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바쿠닌의 혁명적 사상
Subtitle: 아나키스트 사상과 운동의 창시자 중 한 명, 바쿠닌의 사상에 대한 개요

      

      

      

분명하게도 바쿠닌은 19세기의 중요한 아나키스트 사상가이자 활동가다.

바쿠닌은 그의 친구 피에르-조지프 프루동의 연방주의적이고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 사상과 유럽 노동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이 영향 아래애서 바쿠닌은 아나키즘을 현대적 형태로 다듬었다. 그의 혁명적이고 계급투쟁에 기초한 아나키즘은 1인터내셔널 당시 아나키즘의 주된 형태가 되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국가사회주의와 투쟁했고, 아나키즘적 코뮌주의와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의 근간을 놓았다. 마르크시즘에 대한 그의 예견은 사실로 확정되었고, 그의 자본주의, 국가, 종교에 대한 비판은 등장 당시와 마찬가지로 현대에도 유효하다. 러시아와 스페인 혁명은 그의 혁명에 대한 사상의 힘을 입증했다.

하지만 바쿠닌의 사상은 아나키스트 운동 바깥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바쿠닌을 혐오하고, 자유주의자들은 바쿠닌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보인다. 그의 사상에 대한 이러한 왜곡은 많은 급진주의자들이 바쿠닌을 독해하고 그 이론의 힘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왜 죽은 러시아 사람 한명이 1860년대와 1870년대에 하려 했던 말에 관심을 가지는가?

바쿠닌의 혁명적 사상은 유물론에 근거한다. 그에게 “사실은 관념에 우선”하며, 관념은 “존재의 물적 조건에 뿌리내린 꽃일 뿐”이었다. 이러한 관점에 근거하여 그는 개인의 자유와 그를 위한 평등한 개인 간의 협동으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사회의 상을 건설했다. 그는 다른 관념론자들의 추상적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거부한다. 그는 참된 자유는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평등 위에만 세워질 수 있다고 보았다. “어떠한 인간도, 그 주변 인간들의 해방을 위해 살아가지 않으면서 스스로 해방될 수 없다. 나의 자유는 모두의 자유다. 나의 사상적, 물질적 자유는 나의 자유와 권리가 나와 동등한 다른 이들의 자유와 권리 위에 공고할 때에만 성립한다.”

바쿠닌에게 “인간은 독자적으로 그가 자유롭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자유는 독자성이 아니라 상호교류의 산물이다. 자유는 개별성이 아니라 연결의 산물이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추상적 개인을 숭상할 때 그것은 “자유의지를 보여주며, 모든 자유의 잔해 위에 권위가 세워진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모든 발전은 “그 시작점을 부인하는 것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실질적 유물론의 행동에 있어 관념론자들을 발견하고, 유물론자들이 가장 존귀한 관념적 열망과 사상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날 “자유지상주의” 우파가 개인의 자유를 옹호할 때, 이들이 최대 이익을 위한 “경영권”을 옹호하면서도 과세에는 반대하지 않는 것을 보라. 추상적 개인주의는 자유 위에 권위가 서는 것을 정당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나키즘은 “자유의지를 부정함으로써 자유의 확립으로 귀결한다.”

이는 아나키즘이 “권위의 원칙을 거부한다”는 것을 뜻한다. 엥겔스는 바쿠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개념은 단순하다. 바쿠닌에게 “권위의 원칙”은 “대중이 언제나 스스로를 통치할 수 없고, 현명하고 정의로운 자비로운 주인에게 복종해야 하며, 어떻게든 위로부터 명령받아야 한다는 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정치적인 관념”이다. 이 원칙 대신에 바쿠닌은 이후 “자주경영”이라 불리는 것을 옹호한다. 이러한 조직에서 “체제의 질서와 진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집단적 작업과 행동”을 위한 “자발적이고 사려 깊은 질서”가 자리 잡을 것이다. 바쿠닌은 “이러한 체계에서 권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권력은 공동체 속으로 해소될 것이고, 모든 이의 자유의 참된 표현이, 모든 이의 의지에 대한 신실하고 성실한 실현이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참된 질서이자, 자유의 조직에 필요한 질서”라고 강조한다.

바쿠닌은 자유가 연결의 산물이지 독자성의 산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집단이 스스로를 조직하는 방식이, 그 집단이 권위주의적인지 자유의지주의적인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바쿠닌에게 “권위의 원칙”은 조직이나 합의가 아닌 체제를 의미한다. 바쿠닌은 “이것이 내가 모든 권위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하는가?”라고 묻고는, 명확하게 “아니다. 나는 이러한 발상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바쿠닌은 권위자(전문가)가 되는 것과 권위를 누리는 것의 차이를 인지한다. 바쿠닌은 아나키스트들이 “자연스러운 권위를 인정하고, 사실이 우리 위에 있음을 인정하여야 하지만, 그러할 권리는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연스럽고 이성적이며, 우리가 존중하는 위대하고 전능한 권위는 평등과 연대와 상호 존중의 원칙 위에 세워진 집체적이고 공공적인 정신뿐”이라고 말한다.

