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중국은 아프리카의 새로운 제국주의 권력인가
Topics: 제국주의, 중국
Date: 2006.12
Source: http://www.zabalaza.net/pdfs/sapams/zab07.pdf

중국 원자바오(温家宝) 총리의 아프리카 시찰은 중국과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 및 아랍 여러 국가와의 무역관계를 촉진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최근의 중대한 발전을 부각하고 있다. 영어권 아프리카에 있는 혁명가들은 보통 영국과 프랑스를 이 대륙에 대한 주요한 제국주의 권력으로 여겨 왔다. 하지만 다른 세력이 그림자에서 나타나 식민지 독립 이후에도 계속된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에 도전하고 있는데, 이는 비단 미국뿐만이 아니다. 남아프리카의 아나키즘적 코뮌주의자들은 통상 이전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아프리카를 제국주의에 종속된 권력의 역할을 수행하며 거대 자본가 권력과 이 지역의 자본가 지배계급에게 이익이 되게끔 행동하는, 이전과 같은 일종의 지역 경찰로 여기고 있다. 스와질란드에 있어서의 영국의 이권이 민주주의 운동에 의해 위협받았다면, 남아프리카 군軍이 스와지족Swazi族의 엘리트를 지원하도록 개입하는 것은 틀림없다(1998년에 레소토Lesotho에 대해 했던 것처럼).

하지만 국제정세는 변화하고 있으며, 오늘 우리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아프리카의 가장 강력한 흑막이라고 그려볼 수 있다. 중국은 수단Sudan의 수도인 카르툼Khartoum의 대량학살 체제를 지원하고 새 르완다Rwanda 공항(1일 1만 배럴의 원유와 맞바꾸어)과 같은 대규모 건축 계획에 착수하였으며,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인 킨샤사Kinshasa의 “넘버원 스타디움[1]”을 건설했다. 킨샤사에는 살찐 마오쩌둥(毛澤東)과 같은 로랑 데지레 카빌라(Laurent-Désiré Kabila)의 거대한 황금상이 있으며 이 도시는 콩고강변이 아니라 장강長江변처럼 보인다(올해 새로운 국기를 채용하기까지 중국 국기를 콩고민주공화국이 모방했던 것도 빠뜨릴 수 없다).

국가자본주의

구 소비에트 연방과는 달리 중국은 폐쇄적인 국가자본주의(마오쩌둥 시대)에서 수출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모델로 능숙하게 변화했다. 중국은 그 급속한 경제성장과 저렴한 상품―중국 공산당이 관리하고 있는―덕분에 2010년까지 세계 최대의 제조력을 가지고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이 자본주의적 급성장은 노동계급과 농민을 잔인하게 탄압하는 것을 배경으로 쌓아 올려졌다. 파업은 불법이며, 반체제 인사는 살해당하고, 상위 20% 세대가 도회지 총수입의 42%를 차지하는 한편 20%의 빈곤층은 6%밖에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계급투쟁은 급증하고 있다. 1992년에는 8,150건이었던 파업이 1999년에는 12만 건으로 증가했다. 작년 4월, 저장성浙江省 진화시金華市의 화시花渓 마을사람들이 공안 및 지방 당국과 백병전을 벌여 공안과 당국을 격퇴했다. 12월에는 산둥성広東省 산웨이시汕尾市 둥저우東州에서 발전소 건설용지로 토지를 압수당한 데에 항의하던 20명의 마을주민을 공안이 죽인 뒤, 수백 명의 마을주민들이 다이너마이트와 화염병을 손에 쥐고 공안과 맞서 싸웠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친밀한 정보통이 작년 밝힌 바에 따르면 작년만 약 300만 명의 노동자가 항의행동을 벌였다고 한다.

