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놀러와요 Zomia에 #subtitle 알려지지 않은 아나키즘적 나라 #author 마테이스 베일 #date 2021년 8월 27일 #source [[https://medium.com/@matthijsbijl/welcome-to-zomia-the-anarchist-country-youve-never-heard-of-6d2172da8ef3][Medium: Welcome to Zomia]], 2025년 11월 21에 접속 #lang ko #pubdate 2025-11-21T07:16:04 #authors 마테이스 베일 #topics 조미아, 반식민주의, 동남아시아, 식민주의, 원주민 해방운동, 원시주의 조미아 얘기를 하자. 조미아는 면적으로 세상에서 8번째로 큰 나라로, 면적이 25억 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1억 3천만 명의 생기 넘치고 다양한 집단의 고향으로, 인구 규모로 일본과 멕시코와 견줄만하다. 조미아의 자연 경관은 또한 지구상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며, 이곳에는 야생동물로 넘쳐나는 빽빽한 우림부터 구름에 걸친 설산까지 모두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놀라운 면적과 인구에도 불구하고, 조미아가 표기된 현대 지도는 찾기 어렵다. 아니, 옛 지도를 뒤지더라도 그렇다. 조미아가 어느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은 이유는 당신에게 알려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며, 당신에게 ‘조미아’라는 이름마저 생소한 것은 같은 이유에서다. 실제로, 조미아 대중은 뼛속 깊은 곳까지 아나키스트로, 어느 국가의 시민도 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무국적 상태를 수호해 왔다. 조미아는 따라서 ‘비-국가’ 공간으로 모든 면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의 기준에 반대이다. 자세히 알아보자. 조미아의 이야기는 1997년 인류학자 장 미쇼Jean Michaud가 동남아시아 지역의 어마어마한 다양성에 접근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 시작한다. 이전까지 학자들은 고유한 문화와 집단으로 넘쳐나는 이 지역을 분석하는 데 적합한 도구를 찾지 못해 애먹었다. 수백, 아니, 수천 개의 서로 다른 언어, 수십 가지 종교, 끝없이 다양한 사회 구조와 전통의 보금자리인 동남아시아는 인류학자의 달콤한 환상이다. 지리학적 다양성의 면에서 동남아시아와 견줄 수 있는 곳은 오직 파푸아뉴기니아 뿐이다. 그럼에도 미쇼는 압도적인 다양성의 동남아를 ‘고지대’의 인구와 저지대 평지의 인구로 구분할 가능성을 눈치챈다. 아시아 대륙 동남부, 해발 300미터 이상 고도에 사는 여러 사회를 관찰한 결과, 미쇼는 거대한 지리학적 영역에 걸쳐 공통된 특징을 발견한다. 영역은 말레이시아,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본토를 넘어 미얀마, 중국, 방글라데시, 인도와 심지어 대만까지 포함한다. 이곳은 공통으로 경제적으로 소외되고 국가에 존속되지 않았으며 방대한 생태계를 보유한다. 이 지리학적 연구 도구를 미쇼는 ‘동남아시아 산괴’라 명명한다. 지역과 복합적인 문화를 연구할 새로운 기법을 제공해 가치를 입증해 내지만, 동남아시아 산괴라는 이름 자체는 어딘가 매력이 부족하다. 때문에 빌렘 반 셴델Willem van Schendel은 2002년 ‘조미Zomi’에서 따온 조미아를 제안한다. 조미는 여러 티베트-버마 언어에서 ‘고원인’을 지칭하고 동남아시아 산괴에 포함된 여러 국가에서도 사용하는 흔한 단어다. ‘조미아’는 따라서 10개 다른 국가에 걸친 지역과 특징적인 고지대 민족의 다양성을 모두 담아낸다. [[m-b-matthijs-bijl-welcome-to-zomia-4.png f][조미아 지도. 청색 영역은 반 셴델이 확장하자고 제시한 지역을 표시한다. ]] 비록 동남아시아 산괴와 조미아는 일부 학자의 관심을 끌지만, 조미아와 조미아의 공동체를 둘러싼 논의는 2009년이 돼서야 주목받는다. 저서 [[https://www.goodreads.com/book/show/6477876-the-art-of-not-being-governed][『통치 거부하기의 미학The Art of Not Being Governed』]]에서 저명한 인류학자이자 정치학자 제임스 스콧James C. Scott가 말하길, 조미아인 연구는 세상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아나지키즘적 사회를 우리의 오만한 국가 중심적 사고로 접근하는 오류를 범한 사례 중 하나이다. 덕분에 조미아인은 문명화하지 못한 야만인으로 오해받는 민족이 되었다. 스콧이 말하길, 조미아는 오직 지리학적 다양성으로 알려지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을 굴복시키려는 국가권력의 시도로부터 대항하는 조미아 공동체의 능동적인 역사적 노력의 산물로 명성을 떨친다. 조미아는 국가에 아직 완전히 편입되지 않은 세상에 몇 남지 않은 곳 중 가장 큰 지역이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미아처럼 자기 주도권을 행사하는 공동체가 인류의 태반이었다. 역사에 걸쳐, 지배받지 않는 민족을 ‘야만인’이라 치부하는 경향은, 특히 중국과 로마 제국이 그랬듯, 사실 자국민에게 국가의 유일무이와 영토 내에 강요하는 사회계약을 과시하려는 노력이었다. 세금을 바치지 않는 자유로운 대중의 존재 자체가 국민에 대한 국가의 지배를 직접적으로 위협했다. 