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장광설
Date: 1902년 2월 20일
Source: 長廣舌, 人文社
Notes: 『長廣舌』이라는 제목으로 1902년(메이지明治 35년) 2월 20일에 인문사人文社에서 간행되었다. 같은 해에 『廣長舌』(中國國民民衆書社 역, 上海商務印書館)이라는 제목으로 중국어로 번역 출간되었고, 1912년에 자판되었을 때는 『社會主義長廣舌』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율시 한 편으로 마음을 기록하여 제목을 대신한다

(書懷一律代題詞)


한 주정뱅이가 고뇌에 차서 머리를 긁적이며 하늘에 묻고자

(一醉搔頭欲問天)

높은 누각에서 또 다시 글로 번 돈을 내던지네.

(高樓又賣擲文錢)

눈속의 달빛을 받아 맺어진 인연은 삼생이 지나도 다하지 않네.

(雪月三生未了緣)

땅을 가르고 떠들썩하게 노래하는 소년의 호방함과,

(斫地浩歌少年俠)

꽃을 들자 미소 짓는 미인의 깨달음이여.

(拈華微笑美人禪)

거기에 따로 종횡으로 움직이는 혀가 있으니

(箇中別有縱橫舌)

한가로이 고향 산의 두 고랑 밭으로 물러나네.

(閑却故山二頃田)


슈스이 덴포 지음(秋水傳甫艸)



19세기와 20세기


19세기의 천지는 우리에게 과연 어떠한 정신을 남겼는가. 20세기의 세월은 우리에게 과연 어떠한 물질을 제시할 것인가.

역사는 인류 진보의 기록이다. 인류는 세대를 거듭하고 세월을 지나면서 지능과 도덕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축적했으며, 정신적 지위를 높이고 물질적 생활을 개선하기 위하여 일찍이 잠시도 쉬는 일이 없었고 결코 물러서는 일도 없었다. 무릇 제행諸行은 무상하지 않은 것이 없고 융성한 것은 반드시 쇠퇴하지 않는 것이 없다. 개인에게는 확실히 그렇다. 하나의 국가나 하나의 국민에게는 확실히 그렇다. 그것들은 부패하고 타락하며 약해지고 쇠퇴해서 사라진다. 그렇지만 세계 전체를 보라. 인류의 정신, 생활, 종교, 정치의 상태가 얼마나 급속히 진보하고 개선되었는가. 물이 증발하는 것을 보고 양이 줄었다고 하지 말라. 증발한 물은 이윽고 비와 이슬이 되어 오곡이 자라는 것을 돕지 않는가.

그렇다. 예로부터 문명은 결코 한 제왕, 한 국가, 한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반드시 인류 전체의 복리를 위해 진보해 왔다. 문명이 빛을 비추는 폭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넓게 보충된다. 이로써 보아야 한다.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페니키아 문명은 잠시 제쳐 두고, 그리스 문명은 페리클레스(Periklēs, BC490?~BC429) 전성시대에만 전유專有된 것이 아니었다. 코딱지만 한 유럽에서만 전유된 것이 아니었다. 로마는 그리스 문명의 정수를 지속시켰고 그것을 개선하고 확충하였으며, 18세기에서 19세기에는 유럽뿐만 아니라, 남북 아메리카로, 동아시아로, 아프리카의 남북 양끝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진보와 확장 방법 또한 마치 물건이 공중에서 낙하할 때 지상에 가까워짐에 따라 중력과 속도가 커지듯이, 올해는 작년보다, 오늘은 어제보다 현저히 가속화되어, 한 종족의 문명은 여러 국민의 문명이 된다. 여러 국민의 문명은 세계 전체의 문명이 되려고 한다. 그리하여 19세기의 진보와 확장 속도는 실로 전대미문의 것이었다. 생각건대 20세기의 속도는 그보다 훨씬 빨라질 터이고, 그 첫해에 미개국이나 야만국이라는 이름이 지구상에서 거의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감히 믿는 사람은 없겠지만, 더욱더 진전될 것이다.

하지만 개인이 성장함에 따라 음식, 옷, 기구의 성질, 상태, 효용이 점차로 달라져야 하는 것처럼, 문명이 미치는 판도가 확장됨에 따라, 또한 인류 전체의 복리 실현이라는 목적의 완성이 가까워짐에 따라 이념과 사상을 달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1천 명의 복리에 적합한 문명은 1억 명에 적합할 수 없다. 그리스 · 로마의 문명은 노예제를 허용했다. 하지만 유럽의 문명은 노예제를 허용하지 않는다. 18세기 말의 문명은 귀족 전제주의를 허용했다. 19세기의 문명은 귀족 전제주의를 허용하지 않는다. 지금 제국주의라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는 나아가 19세기 후반 문명의 정신인 개인 자유의 이데올로기를 압도하여 굳이 그것을 대신하려 한다. 이에 따라 오늘 옳은 것이 내일 그른 것으로 바뀌는 느낌이 대단히 강하게 든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이것은 인류가 진보하는 한 피할 수 없는 길이며, 국민적 문명을 세계적 문명으로 만드는 치하할 만한 경향이라고.

19세기 문명이 개인 자유주의로 귀족 전제주의를 타파하여 인류를 노예의 처지에서 벗어나게 한 공로는 참으로 위대하다. 이것은 문명 진보가 한 차례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다. 하지만 인류 문명의 목적은 개인의 복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복리에 있다. 우리들의 진보는 자유 획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평등의 영역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유럽의 인민 가운데 재빨리 개인 자유주의에서 국민적 통일 결합 운동으로 나아간 자는 실로 부지불식간에 그 기반을 굳히지 않았는가. 그리고 국민 통일주의에서 다시 확 달라져 제국 팽창주의가 된 것을 보면, 그것이 결국에 또다시 변하여 세계 통일주의가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니 세계 통일주의는 현재 문명의 조류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비록 19세기 자유주의가 정권의 불평등을 타파했다고 하더라도, 아직 경제적 불평등을 타파하지는 못했다. 자유 경쟁 제도는 오히려 경제적 불평등을 격화시켰기 때문에 하층 노동자는 그 폐해를 견디지 못한다. 일찍이 그들이 결합하여 정치적 질곡을 벗어난 것처럼, 이제 다시 자본의 질곡을 벗어나기 위하여 국민적 결합주의를 개시했고, 더욱이 세계적 운동으로 한 걸음 나아가 자본가와 활발히 부딪치게 되었다. 자본가들 역시 상호 경쟁의 폐해를 견디지 못하고 자본을 합칠 필요를 느껴, 이른바 트러스트를 조성하여 해외 시장을 찾아 제국주의자를 자칭하는 정치가와 손잡고 국민적 팽창을 도모하게 되었다. 그들이 개인의 자유 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국민적 경쟁으로 나아갔다가, 또 다시 국민적 경쟁을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 극에 달하여 결국 세계적 결합 통일의 필요를 느끼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대개 교통이 발달하고 문명이 미치는 판도가 확장됨에 따라 세계의 생활이나 이해관계나 물가나 지식이나 도덕이 점차 평준화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리하여 유럽의 정치가는 홀로 무력을 자랑하지 못하고, 서구의 자본가는 홀로 값싼 동양 노동자를 이용하지 못하니, 포악한 마음은 박애로 바뀌고, 경쟁의 수단은 협력의 결과로 바뀌고,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에서 국민주의로, 국민주의에서 제국주의로, 제국주의에서 세계 평화주의로 바뀌는 한편으로, 사회경제적으로는 자유 경쟁주의에서 자본가 합동주의로, 자본가 합동주의에서 순수한 세계적 사회주의로 바뀌는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할 것이다. 이리하여 아마도 인류 문명 진보의 역사가 비로소 크게 이루어질 것이다.

대단히 고맙구나, 19세기여. 너는 정치적 자유의 복리를 우리들에게 가져다주었고, 나아가 제국주의를 산출하여 자유 경쟁의 폐해를 바로잡으려 한다. 하지만 제국주의는 그저 우리가 세계적 사회주의에 도달하는 하나의 계단일 뿐, 우리들은 20세기 전반에 세계적 사회주의가 제국주의의 폐단을 모조리 없애는 것을 두 눈으로 보게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얼마나 희망찬 일인가.


(〈十九世紀と二十世紀〉, 「日本人」 1900년(메이지 33년) 12월 10일)



혁명이 도래한다


음기가 쌓이고 아득한 후에는 곧 한줄기 볕이 다시 온다. 장마로 갑갑한 후에는 곧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여름 햇살이라. 자연 만물이 탄생하고 자라는 것은 실로 이러한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 혁명이 존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혁명이라는 말을 듣고 당장에 이것이 불경하다고 오해하지 말라. 이것이 모반이라고 오해하지 말라. 이것이 시해라고 오해하지 말라. 이것이 공화 정치며 무정부라고 오해하지 말라. 혁명은 크롬웰의 전유물이 아니다. 워싱턴의 전유물이 아니다. 로베스피에르의 전유물이 아니다. 총성이 울리고 선혈이 낭자한 것만은 아니다. 시민 평등은 사회적인 일대 혁명이었다. 왕정복고, 대의정체의 성립은 정치적인 일대 혁명이었다. 18세기 과학적 산업 기계의 발명은 산업상의 일대 혁명이었다. 시해를 하지 않더라도 혁명은 곧 혁명인 것이다. 철혈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혁명은 곧 혁명인 것이다. 그런 탓에 페르디난트 라살은 “혁명은 일종의 전복이다. 혁명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이념이 기존 제도나 조직을 대신하려고 할 때 일어난다. 그리고 강한 힘을 사용하는 것은 결코 혁명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그에 반해 개혁은 지금의 제도와 조직을 유지하면서 다만 그것을 발달시켜 더욱더 융성하고 유효하면서도 정당한 결과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수단을 동원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개혁이 반란과 유혈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혁명이 오히려 아주 평화롭게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혁명이 정말로 새 이념이 옛 제도를 대신하기 위하여 일어나는 것이라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황은 더욱더 일대 혁명의 기운에 놓인 것은 아닐까. 아니 일대 혁명이 이미 아주 평화롭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첫 번째로 정치를 보라. 부패가 극에 달하지 않았는가. 그들 내각이 행하는 바, 중의원이 행하는 바, 귀족원이 행하는 바, 각 정당이 행하는 바를 보라. 완전히 번벌의 노예가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완전히 번벌의 사리사욕에 봉사하는 기구가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일면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정치 조직은 사실상 결코 자유의 제도가 아니고 대의 여론의 제도도 아니며, 바로 과두 전제의 참상에 빠진 것이 아닌가. 이 현실을 보고 어찌 더욱 진보된 새 이념으로 대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느끼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것을 이룩하는 것은 일대 혁명 사업이 아니겠는가.

다음으로 산업 경제의 실상을 보라. 유럽의 산업혁명 여파가 도도히 우리나라에 침입하여 생산 비용은 극도로 줄어들고 생산액은 극도로 증가했다. 하지만 그 성과는 오로지 일부에 퇴적되어 사회 일반이 혜택을 입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 또 보라. 빈부 격차가 더욱더 벌어지고 있다. 공황이 점점 더 빈번해져 간다. 투기가 점점 더 성행한다. 분배가 점점 더 나빠진다. 우리나라의 상업은 이제 완연히 일대 도박장이 되어버렸고, 정당한 사업가를 수용할 땅은 점차 사라진다. 우리들은 결코 생산의 대규모화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대규모화되는 것을 기뻐하지만, 오늘날 자유 경쟁 제도 아래에서는 규모가 오히려 사회 인민을 몹시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탓에 진정으로 산업 성장의 성과를 사회 전반에 미치게 하고자 한다면, 더욱 진보한 새 이념에 따라 산업 경제 조직을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이루는 것이 바로 일대 혁명 사업이 아닌가.

나아가 사회 풍습과 교육의 실상을 보라. 이토 히로부미가 계급 제도를 정하고 나서 유신혁명의 목적인 사민평등주의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오늘날 팔짱을 끼고 놀고먹는 귀족은 유유자적하며 따뜻하고 배부르게 지내니 본받을 점이 없고, 사회 풍속을 나날이 퇴폐로 몰고 갈 뿐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귀족 전제의 제도를 영원히 유지하기 위하여 거짓되고 형식적인 충군애국 네 글자를 교육의 이념이나 뼈대로 삼은 결과, 교육의 근간이 몹시 굴절되고 발달이 완전히 저해되어 사상계의 고루함과 혼미함이 거의 수백 년 전으로 퇴보한 것 같다. 이것이 과연 언제까지 영속할 수 있는가. 또한 영속시켜야 하는 현상인가. 아니, 오히려 진보한 새 이념으로 대체하는 것이 급무임을 느끼지 않는가. 그리고 이 변화를 이룩하는 것이 일대 혁명의 사업이 아니겠는가.

혁명은 본래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억지로 촉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독일의 사회주의자가 말한 바와 같이 “혁명은 진보의 산파다.” 진보는 항상 혁명을 기다린다. 혁명이 있는 곳에 진보가 생긴다. 우리들은 우리나라의 실상이 이미 혁명의 기운이 임박해 있음을 안다. 다만 그것을 선혈의 혁명으로 만들지, 평화의 혁명으로 만들지는 국민의 준비 여하에 달려 있다.


(〈革命論〉, 「萬朝報」 1900년(메이지 33년) 5월 18일)



파괴주의인가 폭도인가(사회주의의 실질)


고운 구슬이 어둠 속으로 던져지면 사람들은 모두 칼에 손을 댄다. 지금 우리 국민들이 사회주의를 대하는 방식이 바로 이와 같다. 그들은 아직 사회주의의 진상이나 실질이 어떠한지 돌아볼 틈은 없고 단지 눈과 귀에 익지 않은 탓에 들떠서 외치며 말하기를, 사회주의는 파괴주의고 사회당은 폭도라고 한다. 이를 마치 전염병을 대하듯 두려워하고 뱀과 전갈을 대하듯 꺼린다. 아아, 그것이 어찌 파괴주의인가, 그것이 어찌 폭도인가.

예로부터 적어도 사회의 진보를 추구하고 개혁을 희망하는 논의와 운동이라면 하나같이 어느 정도 파괴적 수단에 기대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 그런데 오로지 파괴적 수단에 기대었다는 이유만으로 완전히 죄악시한다면 대개 천하에 새로운 것으로 옛것을 대신하는 일을 수행하는 사람 가운데 누가 예외가 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가령 여기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당신의 가옥은 썩었다, 마땅히 그것을 개축해야 한다, 당신의 옷은 티끌과 먼지로 가득하다, 마땅히 그것을 세탁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을 모조리 파괴주의로 여기고 폭도로 여길 것인가.

하지만 세상일에 어두운 무리, 겁을 내며 잠시의 안락함을 탐하는 패거리가 진보와 개혁을 너무 혐오하여, 새 이념을 부르짖는 사람을 만나면 일단 얼핏 보고 파괴주의라 규정하고 폭도라고 부르며 백방으로 박해를 시도하지 않는 경우가 없는 것은, 동서고금으로 궤를 같이한다. 그런 탓에 일찍이 천황을 섬기고 막부를 타도하자는 논의가 일어나가, 막부 말기의 관료들은 파괴주의라며 꾸짖고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을 폭도로 몰며 박해를 일삼았다. 안세이의 의옥에 이르러서는 진시황 이래의 비참함이 얼마나 극에 달했던가. 일찍이 자유민권설이 일어나자, 번벌 정권의 관료들은 그것을 꾸짖어 파괴주의라 규정하고 자유민권을 주장하는 사람을 폭도로 몰며 박해를 일삼았다. 보안조례 공포에 이르러서는 나폴레옹 3세 이후의 횡포함이 얼마나 극에 달했던가. 하지만 보라. 우리 일본 국민으로 하여금 봉건 지배 계급의 질곡을 벗어나 사민 평등의 경지에 들어서고, 전제 억압 제도를 버리고 입헌 대의의 치세를 만나 국위, 국광을 태평양 앞바다에 찬연히 빛나게 한 것은 바로 당시의 파괴주의, 폭도가 아니었겠는가.

무릇 세상의 허다한 새 이념, 새 운동 가운데 일시적인 파괴주의나 폭도에 지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 성질이 과연 진정으로 사회의 진보와 개혁을 위해 시급하고 적절한 것이겠는가. 당시 일반 인민의 눈과 귀에 익숙하든 익숙하지 않든 간에, 당장이라도 널리 퍼질 듯한 기세가 팽배하여 마치 커다란 제방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수천의 공격, 수만의 박해가 결국에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사회의 진보와 개혁이다. 기독교의 개혁이 그러했다. 니치렌종日蓮宗의 발흥이 그러했다. 유럽 대륙에서 자유 제도의 창립이 이러했다. 곡물법 폐지 운동이 그러했다. 선거구 개정안이 그러했다. 노예 금지 운동이 그러했다. 아니, 속된 인사들이 속된 주장으로 공격하고 박해해도 아무렇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격과 박해가 한층 가혹해질수록 반동 또한 한층 거세져서 오히려 그들의 성공을 재촉하고, 나아가 그 성공의 여세가 예측 불허의 참상을 낳는 일도 있다. 루이 16세는 그래서 참수 당했다. 메테르니히는 그래서 쫓겨났다. 한심함의 극치다.

우리들은 당분간 사회주의의 본질이 과연 오늘날의 사회 상태에 시의적절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다투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만 유럽과 미국 양 대륙에서 사회주의가 아무리 가혹한 진압에 직면해도 파발을 두어 명령을 전달하는 것만큼 빠르게 퍼져 나가고 봄풀들이 비를 맞으면서 자라는 것처럼 세력이 커지는 형국을 보면, 대단히 닮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우리 국민 가운데 완고하고 몽매하여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무리들은 막연히 이것을 파괴주의라고 부르고 폭도라 부르거나, 겁을 내며 안락을 추구하는 인사는 이에 부화뇌동하여 진압과 전멸에 바빠서 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심한 경우에는 최근에 노동 문제 해석을 위해 분주히 논의하는 사람들조차도 대개는 사회주의를 입에 담기를 꺼리는데, 사회주의를 외치면 중상류 사회의 동정을 얻을 수 없어서 운동이 매우 곤란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리하여 사회주의에 쏟아지는 공격과 증오, 기탄은 결국 눈곱만치도 사회주의의 진상과 실질 여하와 관계없이 오로지 무식함과 고루함, 안락함에 안주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천하의 기운에 응하는 사회주의자라 할 수 있겠는가. 넓은 가르침의 전파는 그들이 결코 방해할 수 있는 바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이 말하는 바는 오히려 문명 국민으로서 일대 치욕이 아닌가. 나는 우리 국민이 사회주의를 증오하고 박해하기 전에 우선 깊이 연구하고 익힐 것을 갈망한다.


(〈破壞主義乎亂民乎〉, 「萬朝報」 1900년(메이지 33년) 9월 13일)



금전을 폐지하라(사회주의의 이상)


병균이 사람의 혈액에 섞여 점차로 육체를 갉아먹는 것처럼 금전이 세상에서 무한 만능의 세력을 떨치는 한, 세도世道는 갈수록 피폐해질 것이다. 풍속은 갈수록 쇠망으로 치달을 것이다. 인심은 갈수록 부패로 향할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는 결국 망하여 멸망에 이르지 않고는 끝나지 않으니, 공창제 폐지를 주장하는 자여, 신사의 타락을 분노하는 자여, 풍속 개량을 부르짖는 자여, 도덕의 왕성함을 촉구하는 자여, 우리들은 오늘날과 같이 한 편의 도덕서를 얻든 한나절의 설교를 듣든, 여전히 금전을 필요로 하는 날에는 여러분의 천 마디 만 마디 교훈도 완전히 무익함을 알 것이다. 누구든 스스로 원해서 천한 기생이 되는 자는 없을 것이다. 누구든 풍속의 개량, 도덕의 왕성함을 바라지 않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될 수 없는 까닭은 오로지 금전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열심히 혀를 짓무르게 하고 붓이 닳게 하기보다도 우선 스스로 금전만능의 힘을 휘두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만약 금전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금전만능의 힘을 절멸시키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 금전의 필요를 없애지 않는다면 결코 세상의 도의와 인심을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금전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 이것이 세상의 실제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부패한 사회라 해도 아무도 이것을 정의라 믿지는 않을 것이다. 진리라 믿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진실로 금전의 바깥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금전의 바깥에 세력이 있고 명예가 있으며, 권리가 있고 의무가 있다. 거기에 빵과 의복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지금 금전은 실제로 무한 만능의 힘을 지녔다. 진리는 결국 실제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의는 결국 실제로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험 삼아 금전이 하루아침에 폐지되었다고 하자. 필요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하자. 사회는 얼마나 고상해질까. 얼마나 평화로워질까. 얼마나 행복해질까. 뇌물, 매수, 매절買切은 완전히 흔적을 감출 것이다. 살인강도, 간음은 태반이 줄어들 것이다. 공창제 폐지를 부르짖을 필요가 없다. 풍속 개량을 설파할 필요가 없다. 당장에 이곳이 정토이고 천당이니, 성쇠란 자연의 숫자다. 예로부터 인도, 이집트, 그리스, 로마 문명에서 만약 금전의 존재가 없었다면, 그 수명이 수천 년은 더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다만 금전의 세력이 지금과 같은 때에 금전 폐지라는 말을 꺼낸다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미쳤다고 할 것이다. 미쳤는가, 정말로 미쳤는가. 세계 도처에 충만한 유럽 최신의 사회주의는 모조리 미쳤을까. 사회주의자는 금전 폐지, 자본의 사유私有 절멸을 이상으로 삼았다. 그들은 인간과 사회가 금전 밖에서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금전 바깥에 세력, 명예, 권리, 의무가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리다. 이것이 정의다. 진리와 정의가 과연 실제로 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회주의 실행이 어찌 어렵겠는가. 그렇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루려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은 본래 단순한 교환 매개, 가격 표준으로서 금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 효용을 도량형이나 철도 승차권이나 의사의 처방전 같은 것에 지나지 않게 한다면 그것이 희든 누렇든 둥글든 네모났든, 진구 황후를 옮기든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그리든 추호도 폐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다만, 어쩌겠는가. 금전은 본래의 효용이나 목적 이상으로 무한 만능의 세력을 떨치며 인심을 부패시키고 풍속을 어지럽히고 자유를 파괴하고 평등을 교란하고 사회와 국가를 망하게 하지 않고는 끝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금전 폐지를 부르짖는 것은 오늘날의 이른바 ‘금전’의 의미를 절멸시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무한 만능의 힘을 절멸시키는 데 있다.

그런데 금전 폐지는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오로지 자본의 사적 소유를 금하는 데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금전이 무한 만능의 힘을 누리는 까닭은 개인이 그것을 생산 자본으로 자유로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보라. 그들은 금전을 자본에 투자한 탓에, 배불리 안락한 생활을 하며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토지, 기계, 노동의 세 요소에서 생산된 부의 대부분을 혼자서 빼앗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그들은 빼앗은 부를 가지고 더욱더 자유로이 토지와 노동을 매수하여 끊임없이 생산의 대부분을 빼앗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금전을 생산 자본으로 삼아 자유로이 사용하는 한, 부는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손에 축적되고 분배는 점점 더 균형을 잃어 빈부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 그리하여 금전에 대한 사회의 욕망이 한층 맹렬해지면, 다시 그만큼 금전의 세력은 커진다. 그리하여 그것이 극에 달하면 ‘금전’이라는 무한의 세력을 가진 자는 홀로 명예와 권세와 부귀를 독점하여 사회는 완전히 타락해버린다. 이것을 공평하다고 할 수 있는가. 정의라고 할 수 있는가. 하지만 이것이 오늘날의 실상이 아닌가.

