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티앙 포르

아나키스트 통합

1927

      아나키즘의 세 가지 흐름

      아나키스트 통합

      이 세 가지 흐름의 존재는 어떻게 아나키스트 운동을 약화시켰는가?

      문제점과 해결책

이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1926년 프랑스의 《디엘로 트루다Dielo Truda》 그룹이 발표한 〈아나키스트 총동맹을 위한 조직 강령 초안Draft Organization Platform for a General Union of Anarchists〉에 명시된 이론에 대한 아나키즘 특정 분파의 반응인 “아나키스트 통합anarchist synthesis”에 관한 포르(Sébastien Faure)의 기사를 영어로 번역한 최초의 사례이다. 이 글의 정확한 출판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불명확하나(어떤 출처는 1927년에 쓰였다고 하고, 다른 출처에서는 1928년에 쓰였다고 한다), 이 글은 「아나키스트의 의견Volonté Anarchiste」 1980년 제12호, 프렌느-안토니 아나키스트 연합 출판본에 나온 글을 사용해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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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의 세 가지 흐름


프랑스에서는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세 가지의 주요한 아나키즘의 흐름을 구별할 수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 아나키즘적 조합주의Anarcho-Syndicalism

●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Libertarian Communism

● 개인주의적 아나키즘Anarchist Individualism


어느 정도의 발전 단계에 이르렀을 때 아나키즘처럼 광대한 사상이 이러한 세 가지 존재의 발현으로 끝맺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권위주의적 제도를 폐지하려는 사상과 행동의 하나라는 철학적 및 사회적 운동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상황, 환경, 기질, 무수한 개인의 형성과 방대한 양의 사건이 영양분을 끌어당기는 근원의 다양성을 의무적으로 결정하는 그러한 구분을 낳게 될 것이다.


아나키즘적 조합주의,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이 세 가지 흐름은 존재하며, 누구도 그렇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들 각각은 세력, 파괴하기가 불가능하며 파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은 세력을 대변한다. 이를 확신하기 위해서는 권위의 원칙을 허물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거대한 노력의 한가운데에―순수하고 단순한 아나키스트로서―자기 자신을 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면 우리는 이 각각의 흐름들이 우리가 계속하는 싸움에 초래하는 불가결한 공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세 흐름은 구별되지만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세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 첫 번째는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에서 시작해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자와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에 이르는 것이고

● 두 번째는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자에서 시작해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와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에 이르는 것이며

● 세 번째는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에서 시작해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와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자에 이르는 것이다.


여기 첫 번째 질문이 있다.


“아나키즘을 사회운동과 대중행동이라고 볼 때, 아나키즘이 사회혁명이라고 칭하는 자본주의와 권위주의 세계에 대한 필연적이고 결정적인 공격을 가할 때가 왔을 때, 노동조직에 집결된 대중의 도움 없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사회변혁에 누구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 노동대중의 해방적 봉기에 참여―적극적이고 효과적이며 무자비하고 지속적인 참여―하지 않고 승리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혁명의 무르익음과 행동의 시기에 필요한 협력을 고려할 때 조합주의자 세력과 아나키스트 세력이 벌써부터 단결하고, 연관되고, 동질의 형태로 서로 섞이고, 단단한 실체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내 오랜 친구 말라테스타(Errico Malatesta)와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말한다.


“아나키스트들은 조합주의 운동의 유용성과 중요성을 인식하고, 조합주의와 다른 진보 세력 사이의 협력을 보장하여 모든 인간 사이의 계급 억압의 철폐, 완전한 자유, 평등, 평화, 연대를 초래하는 사회혁명을 위해 조합주의의 발전을 장려하고, 그것을 행동의 지렛대 중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노동자들의 운동 자체가 그 자체로 그러한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것은 끔찍한 착각일 것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물질적 및 즉각적인 이익(광대한 노동자 운동은 다른 어떤 기초에서도 성립될 수 없다)에 기초한 모든 운동에서 이상을 위해 투쟁하고 희생하는 사상가들의 선동, 추진, 일치된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지렛대가 없다면 모든 운동은 불가피하게 상황에 안주하고, 보수적인 정신을 기르게 되고, 더 나은 조건을 얻으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변화를 두려워하는 경향을 낳게 된다. 또한 종종 새로운 특권계층이 생겨나 우리가 파괴하고자 하는 현상을 공고히 하고 지지를 얻으려 시도한다.


따라서 신디케이트 내외부에 특히 아나키스트 조직들, 아나키즘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투쟁하고 부패와 반동의 세균을 소독하려고 하는 조직들이 절박하게 필요하다.”


보다시피 이는 아나키즘 운동을 조직적으로 조합주의 운동에 연결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조합주의를 아나키즘에 연결하는 것이다. 즉 신디케이트 내외부 양면으로 아나키즘 이상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일하는 문제일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자들과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들에게 이렇게 구상되고 실천되는 아나키즘적 조합주의를 어떠한 원칙 혹은 실제적 이유로 반대하는지 묻는다.


