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아나키즘에 관한 대화 모음집
Source: 상호부조,『아나키즘에 관한 대화 모음집』상호부조,2023
Notes: 출판사 "상호부조" 엮음. 책 구매 링크: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0776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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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키즘적 코뮌주의에 관한 두 노동자의 대화

  두 농부의 대화 : 아나키에 관해

    서론

    두 농부의 대화

  카페에서

    영어판 서문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말라테스타에 관하여

  후기

아나키즘적 코뮌주의에 관한 두 노동자의 대화

윌리엄 :아, 잭, 자네 맞지? 만나서 반갑네. 자네와 몇 마디 나누기 위해서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네. 오, 잭! 잭! 내가 자네에 대해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자네가 시골에 살 때는 착한 아이였지. 동갑내기 젊은이들에게 아주 좋은 본보기였지. 가여운 자네 부친이 아직 살아만 계셨더라면...

잭 : 윌리엄, 어째서 제게 그런 식으로 말하시는 건가요? 제가 아저씨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 나무라시나요? 그리고 왜 제 가여운 아버지께서 제게 실망하셨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윌리엄 :내 말을 듣고 마음 상하지 말게나, 잭. 나는 늙은이이고 자네를 위해서 말하는 것이라네. 게다가 난 자네 아버지 앤드류와 어찌나 좋은 친구였는지 자네가 잘못된 길로 방황하는 것을 보니 자네가 마치 내 아들인마냥 화가 나. 특히 자네 아버지가 자네에게 기대하던 바와 자네에게 좋은 앞날을 남기려고 했던 희생들을 생각하면 말이야.

잭 : 하지만 윌리엄,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정직한 일꾼이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저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고, 장담하건대 저는 항상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니 어째서 제 아버지께서 저를 부끄러워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저는 최선을 다해서 배우고 발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 어머니와 저는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악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를 이렇게 다그치십니까?

윌리엄 :아, 바로 그걸세! 나는 자네가 열심히 일하고 이웃을 돕는다는 것을 충분히 잘 알고 있네. 자네는 좋은 사람일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자네를 칭찬하네. 하지만 그럼에도 자네는 여러 번 투옥됐어. 사람들은 자네가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다고, 자네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하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자네를 위할 뿐이고 망설임 없이 자네에게 말을 할 걸세. 잭, 이 노인의 조언을 듣게. 정치는 아무 할 일도 없는 이들에게 양보하고 자네는 일에 집중하고 옳은 일은 하는 데에만 집중하라는 내 말을 새겨들어야 하네. 그것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과 마음을 잃게 될 걸세. 내 말 듣고 나쁜 친구를 버리시게. 모두가 알다시피, 그런 친구들이 자네 같은 불쌍한 젊은이를 그릇된 길로 이끄는 게 아닌가.

잭 : 윌리엄, 제 동료는 뛰어난 동료들입니다. 정말로요. 그들이 먹는 빵은 땀으로, 그리고 가끔은 그들의 눈물에 젖어있어요. 지배자들이나 그들을 헐뜯죠. 우리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빨아들이려 하고, 우리가 유복해져서 그들의 횡포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우리를 불한당이나 죄수로 취급하는 그 지배자들 말입니다. 제 동료들과 제가 투옥된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정당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우리는 다시 들어갈 것이고, 어쩌면 더 나쁜 일이 우리에게 닥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불의와 고통을 파괴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처럼 평생을 일하고 배고픔에 시달리는 윌리엄 당신 같은 사람,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때 죽을 자리를 찾아 구빈원에 들어가게 될 당신 같은 사람은, 최소한 상류층과 국가의 편에 서서는 안 됩니다. 가난한 자들의 삶을 개선하려는 사람들을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윌리엄 :친애하는 잭, 세상이 아주 안 좋게 돌아가는 건 알지만, 그런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건 안짱다리를 가진 개의 다리를 곧게 펴려는 것과 같네. 그러니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것을 받아들이고, 최소한 빵 한 조각이 결코 부족하지 않도록 하느님께 기도하세.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존재했고, 노동을 위해 태어난 우리는 일해야 하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것에 만족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공공의 평화를 어지럽히고 우리의 사명을 해칠 것이야.

잭 : 우리의 사명이라고요! 아저씨가 신사라 부르는 이들을 보세요. 우선, 그들은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고, 그들은 우리의 이마의 땀으로 사치스럽고 게으르게 살고 있으면서 우리에게는 짐승처럼 일하지 않고는 빵 한 조각도 벌 수 없게 합니다. 그런 다음, 만약 우리가 우리의 희생으로 그들의 배를 불린다는 사실에 흔쾌히 복종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나쁘고 정직하지 못한 놈이라 부르고, 경찰은 우리를 감옥으로, 성직자는 우리를 지옥으로 보냅니다. 들어보세요, 윌리엄. 진짜 악당이며 나쁜 놈들은 다른 사람들을 억압함으로써 살아가는 놈들입니다. 그들은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을 손에 넣었고, 노동자들을 착취합니다. 노동자들은 마치 양떼처럼 털을 깎이고 도살까지 당하죠. 그럼에도 주변인의 생명력을 갉아먹은 적 없는 아저씨는 이런 짓을 일삼는 자들의 편에 서서 저희를 핍박한다고요? 정부가 그들의 편에 서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정부는 부자의 이익을 위해 부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의 편에 서게 마련이지만, 노동자, 우리의 친형제가 단지 우리가 빵과 자유를 갖기를 원한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등을 돌려야 할까요? 아! 만약 제가 가난한 이들을 오랫동안 눌러왔던 비참함, 노예 상태, 그리고 모욕적인 관습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저는 가장 나쁜 사람, 즉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적게 가진 자는 스스로를 인류의 억압자의 도구로 만든 가난한 자라고 말했을 겁니다. 최소한 저희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현실을 만들기 위해 저희가 가진 약간의 빵과 자유를 잃을 위험을 감수합니다.

윌리엄 :음, 듣기에는 좋은 소리구만.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좋은 일은 있을 수 없으며,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뜻에 복종해야 하네.

잭 : 이런, 윌리엄, 우리가 이치에 맞는 말을 하려고 한다면, 신은 논외입니다. 신의 이름은 동료를 속이고 억압하려는 모든 이들의 구실과 명분으로 쓰입니다. 왕은 신이 자신에게 통치할 권리를 준 척하고, 두 왕이 하나의 나라의 왕위를 다툴 때, 그들은 둘 다 신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떠벌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가장 많은 병사나 가장 좋은 무기를 가진 자에게 승리를 쥐여 줍니다. 가진 자, 착취자, 독점자는 모두 신을 이야기합니다.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 터키의 신부들은 모두 신의 사도를 자칭합니다. 그리고 신의 이름으로 그들은 서로 전쟁을 하고 각자 자신의 방앗간으로 곡식을 가져오려고 합니다. 그들은 모두 신이 자기들에게 모든 것을 주었고, 남은 우리에게는 불행과 고된 노동을 선고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번 삶과 다음 삶에도 낙원을 가지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생에 지옥을 갖고 현생을 순종하는 노예로 보내야만 다음 생에 낙원을 가질 것이라 합니다. 그래놓고 아저씨는 제게 신이 바로 그렇게 의도하셨고 그것이 신의 참뜻이라고 하시면, 저는 그 신이 매우 악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지 않아야 하지만 각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세상이 돌아가는 바를 논할 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충실하여, 우리와 우리 동료들을 위해 이 삶에서 작은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성직자 자신이 모든 이는 신의 자녀이며 그러므로 형제라고 말하는 건 아저씨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윌리엄 :잭, 도시에서 글을 배우고 나서부터 변호사까지 곤혹스럽게 할 만한 말투를 갖게 됐군. 하지만 이제 말해보게. 정녕 그들이 말하는 대로, 재산을 가진 모든 이들을 약탈하려 한다는 말이 사실인가?

잭 : 좋아요! 드디어 요점에 도달했군요. 아뇨,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우린 아무것도 훔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대중이 부자의 재산을 가져가서 모두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둑질이 아니라, 그저 대중이 자신의 것을 다시 가져가는 것입니다.

윌리엄 :뭐라고! 그 신사들의 재산이 우리 것이라는 말인가?

잭 : 물론이죠. 우리 재산입니다. 모두의 재산입니다. 누가 그것을 부자에게 주었습니까? 그들은 어떻게 그것을 얻었을까요? 그들은 무슨 권리로 그것을 장악하고 유지합니까?

윌리엄 :하지만 그것은 그의 조상이 남긴 것이네.

잭 : 그리고 그 조상에게는 누가 줬죠? 들어보세요. 가장 강하고 운이 좋은 사람들이 그들의 힘이나 행운을 이용하여 모든 것을 차지했고, 그들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일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과 동시대의 사람들 대부분을 억압하고 굶기며 혼자 게으름 피우며 사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의 아들과 손자에게 약탈한 부를 남겨줬습니다. 그렇게 다음 세대를 그들의 자손의 노예가 되는 운명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 자손들이 나태와 오랜 권력 행사로 인해 너무 쇠약해져서, 조상이 오래전에 했던 일을 오늘날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음에도 불구하고요. 이 모든 것이 아저씨에게는 정당해 보이나요?

윌리엄 :무력으로 부를 얻은 것이라면 그렇지 않지. 하지만 상류층은 자신의 노동으로 재산을 얻었다고 말하지. 나는 어떤 사람이 일해 번 것을 빼앗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네.

잭 : 언제나 같은 이야기죠! 일하지 않고 일한 적이 없는 사람이 한결같이 ‘노동의 이름으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누구의 노동으로 지구와 철과, 석탄과 돌을 만들어집니까? 아니면 어떻게 이런 것들이 존재하게 됐습니까? 우리 모두 이 세상에 왔을 때 발견했고,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것들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만약 부자가 자기만을 위해 공기를 독점한 뒤, 우리에게는 가장 더러운 공기를 조금밖에 주지 않으면서, 그마저 우리의 노동을 지불한 뒤 사용하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지구와 공기의 유일한 차이점은 그들이 지구를 손에 쥐고 나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공기로는 그리 할 수 없었지만, 만약 가능했다면, 그들은 땅을 다루는 것처럼 공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할 겁니다. 제 말을 믿으세요.

윌리엄 :맞네. 지당하네. 땅을 비롯한 모든 것은 누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니 모두의 것이어야 하네. 하지만 저절로 생겨나지 않은 것도 있지.

잭 : 그렇죠, 사람이 일해서 만든 것도 있고, 사람이 손으로 개간하지 않으면 땅 자체가 거의 가치가 없겠죠. 하지만 공정성을 따지자면, 이런 것들은 그것들을 생산하는 이들의 것이어야 합니다. 도대체 무슨 기적에 의해 그것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의 소유가 된 걸까요?

윌리엄 :하지만 상류층은 그들의 아버지들이 일했고 저축했다고 말하네.

잭 : 반대로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들이 다른 사람들을 일하게 만들었다고 자백해야 합니다. 오늘날 그렇듯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요. 역사는 우리에게 노동자의 운명은 계속해서 비참했고 이웃을 착취하지 않고 정직하게 노력한 사람은 결코 유의미한 저축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일반적으로 그런 사람은 자신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할 만큼 충분히 벌지 못했습니다. 눈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세요. 노동자가 생산하는 모든 것이 주인의 손에 넘어가지 않습니까? 한 사람이 개발되지 않은 늪지대를 단 몇 파운드에 사들인 뒤 사람을 구해 그곳을 경작하게 하고, 그들에게 간신히 먹고살 만큼밖에 주지 않는 반면, 본인은 가만히 도시를 벗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몇 년 후, 이 황무지는 원래 가치의 백배인 정원이 됩니다. 소유주의 자식은 이 재산을 물려받고선, 자기 아버지의 노력의 성과를 누리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정작 거기에서 정말 고생하고 고통 받은 자들의 자식은 계속해서 고생하고 고통 받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윌리엄 :하지만 자네 말 대로 세상이 정말로 항상 그랬다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고용주라고 다른 수가 있는 건 아니네.

잭 : 저는 모든 걸 상류층에게 이로운 사실이 되도록 이해할 준비가 됐습니다. 재산을 소유하는 모든 이는 전부 일하고 저축한 자의 자식이고, 노동자는 모두 게으름뱅이의 자식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이것은 분명히 말도 안 되는 가정이라는 점을 아저씨도 이해하시겠죠. 하지만 실제로 그랬다 해도, 현재의 사회 구조는 정의로울까요? 만일 아저씨가 일하고 저는 게으른 개라면, 제가 게으름 때문에 벌을 받는 건 마땅합니다. 그러나 정직한 일꾼일 수도 있는 제 자식이, 아저씨의 자식을 게으름과 풍족함 속에 살게 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윌리엄 :훌륭한 논리라는 점을 난 부정하지 않네. 하지만 재산을 가진 자는 상류층이고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해야 하네. 왜냐하면 그들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네.

잭 : 그들이 부를 가지고 있다면, 이는 그들이 부를 힘으로 취하고 다른 사람의 노동의 열매를 착취함으로써 부를 불려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를 취한 방법으로 또한 부를 잃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서로 싸워 왔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입에서 빵을 빼앗으려고 했고, 각자 자기 동료를 복속시켜서 짐승으로 삼는 것을 행복이라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상황에 끝을 낼 때가 도래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싸워서 얻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다툼으로 얻은 유일한 수확은 가난, 노예, 범죄, 매춘, 그리고 때때로 전쟁과 혁명이라고 불리는 피 보는 것들뿐이었습니다. 대신에 우리가 서로 합의하고, 사랑하고, 도울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악행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많이 가진 자와 아무것도 없는 자는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가능한 모든 사람들이 잘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지배하는 것과 일하지 않고 사는 것에 익숙한 부자는 구조의 변화를 위한 외침을 귀담아듣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 알맞게 대처할 것입니다. 만약 부자가 사람들 사이에 증오와 불평등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모두가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보다 좋은 건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그가 자기와 자기 아버지의 폭력과 도둑질로 얻은 열매를 계속 누릴 권리를 계속해서 주장한다면, 그는 최악의 선택을 내린 것입니다. 부자가 가진 것은 무력으로 가져간 것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무력으로 찾아올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이 합의점에 도달한다면, 그들은 부자보다 강력합니다.

윌리엄 :하지만 상류층 없이 우린 어떻게 살란 말인가? 누가 우리에게 일감을 준다는 말인가?

잭 : 이런 질문이라뇨! 매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계시잖아요. 땅을 파고,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아저씨가. 옥수수를 타곡하고, 가축에게 먹이를 주고, 더 맛있는 치즈를 만드는 아저씨 본인이 제게 어떻게 우리가 상류층 없이 살 수 있느냐 물어보십니까? 그럴 바엔, 차라리 상류층이 그에게 옷을 입혀주고 밥도 먹여주기 위해 도시와 촌에서 노역하는 불쌍한 우리 노동자 없이 어떻게 살 것인지 물어보시죠. 방금 아저씨는 우리를 살 수 있게 해주는 고용주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저씨는 남 덕에 사는 것은 정작 그들이라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그들이 먹는 모든 빵은 아저씨 자녀의 빵을 빼앗은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의 아내에게 주는 모든 선물은 아저씨의 가난, 빈곤, 추위, 심지어는 아저씨 자녀의 매춘을 뜻한다는 사실을요? 그들이 무엇을 만듭니까? 아무것도요. 그러므로 그들이 소비하는 것은 노동자로부터 빼앗은 것입니다. 모든 농민이 내일 사라진다고 가정합시다. 땅을 갈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고, 모두가 굶어 죽을 것입니다. 제화공이 사라지면 신발도 없어지고, 석공이 사라지면 집을 지을 사람도 없어집니다. 만약 각 종류의 노동자가 사라진다면, 차례대로 각 생산 부문은 사라질 것이고 우리는 유용하거나 필요한 것 없이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상류층을 없애면 무슨 해악이 있겠습니까! 그건 메뚜기 떼가 사라지는 것과 같을 겁니다.

윌리엄 :그래, 바로 우리가 모든 것을 생산하지. 하지만 예를 들어서 내가 땅도 가축도 씨앗도 없다면 어떻게 옥수수 농사를 지을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는 고용주에게 의지하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다고 확신하네.

잭 : 제발, 윌리엄, 우리 서로 말이 통하고 있는 게 맞습니까? 우리가 일하고 살기 위해 우리는 지배자로부터 빼앗아야 한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땅, 도구, 씨앗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요. 저는 지배자가 노동의 땅과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한, 노동자는 항상 복종해야 하며 노예 상태와 가난 외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부르주아의 재산을 빼앗는 것이 최우선이 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지 않고선 세상은 결코 회복될 수 없습니다.

윌리엄 :자네가 말했지, 자네가 옳다고.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내게는 너무나 새로워 좀 혼란스럽네. 그러니 자네가 어떻게 할 것인지 한 번 설명해보게. 부자들에게서 뺏은 재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역시, 분배해야겠지?

잭 : 아뇨, 아닙니다. 그런 건 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재산을 나눠 가지고 지금의 소유자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저씨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거나 악당이라고 믿으셔도 좋습니다.

윌리엄 :그럴 경우 전혀 이해가 안 되는군.

잭 : 충분히 자명합니다. 우리는 단지 모든 것을 공통으로 하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일해야 하고 모두가 가능한 한 잘 살아야 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합니다. 일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이 세상에서 살 수 없습니다. 스스로 일하지 않으면 다른 이의 노동에 의해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부당하고 해롭습니다. 하지만 물론, 아저씨는 제가 ‘모두가 일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일하는 것이 가능한 모든 이들을 말한다는 점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불구자, 환자 그리고 노인들은 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 감정은 그 누구도 고통받게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 모두 늙고, 언제든 불구가 되거나 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도 그렇죠. 자 이제 잘 생각해보면, 모든 부는, 그러니까 인간에게 유용한 모든 것은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땅, 기계를 비롯하여 철, 나무, 돌, 이동 수단 등을 포함한 모든 노동수단입니다. 이는 우리가 일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공동의 것이어야 합니다. 노동의 방법은 나중에 다루죠. 저는 공동으로 일하는 것이 최선이라 믿습니다. 그렇게 하면 더 적은 피로감으로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직종에서 각자 개별로 일해야만 했다면, 우리는 인간의 노동을 크게 단순화하고 줄여주는 기계를 사용하는 것을 포기해야 했을 겁니다. 나아가, 인간이 서로의 입에서 빵을 빼앗을 필요가 없을 때, 그들은 고양이나 개처럼 되지 않고 함께 있는 것에 기쁨을 느낄 것입니다. 물론 혼자 일하기로 선택한 이는 그렇게 하도록 둘 것입니다. 핵심은 그 누구도 일하지 않고, 그래서 다른 이들이 그를 위해 일하도록 강요당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각자가 일을 할 환경이 갖춰진 상황이라면 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당연히 남의 종이 되는 것을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의 종류의 다른 하나는 인간의 욕구를 직접적으로 충족시키는 것들입니다. 예컨대 의식주 말입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공동으로 소유되고 분배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다음 추수 때까지, 그리고 산업이 새로운 생산물을 공급할 때까지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죠. 프롤레타리아를 굶겨 먹고 사는 게으른 고용주가 없을 혁명 이후에 생산될 것들에 대해서는, 각국의 노동자가 서로 동의한 대로 나눌 것입니다. 그들이 공동으로 일하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두고자 한다면, 그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그 경우에 그들은 생산이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키도록, 그리고 소비가 모두에게 가장 큰 행복을 보장하도록 (생산과 소비를) 규제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각자가 생산에의 기여를 계산해서 그와 동등한 양을 가져가야 합니다. 이 계산은 다소 어렵고, 저는 개인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이렇게 시작한 이들도 비례분배의 어려움을 느끼고 모든 것을 공동의 것으로 만드는 주장에 더 우호적이게 될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빵, 집, 물과 같은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한 사람의 노동량과는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위해 보장돼야 합니다. 어떤 방법이 채택되든, 누구는 부자로, 누구는 굶주리는 가난뱅이로 태어나게 하는 재산의 상속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각자가 자기가 생산한 것의 절대적인 주인으로 인정받고 본인 명의의 저축을 허용하더라도, 그렇게 축적된 부는 그가 사망한 즉시 공동체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이들은 최고의 성장과 배움을 보장받도록 모두의 노력으로 양육되고 교육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정의도 평등도 있을 수 없고, 생산수단에 대한 각각의 권리의 원칙도 침해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땅과 기계를 주고는 그것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조건-즉, 교육-을 마련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성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성은 남성과 동등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성별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을 일컫는 것입니다.

윌리엄 :다만 문제가 하나 있네. 가난한 사람을 약탈하고 굶주리게 한 부자의 재산을 빼앗는 건 아무렴, 좋네. 하지만 열심히 일하고 저축한 이가 작은 밭을 사거나 작은 가게를 열려고 돈을 모았다면, 자네는 무슨 권리로 그에게서 그의 노동의 결실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

잭 : 자본가와 정부가 생산물을 쓸어가는 요즘에는 흔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쨌든, 저는 아저씨에게 사람 각자가 자재와 노동수단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따라서, 자기가 직접 경작하는 약간의 땅이 있다면 그는 그대로 간섭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최고의 도구와 거름 그리고 생산량을 최대한 증폭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받을 것입니다. 당연히 모든 것을 공동의 것으로 하는 게 가장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 서로 비슷한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은 코뮌주의 체계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강요를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공동 재산과 노동 덕분에 모든 게 잘 풀릴 것입니다. 또한,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편리하기 때문에 지금보다도 더 많은 부와 일이 생길 것입니다.

윌리엄 :기계일세! 우리는 바로 기계를 불태워야 하네! 바로 기계가 우리 팔을 부러뜨리고 우리의 빵을 빼앗네. 이곳 시골에 기계가 오면, 임금이 내려가고, 우리 중 일부는 일을 잃고 다른 곳으로 가야만 할 것이라 장담하지. 도시에서는 더 심할 것일세. 만약 기계가 없다면 상류층은 우리의 노동력을 더 필요로 해서 우리는 조금 더 잘 살았을 것일세.

잭 : 윌리엄, 기계가 가난과 실업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건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건 기계가 부자의 소유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만약 기계가 노동자의 소유였다면, 현실은 그 반대였겠죠. 기계는 인간 일반을 편안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결국 기계는 우리 대신에, 우리보다 더 빨리 일을 하니까요. 기계 덕분에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일해야 할 필요가 없고,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고통스러운 일로 벌 받지 않을 것입니다. 기계가 모든 생산 과정에 도입됐고 모두의 소유였다면 단 몇 시간의 쉽고 간단한 일만으로 모든 소비를 충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각 노동자는 지식을 쌓고 인간관계를 가꿀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과학과 문명의 산물을 즐기며 행복한 삶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기억하세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아저씨는 소유주가 기계를 파괴하려는 사람으로부터 기계를 보호하는 만큼, 기계를 차지하려는 사람으로부터도 기계를 보호하려 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 것입니다. 따라서 두 경우 모두 똑같은 노력을 하고 똑같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기계를 빼앗기보다 부수는 것은 완전히 어리석은 일이라는 겁니다. 옥수수와 호스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면 아저씨는 그것들을 파괴하겠습니까? 당연히 아니죠! 자, 우리는 기계도 똑같이 대해야 합니다. 만약 기계가 고용주의 손에 있다면 우리의 가난과 노예 상태에 도움이 될 것이고, 우리의 손에 있다면 부와 자유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윌리엄 :하지만 그러한 체제가 돌아가려면 모든 사람이 기꺼이 일해야 하지.

잭 : 물론이죠.

윌리엄 :그리고 일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고생은 개도 싫어하네.

잭 : 아저씨는 오늘날 사회와 혁명 이후의 사회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개도 힘든 일을 즐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낼 수 있습니까?

윌리엄 :나 말인가? 아니, 나는 일에 익숙하네. 할 일이 없을 때 내 손은 뭐라도 하고 싶어 근질거리지. 하지만 하루 종일 주점에서 카드놀이를 하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빈둥거리는 이들도 있네.

잭 : 오늘날은 그렇겠지만, 혁명 이후에는 다를 겁니다. 그 이유를 설명드리죠. 오늘날 노동은 불쾌하고, 보수가 적으며, 업신여겨집니다. 오늘날 노동자는 거의 죽기 직전이거나 반쯤 굶어 죽을 지경인데, 그는 짐승 취급받습니다. 노동자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는 십중팔구 구빈원에서 일생을 마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계속되는 학대와 굴욕에 시달리면서 자기 삶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가족을 돌볼 수 없습니다. 반면에 일하지 않는 자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편하게 지냅니다.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보고 존경합니다. 모든 즐거움은 그의 몫입니다. 노동자 사이에서도, 가장 편한 일을 가장 적게 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벌고, 다른 이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여겨집니다. 사람들이 일에 넌더리가 나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열망하는 것이 놀라운 일인가요? 하지만 노동이 인간에게 적합한 환경에서, 적당한 시간 동안, 건강을 존중하는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노동자가 자기 가족과 모든 인간의 안녕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존중받고 싶은 자는 반드시 노동자가 돼야 하고 게으른 자는 오늘날의 간첩이나 매춘부만큼이나 멸시를 받는다면. 그렇다면 과연 누가 쓸모 있고 사랑받는 것을 저버리고 몸과 마음에 파괴적인 나태에서 살고 싶겠습니까? 심지어 몇몇 드문 예외를 제외한 오늘날에도, 모든 사람은 본능적으로 간첩이나 매춘부가 되는 가능성을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땅을 가꿔서 일하는 것보다 이러한 비열한 소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습니다. 일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국가의 보호도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직업은 가증스럽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이들은 그런 일을 추구하는 불명예보다는 가난을 선호합니다. 예외는 있습니다. 악함을 선호하는 나약하고 타락한 괴물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악명과 빈곤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을 함으로써 편안함과 대중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데, 누가 악명 높고 비열한 삶을 선택하겠습니까? 확실히 그런 자는 미친 사람 일 겁니다. 그리고 그 게으름뱅이는 공개적인 비난을 받으리라 의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은 본질적으로 사회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게으름뱅이는 공동체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일에 기여하지 않으며, 타인의 생산에 의존해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질서의 조화를 깨뜨리고 과거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불만 가득한 집단의 요소가 될 것입니다.

집단은 개인과 같습니다. 집단은 자기 자신과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사용하는 것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또한 자기에게 해를 끼치거나 해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증오하고 경멸합니다. 집단은 속아 넘어갈 수도 있고, 너무 자주 속아 넘어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의 경우에는 그 어떠한 오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을 하지 않고 타인을 희생시켜 먹고 마시는 사람이 나머지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대낮처럼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한번, 아저씨가 어느 집단과 모든 일을 함께 하고, 생산물을 나눠 갖는다고 가정합시다. 물론 아저씨는 약하거나 숙련되지 않은 동료를 배려하시겠죠. 하지만 게으름뱅이의 경우 그는 스스로 집단을 떠나거나 벗어났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의 어깨를 보태 힘을 더하는 쪽으로 삶을 바꾸지 않겠습니까? 공동체 일부 구성원의 게으름이 공동체에 심각한 위험이 될 경우 일어날 일입니다. 일하지 않는 자 때문에 나머지가 일을 할 수 없다면 -물론 그렇게 될 가능성은 낮아보이지만- 그들은 단순히 공동체에서 추방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원자재와 노동수단 말고는 그 어떤 것에 대한 권리가 없기 때문에, 살고 싶다면 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윌리엄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네, 자네. 그럼 말해보게, 모두가 밭에서 일해야 하나?

잭 : 왜 그래야 하죠? 사람들은 빵과 맥주와 고기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집, 옷, 책, 그리고 모든 직종의 노동자가 생산하는 모든 것을 원합니다. 누구도 혼자서 자신의 모든 필요를 충족할 수 없습니다. 땅을 갈기 위해서라도, 저희는 대장장이와 도구 제작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나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철을 파내는 광부, 집과 가게를 짓는 석공 등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나요? 그러므로 결론은 모두가 땅을 일궈야 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직종의 다양성은 각자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을 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렇게 노동은 운동이며 간절히 원하는 즐길 거리가 될 것입니다.

윌리엄 :그럼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직종을 고를 수 있는 것인가?

잭 : 물론이죠. 다만, 일부 직종이 일손난에 시달리는 가운데 다른 직종은 일손이 넘쳐나서는 안 되겠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할 것이니, 저희는 정말로 필요한 모든 것이 생산됨과 동시에 개인의 바람이 충족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목적이 불분명한 일을 빵 껍데기만을 주며 강제하는 주인이 없을 때, 그것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윌리엄 :그렇게 현실이 될 것이라 말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네. 나는 그 누구도 불쾌한 일을 하려들지 않으리라 생각하네. 나는 모두 변호사나 의사가 될 것이라 보네. 누가 밭을 일구겠는가? 누가 목숨과 건강을 걸고 광산으로 내려가겠는가? 누가 어두컴컴한 하수구로 내려가 청소하겠는가?

잭 : 변호사는 논외로 두시죠. 변호사와 성직자는 사회의 고름 정도에 지나지 않고 혁명이 이를 치유할 것입니다. 이웃을 희생해 진행되는 직업 말고 쓸모있는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자고요. 그렇지 않으면 부지런한 도둑도 노동자가 됩니다. 오늘날 저희는 어느 직종을 다른 직종보다 선호합니다. 그건 우리의 취향과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취득하기 더 쉽거나, 소득이 더 좋거나, 그러길 바라거나 또는 그 직종에서의 취업이 가장 잘 보장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다른 일보다 더 불쾌한지는 이런 점을 고려한 다음에나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어느 한 사람의 직종 선택은 태생이나, 운이나 사회적 선입견에 의해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농사꾼의 일은 가장 가난한 도시민조차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농사 자체에는 불쾌한 요소가 없습니다. 그리고 밭도 밭만의 묘미가 있죠.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문학을 읽으면 농촌 생활에 매우 긍정적인 시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책을 쓰는 시인은 밭을 갈아본 적도 없다는 거죠. 농민은 반 굶어가며 일하고,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아무 존중도 받지 못해 도시의 가장 불행한 사람마저 그와 자리를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데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아저씨는 어째서 누가 농민이 되길 바라십니까? 촌에서 태어난 저희도 최대한 빨리 그곳을 벗어나려 합니다. 왜냐하면 어디서 뭘 하든 이곳보다는 나을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희가 원하는 대로, 안식을 취하면서 자유롭고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다면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농촌을 벗어나겠습니까? 다른 직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더 어렵고 더 필요한 일일수록 보수가 더 적고, 더 멸시받고 더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서 행해져야만 하죠. 예를 들어, 금세공인을 방문하면 그가 일하는 곳은, 저희가 노동하는 이 망할 곳보다 깨끗하고, 환기가 잘 되고, 노동시간이 길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생산하는 것의 대부분을 고용주가 취해 임금이 좋지 못하더라도, 다른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그는 오후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는 작업복을 벗고 원하는 곳을 눈치 보지 않고 찾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칼장수를 방문한다면, 그는 작업장에서 형편없는 임금을 받으며 몇 년 있으면 삶을 끝내버릴 유독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일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일을 마치고 그가 신사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면, 그는 망신당하지 않으면 운이 좋은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누구든 금세공이 되는 것을 칼장수가 되는 것보다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펜 말고 다른 도구는 사용하지도 않는 노동자의 경우는 따질 필요도 없고요. 생각해보세요. 질 낮은 기사를 쓰는 사람이 농사꾼보다 임금을 열 배는 더 많이 받고 더 존중받습니다. 기자, 엔지니어, 의사, 예술가, 교수는 자신의 일을 잘 하는 것으로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식자공, 벽돌공, 수선공 등의 온갖 노동자와 심지어 일부 교사와 정신노동자는 굶으며 혹사당하며 일합니다. 저는 자연을 정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문명인이 되고, 더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의사와 엔지니어와 화학자와 교사는 모두 농사꾼과 육체노동자만큼 현대 사회에 있어 중요합니다. 저는 단지 모든 필요한 노동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 노동자가 일을 함에 있어 동등한 만족감을 얻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그 자체로 큰 기쁨이 되고 무식한 자를 억누를 수 있는 거대한 우월함을 부여하는 지적 노동은, 일부의 손이 아닌 모두의 손에 닿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윌리엄 :하지만, 자네가 말하는 바와 같이 지적 노동이 큰 기쁨이고 그것을 행하는 자에게 무식한 자 위에 설 수 있는 거대한 우월함을 부여한다면 모두가 지적 노동을 하고 싶지 않을까? 나 또한 다른 누구만큼이나 그렇고. 그렇다면 누가 육체노동을 할 것이란 말인가?

잭 : 모두가 해야 합니다. 문학과 과학을 공부함과 동시에 육체노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머리와 손을 사용하며 일해야 할 것입니다. 이 두 종류의 노동은, 서로를 방해하기 보다는 서로를 보강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모든 기관을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뇌만큼이나 근육 역시 인간의 기관이죠. 지성이 발달했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육체노동을 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건강한 사람은, 육신을 건강하게 단련하는 사람만큼 머리가 깨어있고 밝은 상태에 있습니다. 나아가 두 종류의 노동 모두 필수적인 만큼, 그리고 지적 노동이 육체노동보다 쾌적하고 인간의 자의식을 일깨워 스스로의 존엄성을 깨닫게 만드는 만큼, 인류의 일부는 과도한 육체노동의 형벌에 처하고 그렇지 않은 소수는 권력을 의미하는 과학의 특권을 누린다는 것은 정의롭지 않습니다. 따라서 다시 말하겠습니다. 모두가 육체노동과 지적 노동을 해야 합니다.

윌리엄 :그건 나도 이해할 수 있네. 하지만 쉬운 육체노동과 어려운 육체노동이 있네. 어떤 것은 아름답고, 어떤 것은 끔찍하네. 자 그럼, 누가 광부가 되고 또는 누가 청소부가 되겠는가?

잭 : 아저씨, 어떤 발명과 연구가 매일 진행되는지 알기만 했다면, 육체노동이 그것을 불쾌하고 해롭고 힘들게 만드는 조건 없이 행해질 수 있으리란 사실을 알 것입니다. 단지 스스로 일하지 않아서 노동자의 편의를 생각하지 않는 자에 의해 노동의 과정이 조직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발적으로 어떤 일을 하기로 선택한 노동자들이 기꺼이 그 일을 할 겁니다.

이것이 당장 오늘 가능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모두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연구와 노력은 노동을 덜 힘들고 더 즐겁게 만드는데 집중될 것입니다. 그래도 힘든 작업에 대해서는 일부 특별한 이득을 부여해서 불평등을 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사람들이 공공을 위해, 공동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면, 가족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형제애와 동의의 마음이 그들 가운데 솟아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만을 위한 길을 찾지 않고 오히려 가장 힘든 일을 대신해서 하려 할 것입니다.

윌리엄 :그래, 그렇다 치지. 하지만 그리 되지 않는다면?

잭 : 물론,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자진해서 하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 남을 수 있습니다. 그 경우, 우리 모두가 각자 조금씩 분담하여 그것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하루나 일 년에 일주일을 맡는 그런 식으로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그것을 행할 방법은 반드시 찾아질 것입니다.

윌리엄 :그래, 듣고 나니 설득되는 것 같네. 하지만 아직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네. 상류층의 재산을 빼앗는 것은 큰일 같네. 나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방법으로는 할 수 없는가?

잭 :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부자가 남아있는 한 그들은 독불장군처럼 우리의 이익은 고려하지도 않고 자신만을 챙길 것입니다. 애초부터 그래왔듯이요. 하지만 왜 상류층의 재산을 빼앗기를 주저하시나요? 그게 불공평하고 그릇된 일이라 생각하시기 때문일까요?

윌리엄 :아니, 그렇지 않네. 자네 말을 듣고 나니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 것은 매우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되네. 그들이 먹어 치우고 있는 우리들 몸을 되찾아오는 것이니. 그리고 우리는 그 부를 우리 자신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서 찾아오는 것 아닌가?

잭 : 정확합니다. 그리고 문제를 좀 더 자세히 바라보면 부자에게도 득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부리고, 거드름과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그만둬야 할 것입니다. 그는 일을 해야 할 것이지만, 노동자와 힘을 합해 일을 한다면 그것은 유용할 뿐만 아니라 유쾌한 것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부자는 사냥을 가지 않나요? 말을 타거나, 체조를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운동을 해 육체적 활동은 배불리 먹은 건강한 인간에게 필요하고 즐거운 활동이라는 사실을 보이지 않나요? 단순히 유흥을 위해 사용하던 힘을 생산을 위해 사용하는 것 말고는 그의 삶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건강으로 인한 얼마나 많은 이점이 있는데요! 우리 눈으로 보는 것들을 예로 듭시다. 일부 부자는 자기 집에서 영주 놀이를 할 수 있지만, 길거리는 우리에게처럼 그에게도 끔찍하고 더럽습니다. 빈민가에서 피어나는 안 좋은 공기는 우리 모두를 병들게 합니다. 그들의 사유재산으로는 온 나라를 개선할 수 없지만,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간단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가난은 그의 삶에 끊임없는 위협이고 그에게 수 만 가지 방법으로 간접적으로 작용합니다. 난폭한 혁명의 위협을 제외하고도요. 그러니 부자의 재산을 빼앗는 것은 그에게 오직 이롭기만 한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는 이 사실을 이해하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죠. 왜냐하면 그는 명령을 내리기를 즐기고 가난한 자가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을 즐기니까요. 하지만 중요한가요? 그가 우리와 타협을 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최악의 상황만이 기다립니다. 그가 협조하도록 강요하는 방법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윌리엄 :그래, 좋아. 하지만 그걸 조금씩 조금씩, 상호 합의로 할 수는 없는 건가? 재산은 가진 자들에게 남겨주되, 임금을 올리고 우리를 인간처럼 대한다는 조건으로 말이야. 그런 다음, 점진적으로 우리도 무언가를 축적하고 우리도 작은 땅을 사고 유산자가 된다면 모든 것을 공동으로 두는 거야, 자네 말 대로 말이지. 이런 말을 하는 다른 젊은이가 있던 것 같은데.

