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북극성은 아나키,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고 우리의 발걸음을 이끄는 목표이다. 그러나 우리의 길은 모든 종류의 장애물에 가로막혀 있고,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최선이라고 여겨지는 수단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행동에 우리의 사상을 적용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알리고 가능한 한 이상에 다가가고자 노력한다. 우리는 여행자가 온대 기후의 지역에 가고자 할 때,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열대와 빙하지역을 거쳐야만 할 때 하는 일을 한다. 그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벗어던질 모피와 가벼운 옷을 몸에 지니고 있다. 그렇게 잘 무장한 적과 주먹다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일일 것이다.


우리의 전술(戰術)은 전술(前述)한 것에서 비롯한다. 우리는 아나키스트이며, 형용사 없는 (without adjectives) 아나키즘을 전도한다. 아나키는 원칙(axiom)이며 경제적인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다. 아나키가 진리인 이유는 경제적 문제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나키스트가 된다는 것은 모든 권위와 강요의 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어떠한 제도가 제안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기에 아나키를 최선의 방어체제로 간주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이는 우리가 경제적인 문제를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지만, 그것은 결정적 해결책에 대한 공헌으로서만 그러하다. 카베(Étienne Cabet), 생시몽(Henri de Saint-Simon), 푸리에(Jean-Baptiste Joseph Fourier), 로버트 오언(Robert Owen) 및 다른 이들에 의해 훌륭한 것들이 언급되어 왔다. 그러나 그들이 많은 문제들을 해명하기 위해 많은 일들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머릿속 개념에 사회를 가둬두고자 했기 때문에 그들의 모든 체제는 모습을 감추었다.


미래사회의 일반적인 묘사를 시작한 순간부터, 한편에서는 적들로부터 이의나 질문이 생긴다는 것을 기억하라. 반면, 완전하고 완벽한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망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라질 체제를 발명하고 만들어내는 데로 이어진다.


한 지역에는 스페인의 집산주의자(collectivist)가 존재하고 다른 지역에는 영국 및 북미의 상호주의자(mutualist)나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자(libertarian communist)가 존재하는 것처럼, 스펜서(Herbert Spencer) 및 다른 부르주아 사상가들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과 개인주의적-사회주의 아나키즘(나는 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예컨대 크로포트킨(Pyotr Alexeyevich Kropotkin)은 우리에게 “산업도시industrial town”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제도를 축소하는 것, 혹은 만약 그 개념을 선호한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생산하는 작은 공동체들이 모이는 것, 말하자면 현재의 문명 상태에서 벗어나 성서적 지상천국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다.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자이기도 한 말라테스타(Errico Malatesta)는 그들 간 제품을 교환하고 그 창조력을 더욱 높일 거대 조직의 규약을 지적하지만 19세기까지 펼쳐진 이 놀라운 활동은 모든 해로운 활동을 숙청했다.


각각의 강력한 지성은 그 징후를 드러내고 미래사회에의 새로운 길을 만들고, 어떠한 최면적인 힘(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을 통해 지지자들을 얻고,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특정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과 함께 이러한 사상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제안한다.


그렇다면, 스페인에 있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스스로를 단순히 아나키스트라고 부르는 데에 동의하자. 우리의 대화에서, 우리의 회의와 언론에서, 우리는 경제적인 질문들에 대해 논의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결코 아나키스트들 사이의 분열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선전이 성공적이기 위해, 사상의 보존을 위해 우리는 서로를 알고 서로를 바라볼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그룹을 만들어야 한다. 스페인에서는 아나키스트가 있는 모든 지역에 이러한 그룹들이 존재하며 그들이 모든 혁명운동의 원동력이 된다. 아나키스트들은 돈이 없고, 쉽게 그것을 찾을 수단도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매주 또는 매달 조금씩 기부금을 내고 모든 구성원 사이에 필요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다른 나라에도 우리와 같은 조직이 있다면 전 세계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룹에는 권한이 없다. 한 동지가 회계담당자로, 다른 한 명은 통신 담당 비서 등으로 임명된다. 정기회의는 매주 또는 격주로 열리며, 필요할 때마다 임시회의를 한다. 비용과 업무의 절약을 위해, 그리고 박해를 받을 경우의 신중한 대비책으로 전국적인 차원에서 위원회가 설립된다. 그러나 그것은 어떠한 주도권도 갖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무언가 제안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그룹으로 가야만 한다. 그것의 임무는 한 그룹에서 모든 그룹으로 전달된 결의안과 제안을 전달하고, 연락 목록을 유지하고, 그것들을 요청하는 필요한 그룹에 제공하고, 다른 그룹과 직접 연락을 취하는 일이다.


