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하 (동의대학교 교양교육원)

신채호의 「용과 용의 대격전」에 나타난 불교 무정부주의와 점복 신앙의 정치적 서사 양상에 대한 연구

2013년 12월

      국문초록

      1. 서론

      2. 무아 주체의 공(空)

      3. 후천 시대의 폭력적 해탈

      4. 주문과 신점의 종말론

      5.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신채호는 중국 망명 이후 근대 식민주의의 폭력에 현실적으로 대응할 방식을 고민하던 중 무정부주의를 수용했다. 그는 이론과 실천을 주체적으로 도모했다. 그는 무정부주의를 주체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쳐 이론과 실천의 구조를 확보했다. 그가 중국 망명 시기에 불교 서적을 탐독하고 승려 생활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무정부주의에 대한 시각에는 불교적 사유가 반영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아울러 그는 지식인과 영웅 중심적 세계관을 벗어나 기층 민중이 혁명의 주체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민중적 세계관을 수용했다. 그는 근대 사회의 억압을 파괴하기 위해 민중의 자각한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조건을 서사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 「龍과 龍의 大激戰」이다.

「龍과 龍의 大激戰」은 불교 무정부주의와 점복 신앙의 혁명적 조건을 서사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민중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공적 연대를 형성하면서 혁명 주체로 부각한다. 즉, 민중은 무아 주체로서 상호 연대의 가능성을 도모하기 때문에 연대 가능성을 확대할 수 있다. 민중의 무아 주체에 대한 자각에는 공(空)에 대한 사유가 반영되어 있다. 미리와 드래곤은 무아 주체의 공(空)에 대한 자각 여부에 대한 상징이다. 민중이 선천 시대의 폭력을 무자각한 상황에서는 미리가 등장한다면, 폭력적 해탈을 거쳐 후천 시대의 유토피아를 마련하려는 의식이 갖춰진다면 드래곤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미리와 드래곤은 민중이 현실 세계의 모순을 자각하는지 여부에 따라 다른 상징체계가 형성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아울러 신채호는 민중적 세계관을 재인식했다. 이른바 그는 기층 민중의 점복 신앙을 서사적으로 활용하면서 혁명 주체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민중은 후천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드래곤으로 표상되는 저주의 주문을 확산한다. 특히 「龍과 龍의 大激戰」은 신점을 통해 천국의 종말을 예언하는 장면을 서사적으로 배치해 후천 시대 의 시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龍과 龍의 大激戰」은 신채호의 후기 사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무정부주의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면서 불교와의 이념적 융합을 모색했고, 민중의 혁명적 조건을 무조건 승인하지 않으면서 민중의 점복 신앙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면서 후천 시대의 혁명적 기운을 존속하고자 했다. 「龍과 龍의 大激戰」은 불교 무정부주의와 점복 신앙을 통해 근대 사회의 억압적 토대를 파괴하고 민중적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정치적 서사의 일환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주제어 : 불교 무정부주의, 점복 신앙, 무아 주체, 공(空), 폭력적 해탈, 종말론

1. 서론

본고는 「龍과 龍의 大激戰」 [1]에 나타난 불교 무정부주의와 점복 신앙의 정치적 서사 양상을 분석하고자 한다. 「龍과 龍의 大激戰」에 대한 선행 연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龍과 龍의 大激戰」에 나타난 무정부주의에 대한 연구[2]는 신채호가 무정부주의 사상을 작품에 반영했다는 점만을 주목했기 때문에, 그가 무정부주의 사상을 주체적으로 변용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채호가 1920년대 중국 망명 이후 승려 생활을 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불교 사상과의 친화성을 검토한 시각은 미흡하다. 그가 무정부주의를 수용하기 전후에 불교 체험을 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3] , 그의 무정부주의에 대한 사유의 이면에는 불교와의 사상적 친화성이 있을 수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4] 그는 불교 경전을 탐독하고, 불교적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수용했다. [5] 그는 1920년대 무정부주의 사상과 불교적 세계관의 유사성을 융합하는 독특한 세계관을 구성하려고 했다. 예컨대, 「龍과 龍의 大激戰」에 나타난 시공간의 광대무변함과 사건의 우주적인 규모에서 가히 불경이 지닌 불교적 상상력의 현대적 재현으로 간주할 수 있고[6] , 아울러 망명 이후의 소설에 승려가 종종 등장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7]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면서, 본고에서는 「龍과 龍의 大激戰」에 나타난 무정부주의 사상의 이면에 불교적 사유가 반영되어 있다는 전제하에, 불교 무정부주의(the Buddhist anarchism)[8]적 관점에서 서사 전략을 분석하려고 한다. 특히 무아 주체(無我 主體)[9]의 공(空)적[10] 관점에서 서사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근대 사회를 포함해 일체의 억압적 권위와 권력이 작용하는 폭력적 상징체계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토대로, 선천 시대의 악연과 악업의 상징 구조를 근절하기 위해 폭력적 해탈[11]이 동원되는 맥락을 살펴보고자 한다. 불교의 해탈론은 개인이 객관 세계의 공성(空性)을 인식하고 스스로 무아의 세계를 재인식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불교의 해탈론을 토대로, 본고에서는 개인 차원의 해탈을 벗어나 개체의 해탈론을 집결한 후, 연대의 마음을 형성한다면, 인간을 억압하는 구조를 열반의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 악연과 악업에 대해 자비심을 베풀지 않고 상호 간의 관계를 근절할 방법을 실천하기 위한 과정으로 폭력이 대두하고 있다[12]는 점을 파악하고자 한다.

반면 「龍과 龍의 大激戰」에 나타난 미적 형식에 대한 선행 연구[13]는 신채호가 근대 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동력을 미적 영역에서 발견하려고 했다는 점을 해명했다. 미적 환상은 서사의 환상적 분위기에 대한 고찰을 파악하거나 혹은 알레고리와 같은 수사 기법에 대한 논의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신채호가 미의 확장을 도모하면서 근대 식민주의에 대한 윤리적 태도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미적 환상에 대한 기존 연구는 기층 민중의 후천 시대에 대한 갈망이 서사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동시에 해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1920년대 이전에는 영웅 혹은 지식인 중심의 계몽 주체가 근대 사회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1920년대 이후에는 근대 사회의 억압을 해체하기 위해 민중을 호출하려고 했다. 미적 환상은 근대 사회의 민중이 현실에서 구원받지 못한 채, 선천시대의 악연과 악업을 근절하기 위해 후천 시대를 염원하는 주문, 점복과 같은 기층 민중의 민간 신앙의 동력을 ‘정치적으로’[14] 활용하는 과정에서 생성한 것이다. 아울러 후천 시대[15]을 맞이하기 위해 민간 신앙에 속하는 점복 신앙의 서사적 양상을 고찰하고자 한다. 요컨대 본고는 2장에서 무아 주체의 공(空)적 세계를 해명하고자 한다. 특히 드래곤의 실체를 나타내는 <0>의 의미를 공(空)의 시각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3장에서 선천 시대의 악연과 악업의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선천 시대는 근대사회를 포함해 상극적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인데, 선천시대의 개체들이 마음의 연대를 자각하지 못할 경우 초래될 억압의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무아 주체의 폭력적 해탈 방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민중이 세계에 대한 반역성과 혁명성을 정초한다면 관념적으로만 객관 현실의 부조리를 인식하지 않고 선천 시대의 구조를 파괴하는 과정을 요구하는데, 이를 관철하기 위해 동원한 폭력의 문제를 분석하고자 한다. 4장에서 주문과 신점의 종말론이 어떻게 서사적으로 배치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주문과 신점의 문화가 객관 현실 의 불안을 극복하고, 미래 시간을 극복하려는 염원을 담보하고 있다는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16]

