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혁명 이후 사회의 영속성 #author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SORTtopics 혁명이후, 사회, 크로포트킨 #date 1890년 10월 #lang en #pubdate 2021-03-24T06:35:18 자주 논의되는 질문이 하나 있다. “만약 내일 아나키스트 사회가 열린다면 그것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그리고 설혹 그것이 일정 기간 유지된다 해도, 최초의 혁명적 감수성과 각성상태가 가시고 나면 서서히 옛 모습이 다시 올라오지 않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히 필요하다. 특히 후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더욱 말이다. 아나키 상태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억압된 인민이 자유롭게 행동하며 모든 권위에 반항하는 것, 그리고 그를 억압하고 강제하는 모든 힘을 힘으로 회피하거나 극복하는 것이다. 각 개인의 자유는 그 스스로가 이를 확보할 때에 만들어진다. 우리는 특정한 절차를 밟으라고 명령 받는다. 우리는 특정한 것을 할 수 없도록 규정된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즐겁게 할 자유를, 타인을 도움으로서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즐겁게 할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강제로라도 만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적들은 우리가 반란한 근거인 물적 자유를 빼앗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힘에 우리의 힘으로 구멍을 뚫을 자유를 가질 것이다. 혁명은 원리가 될 이상과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있게끔 하는 힘에 관한 문제다. 한 가정에서건, 한 작업장에서건, 전 세계에서건, 이상이 의지가 되고, 힘이 물리적 우월성이 된다면, 혁명은 사실로 실현할 수 있다. 실질적 사실의 영역에서, 지역적 의지는 혁명화 된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인민이 구체제를 수호하는 적대적 권력에 의한 금지나 복수를 걱정하지 않고 완전한 자유 속에서 행동할 수 있게 한다. 우리의 혁명이 정당들이 예언하는 것처럼 혁명들과 다른 것은, 우리 혁명의 결과는 공식적인 적군을 진압한 후 공식적으로 선언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혁명은 자유로의 길에 서있는 모든 개인의 반란의 개별적 승리의 총합으로 구성된 사실이 될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모든 가시적 보복들은 혁명에 영향 받은 개인과 집단들의 혁명적 행동의 재개를 불러올 뿐이다. 그리고 이 방식으로 아나키 상태의 유지는 지금까지 흔들린 적 없는 조직적 저항을 마주해야 하는 아나키의 쟁취보다 더 쉬운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점진적이고 당장은 감지할 수 없는 구악舊惡의 재생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 되는 것이다. 우선, 구악들은 그로부터 영향을 받는 자들은 분명히 감지할 수 있음을 먼저 이야기하고 시작하도록 하자. 이들은 다른 곳에서는 누릴 수 있는 자유로부터 배제되고, 누군가가 사회로부터 최대한을 뽑아내고, 타인의 것들을 최대한 가져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수 없다. 이들은 이러한 일을 하는 자를 거부하고, 이 자에게 자기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을 거부하고, 각자의 소유 중 어떠한 것도 제공하지 않을 힘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구악에게 압력을 가하여 그가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게 할 힘이 있다. 이들은 실력을 행사할 힘이 있다. 이들은 그 힘을 개인적으로도, 집단적으로도 행사할 수 있다. 이들은 자유의 정신에 영감을 받은 반란군이었거나, 태어나서부터 자유를 누리는 데에 익숙한 이들일 것이다. 그러한 이들이 잘못되었다 느끼는 것에 대하여 소극적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이 문제 역시 아나키를 당장 유지하는 문제와 같은 방식으로 해결될 것이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라 해도, 이 구악이 오늘날 그러한 것처럼 일반적인 체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구악은 이미 심각한 투쟁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민에 대한 교육과 통신설비를 바라볼 때, 문제가 여기까지 논의한 것의 반만 왔다 해도 굉장한 일일 것이다. 현존 체계의 건설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이유들에 근거한 것이었다. 원시 공산주의는 모호한 무지에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인구에 비례한 자원은 현재보다 더 많았지만, 그들은 후대의 과학이 가져온 생산수단이 없었기에 덜 생산적이었을 뿐 아니라, 오늘날의 인민들보다 더 쉽게 이용당하였다. 자연적 조건은 코뮌주의적이었지만, 일부는 그들의 자원을 (전반적으로 환대의 분위기가 있어 그것을 강제하는 의식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타인과 호혜적으로 사용하기를 거부했고, 그들이 즐길 권리를 타인의 손에 내어주지 않았으며, 심지어 타인이 그들의 요구를 모두 충족할 만큼의 물자를 제공하도록 강제하기도 했다. 