다음은 두 번째 질문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한 사람에 의한 다른 이들의 착취 및 국가가 낳은 한 사람에 의한 다른 이들의 지배에 대한 불굴의 적인 아나키즘은 자본주의 체제의 억제와 생산, 운송, 교환수단의 통합(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 없이 자본에 대한 효과적이고 총체적인 진압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리고 국가와 그로 인한 모든 제도들을 폐지하지 않고 국가에 대한 효과적이고 완전한 폐지를 상상할 수 있는가?”


그래서 나는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들과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들[1]에게 이렇게 구상되고 실천되는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를 어떠한 원칙 혹은 실제적 이유로 반대하는지 묻는다.


이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질문이다.


“아나키즘은 한편으로는 권위주의 체제를 통해 그에게 초래되는 정치적, 경제적, 정신적 억압에 대한 개인의 반작용에 대한 가장 분명한 최고의 표현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영역에서 스스로의 요구에 대한 충족을 위해 모든 개인이 완전히 권리를 이행할 수 있는 가장 확고하고 가장 정확한 확인이다. 아나키즘은 제약과 억압의 모든 톱니바퀴를 부수고 사회변혁을 향해 최대한으로 추구되는 개인주의 문화 이외의 어떤 수단을 통해 이 반작용과 확인의 효과적이며 완전한 실현을 상상할 수 있는가?”


따라서 나는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들과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자들에게 이렇게 구상되고 실천되는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을 어떠한 원칙 혹은 실제적 이유로 반대하는지 묻는다.


나는 이 세 흐름이 서로 결합할 것을 촉구한다.



아나키스트 통합


지금까지 언급된 모든 것으로부터, 그리고 특히 상기한 세 가지 질문으로부터 그것이 나타날 것이다.


1. 이 세 가지 흐름―아나키즘적 조합주의,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구별되지만 모순되지는 않는―은 그들을 화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없으며, 서로 반대하도록 하는 것도 없고, 양립할 수 없다고 선언하도록 하는 것도 없으며, 그들이 조화롭게 사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없고, 오히려 공동의 선전과 행동을 위해 함께 모일 수 있다.


2. 이 세 가지 흐름의 존재는 어느 정도로도, 어떤 식으로도 아나키즘의 전체 세력을 해치지 않는다―뿐만 아니라 그들의 철학적, 사회적 운동은 모든 범주에서 올바르게 계획되어 있고, 아나키즘의 전반적인 강세에 기여할 수 있고 논리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3. 이러한 각각의 흐름은 “아나키즘”이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그 넓고 깊은 사회운동 내에서 그 자체의 위치, 역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 목표는 각각의 모든 사람들에게 최대의 행복과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의 구축이다.


4. 이러한 조건에서 아나키즘은 화학에서 화합물이라고 불리는 것, 즉 다양한 요소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물질과 비교될 수 있다.


이 특별한 화합물은 아나키즘적 조합주의,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 및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세 가지 요소의 조합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 화학식은 S₂C₂I₂일 것이다.


세 요소의 비율은 사건, 상황 등 아나키즘을 구성하는 조류가 뿜어내는 복수의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분석을 통해 실험은 비율을 드러낸다. 통합 시 화합물이 재형성되고 한 요소가 없거나 부족한 경우 다른 요소가 그 자리를 취할 수 있다. S₃C₂I₁,이나 S₂C₃I₁, 혹은 S₁C₂I₃처럼 말이다. 이 공식은 지역적으로, 광역적으로, 국가 혹은 국제적인 여러 변수의 비율을 반영한다.


어떤 경우든 이 세 가지 요소―아나키즘적 조합주의,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S.C.I)―는 서로 결합하고, 융합에 의해 내가 “아나키스트 통합”이라고 부르는 것을 구성해간다.



이 세 가지 흐름의 존재는 어떻게 아나키스트 운동을 약화시켰는가?


내 설명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어떻게 해서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프랑스에서는 이 세 가지 흐름의 아나키스트 요소의 존재가 자유의지주의 운동을 강화하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약화시키는 데까지 이르렀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그리고 이 질문을 명확하게 던지고, 마찬가지로 명확한 방법으로 연구하고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답은 간단하다. 하지만 모두에게 예외 없이 커다란 정직함이 요구된다.


나는 이 세 가지 요소―아나키즘적 조합주의,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존재 자체가 약화를, 더 정확히는 아나키스트 사상과 행동의 상대적 약화를 초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각각 서로를 향해 취한 입장, 즉 드러나게 잔혹한, 무자비한 투쟁의 입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각 파벌은 이런 해로운 균열 가운데 동등한 악의를 지녀왔다. 각 파벌은 다른 두 파벌의 주장을 왜곡하고, 명제와 부정이 거의 우스꽝스러울 정도의 수준에 다다르고, 그들의 기준선을 부풀리거나 경감시켜 증오스러운 희화화를 그릴 정도로 비열했다.


각 경향은 다른 경향에 대해 가장 배신적인 교활함을 수행해 왔고, 상대방에 가장 치명적인 무기를 사용해왔다.


