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냥 그 이름만 안 쓰시면 됩니다]

현대차 노조를 노조라고 불러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노동조합을 뭐라고 생각들 하고 계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회적 조합주의'라는 미명 하에 "거 우리 싸우지 말고 c'ex합시다 c'exㅎㅎ"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집단을 굳이 노동조합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물론 싸우지 않고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야합이나 타협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이 노동계급에 대해 자신들의 패배를 평화적으로 선언하고 스스로의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노동대중의 한 사람으로 마음과 행동을 돌렸을 때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회사가 있어야 노조가 있다"는 류의 패배주의적 선언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회사가 있어야 노조가 있다"고 현대차지부는 이야기했는가? 하지만 이를 어쩌나, 회사는 결코 "노조가 있어야 회사가 있다"는 이전 문구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회사 역시 이에 공감하고 함께 나아가고자 협의하고 있다고? 알아서 무기 내려놓고 이빨 뽑고 발톱 뽑아서 내 앞에 공손히 바치겠다는데 굳이 거기서 뻗대서 화를 돋울 필요가 정씨 왕가의 그 어디에 있겠는가.

회사를 정녕 법이 정한 '법인', 그러니까 하나의 생명체라고 인식하고 있는가? 안타깝지만 그런 허상이 우리를 좀먹는다고 단호히 말하겠다. 회사는 살아 있는 주체도 아니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배당금 잔치를 하는 호사가들의 것도 아니요, 제품을 생산해 내는 노동자, 오직 그 노동자들의 것이어야만 한다. 당장 어렵다면 이번 선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측은 신차 연구개발과 미래 투자 정보를 노조와 공유"하는 것부터 시작을 해볼 수는 있겠다. 과연 회사가 순순히 알겠습니다, 하고 자신들의 도깨비 방망이를 내어 줄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생산수단을 생산에 직접 종사하는 노동자의 손으로 운영하는 방침을 포기하고 어찌 노동조합이라고 불리기를 바라겠는가.

그러니 현대차 노조는 이제 택일하시면 되지 않을까 싶다. 노동조합답게 생산수단을 노동자의 자주적인 경영으로 사용하는 길로 다시 돌아올 것인가, 아니면 노동조합이라는 이름 버리고 노사상생지원센타 뭐 이런 이름으로 간판을 바꾸시든가.

"현대차 노조 "대립 관계 청산해야" ... 사회적 조합주의 제시"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2&sid2=251&oid=001&aid=0012166397


2. [자가격리할 집부터 주어라]

최근 서울시의 노숙인 관련 시설에서 30여 명이 코로나바이러스에 집단 감염 되는 등 노숙인들 사이에서의 감염이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모두에게 힘든 일이지만 빈민과 약자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작용하고 있다. 제대로 된 거주지와 생활조건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는 노숙인들의 삶은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이래로 계속 악화되어 왔다. 노숙인들이 그나마 이용할 수 있었던 일부 공공의료시설들은 코로나 감염 전담병원으로 전환되어 최소한의 의료서비스 조차 받을 수 없게 되었고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던 무료급식소조차 다수가 문을 닫아 한끼 식사마저 위협 받고 있는 상태다. 이런 와중에 서울시는 노숙인 시설 입소 기준을 최근 양성판정을 받은 이만 입소할 수 있도록 강화하겠다고 한다.

한편 이렇게 노숙인들이 몸 누일 쪽방조차 위험해지고 줄어드는 와중에도 가진 이들은 투기를 일삼으며 주거로 이윤을 챙기고자 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은 계속해서 오르고 투기는 과열되어만 간다. 한쪽에는 견딜 수 없는 위험과 빈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는 탐욕과 착취가 존재한다. 이것이 현 체제의 작금의 현실이다.

우리 사회가 노숙인들을 이대로 방치할 만큼 집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어선 상태다. 우린 분명 노숙인들에게 열악하고 위험한 수용시설이 아닌 안전한 거주지를 제공할 능력이 있다. 자본의 탐욕을 넘어설 수 있다면 어떤 이도 길바닥을 해맬 필요도, 감염에 취약한 후진 시설에 들어갈 필요도 없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노숙인들의 생존권을 위해 자본에 맞선 주거와 의료의 공공성을 위한 투쟁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자가격리할 집이 없는데요 ... 노숙인 시설도 집단감염 확산"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530805


3. [안에서 새는 바가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이수진 씨가 원청의 노사협의회에 하청노동자의 “참관”을 하도록 규정하는 <근로자 참여 증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수진 씨가 말한대로 “원청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하청노동자는 원청 회사의 시설물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하청노동자 근로 조건 향상과 산업안전 개선을 위해 원청 노사 모두의 협력이 필요”한 것이라면, 하청노동자가 원청 노사협의회에 “참석”해야지 왜 “참관”“할 수”있어야 하는 것인지는 우선 제쳐두자. 왜 저런 법을 만드는데 실제로 집행을 하게 될 하청노동자들의 의사는 묻지 않는지는, 대의 민주주의가 언제나 그렇다고 넘어가도록 하자.