중국의 공식적인 최저임금은 한 달 63달러(베트남과 비교하면 베트남의 시골과 도시는 각각 45달러, 55달러인데 이는 베트남 노동자가 공산당 지도부에 대해 살쾡이파업을 통해 쟁취한 수준이다)이며, 분명 세계 최악의 광업 사망 기록을 지니고 있고(공적인 신화통신新華通信의 숫자에 의하면 2005년만 탄갱에서 5,986명이 사망하였고, 일부 사례에서는 탄광노동자가 다이너마이트로 무장하고 사장을 공격한 경우도 있었다), 더욱이 나이키나 맥도날드 같은 다국적 노동착취 사업이 “배타적 경제특별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테러와 탄압이 국내 경제를 자극하는 한편, 중국의 자본가 지배계급은 값싼 노동, 원자재, 연료 공급을 찾아 국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아프리카는 1970년대에 시작된 세계적 위기로 경제적인 주류에서 밀려나 버렸으나 지금에 이르러 갑자기 전도유망한 곳이 되었다. 2005년, 아프리카 전체 경제는 5%의 성장률을 보였는데 이는 수십 년 간 가장 높다. 이것은 아프리카에 있는 원자재에 대한 수요가 급등했기 때문이며 중국으로부터의 수요가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아프리카는 투자 지도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1995년 아프리카에의 민간 투자는 “제3세계” 여러 국가들에 대한 일체의 민간 직접투자의 1%에도 미치지 않았다. 중국(그리고 남아프리카) 자본가는 차례로 이 간극을 붙잡아 갔던 것이며, 현재 조류는 역전되고 있다.

아프리카에 있어서의 중국

중국은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남아프리카의 해방운동이나 짐바브웨와 같은 근처 여러 국가의 해방운동에 자금을 제공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아프리카와 내밀하게 무역을 했다. 남아프리카와의 공식적인 관계는 1998년에 회복되었다.

스텔렌보스 대학교Stellenbosch University 중국 연구센터의 마틴 데이비스 소장(그는 상하이에 관심을 가진 사업가이기도 하다)에 의하면, 작년 중국과 아프리카의 무역은 3,500만 달러까지 급증했다고 한다. 중국의 투자는 주로 석유산업, 특히 나이지리아, 앙골라, 수단, 적도 기니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나라들의 어려운 상황이 중국의 독재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적도 기니에 민주주의가 전혀 없든, 수단에서 국가주도의 인종전쟁이 벌어지고 있든 앙골라와 나이지리아에서 소수의 지배집단이 석유에서 얻는 부를 노골적으로 강탈하고 있는 것으로, 각 나라에서 UNITA(앙골라 전면독립 민족동맹)과 MEND(니젤델타 해방운동)이 그 몫의 일부를 되찾으려고 분쟁에 기름을 붓고 있든, 어째도 상관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권활동가에게 있어 중국제 무장 헬리콥터가 수단의 다르푸르Darfur에서 민간인에게 사용되었다는 것이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중국―코모로Comoros에 전자정보수집소를 정비하고 있는―은 1996년부터 2003년 사이에 제트기를 포함한 막대한 군사지원을 수단에 제공하고 1998년 국경분쟁 발발 이전에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Eritrea에 대량의 병기를 수송하고 제트기, 군용기, 통신방해 설비(외부의 방송을 국내에서 접할 수 없게 하기 위해)를 짐바브웨 정권에 팔고 있다.

남아프리카

중국은 몇몇 아프리카 나라들이 지고 있는 부채의 10억 달러 이상을 탕감해주며 아프리카에서의 제국주의를 원활히 진행하고 있다. 남아프리카 방송협회는 올해 남아프리카와 중국의 무역이 매년 26% 성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남아프리카는 중국의 아프리카에서의 최대 무역 파트너이며 과거 6년 간 무역은 400% 증가했다. 남아프리카는 철광석 등의 원자재를 공급하고 가공품을 받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무역협정에서는, 중국은 섬유제품의 수출을 제한하지만 원자력과 같은 영역에서의 제휴는 강화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반대로 영국 등과 같은 전통적 무역 상대와 남아프리카의 무역은 축소되고 있다.

