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나는 헌법도 법률도 신뢰하지 않는다
Subtitle: 시민 조지 허웨이 씨에게
Date: 1848년 8월
Notes: 숀 윌버Shawn P. Wilbur의 영어 번역본을 번역함.

영어 역자 주

막스 네틀라우Max Nettlau에 따르면, 아래 편지는 바쿠닌의 수필 중 처음으로 본인의 아나키즘적 성향을 드러낸 예시이다.


시민 조지 허웨이George Herwegh씨에게

파리, 생 오귀스탱St. Augustin로 40호

조지에게

친우여. 자네가 편지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쾰른Cologne에서 자네에게 편지를 보낸 이후로, 나는 글을 단 한 문장도 쓰지 않았네. 그때로부터 많은 것이 바뀌었지. 하지만 우리의 우정은, 서로를 향한 우리 사이 신뢰는 변함 없다고 믿네. 우리 두 개인의 알맹이를 이루는 사상과 열망 모두 변하지 않았다고 믿네. 우리가 다시 만나는 순간, 우리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라고 믿네. 나의 신념은, 나의 종교는 지난 몇 달간 시달린 모든 문제와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공고하네. 그리고 나는 희망을 잃지 않았네. 오히려 나는 환상에서 벗어나 우리의 세상을, 파괴를 향해 달려가는 이 세상을 볼 수 있었네.

자네에게 슬라브주의에 대해 해줄 말이 많고 분명 자네도 그 이야기를 즐기리라고 보네. 하지만 나는 같은 주제의 책자를 쓰고 있으니 자네나 나를 지치게 할 생각은 없네. 책자는 조만간 읽을 수 있을 걸세. 오늘날 독일에서는 흥미롭고, 또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네. 망령들의 전쟁이 아닌 자신에게 형체가 있다고 자부하는 그림자들의 전쟁이네. 그리고 매순간 그림자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자기 약점을 체감하고 어쩔 수 없이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네. 주류 반동과 주류 혁명가는 허영과 멍청함의 분야에서 우위를 가르고자 다툰다네. 둘은 백주대낮에 의미없는 구호만을 떠벌리며 경쟁하네. 구호는 오랜 세월 독일인의 정신을 좀먹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정작 이해할 수 없는 철학·종교·정치·시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네. 아니 참으로, 자네와 내가 반복해서 말했듯이, 부르주아지와 구시대 문명의 귀결이 당도했네. 우리는 이 말을 진정으로 믿었지. 하지만 우리의 예언이 이정도로 정확할줄 알았겠는가. 반동은, 그러니까 가장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반동은 시대에 뒤쳐진 사상이네. 하지만 혁명은 사상보다는 본능을 따르네. 그리 행하고 퍼지는데, 그 모습이 마치 본능 같고, 그 본능은 이제서야 첫 싸움을 시작했네. 때문에 철학자와 지식인과 정치인을 비롯해서, 주머니에 자기가 직접 고안한 체계를 품고 한없이 깊은 바다를 임의로 가두려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멍청함과 무력함을 경험하는 것일세. 이들은 본능을 거세당했고, 대양의 파도 안으로 뛰어들기를 두려워하네. 하지만 친구여, 혁명은 거기에 있네. 혁명은 모든 곳에 있으며, 행동하고 소요를 일으키는 중이네. 나는 모든 곳에서 혁명을 느끼고 마주하였으며 반동이 두렵지 않네. 그래, 조지. 이제는 자네가 그토록 싫어하던 프루동이 파리와 정치학계 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는 사람임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나. 프루동은 위대한 용기를 보여주었네. 사악하고 위선으로 가득 찬 시대에 프루동은 실질적이고 고귀한 웅변을 해냈네. 만약 프루동이 권력을 손에 넣고 자신의 반체제적 교조주의가 새로운 체제가 된다면 우리는 아마 프루동과도 맞서 싸워야 했을 걸세. 프루동도 앞서 언급한, 약간은 체제를 품을 사람이니까 말일세. 하지만 당장은 우리 편이고, 어찌 됐든 흠망 받을 만한 용기를 증명했음은 자네도 인정해야 하네. 애초에 나는 의회에서 오고가는 논의는 싱경쓰지 않네. 의회주의의 시대는, 제헌의회든 국회든 간에 이제 끝났네. 누구에게든 물어본다면, 구식 의회주의에 진지하게 흥미를, 그마저 아니라면 국소적이고 비이성적인 흥미를 느끼는 이는 없을 걸세. 나는 헌법도 법률도 믿지 않네. 최고의 헌법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따로 있네. 열광과 생명을, 법이 없기에 자유로운 세계를 필요하네. 하지만 빈Wien에서의 협상{1}은 오랜 시간 몰랐던, 오늘날 제국의 상태를 짐작하는데 도움이 되니 내 관심을 끄네. 오스트리아의 몰락은 우리 슬라브족과 동시에 혁명의 앞날에 있어 중요하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개입할지 안할지 문제는 나를 두렵게 하지 못하네. 부르주아지는 이탈리아에서의 전쟁이 총력전이 돼 대혁명을 야기하리라고 의심없이 예상하네. 방금 루게Ruge가 도착했네. 루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최고 다음으로 뛰어나다고 알려졌있네. 나는 아직 그를 만나본 적이 없네.

잘 있게, 친구여. 이만 줄이겠네.

M.B.

***

부인, 당신이 잊지 않고 조르지스토에게 내 편지에 답변하도록 강제로라도 손에 펜을 쥐어주길 바랍니다. 파리에서는 어인 행차십니까? 겨울을 그곳에서 나실 겁니까? 어떻다 하더라도 우리는 조만간 만날 터이니, 때가 되면 많은 얘기를 주고 받겠지요.

사랑을 담아.

M.B.

{1} "민중의 봄"으로도 알려진 1848년 혁명의 일환으로 일어난 '빈 봉기' 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