더구나 금전은 직접적으로 생산 자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토지, 기계, 물품의 가격 표시에 지나지 않는다. 토지나 생산 기계를 사회 공공의 소유로 옮겨 만인이 똑같이 생산에 종사한다면 금전은 단지 생산된 물품의 분배에 필요한 매개 표준에 지나지 않으며, 그 효용은 도량형에 지나지 않는다. 승차표에 지나지 않는다. 의사의 처방전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오늘날과 같은 세력과 해독이 있을 수 있겠는가.

무릇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일하지 않는 자는 먹을 수도 없다. 이것은 천지의 가장 중요한 법이다. 지금 금전으로 자유롭게 토지와 기계와 노동을 매수하게 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개인으로 하여금 금전을 생산 자본으로 자유로이 사용하게 하기 때문에 금전을 가진 자는 모두 무위도식한다. 단지 무위도식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타인의 의식주 대부분을 빼앗아 낭비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석가가 크게 개탄하고, 예수가 통분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아직 자본 사유의 금지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들이 이것을 단행하지 못할 만큼 오늘날의 세상이 말세는 아님을 믿는다.

그렇다. 우리들은 다시 한 번 말한다. 금전 무한 만능의 힘을 절멸시켜 사회의 타락을 구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신속히 오늘날의 경제 제도를 개혁하여 생산 자본을 사회 공동의 소유로 옮겨야 한다. 이것을 사회주의적 개조라고 하며 근대 사회주의자는 이것을 유일한 이상으로 삼는다.

천하에 인심을 밝히고 세상의 도의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는 어찌 구구히 지엽적 논의를 그만두고 우선 사회주의의 실행에 힘쓰지 않는가. 이것이 여러분이 그 목적을 달성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아아, 19세기는 자유주의 시대였다. 20세기는 장차 사회주의 시대가 되려고 한다. 천하의 유망한 자들은 다만 이 새로운 기운을 뚫어볼 필요가 있다.


(〈金錢廢止の理想〉 · 〈禁轉廢止の方法〉, 「萬朝報」 1900년(메이지 33년) 2월 9일 · 22일)



위장胃腸의 문제(사회주의가 시급하다)


아아, 어리석은 교육자여. 세상 물정에 어두운 종교인이여. 우둔한 정치가여. 그대들은 날마다 신문 3면 기사를 읽고 있는가. 그대들이 전심전력으로 목청을 쉬게 하고 심기를 소모하며 열심히 윤리를 풀이하고 도덕을 설파하고 치국평천하를 강구하는데도, 한편에서 얼마나 우리나라 사회 질서가 문란하고 풍속이 타락하고 사기, 분쟁, 뇌물, 간음, 도적, 살인 기타 모든 부덕한 죄악이 한 치의 거리낌도 없이 갈수로 유행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그대들은 자신들의 설득력 있는 설법, 고상한 교훈, 세심한 제도의 효과가 미미한 것에 어이가 없을 것이다.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대들의 배움이 얕은 것이 아니다. 그대들의 앎이 적은 것이 아니다. 그대들의 열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효과가 없는 것은, 마치 떨어지는 물방울로 수레에 실린 장작에 붙은 불을 끄려고 하는 것과 같은데, 그토록 사회의 타락이 심한 까닭은 과연 무엇인가. 그대들은 이 사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인간이 빵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또한 하루라도 빵 없이는 살 수 없다. 학생에게 생활을 위해 배우지 말라고 할 것인가. 시인에게 생활을 위해 시를 쓰지 말라고 할 것인가. 상인에게 허위 광고로 세상 사람들을 속이지 말라고 할 것인가. 이것은 바로 그들에게 자살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자살을 강요하는 종교나 교육에 과연 누가 귀를 기울일 수 있겠는가. 사람이 첩이 되는 것도 먹기 위해서다. 정치 활동가壯士가 투표를 사는 것도 먹기 위해서다. 의원이 절개를 파는 것도 먹기 위해서다. 이것을 금하고자 한다면 따로 먹는 길을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에서 과연 먹지 않고 덕의德義나 인도人道가 있을 수 있겠는가. 어차피 인생의 첫 번째 의미는 위장의 문제다.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는 한 만사 만물은 여전히 혼돈 속에 있을 것이다. 공자가 일컫기를 백성을 부유하게 한 뒤에 가르치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의미다.

지금 우리 국민의 위장 문제는 과연 완전하고 정당하게 해석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우리 동포는 완전하고 정당하게 먹고 있는가.

예쁜 옷을 걸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항상 소비자지 생산자가 아니다. 일거에 수천만의 부를 얻는 것은 항상 투기꾼이지 생산자는 아니다. 일개 정당이 토지세를 늘리거나 우편선 회사를 보호하여 수십만 금을 취득하는 반면, 수만 명의 노동자는 해마다 조세 체납 때문에 경매 처분을 당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정당한 육체노동으로 1센을 얻거나 또는 얻지 못하는 동안에, 부정한 사업을 하는 자는 100금을 얻는다. 많이 정직할수록 그만큼 많이 가난하고, 많이 간계할수록 그만큼 부유해지는 것을 보면 누가 함께 이쪽으로 향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부의 분배가 갈수록 부정해지고 생존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져서 신문 3면을 부덕과 죄악으로 채우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실상이 아니겠는가.

이것을 구하는 길이 명확하지 않다면 수백 가지 교훈이나 제도도 결국 무익하고 어리석은 임시변통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국민의 위장 문제를 해석하려는 시도가 이처럼 의롭지 못하고 부정하고 불완전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는 단연코 이것은 개인주의적 제도의 폐단이자 자유 경쟁으로 발생하는 해독의 탓이라고 주장한다.

개인의 경쟁은 사회 진보의 원천이라고 한다. 어떤 점에서 보면 우리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교섭하는 동물이다. 경쟁이 있음과 동시에 통일이 없으면 안 되며, 한 개인이 스스로 살 권리가 있음과 동시에 다른 개인을 살릴 의무 또한 있다. 만약 경쟁이 있는데 조화가 없고, 차별이 있는데 통일이 없이 자신만 생존하고 다른 생존을 돌아보지 않게 된다면, 개인이 진실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적자適者는 진실로 번영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경쟁 또 경쟁의 끝에 적자는 더 고등한 적자에게 눌리고 우자優者는 더 고등한 우자에게 꺾여서, 단지 가장 고등한 우자, 적자만을 남길 뿐이고 다른 수천만은 모조리 타락하고 모조리 쇠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것이 어찌 인간 사회, 문명 진보의 목적이겠는가. 아니, 수천만의 타락과 쇠망의 끝에는 가장 고등한 우자, 적자도 스스로 서지 못한다는 것이 필연의 이치다. 현 사회의 추세는 바로 이와 같은 과정에 있지 않은가.

과학이 진보함에 따라 사회의 생산력과 생산물이 얼마나 놀라운 비율로 증가하고 있는지는 이미 우리들이 두 번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여전히 한편에서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져서 인간은 오로지 생활의 경쟁에 분주한 나머지 위장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고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매우 이상한 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검토하면 그 원인은 자유 경쟁 제도가 경제계를 무조직과 무정부 상태로 빠뜨린 데서 기인하지 않은 것이 없다. 봉건 세계에서는 개인의 진보가 없었다고 해도 만인의 안심은 있었다. 개인의 자유가 없었다고 해도 만인의 통일이 있었다. 위장의 문제는 정당하고 비교적 완전하게 해석되었다. 그래서 무사도도 있었고 명예도 있었고 도덕도 있었고 신용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자유 진보의 세상은 위장 이외에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개인 경쟁이 경제 사회에 끼치는 폐해는 우리가 일일이 상세하게 서술할 여유가 없지만, 부의 분배가 불평등하고 또한 매우 의롭지 못하고 부정하게 이뤄지는 것이 첫 번째다. 빈부 격차가 갈수록 심해져서 생산이 낭비되는 것이 두 번째다. 운수 교통 기관 등의 독점적 사업이 경쟁에 휘말려 결국 한 개인이나 한 회사에 합병되는 것이 세 번째다. 광고 경쟁과 상업적 여행이 거액의 부를 낭비할 뿐만 아니라 고객을 기만하는 해독이 네 번째다. 생산이 항상 과잉되거나 부족하여 수요 공급이 자주 균형을 잃는 것이 다섯 번째다. 그리하여 그 결과란 공업이 위기에 처하고 공황이 발생하며 물가의 고저가 일정치 않고 결핍, 기아, 악덕이 초래되는 것이 여섯 번째다. 이리하여 경제계는 완전히 무정부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다. 무정부다. 간계와 폭력의 경쟁에 일임한다. 오로지 우승열패, 약육강식의 결과에 일임한다. 이때에 자본가의 횡포를 탓하지 말라. 그가 횡포하지 않으면 다른 자본가에게 눌리는 것이다. 금전이 없는 자는 명예가 없다. 심한 경우에는 의식주도 없다. 그리하여 금전이 자유 경쟁, 부정 불의의 경쟁에 일임된다면, 누가 질서의 문란이나 풍속의 타락을 이상하게 생각하겠는가. 우리는 굳이 교육이나 종교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금전이 없으면 교육의 혜택을 입을 수 없는 제도라면, 금전이 없으면 종교를 받들 수 없는 조직이라면, 결국 보급이나 감화의 성과를 볼 수 없는 것을 어쩌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만민의 위장을 만족시키는 것이 곧 교육과 종교가 번창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으로 생기는 폐해는 조화를 통해서 구제하지 않으면 안 되고 차별로 인해 생기는 해독은 평등을 통해서 구제하지 않으면 안 되며, 개인주의가 혼란하게 만든 세계는 사회주의를 통해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셰플레는 사회주의는 명백히 위장의 문제라고 했다. 에드먼드 켈리는 사회주의는 근검절약 위주의 생산과 공정한 분배 문제를 해결해주는 실질적 기획이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 국민의 위장 문제를 정당하고 또한 완전하게 해결하는 것은 오로지 사회주의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胃腑の問題(社會主義の急要)〉, 『萬朝報』 1900년(메이지 33년) 9월 18일~20일)



최근의 노동 문제(사회주의의 적용)


최근 노동 문제를 논의하거나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회주의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만약 이런 종류의 속설이 사회에서 세력을 얻기 시작한다면, 비단 사랑스러운 우리 노동자 우리 여러분의 앞길을 크게 그르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나라의 각종 사회 문제, 특히 노동 문제의 앞길을 막고 갈수록 곤란과 분규 속으로 빠뜨려 오래도록 해결을 볼 기회가 없을 것이다. 천하 민생의 불행 가운데 이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지금 이 속설들을 완전히 배척하고 우리 노동자 여러분을 위하여 외길의 불기둥fire pillar을 밝히는 것이 우리들의 시급한 책임임을 믿는다.

예전에 활판공 동지 간화회 회보에 게재된 구와타(桑田) 모 씨의 〈노동자와 자본의 관계〉라는 제목의 연설을 읽었다. 이 연설 같은 것이 이 속설을 고무하는 것 가운데 하나다. 그는 “장래의 노동 문제 해결은 노동자와 자본가가 친밀하고 온화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으며, 세상에 잔인하고 각박한 자본가가 없지는 않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죄이지 자본가 전체의 죄는 아니다. 그것으로 자본가 전체의 박멸을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 단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도저히 실행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라고 했다.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가 만약 온화하고 친밀할 수 있다면 정말 바람직하다. 사회주의자라고 해도 어찌 감히 이견이 있겠는가. 하지만 현 제도 아래 있으면서 과연 언젠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이론보다 증거라고, 양자 사이는 작년보다는 올해에, 어제보다는 오늘 시시각각으로 분열과 충돌이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분열과 충돌을 불러온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를 보라. 속설론자는 이것을 단지 노동자의 지식과 패기 부족에 돌리고 있다. 어쩌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에게 지식과 패기가 부족한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인가. 그 이유는 주로 자본가의 횡포와 빈부 격차에 있지 않은가. 또한 자본가의 횡포와 빈부 격차는 과연 무엇 때문인가. 이것은 주로 현 자유 경쟁 제도의 폐단에 있지 않은가. 뿌리가 어지러운데 끝이 다스려질 리가 없다. 자유 경쟁의 조직이 폐단을 심화하는 동안은 양자의 친목과 조화가 어찌 쉽겠는가. 사회주의자가 자유 경쟁 제도를 사회주의 조직으로 대치하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속설론자는 노동자에게 오로지 자본가와 친목하는 것이 최고의 책략이라 주장한다. 얼마나 잘못된 주장인가.

사회주의자라 하더라도 자본가 전체를 죄인으로 보지는 않는다. 자본가는 모조리 잔인하고 각박한 사람이라고 믿지도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자유 경쟁이 결국 자본가를 저도 모르게 각박하고 잔인하게 만드는 것을 어쩌겠는가. 무릇 자유 경쟁은 비단 노동자를 괴롭힐 뿐만 아니라, 자본가도 거의 견디지 못하게 한다. 아무리 속설론자가 조화를 주장하든 친목을 주장하든, 그들은 도저히 싸우지 않을 수 없다. 겨루지 않을 수 없다. 다투지 않을 수 없다. 한 편은 항상 누르려고 한다. 한 편은 항상 저항하려고 한다. 설령 잠시 양자가 조화를 이룬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도, 이것은 결코 진정한 조화가 아니라, 운 좋게도 마침 항거의 힘이 압제의 힘에 맞먹을 수 있었기 때문일 뿐이다. 이것이 어찌 영속적이겠는가. 그러므로 잘 보라. 노동자가 조합을 만들면 자본가는 트러스트를 만든다. 노동자가 동맹 파업을 하면 자본가는 블랙 리스트를 만든다. 그리하여 이 싸움은 지금과 같은 약육강식의 세상에서는 항상 노동자에게 불리하고 자본가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사회주의자도 마찬가지로 자본과 노동의 상부상조의 필요성을 안다. 하지만 오로지 자본가와 노동자의 친목으로 자본과 노동이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망령된 오류의 극치다. 아니, 자본가와 노동자의 영원한 친목은 결코 바랄 수 없는 일이다. 저 속설론자가 오늘날 이러한 친목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것은 우리 노동자 여러분을 영구 노예의 처지에 만족시키려는 것이다. 무턱대고 자본가, 고용주의 배를 살찌우려는 것이다.

그렇다. 자유 경쟁 제도는 자본가, 노동자 모두에게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아직은 폐단이 서구 여러 나라처럼 심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자 자본가 친목론’을 한가로이 고취할 여지가 있어도 서구의 전철은 이미 눈앞에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 방적업자가 일종의 트러스트 조성을 기도한 것 등은 이미 이러한 폐단에 말려들려고 하는 조짐이 아닌가. 자본가 절멸을 목적으로 한다고 사회주의자를 함부로 중상하지 말라. 자유 경쟁 제도를 사회주의적 제도로 고치는 것은 노동자를 살릴 뿐만 아니라, 자본가도 살리기 위함임을 알라. 사회주의자는 일시동인一視同仁이다. 전심을 다하여 자본과 노동의 조화를 바란다. 하짐나 자본가와 노동자의 친목은 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안다. 저 속설론자라 해도 이것을 모르지 않는다. 실제로 구와타 모 씨는 연설에서 또한 “주식회사에서 주주는 오로지 이익 배당이 많기를 바란다. 관리자도 되도록 이익 배당을 많게 해서 주주의 환심을 사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들에게 직공을 보호하고 너그럽게 대할 것을 바라는 것은 도저히 실행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명백히 친목을 바라기가 어렵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속설론자의 자가당착적 논리가 아닌가. 그렇다. 자본가 전체는 잔인하고 각박하지 않다고 해도 그들은 결코 기꺼이 이익을 나누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노동자의 눈으로 보면, 아니 사회 민생의 눈으로 보더라도, 자본은 정말로 필요하지만 자본가는 결코 필요하지 않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사회주의자가 일시에 급격한 변혁으로 천하의 자본가를 모조리 절멸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을 바로 지금 곧바로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사회주의자를 이와 같은 폭도로 여겨 배척하고 비난하는데 열중하는 것은 중상도 너무 지나친 중상이다. 하물며 오늘날 자본가가 노동자를 보호하고 가까이할 희망이 도저히 없음을 알면서도 오로지 노동자들을 향해 온화와 친밀을 설파하는 것은 모순당착의 끝이 아니겠는가.

속설론자여, 자본과 자본가는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라. 사회주의자는 감히 자본가의 절멸을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자본과 노동의 진정한 조화를 위해서는 자본을 사회의 공유로 할 것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로서 개인인 자본가의 부정한 폭리를 줄이는 것이 어찌 불가능하겠는가. 예전에 사민 평등을 위하여 봉건 군주의 영토를 봉환시켰던 것을 보라. 이것이 부당한 처사가 아니라고 한다면, 어찌 유독 자본가의 폭리를 줄이는 것을 부당하다고 하겠는가. 이렇게 되면 자본가는 노동자를 약탈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보다 큰 자본가에게 약탈당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를 살리는 동시에 자본가를 살리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박애다. 일시동인이다. 속설론자의 희망처럼 하나를 괴롭혀서 다른 하나를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속설론자라 해도 지금의 경제 조직의 폐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예의 ‘자본가 노동자 친목론’을 떠들어대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덥지 않은 현재 조직을 개조하여 자본과 노동의 완전한 조화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주의를 비난하고 배척하기에 진력하는 것은 스스로를 너무 심하게 기만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사회주의는 실행할 수 없는 탁상공론이며 동맹 파업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사회주의는 과연 실행할 수 없는 것인가. 우편, 전신, 철도, 삼림의 국유는 모두 사회주의의 실행이 아닌가. 전신, 가스, 시가철도 같은 것이 시영市營인 것이 사유인 것에 비해 훨씬 편리하고 저렴하다는 것은 서구의 여러 도시가 이미 실험하지 않았는가. 글래스고 같은 곳은 시가 나서서 값싼 임대주택을 건축하여 노동자에게 빌려주지 않았는가. 만약 사회주의자가 일거에 천하의 자본을 모조리 국가로 몰수하고 모든 공업을 모조리 중앙정부에 위임하라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진정 실행하기 어려운 탁상공론일 것이다. 하지만 걱정을 멈추라. 사회주의는 결코 이와 같이 과격하고 난폭하지 않다. 사회주의자는 오로지 중앙정부의 만능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국가의 무한한 권력을 숭배하는 사람이 아니다.

영국 페이비언협회Fabian Society의 노동자 정치 강령 중에 “우리는 시회市會나 군회郡會가 공업 생산의 각 부에 관계할 세력을 갖기를 바란다”고 하는 구절이 있다. 또한 “우리의 금전을 둘 곳을 중앙정부의 금고 이외에 찾을 수 없는 한은, 토지를 국유로 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중앙정부는 다만 재산을 화약 등의 외교적 손상에 소비할 줄만 알 뿐이다. 의회는 지방의 공업 생산의 곤란함이나 실업 노동자를 구제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 작게는 일개 정촌町村의 사업에서 크게는 일개 현縣이나 도부都府, 한 나라의 사업까지 각각의 편의에 따라 점차 자본을 사회 인민 모두의 손에 집중해 생산의 이익을 공평하게 분배한다. 이것이 사회주의의 주장이다. 도쿄 마차철도가 영원히 사유로 남아야할 이유는 없다. 시가철도는 결코 영원히 증권 중개업자의 먹이가 되어야할 이유가 없다. 이것을 공유로 하여 만민이 공평히 이익의 배당을 받는 것이 어찌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겠는가. 다만 땅과 때와 사정에 따라 다소 시일의 길고 짧음과 성과의 완성도를 달리할 뿐이다.

하물며 사회주의자가 동맹 파업을 목적으로 삼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슨 견강부회인가. 속설론자가 숭배하는 자본가 가운데 때로 잔인하고 각박한 사람이 있듯이, 사회주의자 가운데 또는 엄청난 억압과 박해 탓으로 난폭하고 과격한 행동을 불사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때문에 사회주의를 배격해야 한다고 한다면, 유신 이전의 근왕론자는 모조리 난적이 아닌가. 오히려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아마도 그렇다. 세상에 만약 실행하기 힘든 탁상공론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주의자의 논의가 아니라, 오히려 속설론자가 주장하는, 지금의 경제 조직의 범위 내에서 노동자의 지위를 개선하려고 하는 논의임을 알라.

요컨대 우리나라 노동 문제의 귀착은 비단 시간 단축을 탄원하는 것만도 아니고, 임금 증가를 탄원하는 것만도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가 정당한 지위와 권력을 보유하고 생산에 대한 공평한 분배를 얻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것은 지금의 경제 조직에서는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일이며, 반드시 사회주의적 이상의 실행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자로 하여금 자본을 공유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적어도 우선 공공사업에 참여할 권리를 갖게 하는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보통선거 시행과 같은 것은 특히 시급한 사안에 속한다.

아아, 우리나라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오로지 사회주의가 있을 뿐이다. 노동자 여러분을 살리는 것은 오로지 사회주의가 있을 뿐이다. 속설에 속지 말라.


(〈近代の勞動問題(社會主義の適用)〉, 「萬朝報」 1899년(메이지 32년) 10월 3일~4일)



제국주의의 쇠운


사회주의를 혐오하는 자여. 눈을 크게 뜨고 세계의 대세를 보라. 사회주의는 명백히 20세기의 위대한 이념이자 위대한 이상이 아닌가. 무릇 지금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라는 것은 우리들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해악은 이제 거의 절정에 달했다. 유럽 각국이 민력과 국력을 다하여 새 영토 경영과 군비 확장에 급급한 결과는 곧 인민 다수의 곤란과 기아, 죄악뿐이다. 우리는 이미 독일과 러시아 두 나라의 실상을 통해 분명한 예증을 볼 수 있었다.

비전쟁론자로 유명한 장 드 블록은 일전의 『평론의 평론』지상에서 〈독일의 무장을 통한 평화〉라는 제목으로 그 위험성을 논했는데, 독일은 결코 전쟁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들은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변한 뒤로 거액의 식량을 해외에서 수입해 왔다. 만약 그들이 4백만 명의 병사를 징집한다면 당장 내지에서 9백만 톤의 식략 생산력을 잃을 것이다. 게다가 공업은 전쟁 중에는 원료 공급 길이 완전히 끊길 것이다. 그런데 현재 독일 무역은 2천만 명을 먹이고 있다. 상공업이 한번 위축되면 그들은 어떻게 먹고살 수 있겠느냐고 했다. 블록은 또한 “독일의 상업적 위치는 점차 비운으로 치닫는다. 그들은 염가에 염가를 거듭하여 상품을 팔고 있다. 또한 빈번히 외국 시장을 찾고 있지만 침체에서 도저히 벗어날 가망이 없다. 지금 구제 방책은 오로지 군비 감축 하나뿐이다. 이것이 아니면 독일은 과거와 같은 전성기는 다시 누리지 못할 것이다. 보라, 시장이 정말로 부담을 견딜 수 있겠는가. 어찌 의화단 운동 때 출병 비용을 대기 위해 미국에서 외채를 모집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했다.