하지만 남아프리카의 자본주의 강도와 다양성을 생각하면 중국과의 관계의 중요성은 비교적 한정되어 있다. 한편, 적도 기니 같은 약한 경제권에서의 중국의 투자는 매우 크다. 직접 원료―예를 들어 OPEC 카르텔 이외에서의 원유―를 확보하는 데에 중국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관계가 확대되고 아프리카의 엘리트가 동아시아 권력과 결탁을 강화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아프리카는 어느새 중국의 원유 수입의 약 30%를 제공하고 있다.

연대인가 외래인 공포증인가

하지만 총, 철광, 원유에의 이러한 투자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COSATU(남아프리카 노동조합회의)는 남아프리카 정부와 중국 정부의 이중 공격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수입된 값싼 중국제 의류가 온 나라에 넘쳐나게 되어(2003년 이래 480% 증가) 이전부터 취약했던 국내 섬유산업(같은 기간 62,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이 붕괴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작년, COSATU 지도부는 당황했다. 지부인 “남아프리카 의류섬유 노동조합”이 회의의 붉은 티셔츠가 중국제라는 사실에 대해 데모를 행한 것이다. 중국 본토의 섬유산업 대다수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품에 대한 유럽과 미국의 수량 제한을 회피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이전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아프리카에 어려운 노동조건을 들여오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COSATU와 그 동맹인 남아프리카 공산당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중국을 계속 극찬하고 있는 것이다.

양쪽의 입장 모두 틀렸다. COSATU의 “남아프리카산 제품을 구매하자” 캠페인은 저렴한 중국산 수입제품을 막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반反중국 같은 차별주의를 촉발하고, 지역 노동계급을 괴롭히는 해로운 외래인 공포증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동시에 모든 남아프리카인이 자본가든 노동자든 동일하게 공통의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은연중에 드러낸다. 하지만 진실에서 눈을 돌릴 수 없다. 남아프리카 자본가는 남아프리카 노동자의 친구가 아니다.

더욱이 ANC(아프리카 민족회의)의 GEAR(장기 거시경제 성장 전략) 정책은 자유무역을 촉진하고 있으며, 따라서 수입의 물결이 유의미한 조건으로 안정될 전망은 전혀 없다. COSATU는 남아프리카 지배계급의 도덕과 애국주의에 무익한 호소를―아무것도 달성하지 않는 호소를―계속 행하고 있는 것이다. 남아프리카 자본가는 중국 자본가와 협정을 맺고 있다. 이러한 경쟁상대가 단결할 수 있다면, 왜 노동계급이 교훈을 얻어 중국의 노동자들을 지키는 일이 불가능하겠는가?

사업의 핵심

이미 적은 것과 같이 GEAR 정책과 NEPAD(아프리카 개발을 위한 새로운 파트너십) 정책은 보다 많은 무역, 보다 많은 외국 투자를 끌어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중국은 모든 제안에 합치한다. 역으로 중앙정보부장(이자 노령의 “청년공산주의자동맹” 정치국원) 로니 카스릴스(Ronnie Kasrils)는 『제3의 눈으로 본 중국 : 남아프리카의 관점』이라는 그럴듯한 책―책의 출판에 대해 남아프리카에 있는 중국 상공회의소로부터 자금 원조를 받았다―에서 다음과 같이 열광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백만 명의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킬 것이라며 찬반양론이 있는 장강의 세 개의 댐 건설 계획을 포함한 중국의 건축 붐은 “건설 기사들의 ‘꿈’”이다.” 아무래도 이는 좋은 일인 것 같다. “중국이 지속가능한 경제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농촌사회에서 도시사회에의, 농업경제에서 산업경제에의 이행을 서둘러야만 한다.”

국가 최고의 스핀 닥터Spin doctor(정보를 조작해 사람들의 심리를 조종하는 전문가)인 조엘 넷시텐지(joel netshitenzhe)는 같은 책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남아프리카와 중국은 공통된 목표를 지니고 있다. 자국의 모든 시민에게 보다 좋은 생활을 보증하는 것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양국 모두 빈곤 수준을 저하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국가가 중국 대중을 빈곤하게 만들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넷시텐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의아할 것이다. 그는 중국 국가 프로파간다 기구의 역할을 격찬한다. “중국이 정보를 이용해 공통의 목적과 비전으로 사람들을 결집시킬 때의 엄격함과 초점”을 극찬하는 것이다.