바쿠닌은 자유를 사랑하고 체제를 적대했기에 국가, 자본주의, 종교를 거부한다. 그의 저작 『신과 국가』에서 바쿠닌은 무정부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노예에 불과하다. 만약 인간이 자유로워질 수 있고 자유로워야 한다면, 신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신이라는 관념은 인간의 이성과 정의의 퇴장을 함축한다. 신은 이론적이며 동시에 실천적으로 인간 자유의 가장 끔찍한 격하이자 인간의 예속이다.” 그는 명시적으로,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신을 철폐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바쿠닌은 신의 권위를 반대하는 것과 동시에 더 구체적인 것 역시 반대한다. 그는 국가가 계급적 지배의 기구라고 주장한다. 국가는 “지배계급이 대중에 대해 행사하는 조직된 권위, 지배, 권력”이며, “실물적 불평등을 상정하는 힘, 권위, 지배를 나타낸다.” 권력의 불평등은 계급사회의 유지에 필수적이며, 그렇기에 국가는 체제적이고 중앙집중적인 구조로 진화한다. “모든 국가권력, 모든 통치는 본성적으로 그 인민 외부에, 그리고 그 위에 위치한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인민을 조직에 예속시킴과 동시에 인민의 진정한 필요와 열망에 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바쿠닌에게 진정한 인민의 민주주의 국가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모든 국가는 “인민이… 그들을 대변한다기보다는 통치하는 소수에게… 복종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바쿠닌의 자본주의 비판은 프루동의 그것에 근거한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노동자는 주어진 시간에 대해 그 인간성과 자유를 판매”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문서로만 제한하고, 오직 일을 그만둘 권리만을 남겨둔다. 근로계약이라는 것은 자발적이고 이행기적인 노예제를 구성한다.” 자본가에게 사유재산이라 함은 “국가가 보장한 힘이자 권리이며, 이를 통해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는 것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바쿠닌에게 자유의지주의는, 그 논리를 일관적으로 유지할 경우, 사회주의로 귀결할 수밖에 없다. “오직 단결한 노동, 즉 호혜와 협동의 원칙 위에 조직된 노동만이 문명사회를 유지하는 데 합당한 것이다.”

바쿠닌의 억압에 대한 반대는, 단지 경제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바쿠닌은 성차별에도 반대했으며, 여성의 자유와 평등을 지지했다. 그의 반제국주의 역시 유명하다. “퇴행적” 인민에 대한 제국주의를 지지한 마르크스나 엥겔스와는 달리, 바쿠닌에게 “모든 인민은, 스스로가 될 권리가 있다.”

바쿠닌에게 현존 체계에 대한 저항은 소극적인 것이 아니다. 그의 눈에 자본주의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 뿐이다. 술집에 가거나, 교회에 가거나, 사회혁명을 일으키거나. 술집에 가면 “몸이 취하고”, 교회에 가면 “정신이 취한다.” 사회혁명만이 유일하게 참된 희망이며 이것이 그가 제1차 인터내셔널에 참여한 이유이자 오늘의 조건을 개선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수단으로써 집단적, 조직적 계급투쟁을 이야기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도시 프롤레타리아트를 혁명적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조직하고, 이를 통하여 그들과 농민을 하나의 예비적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나키즘적 조합주의를 예견했다. 그는 아나키스트들이 “국가의 군경을 부술 수 있을만한 인민의 세력을 건설할 수 있는”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강조했다. “프롤레타리아트를 조직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의 사상에서 파업은 중요한 역할을 가진다. 바쿠닌에게 파업은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지의 사회적 전쟁의 시작점”이며, 대중들에게 “부르주아지와 스스로의 이해관계가 서로 본질적으로 대립한다는 감정을 일깨운다.” 또한 파업은 “연대라는 사실”을 확립하기도 한다. 파업은 “부르주아지와 국가의 권력을 무너트리고 새로운 세계의 토양을 놓을 수 있는 노동자의 군대를 건설하고, 조직하고, 구성”한다. 바쿠닌은 총파업을 지지했다. 총파업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하고 있는 해방적 사상과 함께 한다면, 사회가 그 구태를 벗을 수밖에 없게끔 하는 대변혁으로 귀결할 수밖에 없다.”