잭 : 잘 들으세요! 우호적인 방법으로 일을 푸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유산 계급이 자신의 재산을 자의로 돌려놓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저씨도 알다시피,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무 쓸모도 없죠. 사유재산이 존재하는 한, 그러니까 땅이 모두의 것이 아닌 ‘베드로’나 ‘바울로’의 것인 한, 가난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고 모든 것은 안 좋아지기만 할 것입니다. 사유재산 아래서는 언제나 모두 각자의 방앗간에서 일하려고만 합니다. 유산 계급은 노동자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만을 주려고 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각자 자신의 생산물을 최고가로 팔려고 하고, 각 구매자는 또 한편으로 최소한의 값에 사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대규모로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는 지주와 생산자와 거대 상인은 기계를 마련하고, 시장이 이로울 때를 이용하고, 판매하기 위한 최적의 때를 기다리거나 때때론 손해를 보면서도 매물을 내놓습니다. 그렇게 작은 규모의 소유주와 소상인은 가난해져 그들과 그 자식들은 일급을 받으며 일하러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입니다. 그렇게 매일 우리가 보듯이, 혼자서 또는 적은 수의 장인과 일하는 자는 잠깐의 경쟁 후 장사를 접고 공장으로 일하러 가게 됩니다. 농사를 위한 충분한 자본을 구하지 못하고 십일조와 세금마저 낼 수 없는 소농은 대지주에게 토지와 집을 팔아야 합니다. 마음씨 착한 고용주가 진정으로 자기 노동자를 위했다면, 그는 단순히 경쟁으로 인해 망하는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배고픔은 노동자들을 서로 경쟁하는 쪽으로 몹니다. 그리고 항상 일에 필요한 것보다 많은 일손이 존재하다 보니, 그들은 항상 서로의 입에서 빵을 빼앗고 있죠. 이는 해야 하는 일이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특정 순간에 그 일을 함으로써 고용주에게 득이 되는 일이 얼마 없다는 것이죠. 이 상황 덕분에 진보는 불행이 됩니다. 기계가 발명되는 즉시 몇몇 사람들이 일자리에서 해고됩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벌지 못하고 예전처럼 소비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다른 노동자의 돈벌이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치죠. 미국에서는 방대한 양의 땅덩이가 경작되고 많은 양의 곡물이 생산됩니다. 당연히 지주는 미국에 있는 모두가 먹을 것이 충분한지 묻지 않고 그 곡식을 이곳으로 보내 이득을 봅니다. 이곳의 곡물 가격은 낮지만 가난한 자는 그 이득을 취하지 못합니다. 낮은 가격과 경쟁할 수 없는 유럽의 지주는 가장 생산적인 토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경작하지 않고 그러면 다수의 농민이 일을 잃게 되니까요. 단 한 푼도 없는 사람에게 값싼 빵은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윌리엄 :아, 이제야 이해했네! 해외에서 곡물이 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들었네. 우리나라로 음식이 못 들어오도록 막는 건 악질이고 상류층과 농부가 서로 짜고 인민을 굶기려 한다 생각했네. 하지만 이제서야 그들은 그들만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해했네.

잭 : 아뇨, 아닙니다. 곡물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다른 관점에서 매우 안 좋은 일입니다. 외부로의 경쟁에 대한 압박이 없다면 지주와 농부는 자신들이 원하는 값에 팔았을 것이고….

윌리엄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잭 : 해야 할 일이요?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모든 것을 공동으로 둬야 합니다. 그렇게 돼야 생산물이 많을수록 좋을 것입니다.

윌리엄 :하지만 이제 말해보게. 재산의 주인과 이런 계약을 세우면 어떨지. 그들은 토지와 자본을 제공하고 우리는 노동을 제공하는 것으로 말일세. 생산물은 그들과 우리들이 함께 나눠 갖는 걸세. 이건 어떻게 생각하나?

잭 : 우선, 아저씨가 나눠 가지려 한다고 해도 십중팔구 아저씨의 주인은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계약을 유산자에게 강요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경우, 왜 절반으로만 만족하나요? 왜 부당함과 기생을 계속적으로 허용하고 생산의 증가를 제시할 뿐인 체계로 만족하나요? 일하지 않는 자가 노동자가 생산한 것의 절반을 가져갈 수 있는 무슨 권리가 있나요? 또한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고용주가 생산량의 절반을 가져갈 뿐만 아니라 생산 총량이 실제 가능한 최대치에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유재산과 고립된 노동이 있는 곳에서는 공동 생산되는 곳보다 적게 생산되니까요. 바위를 움직일 때 따로 혼자서 시도하는 백 명의 일꾼은 성공하지 못하지만, 힘을 합친 두세 명은 바위를 간단히 들어 올릴 수 있는 것처럼요. 누군가 핀을 만들고 싶을 때 저는 그가 핀을 한 시간 안에 만들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협동하는 열 명은 하루에 수천 개의 핀을 만들 수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계급적 편견에 경도된 경제학자들 다수는 빈곤이 상류층이 재산을 장악한 결과가 아니라 자원의 희소성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해왔습니다. 그들이 말하길, 이 희소성에 의해 자원이 모든 인간에게 분배되기에 부족할 것이랍니다. 이는 경제학자와 그 추종자들이 빈곤은 그 어떠한 대책으로도 막을 수 없는 불가피한 것이라 결론지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단 한마디도 믿지 마십쇼. 오늘날의 사회 구조에서도 땅과 산업의 산물은 모든 이가 편히 지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합니다. 충분하지 않다면 이는 고용주의 탓입니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벌 수 있는지 외에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상품을 파괴하거나 썩게 둡니다. 그는 자원이 충분하지 않은 척하면서 심지어는 더 많은 양의 땅을 경작하지 않은 채 두고 여러 노동자를 할 일 없이 둡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도 일부 경제학 학파는 모든 토지가 가장 영리한 방법으로 경작되더라도, 대지의 생산력은 한정적이라고 말합니다. 인구는 제한없이 증가하고요. 그래서 식량생산은 항상 고정적인 반면 인구는 끊임없이 증가하여 어느 순간 기아가 발생할 거라는 거죠. 이 학파가 결론 내리길, 사회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가난한 자가 적은 수의 자식을 갖는 것입니다. 제가 임대법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 학파의 제안은 우리 사회악의 치료제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구성을 바꾸고 모든 땅을 경작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나 인구가 지나치게 빨리 증가하고 있다 여겨지면 어떻게 조정할지 의논할 수 있습니다.

자, 유산자와 무산자 사이의 생산물 공유에 대한 논의로 돌아갑시다. 이런 공유제도가 프랑스 일부 농경지역에 존재했었다고 하더군요. 토스카나Tuscany에서는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지만 점차 없어지고 있습니다. 지주가 일급을 지급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더 이득이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기계와 과학적 문화와 수입 곡물 때문에 오늘날 주인들은 대규모 농작을 해야 하고 임금노동자를 사용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죠. 이 체제가 계속된다면, 재산은 더 적은 수의 사람의 손에 들어갈 것이고 노동자는 기계와 빠른 생산 속도에 의해 완전히 비참한 상태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주인이랄 수 있는 소수의 금융가와 자본가, 기계를 다루는 일부 노동자, 그리고 앞서 말한 거인들을 섬기고 방어하는 다수의 하인과 경찰을 갖게 될 겁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굶어 죽거나 구호로 연명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이미 볼 수 있죠. 작은 토지는 사라지고 있고 실업자 수는 증가합니다. 상류층은, 두려움에서인지 연민에서인지, 무료 급식소를 차리고 구세군the schemes of General Booth을 운영하는 데 열심입니다. 사람들은 과거 수도원 앞에서 했던 것처럼 부유한 자선가나 지역 위원회에 빵을 구걸하는 상태로 전락하기 싫다면, 하루빨리 토지와 기계를 쟁취하고 자신들이 계획한 대로 일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윌리엄 :하지만 정부가 부자에게 강요해 가난한 이가 굶지 않게 한다면 어떻겠나?

잭 : 진부한 얘기입니다, 윌리엄! 정부도 상류층으로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률을 만들까요? 가난한 자가 정부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해도, 부자가 다시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수단을 남겨둘 이유가 됩니까? 장담하건대,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다면 가난한 자는 어떤 돌발적인 사건을 통해 순간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부자가 반드시 권력을 쥐게 됩니다. 바로 이 이유에서, 우리가 단 한 순간이라도 우위를 잡게 된다면, 우리는 부자로부터 재산을 빼앗아야 합니다. 그래야 부자가 원상 복귀할 수단이 없게 할 수 있습니다.

윌리엄 :이해했네. 우리는 진정한 공화국이 필요하네. 모든 이를 동등하게 만들고, 일하는 자는 밥을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는 굶는 것이네. 바보 같은 이 늙은이를 용서하게. 자네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네.

잭 : 자, 자, 아저씨! “공화국”이라면 아저씨는 당연히 “사회 혁명”을 일컫는 것이고 아저씨를 이해하는 자에게는 아무 문제 없겠죠. 하지만 이건 서툰 표현입니다. 보통 “공화국”이라 불리는 것은 아저씨가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공화정은 다른 모든 정부와 다를 것 없는 정부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단지 왕 대신 그와 같은 권력을 쥔 대통령과 장관이 있을 뿐이죠. 해협 너머의 상황에서 잘 볼 수 있죠. 그리고 설령 프랑스인들이 그 급진파가 약속한 것과 같은 민주공화국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들은 더 잘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두 개의 의회 대신 국민의회 하나만 갖게 되겠지만, 의원 양반들의 달콤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인민은 여전히 군인이 되고 노예처럼 일하게 되지 않습니까?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는 한, 부자는 항상 우위를 쥐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공화국 아래 살건 왕정 아래 살건 사유재산으로부터 나오는 결과는 항상 똑같이 존재할 것입니다. 경제 관계가 경쟁의 통제하에 있는 한, 재산은 소수의 손안에 있을 것이고 기계는 노동자로부터 일을 뺏을 것이고 대중은 빈곤에 빠질 것입니다. 존재하는 공화국 중 하나라도 노동계층의 삶을 정말로 개선했습니까?

윌리엄 :정말 그렇군, 그래! 난 항상 공화정은 평등을 뜻한다 생각했건만!

잭 : 네, 공화주의자는 그렇게 말하죠. 그들이 말하기를, “진정으로 민주주의적인 공화국 아래에서 법을 만드는 의원은 전체 인민에 의해 선출됩니다. 결과적으로 인민이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의원을 더 좋은 의원으로 바꾸고 모든 것은 해결됩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가 대다수이기에,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는 바로 그들입니다.” 공화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상당히 다르죠. 가난한 자의 빈곤은 그를 무지하고 미신적인 상태로 만듭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자신에게 진짜로 이로운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한, 그는 그 상태 그대로 남을 것입니다. 아저씨와 저는 남보다 좀 더 벌 수 있을 만큼 운이 좋았고 조금이나마 공부할 수 있어 우리에게 이로운 것을 이해하는 지력과 고용주의 복수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현상이 유지되는 한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혁명 중에는 한 명의 용감한 자가 여러 겁먹은 자들만큼의 역할을 해내고, 혼자서는 절대로 봉기할 기운이 없는 이들을 끌어들입니다. 하지만 투표함 앞에서는 인격과 기운은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단순히 숫자만이 중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재의 상태에서 이 수는 매일 빵을 먹을 수 있고 마음대로 그 빵을 나누거나 숨길 수 있는 자에게로 갑니다. 눈치채지 못하셨나요? 오늘날 대부분 유권자는 가난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기들을 대표하고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기 계층의 사람을 뽑는 걸 얼마나 자주 보셨습니까?

윌리엄 :그래, 대부분은 지주나 목사나 고용주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 들지 않지. 그랬다면, 그들은 아마 해고되거나 집에서 쫓겨났을 거야.

잭 : 보통선거권에 기대하는 희망적인 전망과 반대의 상황 아닙니까? 사람들은 반드시 중산층의 사람을 의회로 보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의원은 항상 인민을 최대한 종속시키고 순종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아무리 가난한 자들이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노동자를 의회에 보내도, 그렇게 부패한 곳에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시도를 한 소수는 그 어떤 국가에서도 그 수가 그렇게 의미 있지 않았습니다. 다음 혁명이 오면, 인민은 민주주의자와 공화주의자에 의해 항상 그래왔듯 기만당해선 안 됩니다. 사람들은 공화국이 가능한 최고의 조직이며 그들의 상태를 놀랍도록 개선할 것이라 믿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에 언제나 공화국을 약속받는 순간 무기를 내렸습니다. 다음 시기에 인민은 빈말에 만족하지 말아야 하고, 단호하게 재산을 쟁취해야 합니다.

윌리엄 :맞는 말이네. 우리는 너무 많이 기만당했네. 이제 눈을 뜰 때가 됐네. 하지만 언제나 정부는 필요하네. 명령을 내릴 사람이 없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간단 말인가?

잭 : 왜 명령을 받아야 하는 건가요? 왜 우리 일을 우리가 스스로 관리할 수 없나요? 지배하는 자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인민을 배신합니다. 권력은 가장 선한 사람마저 자만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두머리를 거부해야 하는 주요한 이유입니다. 인간은 양 떼처럼 끌려다니기를 멈춰야 합니다.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존엄성과 힘을 자각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교육받고, 자유와 자기 일에 책임지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인민은 자기 자신을 위해 행동하고 그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내버려져야 합니다. 자주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겠지만, 그 결과를 직접 겪고, 자기가 실수를 했고 다른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간섭받지 않는 인민이 자기 자신에게 입힐 수 있는 해는 최고의 정부가 입힐 해의 만분의 일만큼도 안 될 것입니다. 아이가 걷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넘어질 가능성을 두려워 말고 혼자 걷게 내버려둬야 합니다.

윌리엄 :그래 맞네. 하지만 아이가 걷기 전에는 다리에 조금이라도 힘이 있어야 하네. 힘이 하나도 없다면 어미의 품에 안겨야 하네.

잭 : 맞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전혀 어머니와 같지 않습니다. 한 나라를 개선하고 개발하는 건 정부가 아닙니다. 실제로, 사회의 진보는 거의 항상 정부의 반대 세력에 의해서나 정부와 무관하게 이뤄집니다. 정부가 하는 일은 대중이 필요하고 바라기 시작한 것을 법의 형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마저 지배와 독점으로 망치고 말죠. 인민은 서로 다른 진보의 단계에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문명의 단계에서든, 심지어 야만의 상태에서도 인민은 자기 가운데 생겨난 정부 없이 자기 일을 더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한, 아저씨는 가장 영리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로 이뤄진 정부를 선호하십니다. 그런 건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정부는 가장 돈이 많은 자들로 직접적으로 이뤄지거나 그들의 이해를 대변합니다. 그리고 권력의 행사는 가장 선한 영혼도 타락시킵니다. 지금까지 최고의 인품을 가진 자가 정부에 들어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시죠. 그는 더 이상 인민의 필요를 이해하지 못하고, 정치가 낳은 이해관계에 시간을 허비하고, 사회적 평등에 대한 시각의 부재로 타락하고, 듣지도 못한 것에 대한 법을 만들기 위해 자기가 진정으로 유능한 행동 영역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다른 존재보다 우월하다 믿게 되고, 인민을 감시하고 좌절시키는 것 외에는 돌아보지 않는 계층을 만듭니다. 다른 직종과 지역의 노동자와 합의를 통해 노동자의 일은 노동자가 직접 관리하는 것이 더욱, 아니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영국과 유럽을 넘어서 전 세계와 그렇게 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서로 형제이고 서로를 돕는데 관심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윌리엄 :그래,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사악한 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도둑과 강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잭 : 우선, 사유재산과 무지가 더 이상 없을 때 우리는 그런 류의 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걱정이 남았다고 가정해도, 그 걱정이 정부와 경찰을 갖는 이유가 될까요? 우리 스스로가 도둑과 강도를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없나요? 오늘날처럼 결백한 자와 죄가 있는 자 모두를 학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없게 한 뒤, 최선을 다해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겁니다.

윌리엄 :그럼 우리가 “사회주의”를 얻게 된다면, 모두가 행복하고 만족할 것이며, 사악함과 혐오와 질투와 매춘과 전쟁과 부당함이 없을 것이라는 말인가?

잭 : 인류가 얼마나 안녕할지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단 나아질 것이라는 건 압니다. 아시다시피, 인간은 개선을 추구할 것이고 그렇게 이뤄진 진보는 일부가 아닌 모두를 위하게 될 것입니다.

윌리엄 :하지만 이 모든 게 언제 일어날 것이란 말인가? 난 늙었고 세상이 지금 이 상태로 영원히 있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난 지금, 정의의 날을 보지 못하고 죽고 싶진 않네.

잭 : 언제 일어날 것이냐고요? 모르겠습니다. 저희 손에 달렸죠.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할수록 변화는 더 빨리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미리 말해둬야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미 좋은 진보가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사회주의”를 설교하는 이는 극히 소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보, 미치광이 또는 방화범으로 몰렸습니다. 오늘날에는 이 사상을 이해하는 자는 많습니다. 과거의 가난한 자는 침묵 속에 고통받거나 배고픔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의 비극의 원인이나 해결책에 대해 알지도 못한 채 말입니다. 그렇게 학살당하거나 서로를 학살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전 세계에서 공통된 이해관계를 가지고 고용주와 정부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생각으로 소란과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들은 자신의 힘 말고는 의지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그들의 고용주들이 속해 있는 모든 정당이 똑같이 자신들의 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지금이 우리의 생각을 퍼뜨려야 할 시기적절한 때입니다. 문제를 이해하는 모든 이가 더 가까이 연합해야 합니다. 들끓고 있는 대중을 선동합시다. 모든 불만과 소동과 반란으로 우리의 이익을 찾읍시다. 두려움과 망설임 없이 뜨거운 철을 망치로 내리칩시다. 그렇게 되면 중산층은 끝이 날 것이고 행복의 통치가 시작될 것입니다.

윌리엄 :좋네. 다만 비용을 고려해야 하네. 고용주의 재산을 가져오겠다고 말하기는 쉽네. 하지만 경찰이, 군대가 있네. 생각해보니, 수갑과 총칼은 무엇보다도 중산층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게 맞구만.

잭 : 그건 지극히 자명합니다. 하지만 무기를 사용하고 화약과 멜리나이트로 우리를 노예로 잡아두려는 건 중산층 정부인만큼, 우리 또한 현대의 과학적인 전쟁기구로 그들과 같은 수단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거대한 다수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사회주의의 이점을 이해하고 경험하기 시작한다면, 지구상 그 어떠한 힘으로도 그들을 지금 이 상태로 남아있게 강압할 수 없습니다. 노동하고 모든 것을 만드는 건 가난한 이들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세요. 단지 그 중 큰 일부가 일을 멈춘다면, 큰 공황이 일어나 얼마 안 가 혁명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리고 군인의 다수도 가난한 사람으로, 그들은 배고픔에 의해 자신의 형제에게 상처를 입히고 도축하는 일로 자신을 팔아버리고 있죠. 진실을 마주하고 이해하는 즉시, 그들은 처음에는 비밀리에 그리고 후에는 공개적으로, 인민을 지지할 것입니다. 혁명은 생각하는 것의 반만큼도 어렵지 않습니다. 핵심은 혁명의 상을 끊임없이 전면에 두고 항상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행동할 기회가 어떻게든 올 것이란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윌리엄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나는 믿겠네. 하지만 혁명은 아무 쓸모도 없고 모든 건 천천히 개선될 것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잭 : 사회주의가 진지하게 다뤄지기 시작한 뒤로 중산층은 사회주의를 매우 두려워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들은 폭풍의 방향을 틀고 인민을 기만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했습니다. 황제를 포함한 모든 이가 사회주의자를 자칭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주의”가 무슨 가치가 있는지 설명드리죠. 우리 동지 중에도 상류층의 관심에 경도되고 혁명의 대의를 저버린 채 얻을 수 있는 과실에 유혹된 배신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법적 수단을 사용하고 모두 어느 정도 사회주의적이라고 말하는 정치 정당과의 연합을 주장합니다. 하원의 하코트Harcourt라는 의원이 “우리 모두 어느 정도 사회주의자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 작자는 혁명가를 바보나 더 부정적으로 봅니다. 일부는 여전히 혁명을 원한다고 말하면서 하원 의원이 되기를 더 간절히 원합니다. 그 누가 아저씨에게 혁명은 필요 없다고 말하고 하원 의원과 지방 의원 임명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한다면. 중산층 정당과 공동의 목적을 갖는 것에 대해 말한다면. 그가 중산층 사람이거나, 중산층 사람이 되길 원한다면. 그럴 경우 그에게 꺼지라고 말하세요. 자신을 사회주의라 착각하는 자 중에는 선한 의도를 갖고 정말로 그렇게 행하려는 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정말로 선을 행사하고 있다 믿는 이가 아저씨를 반쯤 죽을 때까지 마구 팬다면, 아저씨는 그의 손에서 방망이를 빼앗을 생각을 가장 먼저 할 겁니다. 그의 선한 의도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저씨가 빼앗은 방망이로 자기 머리통을 깨는 것을 막는 것뿐입니다.

윌리엄 :바로 그걸세! 하지만 자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또 하나 생겼네. 자네가 “사회주의자”라고 할 때, 정확히 누굴 가리키는 건가? 자주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집산주의자,” “아나키스트”라는 말을 듣는데, 대체 그 단어들이 뭘 뜻하는지 나는 하나도 모르겠네.

잭 : 아, 그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눈치채시니 기쁩니다. 단어의 정의를 설명하는 것만한 것도 없죠. 들어보시죠. 사회주의자는 사회악의 근원은 재산이고, 재산이 철폐되지 않는 한 무지와, 노예제와, 정치적 불평등 그리고 매춘을 비롯한 인민을 끔찍한 상황에 놓는 그 어떤 악도 뿌리 뽑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입니다. 실제 필요에 의해 나타나는 무시무시한 고통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 사회주의자는 땅, 원자재, 기계 그리고 모든 생산수단이 소수의 손에 들어있기에 빈곤이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사회주의자가 믿기에, 이 소수는 노동자 계급 전체의 목숨을 사용할 수 있고, 아무것도 없는 프롤레타리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들 사이에서도 재산을 소유하기 위해 무한한 다툼과 경쟁 속에 놓여있습니다. 사회주의자는 사유재산, 즉 원인을 제거해 그 결과인 빈곤을 없앨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재산은 폐지될 수 있고 폐지돼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부의 구성과 분배는 인간의 진짜 이익에 따라 결정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상이 더 강했거나, 운이 좋았거나, 더 간악했다는 이유로 중산층이 자기 자신을 위해 주장하는 기득권에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래서 “사회주의자”라는 단어는 사회의 부는 모든 인간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고 재산의 소유자와 프롤레타리아, 부자와 가난한 자, 고용주와 고용인이 더 이상 있어선 안 된다고 믿는 모든 이를 일컫는 단어입니다.

윌리엄 :그런 자네가 사회주의자임은 확실하군. 하지만 “코뮌주의자”와 “집산주의자”는 무슨 말인가?

잭 : “코뮌주의자”와 “집산주의자” 모두 “사회주의자”입니다. 하지만 둘은 재산이 공동으로 놓일 경우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산주의자는 노동자나 노동자 협회가 원자재와 생산수단에 대한 권리를 갖고 각자 자기가 생산한 것의 주인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생산물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지만, 죽은 이후에는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은 협회로 돌아갑니다.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자식도 자신의 노동과 그 과실을 즐길 권리가 있습니다. 단 한 가지라도 물려받을 수 있게 한다면, 그건 불평등과 특권의 첫걸음이겠죠. 아이들의 교육, 노약자의 부양 그리고 전반적인 공공사업에 관해선 각 노동자 협회는 공동체의 일원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제공해야 합니다.

코뮌주의자는 사람들 사이의 일이 잘 풀리기 위해서는, 인간이 서로를 사랑해야 하고 한 가족의 일원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재산은 공동화돼야 합니다. 가능한 생산성을 높이고 기계의 도움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동은 노동자들의 큰 집단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모든 종류의 땅과 기후를 최대한 활용하고 각 지역이 가장 잘 생산할 수 있는 것을 생산하기 위해, 그리고 다양한 나라 사이의 경쟁과 혐오를 피하기 위해, 전 세계의 인류 사이에 완벽한 연대를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나’와 ‘너’가 하는 것을 구분지어 혼돈을 유발하는 것을 감수하기보다는, 모두가 함께 일하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둬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각 개인은 모두를 위해 충분한 양이 생산될 수 있도록 사회에 자신의 최선을 다해 기여할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 자기가 필요한 것을 가져가고, 각자의 필요는 모두를 위해 충분히 생산되지 않은 것에 한해서만 제약을 받게 됩니다.

윌리엄 :잠깐 기다리게, 자네! “연대”라면 무슨 말인가? 사람들 간의 연대가 있어야 한다고 자네가 말했지만, 난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못했네.

잭 : 들어보세요. 예를 들어 아저씨의 가족에서, 아저씨와 아저씨의 형제, 그리고 아내와 자식은 버는 모든 것을 공유합니다. 먹을 것을 조금 구하면 다 함께 먹고 모두가 먹을 만큼 충분하지 않으면 모두 조금 굶습니다. 가족 중 하나가 운이 좋아 평소보다 더 번다면, 그건 모두에게 좋은 것입니다. 반면에, 가족 중 하나가 실직하거나 병에 걸리면, 그건 모두에게 안 좋은 것입니다. 가족 중 실직한 사람은 나머지와 똑같이 식사하고 병든 사람은 그 누구보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죠. 따라서 아저씨의 가족에서는 서로의 일과 빵을 빼앗으려 하기보다는 서로를 도우려 합니다. 한 명의 기쁨은 모두의 기쁨이고 한 명의 불행은 모두의 불행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질투와 혐오를 멀리하게 되고, 이해관계가 갈라진 콩가루 집안에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 상호 애정이 발달합니다. 그것이 연대입니다. 진정으로 단합된 가족으로 존재하고 싶다면 이 연대를 인류 전체에 설립해야 합니다.

윌리엄 :이해했네. 하지만 하던 얘기로 돌아가세. 말해보게, 자네는 집산주의자인가, 코뮌주의자인가?

잭 : 저는 코뮌주의잡니다. 왜냐하면, 서로 친구가 되기 위해 인민은 반쪽만 친구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집산주의는 경쟁과 혐오의 균을 남겨둡니다. 하지만 전 그것보다 더 멀리 갑니다. 각자 자기가 생산한 것으로 살 수 있다고 해도, 집산주의는 코뮌주의보다 열등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고립시키고 그의 힘과 공감 능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구두 수선공은 자기 구두를 먹을 수 없고 대장장이는 철로 살 수 없습니다. 또한 농부도 철을 다루고 도구를 생산하는 노동자 없이는 땅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각자 가지고 있는 것을 고려하며 여러 생산자 간의 거래를 조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구두 수선공이 자기 구두의 가치를 부풀려 구두를 거래할 때 최대한 많은 돈을 받으려는 것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입니다. 또 한편 농부는 그에게 최소한을 주려고 할 것이고요. 도대체 어떻게 이 상황을 관리한다는 말입니까? 제가 보기에 집산주의는 많은 문제를 만들고 혼돈을 초래하는 체제입니다. 반면에, 코뮌주의는 그 어떤 어려움도 일으키지 않을 겁니다. 모두 노동하고, 모두의 노동을 즐긴다면, 그렇다면 남는 건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내고 그것이 충분히 생산되도록 계획하는 것뿐입니다.

윌리엄 :그렇다면 코뮌주의 아래에서는 그 어떤 돈도 원하지 않는 것인가?

잭 : 돈도 그것을 대신할 그 어떤 것도요. 생산을 필요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생산되는지에 대한 기록 말고는 말입니다. 유일하게 심각한 위험은 많은 사람이 일하기를 거부할 경우뿐입니다. 하지만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오늘날에는 힘들 뿐인 노동은 즐거운 것이 될 것이고 동시에 소수를 넘어선 윤리적 의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가 시작될 때 우리가 여태 받은 질 나쁜 교육의 결과로 일부 사람들이 일하기를 거부한다면, 그 사람들은 원자재와 간단한 도구만 주어진 채로 공동체 밖으로 내보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일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중요한 것은 땅, 원자재, 생산수단, 집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부가 공동으로 놓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성 방식에 대해선 인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실천만이 그들에게 최상의 체계를 보여줄 것입니다. 여러 지역에서는 집산주의를, 또 다른 여러 지역에서는 코뮌주의가 채택될 것이라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둘 다 실험에 놓이면, 둘 중 더 나은 것이 널리 도입될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누구도 다른 이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땅이나 생산수단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고, 만약 일어난다면, 무기를 동원해서라도 이를 막아야 합니다.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입니다.

윌리엄 :그것도 이해했네. 하지만, 말해보게, “아나키즘”이란 무언가?

잭 : “아나키”란 “정부 없이”를 뜻합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정부는 중산층을 방어하는 것 외에는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익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가 직접 챙기는 것입니다. 우리를 복종시키는 법을 만들거나 변경할 하원 의원이나 지방 의원을 뽑는 대신, 우리는 우리 문제를 직접 토의할 것입니다. 다른 이가 우리의 결정을 이행할 필요가 있을 때 그에게 우리가 정한 대로 행동하도록 신신당부해야 합니다. 곧바로 해낼 수 없는 일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자에게 의뢰해 문제를 조사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뜻과 다르게 행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파견인은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고 법률을 강요할 권리를 갖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능력에 따라 선택된 사람으로, 어떤 권위도 없이 단순히 인민이 결정한 바를 실행하는 사람이 될 뿐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구두 수선공이 구두를 만들도록 의뢰받듯이, 누구는 학교를 개편하고, 누구는 도로를 만들고, 누구는 생산물의 교환을 관리할 것입니다.

윌리엄 :부디 조금만 더 설명해주게. 어떻게 나 같은 무지한 노인네가 의원과 장관이 해내는 모든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잭 : 대체 그 의원과 장관이 뭘 하길래 아저씨가 그들이 하는 것을 할 수 없다고 한탄하시나요? 그들은 유산자의 이익을 위해 법을 만들고 공권력을 사용해 인민을 짓누릅니다. 그뿐입니다. 우리에게는 필요 없는 능력입니다. 장관과 의원은 좋고 유용한 일로 바쁘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특정 계층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하고 불필요하고 성가신 제정으로 진보를 가로막습니다. 예를 들어, 상류층은 철도에 매혹됐습니다. 하지만 왜 그럴까요? 엔지니어와, 정비공과 온갖 종류의 인부로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장관과 의원과 주주와 다른 기생충이 사라져도 기차는 변함없이 움직이지 않을까요? 우체국, 전신국, 항해국, 교육과 병원 등 직종에 관계없이 노동자에 의해 관리되는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는 해를 끼치기 위해 간섭할 뿐이죠. 정치인이 이해하는 정치는 우리에게 어려운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진지하게 인민의 실제 필요와는 아무 관계도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의 목표가 인민의 진짜 필요를 충족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보다 의원에게 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런던에 사는 하원 의원이 나라 안의 지방의 필요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우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도 그 언어를 할 수 없는 이들이 어떻게 다양한 직종과 산업의 이해관계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각자 자기가 알고 필요한 것에 신경을 썼다면 모든 건 매우 달랐을 것입니다. 일단 혁명이 일어나면 우리는 말하자면 아래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선전의 영향과 시대의 열정으로 각 지역이나 교구나 도시의 다양한 직종은 협회association를 이룰 것입니다. 그리고 한 직종이나 지역의 필요를 누가 이들보다 더 잘 이해하겠습니까? 그 이후 여러 직종이나 지역 사이에 협의가 필요할 때, 각각 특수한 회의에 보낼 대표자를 선출해 다양한 필요와 욕구의 조화를 이루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정은 언제나 인민의 이익이 방치되지 않도록, 그들이 대표하는 유권자의 동의 아래 이뤄질 것입니다. 그렇게 인류는 점진적으로 조화를 이룰 것입니다.

윌리엄 :하지만 한 나라나 협회가 나머지와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수가 당연히 우세를 점하게 되지 않겠나?

잭 : 자동적인 우세는 아닙니다. 진실과 정의 앞에선 숫자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백 명, 천 명, 혹은 모두에게 반대하는 단 한 명이 옳을 수 있습니다. 실질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할 수 있는 걸 해야 합니다. 만장일치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대다수가 동의하는 방식이 그 동의한 집단 내에서 행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경험이 그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면 다른 이들도 그들을 모방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소수의 주장이 맞았던 것이 증명되고 그에 따른 행동을 취할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의 기반이 될 평등과 정의의 원칙은 위배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합의에 다다를 수 없는 문제는 그 수가 지극히 적을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이해관계의 분화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의 나라와 협회, 즉 같이 살아갈 사람들을 자유롭게 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또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안은 견해의 차이를 좁힐 수 없는 이론의 영역이 아니라,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실생활과 실증과학에 대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문제의 최선의 해결책이 경험을 통해 내려질 때, 다수결로 사람들을 짓누르는 방식보다는 어떻게 그들에게 해결책을 보여줘 설득할 것이냐가 문제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시민들이 씨앗을 뿌리는 계절을 정하기 위해 모인다면 비웃을 만한 일이지 않나요? 이미 경험으로 결정이 난 사안인데 말이죠. 완전히 고정된 안건이 아니라면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투표를 사용할 수 있죠. 모든 공적이고 사적인 일은 이렇게 다뤄질 것입니다.

윌리엄 :하지만 누군가 단순한 황소고집과 방자함으로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반대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잭 : 그럴 경우 당연히 강제 조치를 취해야겠죠.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것이 부당한 것처럼, 그 반대도 상당히 부당하겠죠. 그리고 소수가 들고 일어날 권리를 가지고 있듯이, 다수에게는 자신들을 방어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어느 곳에서나 인간은 원자재와 생산수단에 대한 양도 불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물론 이는 완전히 만족스러운 해결책은 아닙니다. 협회에서 쫓겨난 개인은 많은 사회적 이익을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적 이익은 많은 사람의 협동을 통해서만 만들 수 있기에, 고립된 사람 또는 무리는 이를 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선호하십니까? 이 불평을 늘어놓는 자는 다른 여러 사람의 바람이 자신의 바람을 위해 희생되기를 정당하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연대와 형제애와 상호부조 그리고 필요에 따른 상호 고려와 지지가 성립되면 시민 독재나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장담하건대 인간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그들 사이에는 연대가 꽃필 것입니다. 압제와 내전은 모두에게 악입니다. 연대만이 우리 이상이 현실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고, 평화와 번창과 보편적인 자유를 가져올 것입니다. 또한 진보가 인간을 단결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더 독립적이고 자급할 수 있게 만든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땅 위로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선 철도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는 많은 사람들의 공동의 노동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아나키” 아래에서 여행자는 여전히 자기 필요를 다수가 최선이라 정한 우리의 필요와 규정에 맞춰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어떤 도로에서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혼자서 운전할 수 있는 기차를 만든다면, 모두 다른 이의 규정에 맞출 필요 없이 자기가 원하는 곳을 원하는 때에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그렇거나 미래에 그렇게 될 수천 가지의 다른 것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따라서 진보의 성향은 사람들 간의 특정한 관계를 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덕적 연대”와 “물질적 독립”을 향한 것이요.

윌리엄 :그런 것이군. 그럼 자네는 사회주의자고, 사회주의자 중에서 자네는 코뮌주의자이며 아나키스트인 것이야. 하지만 자네가 국제주의자라고도 들었네. 그건 무슨 말인가?

잭 : 국제 노동자 협회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30여 년 전, 전 문명국가의 노동자 간의 협회가 세워졌습니다. 모든 땅의 노동자가 유산자 때문에 겪는 불의와 착취를 함께 논하고 보편적인 사회 혁명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함께 행동할 목적으로 말이죠. 특정 문명 수준에 다다른 각국의 노동자는 서로 비슷한 방법으로 착취당하고 지배계층은 대중을 짓밟기 위해 서로 뭉쳐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세계 모든 곳의 노동자의 공동의 이익은 국가적 차이보다 더 강력합니다. 그리고 착취자들이 협동하는 것처럼 노동자들도 함께 행동해야지만 자본주의의 멍에를 떨쳐낼 수 있습니다. 국제 노동자 협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노동자를 뒤흔드는 거대한 노동운동은 그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오늘날 중산층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는 국제 사회주의 아나키스트 혁명당International Socialist Anarchist Revolutionary Party 같은 여러 나라의 사회주의 정당도 그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이 정당의 목표는 아나키스트 사회주의의 신념을 널리 알리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유산자나 국가로부터 자의적인 합의를 찾는 것과 점진적인 헌법적 개혁은 희망이 없음을 보이는 것. 자신의 권리에 대한 의식을 향해 인민을 깨우고 봉기의 기상을 일깨우는 것. 사회 혁명, 즉 모든 정부를 파괴하고 모든 부를 공동의 것으로 하도록 부추기는 것입니다. 이 강령에 동의하고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동참하려는 자는 누구든 이 정당의 일원입니다. 이 정당은 우두머리도 권위도 없습니다. 오로지 같은 목적을 위해 싸우는 자들 사이에서 임의적이고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각 일원은 자기가 원하는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필요한 수단을 최선이라 생각되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퍼뜨릴 수 있습니다. 물론, 정당의 강령과 전략에 반대되지 않는 선에서요.

