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회 서문


편집위원회는 P.A.크로포트킨의 강연문 「정의와 도덕」을 출판하면서 이 기회를 통해 몇 가지 사항을 언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크로포트킨의 서문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책자는 강연원고였다. 그는 1888년(혹은 1889년) 맨체스터의 〈안코츠 형제회〉에서 첫 번째 강연을, 다음에 약간 보완하여 〈런던윤리학회〉에서 두 번째 강연을 했다.

이 강연과 여기에 서술된 사상은 향후 크로포트킨의 모든 율리학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다. 또한 이 강연 이후 크로포트킨은 다른 연구들과 함께 도덕의 문제를 연구하였으며, 1904-1905년 사이에 이 주제를 다룬 두 편의 영어논문을 - 「현대의 윤리적 빈곤(The Ethical Need of the Present Day)」, 「자연의 도덕(The Morality of Nature)」 - 썼다. 두 논문은 영국의 월간학술지 『19세기(Nineteenth Century)』(1904년 8월호와 1905년 3월호)에 발표되었다.

크로포트킨은 건강과 여러 다른 절박한 작업들 그리고 갑작스런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때문에 도덕의 문제에 전념할 수 없었다. 비로소 1918년 여름 드미트로프시로 이사한 후에야 크로포트킨은 다시 도덕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인간 삶에서 도덕의 의미에 대한 이론 연구에 매진하게 되었다.

이 문제와 관련된 자료들을 검토하던 중 크로포트킨은 안코츠 강연 요약문과 〈런던윤리학회〉에서 행한 강연 원고를 발견하고, 이 원고를 인쇄 원고로 다듬어 독립된 소책자 형태로, 더 큰 규모의 윤리연구서 발행에 앞서 출판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러한 목적으로 그는 영어로 된 강연 원고를 러시아어로 번역하였고, ‘드미트로프, 1920년 1월.’이라 표기된 길지 않은 서문을 썼다.

크로포트킨은 1920년 내내 주로 ‘윤리학’을 연구하였으며, 사망하기 몇 달 전인 1920년 말에는 「정의와 도덕」을 한 번 더 출판하려 하였다. 그는 이 목적을 위해 원고를 다시 읽고 수정하였고, 이후 원고 표지에 ‘출판할 것’과 ‘1920년 12-15 사이에 최종 검토함’이라고 기록했다.

이렇게 크로포트킨은 최종적으로 이 소책자를 출판할 수 있게 준비하였다. 편집위원회는 고故 크로포트킨의 의지를 즉각 실현하고, 러시아 독자들이 위대한 혁명가이자 휴머니스트의 저작과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우리의 도덕적 의무라 생각한다.

더구나 현재의 매우 열악한 출판 상황 때문에 크로포트킨의 마지막 대작인 『도덕의 기원과 발전』 1권이 조만간 빛을 볼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고려할 때 더욱더 그러하다. 크로포트킨은 『도덕의 기원과 발전』에서 자신의 윤리학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그에 대한 근거를 밝히고 있다. 「정의와 도덕」은 크로포트킨 윤리학의 주요 요소들에 대한 압축적이며 평이한 설명이다.



저자 서문


나는 맨체스터의 〈안코츠 형제회〉에서 처음으로 「정의와 도덕」에 대해 강연하였다. 청중은 주로 노동자들이었고, 노동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이 형제회에서는 매년 겨울이면 일요일마다 내용이 충실한 강연회가 개최되곤 하였다. 그 결과 이들 청중 앞에서는 대중적인 설명을 유지하면서도 가장 진지한 문제들을 고찰할 수 있었다.

이 강연을 언제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은, 나의 강연 직전에 유명한 다윈주의자인 헉슬리(T.Huxley) 교수가 1888년 초 옥스퍼드 대학에서 모든 동료들을 경악하게 만든 강연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영국에서 다윈주의를 확산시킨 장본인이었다. 이 강연에서 다윈과는 반대로 그는, 인간의 도덕은 자연적인 기원을 가질 수 없으며 자연은 인간에게 악덕만을 가르친다는 것을 증명하였기 때문이었다.

헉슬리의 강연은 전반적인 놀라움을 야기하였고, 그에 대한 인상은 내가 도덕의 자연적 기원에 대한 강연을 준비할 때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의 강연 내용은 『19세기』 1888년 2월호에 게재되었고, 그 직후에 소책자로 출판되었다.

이년 혹은 삼년 후 나는 정의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약간 보완하여 〈런던윤리학회〉에서 같은 내용의 강연을 하였다.

영어로 썼던 상세한 강연 요약문, 그리고 안코츠 강연 원고의 몇 부분, 그리고 또 윤리학회 강연을 위해 보완한 내용이 남아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러시아어로 정리하여 이제 출판하게 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나는 중단했을 때도 있지만, 늘 도덕이론 강연에서 언급한 견해들 중에서 몇몇을 과감하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강연문을 안코츠의 청중을 위해 준비한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심하였다. 다만 〈런던윤리학회〉에서의 강연을 위해 작성했던 내용으로 〈안코츠 형제회〉 강연문을 보완하였다.


P. 크로포트킨

드미트로프

1920년 1월



친구 그리고 동료 여러분!

「정의와 도덕」을 우리 대화의 주제로 정했을 때, 물론 나는 여러분에게 도덕적인 설교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목적은 완전히 다릅니다. 나는 여러분 앞에서, 지금 사람들이 인류의 도덕개념의 기원, 그 개념의 참된 근거와 지속적인 발전을 어떻게 이해하기 시작했는가를 분석하고, 이 도덕개념들의 지속적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을 탐구하기를 원합니다.

그런 연구는 특히 오늘날 필요합니다. 아마 여러분들 자신도, 우리들이 사회관계의 체계에서 어떤 새로운 것이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선진 민족들 사이에 최근 실현된, 지식과 산업의 빠른 발전은 가장 중요한 사회적 문제들의 해결을 지연시킬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새롭고 더 정의로운 원리 위에서 삶을 개조할 요구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그런 요구가 성숙된다면, 도덕의 기본개념들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옳다고 생각될 것입니다.

다른 가능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시기의 사회제도, 관습, 습관과 같은 사회체제는 고유의 도덕 체계를 사회 속에 유지합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사회계층들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본질적 변화는 이에 상응하게 기존 도덕개념들을 변화시킵니다.

서로 다른 발전단계에 있는 민족들의 삶을 보도록 합시다. 오늘날의 유목민들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몽골족, 퉁구스족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야만족이라고 부르는 종족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양을 도살하여 고기를 먹을 때, 모든 마을 사람들을 공동식탁에 초대하지 않으면, 수치스런 행동으로 간주될 것입니다. 나는 시베리아 오지와 사얀 산맥의 탐사여행을 통해 얻은,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아프리카의 아주 가난한 야만인들인 호텐토트족을 예로 들어봅시다. 그들 중 하나가 숲에서 음식을 먹을 때 “나와 식사를 함께할 사람은 없습니까?”라고 세 번 크게 외치지 않으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 사이에서 범죄로 생각되었습니다. 다윈도 파타고니아[1]의 가장 낮은 발전 단계의 야만인들 사이에서 그런 특성을 발견하고 놀란 사례가 있습니다. 다윈이 그들 중 하나에게 아주 작은 음식 조각을 주었는데, 그들은 똑같은 크기로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었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모든 곳에서, 유목민들 사이에는 법의 역할을 하는 관습들이 있습니다. 가령 누군가 나그네에게 잠자리 제공을 거부해서 그가 배고픔과 추위로 죽게 되었다고 합시다. 사망자의 가족들은 잠자리 제공을 거부한 자를 살인자로서 추적하여, 그에게 혹은 그의 가족들에게 살인의 경우에 관습이 부과하는 벌금을 요구할 권리를 갖습니다.