블록은 나아가 프로이센-프랑스전쟁 이래로 독일의 전시 저항력은 70퍼센트가 줄었다고 단언하고 독일 국민의 번영은 한갓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갈파하며 아래의 통계를 제시했다.

인구의 45퍼센트 1년 수입 197마르크 이하

인구의 40퍼센트 1년 수입 276마르크 이하

인구의 5퍼센트 1년 수입 896마르크 이하

인구의 1퍼센트 1년 수입 2,781마르크 이하

블록의 말이 과연 정곡을 찔렀다고 한다면 빈약함이 오히려 놀랄 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것은 이상하게 여길 일이 아니다. 블록이 일컫는 유일한 구제책인 군비 감축을 하지 않은 채 상공업 이익이 완전히 군비와 식민지 확장으로 흡수되는 동안 다수 인민은 갈수록 빈곤으로 떨어지고 생존을 위한 싸움은 갈수록 격심해질 것이다. 그렇다. 실제로 작년 통계에 따르면 이 나라에서 1년간 자살자가 거의 8천 명에 이르는데, 전반적인 생활의 타락, 악덕과 비관이 원인이라고 한다. 무릇 그들이 중국에서, 남아프리카에서, 사모아에서 많은 이익과 영광을 얻은 결과는, 이와 같이 사회 조직을 거의 뿌리에서부터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인민은 결코 위험한 상태를 오래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저들의 제국주의는 평화에 의해서든 혁명에 의해서든 어느 쪽이든 머지않아 바로 묘지에 묻히려고 한다는 것을 우리들은 믿는다.

러시아는 위험성이 이보다 더욱더 심하다. 러시아 예산이 결코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님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안다. 최근에 도착한 「격주평론」에 실린 어떤 글은 파울스의 『기아의 러시아』라는 책을 인용하여 일컫기를, 1887년 1월부터 1899년 1월에 이르는 12년간 러시아 공채는 43억 루블에서 61억 루블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 17억의 공채 수입 중에 철도 등 생산 사업에 투자한 것은 12억이고 나머지는 모조리 세수 부족을 보충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무턱대고 영토를 팽창하고 군비를 확충한 결과는 한편에서 민간의 극심한 피폐를 낳음과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 철도 등의 사업은 아직 수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외채 원리금 상환과 세수 보충을 위해서는 또다시 외자를 투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외자 투입 방법이 없다면 내국의 모든 정화正貨를 수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 재산은 이제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뿐만 아니라, 각지의 상공업이 위축됨에 따라 하층 인민의 불만은 갈수록 증가하여 정말로 일대 혁명의 조짐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그들이 여전히 군비주의, 제국 팽창주의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뒤를 잇는 것은 파산이냐 혁명이냐 양자택일밖에 없다. 이것이 러시아 위정자가 현재 가장 고심하는 문제다. 그러므로 러시아도 머지않아 제국주의를 버리고 나아가 일종의 새 이념을 구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과 마주칠 것임을 우리들은 믿는다. 비단 독일과 러시아 두 나라뿐만 아니라 이탈리아도 그렇고 프랑스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영국도 그렇다. 제국주의는 지금 사회 다수의 곤란과 기아, 죄악을 증가시키고 사회 조직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군인, 자본가, 정치가는 자기의 헛된 명성과 이익 때문에 그것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수 인민은 이 상태를 견딜 수 없으며, 나아가 사회 구제의 위대한 이념과 위대한 이상을 외치기에 이를 것이다. 그리하여 제국주의가 쓰러지면 세계를 지배하는 위대한 이념과 위대한 이상은 바로 사회주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생각해보라. 제국주의가 다수 인민을 곤란과 기아, 죄악에 빠뜨리는 까닭은 빈부 격차를 심화하고 생존을 위한 싸움을 혹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의 목적은 우선 빈부 격차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빈부 격차를 제거하고자 한다면, 사회주의자가 주장하듯이, 모든 생산수단을 공유로 하고 만인을 균등하게 노동자가 되게 하여, 생산 분배를 공평하게 하는 것 이외에 결코 방법이 없다. 에밀 졸라는 탄식하며 “아아, 이것은 세상을 구할 경이로운 교의다(wonderful doctrine)”라고 말했다. 그렇다. 사회주의는 세상을 구할 위대한 이념이다. 이것은 공상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다. 이것은 과격한 것이 아니라 시급한 문제다. 지금 서구의 어질고 의로운 지사는 우선 이에 따라 사회의 개혁 구제를 수행하기 위해 착실히 보무를 내딛어, 그 세력은 제국주의의 해독이 늘어남과 동시에 증대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회주의를 혐오하는 우매한 무리는 마땅히 눈을 크게 뜨고 보라.

독일에서는 비스마르크가 잔혹한 진압을 시도했는데도 점차 당원이 증가하여 지금 제국의회에 58명의 의원이 있지 않은가. 프랑스는 사회당 지도자 밀랑이 내각에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의회에 47명의 의원이 있지 않은가. 영국의 사회당은 13명의 의원이 있으며 벨기에의 사회당은 35명의 의원이 있다. 그리하여 유럽 전체의 사회당 선거자를 계산하면 장년층만으로도 무려 수백만 명에 이르며, 선거마다 경이로운 비율로 증가하고 있지 않은가. 더욱이 이들 각국 지방의회에서 사회당 의원에 이르면, 간단히 그 지방의 다수를 차지하는 곳이 적지 않다.

무릇 최근 그들의 국제 운동은 재작년(1899년) 3월 런던 대회, 같은 해 5월 브뤼셀 대회부터 작년(1900년) 파리 박람회 당시의 대회에 이르러 급전직하의 기세로 세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파리 대회의 결과로 만국동맹 본부를 벨기에에 두고 세계 각국 사회주의의 단결을 견고히 하여 민활하게 일치 운동을 벌이고자 했다. 그리하여 사회주의가 실제 정치에 응용되는 곳은, 벨기에나 뉴질랜드나 런던, 글래스고 등의 시정市政처럼 모두 성과를 올리고 있다. 대개 이와 같다. 세계의 대세가 향하는 곳은, 비스마르크의 무쇠팔이 환생한다 하더라도 어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일본이 어찌 홀로 사회주의 운동의 조류를 탈출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공업이 있고 군비가 있고 빈부 격차가 있고 생존을 위한 고투가 있고 다수의 곤란과 기아, 죄악이 있는 곳에는 사회주의가 반드시 구세주로 도래할 것이다. 아니, 도래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이 최근에 사회주의를 절규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연히 미국인의 소설을 펼치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모아나의 뺨은 뚜렷이 홍조를 띠고 그 눈은 아름답게 빛났다.

그녀는 쓸쓸히 미소 지으며, 부디 내가 논쟁적인 것을 용서해줘, 로드 군. 나는 많이 살았어. 나는 가난한 자가 억압받는 것을 봤어. 그리고 부자와 그들의 고용주가 무관심한 것을 봤어. 내가 만약 남자였다면 나는 반드시 사회주의자가 되었을 거야.

아아, 이것을 소설가가 꾸며낸 말이라고 하지 말라. 적어도 어느 정도 이론적 두뇌를 가지고 인자하고 박애하는 마음이 풍부하며 매우 공평한 눈빛으로 만국 사회의 상태를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은 평범한 부인이라 해도 사회주의자임을 결코 금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실상이다. 하물며 수염 난 당당한 대장부로서 천하에 뜻을 품는 자라면 오죽하겠는가. 왜냐하면 오늘날의 사회는 사회주의가 아니면 도저히 길이 없기 때문이다. 구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우매한 무리가 여전히 코를 골고 잠에 취해 있다면 사회주의의 홍수는 하루아침에 당신의 침대를 표류하게 할 것이다.


(〈社會主義の大勢〉, 「日本人」 1900년(메이지 33년) 8월 20일)



암살론


암살을 죄악이라 하는 것은, 마치 분뇨를 더럽고 냄새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코 아무도 이의가 없는 사항이므로 논할 필요조차 없다. 분뇨는 원래 인체 조직상 자연스러운 결과로 나오는 것이니 아무리 냄새나고 더러운 것이 싫어서 막으려 해도 어쩔 수 없는데, 사회가 암살자를 낳는 것도 아마도 이와 마찬가지 흐름이 아닐까.

전쟁은 나쁜 것이다. 우리는 하루 속히 전쟁이 없는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결코 전쟁을 장려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 조직에서는 때로 전쟁이라는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고서는, 자국의 억울함을 달래고 굴욕을 피하며 권리와 이익을 지킬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도덕이 이 경우에도 여전히 전쟁을 나쁜 것이라고 배척할 정도로 나아가지 않거나, 국제공법이 전쟁을 하지 않고도 각국의 행복과 권리를 보전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을 갖추지 않는 한, 전쟁은 결국 피할 수 없는 추세다. 전쟁이 결국 피할 수 없는 추세라면, 비단 그 죄를 군인한테 돌려서 그들을 흉악한 무리라 부르고 나약한 겁쟁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외치고 붓이 닳도록 써대도, 아무런 효과가 없음은 명백하다. 지금의 암살자가 나오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로 이와 비슷한 점이 있지 않겠는가.

동맹파업은 좋지 않은 것이다. 이것을 장려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때로 노동자가 이 불량한 수단으로 핍박과 궁핍을 피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오늘날의 경제 조직이 노동의 가치를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매기는 한, 어쩌면 일반 노동자가 굶어 죽더라도 절대로 불량한 짓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백이와 숙제 같은 인물이 되지 않는 한은, 동맹파업은 결국 피할 수 없는 추세다. 동맹파업이 결국 피할 수 없는 추세라고 한다면, 오로지 그 죄를 노동자에게 돌려서 그들을 흉악한 무리라 부르고 나약한 겁쟁이라고 칭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외치고 붓이 닳도록 써대도 아무런 효과가 없음은 명백하다. 지금의 암살자가 나오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로 이와 비슷한 점이 있지 않겠는가.

국제 공법이 국제 분쟁을 판결할 능력이 없는 것처럼, 경제 조직이 자본가와 노동자를 조화시킬 수 없는 것처럼, 개인이나 당파의 행위에 대하여 사회의 법률도 양심도 완전히 시비와 이해를 판단하고 또한 그것을 제재할 힘을 상실하는 경우가 있다. 또는 그 힘을 상실한 것과 비슷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사회의 판단과 제재에 절망한 사람은 은자가 되거나 광인이 되거나 자살을 하거나 바로 암살자가 된다. 암살은 정말로 죄악이다. 하지만 암살자를 절망에 빠뜨린 사회는 한층 더 죄악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그들은 개인이나 당파의 행위에 대한 사회의 판단과 제재가 무력한 데 절망하여, 스스로 사회를 대신해서 판단과 제재를 하려는 사람들ㄹ이다. 고로 가슴속에 한 점 사적인 것을 품지 않으며, 사회 다수의 의견에 근거하여 자기 자신의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경향이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모든 암살자가 이와 같다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는 헛된 명예를 위하여 암살하는 자도 있고, 미쳐서 암살하는 자도 있으며, 사적 원한 때문에 암살하는 자도 있다. 마치 의롭지 못한 명성을 위해 전쟁하고, 불법적 사욕을 위해 동맹파업을 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진정으로 당시 사회에 절망하여 암살을 사회의 유일한 활로로 삼은 사람은 명백히 많은 민생의 아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송구스럽지만, 나카노오에 황자는 소가노 이루카(蘇我入鹿, ?~645)의 암살자셨다. 야마토 다케루노미코토는 가와카미노 다케루(川上梟帥)의 암살자셨다. 그들이 어찌 암살이 상도를 벗어났음을 알지 못했겠는가. 다만 당시 사회의 법률도 양심도 이에 대해 아무런 제재도 할 수 없는 것을 보고서 스스로 사회를 대신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루카를 죽이고 다케루를 치는 것을 사회 다수의 의견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과연 천하는 이 암살에 손뼉을 치며 통쾌히 여겼다. 그렇다. 당시의 법률, 도덕, 사회 조직에서 이 거사가 있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추세였고, 인력으로 도저히 저지할 수 없는 것으로서 오히려 하늘의 뜻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메이지明治인 오늘날의 암살은 어떠한가. 암살은 도저히 근절할 길이 없는가. 우리들은 따로 주장이 있다. 메이지인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사회가 개인이나 당파의 행위에 대해 정당한 판단과 제재의 힘을 잃어버린 시대다.

호시 도루 암살 사건을 보라. 그를 가령 올바른 군자君子였다고 해보자. 이 올바른 군자를 보고 공공연히 도적이라 매도하고 악한이라고 부르는 언론에 대해서는, 사회가 이것을 옳지 않다고 해서 충분한 제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사회는 이것을 알면서도 제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 반대로, 호시를 가령 나쁜 도적이라고 해보자. 사회는 재빨리 선고를 내려서 결코 그가 공인으로 나서지 못하게 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사회는 이것을 알면서도 제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이미 사회의 판단과 제재를 기대할 수 없어서 사회에 절망한 끝에, 오로지 자기가 보았을 때 사회 다수의 복리라고 믿는 것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곧 암살자가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암살자도 본래 암살이 나쁜 행위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무능력한 사회에 의해 다수의 복리가 훼손당하는 것을 방관하는 것은 암살보다 더 큰 죄악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것이 어찌 고대 순교자martyr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들은 믿는다. 호시의 암살은 호시 자신의 행위도 원인일 것이다. 이바 소타로(伊庭想太郞, 1851~1903)의 어리석음도 원인일 것이다. 신문 등의 언론도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이 지경까지 이르게 한 근본 원인은 사회가 판단과 제재의 힘을 잃은 데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가 판단과 제재의 힘을 잃은 것은 부패와 타락이 고질병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의公義를 모른다. 공익을 보지 않는다. 있는 것은 오로지 자기 한 몸의 이익뿐이고 권세뿐이다. 호시의 행위에 대해서는, 자기에게 이익이 되면 칭찬할 뿐이고 자기에게 불리하면 헐뜯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무슨 판단과 제재를 할 수 있겠는가. 절망한 자가 나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들은 두려워한다. 사회의 부패와 타락이 오늘날의 추세로 흘러 막을 길이 없다면, 비단 한 사람의 암살자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장래에 얼마나 많은 허무당과 많은 무정부당을 내게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이것은 마치 상한 음식을 먹고 급성 설사를 하는 것처럼 오싹하지 않은가.

바로 그렇다. 단지 군인을 헐뜯는 것으로는 전쟁을 방지할 수 없다. 단지 노동자를 책망하는 것으로는 동맹파업을 방지할 수 없다. 암살자를 공격해도, 현 사회의 부패와 타락을 구제하여 판단과 제재의 힘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어찌 암살을 근절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부패와 타락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른 길이 없다. 지금의 경제 조직을 근본적으로 개조하고 의식주에서 자유 경쟁을 폐지하는 데 있다. 생활의 곤궁을 제거하고 금전 숭배 풍조를 몰아내는 데 있다. 만민이 평등하게 교육받을 자유를 누리고, 사회적 지덕을 증진하는 데 있다. 만민이 평등하게 참정권을 누리고 국가 사회의 정치 · 법률을 소수 인사가 독점하지 않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곧 근대 사회주의를 실행하는 데 있다. 사회주의를 실행할 수 있다면, 사회는 총명한 판단력과 효과 있는 제재력을 발휘하게 되어, 암살의 죄악은 절로 근절되기에 이를 것이다. 이것은 경세經世의 군자가 마땅히 숙려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暗殺論〉, 「萬朝報」 1901년(메이지 34년) 6월 27일~28일)



무정부당 제조


미국 대통령이 무정부당에게 살해당한 사건은 우리 국민들이 반면교사로 삼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도 지금 활발히 무정부당 제조 준비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무정부주의의 시시비비나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으려 한다. 다만 이 이념을 낳고 이와 같은 흉악한 수단을 강구하게 만드는 원인을 생각하면, 그 책임은 다른 곳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어떤 이는 그것을 미신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것을 광기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것을 공명심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 미신도 있을 것이다. 광기도 있을 것이다. 공명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로 하여금 그토록 광대한 단결을 이루어 그토록 굳게 비밀을 지키고, 그토록 대담하고 흉악한 수단으로 나가도 전혀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미신처럼 만들고 열광하게 만드는 원인을 생각하면, 어찌 대단히 유력한 동기가 그들을 몰아세웠다고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유력한 동기란 무엇일까. 오늘날의 국가 사회에 대한 절망이 그것이다.

오늘날의 국가 사회 조직이 일반인들에게 얼마만큼 복리를 가져다주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치 자유, 학술 진보, 기계 발달, 풍부한 자본, 생산 증가는 피상적으로 보면 일반인들의 생활을 고대 봉건 시대의 왕후보다도 더 크게 행복하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행복하게 만들 터였다. 하지만 실제는 이와 반대다. 세상은 점점 더 각박해졌다. 생활은 점점 더 곤란해졌다. 빈민은 점점 더 증가했다. 죄악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많아졌다. 서양인은 일찍이 입바른 말을 하여 의회는 조세를 늘리는 도구라고 했다. 조세를 늘리는 도구가 인민에게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정치도 학술도 기계도 자본도 생산도 오로지 왕후를 이롭게 하고 부자를 이롭게 하고 관리를 이롭게 하고 군인을 이롭게 할 뿐, 추호도 일반인들을 이롭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현재의 국가 사회에 절망하는 다수가 생겨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추세가 아닐까.

이와 같은 현상은 비단 무정부당뿐만 아니라 각 계급 인사들도 마찬가지로 인정했다. 이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노동 보호 주장도 일어났다. 만국 평화 논의도 제창되었다. 공산주의도 설파되었다. 사회주의 운동도 전개되었다. 이것들은 모두 앞길에 찬란한 희망을 크게 품고 지금의 병적인 현상을 고치고자 하는 것이다. 무정부당도 본래는 이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국가 사회의 타락과 죄악과 곤란한 생활이 날이 갈수록 격심해지는 것을 보고 그들은 결국 앞길의 희망을 포기했다. 그들은 완전히 절망한 자들이 되었다. 세상에 절망한 자만큼 용기 있는 자가 없고 대담한 자가 없으며 흉악하고 사나운 자가 없다. 설령 그들이 흉포함을 들고 공명심으로 나아갔다 하더라도, 그들은 이 흉포함에 기대지 않고는 공명을 얻을 방도가 없다고 생각할 만큼 절망했던 것이다.

쥐와 낡은 옷이 많은 곳에는 흑사병이 쉽게 전염되었다. 국가와 사회가 불결하여 절망이라는 쥐와 낡은 옷이 많은 곳에는 무정부당이라는 병균이 많이 들어온다. 그리하여 무정부당은 유럽 대륙에 많았다. 하지만 사회 제도를 개혁하는 데 대단히 고심했던 영국에는 그 해악이 심하게 창궐하지는 않았다. 지금 미국 또한 이 흉포함을 맛보기 시작했다. 이것은 무정부당이 만연하는 해악이 가공할 만한 것임을 알려주는 한편으로, 어떤 면에서는 미국의 최근 정책이 얼마나 무정부당의 전염을 유발시키는 경향이 있는지를 충분히 상상하게 한다.

한편 우리 일본을 보라. 우리 일본의 수도, 의회, 정당, 교육, 경제, 종교는 얼마나 국민 전반의 복리를 증진하고 있는가. 우리는 화족의 증가를 보았다. 우리는 벼락부자가 된 어용상인을 보았다. 우리는 군인의 영광을 보았다. 하지만 국민 대중은 시시각각으로 염증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빈곤해지고 있지 않은가. 염증이나 빈곤은 가공할 만한 절망으로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예를 들면 아시오足尾 광산 광독 피해지의 인민을 보라. 고가네가하라小金が原 개간지의 인민을 보라. 그들의 고생이나 염증이나 인내는 지금 거의 극에 달했다. 두세 명 인사의 동정심이 있을 뿐 국가와 사회는 완전히 그들을 버렸다. 그들을 절망하게 만들지 않는 것도 오로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고, 무정부당으로 만들지 않는 것도 오로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하나를 보면 만사를 헤아릴 수 있다. 비단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란 법은 없다. 그들에게 이토록 냉혹한 사회는 모든 방면, 모든 계급에게도 마찬가지로 냉혹할 수밖에 없다. 아시오와 고가네가하라에 무정부당을 제조하고 돌아보지 않는 국가가 어찌 일본 전국에 무정부당을 제조하기를 꺼리겠는가. 만약 우리 국가와 사회가 오늘날과 같은 상태를 막지 못한다면, 나는 머지않아 일본도 무정부당 산출지에 등극할 것임을 믿는다. 아아, 무섭고도 두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무정부당의 해악은 가공할 만하다. 하지만 그들을 이렇게 만드는 국가와 사회의 해악은 더욱더 가공할 만하다. 이것이 치안경찰법 하나로 무정부당을 방치할 수 없는 이유다.


(〈無政府黨の製造〉, 「萬朝報」 1901년(메이지 34년) 9월 20일)



위험한 국민


외교는 막중하다. 내치는 이보다 더 막중하다. 다사다난한 외교는 위험하다. 문란한 내치는 이보다 더 위험하다. 그리하여 내치에서 국민의 모든 이익과 행복을 오로지 외교의 희생으로 삼고자 하기에 이르면 그 국가가 혁명이나 멸망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거의 드물다. 이것은 국민이 지금 깊이 경계해야할 사항이다.

로마의 민정은 내치의 부패 때문에 무너졌다. 백전백승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로마를 구할 수 없었다. 카르타고는 국민의 타락 때문에 망했다. 15년간 이탈리아 전역을 다스렸던 한니발도 나라를 구할 수 없었다. 예로부터 외적 때문에 멸망한 국가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멸망으로 치달을 때 내치의 문란과 부패가 반드시 앞서지 않는 경우는 없다. 적어도 내치가 문란하고 부패하지 않았다면 백만 외적이 압살해 온다 하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무릇 외적은 무력으로 소탕할 수 있다. 내치의 부패와 문란이 극에 달하면 무엇으로 소탕할 수 있겠는가. 혁명이 아니면 멸망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무력을 지지하고 무위를 떨치는 이유도 오로지 국민의 원기가 왕성하고 재부가 풍요로운 데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실로 내치가 정제되고 도의가 두텁고 풍속이 너그러워 농 · 공 · 상인이 근면하게 일할 수 있어야 비로소 무위를 떨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인심이 타락하고 도의가 퇴폐하고 행정과 재정이 문란하고 상공업이 위축되고 재산이 고갈되는 것이 지금의 조선이나 중국 같다면, 설령 백만의 뛰어난 스승과 견고한 군함이 있어도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타락한 내정은 다사다난한 외교보다도 훨씬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국민은 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청일전쟁 대첩은 당시 우리 내정이 아직 오름세에 있고 기강이 탄탄하고 원기가 왕성하고 재산이 풍부한 결과였다. 하지만 전후에 우리 국민은 그 뿌리를 잊고 끝만을 좇아 오로지 군대가 많음을 자랑하고 군함의 크기를 신뢰하여, 국가의 영구불변의 업이라 여긴다. 그리하여 갈수록 무력을 써서 국기國旗의 영광을 빛내고 국위를 드높이려고 한다. 그 성과를 어찌 알겠는가. 인심이 극도로 타락하고 재산이 고갈되어 사회적 · 정치적으로 죄악과 빈곤이 천하에 넘쳐나고 국기의 영광은 진실로 한순간의 허영이고 국위는 한순간의 허위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보라. 의회에서 만취하여 다수가 의결해도 나는 그에 따르지 않겠다고 망언을 하는 재상이 있다. 중의원은 헌법을 논의하는 장이 아니라고 갈파하는 대신이 있다. 헌법은 대권의 일부다. 폐하는 그것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외치는 의원이 있다. 한편에서 도네가와利根川 강 개축 6백만 엔을 의결하고 한편에서 그 수원水源의 산림을 한낱 부호에게 벌채하게 하는 정부가 있다. 시정을 장악하여 자기 집의 이익을 도모하는 기구로 여기는 도당이 있다. 지방 의회에 쿠데타를 일으키는 지사가 있다. 당원과 결탁하여 죄인을 비호하는 경찰이 있다. 우리 군대에 마소도 먹지 않는 나쁜 음식을 보내는 군 관료가 있다. 뇌물로 미곡의 양을 줄이는 어용상인이 있다. 위조 주식은 항상 시장에 횡행하고 있다. 은행은 자꾸 파산으로 치닫고 있다. 자치제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도의는 완전히 사라졌다. 경제계는 완전히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그러므로 도도하게 저지하지 못한다면 국가가 무엇으로 설 수 있겠는가.