2. 무아 주체의 공(空)

미리[17]와 드래곤[18]은 인간이 주관적 심상을 객관 세계에 반영한 상징이다. 인간은 상징체계를 통해 현실의 고통에서 탈피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상징체계가 인간을 억압할 수도 있다. 특히 미리와 드래곤의 이중적 상징은무아 주체의 체제 순응과 체제 전복의 가능성을 나타낸다. 즉 미리는 무아주체를 인정하지 않고 체제 순응적 기만성을 나타내고, 드래곤은 무아 주체를 인정하고 체제 전복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무아 주체의 시각에서객관 현실을 무(無)의 관점으로 파악하고, 개체의 상호의존성과 상대성을 승인하는 공(空)의 시각을 확보하는 과정이 「龍과 龍의大激戰」의 서사적 핵심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드래곤의眞影」이란一張에는 다만多數한 「0」을 그릴 이오, 그左方에五號小字로說明을加하얏다. 그說明은左와 갓흐니― 天國이全滅되기前에는 드래곤의正體가 오직 「0」으로表現될 이다. 그러나 드래곤의 「0」은數學上의 「0」과는 달으다.

數學上의 「0」은 자리만 잇고實物은 업지만 드래곤의 「0」은一도二도三도四도乃至 十 百 千 萬 等모든數字로 될 수 잇다.

數學上의 「0」은 자리만 잇고實物은 업지만 드래곤의 「0」은 총도, 칼도, 불도, 베락도, 其他모든 「테로」가 될 수 잇다. 今日에는 드래곤이 「0」으로表現되지만明日에는 드래곤의對象의敵이 「0」으로消滅되야帝國도 「0」, 天國도 「0」, 其他모든支配勢力이 「0」될 것이다. 모든支配勢力이 「0」되는 때에는 드래곤이正體的 建設이 우리의 눈에 보일 것이다-하고 「드래곤의歷史」란題下에 이러케 썼다.[19]

드래곤은 상제의 외아들인 아소 기독을 처참하게 살해한다. 상제는 드래곤의 만행에 분노하면서 천국의 경찰대와 정탐대를 동원해 드래곤을 수배하려고 명령한다. 그러나 천국의 수사 활동에 불구하고 드래곤의 정체를 알수 없었으나, <地國民新聞>에는 드래곤의 정체를 파악할 단서와 관련된 기사가 게재된다. 「드래곤의眞影」은 드래곤의 정체를 "0"으로 표시하고, "數學上의 「0」"과는 다르다고 보도한다. 드래곤의 0[20]은 무(無)의 단계를 벗어나 생성의 조건이다. 그런데 드래곤의 기표 0은 민중이 무아 주체의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고, 적에 대항하는 폭력을 구사하고 적을 전멸하기 위한 조건이다. 드래곤의 0을 대승불교의 공(空)의 개념[21]으로 접근하면 0의 개념을파악할 수 있다. 사회적 평등이 상호 악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아주체가 사회적 불평등을 파괴하기 위해 인연을 맺는 과정을 거쳐야만 윤회의 과정을 해탈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드래곤의 정체는 소멸과 건설의 변증법을 통해 나타난다. 드래곤의 존재는 고정적이지 않고 민중의 세계 모순에 대한 자각 여부에 따라 소멸과 건설의 가치를 상호간에 수용하는과정에서 생성한다. 민중이 세계 모순을 해체하려는 의식을 수반함에 따라드래곤의 실체는 나타나지만, 민중이 체제의 모순에 침묵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보일 때에는 드래곤의 실체는 보이지 않거나 미리로 변형될 가능성이있다. 그러므로 드래곤은 세계를 무(無)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동시에 공(空) 의 시각을 확보한 민중의 주체적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드래곤은 무엇이냐? 上帝가太古人民들의迷信的 奉戴를 받아帝位에오르던第五年에虛空中에서誕生한一胎雙生의怪物이 잇섯던 바 (一)은 드래곤 곧 그것이오, 又 (一)은 곧現今 天宮의侍衛大將으로東洋總督을兼한有名한 미리니, 미리나 드래곤이漢字로는 다 「龍」이라譯한다. 그 뒤에 미리는 늘朝鮮․印度․中華 等國에서長成하여 드대여東洋의 龍이 되야釋迦․孔子等의消極的 敎育을 바더上帝의忠臣이 되야 늘服從을天職으로 알므로支配階級의走狗인宗敎家․倫理家들이 모다 미리를人生模範의神으로尊奉하여 왓으므로朝鮮의神話에나中華의儒經에나印度의佛經에 다 龍을非常히讚美하여上帝에配하였다. 그래서上帝께서 미리를拔擢하여東洋鎭守의大任을 준 것이오. 드래곤은 늘希臘․羅馬(그리스․로마) 等地에滯在하여 드디어西洋의 龍이 되어 늘叛逆者․革命者들과交流하여革命․破壞 等 惡戱를 즐겨宗敎나道德의 굴레를 밧지 안는 고로西洋史에 매양叛黨과 亂賊들을 드래곤이라別命하여 왓섯다. 근세에 와서는 드래곤이 또虛無主義에深感하여더욱激烈한革命行爲를 가지더니 마참내耶蘇 基督을慘殺할凶犯이 된 것이다― 하였다. 이新聞을 받은天國의君臣들이 비로소 미리와 드래곤의本來 兄弟임을 알고 놀래지 안는 이 업섯다. [22]

<地國民新聞>은 '드래곤의 정체'를 밝히고 '드래곤의 역사'를 보도한다. 미리와 드래곤은 민중의 미신적 기대에 기반한 상징적 괴물이다. 드래곤과미리는 <龍>의 한자에 준하는 어휘이다. 미리는 동양의 복종 정신을 고수하고 체제 유지에 맞는 상징체계로서 동양의 종교와 윤리적 무의식을 지배하는 세계이다. 반면 드래곤은 서양의 정신적 상징체계를 이루면서, 반역과 혁명의 세계를 추동하는 동력이다. 그런데 신문은 미리와 드래곤이 각각 동양과 서양에서 다른 상징체계를 성립하지만 "一胎雙生"의 형제지간이라는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미리와 드래곤은 민중이 세계 모순에 대한 인식 여부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점을 나타낸다. [23] 민중은 미리의 복종을 지양하고 드래곤의 반역 정신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부조리를자각하고 모순을 해체해야 한다. 미리의 체제에 대한 유(有)의 관점과 드래곤의 체제에 대한 무(無)의 시각은 상호간에 소통하는 과정을 거쳐 체제의모순은 영원히 존속하지 않은 채 공(空)의 상호성에 따라 확보하는 과정을거쳐 변화가능하다.[24]