도덕에 대한 이런 여러 개념들은 씨족제도에서 마련되었습니다. 우리의 경우 이 관습들은 국가로 살기 시작한 이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도시나 마을에서는 순경이나 경찰이 집 없는 유랑객을 보살피고, 길거리에서 얼어 죽을 수 있는 경우에는 그를 관할시설로, 수용소 혹은 노동자 숙소로 데려갈 의무를 갖습니다. 물론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지나는 사람에게 잠자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즉 이것은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이렇게 하는 것을 의무로 여기지 않습니다. 깊은 겨울 밤 집 없는 행려자가 배고픔과 추위로 안코츠 거리 중 한 곳에서 사망하는 경우에는 그의 가족들 중 누구도 여러분들을 살인자로 추적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행려자에게는 가족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씨족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씨족은 가족들로 구성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씨족제도와 국가의 장점들을 비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나는 인간의 도덕개념들이 살고 있는 사회체제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특정 시기 특정 민족의 사회체제와 도덕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성이 사회에 생길 때마다, 도덕 문제에 대한 활기찬 검토가 시작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통용되는 도덕 개념들에 대한 고민 없이, 사회체제의 개혁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극도로 가벼운 처사일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정치와 경제 문제에 대한 우리의 모든 논의의 토대에는 도덕 문제가 놓여있습니다. 공산주의에 대해 논의하는 경제학자를 예로 들어봅시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기아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공산주의자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왜 아니지요? 일하기를 중단한다면 총체적인 굶주림에 빠진다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까요? 모든 것은 어떤 공산주의를 도입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도로포장, 거리조명, 전차, 도시교육시설 등의 형태로, 유럽과 미합중국의 도시 생활에 얼마나 많은 도시공산주의가 도입되었는지 보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순수 경제적인 문제가 어떻게 인간의 도덕적 본성에 대한 논의로 귀결되는지를 보고 있습니다. 인간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 능력이 있는지를 묻습니다. 문제는 경제영역으로부터 도덕영역으로 이동합니다.

아니면 사회생활에서의 새로운 제도에 대해, 예를 들어 아나키즘 이론 혹은 전제국가에서 입헌국가로의 이행에 대해 논의하는 두 정치가를 보도록 합시다.

이미 수립된 권력을 옹호하는 학자는 말합니다. “무슨 그런 말을. 사람들에게 재갈을 물릴 강력한 손이 없으면, 모두가 강도가 될 것입니다.” 그에게 다른 학자가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감옥의 공포가 없다면, 당신도 강도가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하겠군요?” 결국 사회의 정치체제에 대한 문제는 인간의 도덕적 성격에 대한 제도의 영향이란 문제로 귀결됩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도덕문제에 대한 관심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또한, 내가 여러분과 함께 윤리에 대해, 즉 인간의 도덕개념의 기초와 기원에 대해 고찰하려고 결심한 이유입니다.

최근에 매우 중요한 이 질문과 관련된 연구들이 적지 않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것들 중에서 나는 얼마 전 저명한 다윈주의자이자 교수인 헉슬리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행한 강연 「진화와 도덕」만을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이 강연을 알고 나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헉슬리는 강연에서 도덕의 기원에 대한 문제를 아주 충분히 분석하였기 때문입니다.[2]

헉슬리의 강연은 언론에서 일종의 다윈주의 성명서로, 현대과학이 도덕의 토대와 기원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결론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우리 시대에 이르는 거의 모든 사상가들이 연구했던 문제입니다.

이 강연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강연이 저명한 학자이자 다윈 진화이론의 중심 해석자들 중 하나의 견해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자는 강연에 멋진 문학형식을 가미하였으므로, 사람들은 최고의 영국 산문 작품을 대하듯이 이 강연에 반응하였습니다. 주된 의미는, 유감스럽게도 강연이 요즘 지식인 계급 사이에 만연된 견해들을 표현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견해들을 이 계급 대부분의 종교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헉슬리가 강연에서 끊임없이 반복하는 핵심사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에 따르면, 세계에는 두 종류의 현상이 완성되고 있으며, 자연의 우주적 과정 그리고 윤리적, 즉 도덕적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주적 과정’은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을 포함하는 생명적인 그리고 비생명적인 자연의 모든 삶입니다. 이 과정은 바로 “이와 발톱을 드러낸 혈투”라고 헉슬리는 주장합니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모든 도덕원리들을 부정하는, 필사적인 경쟁”이란 것입니다. “고통은 감정을 소유한 모든 생물의 운명이다. 고통은 우주적 과정의 본질적 부분을 이룬다.”고 합니다. 호랑이와 원숭이가 갖고 있는 생존경쟁 방법들은 이 과정의 참되고 특징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서도 자기주장, 빼앗을 수 있는 것 모두를 빼앗는 비양심적 강탈,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집요한 소유가 가장 적합한 경쟁수단이 됩니다. 이 소유는 생존경쟁의 정수를 이룹니다.

우리가 자연에서 얻는 교훈은 결국 ‘유기적 악이란 교훈’입니다. 자연이 도덕과 관련이 없다고, 즉 자연은 도덕을 알지 못하며 도덕적 질문에 대해 어떤 답도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연은 명백히 비도덕적이라는 것입니다. “우주적 자연은 절대로 도덕의 학교가 아니다. 반대로 자연은 모든 도덕에 적대적인 것들의 총사령부다.”(소책자로 출판된 헉슬리의 첫 번째 강연문 27쪽)란 것입니다. 때문에 자연에서 어떤 가르침도 끌어내서는 안 되며, 자연은 “ 때문에 우리가 선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우리가 악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31쪽)고 합니다. 결국 “도덕적 관점에서 더 좋은 것, 우리가 덕 혹은 덕행이라 부르는 것을 실현하기 원할 때, 우리는 모든 관계에서 원시적 행동노선을, 우주적 생존경쟁에서 성공으로 안내하는 행동노선을 따르도록 강요받는다.”(33쪽)는 것입니다. 헉슬리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이 자연의 삶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가르침은 바로 이러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유기적 사회를 이루어 살기만 하면 어디서인지 모르지만, 뜻밖에도 사람들 사이에 ‘윤리적 과정’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러한 ‘윤리적 과정’은 자연에서 배운 모든 것과 무조건 대립합니다. 이 과정의 목적은 모든 존재조건들의 관점에서 가장 적자인 사람들의 생존이 아니라, “도덕적 관점에서 최상인”(33쪽) 사람들의 생존이라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과정은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자연으로부터 유래하지는 않습니다. 이 과정은 이제 법과 관습을 통해 발전하기 시작하고, 그것으로부터 우리의 도덕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도덕적 과정은 어디로부터 탄생했을까요?

인간의 도덕 원리들은 입법자에 의해서 부여되었다는 홉스[3]의 견해를 반복하는 것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헉슬리는, 입법자는 자연의 관찰로부터 그런 생각을 차용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 이전의 동물사회에도, 원시인들에게도 윤리적 과정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헉슬리가 옳다면 이것으로부터 윤리적 과정, 즉 인간의 도덕 원리는 절대로 자연적 기원을 가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기원의 출현에 대한 유일하게 가능한 설명으로는 결국 초자연적 기원만이 남습니다. 가령 선행, 우정, 상부상조, 충동과 욕망의 자제自制와 희생과 같은 도덕적 습관들이 절대로 인간 이전의 혹은 원시적 군집상태로부터 발전할 수 없었다면, 남는 것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기원을 초자연적인, 신적인 계시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다윈주의자이며 자연과학자인 헉슬리의 결론은 그를 불가지론자로, 즉 무신론자로 알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결론은 불가피합니다. 헉슬리가 자연의 삶으로부터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도덕적 가르침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주장했을 때, 남는 것은 하나였습니다. 즉 도덕의 초자연적 기원을 인정하는 것뿐입니다. 때문에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며 동시에 저명한 자연과학자인 조르쉬 미바르트(George Mivart)는 헉슬리의 강연문 출판 이후 즉시 『19세기』에 논문 「헉슬리씨의 진화」를 게재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강연자가 교회의 가르침으로 귀환한 것을 환영하였습니다.