러시아가 만주와 조선을 침략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우리 무력은 그들을 간단히 소탕하기에 충분하다. 내치가 부패와 문란에 이르면 그것보다 더 위험하므로 내치의 구제가 그것보다 더 급하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열성적 지사와 비분강개하는 청년이 많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들이 뿌리를 잊고 끝으로 달려, 외교 때문에 광분하고 전쟁 때문에 광분하여 모든 행복과 이익을 희생하고 돌아보려 하지 않음을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다. 하물며 다사다난한 외교와 국위를 드높이는 것은 예로부터 의롭지 못하고 부정한 전제 정치가가 항상 국내의 인심을 전향시키고 현혹시켜 하룻밤 권세를 훔쳐 이욕과 야심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았는가.

세상의 열성적인 지사 청년들이여. 이제 국가 백년의 대우환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에 있음을 알라.


(〈危險は內に在り〉, 「萬朝報」 1901년(메이지 34년) 4월 2일)



월폴 정책


영국사를 읽다가 로버트 월폴 경에 관한 사항에 이르러 서글피 탄식한다. 그는 의원 매수를 한 탓에 천하의 공격과 매도를 한 몸에 받았고, 그 주검은 지금도 여전히 역사가들에게 채찍질당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의 실상과 자세히 비교해보면 더욱더 전율할 만한 것이 있음을 느낀다.

월폴이 매수를 한 것은 죄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당시 그는 독으로써 독을 제압하려 했다. 왕권은 이미 쇠퇴했지만 국민 여론은 아직 진작되지 않아서 천하의 위력은 오로지 의회가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조직은 과두제적이고 의사議事는 비밀스럽고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때, 그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의회의 발호를 억누를 길이 없음을 알았다.

대개 16세기 이전의 의회는 완전히 왕권이 좌우하는 곳이었으므로, 인민이 선출하든 말든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이때에 정치가는 오로지 왕가의 신임을 얻어 곧바로 그 뜻을 이루는 데 만족했다. 찰스 3세 시대로 내려오면, 의회의 권위가 왕성해지고 왕권은 오히려 의회에 좌우되었다. 그리하여 인민이 선출하지 않은 의원이 오로지 자기를 위하여 권세를 이용하는 데 꺼릴 것이 전혀 없었다. 아니, 인민이 선출한 의원이라 해도 오늘날처럼 항상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었으며, 유권자들은 날마다 연설, 토의, 투표 여하를 듣고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론의 제재를 가할 수가 없었다. 그런 탓에 당시 정부는 일을 벌이고자 하면, 왕가의 신임도 이미 신뢰하기 힘들고 인민의 후원 또한 기댈 만한 것이 못 되니, 오로지 하원의 숨소리에 만사가 달려 있을 뿐이었다. 정부가 의원에게 뇌물을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으니, 의원도 모두 성인군자가 아니어서 그랬다기보다는 뇌물을 배척할 제재력이 없었다. 나는 이와 같은 시대에 심히 정계政界의 공덕이 부패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한편 우리나라 제도를 보라. 월폴 시대와 같은 장애는 전혀 없다. 정부는 성명聖明 보필의 책임을 질 뿐이지, 중의원의 결의에 따라 진퇴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중의원 의원은 월폴 시대와 달리 모두 인민이 선출한 의원이 아닌가. 그리하여 비리에 빠진 것을 보면 몇 번이든 해산을 주청奏請할 수 있지 않은가. 지금 정치가는 적어도 군주의 신임과 인민의 후원을 얻으면, 하지 못할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또한 중의원의 전횡적 반대를 우려할 필요는 추호도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의원 매수, 당원 임명 수단이 아니면 자신들의 의견을 수행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정부가 군주의 신임이 없고 인민의 후원이 없는 탓인가, 기획이 의롭지 못하고 부정한 탓인가. 아니면 용기 있는 결단을 못 내리고 지능이 없는 탓일 수밖에 없다. 이것만으로도 정치가의 자격이 없다. 그 무력함은, 자리만 차지하고 하는 일 없이 녹祿만 받아먹은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하물며 그 정책이 나날이 관민의 부패를 촉진시킨 죄악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무릇 이러한 정치가가 의원 매수 같은 부패한 수단을 강구하는데도 지금까지 여전히 아무런 제재를 하지 못한 데 대해, 나는 우리 국민의 무력함을 깊이 슬퍼한다. 아니, 이것은 바로 우리 국민의 부패와 사회의 타락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의회는 월폴 시대처럼 의사議事 진행을 밀실에서 하지 않는다. 국민은 밤낮 의회의 행동과 말을 보고 듣지 않는가. 의원은 모두 국민에게 진실을 호소하여 선출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절개를 꺾고 도리를 팔아 오로지 황금을 위해서 국민의 참정권을 희생하는 것을 엄연히 의심하지 않는 것은 왜인가. 매콜리 경이 예전에 월폴을 평하여 “그가 널리 부패 수단을 행사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것이 그가 받은 모든 매도와 공격에 상응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사람이 시대를 초월하는 덕성을 갖추지 못한 탓에 꾸지람을 받는 것은 가혹하다. 선거구민의 표를 사는 부도덕함은 마치 의회의원의 표를 사는 것과 같다. 양민에게 5기니아를 주는 후보자는 의회의원에게 300기니아를 주는 사람과 똑같이 죄악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이미 정세를 달리하는 우리의 현 내각에서는 이와 같이 관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300기니아를 받는 국민은 의회의원을 심하게 제재할 수는 없다. 후세의 역사가가 만약 매콜리 경처럼 오늘날의 매수 정책으로 이 시대의 부패상을 추정한다면, 나는 우리 국민이 어떤 말로 답할지 모르겠다.

사물이 부패하면 벌레가 생긴다. 한 무리의 벌족閥族 정책은 부패에 생긴 벌레다. 의회도 그렇고 국민도 그렇고, 이미 부패와 타락이 극에 달해 주의도 없고 이상도 없고 혼미한 상태로 황금과 이익을 좇아 내달린다면, 사쓰마薩摩든 조슈長州든, 이토 히로부미든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 1838~1922)든, 내각을 몇 차례 바꾸고 의회를 몇 회 거쳐도, 대의 제도는 오로지 형세만 유지하고 월폴은 여전히 족적을 끊지 않을 것이다. 기세가 극에 달하면 변한다. 이어서 오는 것은 바로 혁명이다. 이것은 고금의 역사책들에 나타나는 일치된 견해이고 지사들이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월폴은 최고의 연설에서 “반대당은 세 단체다. 하나는 왕당, 또 하나는 이른바 애국자인 민당의 불평분자, 나머지 하나는 청년boy이다”라고 말했다. 월폴 내각의 전복은 청년boy의 힘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피트의 혀나 존슨의 붓은 모두 당시 월폴의 보이가 아니었던가. 그렇다. 오늘날의 흐름에서 단지 드높은 이념과 이상을 품은 순결하고 활발한 청년들이 일어서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를 부패와 타락 속에서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아아, 하늘은 국가의 앞길을 우리 청년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집에 틀어박혀 책만 읽는 사람은 당장 베개를 걷어차고 일어서야할 시절이 아닌가.


(〈ワルポール政策〉, 「中央新聞」 1897년(메이지 30년) 9월 16일)



일본의 민주주의


“옛글을 볼 때마다 생각하네, 내가 다스리는 나라는 어떠한가를.”

“능라비단을 겹겹이 입어도 생각나네, 추위를 감싸줄 신령조차 없는 신세가.”

아아, 인민을 불쌍히 여기고 국가를 걱정하시는 깊은 마음이 어찌 이와 똑같겠는가. 우리는 메이지(明治) 천황이 지으신 두 편의 시가를 볼 때마다 감개가 무량해서 눈물이 복받친다.

남몰래 생각건대 동서고금의 영주英主 · 현군賢君의 덕이 사해에 넘치고 은택이 천년을 떨치는 것은, 모두 인민을 걱정하는 깊은 마음에서 나오지 않은 경우가 없다. 그리하여 우리 조종 열성祖宗列聖이 오야시마에 군림하여 면면히 이어온 2500년 동안 이 취지와 정신은 일찍이 하루도 쉼이 없었다. 저 닌토쿠 천황이 “백성들의 부富가 곧 짐의 부”라고 하셨고, 엔기延喜 치세(901~923)의 다이고 천황이 겨울밤에 스스로 옷을 벗으셨던 일 등은 실로 이 취지와 때를 만나 크게 떨쳐 일어난 것이었으며, 우리들은 이 취지와 정신을 이름하여 완전한 민주주의라 부르는 것이 매우 적당하다고 믿는다. 본래 그렇다. 그리하여 우리의 이른바 민주주의가 역사상 유례없는 광휘를 발한 것은, 금상今上의 유신 중흥 때였다. 무진년(1868) 3월에 황송하게도 친히 천지신명께 서약하신 〈5개조 서약문五箇條の御誓文〉을 보라. 모든 중요 사항萬機을 공개된 논의公議로 결정해야 한다고 하고, 상하가 마음을 하나로 합해야 한다고 하고, 관무官武가 하나가 되어 서민에 이르기까지 그 뜻을 이루게 한다고 하고, 천지의 공도公道에 기초한다고 하고, 지식을 세계에서 취한다고 한다. 어찌 이것이 이른바 민주주의의 신수神髓와 정화精華를 완전히 발휘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들에게 함부로 견강부회한다고 말하지 말라. 메이지 6년(1873)에 기도 다카요시가 유럽에서 돌아와 당국자에게 건넨 의견서 일부는 서약문의 뜻풀이로 볼 수도 있다.

무릇 정규政規는 그 나라의 국시에 따라 정한다. 조정 관리들의 억측에 따라 헛되이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천하의 대소사는 이것을 조치의 준칙으로 삼는다. 사려 깊고 원대한 기약은 억조사민億兆士民이 누가 감히 천자의 깊은 뜻을 황송히 받들지 않겠는가. 다만, 문명국은 군주 전제를 하지 않고, 전국의 인민이 일치 화합하여 그 뜻을 이루어 국무를 조례하고, 그 후에 재판을 과하고 그것을 한 부서에 위탁해서 명명하기를 정부라 한다. 관리에게 각각 그 일을 맡게 한다. 관리들은 또한 각각 일치 화합하여 민의에 따르지 않는다면 감히 조치를 멋대로 할 수 없다. 정부의 엄밀함은 이와 같다. … 황송하게도 전날의 조지詔旨는 천하를 천황 가문의 사유로 삼지 않고, 백성과 함께 있고 백성과 함께 지킨다고 선언했다. 대개 천하의 사무가 천하의 인민과 관련이 없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천하의 인민도 스스로 천하 인민이 다할 의무가 있다. 어찌 그냥 순순히 조정의 명령을 듣고 분주히 움직이며 명령에 따라 행동하기만 할 수 있겠는가.

아아, 지금의 대신, 지금의 관리, 지금의 의원, 지금의 국민은 다시 이 글을 읽고 과연 무엇을 느낄지. 저 서약문은 이와 같은 취지로 만들어졌고, 유신 중흥 사업, 제반 개혁은 이와 같은 정신으로 착착 실행되었다. 아니, 이것은 고금의 조종 열성祖宗列聖이 오래도록 일관되게 유지하신 큰 이념이고, 그리하여 일단 금상이 영매한 자질을 얻어 유례없는 광휘를 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민주주의 정치에서 활동한 세력이 파죽지세로 내놓은 조칙, 포달布達, 보고서 등을 보면 어느 하나 민의를 중심으로 하는 글자가 없는 것이 없었고, 공의公議와 여론이라는 말을 내걸지 않은 것이 없었다. 마침내 보상輔相, 의정議定, 참여參與 같은 대신조차도 한때 공선으로 임명하기에 이르렀다. 얼마나 번성한가. 그리하여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진보와 흥륭이 유럽 강국과 각축할 수 있게 된 까닭이 아닐까 하다가 깊은 예지叡旨에 생각이 미치면 우리들은 항상 감개무량해서 울지 않을 수 없다.

무릇 이른바 민주주의를 공화 정치의 전유물로 보고 군주 정치와 양립할 수 없다고 믿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요순은 실로 민주주의자였다. 우(禹) · 탕(湯) · 문(文) · 무(武)도 민주주의자였다. 예로부터 군주가 가장 완전하고 가장 열심히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대표하고 실행한 것은 우리 일본에 미치는 예가 없다. 우리 만세일계의 황위寶祚가 천하宇內에 탁월하고 무궁무진하게 번성하는 까닭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그렇다. 이것을 민주주의라 명명할 수 없다면, 충군주의라 부르는 것도 가능하다. 박애주의라 부르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중요 사항萬機에 대해 민의를 중심으로 하시는 서약문, 기도 다카요시가 일컬은, 백성과 함께 있고 백성과 함께 지키시는 취지와 정신은 명백히 일원과 그 빛을 다투는데, 이것이 우리의 국시요 국체다. 이것에 등을 돌리고 이것을 기피하는 자는 폐하의 죄인이다. 그리고 조종 열성의 죄인이다.


(〈日本の民主主義〉, 「萬朝報」 1901년(메이지 34년) 5월 30일)



외교상의 비입헌국


나는 우리 일본이 외교상으로는 여전히 비입헌적 · 전제적 영역을 탈피하지 못했음을 슬퍼한다.

블라디미르는 최근에 청일전쟁 이후 러일 관계를 평하여 “러일 두 나라 국민의 절박한 감정에서 생겨나는 위험은, 다행히 두 나라의 충의의 마음이 작렬함으로써 배제될 수 있었다. 두 나라에서 군주라는 한마디는 당장 두 나라 국민이 법률로 기꺼이 따른다. 차르와 미카도도 평화와 우애를 희망하므로 러일 간에 결코 충돌이 있을 우려가 없다. 총명한 군주가 결정하는 것은 감정적이고 무책임한 인민보다도 훨씬 달견達見이다.”라고 언급했다(『태평양상의 러시아』, 329면).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위로 총명한 천자가 있고 아래로 충성스러운 인민이 있어서, 외국과 평화와 우애로 교류하는 것은 물론 깊이 경하할 만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소 우려할 만한 점이 없지 않다. 나는 천황에게 우리 헌법에서 선전 강화권이 있음을 안다. 그리고 군주 독점적 외교가 우리 헌법의 자구에 모순되지 않음을 안다. 더욱이 우리 국민이 대권 분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와 같이 한 나라의 외교가 항상 국민의 의사를 도외시하고 전혀 알려지지 않는다면, 이것은 과연 만세를 통해 지킬 만한 제도인가. 이것이 과연 각국의 국민적 외교와 대적할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을 과연 문명적 외교라 할 수 있는가. 이것은 그 정신에서 비입헌적 외교가 아닌가. 이것은 전제적 외교가 아닌가.

우리 황상은 영매하고 입헌적 군주로서 자질이 풍부하여 공의를 중시하고 여론을 취함에 소홀함이 없다. 우리 국민이 마땅히 안심하고 저절로 천황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블라디미르가 언급한 대로다. 또한 랴오둥遼東 반도 반환 건과 같은 것은 한 편의 조칙으로 두 나라 간의 위험을 배제했다는 것도 블라디미르가 언급한 대로다. 하지만 우리 당국 대신들은 우리 천황의 예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항상 국민의 의사를 도외시하고 국민이 전혀 알지 못하게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 국민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비밀을 지키기 위하여 항상 전제적, 비입헌적, 비문명적 외교를 펼쳐서 국가가 크게 폐해를 입은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나는 여기에 극명한 예를 한두 가지 들고자 한다.

시모노세키下關 조약 당시 우리 국민은 이토 히로부미 전권 등이 과연 어떠한 담판으로 무엇을 요구하였으며 그 조약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불행히도 오래도록 알지 못했다. 다만 우리 황상이 이 조약을 칭찬한 것을 듣고 그 위대한 성과를 상상할 뿐이었다. 그런데 전승국이자 조약 지정자인 일본 국민이 조약에 대해 모르고 있을 때, 패전국인 청국인과 국외자인 유럽인은 이미 이것을 들을 수 있지 않았는가. 보라. 저 단판의 기록과 왕복문서는 실로 「베이징 톈진 타임스」가 처음으로 천하에 공개하지 않았는가. 우리 정부가 이것을 발표한 것은 이미 기사가 강호에 나돌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가 아닌가. 만약 「베이징 톈진 타임스」가 전하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영원히 세부 사항을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삼국간섭 문제가 일어나자, 우리들은 겨우 외국 전보와 외국 신문을 통해 그 사정을 상상할 뿐이었는데, 문제가 진행 중이었을 때는 물론이곡 랴오둥 반도 반환 조칙이 공포되어 시국이 완전히 종료된 뒤까지도 우리 정부는 우리 신문 잡지가 이면의 사정을 보도하고 평론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작년 의화단 창궐이 극에 달했을 때, 우리들은 오로지 서구 신문으로 영국과 일본 두 나라가 교섭했음을 알았다. 이어서 영국이 의원 공문서로 일본에 출병을 촉구하고 재정 보증도 서겠다는 공문을 공개했다는 전보가 도착하자, 경시청은 우리 신문기자들에게 그것을 보도하지 말라고 엄중히 명령했다. 이튿날 금지를 풀었는데도 여전히 당국은 백방으로 이 주장을 말살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무릇 외국 의원 공문에 발표된 사실을 굳이 우리 신문에 싣는 것을 금지하는 처사는 오히려 웃음거리로 보이지만, 이것은 엄연히 사실이다. 외교 문제에서 서구 각 신문은 잘 알고 보도하고 비평하고 논할 자유가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의 각 신문과 우리 국민은 결국 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우리나라는 항상 도쿄에서 일어난 사건을 외국 신문을 보지 않으면 알 수 없거나 알아도 말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저스틴 매카시는 일찍이 영국 외교를 논하여 “영국이 엄정한 입헌 제도 아래 통치되는 입헌국임을 누가 감히 의심하겠는가. 하지만 외교 정책을 행하는 데 완전히 국민 여론을 도외시하는 것을 보면 유럽 대륙에서 몹시 전제적인 정부라 해도 영국 정부처럼 심한 예를 보지 못했다. 영국 정부가 어떠한 외교 정책을 취하고 있는지는 비단 보통 인민뿐만 아니라 중의원 의원도 관리 외에는 전혀 알 수 없다. 관리들 이외의 의원은 보래 질문을 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항상 임시방편적 답변을 들을 뿐, 정부 관계자는 대개 정부가 상세한 설명을 할 시기가 되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했다.(『우리 시대의 역사』 말권, 398면). 또한 “보통 인민이 모든 외교 사정에 능통할 필요는 없지만, 각종 외교 문제를 쉽게 알 수 없는 것은, 정부의 여러 수령이 그들에게, 아니 의회에 있는 대표자들에게조차 특별히 고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교에 관한 실상에서 보면 우리들은 영국이 대륙의 다수 국가들보다도 훨씬 비입헌국임을 느낀다”고 언급했다(위의 책 402면). 매카시는 수단 둔쿨라 원정의 일거에 대해 이러한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보라. 당시 둔쿨라 출병 건이 결정되자, 영국 하원에서는 질크나 존 몰리 등의 질문 공세, 체임벌린이나 밸푸어의 설명 반박, 연일 이어지는 용쟁호투의 장관이 극에 달했다. 영국의 외교는 비밀주의가 심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번 청나라 사건이 일어났을 때 영국 의회의 광경은 필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이미 피가 용솟음치고 살이 떨리는 느낌이 있었다. 또한 영국 정부는 매번 의원 공문을 발표하여 외교 문서를 공개했고, 외무장관은 해마다 시장市長의 연회에 참석하여 외교 방침을 공개한다. 영국 외교는 심하게 비입헌적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매카시는 영국 외교를 단죄하면서, 대륙의 전제 정부들보다 훨씬 비입헌적이라고 했다. 만약 그가 우리 일본 정부의 행동을 봤다면 과연 뭐라고 했을까.

나는 일본 외교를 전제적이라거나 비입헌적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초점을 크게 빗나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외교에 어느 정도까지 비밀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외교는 반드시 국민적이지 않으면 안 되며, 국민의 신임과 후원이 없는 외교는 위험하다. 나폴레옹 대제와 나폴레옹 3세의 말년의 외교에는 이것이 없었다. 그들의 외교는 국민의 외교가 아니라 국민을 미혹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전복되어 국민이 등을 돌리지 않았는가. 매카시는 또한 “(이집트 원정에서) 전체적으로 특히 우리들의 이목을 끈 것은 많은 영국민이 이 문제의 시시비비와 이해득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마치 청나라 인민이 청일전쟁의 이해득실에 무관심한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들은 전 국민이 통치자의 외교 정책에 완전히 몽매하다는 것이 매우 위험한 것임을 믿는다”고 했다(위의 책, 401면). 그렇다. 국민을 소외시키고 무지하고 어리석게 만들어, 국가의 존망과 안위安危에 관련된 커다란 문제에 대해 국민이 항상 아무것도 들을 수 없고 아무것도 보도하고 평론할 수 없다면, 지금의 청나라 인민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이것은 비단 국민의 큰 치욕일 뿐만 아니라, 외교 당국에 대한 신임과 후원을 전혀 기대할 수 없게 한다. 이보다 더 커다란 위험은 없을 것이다.

이제 동양의 풍운은 점점 더 거세져 우리나라도 각국 외교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나는 정부 당국이 신속히 전제적이고 비입헌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국민적 · 입헌적 외교를 시도하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첫 번째 수단으로 적어도 공문서 발표, 외교 방침 연설과 신문 잡지에 대한 비밀 정도를 되도록 감소시키는 것 등은 가장 급하다고 할 수 있다. 감히 당국자의 숙려를 촉구한다.