이 세 가지 경향이 그들 사이에 이해가 없는 상태라 하더라도, 서로 전쟁을 벌이려는 의지가 조금 덜했더라면, 다양한 집단 안팎에서 투쟁할 의지가 있었더라면, 심지어 별도로라도 공동의 적과 싸우고자 했더라면, 이 나라의 아나키스트 운동은 적절한 상황이 주어진다면 상당한 영향력과 놀랄 만한 힘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군사행동을 포함한 모든 것을 완전히 오염되고, 타락하고, 폐허가 되고, 모든 것을 무익하게 만든 한 경향의 다른 경향에 대한, 그리고 종종 한 개인의 다른 개인들에 대한 내전은 무엇보다도 대중적인 환경에서 흔히 제기되는 것보다 훨씬 드물지 않은, 우리의 소중한 사상들을 중심으로 자유와 정의의 집단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보았어야만 했다.


각 흐름은 주변 흐름에 침을 뱉고, 거품을 물며 토악질을 해서 그것들을 더럽히고 자신만이 옳다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이러한 분열과 그들이 사방에서 빚어낸 역겨운 광경에 직면하여 우리 그룹들은―그들 모두 똑같이―점차 그들 내용물의 많은 부분을 잃었으며 우리 세력은 공동의 적, 즉 권위의 원칙에 맞서 싸우기 위해 함께하는 대신 스스로를 고갈시켜버렸다. 이것이 진실이다.



문제점과 해결책


문제점은 커다랗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일 문제일 뿐이다―해결책이 가까이 있다.


이전 내용들을 주의 깊게, 선입견 없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힘들이지 않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해결책은 아나키스트 통합이 정착되고 가능한 한 빠르고 잘 적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있다.[2]


아나키스트 운동은 무엇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가?


아나키즘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가 서로 치열하게 싸운다는 사실에서다.


만약 그들의 기원, 본성, 선전과 조직 및 행동의 방법으로 인해 이 요소들이 계속해서 서로 맞서게 된다면, 내가 제안하는 해결책은 무의미하고, 적용불가능하고, 실행 불가능할 것이며, 우리는 그 시도를 포기하고 다른 곳을 살펴야할 것이다.


반면에 만약 상기上記한 것의 반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더 나아가 만약 그 요소들―아나키즘적 조합주의,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이 힘을 합쳐 일종의 아나키스트 통합을 이루도록 하고자 한다면,[3] 이 통합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내일이 아니라 오늘 당장 이루어져야만 한다.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새로운 것을 제안한 것이 아니다. 루이지 파브리(Luigi Fabbri)와 내가 최근 며칠 동안 토론한 몇몇 러시아 동지들[볼린(Volin), 플레신(Senya Fleshin), 몰리 스타이머(Mollie Steimer)]은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 아나키스트 연합Unione Anarchica Italiana》에 의해, 우크라이나에서 《나밧Nabat》에 의해 이러한 성격의 시도가 이루어졌는데 이 두 시도 모두 가장 훌륭한 성과들, 이탈리아에서의 파시즘의 승리와 우크라이나에서의 볼셰비키의 승리를 파괴하는 결과를 얻었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프랑스에서는 실제로 다른 많은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나키스트 통합 개념을 이미 적용했거나 현재 적용하고 있는 수많은 그룹들(그들 중 일부를 생략하게 될까봐 두려워 이름들을 거론하지는 않겠다),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와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자 및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협력하는 그룹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그룹들은 수가 적지도 않고 덜 활동적이지도 않다.


이 몇 가지 사실들(그리고 내가 언급한 다른 것들)은 통합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그것이 빠르게, 또는 어려움 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새로운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그것은 오해, 저항, 심지어 적개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통과하지 못한 채로 남아 있을 필요가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남아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비난과 악의에 저항할 필요가 있다면 우리는 저항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건강한 미래로 향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머지않아 아나키스트들이 그들의 길을 찾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것이 우리가 낙담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이유이다.


이탈리아, 스페인, 우크라이나에서의 기억에 남는 상황에서 행해졌던 일, 프랑스의 많은 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은 사건들의 압력 하에 전국 각지에서 행해질 것이다.

[1] 오를레앙Orléans에서 자유의지적 코뮌주의자들 스스로가 “명백하게” 언급했듯,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유의지주의적 코뮌 내에서는 “모든 집단에서 시작해 일과 개인의 소비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조합이 자유로울 것”이라고 이해되고 있다.

[2] 여기서 아나키스트 통합이라는 표현은 아나키즘 이상을 지지하는 모든 인적 요소들에 대한 그룹화, 연합, 조직 및 이해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3] 연합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모든 요소들이 결합하는 것이 가능하고 바람직한지를 연구할 때, 나는 이 세력들의 그룹화, 이 조직의 기반을 아나키스트 통합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전혀 다른 것으로 아나키즘 이론의 통합이 있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주제이며, 내 건강상태와 상황이 허락할 때 다룰 생각이다.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sebastien-faure-the-anarchist-synthe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