미바르트는 전적으로 옳습니다. 사실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윤리적 과정’이 자연에 없다고 주장하는 헉슬리가 옳든지, 아니면 다윈이 옳을 것입니다. 자신의 두 번째 저서인 『인간의 유래』[4]에서 다윈은 베이컨(F.Bacon)과 오귀스트 콩트(A.Comte)를 따라, 동물의 무리에서는 군집생활의 결과로 사회적 본능이 강하게 발전하며, 그 결과 본능은 가장 지속적인 속성이 되고, 이 본능은 자기보존의 본능을 압도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5] 샤프츠베리를 따라 다윈이 보여준 것처럼, 이 본능은 원시인의 경우에도 강력했습니다. 또한 원시인에게서 이 본능은 언어, 전승, 습득된 관습 덕분에 더욱더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관점이 옳다면, 인간의 도덕원리는 거의 모든 생물의 속성이며 모든 살아있는 자연에서 관찰되는 사회성의 본능이 지속적으로 발전된 바로 그것이라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인간에게서 이 본능은 이성, 지식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관습의 발전과 함께 점점 더 발전합니다. 그리고 언어능력과 그 결과인 예술과 문자사용은 인간이 생활의 경험을 축적하고 상호부조와 연대의 관습을, 즉 모든 사회구성원의 상호의존의 관습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인간의 의무감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이렇게 해서 분명해집니다. 칸트는 의무감을 절묘한 문장으로 서술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골몰하면서도 자연법칙에 맞는 설명을 발견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자연을 가깝게 알고 있던 다윈은 도덕 감정을 그렇게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물론 자연의 참된 삶을 보지 않고, 박물관의 박제를 통해서만 동물의 세계를 연구하며, 우리의 암울한 분위기에 따라 그것에 대해 서술한다면, 그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어떤 비밀스런 힘 속에서 도덕 감정의 해명을 구하는 것뿐입니다.

실제로 헉슬리는 그런 상황에 처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참 이상한 일이지만, 강연 후 몇 주가 지나 강연문의 소책자를 발행하면서 헉슬리는 보충 설명을 했는데, 이것은 서로 대립하는 자연적인 그리고 도덕적인 두 ‘과정’이라는 기본개념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보충설명에서 그는, 동물사회에서 실천되는 상호부조 속에서, ‘윤리적 과정’의 원리를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강연에서는 이 원리의 존재를 열렬히 부정했었습니다.

헉슬리가 왜 몇 주 전에 했던 강의의 본질을 전면 반박하는 보충 설명을 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다만 가정할 수 있는 것은, 개인적으로 그의 친구인 옥스퍼드대 로마니스(G.Romanes) 교수의 영향 때문일 것이란 사실입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로마니스 교수는 당시 동물의 도덕에 관한 연구 자료를 준비 중이었고, 헉슬리는 위원장으로서 옥스퍼드 대학에서 ‘로마니스’ 강연을 했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그의 친구들 중 누군가가 영향력을 행사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놀라운 변화의 원인을 분석하지는 않겠습니다. 훗날 헉슬리의 전기작가가 이것을 연구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연에서 도덕의 발단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사회를 이루며 사는 거의 대부분의 동물들 사이에서 사회적 삶은 그들의 본능의, 즉 유전된 습관들 그리고 도덕적 성격의 필연적 발생과 발전에 이르게 합니다.

그런 습관들이 없다면 사회적 삶은 불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새 그리고 보다 고등동물인 포유류에서 도덕개념의 발단을 찾았습니다.(곤충류의 발전에서 우위를 점하는 개미, 땅벌, 꿀벌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것들에게서 우리는 이미 필수적인 것이 되어버린, 사회를 이루며 사는 습관과 또 다른 습관을 찾고 있습니다. 두 번째 습관은 ‘남들이 너에게 행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너희도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사회의 이익을 위한 자기희생을 그들 사이에서 아주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앵무새 무리 속에서 젊은 앵무새가 다른 앵무새 둥지에서 새끼 암컷들을 끌어내면, 다른 앵무새들이 그 놈을 공격합니다. 봄에 아프리카에서 우리나라로 돌아온 제비가 지난해에 남의 것이었던 둥지를 차지하는 경우, 그 장소의 다른 제비들이 그놈을 둥지에서 던져 버립니다. 한 무리의 펠리컨이 다른 무리의 물고기 사냥 지역에 침입할 경우에 후자는 전자를 쫓아 버립니다. 그리고 또 여러 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지난 세기에 동물학의 위대한 창립자들과 현대의 많은 관찰자들은 유사한 사실들을 다수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한 번도 자유로운 자연 속에서 연구하지 않은 동물학자들뿐입니다.[6]

때문에 사회성과 상호부조의 관습은 동물세계에서 만들어졌으며, 원시인들은 동물의 삶에 나타난 이 특징을 이미 아주 잘 알고 있었다고(가장 원시적인 민족들의 전설과 신앙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듯이) 단언할 수 있습니다.[7] 지금까지 남아있는 원시 인간사회들을 연구할 때 우리는 그들 속에서 사회성의 관습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나아가 연구 정도에 따라 우리는 개인의 횡포를 억제하고 평등의 원리를 확립하는 일련의 풍속과 관습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평등은 씨족 관습의 핵심 토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싸우다 씨족의 다른 구성원이 피를 흘리게 만들면, 그도 동일한 양의 피를 흘려야만 합니다. 그가 같은 씨족 혹은 다른 씨족의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면 다친 사람의 친척들 중 하나는 가해자에게 혹은 가해자의 씨족 중의 하나에게 동일한 크기의 상처를 가할 권리를 갖거나, 심지어 그렇게 해야 할 의무를 갖습니다. 성서의 규칙인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상처에는 상처, 생명에는 생명, 그러나 그 이상은 아니다.”는[8] 여전히 씨족제도 속에 살고 있는 모든 민족들에게서 지금까지도 성스럽게 준수되는 규칙입니다. ‘이에는 눈’ 혹은 ‘가벼운 상처에는 치명적인 상처’는 평등과 정의에 대한 통용되는 표상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이런 개념은 많은 원시종족의 의식 속에 아주 뿌리 깊게 박혀 있고, 그 결과 사냥꾼이 인간과 유사한 곰과 같은 동물의 피를 흘리게 만들면, 사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의 정의를 위해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자기 피를 조금 흐르게 합니다. 그런 많은 관습들은 문명사회에도 높은 도덕 규칙들과 나란히 과거의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9] 그러나 씨족 제도에서 다른 개념들도 조금씩 발전합니다. 모욕을 가한 사람은 이제 중재를 모색해야 하고, 그의 친척들은 중재자로서 나서야 합니다.