윌리엄 :그렇다면 사회주의, 아나키즘, 혁명적 신념에 동의하는 모든 이들이 이 정당의 일원인가?

잭 : 아닙니다. 누군가는 우리 강령에 완전히 동의할 수 있겠지만, 무슨 이유에서든 강령에 동의하는 대중과 효과적인 연대와 협동의 관계를 이루지 않고, 혼자서 또는 소수의 조직원과 행동하는 것을 선호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이 일부 개인이나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효과적일 수 있지만, 일반적인 방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고립은 약점이고 형제애와 조화가 있어야 하는 곳에 반감과 경쟁심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사상을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 투쟁하는 남녀모두 친구이고 동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상의 진실에 대해서는 확신하지만 그들이 옳다고 믿는 것을 퍼뜨리려 하지 않고 소신을 비밀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죠, 이들이 이론상으로 사회주의자나 아나키스트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와 생각이 같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들의 신념은 매우 약함이 틀림없습니다. 아니면 겁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고요. 자신과 자기 주변인에게 해로운 악을 봤고 그 해결책을 안다 생각하는 인간이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선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말이죠. 진실을 알지 못하는 자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자는 비정한 겁쟁이일 뿐입니다.

윌리엄 :자네가 맞네. 자네가 한 말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생각해보겠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라는 확신이 생겼을 때, 나는 그 정당에 가입하겠네. 그리고 나 또한 그 신성한 진실을 퍼뜨리겠네. 그리고 상류층이 나를 비열하거나 바보라고 부르면, 나는 그에게 나만큼 일하고 고통받은 뒤에나 입을 열 권리를 얻을 것이라고 말하겠네. </play><play> 베르트 : 아! 조르조, 자네인가? 만나서 반갑네. 이전부터 자네와 이야기 좀 하고 싶었다네. 아, 조르조, 조르조! 자네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네! 시골에 살 때부터 좋은 청년이었고,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꽤 모범이 되었다더군. 만약 가엾은 자네 아버지가 살아 계시기만 했다면….

조르조 : 트 아저씨, 왜 그러시죠? 제게 왜 그렇게 말씀하시죠? 그리고 제 아버지께서 저한테 불만이었을 거라니요?

베르트 : 기분 상하지 말게, 조르조. 난 늙었고, 자넬 위해서 말하는 걸세. 게다가, 나는 자네 아버지인 안드레아와 오랜 친구였고 자네가 그렇게 안타까운 꼴이 된 것을 보니 마치 내 아들이 그런 것 같더군. 특히 자네 아버지가 자네에게 가졌던 희망과 좋은 양육을 위해 그가 한 희생을 생각하면 말이지.

조르조 :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저는 정직한 노동자가 아닌가요? 저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어요. 정반대로 저는 항상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선善은 행해왔는데, 아버지가 저를 부끄러워하다니요? 저는 배우고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악에 대해 동지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왜 저를 이런 식으로 대하시죠?

베르트 : 아, 바로 그거야! 자네가 성실히 일하고 이웃을 돕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네. 자네는 좋은 청년이지, 지역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말하더군. 하지만 자네는 감옥에 여러 번 있지 않았나? 그리고 경찰이 자네를 감시하고 있고 자네와 대화하는 것만 보여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하더군. 하지만 나는 자네가 좋으니 이렇게 말하겠네. 조르조, 이 노인의 충고를 받아들이게. 정치는 할 일 없는 상류층에게 맡기고 그저 받아들이게. 그것이 평화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일세. 그렇지 않으면 몸과 마음을 잃게 될 걸세. 들어보게.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게. 모두가 그놈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자식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네.

조르조 : 씨 믿어주세요. 제 동지들은 모두 정직한 사람들이에요. 그들이 먹는 빵은 땀과 눈물로 얻은 겁니다. 우리의 마지막 피 한 방울마저 빨아먹는 사장들의 말을 무시해야 해요. 그들은 우리가 불평만 한다며 훌리건이라고 부르고, 우리가 우리의 상황을 개선하고 그들을 성토하여 그들의 폭정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범죄자라고 불러요. 저와 제 동료들이 감옥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옳은 이유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거기 가게 되거나, 아니면 더 나쁜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불의와 가난을 파괴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아저씨도 평생을 일하고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양로원에 들어가게 될지 모르잖아요. 적어도 가난한 자들의 많은 부분을 개선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사장들과 정부의 편에 서서는 안 됩니다.

베르트 : 이보게 조르조, 나는 세상이 옳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네만, 그걸 바꾸는 건 거의 불가능할 일일세. 그러니 그냥 상황을 받아들이고 하느님께 기도하세. 우리에게 빵 한 조각이라도 내려주시길 바라면서 말이지.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은 늘 있었고, 일하기 위해 태어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만족해야 하네. 그래야 평화롭게 살 수 있고 우리의 명예를 지킬 수 있어.

조르조 : 씨는 명예 타령을 하고 있군요! 땅 주인을 보세요. 그들은 우리를 빵 한 조각을 위해 짐승처럼 일하게 한 다음, 부와 방탕에 낭비하죠. 그들은 우리가 정직한 사람이라면 이 모든 것을 웃으며 참아내고 불평도 하지 않고 자기들의 등에 살이 찌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러지 않고 우리 또한 사람이며 일하는 사람은 먹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들은 우리가 악하고 부정직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경찰은 우리를 감옥에 집어넣고, 성직자들은 우리를 지옥으로 보낼 겁니다.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베르트 아저씨. 아저씨는 노동자고, 동료들을 착취하려고 한 적이 없어요. 진짜 악당들, 명예롭지 못한 자들은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을 장악하고 가난을 통해 사람들을 털 깎이고 도살되게끔 허용하는 양떼마냥 만드는 불의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아저씨는 우리를 비판하면서 그들 편에 서시나요? 그들은 자신들의 정부를 상류층들로 구성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또한 노동자들,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에게 등을 돌리도록 만들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에게도 빵과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아! 강제적 노예제로 인한 여러 세기 동안의 가난과 무지가 아니었다면, 저는 가장 품위가 낮은 사람들은 인류의 억압자들을 지지하는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겁니다. 물론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할 수 있도록 비참한 빵 껍질과 우리가 가진 자유의 조각이 주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으니까요.

베르트 : 그래그래, 좋은 말들이네. 하지만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서 제대로 될 수 있는 일은 없네. 자네는 날 설득할 수 없어. 교구 사제가 자네와 동지들을 이단자 무리라고 말하는 걸 들었네. 공부를 오랫동안 해오고 신문을 읽는 안토니오 신부는 자네와 자네 동지들 모두가 미친 난동꾼들이며,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일하고 싶지 않아 하고, 노동자들에게 좋은 일을 하는 대신 집주인들이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을 막고 있다고 말하더군.

조르조 : 씨, 우리가 이성적으로 대화하고 싶다면 하느님과 신자들은 여기서 제외할 필요가 있어요. 동족을 속이고 억압하려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이름을 구실과 명분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왕들은 신이 그들에게 통치할 권리를 주었다고 말하고, 두 왕이 나라에서 대립할 때면 양쪽 모두 신이 자신을 보냈다고 말합니다. 신은 항상 가장 많은 군인과 최고의 무기를 가진 사람들의 편이죠. 재산을 소유한 자, 폭리를 취하는 자, 사업을 독점한 자 모두가 신을 말합니다. 그리고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 터키의 사제들과 장관들은 각각 자신들이 신의 대리인이라고 말하고, 신의 이름으로 서로 전쟁을 벌이면서 자신들의 둥지를 틀려고 노력해요. 아무도 가난한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아요.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주셨고, 우리에게는 가난과 끝도 없는 노동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낙원을 갖게 될 것이고 다음 세상에서도 낙원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저세상에서만 낙원을 받게 될 겁니다. 그것도 우리가 순종적인 노예가 되고 그들이 우리에게 장소를 허락한다는 경우에만 말이죠.

들어보세요. 저는 양심의 문제를 다루고 싶지 않아요. 모든 사람은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아는 한, 저는 하느님이나 성직자들이 우리에게 하는 어떤 이야기도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항상 기득권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성직자들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건 아무도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꼴이죠. 저 역시 동화 속 세계를 창조할 수 있고, 저를 믿지 않는 사람은 영원한 불길에 놓일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만약 제가 그랬다면 아저씨는 제가 사기꾼이라고 말했겠지요. 하지만 만약 제가 한 아이를 잡아서 다른 누구도 반박하지 않는 상태에서 같은 말을 반복한다면, 그 아이는 자라서 신부를 믿는 것처럼 저를 믿을 겁니다.

어쨌든, 아저씨가 편할 대로 믿으세요. 하지만 아저씨의 하느님이 아저씨가 굶주리기를 원하고, 아저씨의 자녀들이 음식과 의료의 부족으로 병들고 발육부진 상태로 자라기를 원하며, 아저씨의 딸들이 향수 냄새나는 젊은 주인의 정부가 되는 길에 놓이기를 원한다고 말하지는 마세요. 그런 하느님은 암살자니까요.

만약 신이 있다면, 신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 자신과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계속해 나가자고요. 다음에 만약 신이 있고 그가 정의롭다면, 우리가 고통을 주거나 다른 사람들이 계속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보다 선을 행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될 겁니다. 교구 사제의 말마따나 우리가 모두 형제이고 하느님의 피조물이라면 말이죠.

제 말을 믿어주세요. 오늘 하느님께서는 아저씨가 가난하다고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만약 내일 아저씨가 어떤 식으로든 많은 돈을 모으는 데 성공한다면 아저씨는 즉시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권리를 얻을 것이고, 농민들을 학대할 수 있겠고, 가난한 소녀들의 명예를 빼앗을 수 있겠죠. 그리고 하느님은 아저씨의 고용주가 계속 그렇게 했던 것처럼 아저씨도 그렇게 하게 둘 겁니다.

베르트 : 이거 참 야단났군! 자네가 읽고 쓰는 법을 배운 이후로 자네 이야기를 들으니 변호사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구만. 자네 말에 등골이 오싹해지는군. 주인집 아들이 내 딸 로지나를 볼 때 눈이 밝아지는 걸 봤다네. 오! 만약 내 로지나가…. 아! 다른 이야기를 하세.

나는 늙었고 이곳이 비열하고 비참한 세상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불량배가 되고 싶지도 않다네. 말해보게. 자네가 토지를 가진 모든 사람으로부터 그것을 빼앗고 싶어 하는 것이 사실인가?

조르조 : 요! 그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거예요! 가난한 사람들과 관련된 것을 알고 싶을 때는, 절대로 땅 주인에게 묻지 마세요. 아무도 자기 이익에 반하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아저씨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겁니다. 아나키스트들이 뭘 원하는지 알고 싶다면 안토니오 신부 같은 성직자가 아니라 저와 제 동지들에게 물어보세요. 대신, 신부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왜 우리는 감자나 먹고 있어야 하는지 물어보세요. (감자가 있기나 하다면 말이죠.) 반쯤 닫힌 예약 좌석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신부님은 어떤 여자와 로스트비프를 먹고 있는데 말이죠. 그에게 왜 그가 평소에는 지주들만 만나고 삼킬 만한 것이 있을 때만 우리에게 오는지 물어보세요. 왜 항상 지주나 경찰이 옳다고 하는지, 그리고 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는 핑계로 가난한 사람들의 입에서 빵을 빼앗고서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어떤 일도 하지 않는지, 왜 다른 사람의 희생에 기대서 사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지 물어보세요. 다음에 젊고 힘이 세고, 공부를 하고 카페에서 카드놀이를 하거나 주민 회의에서 거들먹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안토니오 신부를 보게 되면,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에 대해 더 이상 지분거리지 말고 고된 일들과 가난에 대해 조금 알아보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말해 주세요.

베르트 : 그건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앞서 얘기했던 것으로 돌아가지. 자네가 다른 사람의 토지를 빼앗고 싶어 한다는 것이 사실인가?

조르조 : 사실이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가져가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이 지주들로부터 토지를 되찾아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공유하기를 원할 뿐이죠.

만약 이렇게 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토지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우리의 것인 토지를 되찾는 것입니다.

베르트 : 그럼 토지가 정말 우리들의 것이란 말인가?

조르조 : , 토지는 모든 사람의 것입니다. 누가 그것을 지주에게 주었죠? 그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했나요? 그들이 그것을 소유하고 지킬 수 있는 권리가 어디에 있죠?

베르트 : 그들의 조상들이 물려줬지.

조르조 : 누가 조상에게 그것을 주었을까요? 확실히,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하고 운이 좋았고,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차지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일하도록 강요했고, 그들 주변의 많은 사람을 억압하고 굶주리게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훔친 재산을 그들의 자손 대대로 물려주었습니다. 그 결과 미래의 인류 전체를, 게으름으로 나약해졌지만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는 그들 후손들의 노예로 전락시켰습니다. 그들이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고 그들의 아버지처럼 힘으로 그것을 붙잡고 싶어 한다는 사실만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미안함을 느꼈겠죠.

이 모든 게 올바르다고 보이시나요?

베르트 : 그들이 부당하게 땅을 빼앗았다면, 올바르지 않네. 하지만 지주들은 토지를 얻기 위해 일했다고 말하지. 나는 그들이 스스로 노력해서 이룬 것을 빼앗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네.

조르조 : 네! 똑같은 옛날이야기군요! 일하지 않고 일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항상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말을 하죠.

자, 금속, 석탄, 돌 등이 어디서 나오죠? 그것들은 신에 의해 만들어졌거나 자연의 자발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확실히, 우리가 세상에 나왔을 때 우리 모두가 그것들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것들은 모든 사람에 의해 이용되어야 하죠. 만약 지주들이 공기를 마음대로 가져가고, 우리는 땀과 노동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 하고, 적은 양의 가장 더러운 공기만 허용한다면, 아저씨는 뭐라고 말할 건가요? 공기와 땅의 유일한 차이점은, 땅에 대해서는 쪼갤 방법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방법을 찾는다면, 그들은 땅에 그랬던 것처럼 공기에 대해서도 똑같이 할 겁니다.

베르트 : 사실이네. 그게 맞는 것 같구만. 대지와 자연의 모든 것은 모든 사람의 것이어야 하네. 하지만 모든 것이 바로 우리 눈앞에서 발견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조르조 : 많은 것들이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졌지만, 사실 인간의 노력으로 개간되고 경작되지 않았다면 땅 자체는 큰 가치가 없었겠죠. 개간되고 경작된 것들은 그것들을 생산한 사람의 것이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것들을 생산하기 위해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의 손에 그것들이 있을 수 있을까요?

베르트 : 하지만 지주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일을 하고 노예를 부렸다고 말하더군.

조르조 : 은 그들의 조상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오늘날과 똑같이 급여 없이 그들을 위해 일하도록 강요했다고 말해야 합니다. 역사는 노동자들의 상황이 항상 비참했고, 정확히 지금처럼,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지 않고서는 저축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배고픔을 채울 만큼도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아저씨의 눈앞에 있는 현실을 보세요.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모든 것은 그저 구경만 하는 사장의 손에 들어가지 않나요?

오늘날 그들은 늪지대 한 곳을 싸게 삽니다. 그들은 그 위에 사람들을 고용하고, 노동자들이 굶어 죽는 것을 면할 수 있을 만큼만 준 다음, 도시에 가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냅니다. 몇 년 후, 이 쓸모없는 땅은 처음 가격의 100배에 달하는 정원이 됩니다. 이 보물을 물려받은 아들들은 아버지의 업적으로 이득을 보고 있다고 할 것이고, 정말 일하고 고생한 사람들의 아들들은 계속 일하고 고생할 거에요. 아저씨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베르트 : 하지만… 세상이 정말 그렇게 굴러온 것이라면, 지주의 소유는 전혀 없어야 할 테지.

조르조 : 요, 그럼 최대한 지주에게 유리하도록 가정해 볼게요. 그들이 모두 과거에 직접 일을 하고 저축한 사람들의 아들이고, 노동자들은 모두 게으른 낭비꾼들이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제가 하는 말이 황당하다는 걸 아시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사회조직이 더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저씨는 열심히 일하고 내가 게으름을 피운다면 내가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 내 아이들도 벌을 받아야 한다거나, 아저씨의 아이들을 부유하고 풍요롭게 유지하기 위해 일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굶어 죽어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베르트 : 자네의 주장은 좋은 생각이고,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지주들은 땅을 가지고 있고, 장기적으로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게 아니겠나? 왜냐하면 그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단이 없었을 테니 말이야.

조르조 : 은 그 땅을 폭력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땅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들 노동의 열매를 마음대로 가져가면서 번창해 왔어요.

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가져갔으니, 다시 돌려줄 수도 있는 거죠.

지금까지 사람들은 서로 전쟁을 해왔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입에서 빵을 낚아채려 했고, 노동자를 짐승처럼 부리기 위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일을 끝낼 때에요. 전쟁으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시대를 지나면서 가난, 노예제, 범죄, 매춘, 그리고 때때로 전쟁이나 혁명이라고 불리는 유혈사태가 있었습니다. 서로 잘 지내고, 사랑하고, 도와주면서, 우리는 더 이상 그 많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과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로 나뉘지 않을 거고,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명령을 내릴 뿐 일하지 않고 사는 것에 익숙한 부자들이 제도를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은 충분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겁니다. 만약 그들이 사랑을 통해서든 공포를 통해서든 사람들 사이에 더 이상 증오와 불의가 없어야 하고 모든 사람이 일을 분담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로 결정한다면 훨씬 더 좋겠지요. 반면에, 만약 그들이 우리를 억누르고 그들의 조상들, 그들 폭력과 절도의 결과를 계속 즐기고 싶다면, 그들에게는 훨씬 더 나쁜 일이 될 겁니다. 그들은 무력으로 그들이 지닌 모든 것을 차지했고, 그렇기에 우리는 무력으로 그들에게서 그것을 되찾을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동의하기만 한다면, 가장 강한 것은 우리입니다.

베르트 : 하지만 더 이상 땅 주인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겠는가? 누가 우리에게 일거리를 주겠나?

조르조 : 구니가 없군요! 보세요! 아저씨는 그 답을 매일 보고 있어요.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수확을 거두고, 밀을 갈아서 헛간으로 운반하는 것은 아저씨 자신이잖아요. 와인, 기름, 치즈를 만드는 건 아저씨인데 지주들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냐고 물어보신다니요? 차라리 땅과 도시의 일꾼들,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불쌍한 우리가 아니었다면 지주들이 어떻게 살아남았겠느냐고 묻는 게 맞을 겁니다.

몇 분 전에 아저씨는 사장들이 살아갈 수단을 준다는 이유로 감사하고 싶다고 했죠. 아저씨는 그들이 우리 노동의 결과를 빼앗아 가는 것을 모르시겠어요? 그들이 입에 넣은 모든 빵 조각은 우리 아이들에게서 훔쳐 간 것입니다. 그들이 여자들에게 주는 모든 선물은 가난, 배고픔, 추위,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재능을 팔아버린 대가를 상징합니다.

지주들이 무엇을 생산하죠?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그들이 소비하는 모든 것은 노동자들로부터 훔쳐간 것입니다.

내일 모든 일꾼들이 밭에서 사라진다고 상상해 보세요. 땅 위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으면 지주들은 굶주릴 겁니다. 구두장이가 사라지면 신발이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을 겁니다. 집 짓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집을 지을 수 없겠지요. 모든 계층의 노동자들이 사라지면 생산의 한 부문이 사라질 거고, 사람들은 유용하고 필요한 모든 것 없이 지내야 할 겁니다.

하지만 만약 지주들이 사라진다면 어떤 피해가 있을까요? 그냥 메뚜기떼가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베르트 : 그래, 우리가 모든 것을 생산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게 땅, 동물, 씨앗이 없다면 어떻게 옥수수를 재배할 수 있겠는가? 내가 말했듯이 탈출구는 없다네. 우리는 사장들 밑에서 일해야 해.

조르조 : 아저씨, 이미 답을 아시잖아요? 우리는 지주로부터 필요한 것, 즉 땅, 도구, 씨앗 등 모든 것을 가져와야 합니다.

땅과 작동시킬 기계가 지주의 손에 있는 한, 노동자들은 항상 억압당할 것이고 가난과 노예제밖에는 모를 겁니다. 그러니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주로부터 땅을 되찾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에요.

베르트 : 맞네, 자네가 이미 말했지. 하지만 어떻게 말인가? 이 모든 것이 내게는 너무 생소해서 머리가 어지럽구만.

하지만 자네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설명해주게. 지주들에게서 빼앗을 이 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한 사람이 차지하기에는 많지 않나?

조르조 : 히 그렇죠! 누군가가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이 절반이나 그 이상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무지하거나 나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베르트 : 그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잘 이해가 안 되는군.

조르조 : 요, 꽤 간단해요. 우리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모든 사람은 일을 해야 하고 모든 사람은 가능한 한 잘 살아야 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하지요. 일을 하지 않고는 이 세상을 살 수 없기 때문에 한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키며 살아야 합니다. 그건 불공평하고 해롭습니다. 제가 모든 사람이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그 모든 사람은 일을 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고, 그들에게 알맞은 양을 의미합니다. 절뚝거리는 사람, 약자, 노인은 사회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누구도 고통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늙을 것이고, 불구가 되거나 쇠약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도 그렇게 될 수 있죠.

자, 잘 생각해보면, 인간의 사용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부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토지, 기계, 도구, 교통수단, 천연자원 등을 포함하는 부분은 필수적이고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공유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사용하고 그에 관한 노동을 조직하는 방법에 관한 한, 그것은 모두가 결정할 것입니다. 더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좋은 해결책은 공동으로 일하는 겁니다. 사실, 공동으로 일하는 것은 모두에게 환영받을 겁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스스로 일하는 것은 일을 가볍고 즐거운 것으로 줄여주는 기계 없이 일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들이 더 이상 서로의 입에서 빵을 빼앗을 필요가 없을 때 그들은 고양이나 개처럼 행동하는 것을 멈추고, 함께 살아가며 공동으로 일하는 것을 즐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든, 가령 어떤 사람들은 따로 일하기를 선호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본질적인 것은 일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일부를 위한 일을 강요함으로써 살아가는 사람이 없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은 필요한 것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할 필요가 없으니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사회적 부의 두 번째는 음식, 옷, 주택과 같이 인간이 직접 소비하는 것들이 포함됩니다. 이것들 중 이미 존재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가 새로운 수확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식으로 공유되고 분배되어야 하며, 우리는 산업에 의해 새로운 상품이 생산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굶주린 노동자의 노고로 살아갈 놀고먹는 고용주가 더 이상 없을 때, 혁명 이후 생산되는 것은 각 지역 노동자들이 원하는 대로 분배될 겁니다. 함께 일하고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그런 식으로 생산은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최대한의 즐거움을 보장하도록 조정될 수 있고 그렇게 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개인이 생산한 것을 장부에 기록하여 각자가 그들이 한 일의 양에 따라 상품을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이는 계산하기 어렵겠지요. 사실 저는 그게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비례분배의 난해함을 이해하게 되면 모든 것을 공동으로 두겠다는 생각이 좀 더 쉽게 받아들여질 겁니다.

어떤 경우에도 모든 사람은 빵, 주택, 물 등과 같은 기본적인 필요에 대해서는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의 질과는 별개로 확실히 보장받아야 합니다. 어떤 형태의 조직이 채택되든,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편안하고 다른 사람들은 배고픔과 욕망을 갈구하는 것,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부유하게 태어나고 다른 사람들은 가난하게 태어난다는 것은 잘못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세습이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이 생산하고 구할 수 있는 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가 죽었을 때 그의 모든 저축은 지역사회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또 다른 편으로는, 젊은이들은 그들의 능력을 최고조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의 비용을 통해 길러지고 교육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정의도 평등도 없을 것이고, 모두가 노동의 도구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원칙은 침해될 겁니다. 왜냐하면 학문과 도덕적 힘은 진정한 노동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토지와 기계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모든 사람에게 그것들을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성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람man, uomo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성별의 구별 없이 인간을 의미합니다.

베르트 : 그래도 뭔가 걸리는군. 가난한 사람들을 강탈하고 굶주리게 한 지주들로부터 재산을 빼앗는 것은 충분히 공평한 것 같네. 그러나 만약 누군가가 열심히 일하고 저축을 해서 돈을 따로 모아놓고 1에이커나 2에이커 되는 작은 가게를 산다면, 어떤 권리로 그에게서 이것을 빼앗을 수 있겠나?

조르조 : 에 그렇게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울 겁니다. 자본가와 정부가 생산물을 최대한 활용하는 오늘날에는 노동력을 절약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아시다시피, 몇 년 동안 열심히 일한 뒤에도 아저씨는 여전히 예전처럼 가난합니다. 게다가 저는 이미 각자가 원자재와 도구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만약 누군가가 자기 손으로 스스로 얻은 작은 땅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아주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그가 완벽한 도구, 거름 그리고 대지로부터 최대한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 받았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군요. 물론, 그 사람이 모든 것을 공동으로 두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사리사욕은 모든 사람에게 공동 소유 체제의 이점을 드러내 줄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모든 사람은 혼자 하는 것보다 땅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고, 특히 새로운 기계의 발명으로부터 고립된 작업은 점점 덜 생산적이게 될 것입니다.

베르트 : 아, 기계! 그것들은 모두 파괴되어야 하네! 그것들은 노동자들을 망치고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일을 빼앗고 있어. 여기 이 지역에서도 볼 수 있지. 새 기계가 도착할 때마다 우리의 임금은 줄어들고 우리 중 일부는 해고되고 어딘가에서 굶어 죽을 수밖에 없게끔 놓이지. 마을에서는 더 심하고. 적어도 기계가 없다면 지주들은 우리의 노동력을 더 필요로 하겠고, 우리의 상황은 조금 더 나아질 걸세.

조르조 : 가 가난과 일손 부족의 원인 중 하나라고 믿는 건 아저씨 말이 맞아요. 하지만 이것은 기계가 사장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만약 그것들이 노동자들의 것이라면 결과는 정반대일 겁니다. 기계들은 인간 복리의 주된 원천이 될 거에요. 사실, 기본적으로 기계는 우리 대신, 또 우리보다 더 빠르게 일합니다. 기계들 덕분에 인간은 더 이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몇 시간씩 일하거나 초인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기계가 생산의 모든 분야에 사용되고 모든 사람에게 속한다면, 소비의 모든 요건은 몇 시간의 빛과 건강하고 즐거운 일로 충족될 수 있고, 모든 노동자는 과학과 문명의 정복으로부터 이익을 얻으며 공부하고, 우정을 쌓고, 한 마디로 삶을 즐기고 공부할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기계들을 파괴할 것이 아니라 빼앗아야 합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지주들이 기계를 지키려 할 것이라는 겁니다. 심지어 기계를 빼앗으려는 사람들을 이용해 기계를 파괴하려는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기계를 지키려 할 수도 있죠. 그래서 위험도가 동등하다면, 그것들을 빼앗는 대신 파괴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일 겁니다. 아저씨는 곡식과 집이 지주들 손에서는 아주 많은 이들의 가난과 노예제를 의미하지만 우리 손에서는 부와 자유가 될 것인데도 그것들을 파괴하시겠어요?

베르트 : 하지만 이 체제가 작동하려면 모든 사람이 기꺼이 이 체제에 따라야 하겠지. 그렇지 않나?

조르조 : 이죠.

베르트 : 그런데 만약 어떤 일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며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일은 힘들고 아무도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네.

조르조 : 씨는 오늘날의 사회를 혁명 이후에 존재할 사회와 혼동하고 계십니다. 힘든 일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죠. 하지만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며칠을 보낼 수 있을까요?

베르트 : 나는 아닐세. 왜냐하면 나는 힘든 일에 익숙하고 할 일이 없을 때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지. 하지만 술집에서 카드놀이를 하거나 뽐내면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지.

조르조 : 날은 그렇죠. 하지만 혁명 이후에는 더 이상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리지요. 오늘날 노동은 힘들고, 보수가 나쁘고, 모두에게 경멸받습니다. 오늘날 노동하는 사람은 누구나 지치고, 배고프고, 짐승 취급받아야 합니다. 노동자에게는 희망이 없고, 결국 병원이나 심지어 감옥에 가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노동자는 자기 마음대로 가족을 돌볼 수 없어요. 노동자는 삶에서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학대와 굴욕을 겪습니다. 반면에 노동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일하도록 하는 사람들은 가능한 모든 편안함을 즐기고 높이 평가받습니다. 심지어 노동자들 사이에서 더 가벼운 일을 하고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이 더 높이 평가받는 일도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자기 의지에 반하여 노동하고, 가능한 한 그것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 이상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기계들의 도움으로 인간적이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노동을 할 때, 그리고 노동자가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 또 공동체 전체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 때 그것은 사회에서 존중받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 되고, 오늘날 간첩과 포주들이 경멸당하는 것처럼 게으름은 경멸받게 될 겁니다. 그러면 누가 게으름 피우며 살기 위해 자신이 사랑받는 것을 아는 기쁨을 포기하겠습니까? 심지어 오늘날에도, 몇 가지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은 간첩이나 포주라는 직업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는 혐오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노동이 거의 또는 전혀 개입되지 않고 당국에 의해 다소 직접적인 보호가 주어지는 이러한 비참한 상황에서는 그것이 땅을 경작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심각한 도덕적 타락의 징후이고 고통과 악惡만을 낳기 때문에 비열한 직업입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은 수치보다 가난을 선호합니다. 분명히 예외가 있습니다. 비열함을 선호하는 나약하고 부패한 이들이 있지만, 그것은 항상 수치과 가난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노동을 함으로써 행복과 동료들의 존경을 확신한다면 누가 비열로 고통받는 삶을 선택하겠습니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인간의 정상적인 본성에 상당히 반할 것이고 광기로 간주되어 다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의심하지 마십시오. 노동은 모든 사회의 기초적 필수이기에 게으름에 대한 대중의 저항은 분명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아무 기여 없이 다른 사람의 생산물로 살아가며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의 조화를 깨뜨리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소수의 불만족스러운 사람 중 하나가 될 겁니다. 집단 역시 개인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유용한 사람 또는 유용하다고 믿는 사람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사람들은 실수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먹고 마시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에 잘못 나아갈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생산물을 동등하게 나누는 실험을 진행해 보세요. 아저씨는 약하고 능력 없는 사람들은 배려하겠지만, 그 실험을 꺼려하는 사람들은 삶이 힘들어져서 아저씨를 떠나거나 노동하기로 결심할 겁니다. 이는 소수의 무관심이 눈에 띄는 피해를 줄 수 있을 때 사회 전반에서 벌어질 일입니다.

그리고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 때문에 모든 것이 지연되면 치료법은 쉽게 찾을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들은 공동체에서 추방되고 원자재와 도구에 대한 권리만 갖게 될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살아남고자 한다면 일을 해야만 할 겁니다.

베르트 : 이제야 납득이 가는군. …하지만 말해보게, 모두가 땅을 경작해야 하나?

조르조 : 서요? 우리는 빵, 와인, 고기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주택, 옷, 도로, 책, 사실 모든 업종의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모든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혼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흙을 파내는 것 말고도, 도구를 만드는 데 대장장이가 필요하고, 쇠를 캐는 광부가 필요하고, 집과 헛간을 짓는 건축가가 필요하지 않나요? 그래서 이것은 땅을 일구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용한 일을 하기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의 문제입니다.

직업의 다양성은 각자가 자신의 성향에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줄 것이고, 따라서 적어도 가능한 한, 노동은 운동의 하나가 되고, 매우 훌륭한 오락이 될 겁니다.

베르트 : 그럼 각자 원하는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건가?

조르조 : 하지만 한 종류의 직업에서 일하는 사람이 너무 많고, 다른 종류의 직업이 부족하게 될 경우는 주의할 필요가 있죠. 일은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모든 욕구가 충족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가능한 한 전반의 이익과 개인의 선호도를 조화해야 합니다. 더 이상 사장이 빵 부스러기 몇 개 때문에 일하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자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베르트 : 자네는 모든 사람이 노력할 거라고 말하지만, 나는 아무도 힘든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사람들은 모두 변호사와 의사가 되고 싶어 할 걸세. 그럼 누가 땅을 갈지? 누가 광산에서 그들의 건강과 생명을 걸고 싶겠나? 누가 하수구와 거름으로 더러워지고 싶겠어?

조르조 : 사에 관한 건 제쳐두겠습니다. 그들은 성직자들처럼 썩은 고름입니다. 사회 혁명은 그들을 완전히 없앨 거에요. 이웃에게 해를 끼치려고 하는 것이 아닌 유용한 일에 관해서 이야기하죠. 그러지 않으면 가끔 큰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거리의 암살자조차도 노동자가 될 겁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직업을 다른 직업보다 선호합니다. 그것이 우리 능력에 더러 적합하거나 우리가 하고 싶은 일에 더 부합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배우는 것이 더 쉽고, 우리가 그것을 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며, 단지 그 일이 다른 것들보다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태어날 때부터 우연과 사회적 편견에 의해 선택이 강요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도시 주민도 땅을 갈기 위해 몸을 굽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 중 가난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농업에 대해 본질적으로 혐오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들판에서의 삶도 즐거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시인들의 글을 읽는다면, 그들이 시골 생활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겁니다. 하지만 사실 책을 내는 시인들은 결코 땅을 경작해본 적이 없고, 실제로 땅을 경작하는 경우에는 피곤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굶주림으로 죽으며, 짐승보다 더 못 살게 되고, 가치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마지막 도시 부랑자는 농민으로 불리는 것을 범죄처럼 여길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기꺼이 땅을 일구기를 원하겠어요? 여기서 태어난 우리 스스로가 오히려 할 수 있는 한 빨리 그만둡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우리가 무엇을 하든 더 높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위해 일하고 땅의 행복과 자유와 존중을 일하는 가운데 발견한다면 우리 중 누가 들판을 떠나겠습니까?

이는 모든 업종에서 같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상황에서, 더 많은 이들이 필요한 일자리일수록 더 나쁜 급여를 받고, 더 피곤하고 비인간적인 조건에 놓이며 더 경멸당합니다. 예를 들어 금 세공인의 작업장에 들어가 보면 적어도 우리가 사는 역겨운 오두막집에 비한다면 그곳은 깨끗하고, 통풍이 잘 되며, 겨울에는 난방이 잘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노동 일수가 지나치게 길지도 않고 노동자들의 급여도 적당합니다. 그러고 나서 저녁은 휴식을 취하며 보내는데, 그들이 작업복을 벗었을 때 그들은 사람들이 그들을 쳐다보거나 그들을 조롱하지 않는 상태로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반면 광산으로 내려가 보면, 아저씨는 가난한 사람들이 역한 공기 가운데 지하에서 일하고 보잘것없는 임금으로 몇 년 동안 그들의 삶을 날리는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다음 만약 광부가 퇴근한 뒤 감히 신사들과 같은 장소에 드나들면, 그는 운이 좋아야 조롱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광부보다 금 세공인이 되기를 더 선호한다면 우리는 그걸 놀랍게 여기나요?

펜밖에 모르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요. 생각해보세요! 말장난과 달콤한 시 구절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농장 노동자보다 10배나 더 많이 벌고 모든 정직한 노동자들보다 위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예컨대 기자들은 우아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구두 수선공은 더러운 지하실에서 일합니다. 엔지니어, 의사, 예술가, 그리고 교사들은 일자리가 있고 일을 잘한다면 상류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건축가, 간호사, 직공, 넓게는 일반 노동자와 초등 교사는 굶주리며 살고, 심지어 과로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육체노동만이 유용하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공부는 인간에게 자연을 이기고 스스로를 문명화하고 더 많은 자유와 안녕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주고, 의사, 엔지니어, 화학자, 학교 교장은 농장 노동자들과 다른 노동자들만큼이나 인간 사회에 유용하고 필요합니다. 저는 단지 모든 유용한 직업들이 동등하게 평가되어야 하고, 노동자들이 그것을 하는 것에 대해 동등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하며,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이자 머리로 일하지 않고 무지한 채로 있는 사람에 비해 인간에게 큰 우월감을 주는 지적 업무는 소수의 특권이 아닌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르트 : 하지만 만약 자네 말처럼 머리로 일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고 무지한 사람들보다 유리한 것이라면 분명 모든 사람은 공부를 하고 싶어 할 테고, 나는 그런 첫 번째 사람이 될 걸세. 그럼 육체노동은 누가 하겠는가?

조르조 : 죠.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문학과 과학을 함양하는 동시에 수작업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머리와 손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일은 서로를 손해 입히기는커녕 서로를 돕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근육뿐만 아니라 뇌까지 모든 장기를 운동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능이 발달하고 사고에 익숙한 사람은 수작업도 더 잘 해냅니다. 그리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힘을 발휘할 때처럼 건강한 사람은 또한 더 민첩하고 통찰력 있는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두 가지가 필요한 것은, 하나는 다른 것보다 더 즐겁고 인식과 존엄성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오직 육체노동에만 매달리고, 다른 이들만 과학의 특권을, 즉 명령할 특권을 지니게 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는 육체노동을, 어느 정도는 지식노동을 해야 합니다.

