. 그렇지만 우리의 목적을 실현할 모든 방법이겠지요. 그리고 가장 필요한 것은 당연히 교육이에요. 왜냐하면 우리 개개인이 의식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의식이나 감각을 깨우지 못한다면, 우리의 의지를 실천하지 못한다면 진보는 불가능하니까요. 교육이 절대 책으로만 배우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그것도 필요하지만 노동계급이 접근하기에 쉽지 않으니까요. 그보다 교육은 사회와의 의식적인 연결과 선전, 토론, 공공의 사안에 대한 관심,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진보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 배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개인적인 교육을 모두가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충분할 수 있어요. 하지만 불행히도 그건 가능하지 않아요. 대중은 그들이 사는 환경의 영향을 받고 지배당합니다. 어떤 이는 환경에 의해 구성된다고까지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환경이 적합하지 않으면 환경과 싸워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어떤 순간에도 타고난 능력이나 특별히 좋은 조건 때문에 환경을 극복하고 환경에 대처하고 환경을 계속 변화시킬 수 있는 소수의 개인들이 있습니다.

의식적인 소수가 얼음을 깨고 외부환경을 폭력적으로 바꿔야만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조직화’는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죠. 사장들과 싸우고 그들과 합의하지 않기 위해 활용한다는 조건에서 말이지요. ‘정치투쟁’은 분명히 정부에 대한 투쟁과 정부에 대한 비협조를 뜻합니다.

잘 보세요. 자본주의 체제를 조금 더 낫게 바꾸고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서 그 체제를 인정하고 영원히 지속시키려 한다면, 어느 정도의 집도 보장되고 일정한 협력도 이루어질 수 있어요. 그러나 진정 이 체제를 무너뜨리기를 원한다면, 그 외부와 체제 자체와 맞선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만 합니다.

혁명이 필연적이며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혁명을 통해서만 해결될 것이라는 점을 알았다면, 대중에게 희생이나 피 튀기는 투쟁 없이 해방될 수 있다는 거짓 희망을 주는 대신에 정신적, 물질적으로 지금부터 우리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루이지┃ 좋아요. 당신이 옳고, 혁명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해 보자고요. 똑같이 말하는 사회주의자들도 많아요. 그러나 혁명을 지도하고 조직하기 위해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언제나 필요할 겁니다.

조르지오┃ 왜요? 대중 속에 투쟁과 삶의 요구를 공급할 수 있는 충분한 수의 혁명가들, 육체노동자와 비육체노동자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혁명은 시작되지 못할 것이고 시작되더라도 승리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충분한 수가 존재하더라도 정부라는 것은 대중의 솔선수범을 가로막고 실질적으로 혁명 그 자체를 질식시키는 데에 이로울 뿐입니다.

사실 의회정부나 독재정부가 무얼 할 수 있을까요? 그 정부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존재를 고려하고 정부로서 자기 존재를 강화시켜야만 하는 것으로서, 달리 말해 경쟁자에게 맞서 자신을 지키고 자신의 뜻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누르기 위해 무장한 군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자기 존재를 알리고 갈등하는 의지와 이해관계를 공부하고, 중재하려 하고, 법을 만듭니다.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요.

그러는 동안에도 살아가야 합니다. 어느 한 쪽의 소유권은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손으로 넘어가서 모든 사람에게 필수품을 제공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 노동자들은 지배자의 결정을 기다리지 말고 매일매일 일상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겁니다. 따라서 이제 지배자들은 자신의 무용함을 선언하고 노동자로서 군중과 섞일 수 있을 뿐입니다.

아니면 소유는 계속 가진 자들의 손에 남을 것이어서,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부를 소유하고 배치하며 사회생활을 사실상 지배할 겁니다. (통치하거나 통치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아나키스트와 다르게) 사회주의자들로 구성된 새로운 정부는 자본가계급의 바람에 복종하거나 빠른 속도로 붕괴될 겁니다.

나는 이제 떠나야겠어요. 언제 돌아오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이 점에 관해 장황하게 떠들지는 못하겠어요. 다시 만나려면 한참 걸릴 겁니다.

내가 말한 것을 생각해보세요. 돌아왔을 때 새로운 동지를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모두들 안녕.


[1] 부유한 부르주아지. 정치경제학과 다른 학문들에도 유식하다.

[2]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와 어울리는 학생.

[3] 치안판사

[4] 카페 주인

[5] 청년 공화주의자

[6] 노동자

[7] 상이군인

[8] 사회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