정의, 즉 평등에 대한 원시적 표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그 표상은, 네가 그런 대접을 바라지 않는 것처럼, 너도 씨족의 구성원에게 절대로 그런 대접을 하지 말라는 바로 그 의무를 표현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모든 도덕의 그리고 도덕에 대한 모든 학문 즉 윤리학의 제 1 기본원리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가장 오래된 원시종족들 속에서 이미 우리들은 훨씬 더 높은 원리를 찾고 있습니다. 알류트[10]를 예로 들어봅시다. 이들은 가장 오랜 원시종족인 에스키모 족의 한 분파입니다. 탁월한 인물인 베냐민 선교사의 업적 덕분에 우리는 이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11] 우리는 이 규칙들을 빙하기 이후 형성된 인간의 도덕개념 모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유사한 규칙들을 우리는 다른 원시종족들에게서도 발견합니다. 이들 규칙에는 단순한 정의의 경계를 벗어나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실제로 알류트에게는 두 종류의 규칙이 있습니다. 의무규정과 단순한 조언입니다. 내가 이 강연의 서두에서 상기시켰던 규칙들처럼, 첫 번째 범주는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는 것, 즉 정의·평등권의 원리에 기초합니다. 여기에 속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요구사항들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씨족의 구성원을 살해하거나 상해를 입혀서는 안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곤궁에 빠진 씨족의 구성원을 돕고 한 조각 음식도 그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모든 공격으로부터 그를 방어해야 합니다. 씨족의 신을 존중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규칙들은 환기시킬 필요도 없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것들은 씨족 생활의 토대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엄격한 규칙과 함께 알류트와 에스키모들에게는 사전에 규정되지 않고, 단지 조언으로만 존재하는 일정한 도덕개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을 해야만 한다.’와 같은 표현형식으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이 행해져야 한다.’는 의미를 갖는 그리스 표현형식(den)[12]도 적합하지 않습니다. 조언들이 이 범주에 들어옵니다.

알류트는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 말합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 굶주린 사냥에서, 충분히 강하지 않고 나약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인 것입니다.

강한 바람이 불 때 바다로 나가기를 두려워하거나 부둣가의 배에서 내동댕이쳐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바꿔 말하면, 겁쟁이가 되는 것, 솜씨 없는 것, 바람과 싸울 줄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인 것입니다.

동료와 사냥할 때, 그에게 더 좋은 몫을 챙겨주지 않는 것은, 바꿔 말해서 욕심을 보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물건을 교환할 때 물건에 가격을 매기는 것은 아주 부끄러운 일입니다. 정직한 판매자는 구매자가 제안하는 가격에 동의합니다. 이것은 적어도 알래스카의 알류트들, 북동 시베리아의 추크치[13] 족 뿐만 아니라 태평양 군도의 원주민들 사이에서도 공통되는 규칙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강하고, 솜씨 있고, 관대하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하는 알류트들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그들은 ‘약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즉 지혜 그리고 육체과 관련해서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지 않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그들은 바람직한 평등의 원리에 혹은 적어도 종족의 모든 남성들 사이에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되는 등가의 원리에 적합하지 않는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나약함을 보이지 말라. 나약함은 너에게 관용을 베풀어주기를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소망은 에스키모 여인들이 긴 북방의 밤에 어린 아이들에게 불러주는 노래에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노래는 위에서 서술한 사례에서 요구되는 수준을 보여주지 못하는 남자들, 혹은 충분한 근거 없이 화를 내는 남자들, 대체로 다른 사람들과 쉽게 사귀지 못하고 비웃음을 당하는 남자들을 조롱합니다.[14]

그렇게 단순한 평등 혹은 평등권의 표현인 정의 원리를 보완하기 위해 알류트들은 일정한 소망, 일정한 이상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씨족의 모든 구성원들이 가장 강한 자, 가장 현명한 자, 가장 덜 말썽 일으키는 자, 가장 관대한 자와 동등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표현합니다. 아직 규칙은 아니지만 이러한 행동방식은 단순한 평등권보다 더 높은 무엇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도덕적 완성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들은 모든 원시종족들에게서 이런 특징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동물들 사이에서 가장 강한 수컷이 때로 자신을 희생하면서라도, 암컷들과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던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생활환경에서 나온 이야기와 노래에서 종종 목숨을 무릅쓰고 자연 혹은 적과 싸워 종족을 구해낸 사람들을 찬양합니다. 그들은 용기, 사랑, 솜씨, 기지, 민첩한 행동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사람들에 대한 긴 노래를 만들어 부릅니다. 이들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헉슬리가 말한 ‘윤리적 과정’은 동물세계에서 시작되어 인간에게로 이동하였습니다. 여기서 그것은 전설, 시, 예술 덕분에 점점 발전하여 인류의 개별 ‘영웅들’ 속에서 그리고 인류의 몇몇 스승들 속에서 최상의 수준에 도달하였음은 명백합니다. 동족의 이익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태도는 모든 민족의 시에서 찬양을 받았고, 후에 고대의 종교로 변하였습니다. 씨족의 의무적인 복수 대신에 원수에 대한 용서가 추가되어 이 태도는 불교와 기독교의 토대가 되었고, 무엇보다 기독교가 국가종교가 되기 전까지,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과 구별시켜주는 이 기본 입장을 거부하기 전까지 기독교의 성공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도덕개념들은 전체 자연에서 그리고 후에는 인류에게서 발전하였습니다.

고대에서 오늘날까지, 사상가들의 저술에 나타난 발전에 대해 여러분께 짧게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단념해야 하겠습니다. 한 번의 강의로는 그것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9세기까지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자연과학적 설명은 여전히 불가능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물론 스피노자(B.Spinoza)가 그에 접근했고, 이미 베이컨 역시 명료하게 말했습니다. 대신 이제 우리는 잘 검증된 자료들을 근거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즉 도덕개념들은 생물들의 존재 자체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그것이 없다면 생물들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진보적 발전 혹은 단순 유기체로부터 인간에 이르는 진화처럼 그러한 개념의 발전은 불가피합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군집성, 사회성 또 필요한 경우에는 자기희생의 단초를 갖지 않았다면 이 발전은 완성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주장의 증명에 필요한 자료들을 아주 많이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윈은 도덕의 기원에 대한 논문에서, 『인간의 유래』[15]라는 저서에서 카라반의 개 두 마리와 이집트의 개코원숭이 무리 사이의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였습니다.(이 싸움은 동물학자인 브렘[A.Brehm]이 보고한 것입니다.) 카라반이 접근하자 원숭이 무리는 산의 가파른 바위 위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위험을 벗어나 바위 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든 수컷들은 개를 발견하자 밀집 대형을 이루어 내려와 개들에게 맹렬히 달려들었습니다. 개들은 놀라 주인에게로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다시 원숭이를 공격하라고 독려를 받은 개들은 무리와 떨어져 바위에 앉아있던 반년 된 새끼 원숭이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때 늙은 수컷이 혼자 천천히 새끼에게로 가서, 개를 위협해서 쫓아 버리고 새끼의 등을 쓰다듬고 천천히 자신의 무리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나이든 수컷들은 이 경우에 어떤 원리 혹은 명령에 따라 그렇게 행동해야 했는지를 자문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든 군집 동물들 사이에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 동정 때문에, 군집성과 사회성의 감정에 따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힘과 자신의 용기에 대한 의식 때문에 동료들을 구하러 갔던 것입니다. 매우 전도유망한 자연과학자인 세인츠베리(Saintsbury)도 그런 사례를 보고하였습니다. 그는 어느 날 노쇠한 눈먼 펠리컨을 발견했는데, 다른 펠리컨들이 물고기를 물고 먹이를 주러 날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다윈도 이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같은 종의 이익을 위해 동물들이 희생한다는 사실은 지금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개미, 알프스 산양, 초원의 말, 모든 새 등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탁월한 자연연구자들이 많은 사례를 제공하였으며, 그 결과 자연연구에서 이제 우리는 도덕감정과 개념의 출현과 발전을 논의하기 위한 확고한 토대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세 기본요소, 도덕의 세 구성부분을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회성의 본능입니다. 이로부터 다음 단계의 습관과 풍속이 발전합니다. 둘째는 정의에 대한 개념입니다. 이 둘을 토대로 도덕의 세 번째 요소가 발전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옳지는 않지만, 우리가 헌신 혹은 자기희생, 이타주의, 관용이라 부르는 감정입니다. 이것은 이성에 의해 확인되는 감정으로, 본질상 도덕감정이라 불러야 마땅한 것을 구성합니다. 모든 인간 사회에서 전적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이 세 요소들로부터 도덕이 수립됩니다.