(〈外交に於ける非立憲國〉, 「日本人」 1900년(메이지 33년) 10월 5일)



재정의 대혁신


군비가 충실하지 않다고 말하지 말라. 교육이 보급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 외교가 부진하다고 말하지 말라. 실업이 위축되었다고 말하지 말라. 이런 말을 하기 전에 우선 우리 재정의 실상이 어떠한지를 보라. 무릇 한 나라의 정치 기관의 주축인 재정에서 확고한 이념이나 기초가 없고 계획 방침이 항상 동요하여 일정하지 않아, 당국자가 단지 호도하고 미봉하기에 급급한 오늘날과 같은 현실에서는 다른 기관들의 발달과 진작을 바랄 틈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운명이 머지않아 일대 곤경에 처할 것임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이것이 어찌 깊이 걱정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왜 이런 말을 하는가.

마쓰카타 마사요시 백작(松方正義, 1835~1924)은 지금의 재정을 ‘짝맞추기 재정’이라고 했다. 돌려막기다. 전후의 경비는 해마다 팽창하여 전쟁 이전에 8천만 세수는 불과 5년을 거치는 사이에 당장 2억5천만이라는 거액이 되었다. 그런데 격변에 대처하는 데 정해진 큰 방침이나 계획이 없고 단지 돌려막기로 분주할 뿐, 상금을 유용하고 외채를 모집하고 필사적으로 5개년의 토지세를 늘리고, 간장, 우편, 전신 등의 각종 세금을 늘리는 것을 보면 추태가 극에 달했다. 더욱이 이 일로 내각이 서너 차례 경질되었다. 그런데도 당국은 의회에 재정의 기초가 견고하다고 공언했다. 견고한가, 참으로 견고한가. 돌려막기의 필요성은 앞으로도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필요성은 끝이 없지만, 수단에는 실로 한계가 있음을 어찌할까. 만약 오늘날과 같은 식으로 지나간다면 정말로 수습할 수 없는 대파탄을 겪을 것이다. 일정한 직업도 없고 생산도 없이 항상 고리高利의 돈을 빌려 빚에 쫓기면서도, 나가서는 좋은 옷과 주색에 빠져서 도박을 일삼고 의기양야해서 입만 벌리면 만금의 거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이른바 투기꾼의 생활을 흔히 보고 듣는다. 얼마나 위험하낙. 그런데 우리나라 재정의 실상이 이와 닮지 않았는가.

우리 재정이 이와 같은 까닭은 일정한 이념이나 방침이 서지 않은 데 있다. 우리 재정가의 수완은, 아니 우리들의 지위와 권력은 각종 주식의 등락을 미리 알거나 좌우할 수 있어야 한다. 금리의 고저를 미리 알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능히 세운의 대기大機를 간파하고 사회의 안배를 헤아려 한 나라 재정의 큰 이념과 방침을 세울 자질은 결국 기대할 수 없다. 그런 탓에 그들이 하는 일은 결코 과세가 공평한지 불공평한지를 묻지 않는다. 산업의 미래가 유익할지 불리할지를 묻지 않는다. 인민의 부담이 편중되지 않았는지를 묻지 않는다. 그들이 표준으로 삼는 것은 한때의 구멍을 메우면 족했다. 짜내기 쉬운 것을 짜내면 족했다. 빌릴 수 있는 만큼 빌리면 족했다. 이리하여 토지세, 간장, 우편, 전신, 가옥, 담배, 새로 생긴 복잡한 세목稅目을 계산하고는 재정의 능사는 끝났다고 한다. 한 나라 정치의 능사는 끝났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간을 뇌물, 매수, 투기, 중상重商 보호를 위해 낭비하고는 반성도 안 한다. 다시 말해 우리 재정가가 하는 것은 임시변통이다. 돌려막기다. 쩨쩨한 방식이다. 눈속임이다. 국고가 다할 날을 기다려야 할 뿐이다.

한편 각 정당의 재정론을 보면, 마찬가지로 일정한 이념이 없고 방침도 없다. 어떤 당은 단지 정부당이라는 이유로 칭찬할 뿐이고, 또 어떤 파는 단지 반대파라는 이유로 반대할 뿐, 다른 것은 모른다. 이로써 의견과 운동이 항상 이리저리 돌려막다가 모순이 반복되는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여, 궁극적으로는 완전히 천하의 신용, 국민의 동정을 잃게 되었다. 오늘날의 정당이 본령으로 하는 정신을 완전히 상실하여 커다란 산송장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앞으로의 정국을 맡길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군비라고 하지 말라. 교육이라고 하지 말라. 외교라고 하지 말라. 실업이라고 하지 말라. 당장 우리 재정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큰 이념과 방침을 확립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국가의 앞날이 심히 걱정스러운 것임을 느낀다. 아아, 어떠한 위대한 수완가가 능히 이것을 맡을 수 있을까.


(〈我財政を如何せん〉, 「萬朝報」 1900년(메이지 33년) 4월 10일)



호전적인 국민인가


우리 일본 육해군의 장병들이 전쟁에 뛰어나다는 것은, 참으로 우리 국가와 국민의 명예다. 예로부터 전쟁에 뛰어난 자는 대개 전쟁을 좋아하기 때문에 세계 각국이 모두 우리 국민을 가리켜 전쟁을 좋아하는 국민이라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전쟁에 뛰어나다는 것과 전쟁을 좋아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전쟁에 뛰어난 것은 명예다. 전쟁을 좋아하는 것은 단연코 명예가 아니다.

군대는 살인 기계다. 천하의 부를 소비하는 도구다. 생산력을 고갈시키는 도구다. 군인의 허영을 증대시키는 기초다. 무단 정치를 유발하는 요인이다. 인심이 부패하고 풍속이 퇴폐하는 원천이다. 전쟁에 뛰어나기 때문에 무위武威가 국광國光을 발하는 일은 있어도, 전쟁을 좋아하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예는 아직 없다. 스파르타는 전쟁을 좋아하는 국민이었다. 하지만 그 명예는 아테네가 자유 공화 정치로써 철학, 문예, 미술, 도덕에 기여한 공적이라는 불후의 명예에 미치지 못한다. 로마의 명예는 정복한 땅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명의 찬연함에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싸우게 되자 그 문명을 다른 세계에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노예 수만 늘릴 뿐이었다. 많은 노예, 많은 신하를 얻기 위해 싸운 마음은 바로 그들의 문명을 멸망시킨 원인이 아닌가. 프로이센의 명예는 폴란드를 분할하고 오스트리아와 싸우고 프랑스와 싸운 데 있지 않고 독일의 국민적 통일을 완수한 데 있다. 일반 국민이 다수의 귀족이나 공후公侯의 질곡을 벗어난 데 있다. 그리하여 그들의 전쟁은 처음으로 명예로운 전쟁이 되지 않았는가. 러시아의 무위가 세계를 제압하는 까닭은 전쟁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다. 러시아는 유럽 각국에 비해 전쟁 경험이 매우 적다. 그 나라는 항상 동북의 무인無人의 땅에서 자연과 투쟁함으로써 오늘날의 크기를 이루지 않았는가.

전쟁이 명예로울 수 있는 경우는 국가의 문명을 위한 이익이 손해에 비해 큰 데 있다. 적어도 보상하는 데 있다. 적어도 이것을 명심하는 데 있다. 청일전쟁은 동양의 영원한 평화를 위함이라고 일컬어진다. 이와 같다면 우리들은 우리의 출병이 명예로운 것임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허영을 만족시키고 한 사람의 야심을 채우기 위하여 수많은 목숨, 수만의 재산을 희생하고, 승전해도 여전히 장래의 부패와 많은 부채와 인민을 도탄에 빠뜨리는 화를 남기는 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맹자가 일컬어 “문왕이 한번 노하여 천하의 백성을 편안케 하였다”고 했다. 그렇다. 전쟁은 반드시 천하의 백성을 평안케 하지 않으면 안 되며, 천하 백성의 자유를 빼앗고 행복을 빼앗고 생명을 빼앗고 재산을 빼앗는 전쟁은 단연코 명예가 아니다.

최근에 일시적 감정과 비루한 허영심에 들떠 전쟁을 좋아하는 자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마도 사실이 아닐 것이다. 우리 일본은 군자의 나라다. 인도의 나라다. 전쟁에 뛰어날지언정 결코 전쟁을 좋아하는 국민이 아님을 믿는다.


(〈斷じて名譽に非ず〉, 「萬朝報」 1900년(메이지 33년) 9월 27일)



후대받는 병사


최근에 신병 입영 시기가 올 때마다 입영자를 낸 각 정촌町村 인민은 고액의 비용을 들여 장엄한 의식을 갖추고 화려한 깃발을 세워 행렬을 보낸다. 또 환송을 받는 신병의 일가도 고액의 비용을 들여 성대한 향연을 베푸는데, 이에 응하는 사람이 도도히 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많다. 우리들은 이것이 단연코 국가의 경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생각건대, 군인이 되는 것은 명예다, 축하해야 한다, 군인은 국가를 지킨다, 군인에게 경례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들도 군인이 명예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군인에게 경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군인이 국민들의 여러 직업에 비해 더욱더 명예롭고, 나아가 깊은 경례를 받아야 하는 자라고 여긴다면, 이것은 큰 오류다. 비단 오류일 뿐만 아니라, 이 오류에서 생기는 폐단은 국가와 사회의 진보의 기운을 저해하는 커다란 요소임을 알아야 한다.

고대에 무사가 농 · 공 · 상에 비해 많은 명예와 권리를 누리는 것을 지당한 일로 받아들인 것은 봉건적 사상, 미개적 사상, 야만적 사상이 아닌가. 그리고 그것이 부정하고 의롭지 못한 것임을 인정한 오늘날,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사민의 권리와 의무가 평등함을 인정한 오늘날, 군인의 명예와 지위와 권리가 유독 보통 국민과 다를 이유가 있는가. 그들은 국가를 지킨다고 칭송받는다. 하지만 국가는 군인만으로는 서지 않는다. 군인이 국가를 보호하는 것을 명예라고 한다면, 군인을 부양하는 농 · 공 · 상도 마찬가지로 명예가 아닌가. 쥐에 대비하는 고양이는 과연 그 집의 하인보다도 명예로운가. 도적에 대비하는 개는 과연 그 집의 하인보다도 명예로운가. 우리들은 아직 군인이 검과 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보통 인간 이상의 명예와 존경을 의미하는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국민 사이에 무사를 존엄하다고 보는 야만적 사상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력으로 천하를 얻은 번벌의 원훈들이 일찍이 병마兵馬의 권한을 도당의 수중에 모아, 자신들의 위력과 복덕福德을 과시하는 도구로 삼은 지 오래다. 심지어 청일전쟁에 승리하고 나서 우리나라 군인의 세력은 더욱더 커져 이제 거의 절정에 이르렀고, 국민들은 국가는 곧 군인의 국가라는 생각으로 앞 다투어 군인의 발아래 엎드리게 되었다. 그 결과, 군인들 스스로도 거만하게 남을 업신여기는 기풍이 생겨나, 군인이 아닌 자를 마치 인간이 아닌 것처럼 본다. 그렇게 거만하게 남을 업신여기다 보면 멋대로 행동하며 사치를 부리게 되고, 멋대로 행동하며 사치를 부리다 보면 부패하여 타락하게 된다. 군인이 풍속을 퇴폐적으로 만드는 원인의 하나라는 것은 유럽 각국의 정론이며, 예로부터 전승국의 풍속이 순식간에 퇴폐하고 도의가 땅에 떨어지는 것은 오로지 군인의 권세가 과대해지는 탓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혈기가 아직 안정되지 않은 청년들이 병사로 입영한 뒤, 군대 안에서 받는 가혹한 속박의 반동으로 군대 밖에서 더욱더 방종해져서 도회의 부패한 공기에 감염되고, 그런 상태로 귀가한 후에 지방의 순박한 풍속을 깨는 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의기양양하게 “명예 있는 군인이다. 국가의 파수꾼이다”라고 말한다. 정촌 인민이 모두 이것을 보고 굳이 비난하지 않는다. 비난하면 비애국자로 책망 받는다. 아아, 양민을 무뢰한으로 바꾸었다. 선량하고 순박한 기풍을 거만하게 남을 업신여기고 멋대로 행동하며 사치를 부리는 행실로 바꾸는 것이 무슨 명예인가. 무슨 존귀함인가. 무릇 유망한 청년들이 모두 전장의 공훈이라는 허영에 눈이 멀어 앞 다투어 몰려가고, 일반 인민은 스스로 비굴하여 군인을 받들기에 바쁘다. 봉건 시대의 하인과 마찬가지라고 한다면 어찌 이것이 국가의 경사인가. 이것이 군인에게 과도한 명예를 주고 과도한 존귀함을 유지하게 하여 얻은 가공할 만한 결과다. 그렇다. 입영하는 병사에게 과도하게 경례를 하는 것은 잘못이다. 허영이다. 실로 나쁜 일이다. 하물며 정촌 인민이 모두 기꺼운 마음에서 우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이비 애국자인 정촌 관리 등의 협박적 명령에 강요당해 귀중한 시간을 버리거나 피 같은 돈을 내는 데 예외가 없다. 그리하여 입영자 일가도 경례에 보답하는 향연을 마련하느라 부득이하게 말도 안 되는 비용에 울지 않았는가. 이것은 심한 악폐다. 각 정촌의 관리와 지위 있는 인사는 이 이유를 깨닫고 깊이 경계해야 한다.


(〈何の名譽ぞ〉, 「萬朝報」 1900년(메이지 33년) 1월 23일)



비전쟁문학


최근에 우리 문단을 향해 전쟁을 제목으로 하고 군인을 소재로 한 뛰어난 대작을 내도록 재촉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하여 작가들 자신도 이 방면으로 크게 힘을 쏟으려 하는 것 같다. 이것이 우리 문학의 앞날을 위하여 이롭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해로움이 더 심각함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말하는 전쟁문학은 대개 전쟁을 장려하고 군인에게 아부하는 도구가 되는 경향을 띠지 않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점에 대해 지금의 작가와 비평가에게 숙려를 촉구해야 한다고 느낀다.

그들은 활발하고 장쾌하게 붓을 휘둘러 전쟁을 칭송하고 군인을 찬탄하는 것이 국민의 애국심을 격려하고 의협심을 고무하기 위함이며, 또한 이것은 문사나 시인이 국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책무라고 주장한다. 이리하여 그들의 붓은 칼과 창이 태양에 빛나는 장관을 묘사하면서 살육의 참상은 묘사하지 않는다. 적국의 증오스러움을 설파하면서 병사의 애처로움은 설파하지 않는다. 전리품이 거액임을 설파하면서 약탈의 죄악은 설파하지 않는다. 일개 장군의 성공을 설파하면서 수많은 병사들의 수척함을 설파하지 않는다. 전사戰死의 명예로움을 설파하면서 그 이름이 당장에 소멸됨을 설파하지 않는다. 국기의 광영을 설파하면서 인민의 고통은 설파하지 않는다. 영토의 확장을 설파하면서 소모되는 재화는 설파하지 않는다. 야만의 경쟁을 즐기면서 문명의 파괴는 슬퍼하지 않는다. 그러고는 애국심을 격려한다고 한다.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쩌면 격려할 수 있다. 그러나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은 과연 어디에 존재할 수 있는가. 강자와 승자를 찬미하는 마음은 어쩌면 고무할 수 있다. 약자와 패자에 대한 동정은 과연 어디에 존재할 수 있는가. 야만적 전쟁은 어쩌면 장려할 수 있다. 문명적 평화는 과연 어디에서 유지될 수 있는가. 동물적 감정은 어쩌면 진전될 수 있다. 도덕적 이상은 과연 어디에서 유지될 수 잇는가. 그가 설파하고 읊조리는 것이 이미 진이 아니고 선도 아니고 더욱이 미를 얻을 수도 없다면 어찌 문사와 시인이 책무를 다한다고 할 수 있는가. 어찌 진정한 문학의 가치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리하여 애국심 장려를 목적으로 하는 문학이 만약 성과를 올렸다고 한다면, 그 성과는 곧 천하의 사람들에게 전쟁의 유쾌함을 느끼게 하고 전사의 명예를 흠모하게 하고 수억의 재화와 수천의 생명을 낭비하고 진보를 저해하고 학술을 위축시키고 몇몇 무단 정치가의 공명심을 만족시킨 것뿐이다. 이른바 국위와 국광의 허영심을 만족시킨 것뿐이다. 적국에 대한 증오를 만족시킨 것뿐이다. 이것은 비단 순정문학의 진가를 결여했을 뿐만 아니라, 타락을 표창하는 것이다. 신성함을 모독하는 것이다. 존 로버트슨은 그의 신작 『애국심과 제국』에서 논하기를, “문명적 생활과 양립 불가능한 모든 동물적 천성에서 발현되어 나온 것을 최상의 문학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문학의 엄청난 치욕이다. 전편을 통틀어 애정은 없고, 있는 것이라곤 야만적인 질투와 증오의 정뿐이니, 거짓 박애로 이것을 덮는 것은 결합적 정신의 윤리상 매우 열등한 형식이다. 문학이 인생에서 도덕적 양식과 쾌락의 원천이 까닭은 결코 이러한 열등한 감정을 부르짖기 위함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다. 그들이 말하는 고무와 격려에는 박애적 동정은 눈곱만치도 없고, 실로 동물적 욕정을 선동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문학은 우리나라 문학의 앞날을 위하여 결코 축하할 만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또한 대개 우리 문학은 너무 섬세하고 우미하고 화려하여, 웅대하고 고원하고 비장하고 준수한 대작을 전혀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전쟁을 읊고 용사를 노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목적은 진정한 문학을 위해 어느 정도 참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예로부터 불후의 문학이 전쟁이나 용사를 소재로 하는 예가 많은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불후의 명작인 까닭은 동물적 투쟁을 고무하고 찬탄했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성에 있다. 선함에 있다. 아름다움에 있다. 그리고 이 고상한 생각을 그리는 것이 희대의 천재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 예로부터 뛰어난 대작이라 하는 것은 제목과 소재를 취하는 데 전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전쟁 장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누가 국기를 노래하라고 하는가. 누가 조국을 칭송하라고 하는가. 보라. 호메로스는 단지 그리스를 위해 노래하지 않았다. 셰익스피어는 단지 영국을 위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단테는 단지 이탈리아를 위해 노래하지 않았다. 햄릿이나 리어왕이나 오셀로가 불후의 대작인 것은 영국의 애국심을 격려하기 때문이 아니며, 호메로스의 이름이 숭고한 것은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개선이 아니라 헥토르의 고뇌와 죽음에 있다. 그렇다. 그리스 문학이 중후한 것은 티르타이오스의 잃어버린 군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극에 담긴 깊은 동정심과 사상가의 침잠에 있다. 그렇다. 그들은 국가적이지 않고 세계적이다. 일시적이지 않고 영구적이다. 본능적이지 않고 심리적이다. 살벌하지 않고 대단히 자비롭다. 국기의 영예가 아니라 사회와 인생의 광명이다. 적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이웃에 대한 동정이다. 그러므로 위대할 뿐이다.

무릇 웅대하고 고원하고 준수하고 비장한 것을 찾는다면 굳이 전쟁을 칭송할 필요는 없다. 문학의 바이블을 보라. 법화경을 보라. 평화를 씨실로 삼고 박애를 날실로 삼는다. 누가 이것을 웅대하고 고원하지 않다고 하겠는가. 두보와 이백은 전쟁의 참상을 묘사하여 인민의 평화를 희구했다. 누가 그것을 준수하고 비장하지 않다고 하겠는가. 나는 본래 전쟁을 읊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용사를 찬미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 삼라만상은 자유롭게 제목을 취하고 재료를 뽑고 스스로 책임진다. 전쟁도 괜찮다. 평화도 괜찮다. 무용도 괜찮다. 검이나 창도 괜찮다. 주판도 괜찮다. 베이징도 톈진도 괜찮다. 하코네箱根도 가마쿠라鎌倉도 괜찮다. 다만 허위적, 선동적, 야만적이지 않고 진선미를 갖추고 자비롭고 세계적이고 영구적인 것을 기약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헛되이 전쟁을 장려하고 군인에게 아부하는 것을 능사로 한다면, 우리 문학을 멸망시키는 것은 세상이 말하는 전쟁문학일 것이다. 그렇다. 지금 우리 문단은 백 명의 키플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톨스토이를 갈망한다. 작가와 비평가 여러분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所謂戰爭文學〉, 「日本人」 1900년(메이지 33년) 9월 5일)



비정치론


정치를 믿지 말라. 정치는 만능이 아니다. 사회의 발달과 국민의 번영이 오로지 정치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커다란 오산이다.

정치가 사회와 국민에게 피할 수 없는 현상이고 불가결한 요건임은 물론이다. 하지만 대의 정치의 세상에서는 어떤 면에서 보면, 정치는 확실히 그 사회와 국민이 지닌 성격과 의지의 반영이다. 단지 그 사회와 국민이 스스로 편익이라 여기고 선량하다고 믿는 것을 발표하고 시행하는 기관에 지나지 않거나 또는 그 기관에 칠하는 기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그 사회와 국민이 질서도 없고 덕의도 없고 이상도 없고 신앙도 없이 부패하고 타락하여 하루살이나 구더기 같다고 할 수 있는가. 행해지는 정치가 임시변통식 정치일 뿐이다. 호도하고 미봉하는 정치일 뿐이다.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일 뿐이다. 내각고가 의회를, 국민과 사회를 그저 하루살이나 구더기처럼 꿈틀거리며 살게 하는 정치일 뿐이다. 현재 우리 일본의 정치가 바로 이와 같은 상태에 있지 않은가.

우리 일본의 정치가 더욱더 곤란에 빠지는 것을 보라. 우리 외교가 착실히 실패로 끝나는 것을 보라. 상공업의 날에 위축되는 것을 보라. 도덕의 달에 퇴폐하는 것을 보라. 우리 정치의 힘은 이런 현실을 얼마나 구할 수 있는가. 얼마나 회복시킬 수 있는가. 원로나 의원이나 정당원이나 학자가 논객이 수년 동안 이 문제를 고민하며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시행하는 것은 더욱더 악화되고 있다. 더욱더 해로워지고 있다. 폐단이 시시각각으로 늘어나는 것이 보일 뿐, 조금도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그들은 정치가 만능의 힘을 지녔다고 여기고 정치에만 의지하여 만사를 해결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종교도 정치에 지배되고, 교육도 정치에 지배되고, 상공업 경제도 모두 정치의 은혜를 입게 하려고 한다. 왜 모르는가. 지금의 정치는 우리 국민의 부패와 타락을 늘리는 기관의 기름에 지나지 않음을. 이것이 초래하는 결과는 헛되이 진흙을 파서 파도를 일으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본 사회의 발달, 국민의 번영을 희구하는 자는 오늘날의 정사政事에 의지하는 것이 완전히 무익한 것임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정치가 선량하기를 바라기 전에, 우선 우리 사회와 국민에게 덕의가 있게 하고 신앙이 있게 하고 이상이 있게 하고 제재가 있게 하고 신용이 있게 하고 그런 뒤에 비로소 정치를 행해야 한다. 그렇다. 오늘날의 현실을 개탄하는 어진 지사들은 정치 이외에서 전장戰場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천하의 정치에 광분하는 청년들이여, 크게 숙려하기를 바란다.