그가 중국 미디어의 “발언의 다양성”을 극찬하는 것을 읽고 있노라면 뼛속까지 오싹해진다. 그러는 한편 그는 국가 검열, 그리고 중국이 정치적 반체제 인사를 투옥하는 일에 야후Yahoo와 같은 서양 검색 엔진이 공모하고 있는 것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남아프리카 공산당 부서기이자 싱크탱크의 한 사람인 제레미 크로닌(Jeremy Cronin)은 더욱 노골적이다. 남아프리카 공산당은 “현실에 존재하는 사회주의”라는 거품이 중국에서의 국유기업 재편에 의해 하수도에 떠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해서 상황 확인을 위해 2001년 대표단을 파견했다.

중국 공산당 안내역은 의심의 여지없이 크로닌과 대표단을 매우 기쁘게 했다. 그는 1999년의 중앙위원회 문서를 인용한다. “국유경제를 포함한 공유경제는 중국 사회주의 시스템의 경제적 기반이다. (중략) 중국은 사회주의의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국가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실현하기 위해 늘 국유기업의 중요한 역할에 의존하고, 국유기업을 온전히 이용해야만 한다.” 중국은 사회주의임과 동시에 자본주의인 것 같지 않은가! 이런 혼란스러운 사고를 어떻게 판단해야 좋을 것인가?

“국유기업을 전반적으로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사업 가운데에 시장경제의 법칙과 중국의 현상을 합치시키는 지도체제와 조직적인 경영체제를 구축하고, 지도체제의 구축을 강화하고 당 조직에 사업의 정치적 중핵으로서의 역할을 부여해 노동계급에 대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뢰라는 원칙에 따르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그들은 확실히 “신뢰”하고 있다. 왜냐하면 중국의 기적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착취와 테러 위에 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정권교체?

따라서 중국의 공산주의는 결국 권위주의 시장 거래와 경영 리더가 지도하는 근대화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경영 리더는 공산당의 우두머리도 겸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 그 자체는 노동계급에 의존하는 소수의 인민위원인 것이 명확해지고 있다!

크로닌은 대표단에게 노동자의 “민주적 의사결정”과 “자기 사업의 장長으로서의 위치”에 대해 중앙위원회가 규정한 책무가 어느 정도까지 당에게 지도받았는지를 “평가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천박한 말이 서류에 적혀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크로닌은 “모든 곳에 빛나는 충분하고도 명확한 사회주의 아젠다”를 이유로 이 체제를 찬양하고 있다. “사회주의 하에 시장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그는 화를 내지만, 이는 “신흥 중소 민영 서비스업”의 공존을 인정하는 자유주의적 해석이다. 사회주의가 도대체 어느 곳에서 “빛나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이런 뒤죽박죽 경제 사고에서 혼란한 정치가 태어난다. 이 정치는 대중의 요구가 아니라 산업과 시장의 요건에 기반하고 있다. 크로닌의 관점에서는 공공부문의 임금 인상은 시장의 수요를 자극하기 위해 도입되었다고 하더라도 “사회주의”로 간주된다.

즉, ANC · 남아프리카 공산당 정부는 세계 최후의 대규모 전체주의 국가와의 무역을 늘리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으로도 계속해 그 국가에 경도되고 있는 것이다. 이 국가는 너무나도 노골적인 자본주의이며 동시에 반反노동적이기 때문에 크로닌의 시인으로서의 기능으로써도 잔악한 현실을 미화할 수 없다. 남아프리카 공산당의 국가자본주의에의 의도는 최종적으로 중국이라는 표본 안에서 신자유주의와의 능숙한 융합을 적나라하게 발견한 것이다.