인간이 파괴한 개미총으로부터 개미들이 서로 도와 유충을 구출할 때, 작은 새들이 맹금을 쫓기 위해 날아들 때, 철새들이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저녁마다 일정한 장소에 모여 나는 연습을 할 때, 수천 마리의 산양 혹은 사슴이 함께 이동하기 위해 넓은 지역으로부터 모여들 때, 한마디로 말해서 자연과의 투쟁에서 심지어 열악한 조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습관과 관습이 동물들 사이에 나타날 때, 이 모든 경우에 발전된 본능이 필연적으로, 불가피하게 드러납니다. 이러한 발전된 본능이 없다면 어떤 종류의 동물들은 멸종했을 것입니다. 사회성은 생존경쟁에서 필수적인 기본 형식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다윈주의자들 대부분은 바로 이런 자연의 법칙을 간과하였습니다. 아마 다윈 자신이 첫 번째 저서인 『종의 기원』에서 이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않았고, 두 번째 저서인 『인간의 유래』에서만 언급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본능 속에 도덕의 제1원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모든 고상한 감정과 충동은 바로 이로부터 유래하여 발전되었습니다.

사회를 이루어 살았기 때문에, 인간 사이에서 사회성의 본능은 발전을 계속하였습니다. 자연 속에 살면서 최초의 원시인들은 협력하는 사회를 이루며 사는 동물들이 자연과의 투쟁에서 더 잘 살아남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동물들의 사회적 삶이 자연과의 투쟁을 쉽게 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의 관찰은 속담, 민담, 노래, 종교 그리고 몇몇 사회적 동물들의 신격화로 구비전승 속에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사회성의 본능은 씨족에게서 씨족으로 전승되었고, 법으로 강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강연의 서두에서 언급한 씨족 제도의 규칙들을 만들기 위해서 사회성의 본능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원시인들에게서 더 의식적이고 더 고상한 새로운 개념들이 조금씩 발전하였습니다. 그것은 정의에 대한 개념으로, 도덕의 계속적인 발전을 위해 기본적이며 필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라에게도 하지 말라.’라고 말할 때, 우리는 정의를 요구합니다. 정의의 본질은 모든 사회 구성원의 평등한 가치, 그 결과로 나오는 그들의 평등권, 그들이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요구함에 있어서의 평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그러한 평등의 인정은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두려는 요구의 거부를 포함합니다.

그런 평등 개념이 없다면 도덕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프랑스어와 영어에서 정의와 평등은 동일한 어원의 단어로 표현됩니다. 그것은 équité(정의)와 égalité(평등), equity(정의)와 equality(평등)입니다. 그런데 이 개념은 이미 군집 동물들에게서 나타났습니다. 수컷의 지배가 몇몇 동물군에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외의 다른 동물들에게는 이것이 없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칼 그로스(K.Groos)의 저서 『동물의 유희』를 통해 알고 있는 것처럼 대부분의 동물군에서는 젊은 세대의 놀이가 강하게 발전했습니다. 새끼염소들과 다른 동물들의 놀이를 관찰할 때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이 놀이에서 평등권의 엄격한 준수가 언제나 요구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어미의 관심을 더 많이 갖지 못하게 하는 어린 동물새끼들에게서도 같은 것이 발견됩니다. 우리가 보듯이, 정의의 감정은 철새들에게서도 관찰됩니다. 철새들은 각자가 지난해 만들었던 둥지로 돌아갑니다. 그러한 사례들을 많이 제시할 수 있습니다.

각 지역의 권력자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인간들 사이에, 심지어 가장 초기 원시인들 사이에서도 정의에 대한 개념은 더욱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미 두세 가지 예를 들었고, 이제 한 가지만 덧붙이려고 합니다. 학자들은 씨족사회를 연구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제는 중앙아프리카에서 지금도 볼 수 있는 것과 유사한 원시왕조를 더 이상 씨족사회와 혼돈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원시종족의 평등권에 대한 사실들을 모아 여러 권의 책을 쓸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원시종족들에게도 어느 정도 권력을 가진 군인, 지도자, 마법사와 샤먼들이 있었다고 말입니다. 실제로 인간사회에서 특정 권한을 소유하려는 열망은 아주 일찍부터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는 ‘최고 권력’을 찬미하려는 목적으로 그런 사실들만 강조합니다. 때문에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는 불평등이 어떻게 창조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은 태동하던 권리의 불평등과 모든 곳에서 완강하게 싸웠습니다. 때문에 옳은 역사는, 개별적인 사람들이 보통의 수준보다 더 높은 계급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한, 그리고 어떻게 대중들이 이런 시도에 저항하여 평등권을 지켜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씨족사회의 모든 제도들은 평등권을 수립하려는 목적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역사가들은 이러한 점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과 인간사회의 형식에 대한 두 새로운 학문인 인류학과 인종학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19세기 중반까지, 인간의 원시 제도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씨족사회에 대한 많은 사실들을 수집한 지금, 정의에 대한 기본개념은 최초의 원시인들에게서 이미 찾아볼 수 있으며, 최초의 원시사회인 씨족 체제의 규범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는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는 과학에 이런 질문을 제기하려 합니다. “정의의 기초는 인간의 본성 자체에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정의는 우리 사유의 생리학적 특성을 표상하는 것이 아닌가?”

형이상학의 언어로 말하면, 정의에 대한 개념은 기본 ‘범주’ 즉 우리 이성의 기본 능력을 표상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이성이 평등권을 찾는 이유는 우리의 사유기관들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두 반구로 구성된 뇌가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연구하면 이 문제에 대한 긍정적인 답이 나올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의 사유가 수학에서 등식이라 알려진 형식 속에서 지속적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은, 즉 이 형식 속에서 우리가 발견한 물리적 법칙들이 표현된다는 사실은 나의 제안에 상당한 신빙성을 제공합니다. 우리가 어떤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우리의 이성 속에서 일종의 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 대화에서 찬과 반에 대한 결론이 내려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몇 생리학자들은 여기에서 우리 뇌 구조의 대칭성은 아니라고 해도, 여하튼 그것의 복잡한 구성의 발현을 봅니다.[16]

아무튼 정의의 생리학적 개념에 대한 나의 제안이 옳은가 혹은 그른가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의는 도덕성의 기본개념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모두에 대한 동등한 관계, 즉 정의 없이는 도덕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윤리학에 대해 집필한 사상가들 사이에 놀라운 견해차가 지배하고 있다면, 사상가들 대부분이 정의를 도덕의 제1근거로 인정하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데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한 인정은 인간의 정치적, 사회적 평등권의 인정이 될 것이고, 그 결과 그것은 계급적 구분을 거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도덕에 대해 쓰는 대부분의 사상가들은 이러한 사실에 승복하려 하지 않습니다.