「이것은 미리가 가장合當합니다. 臣이昨日에確信을 들은즉民衆들은 아직 그러게天國을排斥하지 안는데 원수놈의 드래곤이民衆의 머릿속으로 돌아단이며上帝와上帝 以下 乃至 人世의支配階級의勢力은 모다民衆의是認으로存在한 것인즉民衆이 만일徹底히否認만 하면 모든勢力이秋風의落葉이 되리라고 자꾸民衆들을 꾀와民衆이 이갓히叛起하얏다 합니다. 그래서民衆들이今日의 드래곤을前日의上帝보다 더 믿는다 합니다. 만일 드래곤을同意이면民衆들이 우리에게 박아지 하나씩을 줄 듯합니다. 미리는 드래곤의親兄인즉 미리를 보내면 아마 드래곤의同意를 엇기가 쉬울가 합니다.」[25]

천사는 천국과 지국의 소통이 단절되고, 민중이 지국을 건설할 주체성을확보하면서 천국의 억압 체제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자, 민중과 소통하기위해 미리가 출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상제는 미리가 드래곤과 동생이성이라는 점을 고려해 미리를 하옥시켰다. 천사는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은 민중의 선택과 판단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고 말한다. 민중은 시인(是認)과부인(否認)의 경계에서 객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미리는 강국 민중과식민지 민중을 이간질하고, 식민지 민중이 반역성과 혁명성을 마비하기 위한 허위적 대책을 마련한다. 그러자 상제는 자각한 민중이 자신들의 유인책을 수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무아 주체인 민중은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자각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세계의 억압을 불식할 자질을 겸비할 수있다. 즉, 민중이 객관 세계를 공(空)의 세계로 파악하면 근대의 폭력을 없앨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다.

「미리야 이놈- 上帝는 어대다 두고 너 홀로 여긔에 와잇느냐? 나는上帝를닛지 못하야 이러케 차저단이는 길이다…」 고天使가 미리를大責한다. 미리는 冷笑한다.

「天使야, 이놈- 上帝는 차저 무엇하느냐? 天宮에 잇던 때에上帝이지, 天宮이 깨어진 뒤에도上帝가 잇느냐? 上帝가 잇다면 죽은上帝이다. 죽은上帝는산 쥐새끼만도 못하다. 말하자면上帝도滅亡하여야 올치- 其實내나 네나上帝가 모다上古 民衆의一時 迷信의造作이 아이엿더냐.

民衆의造作으로서 얼마나 민중의害를 끼처왔느냐? 上帝 自身만 호강하얏을 뿐 안이라上帝의祭物․貢物이라 핑게하고民衆의 돈을挾雜한 놈이 업섯더냐? 上帝의命을奉承하얏다 하며世界皇帝로行惡한 놈이 업섯더냐?[26]

천상의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면서, 천사는 드래곤에 대적할 미리의 소재를 수소문하던 끝에 미리의 형상이 파괴된 형국을 발견한다. 미리는 민중의이중성을 언급한다. 애초에 미리와 드래곤은 존재하지 않았다. 민중이 개별자아에 묻힌다면 억압적 상징이 탄생하고, 무아 주체의 세계를 지향한다면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 민중이 세계의 모순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본인들을 억압하는 구조를 만들고 그에 집착하는 태도는 자멸에 처할 수 있다. 반면 무아 주체는 공적 태도를 자각하고, 일체의 세계를 전복할 토대를 만들 수 있다. 미리는 선천 시대의 무자각한민중과 자각한 민중의 성격에 따라 선천시대를 공(空)으로 인식하는 과정을 거쳐 역설적으로 드래곤으로 변화할 수 있다. 미리를 포함한 억압적 천국은민중이 일시에 세계의 모습을 자각하지 못한 상황의 결과이다. 무자각한 민중은 폭력적 구조를 승인하면서 상호 간에 억압적 국면을 활성화한다. 무자각한 민중은 상제의 이름으로 모든 악행을 승인하려고 했다.

3. 후천 시대의 폭력적 해탈

상제[27]와 천사[28]는 선천 시대를 상징한다. 선천 시대의 상징체계는 인간의 아집과 집착 때문에 억압적 폭력 체계를 갖춘다. 선천 시대의 악행이 인간을 배제하고 폭력적 제도를 구축하는 과정은 인간의 고유한 세계를 부정한다. 민중은 생존을 위한 상징적 도구를 생산한다. 객관 현실은 인간의 마음이 투영된 것에 불과하다.[29] 이를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변경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유지하는 순간, 민중은 억압적 상징 체제의 폭력을 견뎌야만한다. 선천 시대는 폭력적 상징 체제를 활용해 인간을 억압한다. 무아 주체는 상제의 이름으로 통용되는 야만의 문화를 종식하기 위해서 세계 모순에대한 자각 여부에 따라 억압과 탈억압의 유(有)와 무(無)가 상호 연결한다는공(空)의 세계를 지속해서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反抗한境遇에도反抗을 잘 못합니다. 그런즉植民地의民衆처럼속이기 쉬운民衆이 없습니다. 鐵道․鑛山․漁場․森林․良田․沃畓․商業․工業…모든權利와 利益을 다 빼앗으며稅納과賭租를 자꾸 더 받아 몸서리나는搾取를行하면서도 겉으로 「너희들의生存 安寧을保障하여 주노라」고 떠들면 속습니다. 革鞭․鐵椎․竹針질․단근질․電氣뜸질甚至於 口頭에 올리기도慘惡한 「×××」 「×××」 같은刑罰을行하면서도軍隊를出動하여婦女를 찢어 죽인다, 小兒를산 채로 묻는다, 全村을屠戮한다, 穀粟가리에放火한다… 하는戰慄한手段을行하면서도 한두新聞社의設立이나許可하고 「文化政治의惠澤을 받으라 」고 소리하면 속습니다. 學校를制限하여 그知識을 없도록 하면서도國語와國文을禁止하여 그愛國心을 못나도록 하면서도彼國의人民을移植하여 그本國의民衆을 살 곳이 없도록 하면서도惡刑과虐殺을行하여 그種族을滅亡토록 하면서도 부어터질同族同文의情誼를 말하면 속습니다. '建國'․'革命'․ '獨立'․'自由' 等은 그名詞까지도 잊어버리라고一切 口頭․筆頭에 올리지도 못하게 하지만 옴 올라갈自治參政權 等을 주마하면 속습니다. 보십시오, 저亡國祭를 지낸 戀愛文壇에 女學生의 단 입술을 빠는靑年들이 제世上을 자랑하지 않습니까? 故國을 빼앗기고驅逐을當하여天涯 外國에서 더부살이하는男子들이 누울 곳만 있으면第二故國의安樂을 노래하지 않습니까?- 共産黨의大潮流에獨立軍이 떠나갑니다. 乞아지政府의演劇에大統領의 자루도깨집니다. 속이기 쉬운 것은植民地의民衆이니上帝시여, 마음 놓으십시오. 世界民衆들이 다自覺한다 하여도植民地 民衆만은 아직 멀었습니다. 우리가植民地의民衆만 잡아먹더라도 몇十年동안은 아무 걱정 없을 것이올시다.」[30]

선천 시대에는 민중이 혁명성과 반역성을 자각하지 못한 상황에서 민중을 진압하는 상징 제도가 존속한다. 미리는 지상의 민중을 강국의 민중과식민지의 민중으로 구분한다. 강국의 민중은 국가를 지배계급의 국가로 오인하여 지배계급을 승인하는 과정을 애국심으로 착오한다. 지배계급은 민중에게 참정권과 경제권을 일부 이양하는 과정을 거쳐 민중의 현실에 대한 불만을 충족시켜준다. 그럼에도, 민중은 식민주의를 통해 욕망을 보충하려고한다. 그래서 강국의 민중이 식민지 민중을 착취하는 구조가 형성한다. 반면식민지 민중은 선천 시대의 억압을 요행심으로 극복 가능하다고 판단하기때문에 민중의 선천적 반항심을 분별하지 못한 채 억압받는다. 식민지 민중은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채 복종과 의무만을 중시한다. 식민지 민중은 선천 시대의 억압적 제도를 비판적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근대 제도에 편입한다. 여하튼 강국의 민중과 식민지 민중은 근대의 상극적 태도를 유지하면서상호 간에 착취와 억압을 교환하는 구조에 기재하고 있다. 특히 식민지 민중은 선천 시대를 개조할 명분을 확보하지도 못하고, 선천시대의 극악한 변용인 근대 제도인 <문화>의 야만을 이식하기에 급급하기 때문에 현실 개조의 열망을 품지 못한 채 기만적으로 이용당할 뿐이다.

