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단하다, 공권력!]

​개천절 집회를 차단하기 위해 경찰과 국가권력의 신성동맹이 결실을 맺었다. 수많은 협박, 압박 속에서 파쇼세력은 대규모 집회를 일으키는데에 결국 실패했다. 경찰은 광화문을 차벽으로 봉쇄했고, 공포를 통해 인민들의 집회비토정서를 확대시켰으며, 체포압박을 통해 파쇼집회의 규모를 최소화 시켰다.

대단하다, 공권력! 당신들은 목표한 바를 이루었다.

우리 아나키스트 연대는 이러한 공권력 행사를 통해 파쇼세력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 자체야 눈정화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우리는 그 공권력 행사의 저열한 면모에 집중하고자 한다. 공권력은 집회가 신고되거나 예고된 순간부터 대규모 체포협박을 벌여왔고, 대통령과 국무총리, 여당 당수까지 나서 절대 관용은 없을 것이라 겁박을 주어왔다.

그 뿐인가? 국가권력과 함께하는 수많은 언론사들과 국가권력을 대변하는 대변인들 등은 광화문 집회가 열리면 코로나의 확산이 미친듯이 벌어질 것이라 인민대중에 공포를 불어넣었다. 그 결과가 지금 이것이다. 파쇼세력은 국가권력에 굴복했고, 국가권력은 승리했다. 대단하다, 공권력.

우리 아나키스트 연대는 이제 이러한 공포전술과 협박 전술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에 대해 경고하고자 한다. 이러한 집회금지와 겁박이 노동자들의 파업과 집회에 적용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오히려 이미 선례가 생겼으니, 국가권력은 더욱 거리낌없이 인민의 집단행동과 결사권을 막아내려 들 것이다. '방역 파시즘' 에 근간한 협박으로 말이다.

우리는 단호히 파쇼세력을 비토하고 맞섰으며, 맞설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단호하게 국가권력의 공포전술과 억압에 저항하고 반대한다. 그 대단하신 공권력의 횡포는 노동자 인민대중의 의사표현을 막을 수는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6/0010910217?sid=102

2. [‘국뽕’은 발정유도제 같은 것이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출산율이 반등할 것이라는 발표를 내놓았다. 나는 이 발표가,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직장에 가지 않는 시간이 늘어났기에 자연스럽게 출산율도 늘어날거라는 분석일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국가 관료들의 발상은 상상을 초월했다. 무려,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볼 때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데 이런 점이 (우리) 공동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기여하지 않았나 생각“된다면서, K-방역으로 차오른 ‘국뽕’ 덕분에 출산율이 반등한다는 분석이었던 것이다.

언젠가부터, 국가가 출산율 저하를 걱정하기 시작했고, 갖가지 기상천외한 출산장려정책/분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는 국가가 청년들의 단체 미팅을 주관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K-방역으로 국뽕이 차올랐으니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진심으로 궁금하다. 이들 관료들의 눈에, 인민은 교배대상인가? 그놈의 국익을 위해, 국가적 생산성 유지를 위해, 아이를 낳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차오르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국가를 위해 아이를 낳는 것인가?

분명하게 말한다. 현대 한국의 청년들이 출산을 거부하는 것은, 짝을 만나지 못해서도 아니고, “탈조선”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방세가 너무 높아 마음편히 섹스할 수 있는 자취방을 구할 수 없어서이고, 하다못해 모텔을 가려고 해도 최저임금 기준으로 4시간을 일해야 대실이나마 할 수 있어서이고, 당장 월 180만원(이것도 최저임금보다는 높은데)으로 아이를 먹여살릴 수 없어서다. 정말로 출산율을 높이고 싶다면, 값싼 주택을 공급하라. 노동자의 임금을 인상하라. 못하겠으면(당연히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하는 말인데) 섹스의 영역에서 발을 빼라.