(〈非政治論〉, 「萬朝報」 1899년(메이지 32년) 1월 13일)



이상 없는 국민


건축공이 벽돌을 쌓을 때, 자전을 쉬지 않는 땅과 직각을 이루어 조금도 오차가 없는 것은 본래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되도록 그 각도에 다가가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인간은 당장에 이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되도록 그것에 다가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칼라일이 『영웅 숭배론』에서 설파한 바가 아닌가. 그렇다. 국민의 이상은 단지 그 국민의 정신적 건축의 법도일 뿐만 아니라, 사상적 의식주다. 그러므로 이상 없는 국민만큼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 없고 이상에 다가가려고 애쓰지 않는 국민만큼 불쌍한 것이 없다. 그들은 바로 건축의 법도를 모르는 건축공이기 때문이다. 의식주를 공급받지 못하는 빈민이기 때문이다.

우리 일본이 과거 50년간, 미증유의 진보를 이룬 까닭은 우리 국민이 원대하고 숭고한 이념과 이상을 품고 오로지 그 지도에 따라 용맹정진하여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이념과 이상은 한때 존황양이라 명명되었다. 한때는 개국진취라 명명되었다. 한때는 민권자유라 명명되었다. 때와 장소에 따라 형태와 이름을 달리했어도, 모두 원대하고 숭고한 이상이 일관되게 있었기에 동양의 일대 문명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우리 국민이 이념과 이상에 충실했기에, 때로는 낭인으로서, 때로는 정치범으로서, 때로는 정당인으로서, 때로는 상공업자로서 물불 안 가리고 위세와 무력에 굴하지 않고 생명을 걸고 재산을 내던져서 찬란하게 빛나는 메이지 역사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그들처럼 이념과 이상에 충실한 국민은 이미 쇠잔해져서 행동하기 힘들고, 이를 잇는 신국민, 즉 요즘 청년들의 뇌리에는 고원한 이념과 사상은 편린도 찾을 수 없다.

보라. 지금 천하에는 영원한 이상이 없고 다만 눈앞의 육욕이 있을 뿐이다. 시시비비를 보지 않고 이해득실을 볼 뿐이다. 도의를 보지 않고 금전을 볼 뿐이다. 그리하여 50년 동안 자유, 평등, 박애를 향해 맹렬히 나아간 일본이 이제 오히려 전제, 계급, 이기利己를 향해 달리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그 극은 바로 부패이고 타락이니 지극히 개탄할 일이 아닌가.

우리들은 이미 죽어 가는 노인에게 이념과 이상을 실추시킨 책임을 묻는 것이 쓸모없는 일임을 안다. 다만 대개 지금의 청년이 도도한 이념도 없고 이상도 없이 취생몽사하는 자들이니, 아아 누구와 함께 천하를 경영할까.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1797)가 나이 30에 여전히 미천한 한낱 서생으로 글을 팔아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을 때, 우연히 해밀턴(William Gerard Hamilton, 1729~1796)이 300파운드의 연봉을 주며 붓을 꺾게 하고 저작 활동을 그만두라고 하자, 버크는 분연히 “내 희망을 가로막고 내 자유를 박탈하여 영원히 내 본령을 없애려 하느냐”고 하며 당장에 해밀턴과 관계를 끊은 것을 생각한다. 아아, 우리나라의 청년 가운데 희망과 자유, 본령을 위하여 눈앞의 영리를 버리는 버크처럼 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우리들은 이상의 일본이 완전히 물질의 일본으로 타락해버린 것을 보고, 국가의 앞날이 불안함을 마음 깊이 느낀다.


(〈理想なき國民〉, 「萬朝報」 1900년(메이지 33년) 5월 14일)



마비된 국민


물과 불이 몸에 닿아도 뜨거운지 차가운지도 모르고, 칼과 살이 찔러도 아픈지 가려운지도 모른 채 흐릿한 정신으로 잠들지 않고서 꿈을 꾸는, 흡사 중산中山의 술을 마시고 천 일을 취해 있는 듯한 것이 우리 국민의 오늘날 상태가 아닌가. 그들은 정신적으로 마비되어버린 것이다.

본래 우리 국민은 감성이 매우 예민하고 정열은 가장 왕성하다고 칭찬받는다. 인의仁義를 위하여 자기 한 몸 돌보지 않고 충애忠愛를 위하여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데 이르면 거의 광인 같을 정도다. 이러한 광인들이 자주 배출된 것은 우리 일본 국사國史의 광채로서 우리가 군자국임을 자랑해 마지않는 까닭이었다. 보라. 우리가 청나라를 이긴 것은 본래 육해 장병들의 지혜와 용기 덕분이지만, 절반의 공과는 우리 국민 모두가 열광적으로 대처한 데 있다. 전후에 치롤 씨(Ignatius Valentime Chirol, 1852~1929)가 청나라를 떠나서 일본으로 건너가니 날이 밝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경탄할 만큼 명예를 떨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우리 국민이 애국심을 실천하는 기운이 유례없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불과 3년이 지난 오늘날, 마치 불과 같았던 애국심의 기운과 열광은 지금 어디로 갔는가. 정부는 황금으로 우리 헌정을 유린하고, 의원은 대의의 책임을 헛되이 하여 권세와 이익에 광분한다. 하지만 국민은 여전히 부패에 분노하지 않는다. 국민이 재산을 내던지고 목숨을 걸어 얻은 전승의 명예는 진흙탕에 처박아 두고 문명의 나라는 홀연히 야만의 땅이 되려 한다. 하지만 국민은 여전히 퇴보를 우려하지 않는다. 정부는 상공업 보호에 목숨을 걸고 일종의 중상주의 정책을 시행하여 자기 사욕을 채우느라 급급하다. 하지만 국민은 여전히 위태로움을 느끼지 못한다. 재상이 부덕하여 풍속이 나날이 타락하여 남편을 죽이고 부모를 죽이는 범인이 나오는데도 국민은 여전히 말세적 현실을 슬퍼하지 않는다. 무릇 우리 정계의 부패, 경제의 불안, 도덕의 타락이 나날이 심해져서 모든 것이 국가를 위급한 운명으로 몰고 가지 않는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여전히 거의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국민의 마비가 이러한 지경이라면 끝났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고대 로마는 이리하여 멸망했다. 오늘날 청나라는 이리하여 멸망하려 한다. 소식(蘇軾)은 “천하의 근심 중에 그렇게 될지 모르고 그런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 그렇게 될지 모르고 그러는 것은 팔짱을 끼고 난을 기다리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 국민은 팔짱을 끼고 난을 기다리는 자가 아닌가.

무릇 흥분제를 과다 사용하는 것은 심기를 일시에 흥분시키므로 좋지 않다. 얼마 후에 혼미하고 졸도하여 인사를 분별하지 못하고, 겨우 이것을 각성하면 마치 여우에 홀렸다 깨어난 것과 같다. 지금 우리 국민은 청일전쟁에서 과도하게 흥분했다가 갑자기 엄청난 권태에 빠져 지쳐서 쓰러진 채로 앞뒤를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동안에 도둑이 당신의 재산을 약탈하고 있다. 도둑은 당신의 생명을 빼앗으려 한다. 하지만 당신은 마비되어 알지 못하고 헛되이 주식이 오르기를 꿈꾼다.

30년 전 자객이 밤에 교토 기야마치木屋町의 여관에서 사카모토 료마, 나카오카 신타로 등 두 무사를 찌르고 달아났다. 잠시 후에 하우타를 부르며 아래를 지나가는 자가 있었다. 나카오카가 상처를 어루만지며 한탄하기를, “지사는 홀로 고통을 받는데 세상 사람들은 평온하게 행락을 즐긴다. 세상은 다양한 것일까”라고 했다. 우리들은 오늘날 이를 깊이 한탄한다. 아아, 국민이 빨리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국가의 앞날은 어찌 될까.


(〈國民の痲痺〉, 「中央新聞」 1897년(메이지 30년) 5월 17일)



목적과 수단


천하에 근심스러운 것 가운데 사회의 인민이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고 전도轉倒하는 것보다 심한 것은 없다. 사람이 먹는 것은 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먹는 데 급한 나머지, 거의 먹기 위해서 사는 느낌이 든다. 무인이 싸움을 익히는 것은 혼란한 세상을 고쳐 바른 길로 되돌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공명에 급한 나머지, 거의 국가의 변란을 이용하는 듯하다. 의사는 병을 고치기 위함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사업을 번창시키는 데 급한 나머지, 거의 전염병의 유행을 바라는 듯하다.

무릇 굶거나 포식하다가 잠에 빠져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이 아득한 꿈처럼 생을 마감하는 것은 금수나 어패류다. 인간이 일정한 이상과 목적을 가지고 그 명령에 따라 진퇴하고 움직이고 멈추는 것은 확실히 금수나 어패류와의 차이를 규정하는 요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개인은 개인의 이상과 목적이 없어서는 안 되며, 사회는 사회의 이상과 목적이 없어서는 안 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개인과 사회가 좀 더 많이 진보하고 번영하는 것은, 그 이상과 목적에 대해 좀 더 많이 열성적이고 충실한 데에서 기인할 뿐이다.

세상에는 부정한 목적에 대한 부정한 수단이 있다. 이것이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만약 원대하고 숭고하며 또는 필요 불가결한 목적을 위해 부정하고 추악한 수단을 강구했다면, 그것 때문에 원대하고 숭고한 목적과 이상을 벌하는 것은 가혹하다. 상투를 틀고 40년을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뜻을 얻지 못하다가 마침내 상도를 벗어난 행동을 하고 만 중국의 호걸처럼, 그 수단은 밉다 해도 뜻은 오히려 가련한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 도둑질을 한 빅토르 위고의 소설 속 인물처럼, 그 수단은 증오할 만하다고 해도 그 정은 오히려 가련한 것이다. 부정하고 추악한 수단에 대한 책임은 목적이 아니라 따로 물을 곳이 있다. 그것은 주로 사회나 개인이 몽매하여 그들의 목적에 혹독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처음부터 큰 공훈은 사소한 잘못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목적과 이상을 위하여 물러서기도 하고 나아가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것은 인간 사회의 본분임을 확신한다.

지금 우리 국민의 실상이 어떠한지 보라. 하나의 원대하고 숭고한 목적을 위하여 진퇴하는 자가 있는가. 언제 하나의 원대하고 숭고한 목적을 위하여 진퇴한 적이 있는가. 그 이상과 목적에 열성적으로 충실하지 않으면, 마침 그것을 가지고 있어도 홀연히 도중에 상실하거나 기각되고 마는 것이다. 수단의 난이도와 속도에 따라 몇 차례 목적을 경신하는 것이다. 이것은 목적을 위하여 수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단을 위하여 목적을 세우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목적과 수단이 완전히 전도되었다. 심한 경우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으면서 목적이 있는 것처럼 가장하여 들개처럼 방황하고 장구벌레처럼 준동하기 시작한다. 생각해보라. 정당의 목적은 이념과 정견의 실행이 아닌가. 하지만 오늘날의 정당은 당세 확장을 위하여 이념과 정견을 완전히 희생하지 않았는가. 정치가의 목적은 인민의 이익 증진이 아닌가. 하지만 오늘날의 의원 정치가는 지위와 녹봉과 권세를 유지하기 위하여 인민의 이익을 완전히 희생시키지 않았는가. 정치 활동가도 그렇다. 교사도 그렇다. 승려도 그렇다. 학자도 그렇다. 그들은 목적과 수단을 완전히 전도시켜버렸다. 목적에 충실하고 열심인 것이 아니라 오로지 수단을 표준으로 삼아 진퇴하는 국민은 책임 없는 국민이다. 식견 없는 국민이다. 의지가 박약한 국민이다. 경솔하고 가벼운 국민이다. 남을 속이고 자신도 속이는 국민이다. 예로부터 이와 같은 국민치고 쇠퇴하여 멸망하지 않은 예가 없으니 근심스럽지 않은가.


(〈目的と手段〉, 「萬朝報」 1900년(메이지 33년) 6월 12일)



의무감


의무감은 말은 대단히 오래되었지만, 뜻은 매우 새로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의무감은 우리 국민에게 결핍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전혀 없다고 해도 될 정도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지금 우리나라의 관민官民과 상하上下 만반의 사회를 통틀어 정당하게 의무를 다하는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다하고자 마음먹고 있는 자가 있는가. 그들은 “이러이러한 것은 내 권리다, 여차여차한 것은 내 이익이다”라고 말한다. 권리와 이익이 존재하는 곳에는 멧돼지처럼 돌진하고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려고 해도, 일단 의무라는 말을 들으면 교묘하게 비껴가고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지 않는 자가 없다. 관리는 인민을 꾸짖을 권리를 크게 휘두르고, 인민을 보호하고 편익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전혀 가진 적이 없다. 상인은 오로지 상품의 대금을 청구할 권리만 휘두르고, 상품이 반드시 양호하고 견고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전혀 가진 적이 없다. 주주는 오로지 이익배당을 받을 권리를 휘두를 뿐이고, 사업의 번영에 힘써야 한다는 의무감은 전혀 가진 적이 없다. 의원은 오로지 예산과 법률 협찬권을 휘두를 뿐이고, 그 시행이 국가와 인민의 이익과 행복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전혀 가진 적이 없다. 선거민 또한 오로지 선거권을 휘둘러 표를 팔 뿐이고, 헌정에 완전히 충실할 의무감은 전혀 가진 적이 없다.

진정한 권리는 진정한 의무를 수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는 국민의 자격이 없다.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는 사회의 일원이 될 자격이 없다. 이미 자격이 없는 자에게 권리가 있을 리 없다. 그들이 먼저 의무를 다하지 않고 오로지 권리를 주장하고 휘두르려 하는 것은 방자함이다. 개인으로 보면 개인의 타락이다. 사회로 보면 사회의 파멸이다. 상하가 서로 이익을 취한다면 나라가 어려울 것이라는 맹자의 가르침은 바로 이러한 뜻이다.

프랑스대혁명 이후에 혁명을 혁명으로 잇고 전복을 전복으로 이으면서 정치 체제가 몇 차례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결국 견고한 건설을 이룩할 수 없었던 것은 지혜가 없고 지식이 없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프랑스 사회가 오로지 권리를 보고 의무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니, 국가와 사회는 곧 타락이 아니면 붕괴가 있을 뿐이다. 만약 미국 건설 초기에 워싱턴이 오로지 권리와 이익을 주장하며 제3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받아들였다면, 우리들은 오늘날의 미국이 반드시 가공할 만한 세습 전제국이나 그렇지 않으면 혁명을 혁명으로 잇는 프랑스처럼 되었으리라고 확신한다.

알아야 한다, 오늘날 일본의 부패와 타락은 우리 국민 사이에 의무 개념이 완전히 결핍된 데서 나왔음을. 먼저 의무를 다하지 않고 오로지 권리와 이익을 주장하는 폐단에서 나왔음을. 고로 오늘날의 일본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우리 사회와 인민에게 의무를 중시하고 의무를 다하는 마음을 환기시키고 양성하는 것보다 급한 것이 없다. 만인이 각자 의무를 다하여 태만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권리는 저절로 여러분에게 올 것이다. 현대의 청년들이 오로지 이것을 명심한다면 앞당길 수 있지 않겠는가.


(〈義務の念〉, 「萬朝報」 1901년(메이지 34년) 7월 11일)



노인의 손


노검객 모 씨가 일찍이 우리들에게 말하기를 “젊은 시절 검을 내리칠 때, 마음이 움직이는 찰나에 칼이 곧바로 함께 나갔지. 그 사이에 털끝 하나 들어갈 틈이 없었는데, 지금 내 눈은 여전히 보이지만 손이 이를 따르지 못하니, 아아, 내가 늙었구나”하고 한탄했다. 현재 국가의 경영을 맡은 자의 태도를 보라. 이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천하가 온통 위축되고 침체되고 마비되고 혼수상태가 극에 달해 거의 죽은 것 같은데도 누구 하나 밝은 뜻을 품는 자가 없는 것은 왜일까. 그들이 진정으로 늙었기 때문이다. 비단 나이뿐만이 아니라 마음이 완전히 다하고 몸이 완전히 쇠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움직여도 볼 수 없고, 보아도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 마치 노검객의 심기가 잘못 작용하여 수족을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른바 정국 전개에서 그들이 얼마나 애썼는가를 보라. 관청의 규율 확립을 위하여 그들이 얼마나 애썼는가를 보라. 교육 부진에 대해 그들이 얼마나 애썼는가를 보라. 재정 불운에 대해 그들이 얼마나 애썼는가를 보라. 그런데도 결국 어느 방면에서도 조금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위축과 침체와 마비와 혼수상태가 여전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국가와 사회는 빨리 그들 노쇠한 자들과 고별하고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웃음을 참는다. 지금도 여전히 이토 히로부미를 받들고 이노우에 가오루를 밀고 오쿠마 시게노부를 끌어안고 천하를 구하려는 자여.

유신의 혁명은 〈토코톤야레〉의 가락 속에서 성취되었다. 입헌 대의 제도는 당시에 자유당 지사가 부른 “첫해, 사람 위에 사람 없네”라는 창가 속에 설립되었다. 유신의 원훈이나 정당 지도자들은 당시의 중대한 혁명 사업을 자신들의 손으로 매우 쉽게 이룩했는데, 오늘날 구구한 작은 문제들을 결국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어찌 스스로 기이하게 여기지 않는가. 다름이 아니다. 당시 사업은 그들이 청년 활동가의 의기를 가지고 단행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문제는 오로지 늙은이의 수완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풍속개량회에서 안좌법安坐法을 강의하고 조금의 반향조차 얻지 못하는 이타가키 다이스케 백작이 당시 자유민권의 목소리로 60여 주州의 산하를 뒤흔든 것을 생각하면, 천하에 가장 가엾은 자가 어찌 미인과 명장뿐이겠는가.

번벌도 늙었다. 의회도 늙었다. 정당도 늙었다. 대학도 늙었다. 국회의원이나 학자나 상인 가운데 나이 40이 안 된 자는 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완전히 늙었다. 국가와 사회의 경영은 이미 그들의 손을 떠나 우리 청년의 수중에 떨어지려 한다. 청년이 득의양양한 시대가 열리려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천하에 유망한 청년 지사를 대신하여 오늘날의 노쇠한 무리들한테 대단히 감사한다. 우리들은 당신들의 20여 년에 걸친 노고와 진력을 진심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오늘 이후의 풍운은 우리 청년들의 손으로 일으켜야 한다. 오늘날의 침체, 위축, 마비, 혼수상태를 보면 그것을 어찌할 수 없는데도, 당신들은 어째서 노검객의 말처럼 나는 늙었다고 자백하지 않는가. 헛되이 일시적인 피하주사로 노쇠함을 덮으려 해도 오히려 피로를 더할 뿐이다.


(〈老人の手〉, 「萬朝報」 1900년(메이지 33년) 4월 25일)



문명을 모욕하는 자


몸에 서양 신식 옷을 걸치고 손에는 반드시 양서를 들고, 이야기는 반드시 서양어를 섞으면서 의기양양해서 서양 문명의 진의를 얻었다고 떠들어대며, 그렇지 않은 인사를 가리켜 당장 미개하고 야만적이라며 비웃는 무리가 최근에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세상의 경박한 무리들이 엄청나게 이러한 유행을 따르는 것 같다. 아아, 그들이 어찌 진정한 문명인인가. 그들이 어찌 진정한 문명인인가.

19세기 서양 문명의 정수는 개인들이 자유 평등의 이상을 품고 자주독립의 기상이 풍부했던 데 있다. 프랑스혁명이 유럽 천지를 일신한 것은 오로지 자유 평등의 이성을 향하여 매진한 덕분이었다. 대륙 각국이 헌법을 정하고 의회를 설치하여 수많은 국민적 통일과 흥륭을 이룬 것도 자유 평등의 이상이 널리 퍼진 덕분이었다. 많은 과학적 발명이 산업혁명을 이끈 것도 오로지 자유 독립의 기상이 축적된 덕분이었다. 영국의 공업과 통상이 세계 시장을 제패한 것도 이 기상이 떨쳐 일어난 덕분이었다. 프랑스의 문예가 크게 번성하고 독일의 학술이 다양하게 구비된 것도 모두 이와 같은 이상과 기상이 흥륭한 결과가 아닌 것이 없다. 자유주의도 여기에서 나왔다. 그들의 진보가 항상 세계에 앞서고 그들의 부강이 항상 세계에서 뛰어난 까닭은 모두 여기에서 기인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서양 문명의 진의를 얻어 성과를 거두고 혜택을 입고자 한다면, 오로지 이 이상을 함양해야 한다. 이 기상을 떨쳐 일으켜야 한다. 어찌 하이칼라에 있겠는가. 화장품에 있겠는가. 글자를 옆으로 쓰는 데 있겠는가.

그런데 문명인을 자처하는 저 무리들을 보라. 자유 평등의 이상에 다가가고자 하는 자는 추호도 없고, 이 기상을 지닌 자도 하나도 없다. 그들이 숭배하는 것은 귀족이다. 번벌이다. 대훈위다. 후작이다. 그들이 희망하는 것은 관직이다. 지위와 녹봉이다. 국장이다. 공사公使다. 그리하여 이익을 좇기 위해서는 아첨을 하지 않는 곳이 없고,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술수를 쓰지 않는 곳이 없다. 대개 실제 행실은 도박에 빠지고 주색에 빠지고 부채가 쌓여 있으면서도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문명의 신사, 문명의 정치가라 자처한다. 이보다 더 심하게 문명을 모욕하는 것이 있겠는가.

그렇다. 그들의 옷은 문명이다. 글자나 담화는 문명이다. 하지만 눈 속과 뇌리에 있는 것은 오로지 귀족, 전제, 관직, 금전, 주색, 맹종, 아첨에 지나지 않다고 한다면, 이것이 어찌 문명의 껍질을 뒤집어쓴 야만인인 아니겠는가. 그들이 평소에 조소하는 야만인은 사상이나 내용에서는 아직 그들만큼 야만적이지 않다. 저열하지 않다. 의지가 박약하여 실천을 못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그들이 의기양양하게 세상에 자랑하는 요즘과 같은 시절은 결코 국가의 경사가 아님을 믿는다.


(〈文明を汚辱する者〉, 「萬朝報」 1900년(메이지 33년) 4월 25일)



이토 후작의 성덕


일찍이 책을 읽다가 프랑스의 위인 장 자크 루소가 탄식한 말을 본 적이 있다. 큰 인물은 비유컨대 길거리에 서 있는 흰 벽과 같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그 위에 낙서를 하여 더럽힌다고 했다. 우리들은 오늘날의 이토 히로부미 후작에 대해 이와 같은 느낌을 대단히 많이 받는다.

우리들은 본래 이토 후작을 큰 인물로 보지는 않는다. 그가 겁약하고 아첨을 잘하며, 저열하고 파렴치한 소인이라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확실히 어떤 한 부분에서 4천만 명 중 어느 누구도 필적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비난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비판할 수 없는 성덕盛德을 지녔다. 우리들은 일단 성덕이라고 한다. 성덕이라는 말 이외에 적당한 명사를 선택할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성덕이란 다름 아니다. 천황으로부터 공전의 총애를 받는 것이 그것이다.