제일 굉장한 것은, 이 법을 발의한 이수진 씨가 4년 전 자기 현장인 세브란스병원의 노조위원장이었을 때,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설립을 탄압하는 데 매우 열심히 노력하신 원청노조 위원장이었다는 것이다. 하청업체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악법을 이용해 하청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하기를 시도하고, 입사 시험을 보면서 민주노총이 아닌 한국노총 가입원서를 써야 입사가 가능하고, 원청이 고용한 경비용역들이 노동조합 조직활동가들을 미행하고, 원청인 세브란스 병원의 총무팀이 하청노조를 직접 “관리”하던 와중에, 원청노조의 위원장이던 이수진씨는 민주노총이 “세력을 확장하려고” 들어왔다며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과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에게 항의 전화를 하였다.

이수진 씨의 진심이 궁금하다. 하청노동자들이 감히 노동조합을 만들고, 원청 사업장에서 집회를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지만, 노사협의회에 “참관”하러 오는 것 정도는 아량으로 용서하실 수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하청노동자들은 노동조합같은 것 만들지 말고, 노사협의회에나 성실하게 참관하면, 원청 노사가 공동으로 노력하여 노동조건을 개선해주겠다는 것인가?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에게 그 되도 않는 자비와 아량은 그만두라. 노동자들은 스스로 자기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 이수진 씨가 아무리 세브란스병원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탄압하려 했어도, 노동조합은 아직까지 꿋꿋하게 남아 버티고 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언제나 밖에서도 샌다. 자기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의 단결권 탄압에 앞장서시던 이수진 씨가 대표 발의한 하청노동자 보호법이 어떤 끔찍한 악법으로 다가올지 걱정이 될 뿐이다. 이수진씨가 진정으로 하청노동자들의 노동권 증진을 하고 싶어하시는 것이라면, 법 따위를 개정하기 전에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자기 현장에서의 하청노동자들에게 사과하고, 그 노동조합이 온전하게 자기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원청 노사협의회에 하청노동자 참여 길 열리나" :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1034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외면한 노동분야 비례대표?" :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490665


4. [진보 개혁의 허상]

조 바이든 미합중국 대통령 각하께서 파쇼수괴 도널드 트럼프를 무찌르고 대통령 신분이 되신지 어언 몇 주, 만민은 바비어천가를 외면서 태평성대를 찬양하며 행복하고 살고 있다고 하더라...라는 머릿 속 꽃밭을 우리는 내던져야 한다. 언론들은 바이든이 온갖 진보정책을 내세우고, 민주당이 좌경화됐다면서 난리에 난리를 치고 있다. 샌더스의 상원 예산위원회 위원장직 등선에 사회주의가 온다면서 부르주아들은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단호히 말한다. 조 바이든과 민주당 패거리들의 '진보 개혁'은,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다. 이미 지나간 역사 속에서 그 '개혁'이 얼마나 많은 실패를 이뤄냈는지, 그리고 얼마나 인민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는지 증명했기 때문이다.

반트럼프를 외치며 오바마의 후광을 입고 민주당 내 리버럴의 지지를 통해 대통령직에 오른 조 바이든은, 결국 의회민주주의를 유지하고자 하는 한 사람의 자유주의자에 불과하다. 그들은 전 세계 어디서나 그렇듯, 노동대중을 탄압하지 않는 척 하면서 부르주아들에게 힘을 실어주며 자연스럽게 수많은 불평등 의제에 목소리를 싣는다. 그리고 그 불평등 의제에서 목소리를 내지만, 정작 근본적인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는다.

이번 게임스탑 주가폭등 사태에서도, 그리고 어떻게든 바이든 패거리들이 해결하려고 프로파간다를 흩뿌리는 구조적 인종차별 문제와 환경 문제 또한 그렇다. 그들은 입법을 내세운다. 기업을 '규제' 하겠단다. 그들은 과거에 수많은 정부들이 그랬듯이, 또 다시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고자 한다.

우리는 단호히 말한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할 단 한가지의 방법은 바로 노동자 인민의 총체적인 사회혁명 뿐이다. 국가와 의회, 사법부의 통제와 억압 없이, 자유로이 결성된 노동자 인민의 조직을 통한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에 대한 총체적 타격 뿐이다.

근본부터, 기저부터 바뀌지 않는다면 영원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겉만 변화시키는 것은 그 어떤것도 개선시킬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진보 개혁'이 아니라, '혁명'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믿는다.

"바이든, '진보 개혁' 완수할 수 있을까?" :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056882?sid=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