베르트 : 그건 이해할 수 있네. 하지만 힘든 육체노동과 쉬운 육체노동이 있고, 어떤 것은 불쾌하고 어떤 것은 쉽지. 예를 들어 광부나 청소부는 누가 하겠나?

조르조 : 씨가 매일 어떤 발명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만 안다면, 지금이라도 노동의 조직이 스스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따라서 노동자들의 안락함에 신경 쓴다면 모든 육체노동은 괜찮은 조건으로 수행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일들을 선호하는 노동자들이 항상 있을 거구요. 그게 바로 현재입니다. 모두가 일을 해야 하고, 모두의 노력과 연구가 노동을 더 쉽고 즐겁게 만드는 쪽으로 향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어떤 직업이 다른 직업보다 더 힘들다고 해도, 사람들은 특별한 이점을 통해 그 차이를 보상하려고 할 겁니다. 또 우리는 모두가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일할 때, 형제애와 준수의 정신이 생겨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마치 가족 안에서처럼, 서로가 가장 무거운 일을 떠맡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베르트 :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이 모든 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조르조 :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작업이 완료되지 않고 아무도 자신의 자유 의지로 작업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가 그걸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하루, 매년 일주일씩, 또는 다른 방식으로 작업하는 겁니다. 그리고 만약 어떤 것이 정말로 모두에게 필요하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그걸 할 수 있는 방법은 항상 발견될 겁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군인이 되어 우리가 알지 못하고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은 다른 사람들과 싸우거나, 우리 형제들과 친구들을 상대로 싸우지 않습니까?

우리 자신의 즐거움과 모두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하는 편이 더 낫겠지요.

베르트 : 날 설득하기 시작했다는 것 알고 있나? 그런데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는 게 있네. 상류층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는 그 일 말일세. 잘은 모르겠지만… 그걸 피할 수는 없을까?

조르조 : 게 하고 싶으신 건가요? 지주들이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는 한,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를 신경 쓰지 않고 명령을 내리고 자신의 이익만을 돌보는 사람들이 될 겁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지주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오면 안 되는 거죠? 아직도 아저씨는 그것이 불공평하고 사악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베르트 : 아니, 자네가 다 말해주지 않았나. 그게 오히려 축복인 것 같구만. 왜냐하면 우리가 지주들에게서 재산을 빼앗아 온다면 그들이 오랫동안 빨아먹었던 우리의 피를 되찾게 될 테니 말일세. 그리고 우리가 그들에게서 그것을 빼앗아 온다면, 그건 우리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의 이익을 위해 공동으로 두는 것이지. 그렇지?

조르조 : 입니다. 사실, 아저씨가 깊게 그에 대해 생각해보신다면, 지주들은 그로부터 이익을 얻으리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분명, 그들은 지휘하는 일과 거만하고 굴고 게으름 피우는 걸 포기해야 할 겁니다. 그들은 노동해야 하겠지만, 기계의 도움을 받으며 노동자들의 복리를 염두에 둔다면 그 일은 가볍고 즐거운 운동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사냥을 가고 달리기를 하고 체조와 많은 운동을 하면서 근육 운동이 모든 건강하고 잘 먹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이고 즐거운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지 않나요? 그래서 이는 그들이 오늘날 취미로 하고 있는 일을 생산을 위해 하게끔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신사들은 전반적인 복리와 개선된 문명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이점을 느끼겠어요! 예를 들어 우리 마을을 보세요. 그곳에 있는 소수의 지주는 부유하며 마치 어린 왕자처럼 행동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도로는 우리에게 그런 것처럼 그들에게도 불쾌하고 더럽지요. 우리 집과 이웃 늪에서 나오는 악취 나는 공기 또한 그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의 무지 때문에 그들 역시 잔인한 환경에 놓이는 거죠. 어떻게 하면 그들이 사재를 털어 시골을 개선하고, 도로를 만들고, 불을 밝힐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소비재의 조악해지는 걸 피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과학과 산업의 모든 진보에서 이익을 얻게 될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이 협력해서 작업한다면 그 수행은 매우 간단해질 겁니다. 그리고 그들의 허영심은 사회가 위축되는데 어떻게 채워지겠습니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바리케이드 뒤에서 계속되는 총격의 위험과 혁명의 공포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가난에 빠뜨리고 그들 가족을 굶주림, 범죄 또는 매춘에 노출시킬 재앙에 대한 생각이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까? 재산을 소유한 사람들로부터 재산을 빼앗음으로써, 우리는 그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큰 호의를 베풀고 있습니다.

지주들은 명령을 내리고 싶어 하기에,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과는 서로 다른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요? 만약 그들이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들에게 몹시 더 나쁜 일이 될 겁니다.

베르트 : 그건 다 좋네. 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군. 차근차근 진행하면 안 되겠나? 임금을 올려주고 우리를 인간답게 대한다는 조건으로 지주들에게 땅을 맡겨보세. 그러면 우리는 차츰 저축해서 땅을 살 수 있고, 그러고 나서 우리가 모두 지주가 되면 자네 말대로 모든 일을 공동으로 할 수 있겠지. 그런 제안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네만.

조르조 : 보세요.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주들이 그들의 땅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땅을 내놓는다면 무력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어요, 아저씨도 저만큼 잘 알고 계시잖아요.

사유재산이 존재하는 한, 땅과 다른 모든 것이 모든 사람의 소유가 아닌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의 소유가 되는 한, 가난이 늘 있을 거고, 실제로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질 겁니다. 사유재산 아래서는 서로 자기 방앗간으로 물을 끌어오려고 하고, 지주들은 노동자들에게 가능한 한 적게 주려 할 뿐만 아니라 늘 서로 싸우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은 서로 자기가 받을 수 있는 최고 가격으로 자기 상품을 팔려고 하고 가능한 한 적은 가격에 구매하려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지주, 제조업자, 대형 상인은 도매로 상품을 생산 및 구매하고, 기계를 공급하고, 유리한 시장 조건을 이용해서 적절한 판매 시기를 기다리거나 심지어 일시적으로 손해를 보고 판매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취약한 소유자들과 상점 주인들을 망하게 만듭니다. 후자는 점차 빈곤에 빠지고 그들 또는 그 아이들은 비정규 노동을 강요받게 됩니다. (이건 우리가 매일 보고 있는 일이죠.) 이런 식으로, 혼자 일하거나 작은 작업장에서 몇몇 장인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힘든 싸움 끝에 가게를 닫고 큰 공장에 일자리를 찾으러 가야 합니다. 세금조차 낼 수 없는 영세 소유주들은 집과 밭을 대지주 등에 팔아야 합니다. 이렇게, 비록 어떤 선량한 고용주가 노동자들의 환경을 개선하기를 원한다고 해도 그는 경쟁으로 인해 파산할 망해버릴 게 분명합니다.

반면 배고픔에 쫓긴 노동자들은 서로 경쟁해야 하고, 노동에 대한 수요보다 더 많은 일손이 있기 때문에(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장들이 자기에게 맞는 인원만을 고용해서) 서로의 입에서 빵을 가로채야 하고, 아저씨가 아무리 적은 돈으로라도 일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늘 더 적은 돈을 위해 기꺼이 일할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진보를 향한 모든 발걸음이 재앙이 됩니다. 새로운 기계가 발명됩니다. 많은 노동자가 즉시 일자리를 잃고 수입을 끊기며 소비할 수 없고, 따라서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일자리를 빼앗습니다. 미국에서는 넓은 땅이 경작되고 많은 곡물이 생산됩니다. 지주들은 미국 사람들이 먹을 것이 충분한지에 상관하지 않고 곡물을 더 높은 가격으로 팔기 위해 곡물을 유럽으로 보냅니다. 여기서 곡물은 덜 비싸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더 나아지기는커녕 더 가난해집니다. 왜냐하면 유럽 지주들은 곡물 가격이 너무 낮아 더 이상 가치가 없기 때문에 땅을 경작하지 않거나 땅이 가장 비옥한 일부에서만 경작하기 때문에 많은 수의 농민들이 일자리를 잃습니다. 빵이 싼 건 사실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빵을 사는 데 필요한 돈을 거의 벌지 못하죠.

베르트 : 아! 이제 알겠네. 지주들이 외국에서 들어오는 곡식을 원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게 하느님의 축복을 거절하는 죄를 지는 것이 아니었군. 지주들이 사람들을 굶기고 싶어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들이 하는 말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군, 그래.

조르조 : 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곡물이 들어오지 않으면 다른 점에서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주들은 외부와의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그들이 원하는 대로 물건을 팔고….

베르트 : 그리고?

조르조 : 고라니요? 저는 이미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공유되어야 한다고요. 그럴수록 우리는 더 잘 살게 될 겁니다. 만약 새로운 기계들이 발명되든 생산량이 증가하든 혹은 더 적은 일을 하든 무엇이든 간에 그건 늘 모든 사람에게 아주 많은 이득을 가져다줍니다. 예를 들어 어떤 마을이 너무 많은 곡물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에게 식량을 일부 보낸다면 우리는 우리가 생산하는 것 중 일부를 그들에게 보낼 겁니다. 그렇게 모두가 이득을 얻게 될 겁니다.

베르트 : 하지만… 우리가 지주들과 물건을 공유한다면? 만약 그들이 토지와 자본을 내놓고 우리가 그 일을 한다면, 우리는 생산물을 공유하게 되겠지.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조르조 : , 아저씨는 기꺼이 공유하겠지만, 아저씨의 고용주는 분명 공유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모든 걸 포기하게 하는 것만큼이나 공유하게 하는 데도 무력 사용이 필요할 거에요. 그렇다면 왜 사안을 대충 처리하고 부정과 기생이 계속되는 걸 허용하며 생산을 방해하는 체제에 만족해야 하는 걸까요?

그러면 다시 묻겠습니다. 몇몇 사람이 노동자가 생산한 것의 절반을 직접 일하지도 않고 가져갈 권리가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이미 말씀드렸듯 생산물 절반이 지주에게 돌아갈 뿐만 아니라, 생산물 전체도 훨씬 열등한 품질로 생산됩니다. 작업이 공동으로 수행되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공동 관심에 따라 일이 진행될 때 얻어질 결과물보다 말이죠. 그건 마치 바위를 움직이려는 것과 같습니다. 1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차례로 시도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고, 다 함께 시도해도 그럴 겁니다. 오히려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노력에 맞서려고 노력할 겁니다. 이와 달리 서너 명의 사람들이 힘을 합쳐 레버와 다른 적절한 도구를 사용하면 쉽게 들어 올릴 수 있습니다. 만약 아저씨 혼자 핀을 만들기 시작한다면, 아저씨가 한 시간 안에 그걸 끝낼 수 있을지 어떻게 알겠어요? 반면 공동으로 일하는 10사람은 하루에 수천 개의 핀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더 많은 기계가 발명됨에 따라 더 많은 작업이 공동으로 수행될 겁니다. 발전은 반가워할 만한 것이죠.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저는 종종 제기되는 이의에 대답하고 싶습니다.

경제학자들(과학의 이름을 빌려 여러 헛소리와 거짓말을 엮어 상류층이 다른 사람의 땀으로 먹고 살 권리가 있다는 걸 증명하는 사람들)과 배불리 먹고 사는 모든 학식 있는 사람들은 흔히 가난은 사장이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이 한정되어 있어 모두에게 돌아가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결국 가난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그에 반항해봐야 소용없다고 하죠. 신부들은 모든 게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며 유순하고 복종하라고 합니다. 경제학자들은 그게 자연의 법칙이라고 말하죠. 하지만 절대 믿지 마세요. 물론 오늘날 공업과 농업이 생산하는 것들이 소수 사람들만이 누리는 좋은 음식과 안락함을 모두에게 제공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장들이 전체의 이익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에게 유리한 시기를 노리고 팔기 좋은 상품만 생산하며 때로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상품을 파괴하는 작금의 체제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부족하다고 말하는 동시에 광활한 땅을 경작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많은 노동자를 실직시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땅이 경작되고 모든 사람이 알려진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일한다고 해도 토지의 생산성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똑같이 가난이 돌아올 거라고 대답합니다. 사람들은 아이를 더 많이 낳겠지만 식량 생산은 고정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인구는 무한히 증가하고 식량 부족이 계속될 거라구요. 그래서 그들은 사회적 병폐에 대한 유일한 치료법은 가난한 사람들이 아이를 갖지 않거나, 적어도 합리적으로 잘 키울 수 있는 몇몇 사람들만 아이를 갖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먼 미래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습니다. 인구 증가가 자발적이든 그렇지 않든 인위적으로 멈출 필요 없이 자연스레 한계에 봉착할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종種 단위의 발달로 인한 지적 능력의 향상, 여성의 해방 및 전반적 복리의 증가로 인해 생식의 필요성이 점차 감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오늘날 실제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고 지금의 빈곤 원인과 관련이 없습니다.

오늘날 가난은 인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조직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갖지 않는다는 치료법은 아무것도 치료하지 못할 겁니다. 우리는 땅이 넓고 인구가 적은 나라에서도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들만큼이나 가난한 이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사적 소유로 인한 그 모든 장애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생산은 인구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빈곤의 심화는 가난한 사람들의 소비와 관한 과잉 생산으로 발생하는 겁니다. 창고에 생산되었지만 구매자를 찾지 못한 상품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실직 상태입니다. 경작지는 곡물이 남아돌아서 황무지로 방치됐습니다. 가격이 떨어져 농작물을 심는 게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한 지주들은 농민들이 일자리를 잃고 배를 주리든 말든 신경 쓰지 않지요.

따라서 우선 우리는 사회 조직을 바꾸고, 모든 땅을 경작하고, 모두의 이익을 위해 생산과 소비를 조직하고, 새로운 방법과 혁신에 자유로운 통치를 맡겨야 하며, 아직 사람이 살지 않는 세상의 모든 거대한 부분을 차지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모든 계획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정말 너무 많은 것처럼 보일 때, 그때에야 비로소 그 순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생식에 제한을 두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런 제한은 다른 사람들의 노동으로 풍요롭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고 제한 없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원하는 제한된 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지켜져야 합니다. 더구나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한 그들은 그들 눈앞에 가난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보일 때에도 상품의 전체적인 부족에 대해 우려할 수 없기 때문에, 즉 사장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하기 때문에 출산에 대한 제한을 가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내일이 불확실하고, 자연히 근시안적이게 되고 무관심합니다. 모든 사람이 식량 부족으로 똑같이 고통받을 때에만 인간의 힘으로는 강제할 수 없는, 자발적으로 부과된 제한이 성공할 수 있겠죠.

어쨌든 다시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생산물 분배 문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저씨는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건가요? 사장들은 그들이 그렇게 남아있는 한, 그들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을 고용하도록 강요받지 않을 겁니다.

참여 또는 메타야쥬metayage[작물 공유 제도(토지 경작 후 지주와 생산물을 나누는 임대, 소작 체제도-역자 주)]라고 불리는 분배 제도는 한때 남유럽 많은 지역에서 농장 노동을 위해 존재했고, 오늘날에도 토스카나와 같은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점차 사라지고 있고, 토스카나에서도 사라질 겁니다. 지주들이 임금노동자를 사용하는 편이 더 이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계, 과학 농업 및 수입과 함께 토지 소유자들이 노동력을 고용하는 것이 필연적인 일이 되었고, 제때 거기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경쟁을 통해 빈곤하게 전락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만약 우리가 현 제도를 계속 사용한다면, 재산은 여전히 소수의 손에만 있을 것이고, 기계와 가속화된 생산 방법의 결과로 노동자는 시궁창에 던져질 겁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몇몇 거대 지주가 생기게 되겠지요. 기계 수리를 위해 일꾼 몇몇을 두게 되고, 그다음에는 집안일을 하는 하인과 경찰이 지주를 방어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대중은 배고픔 때문에 죽거나 자비를 빌며 살아가게 될 거구요. 벌써 보입니다. 소규모 지주는 사라지고, 실업자가 늘어나고, 지주들은 배고픔으로 죽을지도 모르는 모든 이에 대한 두려움이나 연민을 통해 무료 급식소와 다른 자선 사업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과거 수도원 문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지주의 집이나 지방자치단체에 수프 한 접시를 구걸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싶지 않다면, 유일한 방법은 토지와 기계를 점유하고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베르트 : 하지만 만약 정부가 지주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지 말라고 강제하는 새로운 법을 만든다면 어떻겠나?

조르조 : 으로 돌아왔네요. 정부는 지주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들은 결코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을 만들지 않을 겁니다. 만약 가난한 사람들이 지휘권을 가지고 있다면, 왜 반쪽 짜리 일을 하면서 지주들이 우리를 다시 지배할 수 있게끔 내버려 두겠어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가난한 사람들은 반란을 일으키는 잠시 동안은 호통을 치지만 결국 명령을 내리는 건 항상 부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잠시라도 가장 강하게 될 수 있다면 부자들에게서 당장 그 재산을 빼앗아야 할 거고, 그렇게 해서 그들이 예전처럼 상황을 되돌려 놓을 수 없게 해야 합니다.

베르트 : 이제 모든 것을 이해했네. 우리는 좋은 공화국을 만들어야 하지.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일하는 사람은 먹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굶주리게…. 아! 내가 나이가 많아서 미안하네. 이런 멋진 시간들을 보게 될 젊은이들은 참 운이 좋구만.

조르조 : 하세요, 아저씨. 공화국은 사회 혁명을 의미하고, 그래서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사람에게는 아저씨가 옳을 겁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스스로를 나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공화국은 실제로 아저씨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화국은 지금과 같은 정부가 있고, 국왕 대신 그와 같은 권한을 가진 대통령과 장관들이 있을 뿐이에요. 왕이 제거된 뒤에도 정부는 여전히 공화국이라고 불립니다. 종교재판, 고문, 노예제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말이에요! 이탈리아에서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공화국을 원한다면 이런 변화들이 더해져야 할 겁니다. 양원제兩院制 의회 대신 단원제單院制 의회만 있어야 하고, 투표는 돈이 있거나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외에는 별 게 없어요. 군 복무를 중단하고, 세금을 낮추고, 학교를 짓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 같은 나머지 것들은 지주 대리인들의 마음이 내킨다면 모두 지켜질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약에 관해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공화주의자가 필요 없어요. 왜냐하면 후보들은 선거 때에는 온 세상을 다 줄 것처럼 약속하고서는 선출된 후에는 그 주제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 모든 게 공염불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한, 부자들이 항상 지배할 겁니다. 공화국이든 군주제든 사유 재산이 낳는 결과는 항상 같을 거에요. 경쟁은 모든 경제적 관계를 규제하고, 따라서 재산은 소수의 손에 집중되고 기계는 노동자를 대신하며 대중은 우리가 말했듯이 굶주림으로 죽거나 자선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데 그칠 겁니다.

우리는 이제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도 공화국이 있었고 지금도 공화국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국민들의 상황을 개선하지 못했습니다.

베르트 : 이것 참 야단났군! 나는 공화국이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했네!

조르조 : 주의자들은 그렇게 말하고 다니죠. 그들의 주장은 법률을 제정하는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더 나은 의원들을 뽑고, 그러면 모든 것이 정리된다는 겁니다.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수가 많고, 그러니 궁극적으로 그들이 지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릅니다. 가난한 사람들, 정확히는 가난하기 때문에 무지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은 성직자와 사장들이 원하는 대로 투표합니다. 경제적 자립과 자신의 이익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는 한 계속 그렇게 투표할 거에요.

아저씨와 저에게 만약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특별한 행운이 있었고 조금 더 공부할 수 있었다면 우리 자신의 이익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지주들의 복수에 맞설 힘을 가질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계속되는 한 대중은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을 거에요. 네, 투표함 앞에 서는 건 결코 혁명과 같지 않습니다. 혁명에서는 용감하고 지적인 한 사람이 소심한 백 사람 몫을 해내고, 혼자서는 결코 반항할 힘이 없었을 많은 이를 그 뒤로 끌어당기죠. 투표함 앞에서 중요한 건 숫자이고, 그건 성직자, 지주, 정부가 있는 한 그 숫자는 항상 지옥과 낙원을 나누는 성직자들, 기분에 따라 빵을 줬다 뺏는 지주들, 부정을 위해, 또 사람들을 협박하기 위해 경찰을 고용한 정부를 위한 것이 될 겁니다. 그리고 모르세요? 오늘날 대다수 유권자는 가난하지만 투표할 때 무얼 하나요? 그들을 잘 알고 그들의 이익을 지키기를 원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선출하나요?

베르트 : 무슨 소리! 그들은 지주에게 누구에게 투표할지 물어보고 시키는 대로 한다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해고될 걸세.

조르조 : 겠죠? 그렇다면 아저씨는 보통선거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시나요? 사람들은 지주들을 의회에 보낼 거고, 지주들이 거기 도착하면 지금처럼 사람들을 무지하게 놔두고 노예로 만들도록 행동할 거란 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공화국은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정면으로 부술 수 있는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요. 지주들의 재산을 수용하고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주는 겁니다. 사람들이 모든 것이 자기 것이며 스스로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이 땅을 즐기는 방법, 또 땅을 돌보는 법도 알게 될 겁니다.

베르트 : 나도 그렇게 믿네! 하지만 농부들은 공화국을 자네가 말하는 의미로 생각하지 않을 걸세. 사실, 나는 이제 우리가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것이 자네가 아나키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이해했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공화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이름이 무슨 상관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 제대로 되는 것이지.

조르조 : 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위험이 있어요. 만약 사람들이 공화정이 그들에게 좋다고 계속 믿는다면, 더 이상 참을 수 없고 혁명을 시작할 수 없는 날이 왔을 때 공화주의자들은 즉시 공화정을 선포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 의원들을 지명할 수 있다고 말하며 그들을 만족시킬 겁니다. 왜냐하면 곧 모든 것이 통제될 거니까요.

언제나 그렇듯 잘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은 총을 버리고 음악을 즐기며 야단법석을 떨 겁니다. 한편 지주들은 모두 공화당이 될 거고, 사람에게 많은 돈을 마구 써대며 큰 축제를 꾸릴 거에요.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조금 올려주고 권력을 잡을 겁니다. 그런 다음 폭풍이 점차 진정되도록 놔두고 사람들에게 제동을 걸게끔 군대를 준비할 거에요. 사람들은 언젠가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피를 쏟았으며 이전보다 더 가난해졌다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

그러는 대신, 대중이 반란을 일으켜 승리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만큼 우선 기회를 잡으면 코뮌주의를 바로 적용하고 거짓 약속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야 합니다. 집과 땅, 공장을 점유해 직접 재산을 점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화국을 말하는 사람은 누구든 적으로 취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1859년과 1860년에 일어났던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겁니다.

말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 사람들을 항상 속아 넘어가게 하는 것 역시 말입니다!

베르트 : 자네 말이 맞네. 우리는 너무 자주 희생되었지. 이제 눈을 뜰 때가 됐네.

하지만 늘 정부는 필요성할 걸세. 지휘하는 사람 없이 어떻게 잘 해나갈 수 있겠나?

조르조 : 우리가 명령을 받아야 하죠? 왜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일을 처리하지 못할까요?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무지와 악행을 일삼으며 늘 사람들을 배신합니다. 권력은 사람들 머리 꼭대기에 서죠. 우리는 순한 양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지배가 없어져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존엄성과 힘을 깨닫기를 원하고 배우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소수가 내리는 명령은 다른 이들을 복종하도록 가르칩니다. 설령 좋은 정부라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나쁜 정부보다 더 부패하고 약해질 겁니다. 그 어느 때보다 쿠데타가 쉬워질 거고, 성취된 개선 사항들을 부수고 특권과 폭정을 다시 세울 거에요. 사람들이 자유와 자신의 이익을 관리하는 법에 대해 교육받기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 행동하고, 그들이 행하는 좋은 행동과 나쁜 행동에 대한 책임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실수도 많이 하겠지만 잘못한 결과를 이해하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할 거에요. 사람들이 스스로의 능력을 발휘할 때 스스로 입을 피해는 가장 좋은 정부의 그것에 비하면 천분의 일에 불과할 겁니다. 아이가 걷는 법을 배우려면 몇 차례 부딪히거나 넘어지는 걸 겁내지 말고 스스로 걷게 놔둬야 하니까요.

베르트 : 맞네. 하지만 아이가 혼자 걷을 때까지는 이미 다리에 어느 정도의 힘이 있거나 아니면 어머니 품에 머물러야 해.

조르조 : 니다. 하지만 정부는 어머니와 전혀 비슷하지 않고, 결코 국민들을 증진시키고 튼튼하게 하지 못할 겁니다. 사실 사회적 진보는 거의 항상 정부에 맞서면서, 혹은 정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집니다. 후자일 경우 정부는 점점 더 대중의 필요와 의지를 법률로 바꾸어 지배나 독점하려는 마음으로 진보를 깨뜨립니다.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진보되어 있지만, 그들이 어떤 문명 단계에 있든, 심지어 원시적인 상태에 있더라도 사람들은 항상 그들이 만들어낸 어떤 정부보다도 스스로의 이익을 더 잘 깨닫고는 했지요.

아저씨는 정부가 가장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대개 직접, 혹은 위임으로 대부분 돈 많은 사람들로 구성됩니다. 혹 정부가 똑똑한 사람들로 구성된다면 어떨까요? 더 나은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사람들 사이에 머물면 그들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사용할 겁니다. 만약 그들이 정부로 들어간다면 그들은 더 이상 사람들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정치에 의해 만들어진 이익, 즉 사회의 진정한 필요를 바라보기보다는 권력을 잡으려는 욕망에 끌립니다. 그들은 경쟁과 통제의 결여로 부패하고,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에 대해 법으로 지시할 권한을 갖추고 있는 곳들로부터 마음이 어수선해지죠. 가장 훌륭하고 지적인 사람마저 결국 더 높은 무언가를 믿게 되고, 사람들을 착취하고 억압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만큼만 사람들을 돌보는 계급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니 우리가 사는 곳과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작업에서 시작해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다른 모든 곳의 교환할 곳 및 지역과 점차 합의를 이루는 편이 우리 스스로의 이익을 돌본다면 더 낫고 확실할 겁니다. 사람들은 모두 형제이고, 서로를 사랑하고 돕고자 하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베르트 : 그래, 자네가 옳다고 생각되기 시작했네. 하지만 범죄자들, 도둑들, 파괴자들은?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나?

조르조 : 더 이상 가난과 무지가 없게 되면, 그런 모든 불량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일부가 남게 된다 해도, 그게 정부와 경찰을 두어야 할 이유가 될까요? 우리는 다른 이들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을 혼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지금 죄인들과 무고한 사람들에게 그러는 것처럼 그들에게 고문을 가하지는 않을 거에요.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우리에게 어떠한 피해도 입힐 수 없는 위치에 두고, 올바른 길로 되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베르트 : 그렇다면 아나키 사회가 되면 모두가 행복하고 만족하게 되고, 가난, 증오, 질투, 매춘, 전쟁, 불의가 더 이상 없게 된다는 건가?

조르조 : 인간의 행복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모두가 가능한 한 잘 살게 되고 계속해 개선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 개선은 더 이상 오늘날처럼 소수에게만 유리하고 많은 사람에게는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이익이 될 거에요.

베르트 : 나도 그러길 바라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되겠나? 세상이 계속해서 이렇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았으지만 나는 늙었으네. 정의로운 날을 단 하루도 못 본 채 죽고 싶지는 않아.

조르조 : 가 될까요? 제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건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이 눈뜨게 하기 위해 더 많은 일들을 할수록 그건 더 빨리 이루어지겠지요.

이미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사회주의를 설파한 몇몇 사람들은 무지하거나 미쳤거나 악당처럼 여겨졌지만, 오늘날 그 사상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굶주림으로 어쩔 수 없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그들의 아픔이 왜, 어디서 오는지 알지 못하고, 지주들을 위해 서로 죽이거나 해쳤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가 격앙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장들과 정부를 없애고 오직 자기 힘에 의지한다는 마음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마침내 지주들이 흩어져 있는 모든 정당이 똑같이 그들의 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때가 무르익었으니 선전을 실천으로 옮기고, 문제를 이해한 사람들을 가까이 모아야 합니다. 우리는 대중 가운데 타오르는 불을 지피고, 불만과 운동, 반란을 이용해 거센 타격을 가할 겁니다. 우리는 두렵지 않고, 곧 부르주아적 재앙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행복한 삶이 정착되기 시작할 겁니다.

베르트 : 아주 좋네. 그렇지만 속단하지 말도록 하세. 지주들로부터 땅을 빼앗는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경찰과 군인들이 있네. 그리고 생각건대, 나는 그들의 수갑과 칼, 총이 다른 무엇보다도 오로지 지주들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게 두렵네.

조르조 : 도 알고 있습니다, 베르트 아저씨. 경찰과 군대는 사람들을 제압하고 지주들의 평온을 보장하기 위해 거기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총과 대포를 가지고 있는 한 우리가 맨손으로 싸워야 할 이유는 없지요. 우리도 총을 다룰 줄 알고, 예리하고 용감하게 총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화약, 다이너마이트, 모든 폭발물, 선동 선전물, 그리고 만약 정부가 사람들을 노예로 붙잡는다면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쟁취할 수천의 도구들이 있어요. 바리케이드, 지뢰, 폭탄, 화염병은 우리가 군대에 저항할 수단이고, 우리는 그걸 사용하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수와 기도로는 혁명을 할 수는 없다는 걸 모두 잘 알고 있지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절대다수이니 그들이 사회주의의 장점을 이해하고 맛본다면 그들을 그대로 머물게 할 만큼 강력한 힘은 세상에 없을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노동하고 모든 것을 생산하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그들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일을 중단한다면 엄청난 붕괴와 공황이 일어날 거고, 그러면 혁명은 당장 유일한 해결책으로 모습을 드러낼 거에요. 군인들은 대개 가난한 집안 출신들이지만 억지로 형제들을 잡는 돼지나 사형 집행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고 깨닫자마자 처음에는 비밀리에, 그런 다음 공공연하게 공감할 거에요. 또 아저씨는 그들에게 혁명이 언뜻 보이는 것만큼 어렵지 않다고 설득하겠죠.

가장 중요한 건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고, 늘 혁명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끊임없이 혁명을 준비해야 함을 기억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반드시 나타나리라는 걸 의심하지 마세요.

베르트 :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나도 자네가 옳다고 믿네. 하지만 혁명은 소용없는 것이고, 모든 게 저절로 성숙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더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조르조 : 주의가 힘을 얻은 순간부터 부르주아지, 즉 지주들은 정말로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폭풍을 피하고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모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모두가 사회주의자라고 떠들어 댑니다. 심지어 황제들까지도요…. 아저씨는 그들이 어떤 사회주의를 만들어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아아, 부르주아 계급의 아첨에 이끌려 몇몇 반역자들이 우리 동지들 사이에서 나타났는데, 그건 혁명적 대의를 포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에 이끌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합법적인 방법, 선거, 정당들―그들이 그들 동족이라 말하는―과의 동맹을 설파하는 데 노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르주아지 가운데 자리를 잡고 혁명을 원하는 사람들을 미치광이나 그보다 나쁜 사람처럼 대하지요. 많은 사람이 그들 역시 혁명을 원한다고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는커녕… 그들은 국회의원으로 뽑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누군가 아저씨에게 혁명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거나 정당 혹은 지방의원에 투표하거나 부르주아지의 어떤 파벌에 동의하는지 말하거든, 만약 그가 아저씨처럼 노동하는 아저씨의 동지 중 한 명이라면 그의 실수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세요. 반대로 그가 부르주아이거나 부르주아가 되는 길을 찾으려 하는 사람이라면 그를 적으로 여기고 가던 길을 계속 가세요.

어쨌든, 당분간은 이 정도로 충분할 것 같네요.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이야기하지요. 안녕히 계세요.

베르트 : 잘 가게. 내가 많은 걸 이해하도록 도와줘서 기쁘네, 내가 왜 자네가 말해준 것처럼 이전에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안 되는군. 조심히 가게.

베르트 : 잠깐! 여기 온 김에 목이 마르지 않게 술이나 한 잔 하러 가세, 그리고 좀 더 물어볼 게 있네.

자네가 말한 모든 것을 이해하네…. 스스로 생각해보고 더 설득할 수 있도록 노력도 할 거야. 하지만 자네는 논의할 때 내가 흔히 들었던, 이해하지 못해서 혼란스러웠던 어려운 단어들을 거의 쓰지 않았지. 예를 들어, 나는 자네가 코뮌주의자, 사회주의자, 국제주의자internationalist, 집산주의자, 아나키스트 등등이라고 들었네. 그 단어들이 정확히 무얼 의미하는지, 그리고 자네는 진짜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겠나?

조르조 : 맞습니다, 제게 이런 질문을 한 건 잘하신 겁니다. 왜냐하면 단어들은 다른 사람들과 동의하거나 구별하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그것들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큰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니까요.

사회주의자는 빈곤이 모든 사회악의 주원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고, 가난이 파괴되기 전까지는 무지, 노예제, 정치적 불평등, 매춘 또는 사람들을 그렇게 끔찍한 상태로 억압하는 어떤 악도 파괴할 방법이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은 빈곤이 땅과 모든 원자재, 기계, 그리고 모든 작업 도구가 소수 개인들의 것이라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믿지요. 그래서 그 소수가 모든 노동 계급의 삶과 죽음을 규제하고 프롤레타리아와 지속적인 투쟁과 경쟁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끼리 서로 재산을 가로채기도 하죠. 사회주의자들은 개인의 재산, 즉 원인을 철폐함으로써 그 결과인 빈곤이 함께 철폐되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 재산은 철폐될 수 있으며 또 반드시 철폐되어야 하는데, 생산과 분배는 지주들이 자랑하는 특권인 소위 상속이라는 것을 배제한 채 사람들의 이익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들으셨듯이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적 부가 모든 사람을 위해 제공되기를 원하며 더 이상 유산계급이나 프롤레타리아, 부자나 가난한 사람, 고용주나 피고용인이 존재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한때 이것은 유명했던 것이었고, 한 명의 사회주의자보다 오히려 백만 명의 살인자가 더 있기를 바라는 지주들로부터 박해받고 증오받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얘기했듯이 지주들과 그렇게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온갖 박해와 중상모략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가 앞으로 나아가고 사람들이 눈뜨기 시작하는 것을 보자 그들은 사람들을 더 성공적으로 속이기 위해 질문을 혼동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자기도 사회주의자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또한 사람들의 이익을 원했기 때문에, 빈곤을 파괴하거나 줄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했거든요. 먼저 그들은 사회적 문제, 즉 빈곤과 빈곤에서 파생되는 다른 모든 악에 대한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사회주의가 그들을 두렵게 하고 있기에 그들은 사회적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회주의자라고 말합니다. 마치 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병을 연구하는 사람도 의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아저씨는 오늘날 공화주의자, 왕당파, 성직자, 고리대금업자, 판사, 경찰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의 사회주의는 한 마디로, 사람들을 저지하거나 심지어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그들이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게끔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가짜 사회주의자들 가운데는 확실히 자기가 선을 행하고 있다고 믿는 선의를 지닌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만약 자신이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누군가가 아저씨를 때리기 시작하면 아저씨는 우선 그의 손에서 막대기를 뺏어야 할 거고, 그의 선한 의도는 그가 막대기를 빼앗겼을 때 그의 머리가 박살 나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누군가 아저씨에게 자신이 사회주의자라고 말한다면 그에게 재산을 모두와 공유해야 하니 재산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그것을 가져오라고 말해보세요. 대답이 ‘예’라면 그를 형제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다면 조심하세요. 적이 아저씨 앞에 있는 거니까요.

베르트 : 그러니까 자네는 사회주의자구만. 그건 알겠네. 그러면 코뮌주의자나 집산주의자는 무얼 의미하는 건가?

조르조 : 주의자와 집산주의자는 모두 사회주의자들이지만, 재산이 공유된 뒤에 무얼 해야 하는지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억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그걸 이미 말했습니다. 집산주의자들은 모든 노동자, 혹은 더 낫게는 모든 노동자 협회가 노동을 위한 원자재와 도구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각자가 노동의 생산물을 소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은 그것을 사용하거나 간직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일하도록 만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그것으로 합니다. 그런 다음 그들이 죽었을 때 그들이 무언가를 저축해뒀다면 이것은 다시 지역 사회로 돌아갑니다. 그들의 자녀들도 당연히 일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상속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불평등과 특권으로 돌아가는 첫걸음이 될 겁니다. 학습과 어린이, 노인 및 환자의 간호, 도로, 급수, 조명, 공중위생 등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에 관한 한 모든 노동자 협회는 이러한 업무를 수행한 사람들에게 보상하기 위해 많은 것을 제공할 겁니다.