바람직한 사회체제에 대한 저서에서 노예제도를 유지한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사도 바울에 이어 18세기와 19세기의 많은 저자들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가 불평등을 옹호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부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프랑스 혁명이 자유와 더불어 평등과 형제애를 기치로 삼은 후에도, 영국의 고드윈(W.Godwin)과 프랑스의 프루동(P.-J.Proudhon)이 정의를 도덕적, 사회적 체제의 초석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들은 예외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17]

그러나 여전히 정의는 도덕의 모든 것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의는 서비스의 교환에서의 평등일 뿐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이것은 상업적 부채나 신용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이 도덕의 구성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정의 그리고 그것의 필연적 결과인 평등권이 사회체제의 기초가 될 때, 모든 인간 삶에서 심오한 변혁이 완성될 것입니다. 실제로,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대에 유대인들에게서 시작되어 기독교의 형태로 나타난 민중운동, 그 다음으로 종교개혁 시기의 민중운동들, 마지막으로 프랑스 대혁명, 이 셋은 모두 평등권과 평등을 추구하였습니다.

입법을 통해 사회 모든 구성원의 평등권이 선포된 것은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서도 사회생활에서의 평등권 원리의 실현은 아득히 멀리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각각의 민족은 계급으로 나뉘어 있으며, 한 계층이 다른 계층 위에 존재합니다. 러시아에서 1861년까지, 북미에서 1864년까지 존속했던 노예제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영국에서 1797년까지 존속했던 광부들과 관련된 농노법을 생각해 보십시오. 영국에서 ‘구빈원救貧院의 도제들(workhouse aqqrentices)’이라 불리는 극빈 아동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18세기 말까지 특수 에이전트들은 영국 전역을 돌면서 극빈 아동들을 모집하여 헐값으로 랭커셔(Lancashire)의 면직공장 노동에 투입하였습니다.[18] 마지막으로, 교육받은 사람들이 ‘하급 인종’이라 부르는 사람들에 대한 추악한 태도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도덕 발전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은 결국 정의의 인정, 즉 모든 인간들에 대한 관계에서 평등의 인정일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회도덕은 현 상태로 즉 위선적인 상태로 머물게 될 것입니다. 이 위선은 현대 개인 도덕의 자양분이 되고 있는 이중성을 유지시킬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회성과 정의가 도덕성의 모든 것을 구성하지는 않습니다. 제3의 구성요소가 추가되어야 합니다. 더 적절한 표현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자기희생, 관용의 정신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실증주의자들은 이 감정을 이타주의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에고이즘(egoism), 즉 이기주의에 반대되는 것으로 타인에게 이익을 주는 능력입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기독교의 이웃사랑 개념을 피해갑니다. 그들이 기독교의 개념을 피하는 이유는, ‘이웃사랑’의 개념이 타인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직접적인 이익을 희생하도록 인간을 움직이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희생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이 ‘타인들’에 대한 어떤 특별한 사랑도 절대 품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는 이 타인들을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자기희생’처럼 ‘이타주의’도 그런 종류의 행동의 성격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행동들은 자연적일 때에만, 위로부터의 강제나 현재 혹은 미래의 삶에서 받을 포상의 약속 때문에 실현되는 것이 아닐 때에만 좋기 때문입니다. 즉 그런 행위들의 사회적 유용성 혹은 약속된 개인적 행복에 대한 고려 때문이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내적 충동에 의한 것일 때에만 좋은 것입니다. 그럴 때에만 그 행동들은 진정으로 도덕의 범위에 속합니다. 본질상 그것들만이 ‘도덕적’이라 불릴 자격이 있습니다.

언제나 모든 인류사회는 가장 처음부터 그런 종류의 행동 경향을 발전시키려 노력했습니다. 교육, 민요, 전설, 도덕시, 예술, 종교는 이런 흐름 속에서 기능하였습니다. 그런 행동들은 의무로 격상되었고, ‘의무감’은 다양하게 발전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런 행동에 대한 현세 혹은 내세에서의 상을 약속할 때, 사람들은 자신 혹은 동포를 타락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정의, 즉 평등권이 사회생활의 기초로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자기희생을 위해 어떤 유혹적 제안도 요구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지금에서야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희생’이란 용어 자체가 그런 행동들의 본질을 적절하게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자신의 힘을 모든 사람들을 위해 나누어주면서, 반대급부로 그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묻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바로 그렇게 행동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본성이 그렇게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개들로부터 새끼를 구출하기 위해 나섰던 개코원숭이처럼, 그는 다른 식으로 행동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에 대해서도, 칸트의 명령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이 없고, 온갖 실용적인 의도도 없었던 원숭이처럼 말입니다.

‘의무감’이 도덕적 힘이라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두 자연적 욕망이 서로 대립하고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까 망설일 때, 이런 어려운 경우에만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소위 ‘희생적인’ 사람들은 의무감을 상기시키지 않아도 잘 해나가고 있습니다.

너무 일찍 사망한, 매우 공감이 가는 프랑스 사상가 마리-장 기오(Marie-Jean Guyau)는 내가 도덕의 세 번째 구성요소라고 칭한 것의 참된 성격을, 내가 틀리지 않다면 최초로 완전히 이해했고 설명했습니다.

그가 기록한 바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생각을 갖고 있으며,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그 생각을 나누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달리 행동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 혹은 즐거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까워하지 않고 그것을 타인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중 많은 이들은 개인생활에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의지와 에너지를 갖고 있습니다. 때로 이 의지의 잉여는 협소한 이성의 지배를 받아 침략자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성이란 정신 속에서 발전된, 폭넓은 이성과 감정의 지도를 받는다면, 때로 그것은 새로운 종교 혹은 사회의 개혁을 완성시키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창시자를 만듭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에 우리를 주관하는 것은 주로 자기 힘에 대한 의식 그리고 그 힘을 사용하려는 욕구입니다.

그 외에, 감정이 이성에 의해 정당성을 획득한다면, <strong>이미 감정은 어떤 다른 상급의 제재, 동의 그리고 그렇게 행동한다는 외부로부터 부과된 어떤 약속도 요구하지 않습니다.[19] 그 자체가 이미 약속입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 그 사람은 달리 행동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혹은 인간 전체에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가능성과 힘을 느끼는 것 그리고 그와 더불어 그런 행동은 이성에 의해 정당화됨을 아는 것, 바로 그것 자체가 이미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의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기오는 계속 이렇게 말합니다. 물론 이러저러하게 행동하기 전에 우리 내부에서는 자주 투쟁이 발생합니다. 인간은 한 덩어리로 주조된 완전한 어떤 것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우리들 개개인 속에는 어느 정도의 개성과 어느 정도의 성격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동경하는 것과 마음이 끌리는 것이 부조화 상태에 있어 걸을 때마다 서로 모순된다면, 그때 삶은 견딜 수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어느 것도, 심지어 죽음도 지속적인 분열과 영원한 광기로 이끄는 충돌보다 낫습니다. 때문에 인간은 이러저러한 편에서 이러저러한 결정을 내립니다.

우리의 양심과 이성이 취해진 결정을 부정직한, 소심한, 속물적인 것으로 여기고, 이에 분노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때 보통 사람은 어떤 궤변, 즉 정당화를 위한 자기기만을 고안해 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특히 정직하고 강한 성격의 경우에 궤변은 불가능합니다. 비록 무의식적이지만, 내적인 존재의 요구가 우위를 갖게 됩니다. 그때 우리가 양심이라 부르는 것과 이성의 일치가 새롭게 확립되고, 조화가 이루어집니다. 이 조화는 인간에게 완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그것은 현격하게 강력해진, 즉 완전하고 즐거운 삶, 그 앞에서 있을 수 있는 고통들은 힘을 잃게 되는 삶입니다.