바쿠닌은 1차 인터내셔널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다투었다. 바쿠닌은 여러 이유로 마르크스를 반대했다. 그는 급진주의자들이 부르주아 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했다. “노동자들이 노동자 대표단을 입법의회에 보낼 때, 노동자 대표단은 부르주아적 환경에 이식되어 노동자를 배신하고 국가기구가, 부르주아가 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사회민주주의가 개혁주의, 기회주의로 전락한 것을 보라. 이것이 바로 바쿠닌의 걱정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바쿠닌은 정치적 행동 대신에 “도시와 촌락 노동대중의 사회적이고(따라서 반정치적인) 조직과 힘”을 주장했다. 이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집단적으로 인터내셔널에 들어와 공장위원회, 수공업위원회, 농업위원회 등을 조직하고, 지역적 연방을 통해 단결”하여 “스스로의 해방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아나키즘은 “일반적인 정치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부르주아 계급과의 투쟁이 당위인 이상, 정치에의 참여 역시 당위가 된다. 아나키즘은 오직 부르주아의 지배를 확립하는 부르주아 정치만을 거부한다.”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해 바쿠닌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우선, 이 단어를 직설적으로 받아들이면, 이는 소수에 의한 독재를 의미한다. 마르크스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영국을 제외한 모든 유럽 국가에서 농민과 수공업자들이 노동대중의 다수를 차지했다. 이 상황에서 마르크스의 “혁명”에 대한 상은 다수의 노동인민을 배제한다. 바쿠닌은 이것이 “도시 산업노동자들이 수백만의 농촌 프롤레타리아트를 배제하고, 결과적으로 소위 ”인민공화국“의 신민으로 만드는 것이 새로운 귀족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바쿠닌은 새로운 국가를 통치하는 것이 전체 프롤레타리아트가 될 수 있을지 의심했다. 바쿠닌은 마르크시스트들이 말하는바 “인민의 정부는 인민에 의해 선출된 소수 인민에 의한 정부를 의미한다. 소위 인민대표단은, 보편선거에 기초하여 선출된 국가의 지도자들은 소수에 의한 지배가 보장된 전제정이라는 것을 숨기는 기만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레닌의 체제가 이를 입증했다. 소비에트 러시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독재가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바쿠닌이 “노동자 국가”에 반대했다는 것은 혁명을 조직하거나 방어하는 것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바쿠닌은 국가를 분쇄하고 자본주의를 철폐할 필요성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바쿠닌에게 아나키스트적인 국가의 철폐는 마르크스가 바쿠닌에 대해 말한 바 노동대중이 “무기를 내려놓는 것”이 아니었다. 바쿠닌은 “혁명을 방어하기 위해, 인민대중은 자발적으로 공동체적 자경단을 구성할 것”이라고 명확히 바라보았다. 이것은 “공동체의 방어를 위한 연방”이 될 것이었다. 각 코뮌들은 “반동에 맞서 승리하기에 충분한 혁명적 세력을 조직할 것”이고, “자기 방어의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혁명의 확산과 조직이라는 사실이 혁명의 승리를 가져올 것”이었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바쿠닌의 반대는 권력의 문제에 근거하고 있었다. 노동계급의 해방이 참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는 파괴되어야 했다. 만약 “전체 프롤레타리아트가 정부를 구성한다면, 정부도, 국가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국가가 존속한다면, 여전히 지배되고 예속된 이들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아나키스트들은 “제헌의회건, 임시정부건, 소위 혁명적 독재건, 심지어 이행기적 과정의 일부로써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 아나키스트들은 혁명이 대중의 손에 있을 때에만 신실하고, 진실하며, 실질적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만약 혁명이 소수의 지도자의 손에 떨어지면, 혁명은 그 순간 반동이 된다고 믿는다.”

아나키스트적 혁명은 “혁명적” 중앙정부가 대중을 위로부터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코뮌과 노동자 평의회의 연방에 기초해야 한다. 바쿠닌은 집단적 계급투쟁의 과정은 그 자체로 자유로운 사회의 기반이 된다고 보았다. “모든 노동인민의 단체들의 연방적 동맹이 코뮌을 구성할 것”이며, “미래의 사회 조직은 자유 연합이나 노동자 연방에 의해 상향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는 그들 스스로의 조합으로부터 시작하여, 코뮌이 되고, 지역이 되고, 최종적으로 전 세계적 연방을 구성할 것”이었다. 상향식 위원회는 “(골간조직의) 총의로부터 확립되어, 언제라도 그 위임이 철회될 수 있는 대표단”으로 구성될 것이다.