반면에 코뮌주의자들은 더 빠르게 길을 갑니다. 그들은 사람이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한 대가족의 구성원으로 여겨야 하니 재산은 공유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생산적으로 기계로부터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일을 해야 하니까요. 왜냐하면 모든 다양한 토양과 대기 조건으로부터 이익을 얻기 위해서, 각각의 장소들이 그것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생산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고, 다른 나라들과 가장 부유한 장소로 달려가는 사람들 사이의 경쟁과 증오를 피하기 위해서, 전 세계의 사람들 사이에서 ‘완벽한 연대’를 확립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품의 어떤 부분을 누가 만들었는지 구분해내는 것은 나쁜 일일 겁니다. 아저씨가 한 일과 내가 한 일로 몫을 구분하려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대신에 우리 모두 일을 해서 모든 것을 공동으로 하자는 거지요. 그렇게 하면 각자는 모든 사람을 위해 충분히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힘이 닿는 한 사회에 모든 걸 제공할 겁니다. 그런 다음 각자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가져갈 수 있을 거고, 물론 부족한 것들은 서로 자제할 겁니다.

베르트 : 천천히 하세. 먼저 연대라는 말 뜻을 설명해 주게. 자네는 모든 사람 사이에 완벽한 연대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만.

조르조 : 예를 들어, 아저씨네 가족 사이에는 아저씨와 형제들, 아들들이 버는 모든 것을 합치지요. 그런 다음 음식을 사서 함께 먹습니다. 양이 부족하면 다들 조금 덜 먹을 거구요.

이러면 운이 좋거나, 조금 더 벌 수 있으면 모두에게 좋겠지요. 반면 누군가 일자리를 잃어도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만약 누군가 아프면 더 많은 비용이 듭니다. 그래서 가족끼리는 서로의 입에서 빵을 빼앗으려고 하는 대신 서로 도우려고 하지요. 왜냐하면 한 사람의 행복이 모두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고통이 모두의 고통인 것처럼요. 이렇게 하면 증오와 질투는 존재할 수 없고, 이해관계로 갈라진 가족에게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호혜적인 애정이 자라납니다.

이것을 연대라고 부릅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가족일 때 존재하는 관계이고, 모든 사람 사이에 확립되어야 할 것이지요.

베르트 : 이해했네. 이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서, 자네는 코뮌주의자인가, 집산주의자인가?

조르조 : 개인적으로 코뮌주의자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보기에 친구가 되려 할 때, 그걸 반쪽짜리 방법으로 하는 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집산주의는 여전히 경쟁과 증오의 씨앗을 남깁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지요. 각자 자신이 직접 생산한 것을 먹고 살 수 있게 되면 집산주의는 여전히 코뮌주의보다 열등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건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따라서 그들의 힘과 연대를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작동이야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예컨대 구두장이라고 해서 신발을 먹을 수는 없고, 대장장이라고 철을 먹을 수는 없으며, 농부는 기계를 만들기 위해 쇠를 캐는 노동자 없이는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만들거나 땅을 경작할 수도 없기에 여러 생산자 간 교환을 조직하고 각자 한 일을 기억해야 하겠죠. 그래서 구두장이는 신발 한 켤레와 교환하는 데 가능한 한 많은 돈을 요구할 것이고, 농장 노동자는 가능한 한 적게 주려 할 겁니다. 도대체 누가 그걸 납득할 수 있겠어요? 제가 보기에 집산주의는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우리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는 속임수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반면 코뮌주의는 그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요. 모두가 일을 하고, 모두가 모두의 노동으로 이익을 얻습니다. 각자가 만족하고 충분히 생산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기만 하면 됩니다.

베르트 : 그렇다면 코뮌주의에서는 돈이 필요 없겠나?

조르조 : 물론이거니와 그걸 대체할 것도 필요 없을 겁니다. 늘 필요한 수준의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물품과 생산된 물품의 등록부만 있으면 되지요.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게 유일한 어려움이겠지만, 저는 이미 오늘날 심각한 문제인 노동이 어떻게 즐거움이 되고 동시에 도덕적 의무가 될 수 있는지 말씀드렸습니다. 바보 같은 사람들만이 그러기를 거부하겠지요. 그리고 만약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그러니까 우리의 형편없는 교육과 빈곤 때문에 새로운 사회가 제대로 조직되고 새로운 필요에 비례해 생산량이 증가하기 전에 만약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그들이 상황을 어렵게 할 만큼 많이 있다면, 그들에게 스스로 일할 수 있는 재료와 도구를 주면서 공동체 밖으로 쫓아낼 수밖에는 없을 겁니다. 그러면 그들 역시 먹고살고자 하면 일하기 시작하겠지요.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더욱이 우리가 무엇보다 원하는 것은 토지와 함께 원자재, 작업 도구, 집, 그리고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부와 함께 토지를 공유하는 겁니다. 그때 그 조직과 생산의 분배에 관한 것들에 있어 사람들은 스스로 원하는 걸 하겠지요. 실제로 무언가를 하기 시작할 때에야 비로소 가장 좋은 방법이 발견됩니다. 코뮌주의가 한 곳에서 확립되면 다른 곳에서도 분명 확립될 겁니다. 그러면 점차 모두가 가장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체제를 받아들이겠지요.

중요한 건,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토지와 생산도구를 다루는 것에 대해 명령하지 않는다는 것임을 기억하세요. 이런 일이 일어나면 무기를 들고서라도 조심하고 막아야 할 겁니다. 나머지는 저절로 흘러갈 거에요.

베르트 : 이것들도 이해했네. 이제 말해보게나, 아나키란 무언가?

조르조 : 키는 정부가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정부는 지주들을 보호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우리 이익에 관한 한 가장 좋은 것은 아무도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고 우리가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죠? 우리를 억압하는 법률을 만드는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을 선출하는 대신, 우리는 우리 일들을 스스로 돌보고 그것들을 어떻게 할지 결정할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누군가에게 계획을 맡겨야 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행동하라고 미리 말할 겁니다. 우리에게 아직 생소한 문제라면 우리는 그 일을 잘 알고, 연구하고, 제안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맡기는 거지요.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결정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겁니다. 따라서 우리 대표들은 우리가 우리에게 명령할 권리를 준 누군가가 아니라 발생할 수 있는 각각의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가장 유능한 사람들 가운데서 선택되겠지요. 그들에게 지휘권은 없고, 그저 모두가 원하는 것을 수행할 직무만이 있을 겁니다. 예컨대 누군가 학교를 조직하거나, 도로를 구획하거나, 생산물을 교환하는 일을 하게 될 텐데, 그건 구두장이에게 신발 한 켤레를 맡기는 것과 같은 방식인 거지요.

이게 아나키입니다. 이외에도 모든 걸 설명하고자 한다면 제가 여태 다른 것들에 대해 한 만큼 이야기를 해야할 거에요.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길게 이야기하지요.

베르트 : 괜찮네, 다만 그동안 내게 좀 설명해 주게. 자네가 원하는 건 뭔가? 이제서야 궁금해지는구만.

나처럼 무지한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정치라 부르는 모든 걸 이해하고, 장관들이나 국회의원들이 하는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건지 좀 설명해 주게.

조르조 : 데 장관, 국회의원들이 뭘 그렇게 잘해서 못 할까 걱정해야 하나요? 그들은 법을 만들고, 사람들을 억압하기 위한 세력을 조직하고, 사장들이 행하는 착취를 보장합니다. 그게 다에요. 그런 걸 하는 데 학문은 필요 없습니다.

장관과 국회의원들이 좋고 필요한 다른 일도 하는 건 사실이지요. 하지만 축복받은 계층의 이익을 위해 그걸 관리하거나 쓸모없고 억압적인 규율로 일의 진행을 방해하는 일에 관여하는 건 실제적인 노동을 하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 양반님들은 철도 사업에 간섭하지만, 철도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데 주주들이 필요하지 않듯이 그들도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기술자, 정비공, 노동자, 그리고 여러 종류의 기술이 필요한 것의 전부고, 장관, 국회의원, 그리고 다른 기생충들이 완전히 사라진대도 항상 그곳에 있을 겁니다.

우편, 전화, 해운, 공공 교육, 병원도 마찬가지에요. 이것들은 우체국 직원, 선원, 학교 교사, 의사 같은 여러 종류의 노동자들에 의해 수행되며, 정부는 방해하고, 부수고, 착취하기 위해 개입합니다.

정부 사람들이 의도하고 수행하는 정치는 우리에게 어려운 예술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노동자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관심이 있고, 사람들의 진정한 이익과 아무 관련 없는, 단지 속이고 지배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가능한 최선의 방법으로 사람들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문제였다면 의원들의 상황은 우리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겁니다.

사실 늘 의회 안에만 있는 의원들이 전국의 모든 도시와 마을에 필요한 것에 대해서 무언가 알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거나 더 쓸데없는 일로 계속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교환의 필요성을 이해하기를 어떻게 기대하겠어요? 만약 각자 자신이 알고 있는 것, 각자 느끼고 공유할 필요를 생각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겁니다.

혁명이 달성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작업을 해야 하겠지요. 사람들은 공동체별로 나뉘고, 각 공동체에는 연대와 선전의 자극을 통해 즉시 협회로 구성될 다양한 거래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누가 아저씨보다 아저씨의 코뮌과 아저씨 거래를 통한 이익에 대해 더 잘 알겠어요?

한 개 이상의 코뮌 또는 거래가 합의에 도달하는 일이 문제가 될 경우, 각 대표는 상대측 회의에 가서 다양한 요구와 필요를 조화시키려고 노력할 겁니다. 그 결과에 대한 심의는 구성원의 이익이 묻힐 위험이 없는 방식으로 늘 권한을 위임한 사람들의 통제와 승인을 받을 거구요.

이렇게 해서 점차 우리는 인류 전체의 합의로 나아가게 될 겁니다.

베르트 : 하지만 마을이나 협회에서 사람들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사안을 보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겠나? 가장 수가 많은 쪽이 이기게 되지 않을까?

조르조 :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실과 정의에 관한 문제에서 숫자는 중요하지 않고, 종종 한 사람이 백 명이나 십만 명을 상대로도 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겁니다. 모든 건 만장일치에 도달하기 위해 행해지고, 이것이 불가능할 때, 사람들은 투표를 해서 다수가 원하는 것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기반으로 하는 평등과 정의의 원칙을 침범할 수 없다는 걸 존중해 중재자 역할을 할 제삼자의 손에 결정을 맡기겠지요.

하지만 투표나 중재자가 없이는 합의할 수 없는 문제란 실제로는 거의 없고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각자가 자기 영역과 협회를 선택하듯이 더 이상 오늘날처럼 이해관계로 분열되지 않을 거에요. 다시 말해 그들은 가장 잘 지낼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을 선택하고, 이는 언제나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상시 변하는 의견의 영역이 아닌 과학의 긍정적 영역에 속하는 명백한 것 가운데서 선택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더 나아갈수록 투표는 쓸모없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겠지요. 사실 투표는 꽤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경험을 통해 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이 발견되었을 때, 모두의 요구를 가장 잘 충족할 해결책이 발견되었을 때, 그건 수적 다수로 반대 의견을 분쇄하는 게 아니라 증명을 통해 설득하는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만약 농부들이 씨앗을 뿌리기 가장 좋은 계절을 투표하자고 요구받는다면 그들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것을 하자고 하니 웃어 버리지 않을까요?

공공 및 민간 공익사업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겁니다.

베르트 : 하지만 그럼에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모두의 이익을 위해 내린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쩌겠나?

조르조 : 다면 당연히 강제적인 조치가 필요하겠지요.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일이 부당하다고 해서 그 반대가 일어나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소수가 반란을 일으킬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다수도 방어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를 좋아하실지 모르겠지만, 억압해야 하겠지요.

사람들은 어디서나 그리고 모든 면에서 원자재와 노동 도구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지기에 늘 다른 이들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일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게 만족스러운 해결책이 아닌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반동적인 이들로부터 고립된 개인이나 집단은 얻을 수 없었던 많은 사회적 이점들을 빼앗아야 하는데, 이는 큰 집단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뭘 바라시나요? 반동적인 이들조차도 다수의 뜻이 소수의 뜻에 희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못할 겁니다.

저를 믿으세요. 연대, 형제애, 사랑을 넘어서, 상호부조를 넘어서, 그리고 필요에 따른 상호 관용 너머에는 폭정과 내전 밖에는 없습니다. 폭정과 내전은 모두에게 피해를 주기에 사람들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게 되자마자 우리의 이상만이 실현되는, 그걸 통해 평화, 행복 및 보편적인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연대로 나아가리라는 확신을 가지세요.

또한 진보를 향한 발걸음은 사람들을 단결하게끔 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람들이 더 독립적이고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하는 경향도 있다는 데 주목하세요. 예를 들어 오늘날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서는 철도를 이용해야 합니다. 이를 구축하고 기능하도록 하려면 많은 사람이 모여야만 하고, 심지어 아나키적인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많은 이들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통신망, 시간표 및 다른 규칙에 적응할 의무가 있지요. 만약 내일 누군가 혼자서 길에서 스스로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위험하지 않게 운전할 수 있는 기관차를 발명해낸다면 더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쓸 필요가 없을 테고,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어디든 여행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 혹은 앞으로 할 수 있는 수없이 많은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보를 향한 발걸음의 경향은 도덕적 연대, 물질적 독립이라는 공식으로 정의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베르트 : 좋네. 그래서 자네는 사회주의자이고 사회주의자 가운데서도 코뮌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로구만. 그럼 왜 또 자네를 국제주의자라고 부르는 겐가?

조르조 : 주의자들은 국제주의자라고도 불렸는데, 근대 사회주의의 첫 표출이 《인터내셔널The International》이라고 간략하게 부르기도 하는 《국제노동자협회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였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전 세계 노동자 단결을 목표로 1864년 시작된 이 협회는 처음에는 매우 불확실한 계획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정립 과정에서 그것은 다양한 분파로 나뉘었고 그것의 가장 앞선 분파는 제가 아저씨에게 설명하려고 했던 아나키즘적 사회주의의 원칙을 공식화하고 주장하기까지 했습니다.

현재 이 협회는 죽어 있는데, 한편으로는 박해받고 추방당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부 분열 및 현장과 대조되는 의견들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로부터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노동자 운동과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회주의 정당 및 부르주아 세계에 치명타를 가하기 위해 조직된 《국제 사회주의 아나키즘 혁명당International socialist anarchist revolutionary party》이 탄생했지요.

이 당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아나키즘적 사회주의의 원칙을 전파하고, 사장이나 정부의 자발적 양보 또는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개혁 같은 모든 헛된 희망에 맞서 싸우며, 대중에게 그들의 권리와 반란 정신에 대한 인식을 다시 일깨우고, 그들이 사회 혁명을 일으키도록 촉구하는 것을, 그러니까 정치권력, 즉 정부의 파괴와 현존하는 모든 부를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 계획을 받아들이고 수행하기 위해 맞서 싸우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여기 속하지요. 이 당은 어떤 종류의 지도자나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고, 같은 목적을 위한 투사들 간의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합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모두는 스스로 잘 맞는다고 생각이 드는 이들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자기가 선호하는 수단을 실천하고, 자신의 특수한 사상을 전파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지닙니다. 그가 당의 전반적인 전술에 위배되지 않는 한, 어떤 경우에도 그는 당의 일원으로 여겨지지요.

베르트 : 그럼 사회주의적-아나키즘적-혁명주의적 원칙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두 이 당의 일원인가?

조르조 : 니다, 어떤 이는 우리 계획에 완전히 동의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어떠한 이유로든 계획을 받아들이는 대다수 사람과 연대 및 효과적인 협력의 유대를 맺지 않고 혼자서 혹은 소수의 동지와 함께 투쟁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지요. 이 역시 몇몇 이들과 달성하고자 하는 특정 즉각적 목적을 위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일반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습니다. 고립은 약점을 낳고 형제애와 합의가 필요한 곳에 반감과 경쟁심을 일으키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우리는 항상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쟁취하려는 사상을 위해 싸우는 모두를 친구이자 동지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상이 진실됨을 확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확장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고 집에 머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생각을 지녔기에, 사상적으로는 사회주의자나 아나키스트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신념이 약하고 무기력한 영혼을 가지고 있음이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신과 동료들을 괴롭히는 끔찍한 병폐를 보고 이런 악을 끝낼 수 있는 치료법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면, 마음이라는 게 있다면, 어떻게 활동하지 않고 가만 있을 수 있겠어요?

진실에 무지한 사람은 죄가 없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도 모르는 척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실로 죄가 있는 사람이지요.

베르트 : 자네 말이 맞아, 그리고 자네가 말한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확신이 들면 나도 당에 가입해 이 거룩한 진실을 전파하고 싶네. 그때 지주들이 나를 악당이나 범죄자라고 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와서 나처럼 일하고 고생한 다음에나 말할 권리가 있다고 하겠어. </play><play> 윌리엄 : 아, 잭, 자네 맞지? 만나서 반갑네. 자네와 몇 마디 나누기 위해서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네. 오, 잭! 잭! 내가 자네에 대해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자네가 시골에 살 때는 착한 아이였지. 동갑내기 젊은이들에게 아주 좋은 본보기였지. 가여운 자네 부친이 아직 살아만 계셨더라면...

잭 : 윌리엄, 어째서 제게 그런 식으로 말하시는 건가요? 제가 아저씨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 나무라시나요? 그리고 왜 제 가여운 아버지께서 제게 실망하셨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윌리엄 : 내 말을 듣고 마음 상하지 말게나, 잭. 나는 늙은이이고 자네를 위해서 말하는 것이라네. 게다가 난 자네 아버지 앤드류와 어찌나 좋은 친구였는지 자네가 잘못된 길로 방황하는 것을 보니 자네가 마치 내 아들인마냥 화가 나. 특히 자네 아버지가 자네에게 기대하던 바와 자네에게 좋은 앞날을 남기려고 했던 희생들을 생각하면 말이야.

잭 : 하지만 윌리엄,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정직한 일꾼이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저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고, 장담하건대 저는 항상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니 어째서 제 아버지께서 저를 부끄러워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저는 최선을 다해서 배우고 발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 어머니와 저는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악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를 이렇게 다그치십니까?

윌리엄 : 아, 바로 그걸세! 나는 자네가 열심히 일하고 이웃을 돕는다는 것을 충분히 잘 알고 있네. 자네는 좋은 사람일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자네를 칭찬하네. 하지만 그럼에도 자네는 여러 번 투옥됐어. 사람들은 자네가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다고, 자네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하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자네를 위할 뿐이고 망설임 없이 자네에게 말을 할 걸세. 잭, 이 노인의 조언을 듣게. 정치는 아무 할 일도 없는 이들에게 양보하고 자네는 일에 집중하고 옳은 일은 하는 데에만 집중하라는 내 말을 새겨들어야 하네. 그것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과 마음을 잃게 될 걸세. 내 말 듣고 나쁜 친구를 버리시게. 모두가 알다시피, 그런 친구들이 자네 같은 불쌍한 젊은이를 그릇된 길로 이끄는 게 아닌가.

잭 : 윌리엄, 제 동료는 뛰어난 동료들입니다. 정말로요. 그들이 먹는 빵은 땀으로, 그리고 가끔은 그들의 눈물에 젖어있어요. 지배자들이나 그들을 헐뜯죠. 우리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빨아들이려 하고, 우리가 유복해져서 그들의 횡포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우리를 불한당이나 죄수로 취급하는 그 지배자들 말입니다. 제 동료들과 제가 투옥된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정당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우리는 다시 들어갈 것이고, 어쩌면 더 나쁜 일이 우리에게 닥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불의와 고통을 파괴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처럼 평생을 일하고 배고픔에 시달리는 윌리엄 당신 같은 사람,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때 죽을 자리를 찾아 구빈원에 들어가게 될 당신 같은 사람은, 최소한 상류층과 국가의 편에 서서는 안 됩니다. 가난한 자들의 삶을 개선하려는 사람들을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윌리엄 : 친애하는 잭, 세상이 아주 안 좋게 돌아가는 건 알지만, 그런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건 안짱다리를 가진 개의 다리를 곧게 펴려는 것과 같네. 그러니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것을 받아들이고, 최소한 빵 한 조각이 결코 부족하지 않도록 하느님께 기도하세.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존재했고, 노동을 위해 태어난 우리는 일해야 하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것에 만족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공공의 평화를 어지럽히고 우리의 사명을 해칠 것이야.

잭 : 우리의 사명이라고요! 아저씨가 신사라 부르는 이들을 보세요. 우선, 그들은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고, 그들은 우리의 이마의 땀으로 사치스럽고 게으르게 살고 있으면서 우리에게는 짐승처럼 일하지 않고는 빵 한 조각도 벌 수 없게 합니다. 그런 다음, 만약 우리가 우리의 희생으로 그들의 배를 불린다는 사실에 흔쾌히 복종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나쁘고 정직하지 못한 놈이라 부르고, 경찰은 우리를 감옥으로, 성직자는 우리를 지옥으로 보냅니다. 들어보세요, 윌리엄. 진짜 악당이며 나쁜 놈들은 다른 사람들을 억압함으로써 살아가는 놈들입니다. 그들은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을 손에 넣었고, 노동자들을 착취합니다. 노동자들은 마치 양떼처럼 털을 깎이고 도살까지 당하죠. 그럼에도 주변인의 생명력을 갉아먹은 적 없는 아저씨는 이런 짓을 일삼는 자들의 편에 서서 저희를 핍박한다고요? 정부가 그들의 편에 서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정부는 부자의 이익을 위해 부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의 편에 서게 마련이지만, 노동자, 우리의 친형제가 단지 우리가 빵과 자유를 갖기를 원한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등을 돌려야 할까요? 아! 만약 제가 가난한 이들을 오랫동안 눌러왔던 비참함, 노예 상태, 그리고 모욕적인 관습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저는 가장 나쁜 사람, 즉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적게 가진 자는 스스로를 인류의 억압자의 도구로 만든 가난한 자라고 말했을 겁니다. 최소한 저희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현실을 만들기 위해 저희가 가진 약간의 빵과 자유를 잃을 위험을 감수합니다.

윌리엄 : 음, 듣기에는 좋은 소리구만.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좋은 일은 있을 수 없으며,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뜻에 복종해야 하네.

잭 : 이런, 윌리엄, 우리가 이치에 맞는 말을 하려고 한다면, 신은 논외입니다. 신의 이름은 동료를 속이고 억압하려는 모든 이들의 구실과 명분으로 쓰입니다. 왕은 신이 자신에게 통치할 권리를 준 척하고, 두 왕이 하나의 나라의 왕위를 다툴 때, 그들은 둘 다 신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떠벌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가장 많은 병사나 가장 좋은 무기를 가진 자에게 승리를 쥐여 줍니다. 가진 자, 착취자, 독점자는 모두 신을 이야기합니다.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 터키의 신부들은 모두 신의 사도를 자칭합니다. 그리고 신의 이름으로 그들은 서로 전쟁을 하고 각자 자신의 방앗간으로 곡식을 가져오려고 합니다. 그들은 모두 신이 자기들에게 모든 것을 주었고, 남은 우리에게는 불행과 고된 노동을 선고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번 삶과 다음 삶에도 낙원을 가지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생에 지옥을 갖고 현생을 순종하는 노예로 보내야만 다음 생에 낙원을 가질 것이라 합니다. 그래놓고 아저씨는 제게 신이 바로 그렇게 의도하셨고 그것이 신의 참뜻이라고 하시면, 저는 그 신이 매우 악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지 않아야 하지만 각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세상이 돌아가는 바를 논할 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충실하여, 우리와 우리 동료들을 위해 이 삶에서 작은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성직자 자신이 모든 이는 신의 자녀이며 그러므로 형제라고 말하는 건 아저씨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윌리엄 : 잭, 도시에서 글을 배우고 나서부터 변호사까지 곤혹스럽게 할 만한 말투를 갖게 됐군. 하지만 이제 말해보게. 정녕 그들이 말하는 대로, 재산을 가진 모든 이들을 약탈하려 한다는 말이 사실인가?

잭 : 좋아요! 드디어 요점에 도달했군요. 아뇨,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우린 아무것도 훔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대중이 부자의 재산을 가져가서 모두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둑질이 아니라, 그저 대중이 자신의 것을 다시 가져가는 것입니다.

윌리엄 : 뭐라고! 그 신사들의 재산이 우리 것이라는 말인가?

잭 : 물론이죠. 우리 재산입니다. 모두의 재산입니다. 누가 그것을 부자에게 주었습니까? 그들은 어떻게 그것을 얻었을까요? 그들은 무슨 권리로 그것을 장악하고 유지합니까?

윌리엄 : 하지만 그것은 그의 조상이 남긴 것이네.

잭 : 그리고 그 조상에게는 누가 줬죠? 들어보세요. 가장 강하고 운이 좋은 사람들이 그들의 힘이나 행운을 이용하여 모든 것을 차지했고, 그들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일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과 동시대의 사람들 대부분을 억압하고 굶기며 혼자 게으름 피우며 사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의 아들과 손자에게 약탈한 부를 남겨줬습니다. 그렇게 다음 세대를 그들의 자손의 노예가 되는 운명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 자손들이 나태와 오랜 권력 행사로 인해 너무 쇠약해져서, 조상이 오래전에 했던 일을 오늘날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음에도 불구하고요. 이 모든 것이 아저씨에게는 정당해 보이나요?

윌리엄 : 무력으로 부를 얻은 것이라면 그렇지 않지. 하지만 상류층은 자신의 노동으로 재산을 얻었다고 말하지. 나는 어떤 사람이 일해 번 것을 빼앗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네.

잭 : 언제나 같은 이야기죠! 일하지 않고 일한 적이 없는 사람이 한결같이 ‘노동의 이름으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누구의 노동으로 지구와 철과, 석탄과 돌을 만들어집니까? 아니면 어떻게 이런 것들이 존재하게 됐습니까? 우리 모두 이 세상에 왔을 때 발견했고,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것들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만약 부자가 자기만을 위해 공기를 독점한 뒤, 우리에게는 가장 더러운 공기를 조금밖에 주지 않으면서, 그마저 우리의 노동을 지불한 뒤 사용하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지구와 공기의 유일한 차이점은 그들이 지구를 손에 쥐고 나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공기로는 그리 할 수 없었지만, 만약 가능했다면, 그들은 땅을 다루는 것처럼 공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할 겁니다. 제 말을 믿으세요.

윌리엄 : 맞네. 지당하네. 땅을 비롯한 모든 것은 누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니 모두의 것이어야 하네. 하지만 저절로 생겨나지 않은 것도 있지.

잭 : 그렇죠, 사람이 일해서 만든 것도 있고, 사람이 손으로 개간하지 않으면 땅 자체가 거의 가치가 없겠죠. 하지만 공정성을 따지자면, 이런 것들은 그것들을 생산하는 이들의 것이어야 합니다. 도대체 무슨 기적에 의해 그것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의 소유가 된 걸까요?

윌리엄 : 하지만 상류층은 그들의 아버지들이 일했고 저축했다고 말하네.

잭 : 반대로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들이 다른 사람들을 일하게 만들었다고 자백해야 합니다. 오늘날 그렇듯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요. 역사는 우리에게 노동자의 운명은 계속해서 비참했고 이웃을 착취하지 않고 정직하게 노력한 사람은 결코 유의미한 저축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일반적으로 그런 사람은 자신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할 만큼 충분히 벌지 못했습니다. 눈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세요. 노동자가 생산하는 모든 것이 주인의 손에 넘어가지 않습니까? 한 사람이 개발되지 않은 늪지대를 단 몇 파운드에 사들인 뒤 사람을 구해 그곳을 경작하게 하고, 그들에게 간신히 먹고살 만큼밖에 주지 않는 반면, 본인은 가만히 도시를 벗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몇 년 후, 이 황무지는 원래 가치의 백배인 정원이 됩니다. 소유주의 자식은 이 재산을 물려받고선, 자기 아버지의 노력의 성과를 누리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정작 거기에서 정말 고생하고 고통 받은 자들의 자식은 계속해서 고생하고 고통 받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윌리엄 : 하지만 자네 말 대로 세상이 정말로 항상 그랬다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고용주라고 다른 수가 있는 건 아니네.

잭 : 저는 모든 걸 상류층에게 이로운 사실이 되도록 이해할 준비가 됐습니다. 재산을 소유하는 모든 이는 전부 일하고 저축한 자의 자식이고, 노동자는 모두 게으름뱅이의 자식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이것은 분명히 말도 안 되는 가정이라는 점을 아저씨도 이해하시겠죠. 하지만 실제로 그랬다 해도, 현재의 사회 구조는 정의로울까요? 만일 아저씨가 일하고 저는 게으른 개라면, 제가 게으름 때문에 벌을 받는 건 마땅합니다. 그러나 정직한 일꾼일 수도 있는 제 자식이, 아저씨의 자식을 게으름과 풍족함 속에 살게 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윌리엄 : 훌륭한 논리라는 점을 난 부정하지 않네. 하지만 재산을 가진 자는 상류층이고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해야 하네. 왜냐하면 그들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네.

잭 : 그들이 부를 가지고 있다면, 이는 그들이 부를 힘으로 취하고 다른 사람의 노동의 열매를 착취함으로써 부를 불려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를 취한 방법으로 또한 부를 잃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서로 싸워 왔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입에서 빵을 빼앗으려고 했고, 각자 자기 동료를 복속시켜서 짐승으로 삼는 것을 행복이라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상황에 끝을 낼 때가 도래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싸워서 얻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다툼으로 얻은 유일한 수확은 가난, 노예, 범죄, 매춘, 그리고 때때로 전쟁과 혁명이라고 불리는 피 보는 것들뿐이었습니다. 대신에 우리가 서로 합의하고, 사랑하고, 도울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악행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많이 가진 자와 아무것도 없는 자는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가능한 모든 사람들이 잘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지배하는 것과 일하지 않고 사는 것에 익숙한 부자는 구조의 변화를 위한 외침을 귀담아듣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 알맞게 대처할 것입니다. 만약 부자가 사람들 사이에 증오와 불평등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모두가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보다 좋은 건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그가 자기와 자기 아버지의 폭력과 도둑질로 얻은 열매를 계속 누릴 권리를 계속해서 주장한다면, 그는 최악의 선택을 내린 것입니다. 부자가 가진 것은 무력으로 가져간 것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무력으로 찾아올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이 합의점에 도달한다면, 그들은 부자보다 강력합니다.

윌리엄 : 하지만 상류층 없이 우린 어떻게 살란 말인가? 누가 우리에게 일감을 준다는 말인가?

잭 : 이런 질문이라뇨! 매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계시잖아요. 땅을 파고,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아저씨가. 옥수수를 타곡하고, 가축에게 먹이를 주고, 더 맛있는 치즈를 만드는 아저씨 본인이 제게 어떻게 우리가 상류층 없이 살 수 있느냐 물어보십니까? 그럴 바엔, 차라리 상류층이 그에게 옷을 입혀주고 밥도 먹여주기 위해 도시와 촌에서 노역하는 불쌍한 우리 노동자 없이 어떻게 살 것인지 물어보시죠. 방금 아저씨는 우리를 살 수 있게 해주는 고용주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저씨는 남 덕에 사는 것은 정작 그들이라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그들이 먹는 모든 빵은 아저씨 자녀의 빵을 빼앗은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의 아내에게 주는 모든 선물은 아저씨의 가난, 빈곤, 추위, 심지어는 아저씨 자녀의 매춘을 뜻한다는 사실을요? 그들이 무엇을 만듭니까? 아무것도요. 그러므로 그들이 소비하는 것은 노동자로부터 빼앗은 것입니다. 모든 농민이 내일 사라진다고 가정합시다. 땅을 갈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고, 모두가 굶어 죽을 것입니다. 제화공이 사라지면 신발도 없어지고, 석공이 사라지면 집을 지을 사람도 없어집니다. 만약 각 종류의 노동자가 사라진다면, 차례대로 각 생산 부문은 사라질 것이고 우리는 유용하거나 필요한 것 없이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상류층을 없애면 무슨 해악이 있겠습니까! 그건 메뚜기 떼가 사라지는 것과 같을 겁니다.

윌리엄 : 그래, 바로 우리가 모든 것을 생산하지. 하지만 예를 들어서 내가 땅도 가축도 씨앗도 없다면 어떻게 옥수수 농사를 지을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는 고용주에게 의지하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다고 확신하네.

잭 : 제발, 윌리엄, 우리 서로 말이 통하고 있는 게 맞습니까? 우리가 일하고 살기 위해 우리는 지배자로부터 빼앗아야 한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땅, 도구, 씨앗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요. 저는 지배자가 노동의 땅과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한, 노동자는 항상 복종해야 하며 노예 상태와 가난 외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부르주아의 재산을 빼앗는 것이 최우선이 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지 않고선 세상은 결코 회복될 수 없습니다.

윌리엄 : 자네가 말했지, 자네가 옳다고.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내게는 너무나 새로워 좀 혼란스럽네. 그러니 자네가 어떻게 할 것인지 한 번 설명해보게. 부자들에게서 뺏은 재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역시, 분배해야겠지?

잭 : 아뇨, 아닙니다. 그런 건 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재산을 나눠 가지고 지금의 소유자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저씨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거나 악당이라고 믿으셔도 좋습니다.

윌리엄 : 그럴 경우 전혀 이해가 안 되는군.

잭 : 충분히 자명합니다. 우리는 단지 모든 것을 공통으로 하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일해야 하고 모두가 가능한 한 잘 살아야 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합니다. 일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이 세상에서 살 수 없습니다. 스스로 일하지 않으면 다른 이의 노동에 의해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부당하고 해롭습니다. 하지만 물론, 아저씨는 제가 ‘모두가 일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일하는 것이 가능한 모든 이들을 말한다는 점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불구자, 환자 그리고 노인들은 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 감정은 그 누구도 고통받게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 모두 늙고, 언제든 불구가 되거나 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도 그렇죠. 자 이제 잘 생각해보면, 모든 부는, 그러니까 인간에게 유용한 모든 것은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땅, 기계를 비롯하여 철, 나무, 돌, 이동 수단 등을 포함한 모든 노동수단입니다. 이는 우리가 일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공동의 것이어야 합니다. 노동의 방법은 나중에 다루죠. 저는 공동으로 일하는 것이 최선이라 믿습니다. 그렇게 하면 더 적은 피로감으로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직종에서 각자 개별로 일해야만 했다면, 우리는 인간의 노동을 크게 단순화하고 줄여주는 기계를 사용하는 것을 포기해야 했을 겁니다. 나아가, 인간이 서로의 입에서 빵을 빼앗을 필요가 없을 때, 그들은 고양이나 개처럼 되지 않고 함께 있는 것에 기쁨을 느낄 것입니다. 물론 혼자 일하기로 선택한 이는 그렇게 하도록 둘 것입니다. 핵심은 그 누구도 일하지 않고, 그래서 다른 이들이 그를 위해 일하도록 강요당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각자가 일을 할 환경이 갖춰진 상황이라면 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당연히 남의 종이 되는 것을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의 종류의 다른 하나는 인간의 욕구를 직접적으로 충족시키는 것들입니다. 예컨대 의식주 말입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공동으로 소유되고 분배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다음 추수 때까지, 그리고 산업이 새로운 생산물을 공급할 때까지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죠. 프롤레타리아를 굶겨 먹고 사는 게으른 고용주가 없을 혁명 이후에 생산될 것들에 대해서는, 각국의 노동자가 서로 동의한 대로 나눌 것입니다. 그들이 공동으로 일하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두고자 한다면, 그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그 경우에 그들은 생산이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키도록, 그리고 소비가 모두에게 가장 큰 행복을 보장하도록 (생산과 소비를) 규제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각자가 생산에의 기여를 계산해서 그와 동등한 양을 가져가야 합니다. 이 계산은 다소 어렵고, 저는 개인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이렇게 시작한 이들도 비례분배의 어려움을 느끼고 모든 것을 공동의 것으로 만드는 주장에 더 우호적이게 될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빵, 집, 물과 같은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한 사람의 노동량과는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위해 보장돼야 합니다. 어떤 방법이 채택되든, 누구는 부자로, 누구는 굶주리는 가난뱅이로 태어나게 하는 재산의 상속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각자가 자기가 생산한 것의 절대적인 주인으로 인정받고 본인 명의의 저축을 허용하더라도, 그렇게 축적된 부는 그가 사망한 즉시 공동체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이들은 최고의 성장과 배움을 보장받도록 모두의 노력으로 양육되고 교육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정의도 평등도 있을 수 없고, 생산수단에 대한 각각의 권리의 원칙도 침해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땅과 기계를 주고는 그것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조건-즉, 교육-을 마련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성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성은 남성과 동등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성별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을 일컫는 것입니다.

윌리엄 : 다만 문제가 하나 있네. 가난한 사람을 약탈하고 굶주리게 한 부자의 재산을 빼앗는 건 아무렴, 좋네. 하지만 열심히 일하고 저축한 이가 작은 밭을 사거나 작은 가게를 열려고 돈을 모았다면, 자네는 무슨 권리로 그에게서 그의 노동의 결실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

잭 : 자본가와 정부가 생산물을 쓸어가는 요즘에는 흔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쨌든, 저는 아저씨에게 사람 각자가 자재와 노동수단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따라서, 자기가 직접 경작하는 약간의 땅이 있다면 그는 그대로 간섭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최고의 도구와 거름 그리고 생산량을 최대한 증폭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받을 것입니다. 당연히 모든 것을 공동의 것으로 하는 게 가장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 서로 비슷한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은 코뮌주의 체계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강요를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공동 재산과 노동 덕분에 모든 게 잘 풀릴 것입니다. 또한,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편리하기 때문에 지금보다도 더 많은 부와 일이 생길 것입니다.