그런 삶을 이해하고,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은 그 삶을 보잘것없는 무위도식과 바꾸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 그 사람이 우리가 ‘희생’이라 부르는 것을 행한다면, 그의 눈에 이것은 전혀 희생이 아닙니다. 기오가 기록한 것처럼, 개화한 후에 필연적으로 죽음이 찾아와도, 식물은 꽃을 피워야 합니다. 바로 그와 같이 사람은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넘치는 동정을 느끼거나 지적인 생산성 혹은 창조적 능력의 욕구를 느낄 때,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상관없이 자신의 힘을 자유롭게 제공합니다.

보통 그런 행동들을 자기희생, 자기부정, 헌신, 이타주의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명칭들은 신빙성이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자주 스스로 육체적 혹은 심지어 도덕적 고통을 스스로에게 부과함에도 불구하고, 이 고통 대신에 동물적 무관심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자신이 완성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의 실현에 필요한 의지의 부족을 선택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중의 한 예를 소개하겠습니다.

한때 나는 영국 남쪽 해변의 작은 마을에 살았습니다. 그곳에 해상재난구조 기지가 있었습니다. 나는 해안경비대원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 대원이 지난 겨울 오렌지를 적재한 작은 스페인 배의 선원들을 구출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 주었습니다. 강한 눈 폭풍이 불던 날, 그 배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얕은 곳으로 밀려와 좌초되고 말았습니다. 어마어마한 파도가 배를 덮쳤고, 성인 다섯과 어인아이 하나로 이루어진 승무원들은 활대에 몸을 묶고 큰 소리로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얕은 해안에서 구조선은 바다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파도가 배를 해변으로 다시 밀어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아침부터 해변에 서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오후 3시가 되자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2월이었거든요. 돛대에 몸을 묶은 어린 아이의 절망적인 비명이 들려왔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바다로 나가는 것은 미친 짓이고 절대 바다로 나갈 수 없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먼저 한 번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구조선을 다시 띄웠습니다. 한참을 파도와 싸운 후에 우리는 드디어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때 파도가 구조선을 덮쳤습니다. 우리들 중 둘은 익사했습니다. 조는 불쌍하게 뱃전의 밧줄에 감겨, 우리 눈앞에서 파도에 허우적거렸습니다... 결국 엄청난 파도가 우리 모두를 구조선에서 해변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나는 다음날 여기서 2㎞정도 떨어진 눈더미 속에서 발견되었지요. 스페인 선원들은 덴게니스에서 온 대형 구조선에 의해 구출되었습니다.”

아니면, 여러분은 물론 론다 계곡의 광부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폭발로 막힌 지하갱도를 이틀 동안 뚫었습니다. 붕괴된 갱도에 갇힌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매순간 반복되는 폭발 때문에 그들은 죽을 수도 있었고, 아니면 새로운 붕괴로 매몰될 수도 있었습니다. “폭발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매몰지역 반대쪽에서는 동료들이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동료들이 보내는 아직 살아있다는 신호였습니다... 우리는 돌 더미를 뚫고 그들에게로 갔습니다.”

크고 작은, 진정으로 이타적인 행동들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그렇습니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동일화할 수 있게 교육받은 사람, 내부에 감정, 지혜, 의지의 힘을 느끼는 사람은 타인을 돕기 위해 자유롭게 그것을 제공하고, 이승에서의 혹은 미지의 저승에서의 어떤 보상도 구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자신이 그들의 삶을 함께 느낍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는 타인들과 기쁨과 아픔을 나눕니다. 그는 그들을 도와 삶의 어려운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합니다. 그는 자신의 힘을 의식하고, 타인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에게 더 좋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불어넣어 주는 능력을 마음껏 사용합니다. 그는 미래를 위한 일에 그들을 초대합니다. 어떤 일이 닥쳐도, 그는 이 속에서 고통이 아니라 생명추구의 완성을 봅니다. 허약한 무위의 삶과 바꿀 수 없는 삶의 충만을 봅니다. 자기 몫의 고통을 짊어져야 할 때, 그는 레르몬토프의 므찌리[20]처럼 말할 것입니다.


... 나의 삶은

이 행복한 3일이 없었다면,

슬프고 음울한

그대의 무기력한 노년 같았을 것을...


극단적 개인주의가 말과 행동으로 설교되는 지금도, 상호부조는 인류 삶에서 여전히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삶 속에서 자선의 형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발전하고 있는 전 인류적인 감정을 향한 자연적인 출발의 형태로 상호부조에 더욱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외부의 힘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힘에 달려있습니다.

이제 결론으로 도덕적 감정이라고 하는 것이, 제가 발전시킨 관점에서, 우리에게 어떻게 제시되고 있는지를 보도록 합시다.

도덕에 대해 쓴 거의 모든 사람들은 도덕을 위로부터의 계시, 타고난 자연적 감정 혹은 개인적, 합리적으로 이해한 개인적 혹은 사회적 이익과 같은 어떤 하나의 원리로 수렴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도덕은 인류 안에서 서서히 발전했고 여전히 발전하고 있는 복잡한 감정과 개념 시스템인 것 같습니다. 이 시스템에서 적어도 세 가지 구성성분을 구별해야 합니다. ① 본능, 즉 유전된 습관, 사회성. ② 우리 이성의 개념 - 정의. ③ 이성에 의해 고무된 감정입니다. 이것을 자기희생 혹은 헌신으로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감정 안에 희생과 헌신이 없고, 대신 본성의 꾸며낸 위압적 요구만이 충족될 때, 이 감정이 가장 완전하게 표현될 수는 없습니다. 관용이라는 단어로도 이 감정을 완전하고 올바르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관용’이란 단어가 인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최상의 자기평가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도덕적인 인간은 그러한 평가를 거부합니다. 바로 여기에 도덕의 참다운 힘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도덕 충동을 초자연적인 영감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대부분의 사상가들도 이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처럼 공리주의자들도 올바로 이해한 이익의 발전으로 도덕을 설명하려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서로 대립하는 두 학파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교회의 편견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광범위하게 발전된 상호부조, 정의에 대한 합리적 판단, - 기오가 기록한 것처럼 - 강력한 지혜와 감정을 소유한 사람들의 사심 없는 충동이 과거 그리고 지금까지도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해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 본성의 이 세 특징 속에서 도덕에 대한 설명을 찾아야 함을 이해할 것입니다.