「地國民衆들이耶蘇를 죽인 뒤未久에孔子․釋迦․마호메트… 等 宗敎․道德家 等을 다 때려 죽이고政治․法律․學校․敎科書 等모든支配者의權利擁護한書籍을 불 지르고敎堂․政府․官廳․公廨․銀行․社會… 等 建物을破壞하고過去의社會制度를一切 否認하고地上의萬物은民衆의公有임을宣言하였다. (중략) 支配階級이 이미滅亡하매民衆들은 이에全地球를總稱하여地國이라 하고天國과의交通斷絶을宣言하였다.」[31]

드래곤으로 상징되는 자각한 민중의 폭력[32]은 선천 시대를 상징하는 상제의 천국을 파괴하면서 지국 세계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일체의정치․법률․종교․도덕․사회제도를 민중이 타파하려는 행위는 인간의 자유를 억눌러 온 상제를 타파하겠다는 행위이고, 상제는 기성의 제도․정치․법률․도덕․ 종교 등의 의인화된 형태이다. [33] 민중은 선천 시대의 악연과 악업을 근절하기 위해서 근대의 억압 구조를 자비심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무아 주체의연대는 근대 사회를 공(空)의 영역으로 확장해 새로운 세계를 생성하기 위한 전략을 요구한다. 미리와 드래곤은 각각 폭력을 구사한다. 미리는 체제를수호하기 위해 폭력을 동원한다면, 드래곤은 대항 폭력을 구사한다. 드래곤은 혁명성을 자각한 민중의 마음 상태를 상징한다. 드래곤은 노예 사상을타파하기 위한 폭력을 구사한다. 드래곤은 선천 시대의 악연과 악업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체의 객관 세계와 주관 세계를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드래곤은 민중의 자각한 마음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드래곤의 실체는 불투명하다. 드래곤은 상제의 아들인 야소를 전멸한다.[34] 자각한 민중들과 비기독교동맹의 청년들이 야소를 극악무도하게 죽이는 행위는 서구 제국주의의 이면에 기독교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민중이 인식했기 때문이고, 민중의 자각성과 폭력성이 결부되어 기독교로 대변하는 제국주의 논리를 타파하는 모습을 보인다. [35]

식민지 민중과 강국 민중이 합세하여 선천시대의 억압적 제도를 무(無)로만들어야 하고, 파괴와 폭력의 무(無)를 통해 후천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폭력적 해탈을 추구한다. [36] 천사가 민중을 진압하려고 길을 나선 순간, 천국 통신관이 지상통신을 상제에게 알린다. 지상 통신의 내용은 민중이 야소를처단한 후, 지배자의 권리를 옹호한 모든 서적, 건물을 파괴하고, 선천 시대의 사회 제도를 부정한 후, 지상의 모든 것을 민중의 공유로 선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늘과 땅이 전도하는 상황에서 천국은 소멸하고, 지국이 생성한다.

4. 주문과 신점의 종말론

「龍과 龍의大激戰」은 민중의 심적 구조를 이중적으로 보여준다. 민중은 세계의 모순을 인간학적으로 자각한 존재이다. 반면 인민은 세계의 모순을 무자각한존재에 불과하다. 인민은 상제로 대변되는 천국의 허위성을 간파하지 못한 채 상제의 권위와 권력에 의탁하면서 일신의 안위를 위한 염원을 나타낼 뿐이다. 그러나 민중은 인민의 개별성을 넘어 천국을 상징하는 형이상학적 체계가 허구적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천국을 지국으로 변화하기 위해 심적으로 염원한다. 인민이 미리의 도래를 긍정적으로 자각하는 만큼 천국의 억압은 위력적이다.

나리신다, 나리신다, 미리(龍)님이 나리신다. 新年이 왔다고, 新年 戌辰이왔다고, 미리님이東方 亞細亞(아시아)에 나리신다.[37]

「드래곤이 왓다, 드래곤이 왓다, 인제는天國의末日이다.」[38]

민중은 미리의 출현을 기원한다. 민중은 미리가 일상적 고통을 없애 줄대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미리는 민중의 기대와 희망을 배반한다. 미리의 강림과 드래곤의 출현은 민중이 현실 세계의 모순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민중이 체제 유지와 억압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면 미리의 상징 폭력이 등장하고, 반체제적 시각을 견지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자 한다면 드래곤의 대항 폭력이 나타난다. 민중이 드래곤의 반체제적 반역성을 기억하는 과정을 거치는 순간 "天國의末日"은출현할 수 있다. 「드래곤이 왓다, 드래곤이 왓다, 인제는天國의末日이다.」 라는 천국의 종말론을 염원하는 저주의 주문은 4장( 부활할 수 업도록 참사한 야소), 5장(미리와 드래곤의 동생이성), 8장(천국의 대란, 상제의 비겁), 10장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4장에서는 상제의 외아들인 야소의 죽음을사전 예고하는 주문이다. 5장에서는 드래곤의 정체는 보이지 않은 채 상제가 야소의 죽인 주범을 찾기 위해 분노하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8장에서는천궁의 선녀를 포함한 천국의 울음에서 종말의 주문이 울려 퍼진다. 10장에서는 토우상이 되어 버린 미리와 천사의 만남에서 천국의 종말이 도래하고있다는 점을 알린다. 저주의 주문은 천국의 종말을 점진적으로 예언하면서드래곤의 반역성을 민중이 자각하는 순간을 유지하는 데 이바지한다. 미리의 출현에서 드래곤의 도래로 이어지는 종말론의 서사는 천국의 억압성을파괴하고, 지국의 구성원인 민중이 혁명의 동력을 확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후천 시대를 맞이하는 주체는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드래곤의 주술을호출하고 있을 뿐이다. "「왔다, 왔다, 드래곤이 왔다, 인제는 쥐의末日이다」" 는 주술은 드래곤이 혁명의 자각을 상실한 순간 언제든지 미리로 변질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한 서사 장치다. 왜냐하면, 미리와 드래곤은 민중의 자각성 유무에 따라 언제든지 상호 간에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사는 천국의 종말이 도래함에 따라 천국이 존속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천사는 천국이 파국을 맞이한 상황에서 상제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천사는 예루살렘에서 바울과 중국 북경에서 대청국의 대황제를 만나 상제의 안위를 물어본다. 바울과 대황제는 천사에게 면박을 준다. 특히 대청국의 대황제는 부벽을 위한 제천예를 올리면서 민중이 기념하는 경사스러운 날이 연극이라고 말한다. 천사는 선천시대가 폭력적 해탈을 거쳐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는 점을 수용하지 못하고, 선천 시대를 그리워하는 태도를 보인다. 천사는 바울과 대황제에게 뺨을 맞고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지 못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다가 천사는 점을 치면서 사례금으로 동전 열 닢을 받는 노도사를 만난다. 천사는 노도사에게 상제의 행방을 찾을 방도의 목적으로 점을부탁한다.