윌리엄 : 기계일세! 우리는 바로 기계를 불태워야 하네! 바로 기계가 우리 팔을 부러뜨리고 우리의 빵을 빼앗네. 이곳 시골에 기계가 오면, 임금이 내려가고, 우리 중 일부는 일을 잃고 다른 곳으로 가야만 할 것이라 장담하지. 도시에서는 더 심할 것일세. 만약 기계가 없다면 상류층은 우리의 노동력을 더 필요로 해서 우리는 조금 더 잘 살았을 것일세.

잭 : 윌리엄, 기계가 가난과 실업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건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건 기계가 부자의 소유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만약 기계가 노동자의 소유였다면, 현실은 그 반대였겠죠. 기계는 인간 일반을 편안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결국 기계는 우리 대신에, 우리보다 더 빨리 일을 하니까요. 기계 덕분에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일해야 할 필요가 없고,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고통스러운 일로 벌 받지 않을 것입니다. 기계가 모든 생산 과정에 도입됐고 모두의 소유였다면 단 몇 시간의 쉽고 간단한 일만으로 모든 소비를 충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각 노동자는 지식을 쌓고 인간관계를 가꿀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과학과 문명의 산물을 즐기며 행복한 삶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기억하세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아저씨는 소유주가 기계를 파괴하려는 사람으로부터 기계를 보호하는 만큼, 기계를 차지하려는 사람으로부터도 기계를 보호하려 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 것입니다. 따라서 두 경우 모두 똑같은 노력을 하고 똑같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기계를 빼앗기보다 부수는 것은 완전히 어리석은 일이라는 겁니다. 옥수수와 호스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면 아저씨는 그것들을 파괴하겠습니까? 당연히 아니죠! 자, 우리는 기계도 똑같이 대해야 합니다. 만약 기계가 고용주의 손에 있다면 우리의 가난과 노예 상태에 도움이 될 것이고, 우리의 손에 있다면 부와 자유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윌리엄 : 하지만 그러한 체제가 돌아가려면 모든 사람이 기꺼이 일해야 하지.

잭 : 물론이죠.

윌리엄 : 그리고 일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고생은 개도 싫어하네.

잭 : 아저씨는 오늘날 사회와 혁명 이후의 사회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개도 힘든 일을 즐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낼 수 있습니까?

윌리엄 : 나 말인가? 아니, 나는 일에 익숙하네. 할 일이 없을 때 내 손은 뭐라도 하고 싶어 근질거리지. 하지만 하루 종일 주점에서 카드놀이를 하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빈둥거리는 이들도 있네.

잭 : 오늘날은 그렇겠지만, 혁명 이후에는 다를 겁니다. 그 이유를 설명드리죠. 오늘날 노동은 불쾌하고, 보수가 적으며, 업신여겨집니다. 오늘날 노동자는 거의 죽기 직전이거나 반쯤 굶어 죽을 지경인데, 그는 짐승 취급받습니다. 노동자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는 십중팔구 구빈원에서 일생을 마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계속되는 학대와 굴욕에 시달리면서 자기 삶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가족을 돌볼 수 없습니다. 반면에 일하지 않는 자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편하게 지냅니다.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보고 존경합니다. 모든 즐거움은 그의 몫입니다. 노동자 사이에서도, 가장 편한 일을 가장 적게 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벌고, 다른 이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여겨집니다. 사람들이 일에 넌더리가 나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열망하는 것이 놀라운 일인가요? 하지만 노동이 인간에게 적합한 환경에서, 적당한 시간 동안, 건강을 존중하는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노동자가 자기 가족과 모든 인간의 안녕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존중받고 싶은 자는 반드시 노동자가 돼야 하고 게으른 자는 오늘날의 간첩이나 매춘부만큼이나 멸시를 받는다면. 그렇다면 과연 누가 쓸모 있고 사랑받는 것을 저버리고 몸과 마음에 파괴적인 나태에서 살고 싶겠습니까? 심지어 몇몇 드문 예외를 제외한 오늘날에도, 모든 사람은 본능적으로 간첩이나 매춘부가 되는 가능성을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땅을 가꿔서 일하는 것보다 이러한 비열한 소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습니다. 일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국가의 보호도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직업은 가증스럽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이들은 그런 일을 추구하는 불명예보다는 가난을 선호합니다. 예외는 있습니다. 악함을 선호하는 나약하고 타락한 괴물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악명과 빈곤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을 함으로써 편안함과 대중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데, 누가 악명 높고 비열한 삶을 선택하겠습니까? 확실히 그런 자는 미친 사람 일 겁니다. 그리고 그 게으름뱅이는 공개적인 비난을 받으리라 의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은 본질적으로 사회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게으름뱅이는 공동체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일에 기여하지 않으며, 타인의 생산에 의존해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질서의 조화를 깨뜨리고 과거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불만 가득한 집단의 요소가 될 것입니다.

집단은 개인과 같습니다. 집단은 자기 자신과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사용하는 것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또한 자기에게 해를 끼치거나 해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증오하고 경멸합니다. 집단은 속아 넘어갈 수도 있고, 너무 자주 속아 넘어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의 경우에는 그 어떠한 오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을 하지 않고 타인을 희생시켜 먹고 마시는 사람이 나머지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대낮처럼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한번, 아저씨가 어느 집단과 모든 일을 함께 하고, 생산물을 나눠 갖는다고 가정합시다. 물론 아저씨는 약하거나 숙련되지 않은 동료를 배려하시겠죠. 하지만 게으름뱅이의 경우 그는 스스로 집단을 떠나거나 벗어났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의 어깨를 보태 힘을 더하는 쪽으로 삶을 바꾸지 않겠습니까? 공동체 일부 구성원의 게으름이 공동체에 심각한 위험이 될 경우 일어날 일입니다. 일하지 않는 자 때문에 나머지가 일을 할 수 없다면 -물론 그렇게 될 가능성은 낮아보이지만- 그들은 단순히 공동체에서 추방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원자재와 노동수단 말고는 그 어떤 것에 대한 권리가 없기 때문에, 살고 싶다면 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윌리엄 :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네, 자네. 그럼 말해보게, 모두가 밭에서 일해야 하나?

잭 : 왜 그래야 하죠? 사람들은 빵과 맥주와 고기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집, 옷, 책, 그리고 모든 직종의 노동자가 생산하는 모든 것을 원합니다. 누구도 혼자서 자신의 모든 필요를 충족할 수 없습니다. 땅을 갈기 위해서라도, 저희는 대장장이와 도구 제작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나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철을 파내는 광부, 집과 가게를 짓는 석공 등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나요? 그러므로 결론은 모두가 땅을 일궈야 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직종의 다양성은 각자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을 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렇게 노동은 운동이며 간절히 원하는 즐길 거리가 될 것입니다.

윌리엄 : 그럼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직종을 고를 수 있는 것인가?

잭 : 물론이죠. 다만, 일부 직종이 일손난에 시달리는 가운데 다른 직종은 일손이 넘쳐나서는 안 되겠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할 것이니, 저희는 정말로 필요한 모든 것이 생산됨과 동시에 개인의 바람이 충족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목적이 불분명한 일을 빵 껍데기만을 주며 강제하는 주인이 없을 때, 그것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윌리엄 : 그렇게 현실이 될 것이라 말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네. 나는 그 누구도 불쾌한 일을 하려들지 않으리라 생각하네. 나는 모두 변호사나 의사가 될 것이라 보네. 누가 밭을 일구겠는가? 누가 목숨과 건강을 걸고 광산으로 내려가겠는가? 누가 어두컴컴한 하수구로 내려가 청소하겠는가?

잭 : 변호사는 논외로 두시죠. 변호사와 성직자는 사회의 고름 정도에 지나지 않고 혁명이 이를 치유할 것입니다. 이웃을 희생해 진행되는 직업 말고 쓸모있는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자고요. 그렇지 않으면 부지런한 도둑도 노동자가 됩니다. 오늘날 저희는 어느 직종을 다른 직종보다 선호합니다. 그건 우리의 취향과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취득하기 더 쉽거나, 소득이 더 좋거나, 그러길 바라거나 또는 그 직종에서의 취업이 가장 잘 보장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다른 일보다 더 불쾌한지는 이런 점을 고려한 다음에나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어느 한 사람의 직종 선택은 태생이나, 운이나 사회적 선입견에 의해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농사꾼의 일은 가장 가난한 도시민조차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농사 자체에는 불쾌한 요소가 없습니다. 그리고 밭도 밭만의 묘미가 있죠.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문학을 읽으면 농촌 생활에 매우 긍정적인 시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책을 쓰는 시인은 밭을 갈아본 적도 없다는 거죠. 농민은 반 굶어가며 일하고,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아무 존중도 받지 못해 도시의 가장 불행한 사람마저 그와 자리를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데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아저씨는 어째서 누가 농민이 되길 바라십니까? 촌에서 태어난 저희도 최대한 빨리 그곳을 벗어나려 합니다. 왜냐하면 어디서 뭘 하든 이곳보다는 나을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희가 원하는 대로, 안식을 취하면서 자유롭고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다면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농촌을 벗어나겠습니까? 다른 직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더 어렵고 더 필요한 일일수록 보수가 더 적고, 더 멸시받고 더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서 행해져야만 하죠. 예를 들어, 금세공인을 방문하면 그가 일하는 곳은, 저희가 노동하는 이 망할 곳보다 깨끗하고, 환기가 잘 되고, 노동시간이 길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생산하는 것의 대부분을 고용주가 취해 임금이 좋지 못하더라도, 다른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그는 오후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는 작업복을 벗고 원하는 곳을 눈치 보지 않고 찾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칼장수를 방문한다면, 그는 작업장에서 형편없는 임금을 받으며 몇 년 있으면 삶을 끝내버릴 유독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일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일을 마치고 그가 신사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면, 그는 망신당하지 않으면 운이 좋은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누구든 금세공이 되는 것을 칼장수가 되는 것보다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펜 말고 다른 도구는 사용하지도 않는 노동자의 경우는 따질 필요도 없고요. 생각해보세요. 질 낮은 기사를 쓰는 사람이 농사꾼보다 임금을 열 배는 더 많이 받고 더 존중받습니다. 기자, 엔지니어, 의사, 예술가, 교수는 자신의 일을 잘 하는 것으로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식자공, 벽돌공, 수선공 등의 온갖 노동자와 심지어 일부 교사와 정신노동자는 굶으며 혹사당하며 일합니다. 저는 자연을 정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문명인이 되고, 더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의사와 엔지니어와 화학자와 교사는 모두 농사꾼과 육체노동자만큼 현대 사회에 있어 중요합니다. 저는 단지 모든 필요한 노동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 노동자가 일을 함에 있어 동등한 만족감을 얻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그 자체로 큰 기쁨이 되고 무식한 자를 억누를 수 있는 거대한 우월함을 부여하는 지적 노동은, 일부의 손이 아닌 모두의 손에 닿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윌리엄 : 하지만, 자네가 말하는 바와 같이 지적 노동이 큰 기쁨이고 그것을 행하는 자에게 무식한 자 위에 설 수 있는 거대한 우월함을 부여한다면 모두가 지적 노동을 하고 싶지 않을까? 나 또한 다른 누구만큼이나 그렇고. 그렇다면 누가 육체노동을 할 것이란 말인가?

잭 : 모두가 해야 합니다. 문학과 과학을 공부함과 동시에 육체노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머리와 손을 사용하며 일해야 할 것입니다. 이 두 종류의 노동은, 서로를 방해하기 보다는 서로를 보강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모든 기관을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뇌만큼이나 근육 역시 인간의 기관이죠. 지성이 발달했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육체노동을 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건강한 사람은, 육신을 건강하게 단련하는 사람만큼 머리가 깨어있고 밝은 상태에 있습니다. 나아가 두 종류의 노동 모두 필수적인 만큼, 그리고 지적 노동이 육체노동보다 쾌적하고 인간의 자의식을 일깨워 스스로의 존엄성을 깨닫게 만드는 만큼, 인류의 일부는 과도한 육체노동의 형벌에 처하고 그렇지 않은 소수는 권력을 의미하는 과학의 특권을 누린다는 것은 정의롭지 않습니다. 따라서 다시 말하겠습니다. 모두가 육체노동과 지적 노동을 해야 합니다.

윌리엄 : 그건 나도 이해할 수 있네. 하지만 쉬운 육체노동과 어려운 육체노동이 있네. 어떤 것은 아름답고, 어떤 것은 끔찍하네. 자 그럼, 누가 광부가 되고 또는 누가 청소부가 되겠는가?

잭 : 아저씨, 어떤 발명과 연구가 매일 진행되는지 알기만 했다면, 육체노동이 그것을 불쾌하고 해롭고 힘들게 만드는 조건 없이 행해질 수 있으리란 사실을 알 것입니다. 단지 스스로 일하지 않아서 노동자의 편의를 생각하지 않는 자에 의해 노동의 과정이 조직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발적으로 어떤 일을 하기로 선택한 노동자들이 기꺼이 그 일을 할 겁니다.

이것이 당장 오늘 가능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모두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연구와 노력은 노동을 덜 힘들고 더 즐겁게 만드는데 집중될 것입니다. 그래도 힘든 작업에 대해서는 일부 특별한 이득을 부여해서 불평등을 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사람들이 공공을 위해, 공동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면, 가족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형제애와 동의의 마음이 그들 가운데 솟아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만을 위한 길을 찾지 않고 오히려 가장 힘든 일을 대신해서 하려 할 것입니다.

윌리엄 : 그래, 그렇다 치지. 하지만 그리 되지 않는다면?

잭 : 물론,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자진해서 하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 남을 수 있습니다. 그 경우, 우리 모두가 각자 조금씩 분담하여 그것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하루나 일 년에 일주일을 맡는 그런 식으로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그것을 행할 방법은 반드시 찾아질 것입니다.

윌리엄 : 그래, 듣고 나니 설득되는 것 같네. 하지만 아직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네. 상류층의 재산을 빼앗는 것은 큰일 같네. 나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방법으로는 할 수 없는가?

잭 :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부자가 남아있는 한 그들은 독불장군처럼 우리의 이익은 고려하지도 않고 자신만을 챙길 것입니다. 애초부터 그래왔듯이요. 하지만 왜 상류층의 재산을 빼앗기를 주저하시나요? 그게 불공평하고 그릇된 일이라 생각하시기 때문일까요?

윌리엄 : 아니, 그렇지 않네. 자네 말을 듣고 나니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 것은 매우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되네. 그들이 먹어 치우고 있는 우리들 몸을 되찾아오는 것이니. 그리고 우리는 그 부를 우리 자신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서 찾아오는 것 아닌가?

잭 : 정확합니다. 그리고 문제를 좀 더 자세히 바라보면 부자에게도 득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부리고, 거드름과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그만둬야 할 것입니다. 그는 일을 해야 할 것이지만, 노동자와 힘을 합해 일을 한다면 그것은 유용할 뿐만 아니라 유쾌한 것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부자는 사냥을 가지 않나요? 말을 타거나, 체조를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운동을 해 육체적 활동은 배불리 먹은 건강한 인간에게 필요하고 즐거운 활동이라는 사실을 보이지 않나요? 단순히 유흥을 위해 사용하던 힘을 생산을 위해 사용하는 것 말고는 그의 삶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건강으로 인한 얼마나 많은 이점이 있는데요! 우리 눈으로 보는 것들을 예로 듭시다. 일부 부자는 자기 집에서 영주 놀이를 할 수 있지만, 길거리는 우리에게처럼 그에게도 끔찍하고 더럽습니다. 빈민가에서 피어나는 안 좋은 공기는 우리 모두를 병들게 합니다. 그들의 사유재산으로는 온 나라를 개선할 수 없지만,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간단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가난은 그의 삶에 끊임없는 위협이고 그에게 수 만 가지 방법으로 간접적으로 작용합니다. 난폭한 혁명의 위협을 제외하고도요. 그러니 부자의 재산을 빼앗는 것은 그에게 오직 이롭기만 한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는 이 사실을 이해하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죠. 왜냐하면 그는 명령을 내리기를 즐기고 가난한 자가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을 즐기니까요. 하지만 중요한가요? 그가 우리와 타협을 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최악의 상황만이 기다립니다. 그가 협조하도록 강요하는 방법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윌리엄 : 그래, 좋아. 하지만 그걸 조금씩 조금씩, 상호 합의로 할 수는 없는 건가? 재산은 가진 자들에게 남겨주되, 임금을 올리고 우리를 인간처럼 대한다는 조건으로 말이야. 그런 다음, 점진적으로 우리도 무언가를 축적하고 우리도 작은 땅을 사고 유산자가 된다면 모든 것을 공동으로 두는 거야, 자네 말 대로 말이지. 이런 말을 하는 다른 젊은이가 있던 것 같은데.

잭 : 잘 들으세요! 우호적인 방법으로 일을 푸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유산 계급이 자신의 재산을 자의로 돌려놓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저씨도 알다시피,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무 쓸모도 없죠. 사유재산이 존재하는 한, 그러니까 땅이 모두의 것이 아닌 ‘베드로’나 ‘바울로’의 것인 한, 가난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고 모든 것은 안 좋아지기만 할 것입니다. 사유재산 아래서는 언제나 모두 각자의 방앗간에서 일하려고만 합니다. 유산 계급은 노동자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만을 주려고 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각자 자신의 생산물을 최고가로 팔려고 하고, 각 구매자는 또 한편으로 최소한의 값에 사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대규모로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는 지주와 생산자와 거대 상인은 기계를 마련하고, 시장이 이로울 때를 이용하고, 판매하기 위한 최적의 때를 기다리거나 때때론 손해를 보면서도 매물을 내놓습니다. 그렇게 작은 규모의 소유주와 소상인은 가난해져 그들과 그 자식들은 일급을 받으며 일하러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입니다. 그렇게 매일 우리가 보듯이, 혼자서 또는 적은 수의 장인과 일하는 자는 잠깐의 경쟁 후 장사를 접고 공장으로 일하러 가게 됩니다. 농사를 위한 충분한 자본을 구하지 못하고 십일조와 세금마저 낼 수 없는 소농은 대지주에게 토지와 집을 팔아야 합니다. 마음씨 착한 고용주가 진정으로 자기 노동자를 위했다면, 그는 단순히 경쟁으로 인해 망하는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배고픔은 노동자들을 서로 경쟁하는 쪽으로 몹니다. 그리고 항상 일에 필요한 것보다 많은 일손이 존재하다 보니, 그들은 항상 서로의 입에서 빵을 빼앗고 있죠. 이는 해야 하는 일이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특정 순간에 그 일을 함으로써 고용주에게 득이 되는 일이 얼마 없다는 것이죠. 이 상황 덕분에 진보는 불행이 됩니다. 기계가 발명되는 즉시 몇몇 사람들이 일자리에서 해고됩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벌지 못하고 예전처럼 소비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다른 노동자의 돈벌이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치죠. 미국에서는 방대한 양의 땅덩이가 경작되고 많은 양의 곡물이 생산됩니다. 당연히 지주는 미국에 있는 모두가 먹을 것이 충분한지 묻지 않고 그 곡식을 이곳으로 보내 이득을 봅니다. 이곳의 곡물 가격은 낮지만 가난한 자는 그 이득을 취하지 못합니다. 낮은 가격과 경쟁할 수 없는 유럽의 지주는 가장 생산적인 토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경작하지 않고 그러면 다수의 농민이 일을 잃게 되니까요. 단 한 푼도 없는 사람에게 값싼 빵은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윌리엄 : 아, 이제야 이해했네! 해외에서 곡물이 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들었네. 우리나라로 음식이 못 들어오도록 막는 건 악질이고 상류층과 농부가 서로 짜고 인민을 굶기려 한다 생각했네. 하지만 이제서야 그들은 그들만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해했네.

잭 : 아뇨, 아닙니다. 곡물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다른 관점에서 매우 안 좋은 일입니다. 외부로의 경쟁에 대한 압박이 없다면 지주와 농부는 자신들이 원하는 값에 팔았을 것이고….

윌리엄 :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잭 : 해야 할 일이요?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모든 것을 공동으로 둬야 합니다. 그렇게 돼야 생산물이 많을수록 좋을 것입니다.

윌리엄 : 하지만 이제 말해보게. 재산의 주인과 이런 계약을 세우면 어떨지. 그들은 토지와 자본을 제공하고 우리는 노동을 제공하는 것으로 말일세. 생산물은 그들과 우리들이 함께 나눠 갖는 걸세. 이건 어떻게 생각하나?

잭 : 우선, 아저씨가 나눠 가지려 한다고 해도 십중팔구 아저씨의 주인은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계약을 유산자에게 강요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경우, 왜 절반으로만 만족하나요? 왜 부당함과 기생을 계속적으로 허용하고 생산의 증가를 제시할 뿐인 체계로 만족하나요? 일하지 않는 자가 노동자가 생산한 것의 절반을 가져갈 수 있는 무슨 권리가 있나요? 또한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고용주가 생산량의 절반을 가져갈 뿐만 아니라 생산 총량이 실제 가능한 최대치에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유재산과 고립된 노동이 있는 곳에서는 공동 생산되는 곳보다 적게 생산되니까요. 바위를 움직일 때 따로 혼자서 시도하는 백 명의 일꾼은 성공하지 못하지만, 힘을 합친 두세 명은 바위를 간단히 들어 올릴 수 있는 것처럼요. 누군가 핀을 만들고 싶을 때 저는 그가 핀을 한 시간 안에 만들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협동하는 열 명은 하루에 수천 개의 핀을 만들 수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계급적 편견에 경도된 경제학자들 다수는 빈곤이 상류층이 재산을 장악한 결과가 아니라 자원의 희소성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해왔습니다. 그들이 말하길, 이 희소성에 의해 자원이 모든 인간에게 분배되기에 부족할 것이랍니다. 이는 경제학자와 그 추종자들이 빈곤은 그 어떠한 대책으로도 막을 수 없는 불가피한 것이라 결론지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단 한마디도 믿지 마십쇼. 오늘날의 사회 구조에서도 땅과 산업의 산물은 모든 이가 편히 지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합니다. 충분하지 않다면 이는 고용주의 탓입니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벌 수 있는지 외에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상품을 파괴하거나 썩게 둡니다. 그는 자원이 충분하지 않은 척하면서 심지어는 더 많은 양의 땅을 경작하지 않은 채 두고 여러 노동자를 할 일 없이 둡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도 일부 경제학 학파는 모든 토지가 가장 영리한 방법으로 경작되더라도, 대지의 생산력은 한정적이라고 말합니다. 인구는 제한없이 증가하고요. 그래서 식량생산은 항상 고정적인 반면 인구는 끊임없이 증가하여 어느 순간 기아가 발생할 거라는 거죠. 이 학파가 결론 내리길, 사회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가난한 자가 적은 수의 자식을 갖는 것입니다. 제가 임대법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 학파의 제안은 우리 사회악의 치료제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구성을 바꾸고 모든 땅을 경작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나 인구가 지나치게 빨리 증가하고 있다 여겨지면 어떻게 조정할지 의논할 수 있습니다.

자, 유산자와 무산자 사이의 생산물 공유에 대한 논의로 돌아갑시다. 이런 공유제도가 프랑스 일부 농경지역에 존재했었다고 하더군요. 토스카나Tuscany에서는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지만 점차 없어지고 있습니다. 지주가 일급을 지급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더 이득이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기계와 과학적 문화와 수입 곡물 때문에 오늘날 주인들은 대규모 농작을 해야 하고 임금노동자를 사용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죠. 이 체제가 계속된다면, 재산은 더 적은 수의 사람의 손에 들어갈 것이고 노동자는 기계와 빠른 생산 속도에 의해 완전히 비참한 상태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주인이랄 수 있는 소수의 금융가와 자본가, 기계를 다루는 일부 노동자, 그리고 앞서 말한 거인들을 섬기고 방어하는 다수의 하인과 경찰을 갖게 될 겁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굶어 죽거나 구호로 연명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이미 볼 수 있죠. 작은 토지는 사라지고 있고 실업자 수는 증가합니다. 상류층은, 두려움에서인지 연민에서인지, 무료 급식소를 차리고 구세군the schemes of General Booth을 운영하는 데 열심입니다. 사람들은 과거 수도원 앞에서 했던 것처럼 부유한 자선가나 지역 위원회에 빵을 구걸하는 상태로 전락하기 싫다면, 하루빨리 토지와 기계를 쟁취하고 자신들이 계획한 대로 일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윌리엄 : 하지만 정부가 부자에게 강요해 가난한 이가 굶지 않게 한다면 어떻겠나?

잭 : 진부한 얘기입니다, 윌리엄! 정부도 상류층으로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률을 만들까요? 가난한 자가 정부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해도, 부자가 다시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수단을 남겨둘 이유가 됩니까? 장담하건대,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다면 가난한 자는 어떤 돌발적인 사건을 통해 순간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부자가 반드시 권력을 쥐게 됩니다. 바로 이 이유에서, 우리가 단 한 순간이라도 우위를 잡게 된다면, 우리는 부자로부터 재산을 빼앗아야 합니다. 그래야 부자가 원상 복귀할 수단이 없게 할 수 있습니다.

윌리엄 : 이해했네. 우리는 진정한 공화국이 필요하네. 모든 이를 동등하게 만들고, 일하는 자는 밥을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는 굶는 것이네. 바보 같은 이 늙은이를 용서하게. 자네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네.

잭 : 자, 자, 아저씨! “공화국”이라면 아저씨는 당연히 “사회 혁명”을 일컫는 것이고 아저씨를 이해하는 자에게는 아무 문제 없겠죠. 하지만 이건 서툰 표현입니다. 보통 “공화국”이라 불리는 것은 아저씨가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공화정은 다른 모든 정부와 다를 것 없는 정부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단지 왕 대신 그와 같은 권력을 쥔 대통령과 장관이 있을 뿐이죠. 해협 너머의 상황에서 잘 볼 수 있죠. 그리고 설령 프랑스인들이 그 급진파가 약속한 것과 같은 민주공화국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들은 더 잘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두 개의 의회 대신 국민의회 하나만 갖게 되겠지만, 의원 양반들의 달콤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인민은 여전히 군인이 되고 노예처럼 일하게 되지 않습니까?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는 한, 부자는 항상 우위를 쥐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공화국 아래 살건 왕정 아래 살건 사유재산으로부터 나오는 결과는 항상 똑같이 존재할 것입니다. 경제 관계가 경쟁의 통제하에 있는 한, 재산은 소수의 손안에 있을 것이고 기계는 노동자로부터 일을 뺏을 것이고 대중은 빈곤에 빠질 것입니다. 존재하는 공화국 중 하나라도 노동계층의 삶을 정말로 개선했습니까?

윌리엄 : 정말 그렇군, 그래! 난 항상 공화정은 평등을 뜻한다 생각했건만!

잭 : 네, 공화주의자는 그렇게 말하죠. 그들이 말하기를, “진정으로 민주주의적인 공화국 아래에서 법을 만드는 의원은 전체 인민에 의해 선출됩니다. 결과적으로 인민이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의원을 더 좋은 의원으로 바꾸고 모든 것은 해결됩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가 대다수이기에,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는 바로 그들입니다.” 공화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상당히 다르죠. 가난한 자의 빈곤은 그를 무지하고 미신적인 상태로 만듭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자신에게 진짜로 이로운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한, 그는 그 상태 그대로 남을 것입니다. 아저씨와 저는 남보다 좀 더 벌 수 있을 만큼 운이 좋았고 조금이나마 공부할 수 있어 우리에게 이로운 것을 이해하는 지력과 고용주의 복수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현상이 유지되는 한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혁명 중에는 한 명의 용감한 자가 여러 겁먹은 자들만큼의 역할을 해내고, 혼자서는 절대로 봉기할 기운이 없는 이들을 끌어들입니다. 하지만 투표함 앞에서는 인격과 기운은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단순히 숫자만이 중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재의 상태에서 이 수는 매일 빵을 먹을 수 있고 마음대로 그 빵을 나누거나 숨길 수 있는 자에게로 갑니다. 눈치채지 못하셨나요? 오늘날 대부분 유권자는 가난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기들을 대표하고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기 계층의 사람을 뽑는 걸 얼마나 자주 보셨습니까?

윌리엄 : 그래, 대부분은 지주나 목사나 고용주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 들지 않지. 그랬다면, 그들은 아마 해고되거나 집에서 쫓겨났을 거야.

잭 : 보통선거권에 기대하는 희망적인 전망과 반대의 상황 아닙니까? 사람들은 반드시 중산층의 사람을 의회로 보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의원은 항상 인민을 최대한 종속시키고 순종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아무리 가난한 자들이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노동자를 의회에 보내도, 그렇게 부패한 곳에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시도를 한 소수는 그 어떤 국가에서도 그 수가 그렇게 의미 있지 않았습니다. 다음 혁명이 오면, 인민은 민주주의자와 공화주의자에 의해 항상 그래왔듯 기만당해선 안 됩니다. 사람들은 공화국이 가능한 최고의 조직이며 그들의 상태를 놀랍도록 개선할 것이라 믿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에 언제나 공화국을 약속받는 순간 무기를 내렸습니다. 다음 시기에 인민은 빈말에 만족하지 말아야 하고, 단호하게 재산을 쟁취해야 합니다.

윌리엄 : 맞는 말이네. 우리는 너무 많이 기만당했네. 이제 눈을 뜰 때가 됐네. 하지만 언제나 정부는 필요하네. 명령을 내릴 사람이 없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간단 말인가?

잭 : 왜 명령을 받아야 하는 건가요? 왜 우리 일을 우리가 스스로 관리할 수 없나요? 지배하는 자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인민을 배신합니다. 권력은 가장 선한 사람마저 자만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두머리를 거부해야 하는 주요한 이유입니다. 인간은 양 떼처럼 끌려다니기를 멈춰야 합니다.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존엄성과 힘을 자각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교육받고, 자유와 자기 일에 책임지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인민은 자기 자신을 위해 행동하고 그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내버려져야 합니다. 자주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겠지만, 그 결과를 직접 겪고, 자기가 실수를 했고 다른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간섭받지 않는 인민이 자기 자신에게 입힐 수 있는 해는 최고의 정부가 입힐 해의 만분의 일만큼도 안 될 것입니다. 아이가 걷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넘어질 가능성을 두려워 말고 혼자 걷게 내버려둬야 합니다.

윌리엄 : 그래 맞네. 하지만 아이가 걷기 전에는 다리에 조금이라도 힘이 있어야 하네. 힘이 하나도 없다면 어미의 품에 안겨야 하네.

잭 : 맞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전혀 어머니와 같지 않습니다. 한 나라를 개선하고 개발하는 건 정부가 아닙니다. 실제로, 사회의 진보는 거의 항상 정부의 반대 세력에 의해서나 정부와 무관하게 이뤄집니다. 정부가 하는 일은 대중이 필요하고 바라기 시작한 것을 법의 형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마저 지배와 독점으로 망치고 말죠. 인민은 서로 다른 진보의 단계에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문명의 단계에서든, 심지어 야만의 상태에서도 인민은 자기 가운데 생겨난 정부 없이 자기 일을 더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한, 아저씨는 가장 영리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로 이뤄진 정부를 선호하십니다. 그런 건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정부는 가장 돈이 많은 자들로 직접적으로 이뤄지거나 그들의 이해를 대변합니다. 그리고 권력의 행사는 가장 선한 영혼도 타락시킵니다. 지금까지 최고의 인품을 가진 자가 정부에 들어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시죠. 그는 더 이상 인민의 필요를 이해하지 못하고, 정치가 낳은 이해관계에 시간을 허비하고, 사회적 평등에 대한 시각의 부재로 타락하고, 듣지도 못한 것에 대한 법을 만들기 위해 자기가 진정으로 유능한 행동 영역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다른 존재보다 우월하다 믿게 되고, 인민을 감시하고 좌절시키는 것 외에는 돌아보지 않는 계층을 만듭니다. 다른 직종과 지역의 노동자와 합의를 통해 노동자의 일은 노동자가 직접 관리하는 것이 더욱, 아니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영국과 유럽을 넘어서 전 세계와 그렇게 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서로 형제이고 서로를 돕는데 관심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윌리엄 : 그래,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사악한 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도둑과 강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잭 : 우선, 사유재산과 무지가 더 이상 없을 때 우리는 그런 류의 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걱정이 남았다고 가정해도, 그 걱정이 정부와 경찰을 갖는 이유가 될까요? 우리 스스로가 도둑과 강도를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없나요? 오늘날처럼 결백한 자와 죄가 있는 자 모두를 학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없게 한 뒤, 최선을 다해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겁니다.

윌리엄 : 그럼 우리가 “사회주의”를 얻게 된다면, 모두가 행복하고 만족할 것이며, 사악함과 혐오와 질투와 매춘과 전쟁과 부당함이 없을 것이라는 말인가?

잭 : 인류가 얼마나 안녕할지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단 나아질 것이라는 건 압니다. 아시다시피, 인간은 개선을 추구할 것이고 그렇게 이뤄진 진보는 일부가 아닌 모두를 위하게 될 것입니다.

윌리엄 : 하지만 이 모든 게 언제 일어날 것이란 말인가? 난 늙었고 세상이 지금 이 상태로 영원히 있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난 지금, 정의의 날을 보지 못하고 죽고 싶진 않네.

잭 : 언제 일어날 것이냐고요? 모르겠습니다. 저희 손에 달렸죠.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할수록 변화는 더 빨리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미리 말해둬야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미 좋은 진보가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사회주의”를 설교하는 이는 극히 소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보, 미치광이 또는 방화범으로 몰렸습니다. 오늘날에는 이 사상을 이해하는 자는 많습니다. 과거의 가난한 자는 침묵 속에 고통받거나 배고픔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의 비극의 원인이나 해결책에 대해 알지도 못한 채 말입니다. 그렇게 학살당하거나 서로를 학살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전 세계에서 공통된 이해관계를 가지고 고용주와 정부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생각으로 소란과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들은 자신의 힘 말고는 의지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그들의 고용주들이 속해 있는 모든 정당이 똑같이 자신들의 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지금이 우리의 생각을 퍼뜨려야 할 시기적절한 때입니다. 문제를 이해하는 모든 이가 더 가까이 연합해야 합니다. 들끓고 있는 대중을 선동합시다. 모든 불만과 소동과 반란으로 우리의 이익을 찾읍시다. 두려움과 망설임 없이 뜨거운 철을 망치로 내리칩시다. 그렇게 되면 중산층은 끝이 날 것이고 행복의 통치가 시작될 것입니다.

윌리엄 : 좋네. 다만 비용을 고려해야 하네. 고용주의 재산을 가져오겠다고 말하기는 쉽네. 하지만 경찰이, 군대가 있네. 생각해보니, 수갑과 총칼은 무엇보다도 중산층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게 맞구만.

잭 : 그건 지극히 자명합니다. 하지만 무기를 사용하고 화약과 멜리나이트로 우리를 노예로 잡아두려는 건 중산층 정부인만큼, 우리 또한 현대의 과학적인 전쟁기구로 그들과 같은 수단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거대한 다수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사회주의의 이점을 이해하고 경험하기 시작한다면, 지구상 그 어떠한 힘으로도 그들을 지금 이 상태로 남아있게 강압할 수 없습니다. 노동하고 모든 것을 만드는 건 가난한 이들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세요. 단지 그 중 큰 일부가 일을 멈춘다면, 큰 공황이 일어나 얼마 안 가 혁명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리고 군인의 다수도 가난한 사람으로, 그들은 배고픔에 의해 자신의 형제에게 상처를 입히고 도축하는 일로 자신을 팔아버리고 있죠. 진실을 마주하고 이해하는 즉시, 그들은 처음에는 비밀리에 그리고 후에는 공개적으로, 인민을 지지할 것입니다. 혁명은 생각하는 것의 반만큼도 어렵지 않습니다. 핵심은 혁명의 상을 끊임없이 전면에 두고 항상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행동할 기회가 어떻게든 올 것이란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윌리엄 :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나는 믿겠네. 하지만 혁명은 아무 쓸모도 없고 모든 건 천천히 개선될 것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잭 : 사회주의가 진지하게 다뤄지기 시작한 뒤로 중산층은 사회주의를 매우 두려워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들은 폭풍의 방향을 틀고 인민을 기만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했습니다. 황제를 포함한 모든 이가 사회주의자를 자칭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주의”가 무슨 가치가 있는지 설명드리죠. 우리 동지 중에도 상류층의 관심에 경도되고 혁명의 대의를 저버린 채 얻을 수 있는 과실에 유혹된 배신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법적 수단을 사용하고 모두 어느 정도 사회주의적이라고 말하는 정치 정당과의 연합을 주장합니다. 하원의 하코트Harcourt라는 의원이 “우리 모두 어느 정도 사회주의자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 작자는 혁명가를 바보나 더 부정적으로 봅니다. 일부는 여전히 혁명을 원한다고 말하면서 하원 의원이 되기를 더 간절히 원합니다. 그 누가 아저씨에게 혁명은 필요 없다고 말하고 하원 의원과 지방 의원 임명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한다면. 중산층 정당과 공동의 목적을 갖는 것에 대해 말한다면. 그가 중산층 사람이거나, 중산층 사람이 되길 원한다면. 그럴 경우 그에게 꺼지라고 말하세요. 자신을 사회주의라 착각하는 자 중에는 선한 의도를 갖고 정말로 그렇게 행하려는 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정말로 선을 행사하고 있다 믿는 이가 아저씨를 반쯤 죽을 때까지 마구 팬다면, 아저씨는 그의 손에서 방망이를 빼앗을 생각을 가장 먼저 할 겁니다. 그의 선한 의도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저씨가 빼앗은 방망이로 자기 머리통을 깨는 것을 막는 것뿐입니다.