혁명이 만들어내는 기본적인 구조는 투쟁 속에서 만들어져 억압과 착취에 대항하는 노동대중의 자체적 전투조직에 기초해야 한다. “모든 곳에서의 혁명은 인민에 의해 만들어져야 하고, 그 최종적 통제권은 노동에 기초한 인민의 자유연방에게 주어져야 한다. 이 자유연방은 혁명적 대의제에 의한 상향식 조직이어야 한다.” 헉명적 조직은 대중조직 내에서 “각개 구성원의 자연스럽고, 개인적인 영향력을 통해서만 인민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해야 할 뿐, 어떠한 권력도 쥐어서는 안 된다.”

물론 바쿠닌의 혁명에 대한 관점은 국가를 향하고 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바쿠닌의 혁명은 자본주의 역시 겨냥했다. 자유로운 사회는 “토지와 생산수단, 여타의 자본이 전체 사회의 집단적 자산이 되고, 노동자에 의해서만, 농업 · 산업 조직에 의해서만 활용되는” 것에 기초해야 한다. 그렇기에 혁명의 첫 번째 작업은 노동자들이 “모든 노동의 수단과 자본과 건물을 쓸어내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정치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이지 않다면, 어떠한 혁명도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회 혁명은 국가와 자본주의를 동시에 철폐하는 것이어야 한다.

새롭고 또 자유로운 사회는 “아래로부터, 연합으로부터, 코뮌으로 시작되는 진정한 인민의 조직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가장 작은 분자로부터 조직을 건설해야 하며, 이로써 위로 쌓아올려야 한다. 연방은 사회주의의 정치기구가, 대중생활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조직이 되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임노예제는 ”토지, 생산수단, 상속재산이 노동자 스스로에 의해, 산업 · 농업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조직한 연방에 의해 소유되고 운영되는 사회에서만 번창하고 최대 잠재력을 달성할“ 협동적 생산으로 대체될 것이다.

이를 통해 “모든 인류는 인간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물질적이고 도덕적인 수단을 가지게 될 것이다.” 바쿠닌의 아나키즘은 사회를 변혁하고 모든 권위주의적 사회관계를 철폐하는 것이다. 국가와 자본주의의 정신파괴적 본성보다 삶을 앞세우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정신적 · 도덕적 · 물질적 측면 모두에서 삶과 그 즐거움에 대한 긍정적 권리를 옹호한다. 아나키스트들은 삶을 사랑하고, 그것을 최대한 즐기고자 한다.”

자본주의를 대체할 이념으로써 바쿠닌의 이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사회주의 달성을 위해 그가 제시한 방법론 역시 유효하다. 파리코뮌은, 러시아 혁명에서의 노동자 소비에트는, 스페인 내전에서의 집산주의는 그의 이념을 상당부분 확인해준 사례였다. 마르크시즘에 대한 바쿠닌의 비판 역시 옳다고 입증되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개혁주의자가 되었고, 볼셰비키는 권위주의자가 되었다. 이는 바쿠닌의 이념이 오늘날에도 고려할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바쿠닌의 이념을 생각 없이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근거하여 시대에 맞는 이념을 건설하고 발전시켜야 하겠다.

이 문건에서 논의하지 못한 바쿠닌의 여러 측면들(긍정적, 부정적 측면 모두)이 있다. 유대인과 게르만인들에 대한 그의 편견이나 비밀 결사에 대한 열정은 부정적인 측면의 예시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을 모두 고려한다 해도, 바쿠닌은 중요한 아나키스트 사상가로 고려되어야 한다. 이는 아나키스트들이 “바쿠닌주의자”가 아니기에 중요한 아나키스트 사상가의 개인적 결함과 실수를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들은 바쿠닌의 이념의 상당한 부분이 오류임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것이 바쿠닌이 아나키스트들의 이론과 실천에 기여한 것의 가치를 저하시키지는 못한다.

아나키스트 연방의 소책자 『바쿠닌 입문』은 바쿠닌의 이념에 대한 훌륭하고, 싸며, 짧은 소개를 제시한다. 바쿠닌의 삶과 이념에 대해 더 많은 내용을 찾는 이들은 브라이언 모리스의 『바쿠닌 : 자유의 철학』을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바쿠닌의 사상에 대한 최고의(그리고 가장 비싼) 문서는 리처드 B. 솔트만의 『미하일 바쿠닌의 사회적, 정치적 사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바쿠닌의 저서를 먼저 읽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프리덤 프레스의 『마르크스주의, 자유와 국가』는 훌륭하고, 짧은 모음집이다. 『아나키즘에 대한 바쿠닌의 입장』은 그의 저작을 포괄적으로 모아두고 있다. 바쿠닌의 고전 『신과 국가』는 여전히 추천할 만 하며, 그의 유일한 저서 『국가주의와 아나키』 역시 읽을 가치가 있다. 아나키스트 연대기 『신도 주인도 없다』의 1권은 바쿠닌의 대표적 저작들을 포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