극단적 개인주의, 즉 ‘자기 자신을 우선 염려하는’ 행동방식이 말과 행동으로 설파되고 있는 지금도, 상호부조와 사회에 대한 사심 없는 헌신은 사회생활과 사회의 지속적 발전의 본질적 부분을 구성합니다. 그 결과 인류는 그것이 없다면 몇 십 년조차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도덕의 본질과 발전에 대한 이런 사상은 현대 과학연구가들의 생각 속에서 충분한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헉슬리는 다윈의 올바른 해석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생존경쟁’과 새로운 종의 선택에서 생존경쟁의 의미를 해설하는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윈이 인간의 도덕개념을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한가지로 존재하는 본능(사회성)의 결과라고 설명했을 때, 헉슬리는 자신의 위대한 선생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도덕성을 자연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한때 열성적 자연과학자였던 헉슬리는 신학과 자연과학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말았습니다.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는 발전이론 위에 세운 합리철학 연구에 평생을 바쳤고, 여러 해 동안 도덕성의 문제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덕적 본능에 대한 설명에서 완전히 다윈을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동물들 사이에서의 상호부조를 뒤늦게 인정했습니다. 그는 1888년 잡지 『19세기』에 발표된 글에서, 동물들 중 몇몇 종류에게 도덕 감정의 단초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 후에도 『윤리학 원리(Principles of Ethics)』에 대한 부록에서, 여전히 스펜서는 원시인은 ‘사회계약을 체결하고’ 어디선가 모셔온 현명한 입법자들에게 종속될 때까지는 도덕 감정이 없었다고 하는 홉스를 옹호하였습니다. 말년에 스펜서는 약간의 양보를 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헉슬리처럼 그에게 원시인은 여전히 싸움을 좋아하는 동물, 강제, 법 그리고 부분적으로 이기적인 판단들을 통해서만 이웃에 대한 도덕적 관계의 몇몇 개념들을 획득한 동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이미 오래전에 자연의 빛이 흐릿한 색유리를 통해 비치는 파우스트의 서재에서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학자들은 먼지가 쌓인 서가에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평원과 산에서, 태양의 밝은 빛 소게서 자연을 연구해야 할 때입니다. 19세기에 아메리카의 인적 없는 광활한 스텝에서 과학적 동물학의 위대한 창시자들이 했던 것처럼, 자신의 믿음으로 개종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 원시인들의 관습과 습관 그리고 도덕적 심성을 연구하려는 목적으로 그들과 함께 살았던 참된 인류학의 창시자들이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때 그들은 도덕성이 자연과 관계없는 것이 절대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동물의 세계에서 어미는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겁니다. 무리지어 사는 동물들은 힘을 합쳐 맹수들을 물리치고, 먹이를 찾아 서식지를 옮길 때에는 거대한 무리를 이룹니다. 원시인들은 동물들로부터 도덕적 교훈을 얻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스스로 신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학자들은 신학자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것이 어디에서 유래했는가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자연에는 도덕이 없다.”는 말을 반복하는 대신 그들은, 선과 악에 대한 그들의 개념이 무엇이든지, 그 개념은 자연이 그들에게 처음으로 주었고, 나중에는 인류의 점진적 발전과정이 제공한 것을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란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최고의 사람들이 도달한 최상의 도덕적 이상은 동물의 세계에서, 원시인들에게서 그리고 오늘날 문명사회에서 우리가 때때로 발견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동료를 지키기 위해 혹은 미래 세대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칠 때 발현됩니다. 이보다 더 높은 단계에 이른 사람은 아무도 없고, 없을 것입니다.



[1] 역주 - 파타고니아(Patagonia). 아르헨티나 남부에 있는 지방. 건조한 초원으로 목양牧羊이 활발하였다.

[2] 헉슬리의 강연 내용은 강연 직후인 1888년 2월 『19세기(Nineteenth Century)』에 발표되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간 주석을 추가하여 소책자로 출판되었다. 강연문은 추가된 서문과 함께 헉슬리의 『논문 선집(Collected Essay)』에, 또 맥 밀란(Mac Millan's)사의 보급판 논문집 『윤리와 정치(Ethical and Political)』에도 수록되었다. 러시아어 번역판은 1893년 『러시아 사상』에 발표되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앞에서 언급한 주는 빠졌다.

[3] 매우 보수적인 영국 사상가로서, 1639-1648년 영국 혁명 직후에 집필하였다.

[4] 역주 - 1871년 발표되었으며, 원래 제목은 『인간의 유래와 성적 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이다. 한국어 번역으로는 『인간의 유래』(찰스 다윈 저, 김관선 역, 한길사, 2006)가 있다.

[5] 인간 혹은 동물의 습관이 유전될 정도로 강력할 때, 그 습관을 본능이라 부를 수 있다. 예를 들면, 인공부화실의 알에서 부화된 병아리들은 어미가 없어도, 껍질을 깨고 나오자마자, 모든 암탉과 수탉이 하듯이, 발로 땅을 헤집기 시작한다.

[6] 참조. 이에 대해 나의 책 『활동력으로서의 상호부조』. 이 책에 출처가 표시되어 있다.

[7] 잡지 『19세기』(1905년 3월)에 수록된 논문 「자연에서의 도덕」에서 원시인들이 동물에게서 도덕 규칙들을 차용하는 것에 대한 문제에 몇 쪽을 할애하였다.

[8] 역주 - 참고. “그런 자는 애처롭게 여기지 말라. 목숨은 목숨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갚아라.” 신명기 19:21(공동번역성서)

[9] 물론 가장 초기단계부터 씨족제도에서는 평등을 훼손하려는 관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샤먼, 예언자, 그리고 군사지도자가 씨족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획득하여, 그 결과 조금씩 (비밀결사의 방법을 통해) 씨족 내에서 특권을 획득한 마법사, 신관, 샤먼, 무사 계급이 만들어진다. 그 다음에, 씨족 내에 특별 가문이 - 이 가문은 다른 씨족과의 전쟁에서 포로로, 그리고 후에는 납치로 여성 배우자를 얻는다. - 만들어지는 정도에 따라, 이 새로운 제도가 씨족 내에 발전하는 정도에 따라, 불평등이 창조되고, 이것은 개별 가문의 다른 가문에 대한 우월성을 - 이것은 이제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이 된다. - 제공한다. 그러나 늘 씨족은 불평등을 제한할 모든 수단들을 이용하였고 지금까지도 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노르만인들 사이에서 친위대원을 살해한 전쟁 지휘관(왕)은 피살자의 가족에게 용서를 받아야 하는 벌에 처해짐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가족이 용서하는 경우, 그는 통상적인 벌금을 지불하였다. (이에 대해 더 자세히 나의 저서 『상호부조론』을 참조할 것.)

[10] 역주 - Aleut. 알류샨 열도 지역에 거주하는 에스키모족의 한 갈래.

[11] 그보다 앞선 인물로는 모스크바의 이노켄티 주교가 있다.

[12] 역주 - 이것은 그리스어로 ‘deon’이라는 표현형식으로 ‘it is needful~’과 같은 구문으로 이루어진다.

[13] 역주 - 시베리아 북동쪽 끝 추코트 반도에 사는 소수민족. 북부 몽골로이드에 속하며 바다짐승 사냥을 생업으로 하는 바다 추크치와, 툰드라 지역에서 순록을 기르는 토나카이 추크치가 있다.

[14] 1886년 그린란드 동쪽 해변에서 겨울을 지낸 덴마크 원정대의 보고서를 참조할 것. 이것은 란케 박사의 에스키모인에 대한 연구에 수록되어 있다.

[15] 러시아어 번역이 있다.

[16] 내가 나중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저명한 실증주의자인 리트르(E.Littre)도 『실증주의 철학(Philosophie Positive)』에 발표한 도덕에 관한 논문에서 대략 이런 가정에 도달하였음을 덧붙인다.

[17] 고드윈의 저서인 『정치적 정의(Political Justice)』 1권은 1792년, 2권은 1793년에 각각 출판되었다.(2권은 검열 때문에 축소되었다.) 프루동의 저서로는 『혁명과 교회에서의 정의에 대하여(De la justice dans la révolution et dans l'Eglise)』가 있다.

[18] 오랫동안 가난과 싸우다

[19] 기오. 『의무와 제재 없는 도덕에 관한 시론(Esquisse d'une morale sans obligation ni sanction)』(1884), 러시아어 번역, 페테르부르그 1899.

[20] 역주 - 『므찌리』는 러시아의 낭만주의 작가 레르몬토프가 1840년에 발표한 서사시다. 주인공 므찌리는 부자유의 삶을 상징하는 수도원에서 절대 자유를 상징하는 고향을 찾아 떠난다. 그러나 그는 도중에 표범과 싸워 죽게 된다. 비록 그는 고향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고향을 향해 가는 3일간의 삶은 완전한 자유를 경험했던 가장 소중한 순간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