「예― 달른占이 아니라上典을 찾는占이올시다. 우리上典이 어디 가신지몰나서요…」 「허허. 요새世上에도上典을 차저 단이는 이가 잇단 말이요? 당신은 참忠奴올시다.」 하고占筒을 흔드니乾之遯卦가 나온다. 道士가大驚하야 「아- 어- 乾은天이니上帝요, 遯은逃亡이니, 당신이上典을 찾는奴子가아니라逃亡한上帝를 찾는天使인가 봄니다.」 天使가 이 말에 놀내지 안할 수 업다. 그래서 두 무릎을 꿇고 공손이 「上帝의 게신 곳을 가라쳐 달나.」 하니道士가 풀어 갈오대 「乾卦初爻의 「子」가遯卦初爻의 「辰」으로變하고 '辰'이回頭하여 「子」를克하였습니다. 辰은 龍이오, 子는 쥐니上帝가 龍(드래곤)의 亂에逃亡하야 쥐구멍으로 들어갓슴니다. 古語에 「天開於子」라 하더니 오늘은 「天閉於子」올시다. 쥐구녁에 가서上帝를 차지시오.」[39]

노도사는 복희씨의 팔괘(伏羲氏의八卦)를 신봉한다. 노도사는 점통을 흔들어 상제의 행방에 대해 예언한다. 노도사는 <(乾之遯卦>의 점괘를 보여준다. 건의 상징은 하늘이고, 상제이고, 둔의 상징은 도망이다. 그러므로 점괘에 따르면, 상제는 도망중이다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천사는 노도사에게상제가 도망간 곳이 어디인지를 재차 묻는다. 노도사는 본인의 점괘를 토대로, 상제가 있음 직한 장소를 천사에게 풀이해 준다. 노도사가 점통을 흔들어 세계의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행위는 기층 민중의 민간 신앙의 토대로 선천 시대를 종식하고 후천시대를 맞이할 운명과 숙명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40) 천사는 도사의 점에 따라 상제가 쥐구멍에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운다. 천사는 쥐가 하늘에서 도망 온 상제라고 말하면서 천국의 종말을 확인한다. 노도사의 예언은 선천 시대의 상부 구조를 해체하고, 후천시대의 하부구조가 생성한다는 점을 보여준다.[41]

5. 결론

신채호는 근대가 기계를 필요로 하는 시대라는 사실을 인식했고. 제국주의와 계급투쟁이 근대의 본질적 문제 상황임을 파악하고, 근대를 대중의 수량이 움직이는 사회로 이해함으로써 대중의 개념을 '정치의' 범주로 포착한 한국 최초의 사상가로 규정할 수 있다.[42] "況今 六洲大局에龍戰이正酣하고半島全幅에鷄鳴이將近하여, 吾儕의筆鋒을試할舞臺가多多하니奚暇에興爾閒交鋒하리오. 兩마乎여速退하라."[43] 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신채호는 동양과 서양의 "龍戰"의 과정을 거쳐 근대 사회의 상극적 대결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채호는 중국 망명 이후 내면적으로 고통에 처해 있었다. 그는 근대 사회가 자본주의와 식민주의가 결합해 파시즘 체제로 질주하는 과정을 성찰했을 것이다. 그는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잠시 불교적 사유를 수용했다. 그런데 그는 불교를 소승적 차원에서 수용하지 않고 대승불교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내면화했다. 그는 무정부주의와 대승불교를 접목하면서 「龍 과 龍의大激戰」을 창작했다. 「龍과 龍의大激戰」은 선천 시대의 폭력을근절하고, 무아 주체의 심적 연대를 통해 후천 시대를 맞이하는 과정을 허구적으로 보여주었다. 「龍과 龍의大激戰」은 소승불교의 관점에서 자아의내면 탐색을 모색하지 않고 대승불교의 사유를 적극적으로 실천의 동력으로삼는 과정을 거쳐 근대 사회와 전면전을 선포하는 작품으로 간주할 수 있다. 요컨대, 「龍과 龍의大激戰」은 불교 무정부주의적 세계관을 중심으로 민중의 세계 모순에 대한 자각성을 유도하고, 자각한 민중의 미래에 대한 반역성을 유지하기 위해 점복 신앙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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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채호, 「龍과 龍의 大激戰」, 단재신채호전집편찬위원회,『단재신채호전집 제8권 독립운동』,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8. 이하 작품 인용 시 제목과 면수만 밝힘.

[2] 김경복, 「단재 신채호 문학과 아나키즘」, 『국어국문학』 30, 부산대학교,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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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관인사에서 승려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일생을 뒤돌아본 신채호는 자신의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1년에도 미치지 못하는 승려 생활을 청산하고 1924년 말 관인사에서 나와 환속하였다. 그리고 이회영의 동생 이호영의 집에 서 하숙하면서 『동아일보』 등에 투고하는 한편, 1925년 무렵부터 실제 행동을 강조하였다.” 이호룡, 『신채호 다시 읽기-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돌베개, 2013, 220~221면.

[4] 김정배, 「단재 신채호의 사론과 불교」, 『한국 고대사와 고고학』, 신서원, 2000, 472~473면.

[5] 위당 정인보는 “丹齋는 史學 以外에 佛學이 特別히 깊어 有摩․楞嚴等 諸經을 悟解하는 程度가 當世 白衣間에 最高할 줄 안다. 더욱이 有摩를 좋와하야 항상 知友들에게 한번 보라가 勸하였으며 또 馬鳴의 大乘起信論을 깊이 硏究하야 내가 起信論을 閱讀한 것이 아마 丹齋勸告를 받은 뒤인 듯하다.”라고 말했다. 정인보는 신채호가 불경에 대한 조예가 탁월하다는 점을 언급하고, 불교 경전인 『유마경』, 『능엄경』, 『대승기신론』을 언급한 후 신채호가 『유마경』을 선호했고, 『대승기신론』을 탐구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爲堂, 「殘憶의 數片」(「新東亞」1936.4), 단재신채호전집편찬위원회, 『단재신채호전집 제 9권』단재론․연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8, 292면

[6] 임헌영, 「불교적 상상력과 문학」, 󰡔유심󰡕, 만해사상실천선양회, 2006. (<http://www>. yousim. co.kr/news/quickviewarticleviews.html? idxno=2222).

[7] 신채호의 중국 망명 이후 소설인 <일목대왕의 철추>, <일이승>, <백세노승의 미인담>에는 승려가 등장인물이다. "이들은 모두 과도기적인 인물이다. 자기도착적인 인물이거나세상을 등지고 피안의 세계에 머무는 인물, 쇠퇴한 불교의 표상으로 남는 인물 등으로구성돼 있다. 이 역시 그의 소설을 민족주의 사관만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이유이다. 스님의 형상화는 신채호가 정신적 방황과 함께 현실을 타개할 다양한 방법을 모색(374면)" 하였다고 유추할 수 있다. 김현주, 「망명 이후 신채호 소설의 인물 형상 연구-근대에서탈근대 이행(移行)과 관련하여」, 「한민족어문학」 제56호, 한민족어문학회, 2010.