이 성덕은 예로부터 군자가 가지는 것인지 소인이 가지는 것인지를 묻지 말아야 한다. 이토 후작이 이것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지 말아야 한다. 다만 그는 현실적으로 이 성덕을 가진다는 점, 성덕이 천하에 가장 뛰어나다는 점이 바로 그를 길거리의 흰 벽이 되게 했다. 지나는 자는 모두 그 위에 낙서를 하고 그를 모욕하지 않는자가 없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그것을 불식할 수 없다. 거절할 수 없다. 도피할 수조차 없다. 가엾지 않은가.

자유당이 그를 추대한 까닭은 오로지 그가 흰 벽의 성덕을 지녔기 때문이다. 정치적 말썽꾼들은 모두 이 흰 벽을 이용하여 글자로 얼굴을 그리는 식의 필력을 드러내려 몰려왔다. 구 관리인 막부 관료나 신진학자들이 그를 추대하는 까닭은 역시 흰 벽을 이용하여 사랑의 낙서나 여러 가지 낙서를 하는 기쁨을 얻기 위해서다. 그 밖의 허다한 정치적, 실업적 여행객은 이 흰 벽으로 달려가 이름을 새기고 생각하는 바에 제 목을 달고 지나가지 않는 자가 없다. 이리하여 처음에는 휘황하게 빛났던 것도 종횡으로 칠해지고 상하로 그려져 단지 검게 변해, 어느 것이 글자로 그린 얼굴이고 어느 것이 사랑의 낙서인지도 분별하지 못하고, 오로지 떨어져 내리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렇다. 그는 지금 이와 같은 처지에 있다. 그에게 성덕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행인의 주목을 끌지 못했겠지만, 그래도 이와 같이 불식할 수 없는 모욕, 도피할 수 없는 궁지에 몰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단지 내지의 여행객에게 덧칠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외국의 정치적 여행객의 얼굴 낙서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운을 만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나아가려고 해도 나아갈 수 없으며 물러서려고 해도 물러설 수 없으니, 뉘우쳐 한탄하고 회한하는 상태는 헤아리기조차 힘들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와타나베 구니타케도 이 벽 위에 큰 붓을 휘두르려 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까마귀나 소처럼 덧칠된 추함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려고 하다가 겨우 여백이 약간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시 그 아래에서 쉬기 시작했다. 아아, 성덕, 흰 벽의 성덕, 우리들은 오히려 연민의 정을 느낄망정 부러워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다.


(〈伊藤侯の盛德〉, 「萬朝報」 1900년(메이지 33년) 4월 25일)



평범한 거인



거인이 두 명 있다. 한 명은 기이한 재능과 탁월한 수완을 휘둘러 비범한 활극을 연출하여 일시에 천하의 이목을 놀라게 하여 강호의 갈채를 받았다. 다른 한 명은 행실이 굳이 바른길을 벗어나지 않고 추호도 기이함이 없으면서도 선을 쌓고 덕을 높이 세워 마침내 한 시대가 추앙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들은 전자를 비범한 거인이라 부르고 후자를 평범한 거인이라 부르고자 한다.

비범한 거인은 대개 군인, 정치가가 많다. 평범한 거인은 드물게 학자, 교육자, 종교인 중에서 나온다. 유사 이래 비범한 거인은 많으나 국가와 인민에게 이로운 바가 적고, 평범한 거인은 적으나 사회와 문명에 이로운 바가 많다. 비범한 거인은 예를 들면 기암괴석이나 거센 폭포가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놀라게 한다고 해도 그 효과는 문사나 시인이 쓸데없이 잔재주를 겨루는 재료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평범한 거인은 예를 들면 한 덩어리의 토양이 쌓여 우뚝 솟은 큰 산이 되고, 한 갈래 가는 물줄기가 모여 넓디넓은 강과 바다를 이루는 것과 같다. 그것이 평범하다고 해도 만민은 그것 덕분에 살고 의식주를 얻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두 명의 거인이 있는데, 하나는 폭력이고 하나는 의리다. 하나는 재지才智고 하나는 덕행이다. 하나는 인작人爵이고 하나는 천작天爵이다. 하나는 물질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이다. 고로 하나는 눈앞에 있고 다른 하나는 썩지 않는다. 우리들은 비범한 거인을 천 명 내는 것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거인이 한 명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보라. 유신 이래로 많은 비범한 거인을 냈다. 기도 다카요시(木戸孝允, 1833~1877)나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1828~1877)나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1830~1878)나 이와사키는 모두 비범한 거인이었다. 평범한 거인에 이르면 과연 누가 있었는가. 우리들은 겨우 고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 1835~1901) 옹 하나가 평범한 거인을 방불케 함을 보았을 뿐이다.

직언하면 우리들은 평소에 후쿠자와 옹의 소견에 따르지 않는 자가 많았다. 하지만 옹이 일찍이 서구 문명을 강의하고 많은 영재를 교육하여 일대 사상을 혁신하고 현재의 일본 문명을 이룩한 공적은 천고에 닳지 않을 것이다. 공자가 일컬어 관중(管仲)이 없었다면 우리는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는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생각건대 옹이 없었다면 우리 국운의 진보가 어찌 이와 같이 될 수 있었겠는가. 우리 국민이 옹에게 진 빚이 많다.

하지만 이것은 여전히 지엽적인 것이다. 우리들이 특히 옹에게 경도되는 까닭은 학문과 문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에 있다. 평범한 거인인 데 있다. 옹은 평범함에 안주하여 비범함을 바라지 않았다. 동도(東都, 도쿄)에 전쟁의 먼지가 충만할 당시에 의연히 글을 강론할 수 있었던 것이 이것이다. 4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가르치기를 쉬지 않는 성자를 닮을 수 있었던 것이 이것이다. 오래도록 무작無爵의 일개 평민으로서 부귀도 음탕하게 하지 못하는 저변의 도덕이 있고 위력도 굴복시키지 못하는 저변의 지조를 지키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었던 것이 이것이다. 일대 사표로서 우리 사상계에 대혁신의 위공을 세운 것도 이것이다. 그렇다. 옹이 희대의 거인인 까닭은 다만 철두철미하게 평범한 천직을 행하여 굴하지 않은 데 있다. 평범한 본분을 다하여 꺾이지 않은 데 있다. 비범함을 바라지 않은 데 있다. 그리하여 지금 이 인물이 사라지니 우리들은 천 명의 비범한 거인보다는 일개 평범한 거인이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지금 이 인물이 사라지니 애석하지 않겠는가.


(〈平凡の巨人〉, 「萬朝報」 1901년(메이지 34년) 2월 6일)



『수신요령』을 읽다


후쿠자와 옹이 편찬한 『수신요령』은 “오늘날의 남녀가 오늘날의 사회에 대처하는 길”을 설파했는데, 독자적인 비평안을 갖추고 있어 평범하고 쓸모없는 선비들이 결코 필적할 수 없는 점이 있다. 참으로 최근 교육계의 귀중한 산물product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들은 한 번 읽고 나서 대단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두 번 읽고 나서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왜 그런가.

『수신요령』은 제1조에서 제29조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독립자존주의로 일관한다. 옹은 이 주의를 해설하여 “심신의 독립을 온전히 하고 스스로 그 몸을 존중하여 사람다운 품위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 것, 이것을 독립자존의 사람이라고 한다”고 했다. 또한 “독립자존의 사람은 자로자활自勞自活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신체를 소중히 여겨 건강을 지켜야 한다”, “진취확취進取確取의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곧 독립자존주의의 정의를 대략 간추린 것이다. 이와 같다면 우리들은 독립자존에 대해 추호도 비판할 곳이 없으며, 개인의 인격을 온전히 하기 위해서는 매우 필요한 것임을 믿는다. 그렇다. 참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남녀가 오늘날의 사회에 대처”하는 것이 과연 독립자존을 내실로 하는 것으로 그저 본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이 모여서 국가를 이룬다. 그 사람이 바로 항상 국민의 한 사람임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이, 사람이 사회를 이루는 이상, 그 사람은 반드시 항상 스스로 사회 구성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에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서 먹고, 제왕의 은택이 있는지를 몰랐던 태곳적 사람이라면 상관없다. 문명의 진보로 분업의 세상이 되었다. 분업의 세상은 결국 사람을 불구자로 만든다. 상업은 결코 상업만으로 먹을 수 없다. 농업은 결코 농업만으로 입을 수 없다. 사회 각자가 상부상조하는 것은, 마치 앞발이 긴 이리와 앞발이 짧은 이리가 상부상조하는 것과 같아, 잠시도 결코 서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 그렇다. 개인은 오로지 사회 구성원일 때 비로소 독립자존을 내실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사회 조직과 모순을 일으키고 충돌하고 이반하면 사람은 당장 불구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이 세상에 대처하는 것은 개인으로서는 독립자존을 온전히 하는 한편으로, 사회 구성원으로서는 그 사회에 대한 평등과 조화를 내실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사회에 복종하는 공덕이 없으면 안 되고 사회를 위하여 진력하는 공의公義가 없으면 안 된다. 더욱이 나아가서는 사회 공공의 복리를 위하여 개인의 복리를 희생할 각오가 없으면 안 된다. 이리하여 사람은 사회에 속할 때 비로소 사람으로서 본분을 완수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날 문명사회의 수신요령이라면 어찌 이 중대사를 등한시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후쿠자와 옹의 『수신요령』은 오로지 중심을 개인의 독립자존에 두고 사회에 대한 평등과 조화, 공의와 공덕을 훈계하는 데는 너무나도 지나치게 냉담한 것 같다. 제13조에서 제19조까지는 어느 정도 사회에서 개인의 처신을 설파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단지 “건전한 사회의 기초는 한 사람 한 집안의 독립자존에 있다”, “사회 공존의 길은 상호 침범하지 않고 자타의 독립자존을 손상시키지 않는 데 있다”, “복수는 야만이다”, “남과 교제할 때는 믿음으로 해야 한다”, “예의범절은 교제의 요건”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정을 넓혀서 타인에게 미치게 하고, 그 고통을 줄이고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 힘쓰는 것은 박애의 행위이자 인간의 미덕이다”라고 말하는 데 그칠 뿐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독립자존을 위한 것이며, 개인이 사회 전반의 복리 증진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이 본분이고 책무이며 덕의임을 설파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들은 제22조, 제23조, 제24조에서 군사에 복무하고 국비를 부담하여 외환外患이 있으면 생명과 재산을 던져서 적국과 싸워야 한다고는 하면서, 오히려 나아가 크게 전 사회와 인민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고 절개를 지키는 고상한 도의를 설파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한다.

이와 같이 수신요령은 오로지 독립과 자존을 중시하고 평등과 조화를 경시하며, 오로지 개인의 도덕을 볼 뿐, 개인이 사회에서 지켜야할 공도公道와 공덕을 거의 보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답답함을 느낀 까닭이다. 이와 같은 방침을 오늘날의 수신요령으로 삼는다면, 우리들은 그 결과를 상상해볼 때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개 독립자존은 개인자유주의의 골수이자 주축이다. 우리들은 유럽 각국이 군주 전제의 질곡을 탈피하여 19세기 문명의 광휘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개인자유주의의 선물이었음을 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오늘날의 문명에, 또한 후쿠자와 옹이 개인자유주의를 전하여 한 시대의 사상을 개혁하는 데 크게 공헌을 한 것을 안다. 하지만 세운世運은 날로 변하여 달라진다. 방패와 깃털을 잡고 춤을 추어 평성平城을 열 수는 없다. 개인주의적 문명은 과연 언제까지 찬란한 빛을 유지할 수 있을까.

방패에는 양면이 있다. 물건에는 양끝이 있다. 이로움과 해로움은 반드시 어디서나 한 쌍이다. 개인주의는 한편으로 반드시 이기주의를 면할 수 없다. 귀족 전제, 봉건 계급의 폐단이 극에 이르러 인민이 거의 노예의 지경에 떨어졌을 때 개인의 자유와 독립자존주의는 세계의 구세주였다. 후쿠자와 옹은 이때에 이 구세주를 받들고 서서 전에 없이 훌륭하고 뛰어난 업적을 세운 덕분에 이 주의를 유지하였고, 수신요령도 수십 년 동안 변함없이 이것을 골자로 했다고 하지만, 보라. 지금 계급 타파는 질서가 붕괴되어버렸고, 자유 경쟁은 약육강식으로 변했으며, 개인자유주의는 나아가 이기주의의 한 면을 드러내어, 폐단이 사해에 넘쳐흐른다. 그런데 독립자존을, 아니 독립자존만을 사람들이 수신의 요령으로 삼는 것은 위험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사회를 위하여 개인을 묻어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가 개인을 묻을 수 없듯이, 문명사회에서는 결코 개인을 우선시하고 사회를 뒤로 할 수는 없다. 수신의 길, 도덕의 가르침은 반드시 한 시대의 사상에 따라 사회 다수의 복리를 표준으로 삼는 공의와 공덕이 아니면 안 된다. 사회의 공의와 공덕이 반드시 독립자존과 상반되는 것은 아니다. 후쿠자와 옹의 뜻은 본래 공의와 공덕을 무시하지 않는다고 해도, 아버지가 원수를 갚으면 그 아들은 반드시 위협한다. 독립자존은 일변하여 이기주의가 된다. 이기주의는 대개 사회에 대한 배덕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으니, 우리들은 이것을 깊이 두려워한다. 설령 이기주의가 되지 않더라도 고답적인 은자가 될 뿐이다. 백이(伯夷)도 독립자존이었다. 엄자릉(嚴子陵)도 독립자존이었다. 사마휘(司馬徽, 173~208)도 독립자존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어찌 오늘날 사회가 바랄만 한 사람인가.

『수신요령』도 마찬가지로 박애를 말했다. 하지만 단지 “자신을 사랑하는 정을 넓혀서 타인에게 미치게 하는 것은 미덕이다”라고 하는 데 그쳤다. 그렇다. 자신을 사랑愛己하는 마음이 타인에게 미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도 아직 이기심을 벗어날 수 없다. “타인의 권리와 행복을 존중한다”도 “남과 교제할 때는 믿음으로 해야 한다”도, 모두 ‘독립자존’을 위해서라고 한다. 이기심을 추구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것을 어찌 진정한 도덕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진정한 인간의 도덕은, 마치니가 말한 바와 같이, 개개인이 사회에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데 있다. 보상을 바라는 데 있지 않다. 보상을 바라고 행하는 사람은 마치 자신의 그림자를 좇아서 달리는 것과 같을 뿐이다. 조금도 보상을 바라지 않고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려면 자신의 몸과 집안의 행복도 버려야 한다. 재산과 생명도 버려야 한다. 이리하여 비로소 대군자도 나오고 대개혁자도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립자존의 가르침은 반드시 조화 평등의 덕을 수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애自愛의 마음은 반드시 박애의 마음을 수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에 조화 평등의 덕이 독립자존을 통제하지 않고 박애의 마음이 이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독립자존, 개인 자유주의는 바로 부덕한 이기주의가 된다. 혐오할 만한 약육강식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오늘날의 실상이 아닌가.

그렇다. 오늘날의 근심은 개인주의의 폐단이 극한에 이른 데 있다. 이기주의가 성행하는 데 있다. 자유 경쟁만 있고 평등 조화가 없는 데 있다. 개인은 있어도 국가가 없고, 국가는 있어도 사회가 없다. 다시 말해 사회에 대한 공의와 공덕으로 자기 한 몸을 규율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한 몸의 이해득실로 사회의 복리를 좌우하려고 하는 데 있다. 이러한 때에 사회적 평등 조화, 공의와 공덕을 설파하지 않고 개인의 독립자존만을 가르치는 것은 불을 끄려고 기름을 붓는 꼴이다. 그 결과가 걱정스럽다.

우리들은 세상의 곡학曲學하는 사람처럼 단지 충효의 두 글자가 없는 것 때문에 멋대로 『수신요령』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진정한 사회적 관념으로 국가나 사회를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하여 있는 힘을 다하는 의용봉공義勇奉公의 마음을 장려하는 조목이 없음을 애석해한다. 만약 과연 이것이 있다면 충효는 저절로 그 안에 있을 뿐이다.


(〈修身要領を讀む〉, 「萬朝報」 1900년(메이지 33년) 3월 6일~7일)



자유당 제문祭文


해는 경자庚子년 8월 어느 날 밤, 금풍金風이 서글피 불고 이슬이 하얗고 하늘이 높을 때, 별 하나가 홀연히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아, 자유당이 죽었는가. 그리하여 그 광영의 역사는 완전히 말살되었다.

아아, 그대 자유당이여, 우리는 이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20여 년 전 전제와 억압의 참혹한 독이 도도히 사해로 흘러넘치고 유신중흥의 커다란 계획이 크게 좌절되었을 때 하늘에 계신 조종祖宗의 영혼은 환히 그대 자유당을 대지에 내려서 고고한 목소리를 드높이고 굵은 빛을 휘날리게 했다. 그리하여 그대의 부모는 우리 건곤에 가득한 자유 평등의 정기였다. 세계를 뒤흔든 문명 진보의 대조류였다.

이로써 그대 자유당이 자유 평등을 위하여 싸우고 문명 진보를 위하여 싸울 때, 의로움을 보고 나아가 바른 길을 밟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천 번을 굴하지 않고 백 번을 꺾이지 않는 의연한 의기와 정신은 진정으로 추상열일秋霜烈日의 감개가 있다. 그리하여 이제 편안히 있는가.

그대 자유당이 일어나자 정부의 억압은 더욱더 심해지고 박해는 더욱더 급했다. 언론은 속박 당했다. 집회는 금지되었다. 청원은 방지되었다. 그리하여 포박, 추방, 투옥, 교수대. 하지만 그대는 정확鼎鑊을 보기를 엿같이 했다. 수만 금의 재산을 탕진하고 후회하지 않았다. 수백 명의 생명을 손상시키고도 후회하지 않았다. 어찌 이것이 그대가 한 가닥의 이상과 신앙을 굳게 지니고 천고에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리하여 지금 편안히 있는가.

그대 자유당은 이와 같이 당당한 장부가 되었네. 수많은 어질고 의로운 지사들의 오장을 짜낸 뜨거운 눈물과 고운 피는 그대 자유당의 양식이었다. 전당이었다. 역사였다. 아아, 타모노나 무라마쓰나 바바나 아카이처럼, 뜨거운 눈물과 고운 피를 흘린 어질고 의로운 지사들은 그대 자유당의 앞날이 광영으로 빛날 것을 상상하고 의연히 웃음을 머금고 죽음을 받아들였다. 당시 누가 알았겠는가, 그들이 죽고 자유당도 죽으리라고. 그들의 뜨거운 눈물과 고운 피가 원수인 전제주의자의 유일한 장식으로 제공될 것이라고. 아아, 저 뜨거운 눈물과 고운 피는 붉은 빛이 빠지고 푸른빛이 바랬는데, 지금 편안히 있는가.

그대 자유당이여. 처음에는 성현의 뼈와 영웅의 쓸개에 눈은 일월日月과 같고 혀는 벽력과 같아 공격하여 잡지 못하는 것이 없었고, 싸워서 이기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이로써 일단 입헌 대의의 신천지를 개척하고 건곤을 알선하는 위업을 세웠다. 하지만 그대는 성공을 지키는 재능은 없었다. 그 전복은 겐무建武의 중흥보다 위험하여 당장에 야만적 전제의 강적에게 정복되었다. 그리하여 그대의 영광스런 역사, 명예로운 사업은 지금 편안히 있는가.

또한 생각한다. 나는 어려서 하야시 유조(林有造, 1842~1921) 군의 집에 기거했다. 어느 날 밤 한풍이 세차게 불어대는 저녁에, 삿초薩長 정부가 갑자기 하야시 군과 나를 붙잡아 도쿄 3리 밖으로 쫓아냈다. 당시 여러분들의 머리카락이 치솟았던 상태가 돌연히 눈에 어른거려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보라. 지금 여러분은 퇴거령을 발포한 총리였던 이토 후작, 퇴거령을 발포한 내무대신 야마가타 후작의 충실한 정우政友로서 그대 자유당이 죽는 것을 지켜보는 행인과 같고, 나는 단지 붓 한 자루와 세치 혀뿐이지만, 여전히 자유와 평등, 문명과 진보를 위해 분투하고 있음을. 그대 자유당의 시체를 매달아 영혼을 기리면서 우리는 어찌 옛날을 그리며 지금을 어루만지는 정이 없을 수 있겠는가. 육유(陸游, 1125~1210)가 일찍이 검각劍閣의 봉우리들을 바라보고 개탄하면서 “은평陰平의 궁지에 몰린 적을 막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이렇게 강산이 공연히 사람을 붙드네”라는 노래를 불렀다. 아아, 전제주의자라는 궁지에 몰린 적은 막기 어렵겠는가. 하지만 영광스러운 그대의 역사는 이제 완전히 말살되었다. 우리는 다만 이 구절을 읊으며 그대를 매달 뿐이구나. 그대 자유당에 만약 영혼이 있다면 정말로 와서 잔치를 벌이라.


(〈自由黨を祭る文〉, 「萬朝報」 1900년(메이지 33년) 8월 30일)



세모歲暮의 고통


고인이 “기약 없는 세상의 기약”이라고 한 세모歲暮가 왔다. 사람이 돈을 얻으려고 해도 얻지 못하여 고뇌하고 후회하고 두려워하며 낭패를 보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우리 인류가 세모의 고통 때문에 빼앗기는 행복이 과연 어느 정도일까. 사회 문명이 세모의 고통 때문에 저해당하는 진보와 발달이 과연 어느 정도일까. 그로 인해 많은 시간이 쓸모없이 소진된다. 많은 건강이 그로 인해 손상을 입고, 많은 면목이 그로 인해 굴욕을 당하고, 심한 경우에는 커다란 사기나 협박, 도적이나 살인이 그 하루의 고통 때문에 발생하여 사회에 백 년의 과실過失을 남기기에 이른다.

인류는 영원히 이와 같은 고통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되는가. 사회 선각자 지위에 있는 인사는 영원히 다수 인류의 고통과 문명 진보의 저해를 묵시할 수밖에 없는가. 아니 방관할 수 있는가.

말하지 말라, 이것이 사회의 자연스러운 상태라서 도저히 제거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어째서 그런가. 만약 이것을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면 인간에게 질병이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닌가. 생리학과 의약술의 진보는 질병을 고칠 수 있게 한다. 문명의 진보가 유독 인류의 사회적 고통을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 이치에 맞는가. 그렇다. 우리들은 제거할 수 있을지 없을지 단정하기 전에 우선 가장 중요한 원인을 엄격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다수 인류가 세모에 고통 받는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대단히 잘 보인다. 그들은 금전 결핍으로 궁지에 몰려있을 뿐이다. 그들의 고통을 제거하고자 한다면, 단지 그들에게 금전을 얻게 하면 된다.

그런데 그들은 금전을 얻을 길이 없는가. 아니다. 그들 대다수는 실제로 매일 부의 생산에 종사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사회는 과연 그들의 궁핍을 구할 만한 금전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아니다. 부호의 창고는 막대한 부를 저장하고 있지 않은가. 부는 이미 많다. 더욱이 부를 생산하고 늘릴 길도 이미 구비되어 있다. 그런데도 무엇 때문에 부를 대표하는 금전에 궁핍한 자가 이렇게 많아졌는가. 이제야 우리들은 알게 되었다. 그들이 겪는 세모의 고통, 견딜 수 없는 고통, 방관하기 힘든 고통은, 오로지 부의 분배가 공평하지 않아서 단지 소수의 손에 부가 축적된 데 원인이 있음을.