문명의 깃대를 세우고 야만성을 경고함으로써, 국가는 자기 공적을 선전하고 같은 노선상에 있지 않은 이들을 멸시했다. “내 말은, 중국을 비롯한 여러 문명국이 논하는 ‘야만’과 ‘날 것’과 ‘원시적’의 담론을 비판하여 해체해야만 한다. 이 단어를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실질적으로 지배받지 않고 아직 편입되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 인종과 ‘부족’은 징세와 통치권이 끝나는 바로 그 경계에서 시작한다. 로마 제국과 중국의 경우에 모두 그랬다. 다시 조미아의 경우로 돌아오자. 여러 산악 민족을 국가 형성 과업에 편입하는 데 실패하자, 저지대 국가는 이들을 근대화와 진보의 산물을 거부하는 선조로 폄하하기로 전략을 바꿨다. 다시 스콧을 인용하자면, “저지대 왕조에 따르면 산악 민족은 ‘논 경작과 불교와 문명 전반을 발명하기 이전 우리 삶의 방식’을 보전하는’ ‘살아 숨 쉬는 우리 과거’이다.” 하지만 스콧은 이 관점이 틀렸다고 강조한다. 나는 되려 산악 민족을 피난민과 도망자와 부랑자의 공동체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2천 년에 걸쳐 노예제와 징병제와 징세와 부역과 전염병과 전쟁 등 저지대의 국가 건설 과업의 손아귀를 피하며 지내왔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주장이다. 스콧의 논리에 따르면, 조미아에 거주하는 대중은 지난 천 년 동안 국가의 통치를 능동적으로 피하며 지냈고,저지대 왕국에 복종하기보다 자유를 선택했다. 조미아는 ‘만들어진’ 곳이다. 거저 존재하지도, ‘구시대의 잔여물’도 아니다. 조미아인은 자신을 에워싼 국가와 문명에 관여하지 않음으로써 자유롭게 지내길 선택했다. 국가 형성 과정에서 소극적으로 뒤처진 것도, 능력 부족으로 진보하는 데 실패한 것도 아니다. 조미아는 국가와 ‘문명’ 덕에 접할 수도 있었던 물질 또는 문화 이득보다는 자유를 선호한 이들의 손으로 세워졌다. 세금을 납부하거나 새 종교로 교화하거나 고유의 문화를 포기하기 싫던 대중을 위한 아나키즘적 보금자리였다. 이들은 단지 국가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배척했다. 하지만 ‘정치적’이라는 단어가 아나키즘적 상태로 특정된 지리적 영역을 일컫지 않는 선에서, 조미아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결성되지 않았다. 조미아는 [⋯] 정치적으로 단결된 지역이 아니며, 애초에 정치적으로 균일할 일 없는 곳이다. 조미아는 대신, 다채로운 산악 농업과 산개됐지만 원활하게 소통하는 공동체와 전반적으로 평등한 특성을 공유한다. 공교롭게도 산악 여성은 평지 여성보다 나은 사회 위치를 차지한다. 자유를 향한 여정에서 조미아인이 성공한 주된 이유는 국가 건설과 형성을 가로막은 자연 장애물에 있다. 산이 많고 험한 지형과 빽빽한 밀림과 인구 밀도가 낮은 땅은 국가로 하여금 조미아인을 굴복은커녕 접근조차 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스콧이 말하길, 이 모두 20세기,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바뀌었다. 1945년부터, 또는 일부 경우에 그 전부터, 국가 권력은 거리의 어려움을 무효로 하는 기술을 최전선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철도와 전천후 도로, 전보와 전화, 비행기와 헬리콥터, 그리고 이제는 정보화 기술까지 [⋯] 모두 자치 민족과 국가 사이 권력의 전략 균형을 바꿔 지형 장애물의 효력을 감소시켰다. 비록 일부 조미아 지역은 아직 국가 권력의 손아귀 밖에 머무르거나 적극적으로 대항하지만, 많은 조미아 대중은 지난 수십 년간 유의미하게 바뀐 삶을 살고 있다. 현대에는 ‘근대화’와 ‘개발’로 불리는 ‘문명화’와 ‘계몽’ 명분 아래, 국가는 끝내 변방의 대중을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국민으로 만들어냈다. 무정부 공간으로서 조미아는 따라서 실질적으로 소멸했다. 하지만 아나키즘적 요새로서 지역의 과거 역사를 발견해, 우리는 문명과 국가의 지배적인 상에 강력히 대항할 수 있는 대안 담론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문헌 기록과 웅장한 유적지를 통해 우리 역사를 공부한다. 문명화의 미신을 접한 우리는 우리가 거대하고 이로운 무언가의 일부라고 믿게 됐다. 국가가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 모두에 침범하게 허용함으로써 우리는 ‘진보’하고 ‘진화’하리라. 인류의 발전을 상징하는 문명은 이롭고 이 문명에 동참하지 않은 야만인은 해롭다. 문명의 테두리 밖에 있는 대중은 지난 천 년 동안 멸시의 대상이었다. 이 ‘타인’의 존재 덕분에 ‘문명’을 받아들인 대중은 대부분 국가가 가하는 부담을 수용했다. 하지만 콧시John M. Coetzee의 『야만인을 기다리며Waiting for the Barbarians』에서처럼, 이런 야만인의 모습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야만인은 오로지 폭력으로 위협을 가하지 않고 사상의 위협을 상징했다. 우리는 우리의 인간성을 강조하려고 야만인의 비인간성을 부각했다. 우리가 법률과 관료에게 복종하는 이 집단에 왜 속하기로 했는지 설명하는 가상 없이는, 문명이라는 우리의 현실이 존속할 길 따위 없었다. 따라서 조미아는 우리가 어떻게 질서 대 카오스, 문명 대 야만이 사이 미신과 대립 덕에 우리의 세계에 수긍했는지 드러낸다. 비록 조미아라는 ‘나라’는 영영 소멸했더라도, 타인의 인간성을 바라보라는 교훈은 영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