관료들이 인민들을 교배의 대상으로 보고 있기에, 교배의 영역에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판다는 참으로 교배시키기 어려운 생물이다. 인공교배를 시도해도 안 되고, 심지어 판다용 포르노를 제작하여 상영해도 교배에 실패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동물원을 폐쇄하고, 관광객이 없어지자, 세계의 동물원들에서는 판다가 짝짓기를 하고, 자연분만에 성공하는 일이 벌어진다. 인민을 교배시키고 싶다면, 교배방법이라도 제대로 배워달라. 먹을 것을 풍족히 주고, 허튼 시도를 하지 않으면, 그 판다조차 출산한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2&sid2=59b&oid=016&aid=0001732198

3. [최소한 인민의 복지와 생존을 위해서라도 국가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변]

필라델피아 시에서 무주택자, 노숙자 들이 공공 주택의 제공을 요구하며 시 재개발 부지 점거 농성에 돌입한지 시간이 꽤 지났다. 그리고 지난 주, <필라델피아 주거 행동>및 농성대오는 시 정부 및 필라델피아 주택청과의 잠정합의를 도출했다. 주된 내용은, 농성대오에게 긴급 주거대책을 마련하고, 50채의 주택을 공동체가 관리하는 토지신탁에 위임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공공주택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도 상당히 오래되었다. 공공주택 공급의 달성을 위한 제시된 방법론도 다양했다. 모든 주택의 완전한 몰수와 재분배를 “사회주의적” 해법이라고 내놓는 곳도 있었고, 정당에 들어가서 주거문제를 내세우며 출마를 하자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공공주택은 정치꾼들의 헛된 공약으로만 그쳐왔고, 기껏해야 청년 장기 임대주택을 성과라고 받아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필라델피아의 동지들은 주거문제에 대한 해법을 만들어냈고, 장기적 공공주택 공급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냈으며, 그 공공주택 중 일부를 공동체가 관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이것은 당사대중의 직접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가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칭할 때, 우리는 “복지”를 이야기하며, 인민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국가는 필요하지 않느냐는 비판을 듣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기사를 바라보면서 이것이 “복지”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되묻고 싶다. 지난 십수년간, 국가가 주도한 그 어떤 부동산 복지보다, 지난 한 달, 필라델피아 인민대중의 직접행동/직접투쟁이 만들어낸 성과가 더 크다. 인민들은, 국가주도의 복지가 없으면 굶어죽는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투쟁하고,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다.

국가에게 말로만 요구하는 “복지”의 강화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혹여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 “복지”가 필요한 대중들이 모두 고통받은 후에 이루어질 뿐이다. 필라델피아 인민들의 투쟁처럼, 투쟁을 조직하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요구하고, 그것을 쟁취해내자. 그것이야말로 참된 “복지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https://theintercept.com/2020/09/29/philadelphia-public-housing/

번역 : https://blog.naver.com/anarchistleague/222106532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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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국경분쟁의 문제는 국경이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아르메니아 – 아제르바이잔 간에 국경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분쟁지역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으로 역사적으로도 양국간에 분쟁이 격한 지역이었으며 현재는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에 있는 아르메니아의 월경지이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 이 전쟁도 그저 지배층의 구호 아래 피지배층이 희생되는 비극에 불과하다. 회복해야 할 고토니 고유하고 정당한 영역이니 하는 무익하고 공허한 개념들을 위해 지배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결정한 전쟁 속에서 00년대생으로 이루어진 사상자 명단이 속출하고 있는 것 만큼이나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

​영역 문제에 관한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접근법은 해결이 아닌 악화를 가져온다. 유고슬라비에서 그러했고 터키에서 그랬으며 수없이 많은,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민족간 분쟁에서 그러했듯 이 문제는 어느 쪽의 승리로 끝나건 긍정적인 결과 없이 인종청소, 강제이주, 소수자 탄압등의 상처를 남기며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을 남기는 결과로 끝날 뿐이다.

이러한 분쟁의 문제는 국경선이 어떻게 그여있냐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국경 그 자체가 문제다. 검문소를 세워 민중간의 이동을 막고 철조망을 세워 공동체간의 교류를 단절시켜 인위적으로 갈라진 양 집단을 이질적인 집단으로 인식시키며 그 철조망을 지키고 확장시키는 것이 자신과 공동체의 이익인양 생각하도록 만드는 , 국경 그 자체가 문제다. 우리가 국경 문제의 해답을 찾고자 한다면 그 답은 국경을 없애는 것이다. 철조망을 허물고 사람들이 자유로이 다니도록 두자. 모든 개인과 공동체가 서로 자유로이 교류할 수 있도록 두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 그런 다음 모든 개인의 필요에 다라, 그리고 집단의 필요에 따라 토지를 점유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양국 민중 모두에게 무익한 이 분쟁에서 즉각적인 무력 사용 중단을 촉구한다. 분쟁 해결을 위한 것은 갓 사람들이 서로 죽이도록 사지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교류하며 이해하고 합의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것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200930064552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