그렇다. 오늘날의 사회는 부의 분배에서 공평함을 잃었다. 부의 대부분은, 그것을 생산하기 위하여 노동하는 다수 인민에게 돌아가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고먹는 소수 자본가의 손에 들어간다. 이것이 옳지 않고 도리에 어긋난 것임은 본래 따질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자본이 개인의 손에 사유되고 생산 사업이 자유 경쟁에 방임되는 동안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폐단이라는 점은, 서구의 의롭고 어진 지사들이 이미 통절히 논했고 또한 우리가 평소에 절규했다. 그러므로 부가 일부에 축적되는 것을 막고자 한다면, 우선 토지와 자본을 자본가의 손에서 옮겨 다수 인민의 공유로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이 된다면 생산된 부는 비로소 공평하게 분배될 뿐만 아니라, 자본가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고먹을 수는 없으니, 사회 전반의 생산액은 더욱더 증가할 것이다. 다수 인류가 어찌 세모의 고통을 맛볼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다. 그들이 영원히 세모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로지 자본의 공유 하나뿐이다. 이름하여 사회주의 제도다.

우리들은 지금 사회주의 논리의 세목을 강연할 틈이 없고 또한 실행 수단과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는 번잡함을 피하고자 한다. 하지만 진실로 많은 인민의 복리를 위하여 사회 문명의 진보를 위하여 몸 바치려는 어질고 의로운 지사들에게 고한다. 세모의 고통은 오로지 부의 분배가 불공평한 데서 비롯된다. 분배의 불공평함은 오로지 자본가의 전횡에 원인이 있다. 자본가의 전횡은 자본의 사유를 허락하는 데 있다. 일찍이 다수의 단결된 세력으로 정치적 권리를 봉건 제후한테서 빼앗고 삿초 번벌 정부한테서 빼앗아 평등하게 사회에 나누었던 이들이, 어찌 경제적 권리를 자본가의 손에서 빼앗아 평등하게 사회에 나누지 않는가. 당시의 존왕토막당尊王討幕黨이나 자유개진당自由改進黨은 어찌 한발 더 나아가 민주적 사회당이고자 하지 않는가. 이것은 웃어른을 위해 나뭇가지를 꺾어드리는 것과 같은 일일 뿐이다. 태산을 옆에 끼고 북해를 뛰어넘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다.


(〈歲末の苦痛〉, 「萬朝報」 1900년(메이지 33년) 12월 17일)



신년의 환희


즐거운 새해. 새해의 즐거움은 문 앞을 장식하는 소나무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소나무가 없는 집도 즐거운 법이다. 도소주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도소주가 없는 집도 즐거운 법이다. 돈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좋은 옷을 입기 때문이 아니다. 홍분紅粉으로 화장하기 때문이 아니다. 돈 없고 좋은 옷도 없고 홍분이 없는 사람도 즐거운 법이다.

나와 남과 사회가 죽음을 향하여 1년을 다가가서 모두 흐르는 세월의 빠름을 깨닫지 않을 수 없는데도, 기꺼이 새해를 즐길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다름 아니다. 이때야말로 나와 남과 사회가 모두 함께 정의롭조 자유롭고 평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각각 양 끝을 가진다. 세상에 완전한 선인이 없다면 또한 완전한 악인도 없다. 다만 평소에는 수많은 경쟁, 수많은 유혹, 수많은 흥분을 접하기 때문에 대개 선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또한 악도 드러낸다. 선악이 항상 서로 싸우고 이해가 항상 서로 다투는 것이 거의 평생 동안 계속되어 끊임이 없다. 그런데 이 경쟁, 유혹, 흥분이 제야의 백팔 번의 종소리와 함께 완전히 멎고, 만인은 허심탄회해진다. 마음이 넓고 몸이 편안하여 이해관계가 꼬이지 않고, 이로써 움직이고 생각하고 듣고 보고 말하는 것이 오로지 선이 있고 정의가 있을 뿐이다. 천하에 추호도 부정과 비리가 드러나지 않는다. 새해의 즐거움이 어찌 당연하지 않겠는가. 사람과 사회가 이미 정의로운데 어찌 자유롭지 않겠는가. 그렇다. 새해의 천지만큼 자유로운 것은 없다. 새벽닭이 한 번 새해를 알리고 일주일 동안 금전이 우리를 누르지 않고 권세가 우리를 괴롭히지 않으며 이욕이 우리를 빼앗지 않으니, 하늘을 우러러 홀로 서서 천지에 구애받지 않고 속박이나 장애가 없이 마음대로일 뿐이다. 사람과 사회가 자유를 얻었다. 새해의 즐거움이 어찌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미 자유가 있는데 평등이 없어서 되겠는가. 집집마다 문 앞에 세운 소나무는 크기가 다를 뿐, 세계는 평등하다. 주인의 새해일 뿐만 아니라, 하인도 새해인 것이다. 깃털 공을 치며 노는 하고이타 채羽子板에 먹을 칠하는 것은 하녀와 귀족의 따님을 불문한다. 연날리기는 견습공과 도련님을 불문한다. 계급은 완전히 제거되고 차별은 완전히 사라진다. 한 자리에서 서로 화목하고 즐거울 뿐이다. 한 집안에서 화평하고 즐거움이 넘쳐흐를 뿐이다. 이로써 평등을 얻었다. 새해의 즐거움이 어찌 당연하지 않겠는가.

인생의 목적은 정의로움에 있다. 자유로움에 있다. 평등함에 있다. 오로지 이 셋을 얻으면 인간은 성인이고 사회는 천당이다. 해마다 인간이 죽음에 다가가면서도 여전히 새해를 즐기는 까닭은 여기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다만 이것이 있다면 새해가 아니라도 새해처럼 즐거움을 얻을 터이다. 하지만 아아, 1년 360여 일 중 이 일주일을 제외하면 정의가 없고 자유가 없고 평등이 없는 천지가 인생에 끊임이 없는 것은 본래 누구의 허물인가.


(〈新年何故に樂しき乎〉, 「萬朝報」 1900년(메이지 33년) 1월 5일)



고등교육의 권리


최근에 우리 문명의 진보와 국가의 부강을 위해 통탄해 마지않는 큰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나날이 우리를 압박하여 해석이 시급하다. 무엇인가. 바로 국민이 고등교육을 거절당하는 것이 그것이다.

고등학교 입학을 희망하는 자는 해마다 늘어난다. 그런데 입학 허가를 얻는 자는 항상 수험자의 10분의 1에 못 미치고 10분의 9는 거절당한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면, 단지 고등학교 수가 적고 설비가 부족하여 다수를 수용할 수 없다고 하면서 시험 성적이 가장 높은 학생을 뽑는다. 그러므로 평소에 아무리 학력이 우수하고 품행이 방정하고 자금에 여유가 있어도, 시험 때 잘못해서 1등을 하지 못하면 낙제의 불명예를 얻을 수밖에 없다. 가령 100명 가운데 10명의 합격자를 낸다고 하면, 10등과 불과 1점이 모자라도 불행한 운명에 항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진정으로 불행한 운명이며, 전혀 그 사람의 죄가 아닌데도 앞날이 완전히 끊긴다.

우리들은 근면하고 학력이 우수한 한 학생이 시험을 여러 차례 보고도 합격하지 못하여 낙담한 나머지 사기를 완전히 잃고 결국 타락한 것을 보았다. 우리들은 또한 한 학생이 죄를 자기의 학력 부족에 돌리며 과도하게 공부를 한 결과, 심신이 쇠약해서 폐병에 걸린 것을 보았다. 이것이 단지 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입학 거절이 장래 우리 국민의 발달에 영향을 미칠 폐단은 대단히 걱정스러운 것이 아닐까.

국가는 공공의 복리를 위하고 문명의 진보를 위하여 반드시 국민을 교육시킬 책무가 있다. 가령 국민이 전혀 교육을 받을 뜻이 없어도 백방으로 장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물론이다. 아동의 소학교 입학을 강제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가 아닌가. 이미 소학 교육을 강제하고 일반에게 중학을 개방하여 충분히 고등교육을 받을 자격을 양성해놓고 그 후에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매우 잔혹할 뿐만 아니라, 대단히 몰지각하다. 생각해보라. 국가가 굳이 장려하지 않는데도 고등교육을 받으려고 경쟁하는 사람이 나날이 많아지는 것은 국가의 경사다. 그런데도 거절하고 그것을 가로막는 것을 보면 통탄스럽고 한심할 뿐이다.

아니, 우리 국민은 상당한 학력을 가지고 상당한 학자금이 있는 이상, 균등하게 고등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지금 우리 청년의 10분의 9는 교육 사회가 무지하고 교육 행정 당국이 무능한 탓에 중대하고 신성한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 국가는 그로 인해 해마다 10분의 9의 학자를 잃고 있지 않은가.

우리들은 지금 대학들이 항상 우리나라의 학술을 독점하여 고등 지식의 보급을 막는 경향이 있음을 개탄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나마 괜찮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들어갈 훌륭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항상 불운함에 울 수밖에 없는 것이 참으로 견디지 힘들다. 입학을 허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거절하고 떨쳐내기 위해서 시험을 본다는 사실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다. 이것이 어찌 세상을 다스리는 군자가 숙고해야 하는 바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크게 사립 고등학교를 장려해야만 한다. 사립학교에 관립과 동일한 자격을 부여하여 오로지 관립으로만 향하는 일념을 바꾸어야만 한다. 그렇다. 대체적인 방침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상세한 것은 더 논할 기회가 필요하다.


(〈高等敎育の拒絶〉, 「萬朝報」 1901년(메이지 34년) 9월 6일)



연애문학


어떤 미인이 있다. 부호의 아내다. 그녀는 남편의 눈을 피해 화가 모 씨를 연모했다. 하지만 화가는 자신의 여동생의 오랜 약혼자다. 그리고 그녀의 의붓딸도 이 화가를 연모하여 모녀와 자매가 한 남자를 두고 은밀히 서로 다투었다. 그리하여 한편에서는 그 집에 기식하던 일개 서생이 처음에 하녀와 통하고 나아가 미인 모녀를 연모하여 마침내 주인의 아내를 범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상은 최근에 저명한 작가 모 씨가 쓴 소설의 줄거리다.

독자들이여. 이와 같은 문학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과연 어떠할까. 특히 지금 청소년의 심성에 끼치는 영향은 과연 어떠할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몸이 오싹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인륜을 혼란에 빠뜨리는 추하고 외설적인 이야기다. 이것을 노골적으로 서술하면 누가 눈살을 찌푸리고 구토하지 않겠는가. 누가 이러한 이야기를 가정에 들여놓고 자녀들에게 들려주고자 하겠는가. 하지만 인륜을 저버리고 추잡한 내용을 담은 소설이 공공연히 신문 잡지에 광고되고 비평되어, 세상의 청소년들이 앞 다투어 환영하고 있는 것은 어째서인가. 다름 아니다. 인륜을 저버린 추잡한 사건조차 작가의 교묘한 표현으로 묘사된다. 여전히 독자에게 어느 정도 쾌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빈축과 구토로 이것을 보는 것도 가능하다. 쾌감을 느끼며 이것을 읽는 해악은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는 단지 모 작가를 공격하기 위하여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연애문학의 폐해가 심각한 것을 개탄하기 때문이다. 보라. 간다神田나 혼고本郷의 잡지 가게에 가보라. 거기에 배열되어 있는 서적의 태반은 연애, 부인, 정화情話 등의 글자가 붙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그 내용은 고금의 정화情話다. 연애의 시가다. 그리하여 이것을 해석하고 설명하고 읊는데, 심한 경우에는 이것을 장려하는 필법을 사용하는 자도 있다. 그리고 이것을 구독하는 것은 대개는 미혼 청소년들이다. 아직 심하게 세상의 풍파를 만난 적이 없이 공상에 공상을 꿈꾸고 물들기 쉬운 것이 마치 흰 실과 같은 청소년들을 꿀과 같이 달콤한 색정으로 유혹하여 신성한 사랑이라 일컫고 고결한 사랑이라 부추긴다. 그리고 교묘하게 우주, 자연, 인생 등 고상한 문제를 끌어들여 연애라는 두 글자와 섞어서 권하는데, 이것으로 말을 만드는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없음을 안다면, 청소년의 성정이 나날이 타락하여 문틈으로 작약을 넣어두는 것이 크게 유행하는 것을 굳이 수상하게 여길 것도 없다.

우리들은 문학이 당장에 권선징악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소설과 시가를 당장에 윤리 교육의 용도로 제공하자고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문학과 미술을 업으로 삼는 사람의 이상은 반드시 선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고 미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며 진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로지 독자의 쾌감을 자극하는 것을 능사로 할 뿐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옛날에 게사쿠 작가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라쿠고가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강석사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미술가나 문학가다운 것이겠는가. 하물며 그들이 짓고 읊는 것이 날로 많은 청소년을 타락시키고 부패하게 만드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 아닌가. 남의 자식을 해친 죄악은 도저히 면할 수 없다.

전문 미술가나 문학가뿐만 아니라 신성한 종교계에 있으면서 심한 경우에는 공공연히 여성을 조종하는 방법을 잡지에 게재하거나 생식기의 작용을 여학교 강당에서 강연하는 자가 있다는 것은 언어도단의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최근 문예계 취향이 여기에 이르니 깊이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들은 함부로 당국 관리 무리에게 언론 출판 단속을 엄중히 할 것을 촉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무식한 그들은 도저히 옥석을 가리지 못하여 종래에 항상 문예의 진보를 저해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들은 세상의 정의를 품고 부패와 타락을 개탄하는 인사가 추하고 외설적인 문학에 맹렬히 사회적 제재를 가할 필요를 느낀다.


(〈戀愛文學の害毒〉, 「萬朝報」 1901년(메이지 34년) 7월 7일)



자살론


일본에서 가장 슬퍼해야 할 일은 자살자가 많다는 것이다. 살해당하는 사람은 매년 1천 명 남짓이지만, 자살자는 해마다 7천 명 이상으로 자꾸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1898년에는 거의 8,700명에 달했다.

일본에서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자살이 명예를 의미했던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자살은 궁핍하거나 회한에 찬 나머지 발생하는 것뿐이어서, 결국 의지가 박약함을 나타낸다. 원래 자살하는 사람 가운데 결코 의지가 강한 자는 없다. 자살자가 많은 나라는 결코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없다. 자살자가 1년에 9천 명에 가깝다는 것은 국가의 앞날이 우려할 만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살자가 많은 것은 정신적으로 국민이 약하다는 것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국민이 피폐해 있음을 보여준다. 이 현상은 정치로도 군비로도 의회로도 치료할 수 없다. 도덕 교육을 강화하고 상공업이 번성하는 데 달린 문제다.

목을 매서 죽는 자살자가 가장 많다는 것이 약간 흥미롭다. 자살자 가운데 과반수는 교살이다. 그 다음이 투신자살, 그 다음이 칼이고, 음독자살이나 총 같은 것은 매우 적다. 아마도 교살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투신자살도 별로 필요가 없는 방법이지만, 동절기에는 별로 많지 않아 수치가 낮다. 이제 죽으려는 몸이라도 추운 것은 싫은 것 같다. 극약은 의학생이나 직공의 동반 자살 정도에 한정된다. 그래도 해마다 100명 내외는 있는 것 같다.

자살은 확실히 일종의 병적 작용으로, 자살자를 많이 내는 국민은 결코 건강한 국민이라고 할 수 없다. 예전에는 무사가 의로움을 위해 자살한다고 해서 대단한 명예처럼 생각했지만, 이것은 완전히 불완전한 교육의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저지른 불의나 죄악이 자살로 소멸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착각이라도 그렇게 믿으면 그나마 낫지만, 대부분은 단지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고 번뇌한 나머지 발광하거나 발광하지 않더라도 그 고통을 잊기 위하여 자살하므로 어쨌든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인간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병적 작용이 존재하고 별다른 이유가 없어도 죽고 싶어서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자살을 시도해도 남에게 저지를 당해 살아 있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죽음의 신에게 홀린 것이리라. 대체로 병적 작용만큼 이상한 것은 없기 때문에 죽음의 신 이외에 절도병이라는 것도 있다. 일종의 호기심curiosity으로 타인의 물건을 훔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다고 한다. 루소가 소년 시절에 별로 자기한테 필요하지 않은데도 절도를 한 것이 『고백록』에 쓰여 있다. 이것도 확실히 병적 작용임에 틀림없다. 또한 연회에 가서 잔이나 술병이나 기타 다양한 것을 소매나 품에 숨겨 가지고 나오는 사람이 있다. 이것도 일종의 호기심이 끓어올라 거의 병이 된 경우다.

며칠 전 오쿠마 시게노부 씨가 어느 신문기자에게 이토 히로부미 씨의 방탕함도 병 탓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우리들이 들은 바로도 확실히 그렇다. 이토 씨가 닥치는 대로 비행을 저지르는 것은 이제 생활의 필요조건이 되었다. 술과 여자를 끊는다면 후작은 한낱 늙어빠진 늙은이가 되고 만다고 어떤 유명한 의사가 말했다고 한다.

자살이 심리적으로 생리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결과며, 국가를 위해서 우려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은 단언할 수 있지만, 자살이 도덕적 죄악인가에 대해서는 연구할 만한 문제다.

자살이 부도덕하다는 것은 문명인 행세하는 선생이 흔히 주장하는 것이지만, 이 문제는 서구 국가들에서도 아직 논쟁 중이고 결정된 것은 없다. 『효경』에는 “내 몸과 피부와 머리털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헐어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라고 쓰여 있지만, 이것은 아무리 특별한 이유가 있어도 자살은 불효라는 의미는 아니다. 공자는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몸을 희생하여 인仁을 이룬다”고 하니, 인과 효는 서로 모순되지는 않을 것이다.

서양에서 자살을 부도덕하고 죄악이라고 보는 설로서 유명한 것은, 인간의 목숨은 신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생사는 오로지 신의 의사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설령 인생은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라 해도, 과연 자살이 신의 뜻과 다르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동서고금의 종교가 대개 자살을 장려하고 있다. 구약성서에도 신약성서에도 자살을 비난하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 고대에는 기독교도들의 자살이 흔한 일이었다.

본래 자살 죄악론자는 자살은 인간의 자연스러움을 거스른다, 올바른 사고를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을 즐기고 죽음을 슬퍼할 터이다, 또한 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온 이상 그 사회를 위하여 다해야 할 마땅한 의무가 있다, 이것을 다하지 않고 멋대로 자살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논한다. 그러나 반대론자는 인생은 반드시 자연에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의약의 진보는 자연을 심하게 거스르는 게 아닌가. 또 생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불건전한 것은 사회의 골칫거리니, 이들의 자살은 오히려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불치병에 걸린 자 따위는 얼른 자살하는 것이 좋다고 논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자살을 신에 대해서도 인간에 대해서도 결코 부도덕한 소행이라고 인식하지는 않지만, 건전하고 우등한 인간이 할 일은 아니다. 자살자는 대단히 나약하거나 대단히 바보거나 미치광이다.

사회는 경쟁에 의해 진보한다. 우승열패의 자연도태가 이루어지므로 진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쟁장 안에 설 수 없는 불구자는 빨리 자살해버리는 것이 사회 전체를 위하는 것이다.

이런 불구자 중에는 단지 세습된 부와 위계로 보호받으며 경쟁장 밖에서 안일을 탐하는 자가 많다. 이러한 자가 오히려 신과 사회에 대한 죄인이다. 적어도 나체로 밀어내서 독립자활할 수 없는 자는 죽는 편이 낫다.

일본에 자살자가 많은 것은 불건전한 인간이 많은 증거로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자를 굳이 살려 두어도 소용이 없다. 이제부터 해마다 5만, 6만 명씩 자살자가 생기고, 우등하고 건전한 인간만 남는다면, 일본도 크게 부강해질 것이다.


(〈自殺論〉, 「千代田每夕」 1900년(메이지 33년) 10월?)



불완전한 연회


요즘 세상에 다수가 참석하는 연회가 품위와 질서를 갖추지 못하고 어수선하고 살풍경하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송별회든 친목회든 피로연이든 축하연이든, 기타 어떠한 이름으로 부르든, 이것은 단지 이름뿐이고 내실은 거의 망각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들은 각자 마시고 취할 뿐이고 멋대로 노래하고 어지러이 춤추고 농담을 주고받을 뿐, 다른 것을 모른다. 그러므로 마시고 취하고 멋대로 노래하고 어지러이 춤추고 농담을 주고받을 수 없는 사람은 연회에 참석할 자격이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예를 들면 송별회를 열어볼까. 만약 중요한 주빈인데 침묵하는 사람이라면 당장에 배제되어 돌아보는 사람도 없다. 또는 술잔치가 무르익어 많은 사람들을 초대한 주인이 먼저 취해버리면, 손님은 할 일이 없어 무료해지는 경우가 많다. 심한 경우에는 친목회 석상에서 옆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한마디도 걸지 않고 오로지 유녀遊女들과 희희덕거리고 방약무인하면서 은근히 부녀자의 환심을 샀다고 자랑하는 자가 있다. 유녀 패거리들은 모두 서로 아는 자 앞에 몰려가서 다른 사람을 대단히 쓸쓸하게 만들기를 밥 먹듯이 한다. 이와 같이 하여 대개의 연회는 모두 매우 난폭하고 난잡한 추태를 보이니, 열등한 네다섯 명을 제외하면 모두 불평과 불쾌함으로 끝난다. 아아, 이것이 연회의 목적인가.

마시고 또 취하고자 한다면 혼자서 마시고 취해야 한다. 어지러이 춤추고 멋대로 노래하고자 한다면 혼자서 어지러이 춤추고 멋대로 노래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애초부터 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장소와 시간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송별이나 친목 등 특수한 목적이 있는 교제 위주의 연회에서는 목적에 어긋나지 않을 만큼 체면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품위와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교제상 예의와 유쾌함이 서로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일단 잔만 잡으면 일장의 연설조차도 농담 속에 묻어버리는 것은 신사가 가장 부끄러워해야할 일이다.

이상과 같은 점에서 우리 일본 요리점에서 열리는 연회는 우리나라의 교제 사회가 하등한 것임을 드러내는 가장 치욕스러운 것이다. 이 악습을 고치고자 한다면, 우선 연회 방법, 음식의 양, 시간제한, 급사들의 안배와 알선을 개량하여 모든 것에서 일정한 규율, 의식이 있게 해야 한다. 이것들이 품위와 질서를 지키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양 요리점에서 열리는 연회는 어느 정도 이 이상에 가까운 것을 느낀다. 우리들은 굳이 음식이 일식인지 중식인지 양식인지를 묻지 않지만, 방법에 대해서는 모두 서양 요리점과 같은 것을 희망함과 동시에 여기에 참석하는 신사들이 스스로 충분히 근신하여 행동할 것을 권고한다.


(〈宴會の不完全〉, 「萬朝報」 1900년(메이지 33년) 1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