윌리엄 : 바로 그걸세! 하지만 자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또 하나 생겼네. 자네가 “사회주의자”라고 할 때, 정확히 누굴 가리키는 건가? 자주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집산주의자,” “아나키스트”라는 말을 듣는데, 대체 그 단어들이 뭘 뜻하는지 나는 하나도 모르겠네.

잭 : 아, 그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눈치채시니 기쁩니다. 단어의 정의를 설명하는 것만한 것도 없죠. 들어보시죠. 사회주의자는 사회악의 근원은 재산이고, 재산이 철폐되지 않는 한 무지와, 노예제와, 정치적 불평등 그리고 매춘을 비롯한 인민을 끔찍한 상황에 놓는 그 어떤 악도 뿌리 뽑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입니다. 실제 필요에 의해 나타나는 무시무시한 고통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 사회주의자는 땅, 원자재, 기계 그리고 모든 생산수단이 소수의 손에 들어있기에 빈곤이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사회주의자가 믿기에, 이 소수는 노동자 계급 전체의 목숨을 사용할 수 있고, 아무것도 없는 프롤레타리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들 사이에서도 재산을 소유하기 위해 무한한 다툼과 경쟁 속에 놓여있습니다. 사회주의자는 사유재산, 즉 원인을 제거해 그 결과인 빈곤을 없앨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재산은 폐지될 수 있고 폐지돼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부의 구성과 분배는 인간의 진짜 이익에 따라 결정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상이 더 강했거나, 운이 좋았거나, 더 간악했다는 이유로 중산층이 자기 자신을 위해 주장하는 기득권에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래서 “사회주의자”라는 단어는 사회의 부는 모든 인간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고 재산의 소유자와 프롤레타리아, 부자와 가난한 자, 고용주와 고용인이 더 이상 있어선 안 된다고 믿는 모든 이를 일컫는 단어입니다.

윌리엄 : 그런 자네가 사회주의자임은 확실하군. 하지만 “코뮌주의자”와 “집산주의자”는 무슨 말인가?

잭 : “코뮌주의자”와 “집산주의자” 모두 “사회주의자”입니다. 하지만 둘은 재산이 공동으로 놓일 경우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산주의자는 노동자나 노동자 협회가 원자재와 생산수단에 대한 권리를 갖고 각자 자기가 생산한 것의 주인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생산물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지만, 죽은 이후에는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은 협회로 돌아갑니다.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자식도 자신의 노동과 그 과실을 즐길 권리가 있습니다. 단 한 가지라도 물려받을 수 있게 한다면, 그건 불평등과 특권의 첫걸음이겠죠. 아이들의 교육, 노약자의 부양 그리고 전반적인 공공사업에 관해선 각 노동자 협회는 공동체의 일원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제공해야 합니다.

코뮌주의자는 사람들 사이의 일이 잘 풀리기 위해서는, 인간이 서로를 사랑해야 하고 한 가족의 일원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재산은 공동화돼야 합니다. 가능한 생산성을 높이고 기계의 도움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동은 노동자들의 큰 집단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모든 종류의 땅과 기후를 최대한 활용하고 각 지역이 가장 잘 생산할 수 있는 것을 생산하기 위해, 그리고 다양한 나라 사이의 경쟁과 혐오를 피하기 위해, 전 세계의 인류 사이에 완벽한 연대를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나’와 ‘너’가 하는 것을 구분지어 혼돈을 유발하는 것을 감수하기보다는, 모두가 함께 일하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둬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각 개인은 모두를 위해 충분한 양이 생산될 수 있도록 사회에 자신의 최선을 다해 기여할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 자기가 필요한 것을 가져가고, 각자의 필요는 모두를 위해 충분히 생산되지 않은 것에 한해서만 제약을 받게 됩니다.

윌리엄 : 잠깐 기다리게, 자네! “연대”라면 무슨 말인가? 사람들 간의 연대가 있어야 한다고 자네가 말했지만, 난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못했네.

잭 : 들어보세요. 예를 들어 아저씨의 가족에서, 아저씨와 아저씨의 형제, 그리고 아내와 자식은 버는 모든 것을 공유합니다. 먹을 것을 조금 구하면 다 함께 먹고 모두가 먹을 만큼 충분하지 않으면 모두 조금 굶습니다. 가족 중 하나가 운이 좋아 평소보다 더 번다면, 그건 모두에게 좋은 것입니다. 반면에, 가족 중 하나가 실직하거나 병에 걸리면, 그건 모두에게 안 좋은 것입니다. 가족 중 실직한 사람은 나머지와 똑같이 식사하고 병든 사람은 그 누구보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죠. 따라서 아저씨의 가족에서는 서로의 일과 빵을 빼앗으려 하기보다는 서로를 도우려 합니다. 한 명의 기쁨은 모두의 기쁨이고 한 명의 불행은 모두의 불행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질투와 혐오를 멀리하게 되고, 이해관계가 갈라진 콩가루 집안에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 상호 애정이 발달합니다. 그것이 연대입니다. 진정으로 단합된 가족으로 존재하고 싶다면 이 연대를 인류 전체에 설립해야 합니다.

윌리엄 : 이해했네. 하지만 하던 얘기로 돌아가세. 말해보게, 자네는 집산주의자인가, 코뮌주의자인가?

잭 : 저는 코뮌주의잡니다. 왜냐하면, 서로 친구가 되기 위해 인민은 반쪽만 친구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집산주의는 경쟁과 혐오의 균을 남겨둡니다. 하지만 전 그것보다 더 멀리 갑니다. 각자 자기가 생산한 것으로 살 수 있다고 해도, 집산주의는 코뮌주의보다 열등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고립시키고 그의 힘과 공감 능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구두 수선공은 자기 구두를 먹을 수 없고 대장장이는 철로 살 수 없습니다. 또한 농부도 철을 다루고 도구를 생산하는 노동자 없이는 땅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각자 가지고 있는 것을 고려하며 여러 생산자 간의 거래를 조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구두 수선공이 자기 구두의 가치를 부풀려 구두를 거래할 때 최대한 많은 돈을 받으려는 것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입니다. 또 한편 농부는 그에게 최소한을 주려고 할 것이고요. 도대체 어떻게 이 상황을 관리한다는 말입니까? 제가 보기에 집산주의는 많은 문제를 만들고 혼돈을 초래하는 체제입니다. 반면에, 코뮌주의는 그 어떤 어려움도 일으키지 않을 겁니다. 모두 노동하고, 모두의 노동을 즐긴다면, 그렇다면 남는 건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내고 그것이 충분히 생산되도록 계획하는 것뿐입니다.

윌리엄 : 그렇다면 코뮌주의 아래에서는 그 어떤 돈도 원하지 않는 것인가?

잭 : 돈도 그것을 대신할 그 어떤 것도요. 생산을 필요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생산되는지에 대한 기록 말고는 말입니다. 유일하게 심각한 위험은 많은 사람이 일하기를 거부할 경우뿐입니다. 하지만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오늘날에는 힘들 뿐인 노동은 즐거운 것이 될 것이고 동시에 소수를 넘어선 윤리적 의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가 시작될 때 우리가 여태 받은 질 나쁜 교육의 결과로 일부 사람들이 일하기를 거부한다면, 그 사람들은 원자재와 간단한 도구만 주어진 채로 공동체 밖으로 내보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일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중요한 것은 땅, 원자재, 생산수단, 집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부가 공동으로 놓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성 방식에 대해선 인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실천만이 그들에게 최상의 체계를 보여줄 것입니다. 여러 지역에서는 집산주의를, 또 다른 여러 지역에서는 코뮌주의가 채택될 것이라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둘 다 실험에 놓이면, 둘 중 더 나은 것이 널리 도입될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누구도 다른 이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땅이나 생산수단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고, 만약 일어난다면, 무기를 동원해서라도 이를 막아야 합니다.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입니다.

윌리엄 : 그것도 이해했네. 하지만, 말해보게, “아나키즘”이란 무언가?

잭 : “아나키”란 “정부 없이”를 뜻합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정부는 중산층을 방어하는 것 외에는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익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가 직접 챙기는 것입니다. 우리를 복종시키는 법을 만들거나 변경할 하원 의원이나 지방 의원을 뽑는 대신, 우리는 우리 문제를 직접 토의할 것입니다. 다른 이가 우리의 결정을 이행할 필요가 있을 때 그에게 우리가 정한 대로 행동하도록 신신당부해야 합니다. 곧바로 해낼 수 없는 일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자에게 의뢰해 문제를 조사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뜻과 다르게 행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파견인은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고 법률을 강요할 권리를 갖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능력에 따라 선택된 사람으로, 어떤 권위도 없이 단순히 인민이 결정한 바를 실행하는 사람이 될 뿐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구두 수선공이 구두를 만들도록 의뢰받듯이, 누구는 학교를 개편하고, 누구는 도로를 만들고, 누구는 생산물의 교환을 관리할 것입니다.

윌리엄 : 부디 조금만 더 설명해주게. 어떻게 나 같은 무지한 노인네가 의원과 장관이 해내는 모든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잭 : 대체 그 의원과 장관이 뭘 하길래 아저씨가 그들이 하는 것을 할 수 없다고 한탄하시나요? 그들은 유산자의 이익을 위해 법을 만들고 공권력을 사용해 인민을 짓누릅니다. 그뿐입니다. 우리에게는 필요 없는 능력입니다. 장관과 의원은 좋고 유용한 일로 바쁘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특정 계층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하고 불필요하고 성가신 제정으로 진보를 가로막습니다. 예를 들어, 상류층은 철도에 매혹됐습니다. 하지만 왜 그럴까요? 엔지니어와, 정비공과 온갖 종류의 인부로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장관과 의원과 주주와 다른 기생충이 사라져도 기차는 변함없이 움직이지 않을까요? 우체국, 전신국, 항해국, 교육과 병원 등 직종에 관계없이 노동자에 의해 관리되는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는 해를 끼치기 위해 간섭할 뿐이죠. 정치인이 이해하는 정치는 우리에게 어려운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진지하게 인민의 실제 필요와는 아무 관계도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의 목표가 인민의 진짜 필요를 충족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보다 의원에게 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런던에 사는 하원 의원이 나라 안의 지방의 필요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우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도 그 언어를 할 수 없는 이들이 어떻게 다양한 직종과 산업의 이해관계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각자 자기가 알고 필요한 것에 신경을 썼다면 모든 건 매우 달랐을 것입니다. 일단 혁명이 일어나면 우리는 말하자면 아래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선전의 영향과 시대의 열정으로 각 지역이나 교구나 도시의 다양한 직종은 협회association를 이룰 것입니다. 그리고 한 직종이나 지역의 필요를 누가 이들보다 더 잘 이해하겠습니까? 그 이후 여러 직종이나 지역 사이에 협의가 필요할 때, 각각 특수한 회의에 보낼 대표자를 선출해 다양한 필요와 욕구의 조화를 이루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정은 언제나 인민의 이익이 방치되지 않도록, 그들이 대표하는 유권자의 동의 아래 이뤄질 것입니다. 그렇게 인류는 점진적으로 조화를 이룰 것입니다.

윌리엄 : 하지만 한 나라나 협회가 나머지와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수가 당연히 우세를 점하게 되지 않겠나?

잭 : 자동적인 우세는 아닙니다. 진실과 정의 앞에선 숫자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백 명, 천 명, 혹은 모두에게 반대하는 단 한 명이 옳을 수 있습니다. 실질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할 수 있는 걸 해야 합니다. 만장일치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대다수가 동의하는 방식이 그 동의한 집단 내에서 행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경험이 그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면 다른 이들도 그들을 모방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소수의 주장이 맞았던 것이 증명되고 그에 따른 행동을 취할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의 기반이 될 평등과 정의의 원칙은 위배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합의에 다다를 수 없는 문제는 그 수가 지극히 적을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이해관계의 분화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의 나라와 협회, 즉 같이 살아갈 사람들을 자유롭게 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또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안은 견해의 차이를 좁힐 수 없는 이론의 영역이 아니라,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실생활과 실증과학에 대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문제의 최선의 해결책이 경험을 통해 내려질 때, 다수결로 사람들을 짓누르는 방식보다는 어떻게 그들에게 해결책을 보여줘 설득할 것이냐가 문제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시민들이 씨앗을 뿌리는 계절을 정하기 위해 모인다면 비웃을 만한 일이지 않나요? 이미 경험으로 결정이 난 사안인데 말이죠. 완전히 고정된 안건이 아니라면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투표를 사용할 수 있죠. 모든 공적이고 사적인 일은 이렇게 다뤄질 것입니다.

윌리엄 : 하지만 누군가 단순한 황소고집과 방자함으로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반대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잭 : 그럴 경우 당연히 강제 조치를 취해야겠죠.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것이 부당한 것처럼, 그 반대도 상당히 부당하겠죠. 그리고 소수가 들고 일어날 권리를 가지고 있듯이, 다수에게는 자신들을 방어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어느 곳에서나 인간은 원자재와 생산수단에 대한 양도 불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물론 이는 완전히 만족스러운 해결책은 아닙니다. 협회에서 쫓겨난 개인은 많은 사회적 이익을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적 이익은 많은 사람의 협동을 통해서만 만들 수 있기에, 고립된 사람 또는 무리는 이를 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선호하십니까? 이 불평을 늘어놓는 자는 다른 여러 사람의 바람이 자신의 바람을 위해 희생되기를 정당하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연대와 형제애와 상호부조 그리고 필요에 따른 상호 고려와 지지가 성립되면 시민 독재나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장담하건대 인간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그들 사이에는 연대가 꽃필 것입니다. 압제와 내전은 모두에게 악입니다. 연대만이 우리 이상이 현실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고, 평화와 번창과 보편적인 자유를 가져올 것입니다. 또한 진보가 인간을 단결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더 독립적이고 자급할 수 있게 만든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땅 위로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선 철도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는 많은 사람들의 공동의 노동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아나키” 아래에서 여행자는 여전히 자기 필요를 다수가 최선이라 정한 우리의 필요와 규정에 맞춰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어떤 도로에서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혼자서 운전할 수 있는 기차를 만든다면, 모두 다른 이의 규정에 맞출 필요 없이 자기가 원하는 곳을 원하는 때에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그렇거나 미래에 그렇게 될 수천 가지의 다른 것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따라서 진보의 성향은 사람들 간의 특정한 관계를 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덕적 연대”와 “물질적 독립”을 향한 것이요.

윌리엄 : 그런 것이군. 그럼 자네는 사회주의자고, 사회주의자 중에서 자네는 코뮌주의자이며 아나키스트인 것이야. 하지만 자네가 국제주의자라고도 들었네. 그건 무슨 말인가?

잭 : 국제 노동자 협회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30여 년 전, 전 문명국가의 노동자 간의 협회가 세워졌습니다. 모든 땅의 노동자가 유산자 때문에 겪는 불의와 착취를 함께 논하고 보편적인 사회 혁명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함께 행동할 목적으로 말이죠. 특정 문명 수준에 다다른 각국의 노동자는 서로 비슷한 방법으로 착취당하고 지배계층은 대중을 짓밟기 위해 서로 뭉쳐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세계 모든 곳의 노동자의 공동의 이익은 국가적 차이보다 더 강력합니다. 그리고 착취자들이 협동하는 것처럼 노동자들도 함께 행동해야지만 자본주의의 멍에를 떨쳐낼 수 있습니다. 국제 노동자 협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노동자를 뒤흔드는 거대한 노동운동은 그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오늘날 중산층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는 국제 사회주의 아나키스트 혁명당International Socialist Anarchist Revolutionary Party 같은 여러 나라의 사회주의 정당도 그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이 정당의 목표는 아나키스트 사회주의의 신념을 널리 알리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유산자나 국가로부터 자의적인 합의를 찾는 것과 점진적인 헌법적 개혁은 희망이 없음을 보이는 것. 자신의 권리에 대한 의식을 향해 인민을 깨우고 봉기의 기상을 일깨우는 것. 사회 혁명, 즉 모든 정부를 파괴하고 모든 부를 공동의 것으로 하도록 부추기는 것입니다. 이 강령에 동의하고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동참하려는 자는 누구든 이 정당의 일원입니다. 이 정당은 우두머리도 권위도 없습니다. 오로지 같은 목적을 위해 싸우는 자들 사이에서 임의적이고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각 일원은 자기가 원하는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필요한 수단을 최선이라 생각되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퍼뜨릴 수 있습니다. 물론, 정당의 강령과 전략에 반대되지 않는 선에서요.

윌리엄 : 그렇다면 사회주의, 아나키즘, 혁명적 신념에 동의하는 모든 이들이 이 정당의 일원인가?

잭 : 아닙니다. 누군가는 우리 강령에 완전히 동의할 수 있겠지만, 무슨 이유에서든 강령에 동의하는 대중과 효과적인 연대와 협동의 관계를 이루지 않고, 혼자서 또는 소수의 조직원과 행동하는 것을 선호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이 일부 개인이나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효과적일 수 있지만, 일반적인 방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고립은 약점이고 형제애와 조화가 있어야 하는 곳에 반감과 경쟁심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사상을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 투쟁하는 남녀모두 친구이고 동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상의 진실에 대해서는 확신하지만 그들이 옳다고 믿는 것을 퍼뜨리려 하지 않고 소신을 비밀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죠, 이들이 이론상으로 사회주의자나 아나키스트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와 생각이 같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들의 신념은 매우 약함이 틀림없습니다. 아니면 겁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고요. 자신과 자기 주변인에게 해로운 악을 봤고 그 해결책을 안다 생각하는 인간이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선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말이죠. 진실을 알지 못하는 자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자는 비정한 겁쟁이일 뿐입니다.

윌리엄 : 자네가 맞네. 자네가 한 말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생각해보겠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라는 확신이 생겼을 때, 나는 그 정당에 가입하겠네. 그리고 나 또한 그 신성한 진실을 퍼뜨리겠네. 그리고 상류층이 나를 비열하거나 바보라고 부르면, 나는 그에게 나만큼 일하고 고통받은 뒤에나 입을 열 권리를 얻을 것이라고 말하겠네.

윌리엄 : 아, 잭, 자네 맞지? 만나서 반갑네. 자네와 몇 마디 나누기 위해서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네. 오, 잭! 잭! 내가 자네에 대해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자네가 시골에 살 때는 착한 아이였지. 동갑내기 젊은이들에게 아주 좋은 본보기였지. 가여운 자네 부친이 아직 살아만 계셨더라면...

잭 : 윌리엄, 어째서 제게 그런 식으로 말하시는 건가요? 제가 아저씨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 나무라시나요? 그리고 왜 제 가여운 아버지께서 제게 실망하셨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윌리엄 : 내 말을 듣고 마음 상하지 말게나, 잭. 나는 늙은이이고 자네를 위해서 말하는 것이라네. 게다가 난 자네 아버지 앤드류와 어찌나 좋은 친구였는지 자네가 잘못된 길로 방황하는 것을 보니 자네가 마치 내 아들인마냥 화가 나. 특히 자네 아버지가 자네에게 기대하던 바와 자네에게 좋은 앞날을 남기려고 했던 희생들을 생각하면 말이야.

잭 : 하지만 윌리엄,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정직한 일꾼이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저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고, 장담하건대 저는 항상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니 어째서 제 아버지께서 저를 부끄러워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저는 최선을 다해서 배우고 발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 어머니와 저는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악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를 이렇게 다그치십니까?

윌리엄 : 아, 바로 그걸세! 나는 자네가 열심히 일하고 이웃을 돕는다는 것을 충분히 잘 알고 있네. 자네는 좋은 사람일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자네를 칭찬하네. 하지만 그럼에도 자네는 여러 번 투옥됐어. 사람들은 자네가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다고, 자네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하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자네를 위할 뿐이고 망설임 없이 자네에게 말을 할 걸세. 잭, 이 노인의 조언을 듣게. 정치는 아무 할 일도 없는 이들에게 양보하고 자네는 일에 집중하고 옳은 일은 하는 데에만 집중하라는 내 말을 새겨들어야 하네. 그것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과 마음을 잃게 될 걸세. 내 말 듣고 나쁜 친구를 버리시게. 모두가 알다시피, 그런 친구들이 자네 같은 불쌍한 젊은이를 그릇된 길로 이끄는 게 아닌가.

잭 : 윌리엄, 제 동료는 뛰어난 동료들입니다. 정말로요. 그들이 먹는 빵은 땀으로, 그리고 가끔은 그들의 눈물에 젖어있어요. 지배자들이나 그들을 헐뜯죠. 우리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빨아들이려 하고, 우리가 유복해져서 그들의 횡포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우리를 불한당이나 죄수로 취급하는 그 지배자들 말입니다. 제 동료들과 제가 투옥된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정당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우리는 다시 들어갈 것이고, 어쩌면 더 나쁜 일이 우리에게 닥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불의와 고통을 파괴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처럼 평생을 일하고 배고픔에 시달리는 윌리엄 당신 같은 사람,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때 죽을 자리를 찾아 구빈원에 들어가게 될 당신 같은 사람은, 최소한 상류층과 국가의 편에 서서는 안 됩니다. 가난한 자들의 삶을 개선하려는 사람들을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윌리엄 : 친애하는 잭, 세상이 아주 안 좋게 돌아가는 건 알지만, 그런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건 안짱다리를 가진 개의 다리를 곧게 펴려는 것과 같네. 그러니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것을 받아들이고, 최소한 빵 한 조각이 결코 부족하지 않도록 하느님께 기도하세.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존재했고, 노동을 위해 태어난 우리는 일해야 하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것에 만족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공공의 평화를 어지럽히고 우리의 사명을 해칠 것이야.

잭 : 우리의 사명이라고요! 아저씨가 신사라 부르는 이들을 보세요. 우선, 그들은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고, 그들은 우리의 이마의 땀으로 사치스럽고 게으르게 살고 있으면서 우리에게는 짐승처럼 일하지 않고는 빵 한 조각도 벌 수 없게 합니다. 그런 다음, 만약 우리가 우리의 희생으로 그들의 배를 불린다는 사실에 흔쾌히 복종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나쁘고 정직하지 못한 놈이라 부르고, 경찰은 우리를 감옥으로, 성직자는 우리를 지옥으로 보냅니다. 들어보세요, 윌리엄. 진짜 악당이며 나쁜 놈들은 다른 사람들을 억압함으로써 살아가는 놈들입니다. 그들은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을 손에 넣었고, 노동자들을 착취합니다. 노동자들은 마치 양떼처럼 털을 깎이고 도살까지 당하죠. 그럼에도 주변인의 생명력을 갉아먹은 적 없는 아저씨는 이런 짓을 일삼는 자들의 편에 서서 저희를 핍박한다고요? 정부가 그들의 편에 서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정부는 부자의 이익을 위해 부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의 편에 서게 마련이지만, 노동자, 우리의 친형제가 단지 우리가 빵과 자유를 갖기를 원한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등을 돌려야 할까요? 아! 만약 제가 가난한 이들을 오랫동안 눌러왔던 비참함, 노예 상태, 그리고 모욕적인 관습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저는 가장 나쁜 사람, 즉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적게 가진 자는 스스로를 인류의 억압자의 도구로 만든 가난한 자라고 말했을 겁니다. 최소한 저희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현실을 만들기 위해 저희가 가진 약간의 빵과 자유를 잃을 위험을 감수합니다.

윌리엄 : 음, 듣기에는 좋은 소리구만.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좋은 일은 있을 수 없으며,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뜻에 복종해야 하네.

잭 : 이런, 윌리엄, 우리가 이치에 맞는 말을 하려고 한다면, 신은 논외입니다. 신의 이름은 동료를 속이고 억압하려는 모든 이들의 구실과 명분으로 쓰입니다. 왕은 신이 자신에게 통치할 권리를 준 척하고, 두 왕이 하나의 나라의 왕위를 다툴 때, 그들은 둘 다 신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떠벌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가장 많은 병사나 가장 좋은 무기를 가진 자에게 승리를 쥐여 줍니다. 가진 자, 착취자, 독점자는 모두 신을 이야기합니다.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 터키의 신부들은 모두 신의 사도를 자칭합니다. 그리고 신의 이름으로 그들은 서로 전쟁을 하고 각자 자신의 방앗간으로 곡식을 가져오려고 합니다. 그들은 모두 신이 자기들에게 모든 것을 주었고, 남은 우리에게는 불행과 고된 노동을 선고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번 삶과 다음 삶에도 낙원을 가지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생에 지옥을 갖고 현생을 순종하는 노예로 보내야만 다음 생에 낙원을 가질 것이라 합니다. 그래놓고 아저씨는 제게 신이 바로 그렇게 의도하셨고 그것이 신의 참뜻이라고 하시면, 저는 그 신이 매우 악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지 않아야 하지만 각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세상이 돌아가는 바를 논할 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충실하여, 우리와 우리 동료들을 위해 이 삶에서 작은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성직자 자신이 모든 이는 신의 자녀이며 그러므로 형제라고 말하는 건 아저씨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윌리엄 : 잭, 도시에서 글을 배우고 나서부터 변호사까지 곤혹스럽게 할 만한 말투를 갖게 됐군. 하지만 이제 말해보게. 정녕 그들이 말하는 대로, 재산을 가진 모든 이들을 약탈하려 한다는 말이 사실인가?

잭 : 좋아요! 드디어 요점에 도달했군요. 아뇨,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우린 아무것도 훔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대중이 부자의 재산을 가져가서 모두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둑질이 아니라, 그저 대중이 자신의 것을 다시 가져가는 것입니다.

윌리엄 : 뭐라고! 그 신사들의 재산이 우리 것이라는 말인가?

잭 : 물론이죠. 우리 재산입니다. 모두의 재산입니다. 누가 그것을 부자에게 주었습니까? 그들은 어떻게 그것을 얻었을까요? 그들은 무슨 권리로 그것을 장악하고 유지합니까?

윌리엄 : 하지만 그것은 그의 조상이 남긴 것이네.

잭 : 그리고 그 조상에게는 누가 줬죠? 들어보세요. 가장 강하고 운이 좋은 사람들이 그들의 힘이나 행운을 이용하여 모든 것을 차지했고, 그들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일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과 동시대의 사람들 대부분을 억압하고 굶기며 혼자 게으름 피우며 사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의 아들과 손자에게 약탈한 부를 남겨줬습니다. 그렇게 다음 세대를 그들의 자손의 노예가 되는 운명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 자손들이 나태와 오랜 권력 행사로 인해 너무 쇠약해져서, 조상이 오래전에 했던 일을 오늘날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음에도 불구하고요. 이 모든 것이 아저씨에게는 정당해 보이나요?

윌리엄 : 무력으로 부를 얻은 것이라면 그렇지 않지. 하지만 상류층은 자신의 노동으로 재산을 얻었다고 말하지. 나는 어떤 사람이 일해 번 것을 빼앗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네.

잭 : 언제나 같은 이야기죠! 일하지 않고 일한 적이 없는 사람이 한결같이 ‘노동의 이름으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누구의 노동으로 지구와 철과, 석탄과 돌을 만들어집니까? 아니면 어떻게 이런 것들이 존재하게 됐습니까? 우리 모두 이 세상에 왔을 때 발견했고,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것들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만약 부자가 자기만을 위해 공기를 독점한 뒤, 우리에게는 가장 더러운 공기를 조금밖에 주지 않으면서, 그마저 우리의 노동을 지불한 뒤 사용하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지구와 공기의 유일한 차이점은 그들이 지구를 손에 쥐고 나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공기로는 그리 할 수 없었지만, 만약 가능했다면, 그들은 땅을 다루는 것처럼 공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할 겁니다. 제 말을 믿으세요.

윌리엄 : 맞네. 지당하네. 땅을 비롯한 모든 것은 누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니 모두의 것이어야 하네. 하지만 저절로 생겨나지 않은 것도 있지.

잭 : 그렇죠, 사람이 일해서 만든 것도 있고, 사람이 손으로 개간하지 않으면 땅 자체가 거의 가치가 없겠죠. 하지만 공정성을 따지자면, 이런 것들은 그것들을 생산하는 이들의 것이어야 합니다. 도대체 무슨 기적에 의해 그것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의 소유가 된 걸까요?

윌리엄 : 하지만 상류층은 그들의 아버지들이 일했고 저축했다고 말하네.

잭 : 반대로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들이 다른 사람들을 일하게 만들었다고 자백해야 합니다. 오늘날 그렇듯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요. 역사는 우리에게 노동자의 운명은 계속해서 비참했고 이웃을 착취하지 않고 정직하게 노력한 사람은 결코 유의미한 저축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일반적으로 그런 사람은 자신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할 만큼 충분히 벌지 못했습니다. 눈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세요. 노동자가 생산하는 모든 것이 주인의 손에 넘어가지 않습니까? 한 사람이 개발되지 않은 늪지대를 단 몇 파운드에 사들인 뒤 사람을 구해 그곳을 경작하게 하고, 그들에게 간신히 먹고살 만큼밖에 주지 않는 반면, 본인은 가만히 도시를 벗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몇 년 후, 이 황무지는 원래 가치의 백배인 정원이 됩니다. 소유주의 자식은 이 재산을 물려받고선, 자기 아버지의 노력의 성과를 누리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정작 거기에서 정말 고생하고 고통 받은 자들의 자식은 계속해서 고생하고 고통 받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윌리엄 : 하지만 자네 말 대로 세상이 정말로 항상 그랬다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고용주라고 다른 수가 있는 건 아니네.

잭 : 저는 모든 걸 상류층에게 이로운 사실이 되도록 이해할 준비가 됐습니다. 재산을 소유하는 모든 이는 전부 일하고 저축한 자의 자식이고, 노동자는 모두 게으름뱅이의 자식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이것은 분명히 말도 안 되는 가정이라는 점을 아저씨도 이해하시겠죠. 하지만 실제로 그랬다 해도, 현재의 사회 구조는 정의로울까요? 만일 아저씨가 일하고 저는 게으른 개라면, 제가 게으름 때문에 벌을 받는 건 마땅합니다. 그러나 정직한 일꾼일 수도 있는 제 자식이, 아저씨의 자식을 게으름과 풍족함 속에 살게 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윌리엄 : 훌륭한 논리라는 점을 난 부정하지 않네. 하지만 재산을 가진 자는 상류층이고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해야 하네. 왜냐하면 그들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네.

잭 : 그들이 부를 가지고 있다면, 이는 그들이 부를 힘으로 취하고 다른 사람의 노동의 열매를 착취함으로써 부를 불려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를 취한 방법으로 또한 부를 잃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서로 싸워 왔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입에서 빵을 빼앗으려고 했고, 각자 자기 동료를 복속시켜서 짐승으로 삼는 것을 행복이라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상황에 끝을 낼 때가 도래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싸워서 얻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다툼으로 얻은 유일한 수확은 가난, 노예, 범죄, 매춘, 그리고 때때로 전쟁과 혁명이라고 불리는 피 보는 것들뿐이었습니다. 대신에 우리가 서로 합의하고, 사랑하고, 도울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악행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많이 가진 자와 아무것도 없는 자는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가능한 모든 사람들이 잘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지배하는 것과 일하지 않고 사는 것에 익숙한 부자는 구조의 변화를 위한 외침을 귀담아듣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 알맞게 대처할 것입니다. 만약 부자가 사람들 사이에 증오와 불평등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모두가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보다 좋은 건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그가 자기와 자기 아버지의 폭력과 도둑질로 얻은 열매를 계속 누릴 권리를 계속해서 주장한다면, 그는 최악의 선택을 내린 것입니다. 부자가 가진 것은 무력으로 가져간 것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무력으로 찾아올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이 합의점에 도달한다면, 그들은 부자보다 강력합니다.

윌리엄 : 하지만 상류층 없이 우린 어떻게 살란 말인가? 누가 우리에게 일감을 준다는 말인가?

잭 : 이런 질문이라뇨! 매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계시잖아요. 땅을 파고,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아저씨가. 옥수수를 타곡하고, 가축에게 먹이를 주고, 더 맛있는 치즈를 만드는 아저씨 본인이 제게 어떻게 우리가 상류층 없이 살 수 있느냐 물어보십니까? 그럴 바엔, 차라리 상류층이 그에게 옷을 입혀주고 밥도 먹여주기 위해 도시와 촌에서 노역하는 불쌍한 우리 노동자 없이 어떻게 살 것인지 물어보시죠. 방금 아저씨는 우리를 살 수 있게 해주는 고용주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저씨는 남 덕에 사는 것은 정작 그들이라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그들이 먹는 모든 빵은 아저씨 자녀의 빵을 빼앗은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의 아내에게 주는 모든 선물은 아저씨의 가난, 빈곤, 추위, 심지어는 아저씨 자녀의 매춘을 뜻한다는 사실을요? 그들이 무엇을 만듭니까? 아무것도요. 그러므로 그들이 소비하는 것은 노동자로부터 빼앗은 것입니다. 모든 농민이 내일 사라진다고 가정합시다. 땅을 갈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고, 모두가 굶어 죽을 것입니다. 제화공이 사라지면 신발도 없어지고, 석공이 사라지면 집을 지을 사람도 없어집니다. 만약 각 종류의 노동자가 사라진다면, 차례대로 각 생산 부문은 사라질 것이고 우리는 유용하거나 필요한 것 없이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상류층을 없애면 무슨 해악이 있겠습니까! 그건 메뚜기 떼가 사라지는 것과 같을 겁니다.

윌리엄 : 그래, 바로 우리가 모든 것을 생산하지. 하지만 예를 들어서 내가 땅도 가축도 씨앗도 없다면 어떻게 옥수수 농사를 지을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는 고용주에게 의지하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다고 확신하네.

잭 : 제발, 윌리엄, 우리 서로 말이 통하고 있는 게 맞습니까? 우리가 일하고 살기 위해 우리는 지배자로부터 빼앗아야 한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땅, 도구, 씨앗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요. 저는 지배자가 노동의 땅과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한, 노동자는 항상 복종해야 하며 노예 상태와 가난 외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부르주아의 재산을 빼앗는 것이 최우선이 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지 않고선 세상은 결코 회복될 수 없습니다.

윌리엄 : 자네가 말했지, 자네가 옳다고.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내게는 너무나 새로워 좀 혼란스럽네. 그러니 자네가 어떻게 할 것인지 한 번 설명해보게. 부자들에게서 뺏은 재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역시, 분배해야겠지?

잭 : 아뇨, 아닙니다. 그런 건 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재산을 나눠 가지고 지금의 소유자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저씨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거나 악당이라고 믿으셔도 좋습니다.

윌리엄 : 그럴 경우 전혀 이해가 안 되는군.

잭 : 충분히 자명합니다. 우리는 단지 모든 것을 공통으로 하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일해야 하고 모두가 가능한 한 잘 살아야 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합니다. 일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이 세상에서 살 수 없습니다. 스스로 일하지 않으면 다른 이의 노동에 의해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부당하고 해롭습니다. 하지만 물론, 아저씨는 제가 ‘모두가 일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일하는 것이 가능한 모든 이들을 말한다는 점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불구자, 환자 그리고 노인들은 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 감정은 그 누구도 고통받게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 모두 늙고, 언제든 불구가 되거나 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도 그렇죠. 자 이제 잘 생각해보면, 모든 부는, 그러니까 인간에게 유용한 모든 것은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땅, 기계를 비롯하여 철, 나무, 돌, 이동 수단 등을 포함한 모든 노동수단입니다. 이는 우리가 일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공동의 것이어야 합니다. 노동의 방법은 나중에 다루죠. 저는 공동으로 일하는 것이 최선이라 믿습니다. 그렇게 하면 더 적은 피로감으로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직종에서 각자 개별로 일해야만 했다면, 우리는 인간의 노동을 크게 단순화하고 줄여주는 기계를 사용하는 것을 포기해야 했을 겁니다. 나아가, 인간이 서로의 입에서 빵을 빼앗을 필요가 없을 때, 그들은 고양이나 개처럼 되지 않고 함께 있는 것에 기쁨을 느낄 것입니다. 물론 혼자 일하기로 선택한 이는 그렇게 하도록 둘 것입니다. 핵심은 그 누구도 일하지 않고, 그래서 다른 이들이 그를 위해 일하도록 강요당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각자가 일을 할 환경이 갖춰진 상황이라면 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당연히 남의 종이 되는 것을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의 종류의 다른 하나는 인간의 욕구를 직접적으로 충족시키는 것들입니다. 예컨대 의식주 말입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공동으로 소유되고 분배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다음 추수 때까지, 그리고 산업이 새로운 생산물을 공급할 때까지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죠. 프롤레타리아를 굶겨 먹고 사는 게으른 고용주가 없을 혁명 이후에 생산될 것들에 대해서는, 각국의 노동자가 서로 동의한 대로 나눌 것입니다. 그들이 공동으로 일하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두고자 한다면, 그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그 경우에 그들은 생산이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키도록, 그리고 소비가 모두에게 가장 큰 행복을 보장하도록 (생산과 소비를) 규제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각자가 생산에의 기여를 계산해서 그와 동등한 양을 가져가야 합니다. 이 계산은 다소 어렵고, 저는 개인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이렇게 시작한 이들도 비례분배의 어려움을 느끼고 모든 것을 공동의 것으로 만드는 주장에 더 우호적이게 될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빵, 집, 물과 같은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한 사람의 노동량과는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위해 보장돼야 합니다. 어떤 방법이 채택되든, 누구는 부자로, 누구는 굶주리는 가난뱅이로 태어나게 하는 재산의 상속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각자가 자기가 생산한 것의 절대적인 주인으로 인정받고 본인 명의의 저축을 허용하더라도, 그렇게 축적된 부는 그가 사망한 즉시 공동체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이들은 최고의 성장과 배움을 보장받도록 모두의 노력으로 양육되고 교육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정의도 평등도 있을 수 없고, 생산수단에 대한 각각의 권리의 원칙도 침해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땅과 기계를 주고는 그것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조건-즉, 교육-을 마련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성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성은 남성과 동등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성별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을 일컫는 것입니다.