[8] 불교 무정부주의(the Buddhist anarchism)는 국가와 자본주의를 해체하고자 한다. 국가는권력에 대한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제도이고, 자본주의는 물질적 부를 위한 욕망이다. 그런데 국가와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고통을 선사한다. 불교는 무상(無常), 윤회(輪廻), 무아(無我)의 세계를 지향한다. 개인은 서로 의존 관계를 인정하고, 개인과 세계의 절대성을 지속해서 부정한다. 불교는 개인 자유를 억압하는 요인을 제거한다. 무정부주의 역시개인의 자유를 부정하는 국가와 자본의 권력과 권위를 해체한다. 특히 불교의 동정 (compassion)과 무정부주의의 상호부조론(mutual aid)은 개체의 개별성을 넘어 개체의 상호 연대성을 확보할 수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Buddhist_anarchism) 아나키즘과불교는 무집착의 논리, 권위에서의 저항과 자아의 구현, 자연론적 세계관과 생태주의를실현한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무집착의 논리는 근대의 과학과 이성의 보편적 법칙이 논리성을 강조하면서 초래된 인식론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인간의 합리성이 역설적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과정을 부정하는 태도이다. 권위에서의 저항과 자아의 구현은 개인의 자주성을 중시하는 관점을 취하면서 복종과 공손의 이념을 제시하는 관점을 비판하는 태도이다. 자연론적 세계관과 생태주의는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파악하는 시각을부정하고 인간과 자연을 우주론적 관점에서 상호 인연의 조건을 갖춘 영역으로 인식하는 태도이다. 무집착의 논리는 불교의 반야 사상의 공론(空論)과 유사하고, 권위에서의저항과 자아의 구현은 임제 선사의 반 권위적 태도와 비슷하고, 자연론적 세계관과 생태주의는 불교의 인연론적 관점과 같은 측면이 있다. 방영준, 「아나키즘의 불교적 특성」, 󰡔불교평론󰡕 6호, 불교평론사, 2001. (www. budreview. com /news/articlesView . html ? idxno = 592)

[9] 불교에서는 주체를 고려하지 않는다. 모든 존재는 공성(空性)을 보유하기 때문에 자아, 유아의 관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체가 자아의 세계만을 집착하지 않고 자아의 상호 매개를 인정하는 과정을 거쳐 무아 주체는 탄생한다. 무아 주체는 타자와 관계에서도 같은법칙이 적용한다. "대승불교에서 타자는 무엇인가. 타자는 무아의 실현과 관련된다. 타자 (화)는 실천적으로 쓰일 때는 변이 능력을 말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변화는 있는 듯하다. 하지만 수동적으로 변화를 인정하는 게 타자화는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자신의 습속은 강화되고 만다. 이 강화도 변화는 변화지만 그것은 자신을고립시키는 방식이다. 불교적 의미의 변이는 분명 적극적으로 자신의 습속[業力]을 전복하는 행위(226면)"이다. 본고에서의 무아 주체는 소승적 차원을 지양하고 대승적 관점과결부되면서 개인성과 사회성을 동시에 매개할 영역으로 간주할 수 있다. 특히 무아 주체는 기층 민중이 소승적 세계와 대승적 세계의 경계에 위치하면서 부단히 소승적 자아 세계에 함몰해서는 안 된다는 점과 대승적 세계 구제 원리를 존속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 김영진, 󰡔불교와 무의 근대 - 장타이옌의 불교와 중국근대혁명󰡕, 그린비, 2012.

[10] 공(空)은 자아와 자성을 부정하고 무아와 무자성을 강조하면서 연기론적으로 상호 간에매개 되어있다. 영(零)의 윤리는 무아와 무자성의 공(空)을 인식해야만 실천할 수 있다. 사회적 불평등을 사회적 평등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보살 실천이 요구된다. 영(零)의윤리는 단독적 존재를 중시하지 않고 상호 연속적 관계를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말한다. '無'는 없다 즉 zero의 의미로서의 '空'이고, 무아론과 무상론의 형식은 공(空)의 세계로귀착한다. 신현숙, 「대승불교와 공사상의 전개- 공과 연기법을 중심으로」, 󰡔불교학보󰡕 27 권,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1990, 142면.

[11] "해탈 [解脫 , Vimukti, Vimoka]은 결박이나 장애로부터 벗어난 해방․자유 등을 의미한다. 해탈은 혜해탈(慧解脫)과 심해탈(心解脫)로 구분할 수 있다. 혜해탈은 오온이나 십이연기에 실체가 본래 없는 것을 봄으로써 지적으로 해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연기한것이 무아라는 것을 직관하는 (正見)만으로 마음의 번뇌가 완전히 멸하는 것이 아니다. 정정(正定)을 통해 마음에서 그것을 멸해야 한다. 이것이 심해탈이다." 고익진, 「불교의체계적 이해」, 광륵, 2008, 96~99면.

[12] 불교는 폭력을 금지한다. 이른바 불살생의 교리는 인욕과 자비의 정신을 구현한다. 그러나 불교가 반드시 폭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예컨대, 높은 수행의 경지에서 자비의 하나로서 발휘되는 폭력이고, 불법을 보호하기 위한 상황과 방어 전쟁이 포함되는 예외적 상황이 있다. 이러한 불교의 폭력관을 신채호는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선천 시대의 악업을 근절하고 후천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무정부주의적 이상향에 도달하고자 한다. 이병욱, 「불교의 폭력관」, 「동서사상」 15, 경북대학교 동서사상연구소, 2013, 59∼63면.

[13] 김창현, 「신채호 소설의 미학적 특성과 알레고리 - <용과 용의 대격전>을 중심으로 -」, 「고전 문학연구」 27권, 한국고전문학회, 2005. 민찬, 「단재 소설의 경로와 전통의 자장(磁場)」, 「인문과학논집」 34집, 대전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2. ______, 「단재 소설 <용과 용의 대격전>의 내용 및 형식」, 「어문연구」 제48권, 어문연구박중렬, 「단재의 「꿈하늘」과 「용과 용의 대격전」재론 : 환몽적 알레고리를 통한 역사 다한금윤, 「신채호 소설의 미적 특성 연구 - <꿈하늘>과 <용과 용의 대격전>을 중심으로」, 󰡔현대소설연구」 9권, 한국현대소설학회, 1998.

[14] 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적과 동지로 구분 짓고, 정치 행위는 국가에 수렴된다고 규정한다. 그는 근대의 정치화가 국가의 존속을 위협에 빠뜨린다는 점을 고려하여, 국가와 반혁명의 논리를 제시했다. 그는 국가를 존속하기 위해 적을 명백하게 규정짓고, 적을 소멸을 위한 정치체계인 독재를 승인했다. 그가 말한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보수적태도로 간주할 수 있지만, 근대 사회의 모순을 정치를 통해 없애고 적과 동지의 구분을혁명의 조건으로 변용할 여지가 있다. 그러므로 본고에서의 정치적 개념은 억압적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적과 동지로 구분하고 각자의 혁명 논리를 구축하는 일련의 행위를 의미한다. 이해영, 「칼 슈미트의 정치사상: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중심으로」, 󰡔21세기 정치학회보󰡕 제14집, 21세기정치학회, 2004, 4~13면.