보호무역 정책이냐 계급투쟁이냐

중국 상품이 저렴한 것은 중국의 노동력이 싸기 때문이다. COSATU가 지역 일자리를 보호하고 싶다면, 그리고 국제 노동계급에 그 언질을 보여주고 싶다면, 중국에 있어 노동조합을 조직할 것을 지시하고, 자국과 아프리카 남부에 있어 계급투쟁을 구축해야만 한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어느 나라의 값싼 노동력을 다른 나라의 보다 값싼 노동력에 대항시켜 가장 싼 값이 될 때까지 경쟁시키며 성장한다. 유일한 탈출구는 국제연대와 계급투쟁이다. 이것은 국제적인 최저임금과 세계 공통의 노동조합권을 요구하는 투쟁으로부터 시작된다.

중국은 자랑스러운 계급투쟁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이는 중국 공산당과 마오쩌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1913년, 아나르코 생디칼리스트들은 산둥성에 최초로 노동조합을 조직하였고, 1920년대에는 상하이 같은 커다란 산업중심지 전체에서 개량주의와 공산주의의 노동조합주의에 도전했다. 무장한 아나키즘 농민운동은 1930년대에 푸젠성福建省에서 지린성吉林省의 만주까지를 대상으로 한 막대한 지역을 관리하고, 1940년대에 아나키스트 게릴라는 공산주의자와 함께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항해 맞서 싸웠다.

하지만 1949년 마오주의 쿠데타 이후, 중국의 추정 1만 명의 아나키스트 노동조합주의 투사는 지하로 잠적당하고, Chu Cha Pei 같은 마흐노주의 게릴라는 윈난성雲南省 구릉지대로 어쩔 수 없이 퇴각해야 했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마오쩌둥과 장군이나 국가자본주의자인 측근들을 지도자로 삼은 새로운 지배계급을 계속해 괴롭혔다.

아프리카가 점차적으로 석유 이권에 얽힌 중국 제국주의의 뒤뜰이 되고 있는 이상, 우선 첫째로 다음과 같이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중국의 강제적 국내 평화가 지닌 최악의 측면―자국 노동계급에 있어 중대한 도전이 되는 발전―을 흉내내려 하고 있는 것인가?

아나키즘이냐 마르크스주의냐

우리는 중국에 있어 “자본주의의 부흥”을 끝내고자 바라고 있는 좌익주의자를 따를 생각은 없다. 중국은 마오쩌둥이 권력을 장악한 이래 계속하여 자본주의였다. 중국의 어떠한 혁명운동도 마르크스주의도 그 변형판인 마오주의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우리는 중국이 실제로 “사회주의”라는―남아프리카 공산당 지도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따위의 이야기에도 동의할 수 없다.

자본주의는 계급 시스템이다. 계급 시스템이란 계급투쟁을 의미한다. 언제가 되었든 중국의 노동계급은 그 자랑스러운 투쟁의 전통을 재발견하고 기생충인 당 지도부와 자본가를 제외하고 자신의 모든 것에 책임을 지게끔―중국어로 무정부공산(無政府共産, wuzhengfu gonchan), 즉 정부가 없는 공동생산, 다시 말해 무정부공산주의―되며, 중국 공산당을 매장해 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가 물어야만 하는 더욱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다. 이 질문은 국경을 넘어 시사점을 지닌다. 즉, 중국은 영국을 대신해 남아프리카의 제국주의 권력이 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정권교체인가 하는 것이다. 남아프리카는 중국의 자본주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의 군사원정에 착수하게 되는 것일까? 모든 진정한 반제국주의자는 아프리카가 앞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은 서양의 확장주의 이권과 중국의 확장주의 이권의 전장이 될 가능성을 생각해 그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석유왕들에 대해 투쟁하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대중과 단결해야만 한다.


[1] 중국은 당시 콩고민주공화국에 스타디움과 국회의사당을 지어주며 당시 국제시세 톤 당 1,800달러의 구리를 900달러에 5만 톤 확보하였다. 아울러 수도인 킨샤사에서 마타디까지 380킬로미터에 이르는 도로포장권도 얻어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