이러한 폭압에 대한 보호수단으로서 부족적部族的 소유가 최초로 등장하여 자연스러운 반동이 되었다. 그리고 이 소유로부터 군대가 등장했다. 군대 체계는 족장제를 만들었고, 족장제에서 국가와 사적 소유가 등장했다. 그리고 이로부터 봉건제가 나왔고 이윤 창출이 나왔으며, 이로부터 봉건영주와 상인들이 나왔으며, 이로부터 산업주의가 나왔고,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지고 통합된 것이 현대 자본주의라고 하겠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그 성격이 군대를 부리는 것에서 토지를 소유하는 것으로, 상업을 감독하는 것으로, 산업적 착취로, 대중을 현혹하는 것으로 그 성격을 바꾸어가면서도 계속하여 부를 훔치는 것의 동력이었다. 국가는 강도질의 기계 이상이었던 적이 없다. 국가가 행한 다른 것이 있다면 자유사상과 언론, 행동을 탄압한 것뿐이다. 소유의 전통은 코뮌주의의 본능을 충분히 말살하지 못했다. 인민들은 다른 부족의 소유를 강제로 수용하는 것이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코뮌주의의 본능이 약화한 것은 분명하다. 인민들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의무도, 관심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이 원인은 다음과 같다. 다른 부족들로부터 고립된 소수 공격적 부족들이 약탈자들을 보내어 다른 이들을 기습하고, 비공격적 부족들의 생존수단을 모두 빼앗는 경우가 있었기에, 결국 비공격적 부족들마저 외부인들을 의심과 질투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기적이고, 마지막 한 톨까지 재화를 빼앗거나, 동료의 불운에서 이익을 얻거나, 자기 약탈품을 요새로 지키는 자들이 가장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의 경우, 요새의 이웃에 살면서 요새 건설자들(가장 이기적이고, 질투심 넘치며, 의심 많은 자들이 가장 먼저 요새를 건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의 본성과 전통에 순응한 자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렇기에 인민들이 전리품을 위해 원시강도단에 가입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직접적인 폭력적 약탈에 대한 꿈을 꾸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지 보라. 심지어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나 방위군에 패배할 우려가 없는, 이를테면 아프리카를 보라. 약탈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대중이 보기에 불쾌한 것이다. 약탈의 난이도는 우리 조상들이 행할 때보다 쉬워졌지만, 가장 억압된 이 조차 생활의 최저 조건을 갖추기 쉬워졌다는 점에서, 인민의 물적 문화와 구성이 달라졌다는 점에서, 약탈은 역겨운 것이 되었다. 오늘의 조건은 과거와 매우 다르기에, 이전 사회의 조건을 만들어내었던 역사적 발전이 반복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사악이 등장하여 새 시대의 폭압적 체제가 된다고 해도, 그 본성은 현대에 관측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높아진 인구 밀도, 거의 전세계적인 통신 등은 소유와 통치가 현재의 위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반복하는 데에 있어 분명히 대응 불가능한 장애물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자유를 향한 열망이 단지 그 지지자들 사이에 형제애와 연대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정신적 성향 역시 바꾼다는 것은 드러난 사실이다. 그렇기에 모든 참된 아나키스트들은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타인의 행동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가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젊은 청년이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거나, 어머니가 자식을 고문하며 기쁨을 느끼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충동이 진화의 과정에서 천박하게 등장한 이기적 인간들보다 더 격렬하게 각성하여, 이기적 인간형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유전적으로 전파되어 더욱 견고하게 존재할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오늘날 인류를 억압하는 기구들이 온전히 청산되었을 때에 이전의 상태나 그와 유사하게 해로운 것이 등장할 것이라 의심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혁명의 성취가 인간 진보의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 믿을 이유는 충분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승리하여 자유를 얻은 자들과, 그 후 수 세대의 행복은, 투쟁하여 얻을 가치가 충분하다. 법령 따위로 후대의 조건을 조정할 수 없다. 우리의 후손들은 그 스스로 알맞은 조건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만약 우리 각각이 자유를 갈망하고, 자유를 쟁취하여 낸다면, 후세의 자유와 행복을 건설하는 데에 더 이상의 동기를 부여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