[15] 19세기 민중운동과 민중사상은 조선 왕조의 몰락을 예언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특히주역의 후천개벽사상, 정감록의 왕조교체사상, 미륵의 하생신앙의 미륵출현사상은 민중사상의 근간이다. 「龍과龍의大激戰」은 주역, 정감록, 미륵의 19세기 민중사상을 서사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점복의 예언은 주역의 후천개벽사상을 서사적으로 반영하고있다. 주역의 후천개벽사상은 사대부 중심의 유교 경전이었으나, 19세기 와서 변혁세력들이 민중운동과 연결했고 조선왕조의 쇠운을 말하고, 새로운 사회(후천개벽)이 다가온다는 점을 민중 사이에 유포할 수 있었다. 주역은 대인과 기층민의 역할이 다르다. 대인은 세상을 크게 소유하여 거기서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만나 후천세계를 경영해 나갈 자라면, 기층민은 "무위적인 천지의 운행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요소가 개입되 「19세기 민중운동과 민중 사상-후천개벽, 정감록, 미륵신앙을 중심으로」, 󰡔역사비평󰡕 2, 역사비평사, 1988.

[16] 점복은 국가, 불교, 유교, 무교, 민속의 차원에서 행해졌고, 점은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없애고 기대심리를 충족하거나, 특정 행동을 확인하는 임무를 수행하거나, 치유의 역할을 하고, 특정 행위에 대한 선택의 가치판단 기준으로 적용한다. 이학주, 「한국인의占風俗과 「占察經」에 나타난占의 역할」, 「비교문화연구」,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2011, 161~171면.

[17] 미리는 물의 고어인 '밀'에서 나온 미르와 같지만, "미리 알리다/ 미리 준비하다"에서처럼 길흉사를 사전에 알려주는 신령한 존재를 의미한다. 이혜화, 「미르-용에 관한 모든 것」, 북바이북, 2012, 13~14면.

[18] 동양의 용은 군주의 위엄과 권능, 혹은 하늘의 대리자로서 상징적 의미가 있었지만, 서양의 드래곤은 그저 자연에 사는 강력한 괴물에 불과하다. 서양 신화에서 드래곤은 커다란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일부 유럽 지역에서는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던 드래곤은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뱀=악>이란 공식이 성립하였고, 뱀과 관련이 깊은 드래곤은 악마의 힘을 지닌 마물로 격하되어 수많은 설화에서 타도 대상이 되었다. 채영숙, 「문화 콘텐츠에나타난 상징 동물 용(龍)의 고찰: 게임 콘텐츠를 중심으로」, 「동북아문화연구」 제21집,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09, 201~202면.

[19] 「龍과 龍의大激戰」, 610면.

[20] 류동일은 <0>의 의미를 "0으로 표현되는 드래곤을 무산자와 연결시킴으로써 현행하는제국주의 및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는 소수자의 힘에 주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0 이라는 무한한 변주 방식을 문학 형식과 연결시킴으로써 특정한 형태의 글쓰기를 문학으로 귀결시키는 미적 자율성의 틀을 벗어난 것(48면)"으로 규정한다. 그는 소수자의 힘을 강조하기 위해 들뢰즈의 <기관없는 신체>론을 논거로 삼고 있다. 들뢰즈의 이론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타당할 수 있지만, 신채호의 1920년대 후반의 내면 풍경을 분석하기에는 미흡하다. 신채호는 중국 망명 이후 근대 폭력의 실상을 성찰하는 동시에 좌절감을느꼈다. 즉 근대 폭력에 대항하는 방법이 확보할 수 없다는 자괴감 역시 존재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근대 폭력에 대해 소승적 관점을 취하지 않고 대승적 관점을 수용하려는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므로 <0>의 의미는 대승불교의 공<空>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과정이 타당하다. 아울러 신채호는 근대 문학의 정립을 우선시하지 않고, 근대 문학이 온전하게 근대 사회에 생성하는 데 필요한 근대적 정치 동력을 확보하고자 했다는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류동일, 「1920년대 신채호 문학 연구 : '0'의 의미를 중심으로」, 「현대소설연구」 제48호, 현대소설학회, 2011.

[21] 공(空)은 산스크리트어로 쑤나타(sunyata)이다. 쑤나타는 "없는, 공허한"의 뜻인 어간 "쑤나(sunya)"와 성질을 나타내는 분사형 어미 "타(ta)"가 결합한 것이다. 쑤나타는 밖으로는진짜이고 실제적인 것처럼 나타나는 현상세계의 사물일지라도 사실상 내부는 보잘것없으며 비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들은 실제(real)가 아니고 실제인 것처럼 나타날뿐이다. 그리고 쑤나는 산스크리트어로 "영(零)이나 제로"를 의미한다. 영(零)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포함하고 있지 않는다 해도 절대적으로 비어 있거나 허무주의적 공허함이라고 말할 수 없고, 수학적 개념이나 기호처럼 다양한 기능과 유용성을 가지고 있다. 영 (零)은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인 동시에 모든 것이 가능성(the possibility of everything) 이다. 공은 자아(自我)와 자성(自性)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의미한다. 광명 스님, 󰡔불교학개론」, 솔과학, 2009, 3773~78면.

[22] 「龍과 龍의大激戰」, 610면.

[23] 이정석은 "「용과 용의 대격전」의 동서양의 상징적 전통을 수용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전도시키는 서사전략을 통해 대단히 전복적인 정치적 효과를 창출하고 있기때문이다. 특히 그것은 용을 숭배하는 동양의 전통적 상징체계를 전복하는 것은 물론이히 "민중이 숭상하는 미륵 신앙의 전통을 수용하되, 거기에 담긴 현실 도피와 기복적 요소를 몰아내는 대신에 바로 그 현실 변혁적 측면을 활성화하는 전도적 서사전략을 구사 (185면)"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정석, 위의 글.

[24] 송재소는 드래곤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규정짓고 있다. "드래곤은 어느 한 민족의 영웅이 아니다. 드래곤은 민중의 분신이고 민중의 힘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드래곤은 민중보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민중의 지도자가 아니고 민중 속에 잠자고 있는, 미처 그 힘이 발휘되지 못한 민중의 잠재적인 역량 그 자체(258면)"이다. 송재소, 「申采浩 文學의民族과民衆-《꿈하늘》과《龍과 龍의大激戰》에 나타난丹齋 思想의變貌-」, 강만길 편, 「신채호」,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0.

[25] 「龍과 龍의大激戰」, 612~613면.

[26] 「龍과 龍의大激戰」, 618면.