다음은 발렌시아 총회(the congress of Valencia)에서 받아들여지고 「반역La Révolte」에서 언급된 조직의 전반적 노선이다. 생산되는 이익은 막대하다―그리고 이것이 바로 아나키스트 사상의 불을 지핀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나키스트 조직으로서의 행동을 줄인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장담한다. 우리는 그것을 사상에 대해 떠들어대는 사상가들의 조직으로 바꾸어놓고, 분명 말다툼이나 해대는 형이상학자들의 협회로 퇴화시키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프랑스에서 발견하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당신의 활동을 이상에 대해 토론하는 데만 사용하다 보면 당신은 결국 말들에 대해서만 논쟁하고 말 것이다. 어느 쪽이든 같은 것을 원하지만 한쪽은 “이기주의자”(egoist)라 불리고 다른 한쪽은 “이타주의자”(altruist)라고 불린다. 어떤 이들은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자”(libertarian communist)라고 불리고 다른 이들은 “개인주의자”(individualist)라고 불리지만, 그들은 근본적으로는 같은 생각들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많은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과도한 노동시간을 강요당하며 가난하게 살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거의 들어보지도 못할 부흐너(Eduard Buchner), 다윈(Charles Robert Darwin), 스펜서(Herbert Spencer), 롬브로소(Cesare Lombroso), 막스 노르다우(Max Simon Nordau) 등의 책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가 이 책들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가 읽고 있는 것을 잘 이해하는 데 필요한 물리, 화학, 자연사, 수학의 예비학문이 부족하다. 그는 방법을 동원해 공부할 시간도 없고, 그의 두뇌도 이러한 연구들을 흡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단련되어 있지도 않다. [에밀 졸라(Émile Édouard Charles Antoine Zola)의 소설] 『제르미날Germinal』의 에스테반(Esteban)과 같이 지식에 대한 갈증이 그들의 손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든 삼켜버리는 예외도 있지만, 그것은 거의 혹은 전혀 유지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의 행동분야는 이들 그룹 안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대중들 사이에 있다.


우리가 공부하고 투쟁 계획을 준비하는 곳은 저항의 사회 속이다. 이러한 사회들은 부르주아지 체제 하에 존재할 것이다. 노동자는 작가가 아니며 언론의 자유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노동자는 연설가가 아니며 공개회의를 개최할 자유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다. 그들은 정치적 자유가 부차적인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그들의 경제상태를 개선하고자 하고, 그들은 모두 부르주아지의 멍에를 떨쳐내고자 한다. 이러한 이유로 한 사람에 의한 다른 사람의 착취가 있는 여전히 존재하는 동안에도 노동조합과 저항의 사회가 존재할 것이다. 이곳이 우리의 공간이다. 프랑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버리면 그룹들은 노동자들을 잠들게 하고 그들의 혁명적인 충동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과학적 사회주의”나 실천주의(practicism), 가능주의(possibilism), 협조, 평화적인 파업을 유지하기 위한 자본의 축적, 원조 요청, 당국의 지원 등을 노동자들에게 말하는 사기꾼들의 만남의 장이 될 것이다.


게다가 그들을 착취하는 사기꾼들과는 달리, 스페인의 경우처럼 아나키스트들이 이들 사회에서 가장 활동적인 구성원이라면, 보상 없이도 필요한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들 그룹들은 늘 우리 편이 될 것이다. 스페인에는 구성원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기 위해 매주 많은 양의 아나키즘 신문을 구입하는 그룹들이 있다. 우리의 출판물을 지원하고 수감자와 박해받는 다른 이들을 돕는 데 자금을 대는 것은 바로 이 그룹들이다. 우리는 이 그룹들에서 우리의 작업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사상을 위해 싸운다는 것을 보였다. 더구나 우리는 노동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심지어 우리가 아나키를 초래하는 데 유용하리라고 생각하면 노동자가 없는 곳이라도 간다. 이렇게 카탈루냐(그리고 스페인의 다른 지역들에서도 점점 더 그렇게 되고 있다)에는 우리가 아나키스트라거나 또는 심지어 진짜 아나키스트라고 묘사하지 않고도 그들이 서클, 문학회, 노동자 센터 등으로 부르는, 우리의 사상에 공감하는 그룹을 만들거나 또는 적어도 만드는 데에 도움을 주지 않은 자치단체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곳들에서 우리는 순수하게 아나키즘적인 회의를 실시하며, 우리의 혁명적인 작업을 다양한 음악적, 문학적 회의와 혼합하고 있다. 그곳에서, 커피 테이블에 앉아 토론을 하거나 매일 저녁 만나거나 도서관에서 공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