[27] 갑골을 통해 상대의 종교는墳墓와宗廟에서의 제사의식으로 나타났는데 거대한 분묘에서 장대한 '묘제'를 지냈을 뿐만 아니라 종묘를 지어 복잡한 순서에 의한 '조상제'가 거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상신이나 자연신 외에도 제상의 중요한 대상이 되었던 것은 '上帝 '였다. 은대 갑골문은上帝의 전능함에 대한 무한 신회를 보여준다. 帝는 비, 우레, 바람 등의 자연신을 거느리며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재한다. 예컨대卜辭로는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丙寅卜, 爭, 貞今十一月帝令雨(丙寅에 거북점을 친다. 爭은 점을 쳐서 묻는다. 이번 11월에 상제(帝)가 비를 내리게 할 것인가) '上帝 '의 개념은 한 대 허신에게도그대로 전승되었다. 비록 허신의帝에 대한 해석이 '一'(하나, 주재자, 원리)과 연관되는개념으로 '上'자를 들고 그 아래帝자를 귀속시켜 풀이함으로써 자형에 대한 의도적인풀이가 드러나긴 하지만 그것은商代갑골문에 등장하는 '帝'의 중요성과 권능을 계승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다면, 신채호는 근대를 상이한 방식으로 이해라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근대가 과학과 이성으로 근대 이전을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대적 제도의 이면에는 전근대적 요소가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종교로서의 근대주의는 과학과 기술과 접목하면서 전근대의 기표를 활용하면서 근대적 기의를 생성하려고했다. 염정삼, 「점복(占卜)과 제사(祭祀)에 관한 문자 연구 - 중국 문화의 종교적 기원과그 연속성에 대하여」, 「서강인문논총」 제26집, 서강대학교인문과학연구소, 2009, 227~ 228면.

[28] 천사는 천상과 지상을 중개하던 존재이다. 인간은 지상의 고통을 천상의 이상 세계와 결부할 방법으로 천사를 상상했다. 인간은 비가시적 세계에 대한 상징 작업의 목적으로 천사 이미지를 창조했다. 이른바 천사학은 철학적 천사학, 신학적 천사학, 미학적 천사학으로 발전했다. "천사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에는 보이지 않는 영역도 있다고 하는믿음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철학적 천사학은 그 보이지 않은 세계의 가능성에 대한 탐구이며, 신학적 천사학은 그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실재성에 대한 고백이 된다. 그리고 미학과정이다. 김산춘, 「천사학과 단테의 천사상」, 󰡔한국미학예술학회󰡕 제25호, 한국미학예술학회, 2007.

[29] “유식은 아공과 법공의 깨달음을 강조하며, 그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위해 유식을 설한다. 내가 아와 법으로 간주하는 것, 나와 세계로 간주하는 것이 꿈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그린 영상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근ㆍ경의 매임을 풀어놓으려는 것이다. 근과 경의 매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 유식성을 깨닫는다는 것은 결국자아나 세계 그 어디에도 매이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한자경, 󰡔불교의 무아론󰡕,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6, 196면.

[30] 「龍과 龍의大激戰」, 606면.

[31] 「龍과 龍의大激戰」, 611면.

[32] "게발트는 영어의 violence, 한자로暴力이라는 의미와 단순히 등치한다고는 볼 수 없다. 게발트는 일테면 violence와 force를 모두 포함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violence나 게발트 모두 라틴어 vir혹은 vis를 어원으로 한다. 전자는 남자, 남편, 용사, 병사 후자는 힘, 무력, 폭력 등을 뜻하는데 게발트는 violence와 달리 어떤 모순까지 내포하는 함축적 의미를 지닌다. '지배하다, 관리, 감독하다'의 뜻을 지닌 walten이란 동사에서 파생한 게발트는 지배 혹은 통치의 유지, 정당한 강제라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독일어에서는 국가권력, 권력분립이라고 할 때의 '권력'에 Gewalt를 쓰며, 'gestzgebende Gewalt'를 번역하면 '입법권'이 된다. 한편 영어의 violence는 외부로부터의 침해나 파괴라는 느낌이 강하다. 라틴어의 violentia에는 '난폭'이라는 의미가 있다. 지배의 유지나 정당한 강제력이라는 표현에는 오히려 force가 적당할 것이다." 사카이 다카시, 󰡔폭력의 철학󰡕, 김은주 옮김, 산눈, 2007, 7~8면.

[33] 송재소, 위의 글, 250면.

[34] 드래곤으로 상징되는 무정부주의적 태도는 「임제록」에 나타난 사유와 유사하다. 「임제록」 은 인간을 미망으로 이끄는 관념 세계를 부정하거나 파괴하는 태도를 보인다. 「임제록」 에 반영된 주관적 마음에 내재한 형상을 제외한 일체의 것들은 인간을 허망한 세계에 집착하게 만드는 요인에 불과하다. 「임제록」은 개인의 마음에 세계의 법칙이 내재한다는점을 지적하고, 인간의 내면과 현실을 억압하는 일체를 부정하는 정신을 나타낸다. 즉, 개인의 마음에 대한 바른 안목과 깨달음을 중시하고, 일체의 외부적 권위를 부정하는 정신을 중시한다. 신규탁, 「부처를 죽이고 달마를 죽이고」, 「철학과 현실」 50, 철학문화연구소, 2001, 268면.

[35] 고토쿠 슈스이는 기독교의 교리가 일반 국민에게 사회적 혹은 정신적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전제하에, 기독교도들은 기독교의 기원을 잘 모른 채 기독교를 믿고 있기때문에 그 기원을 밝혀 기독교도들의 미망을 구원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독교의진상과 실체를 폭로해 세계 역사에서 기독교 정신을 말살하려고 했다. "1928년 신채호는사회진화론에서 벗어나 직접혁명론의 아나키즘에 도달했다. 따라서 고토쿠 슈스이의 「기독말살론」에 공명한다고 해도 진화론적 관점에서는 아닐 것이다. 고토쿠 슈스이가 「기독말살론」에서 말하고자 한 바는 성서는 조작되었고 따라서 예수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기독교란 미망에 사로잡혀 있는 인민들이 그 미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기독교를 말살시켜야 한다는 것이 「기독말살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신채호는예수 기독이 거짓말로써 민중의 고통을 잠재우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다시 부활할수 없도록 말살(144면)"시키려고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권문경, 「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의 「基督抹殺論」과 신채호의 아나키즘」, 「일본어문학」 제58집, 일본어문학회, 2012. 존하는 것에 반대하고 제도권 종교의 기만성을 공격했지만, 다시 보면 그의 폭력 사상은종교적인 구원의 논리를 역사적인 실천의 장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중략) 격렬한 불교비판에도 불구하고 신채호의 글에는 불교적인 비유와 선승의 문답이 많은데, 그의 구도 (求道)관은 해탈자가 정도에 안주하지 않고, 탁계(濁界)에 현신(現身)하여 싸우는 것으로 나타난다.(177면)" 조관자, 「<반>제국주의의 폭력과 멸죄(滅罪)의 힘-중국망명기의 신채

[37] 「龍과 龍의大激戰」, 603면.

[38] 「龍과 龍의大激戰」, 607면.

[39] 「龍과 龍의大激戰」, 617면.

[41] "주역의 괘순(卦順)에 의하면 천지도(天地道)와 인도(人道)는 일정한 법칙에 따라 운행된다. 그러나 이러한 단계적 발전 과정이 여러 요인에 의하여 장애를 받게 된다면 그것은모순적 상황으로 파악되어 지양되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고, 혁명적인 과정이 필요하기도 한 것이다." 우윤, 위의 글, 222면.

[42] 김인환, 「한국 현대소설의 계보」, 󰡔기억의 계단󰡕, 민음사, 2001, 78~79면.

[43] 신채호, 「國民․大韓 兩魔頭上 各一棒」( 「大韓每日申報」 1909.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