윌리엄 : 다만 문제가 하나 있네. 가난한 사람을 약탈하고 굶주리게 한 부자의 재산을 빼앗는 건 아무렴, 좋네. 하지만 열심히 일하고 저축한 이가 작은 밭을 사거나 작은 가게를 열려고 돈을 모았다면, 자네는 무슨 권리로 그에게서 그의 노동의 결실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

잭 : 자본가와 정부가 생산물을 쓸어가는 요즘에는 흔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쨌든, 저는 아저씨에게 사람 각자가 자재와 노동수단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따라서, 자기가 직접 경작하는 약간의 땅이 있다면 그는 그대로 간섭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최고의 도구와 거름 그리고 생산량을 최대한 증폭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받을 것입니다. 당연히 모든 것을 공동의 것으로 하는 게 가장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 서로 비슷한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은 코뮌주의 체계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강요를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공동 재산과 노동 덕분에 모든 게 잘 풀릴 것입니다. 또한,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편리하기 때문에 지금보다도 더 많은 부와 일이 생길 것입니다.

윌리엄 : 기계일세! 우리는 바로 기계를 불태워야 하네! 바로 기계가 우리 팔을 부러뜨리고 우리의 빵을 빼앗네. 이곳 시골에 기계가 오면, 임금이 내려가고, 우리 중 일부는 일을 잃고 다른 곳으로 가야만 할 것이라 장담하지. 도시에서는 더 심할 것일세. 만약 기계가 없다면 상류층은 우리의 노동력을 더 필요로 해서 우리는 조금 더 잘 살았을 것일세.

잭 : 윌리엄, 기계가 가난과 실업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건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건 기계가 부자의 소유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만약 기계가 노동자의 소유였다면, 현실은 그 반대였겠죠. 기계는 인간 일반을 편안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결국 기계는 우리 대신에, 우리보다 더 빨리 일을 하니까요. 기계 덕분에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일해야 할 필요가 없고,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고통스러운 일로 벌 받지 않을 것입니다. 기계가 모든 생산 과정에 도입됐고 모두의 소유였다면 단 몇 시간의 쉽고 간단한 일만으로 모든 소비를 충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각 노동자는 지식을 쌓고 인간관계를 가꿀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과학과 문명의 산물을 즐기며 행복한 삶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기억하세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아저씨는 소유주가 기계를 파괴하려는 사람으로부터 기계를 보호하는 만큼, 기계를 차지하려는 사람으로부터도 기계를 보호하려 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 것입니다. 따라서 두 경우 모두 똑같은 노력을 하고 똑같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기계를 빼앗기보다 부수는 것은 완전히 어리석은 일이라는 겁니다. 옥수수와 호스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면 아저씨는 그것들을 파괴하겠습니까? 당연히 아니죠! 자, 우리는 기계도 똑같이 대해야 합니다. 만약 기계가 고용주의 손에 있다면 우리의 가난과 노예 상태에 도움이 될 것이고, 우리의 손에 있다면 부와 자유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윌리엄 : 하지만 그러한 체제가 돌아가려면 모든 사람이 기꺼이 일해야 하지.

잭 : 물론이죠.

윌리엄 : 그리고 일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고생은 개도 싫어하네.

잭 : 아저씨는 오늘날 사회와 혁명 이후의 사회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개도 힘든 일을 즐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낼 수 있습니까?

윌리엄 : 나 말인가? 아니, 나는 일에 익숙하네. 할 일이 없을 때 내 손은 뭐라도 하고 싶어 근질거리지. 하지만 하루 종일 주점에서 카드놀이를 하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빈둥거리는 이들도 있네.

잭 : 오늘날은 그렇겠지만, 혁명 이후에는 다를 겁니다. 그 이유를 설명드리죠. 오늘날 노동은 불쾌하고, 보수가 적으며, 업신여겨집니다. 오늘날 노동자는 거의 죽기 직전이거나 반쯤 굶어 죽을 지경인데, 그는 짐승 취급받습니다. 노동자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는 십중팔구 구빈원에서 일생을 마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계속되는 학대와 굴욕에 시달리면서 자기 삶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가족을 돌볼 수 없습니다. 반면에 일하지 않는 자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편하게 지냅니다.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보고 존경합니다. 모든 즐거움은 그의 몫입니다. 노동자 사이에서도, 가장 편한 일을 가장 적게 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벌고, 다른 이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여겨집니다. 사람들이 일에 넌더리가 나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열망하는 것이 놀라운 일인가요? 하지만 노동이 인간에게 적합한 환경에서, 적당한 시간 동안, 건강을 존중하는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노동자가 자기 가족과 모든 인간의 안녕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존중받고 싶은 자는 반드시 노동자가 돼야 하고 게으른 자는 오늘날의 간첩이나 매춘부만큼이나 멸시를 받는다면. 그렇다면 과연 누가 쓸모 있고 사랑받는 것을 저버리고 몸과 마음에 파괴적인 나태에서 살고 싶겠습니까? 심지어 몇몇 드문 예외를 제외한 오늘날에도, 모든 사람은 본능적으로 간첩이나 매춘부가 되는 가능성을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땅을 가꿔서 일하는 것보다 이러한 비열한 소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습니다. 일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국가의 보호도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직업은 가증스럽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이들은 그런 일을 추구하는 불명예보다는 가난을 선호합니다. 예외는 있습니다. 악함을 선호하는 나약하고 타락한 괴물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악명과 빈곤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을 함으로써 편안함과 대중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데, 누가 악명 높고 비열한 삶을 선택하겠습니까? 확실히 그런 자는 미친 사람 일 겁니다. 그리고 그 게으름뱅이는 공개적인 비난을 받으리라 의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은 본질적으로 사회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게으름뱅이는 공동체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일에 기여하지 않으며, 타인의 생산에 의존해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질서의 조화를 깨뜨리고 과거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불만 가득한 집단의 요소가 될 것입니다.

집단은 개인과 같습니다. 집단은 자기 자신과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사용하는 것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또한 자기에게 해를 끼치거나 해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증오하고 경멸합니다. 집단은 속아 넘어갈 수도 있고, 너무 자주 속아 넘어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의 경우에는 그 어떠한 오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을 하지 않고 타인을 희생시켜 먹고 마시는 사람이 나머지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대낮처럼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한번, 아저씨가 어느 집단과 모든 일을 함께 하고, 생산물을 나눠 갖는다고 가정합시다. 물론 아저씨는 약하거나 숙련되지 않은 동료를 배려하시겠죠. 하지만 게으름뱅이의 경우 그는 스스로 집단을 떠나거나 벗어났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의 어깨를 보태 힘을 더하는 쪽으로 삶을 바꾸지 않겠습니까? 공동체 일부 구성원의 게으름이 공동체에 심각한 위험이 될 경우 일어날 일입니다. 일하지 않는 자 때문에 나머지가 일을 할 수 없다면 -물론 그렇게 될 가능성은 낮아보이지만- 그들은 단순히 공동체에서 추방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원자재와 노동수단 말고는 그 어떤 것에 대한 권리가 없기 때문에, 살고 싶다면 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윌리엄 :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네, 자네. 그럼 말해보게, 모두가 밭에서 일해야 하나?

잭 : 왜 그래야 하죠? 사람들은 빵과 맥주와 고기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집, 옷, 책, 그리고 모든 직종의 노동자가 생산하는 모든 것을 원합니다. 누구도 혼자서 자신의 모든 필요를 충족할 수 없습니다. 땅을 갈기 위해서라도, 저희는 대장장이와 도구 제작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나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철을 파내는 광부, 집과 가게를 짓는 석공 등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나요? 그러므로 결론은 모두가 땅을 일궈야 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직종의 다양성은 각자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을 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렇게 노동은 운동이며 간절히 원하는 즐길 거리가 될 것입니다.

윌리엄 : 그럼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직종을 고를 수 있는 것인가?

잭 : 물론이죠. 다만, 일부 직종이 일손난에 시달리는 가운데 다른 직종은 일손이 넘쳐나서는 안 되겠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할 것이니, 저희는 정말로 필요한 모든 것이 생산됨과 동시에 개인의 바람이 충족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목적이 불분명한 일을 빵 껍데기만을 주며 강제하는 주인이 없을 때, 그것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윌리엄 : 그렇게 현실이 될 것이라 말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네. 나는 그 누구도 불쾌한 일을 하려들지 않으리라 생각하네. 나는 모두 변호사나 의사가 될 것이라 보네. 누가 밭을 일구겠는가? 누가 목숨과 건강을 걸고 광산으로 내려가겠는가? 누가 어두컴컴한 하수구로 내려가 청소하겠는가?

잭 : 변호사는 논외로 두시죠. 변호사와 성직자는 사회의 고름 정도에 지나지 않고 혁명이 이를 치유할 것입니다. 이웃을 희생해 진행되는 직업 말고 쓸모있는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자고요. 그렇지 않으면 부지런한 도둑도 노동자가 됩니다. 오늘날 저희는 어느 직종을 다른 직종보다 선호합니다. 그건 우리의 취향과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취득하기 더 쉽거나, 소득이 더 좋거나, 그러길 바라거나 또는 그 직종에서의 취업이 가장 잘 보장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다른 일보다 더 불쾌한지는 이런 점을 고려한 다음에나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어느 한 사람의 직종 선택은 태생이나, 운이나 사회적 선입견에 의해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농사꾼의 일은 가장 가난한 도시민조차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농사 자체에는 불쾌한 요소가 없습니다. 그리고 밭도 밭만의 묘미가 있죠.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문학을 읽으면 농촌 생활에 매우 긍정적인 시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책을 쓰는 시인은 밭을 갈아본 적도 없다는 거죠. 농민은 반 굶어가며 일하고,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아무 존중도 받지 못해 도시의 가장 불행한 사람마저 그와 자리를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데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아저씨는 어째서 누가 농민이 되길 바라십니까? 촌에서 태어난 저희도 최대한 빨리 그곳을 벗어나려 합니다. 왜냐하면 어디서 뭘 하든 이곳보다는 나을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희가 원하는 대로, 안식을 취하면서 자유롭고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다면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농촌을 벗어나겠습니까? 다른 직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더 어렵고 더 필요한 일일수록 보수가 더 적고, 더 멸시받고 더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서 행해져야만 하죠. 예를 들어, 금세공인을 방문하면 그가 일하는 곳은, 저희가 노동하는 이 망할 곳보다 깨끗하고, 환기가 잘 되고, 노동시간이 길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생산하는 것의 대부분을 고용주가 취해 임금이 좋지 못하더라도, 다른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그는 오후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는 작업복을 벗고 원하는 곳을 눈치 보지 않고 찾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칼장수를 방문한다면, 그는 작업장에서 형편없는 임금을 받으며 몇 년 있으면 삶을 끝내버릴 유독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일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일을 마치고 그가 신사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면, 그는 망신당하지 않으면 운이 좋은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누구든 금세공이 되는 것을 칼장수가 되는 것보다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펜 말고 다른 도구는 사용하지도 않는 노동자의 경우는 따질 필요도 없고요. 생각해보세요. 질 낮은 기사를 쓰는 사람이 농사꾼보다 임금을 열 배는 더 많이 받고 더 존중받습니다. 기자, 엔지니어, 의사, 예술가, 교수는 자신의 일을 잘 하는 것으로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식자공, 벽돌공, 수선공 등의 온갖 노동자와 심지어 일부 교사와 정신노동자는 굶으며 혹사당하며 일합니다. 저는 자연을 정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문명인이 되고, 더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의사와 엔지니어와 화학자와 교사는 모두 농사꾼과 육체노동자만큼 현대 사회에 있어 중요합니다. 저는 단지 모든 필요한 노동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 노동자가 일을 함에 있어 동등한 만족감을 얻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그 자체로 큰 기쁨이 되고 무식한 자를 억누를 수 있는 거대한 우월함을 부여하는 지적 노동은, 일부의 손이 아닌 모두의 손에 닿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윌리엄 : 하지만, 자네가 말하는 바와 같이 지적 노동이 큰 기쁨이고 그것을 행하는 자에게 무식한 자 위에 설 수 있는 거대한 우월함을 부여한다면 모두가 지적 노동을 하고 싶지 않을까? 나 또한 다른 누구만큼이나 그렇고. 그렇다면 누가 육체노동을 할 것이란 말인가?

잭 : 모두가 해야 합니다. 문학과 과학을 공부함과 동시에 육체노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머리와 손을 사용하며 일해야 할 것입니다. 이 두 종류의 노동은, 서로를 방해하기 보다는 서로를 보강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모든 기관을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뇌만큼이나 근육 역시 인간의 기관이죠. 지성이 발달했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육체노동을 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건강한 사람은, 육신을 건강하게 단련하는 사람만큼 머리가 깨어있고 밝은 상태에 있습니다. 나아가 두 종류의 노동 모두 필수적인 만큼, 그리고 지적 노동이 육체노동보다 쾌적하고 인간의 자의식을 일깨워 스스로의 존엄성을 깨닫게 만드는 만큼, 인류의 일부는 과도한 육체노동의 형벌에 처하고 그렇지 않은 소수는 권력을 의미하는 과학의 특권을 누린다는 것은 정의롭지 않습니다. 따라서 다시 말하겠습니다. 모두가 육체노동과 지적 노동을 해야 합니다.

윌리엄 : 그건 나도 이해할 수 있네. 하지만 쉬운 육체노동과 어려운 육체노동이 있네. 어떤 것은 아름답고, 어떤 것은 끔찍하네. 자 그럼, 누가 광부가 되고 또는 누가 청소부가 되겠는가?

잭 : 아저씨, 어떤 발명과 연구가 매일 진행되는지 알기만 했다면, 육체노동이 그것을 불쾌하고 해롭고 힘들게 만드는 조건 없이 행해질 수 있으리란 사실을 알 것입니다. 단지 스스로 일하지 않아서 노동자의 편의를 생각하지 않는 자에 의해 노동의 과정이 조직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발적으로 어떤 일을 하기로 선택한 노동자들이 기꺼이 그 일을 할 겁니다.

이것이 당장 오늘 가능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모두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연구와 노력은 노동을 덜 힘들고 더 즐겁게 만드는데 집중될 것입니다. 그래도 힘든 작업에 대해서는 일부 특별한 이득을 부여해서 불평등을 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사람들이 공공을 위해, 공동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면, 가족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형제애와 동의의 마음이 그들 가운데 솟아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만을 위한 길을 찾지 않고 오히려 가장 힘든 일을 대신해서 하려 할 것입니다.

윌리엄 : 그래, 그렇다 치지. 하지만 그리 되지 않는다면?

잭 : 물론,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자진해서 하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 남을 수 있습니다. 그 경우, 우리 모두가 각자 조금씩 분담하여 그것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하루나 일 년에 일주일을 맡는 그런 식으로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그것을 행할 방법은 반드시 찾아질 것입니다.

윌리엄 : 그래, 듣고 나니 설득되는 것 같네. 하지만 아직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네. 상류층의 재산을 빼앗는 것은 큰일 같네. 나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방법으로는 할 수 없는가?

잭 :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부자가 남아있는 한 그들은 독불장군처럼 우리의 이익은 고려하지도 않고 자신만을 챙길 것입니다. 애초부터 그래왔듯이요. 하지만 왜 상류층의 재산을 빼앗기를 주저하시나요? 그게 불공평하고 그릇된 일이라 생각하시기 때문일까요?

윌리엄 : 아니, 그렇지 않네. 자네 말을 듣고 나니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 것은 매우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되네. 그들이 먹어 치우고 있는 우리들 몸을 되찾아오는 것이니. 그리고 우리는 그 부를 우리 자신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서 찾아오는 것 아닌가?

잭 : 정확합니다. 그리고 문제를 좀 더 자세히 바라보면 부자에게도 득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부리고, 거드름과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그만둬야 할 것입니다. 그는 일을 해야 할 것이지만, 노동자와 힘을 합해 일을 한다면 그것은 유용할 뿐만 아니라 유쾌한 것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부자는 사냥을 가지 않나요? 말을 타거나, 체조를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운동을 해 육체적 활동은 배불리 먹은 건강한 인간에게 필요하고 즐거운 활동이라는 사실을 보이지 않나요? 단순히 유흥을 위해 사용하던 힘을 생산을 위해 사용하는 것 말고는 그의 삶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건강으로 인한 얼마나 많은 이점이 있는데요! 우리 눈으로 보는 것들을 예로 듭시다. 일부 부자는 자기 집에서 영주 놀이를 할 수 있지만, 길거리는 우리에게처럼 그에게도 끔찍하고 더럽습니다. 빈민가에서 피어나는 안 좋은 공기는 우리 모두를 병들게 합니다. 그들의 사유재산으로는 온 나라를 개선할 수 없지만,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간단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가난은 그의 삶에 끊임없는 위협이고 그에게 수 만 가지 방법으로 간접적으로 작용합니다. 난폭한 혁명의 위협을 제외하고도요. 그러니 부자의 재산을 빼앗는 것은 그에게 오직 이롭기만 한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는 이 사실을 이해하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죠. 왜냐하면 그는 명령을 내리기를 즐기고 가난한 자가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을 즐기니까요. 하지만 중요한가요? 그가 우리와 타협을 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최악의 상황만이 기다립니다. 그가 협조하도록 강요하는 방법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윌리엄 : 그래, 좋아. 하지만 그걸 조금씩 조금씩, 상호 합의로 할 수는 없는 건가? 재산은 가진 자들에게 남겨주되, 임금을 올리고 우리를 인간처럼 대한다는 조건으로 말이야. 그런 다음, 점진적으로 우리도 무언가를 축적하고 우리도 작은 땅을 사고 유산자가 된다면 모든 것을 공동으로 두는 거야, 자네 말 대로 말이지. 이런 말을 하는 다른 젊은이가 있던 것 같은데.

잭 : 잘 들으세요! 우호적인 방법으로 일을 푸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유산 계급이 자신의 재산을 자의로 돌려놓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저씨도 알다시피,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무 쓸모도 없죠. 사유재산이 존재하는 한, 그러니까 땅이 모두의 것이 아닌 ‘베드로’나 ‘바울로’의 것인 한, 가난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고 모든 것은 안 좋아지기만 할 것입니다. 사유재산 아래서는 언제나 모두 각자의 방앗간에서 일하려고만 합니다. 유산 계급은 노동자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만을 주려고 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각자 자신의 생산물을 최고가로 팔려고 하고, 각 구매자는 또 한편으로 최소한의 값에 사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대규모로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는 지주와 생산자와 거대 상인은 기계를 마련하고, 시장이 이로울 때를 이용하고, 판매하기 위한 최적의 때를 기다리거나 때때론 손해를 보면서도 매물을 내놓습니다. 그렇게 작은 규모의 소유주와 소상인은 가난해져 그들과 그 자식들은 일급을 받으며 일하러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입니다. 그렇게 매일 우리가 보듯이, 혼자서 또는 적은 수의 장인과 일하는 자는 잠깐의 경쟁 후 장사를 접고 공장으로 일하러 가게 됩니다. 농사를 위한 충분한 자본을 구하지 못하고 십일조와 세금마저 낼 수 없는 소농은 대지주에게 토지와 집을 팔아야 합니다. 마음씨 착한 고용주가 진정으로 자기 노동자를 위했다면, 그는 단순히 경쟁으로 인해 망하는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배고픔은 노동자들을 서로 경쟁하는 쪽으로 몹니다. 그리고 항상 일에 필요한 것보다 많은 일손이 존재하다 보니, 그들은 항상 서로의 입에서 빵을 빼앗고 있죠. 이는 해야 하는 일이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특정 순간에 그 일을 함으로써 고용주에게 득이 되는 일이 얼마 없다는 것이죠. 이 상황 덕분에 진보는 불행이 됩니다. 기계가 발명되는 즉시 몇몇 사람들이 일자리에서 해고됩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벌지 못하고 예전처럼 소비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다른 노동자의 돈벌이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치죠. 미국에서는 방대한 양의 땅덩이가 경작되고 많은 양의 곡물이 생산됩니다. 당연히 지주는 미국에 있는 모두가 먹을 것이 충분한지 묻지 않고 그 곡식을 이곳으로 보내 이득을 봅니다. 이곳의 곡물 가격은 낮지만 가난한 자는 그 이득을 취하지 못합니다. 낮은 가격과 경쟁할 수 없는 유럽의 지주는 가장 생산적인 토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경작하지 않고 그러면 다수의 농민이 일을 잃게 되니까요. 단 한 푼도 없는 사람에게 값싼 빵은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윌리엄 : 아, 이제야 이해했네! 해외에서 곡물이 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들었네. 우리나라로 음식이 못 들어오도록 막는 건 악질이고 상류층과 농부가 서로 짜고 인민을 굶기려 한다 생각했네. 하지만 이제서야 그들은 그들만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해했네.

잭 : 아뇨, 아닙니다. 곡물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다른 관점에서 매우 안 좋은 일입니다. 외부로의 경쟁에 대한 압박이 없다면 지주와 농부는 자신들이 원하는 값에 팔았을 것이고….

윌리엄 :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잭 : 해야 할 일이요?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모든 것을 공동으로 둬야 합니다. 그렇게 돼야 생산물이 많을수록 좋을 것입니다.

윌리엄 : 하지만 이제 말해보게. 재산의 주인과 이런 계약을 세우면 어떨지. 그들은 토지와 자본을 제공하고 우리는 노동을 제공하는 것으로 말일세. 생산물은 그들과 우리들이 함께 나눠 갖는 걸세. 이건 어떻게 생각하나?

잭 : 우선, 아저씨가 나눠 가지려 한다고 해도 십중팔구 아저씨의 주인은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계약을 유산자에게 강요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경우, 왜 절반으로만 만족하나요? 왜 부당함과 기생을 계속적으로 허용하고 생산의 증가를 제시할 뿐인 체계로 만족하나요? 일하지 않는 자가 노동자가 생산한 것의 절반을 가져갈 수 있는 무슨 권리가 있나요? 또한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고용주가 생산량의 절반을 가져갈 뿐만 아니라 생산 총량이 실제 가능한 최대치에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유재산과 고립된 노동이 있는 곳에서는 공동 생산되는 곳보다 적게 생산되니까요. 바위를 움직일 때 따로 혼자서 시도하는 백 명의 일꾼은 성공하지 못하지만, 힘을 합친 두세 명은 바위를 간단히 들어 올릴 수 있는 것처럼요. 누군가 핀을 만들고 싶을 때 저는 그가 핀을 한 시간 안에 만들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협동하는 열 명은 하루에 수천 개의 핀을 만들 수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계급적 편견에 경도된 경제학자들 다수는 빈곤이 상류층이 재산을 장악한 결과가 아니라 자원의 희소성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해왔습니다. 그들이 말하길, 이 희소성에 의해 자원이 모든 인간에게 분배되기에 부족할 것이랍니다. 이는 경제학자와 그 추종자들이 빈곤은 그 어떠한 대책으로도 막을 수 없는 불가피한 것이라 결론지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단 한마디도 믿지 마십쇼. 오늘날의 사회 구조에서도 땅과 산업의 산물은 모든 이가 편히 지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합니다. 충분하지 않다면 이는 고용주의 탓입니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벌 수 있는지 외에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상품을 파괴하거나 썩게 둡니다. 그는 자원이 충분하지 않은 척하면서 심지어는 더 많은 양의 땅을 경작하지 않은 채 두고 여러 노동자를 할 일 없이 둡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도 일부 경제학 학파는 모든 토지가 가장 영리한 방법으로 경작되더라도, 대지의 생산력은 한정적이라고 말합니다. 인구는 제한없이 증가하고요. 그래서 식량생산은 항상 고정적인 반면 인구는 끊임없이 증가하여 어느 순간 기아가 발생할 거라는 거죠. 이 학파가 결론 내리길, 사회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가난한 자가 적은 수의 자식을 갖는 것입니다. 제가 임대법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 학파의 제안은 우리 사회악의 치료제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구성을 바꾸고 모든 땅을 경작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나 인구가 지나치게 빨리 증가하고 있다 여겨지면 어떻게 조정할지 의논할 수 있습니다.

자, 유산자와 무산자 사이의 생산물 공유에 대한 논의로 돌아갑시다. 이런 공유제도가 프랑스 일부 농경지역에 존재했었다고 하더군요. 토스카나Tuscany에서는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지만 점차 없어지고 있습니다. 지주가 일급을 지급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더 이득이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기계와 과학적 문화와 수입 곡물 때문에 오늘날 주인들은 대규모 농작을 해야 하고 임금노동자를 사용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죠. 이 체제가 계속된다면, 재산은 더 적은 수의 사람의 손에 들어갈 것이고 노동자는 기계와 빠른 생산 속도에 의해 완전히 비참한 상태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주인이랄 수 있는 소수의 금융가와 자본가, 기계를 다루는 일부 노동자, 그리고 앞서 말한 거인들을 섬기고 방어하는 다수의 하인과 경찰을 갖게 될 겁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굶어 죽거나 구호로 연명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이미 볼 수 있죠. 작은 토지는 사라지고 있고 실업자 수는 증가합니다. 상류층은, 두려움에서인지 연민에서인지, 무료 급식소를 차리고 구세군the schemes of General Booth을 운영하는 데 열심입니다. 사람들은 과거 수도원 앞에서 했던 것처럼 부유한 자선가나 지역 위원회에 빵을 구걸하는 상태로 전락하기 싫다면, 하루빨리 토지와 기계를 쟁취하고 자신들이 계획한 대로 일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윌리엄 : 하지만 정부가 부자에게 강요해 가난한 이가 굶지 않게 한다면 어떻겠나?

잭 : 진부한 얘기입니다, 윌리엄! 정부도 상류층으로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률을 만들까요? 가난한 자가 정부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해도, 부자가 다시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수단을 남겨둘 이유가 됩니까? 장담하건대,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다면 가난한 자는 어떤 돌발적인 사건을 통해 순간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부자가 반드시 권력을 쥐게 됩니다. 바로 이 이유에서, 우리가 단 한 순간이라도 우위를 잡게 된다면, 우리는 부자로부터 재산을 빼앗아야 합니다. 그래야 부자가 원상 복귀할 수단이 없게 할 수 있습니다.

윌리엄 : 이해했네. 우리는 진정한 공화국이 필요하네. 모든 이를 동등하게 만들고, 일하는 자는 밥을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는 굶는 것이네. 바보 같은 이 늙은이를 용서하게. 자네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네.

잭 : 자, 자, 아저씨! “공화국”이라면 아저씨는 당연히 “사회 혁명”을 일컫는 것이고 아저씨를 이해하는 자에게는 아무 문제 없겠죠. 하지만 이건 서툰 표현입니다. 보통 “공화국”이라 불리는 것은 아저씨가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공화정은 다른 모든 정부와 다를 것 없는 정부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단지 왕 대신 그와 같은 권력을 쥔 대통령과 장관이 있을 뿐이죠. 해협 너머의 상황에서 잘 볼 수 있죠. 그리고 설령 프랑스인들이 그 급진파가 약속한 것과 같은 민주공화국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들은 더 잘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두 개의 의회 대신 국민의회 하나만 갖게 되겠지만, 의원 양반들의 달콤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인민은 여전히 군인이 되고 노예처럼 일하게 되지 않습니까?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는 한, 부자는 항상 우위를 쥐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공화국 아래 살건 왕정 아래 살건 사유재산으로부터 나오는 결과는 항상 똑같이 존재할 것입니다. 경제 관계가 경쟁의 통제하에 있는 한, 재산은 소수의 손안에 있을 것이고 기계는 노동자로부터 일을 뺏을 것이고 대중은 빈곤에 빠질 것입니다. 존재하는 공화국 중 하나라도 노동계층의 삶을 정말로 개선했습니까?

윌리엄 : 정말 그렇군, 그래! 난 항상 공화정은 평등을 뜻한다 생각했건만!

잭 : 네, 공화주의자는 그렇게 말하죠. 그들이 말하기를, “진정으로 민주주의적인 공화국 아래에서 법을 만드는 의원은 전체 인민에 의해 선출됩니다. 결과적으로 인민이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의원을 더 좋은 의원으로 바꾸고 모든 것은 해결됩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가 대다수이기에,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는 바로 그들입니다.” 공화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상당히 다르죠. 가난한 자의 빈곤은 그를 무지하고 미신적인 상태로 만듭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자신에게 진짜로 이로운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한, 그는 그 상태 그대로 남을 것입니다. 아저씨와 저는 남보다 좀 더 벌 수 있을 만큼 운이 좋았고 조금이나마 공부할 수 있어 우리에게 이로운 것을 이해하는 지력과 고용주의 복수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현상이 유지되는 한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혁명 중에는 한 명의 용감한 자가 여러 겁먹은 자들만큼의 역할을 해내고, 혼자서는 절대로 봉기할 기운이 없는 이들을 끌어들입니다. 하지만 투표함 앞에서는 인격과 기운은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단순히 숫자만이 중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재의 상태에서 이 수는 매일 빵을 먹을 수 있고 마음대로 그 빵을 나누거나 숨길 수 있는 자에게로 갑니다. 눈치채지 못하셨나요? 오늘날 대부분 유권자는 가난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기들을 대표하고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기 계층의 사람을 뽑는 걸 얼마나 자주 보셨습니까?

윌리엄 : 그래, 대부분은 지주나 목사나 고용주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 들지 않지. 그랬다면, 그들은 아마 해고되거나 집에서 쫓겨났을 거야.

잭 : 보통선거권에 기대하는 희망적인 전망과 반대의 상황 아닙니까? 사람들은 반드시 중산층의 사람을 의회로 보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의원은 항상 인민을 최대한 종속시키고 순종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아무리 가난한 자들이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노동자를 의회에 보내도, 그렇게 부패한 곳에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시도를 한 소수는 그 어떤 국가에서도 그 수가 그렇게 의미 있지 않았습니다. 다음 혁명이 오면, 인민은 민주주의자와 공화주의자에 의해 항상 그래왔듯 기만당해선 안 됩니다. 사람들은 공화국이 가능한 최고의 조직이며 그들의 상태를 놀랍도록 개선할 것이라 믿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에 언제나 공화국을 약속받는 순간 무기를 내렸습니다. 다음 시기에 인민은 빈말에 만족하지 말아야 하고, 단호하게 재산을 쟁취해야 합니다.

윌리엄 : 맞는 말이네. 우리는 너무 많이 기만당했네. 이제 눈을 뜰 때가 됐네. 하지만 언제나 정부는 필요하네. 명령을 내릴 사람이 없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간단 말인가?

잭 : 왜 명령을 받아야 하는 건가요? 왜 우리 일을 우리가 스스로 관리할 수 없나요? 지배하는 자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인민을 배신합니다. 권력은 가장 선한 사람마저 자만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두머리를 거부해야 하는 주요한 이유입니다. 인간은 양 떼처럼 끌려다니기를 멈춰야 합니다.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존엄성과 힘을 자각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교육받고, 자유와 자기 일에 책임지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인민은 자기 자신을 위해 행동하고 그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내버려져야 합니다. 자주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겠지만, 그 결과를 직접 겪고, 자기가 실수를 했고 다른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간섭받지 않는 인민이 자기 자신에게 입힐 수 있는 해는 최고의 정부가 입힐 해의 만분의 일만큼도 안 될 것입니다. 아이가 걷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넘어질 가능성을 두려워 말고 혼자 걷게 내버려둬야 합니다.

윌리엄 : 그래 맞네. 하지만 아이가 걷기 전에는 다리에 조금이라도 힘이 있어야 하네. 힘이 하나도 없다면 어미의 품에 안겨야 하네.

잭 : 맞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전혀 어머니와 같지 않습니다. 한 나라를 개선하고 개발하는 건 정부가 아닙니다. 실제로, 사회의 진보는 거의 항상 정부의 반대 세력에 의해서나 정부와 무관하게 이뤄집니다. 정부가 하는 일은 대중이 필요하고 바라기 시작한 것을 법의 형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마저 지배와 독점으로 망치고 말죠. 인민은 서로 다른 진보의 단계에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문명의 단계에서든, 심지어 야만의 상태에서도 인민은 자기 가운데 생겨난 정부 없이 자기 일을 더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한, 아저씨는 가장 영리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로 이뤄진 정부를 선호하십니다. 그런 건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정부는 가장 돈이 많은 자들로 직접적으로 이뤄지거나 그들의 이해를 대변합니다. 그리고 권력의 행사는 가장 선한 영혼도 타락시킵니다. 지금까지 최고의 인품을 가진 자가 정부에 들어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시죠. 그는 더 이상 인민의 필요를 이해하지 못하고, 정치가 낳은 이해관계에 시간을 허비하고, 사회적 평등에 대한 시각의 부재로 타락하고, 듣지도 못한 것에 대한 법을 만들기 위해 자기가 진정으로 유능한 행동 영역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다른 존재보다 우월하다 믿게 되고, 인민을 감시하고 좌절시키는 것 외에는 돌아보지 않는 계층을 만듭니다. 다른 직종과 지역의 노동자와 합의를 통해 노동자의 일은 노동자가 직접 관리하는 것이 더욱, 아니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영국과 유럽을 넘어서 전 세계와 그렇게 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서로 형제이고 서로를 돕는데 관심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윌리엄 : 그래,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사악한 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도둑과 강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잭 : 우선, 사유재산과 무지가 더 이상 없을 때 우리는 그런 류의 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걱정이 남았다고 가정해도, 그 걱정이 정부와 경찰을 갖는 이유가 될까요? 우리 스스로가 도둑과 강도를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없나요? 오늘날처럼 결백한 자와 죄가 있는 자 모두를 학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없게 한 뒤, 최선을 다해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겁니다.

윌리엄 : 그럼 우리가 “사회주의”를 얻게 된다면, 모두가 행복하고 만족할 것이며, 사악함과 혐오와 질투와 매춘과 전쟁과 부당함이 없을 것이라는 말인가?

잭 : 인류가 얼마나 안녕할지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단 나아질 것이라는 건 압니다. 아시다시피, 인간은 개선을 추구할 것이고 그렇게 이뤄진 진보는 일부가 아닌 모두를 위하게 될 것입니다.

윌리엄 : 하지만 이 모든 게 언제 일어날 것이란 말인가? 난 늙었고 세상이 지금 이 상태로 영원히 있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난 지금, 정의의 날을 보지 못하고 죽고 싶진 않네.

잭 : 언제 일어날 것이냐고요? 모르겠습니다. 저희 손에 달렸죠.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할수록 변화는 더 빨리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미리 말해둬야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미 좋은 진보가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사회주의”를 설교하는 이는 극히 소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보, 미치광이 또는 방화범으로 몰렸습니다. 오늘날에는 이 사상을 이해하는 자는 많습니다. 과거의 가난한 자는 침묵 속에 고통받거나 배고픔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의 비극의 원인이나 해결책에 대해 알지도 못한 채 말입니다. 그렇게 학살당하거나 서로를 학살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전 세계에서 공통된 이해관계를 가지고 고용주와 정부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생각으로 소란과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들은 자신의 힘 말고는 의지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그들의 고용주들이 속해 있는 모든 정당이 똑같이 자신들의 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지금이 우리의 생각을 퍼뜨려야 할 시기적절한 때입니다. 문제를 이해하는 모든 이가 더 가까이 연합해야 합니다. 들끓고 있는 대중을 선동합시다. 모든 불만과 소동과 반란으로 우리의 이익을 찾읍시다. 두려움과 망설임 없이 뜨거운 철을 망치로 내리칩시다. 그렇게 되면 중산층은 끝이 날 것이고 행복의 통치가 시작될 것입니다.

윌리엄 : 좋네. 다만 비용을 고려해야 하네. 고용주의 재산을 가져오겠다고 말하기는 쉽네. 하지만 경찰이, 군대가 있네. 생각해보니, 수갑과 총칼은 무엇보다도 중산층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게 맞구만.

잭 : 그건 지극히 자명합니다. 하지만 무기를 사용하고 화약과 멜리나이트로 우리를 노예로 잡아두려는 건 중산층 정부인만큼, 우리 또한 현대의 과학적인 전쟁기구로 그들과 같은 수단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거대한 다수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사회주의의 이점을 이해하고 경험하기 시작한다면, 지구상 그 어떠한 힘으로도 그들을 지금 이 상태로 남아있게 강압할 수 없습니다. 노동하고 모든 것을 만드는 건 가난한 이들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세요. 단지 그 중 큰 일부가 일을 멈춘다면, 큰 공황이 일어나 얼마 안 가 혁명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리고 군인의 다수도 가난한 사람으로, 그들은 배고픔에 의해 자신의 형제에게 상처를 입히고 도축하는 일로 자신을 팔아버리고 있죠. 진실을 마주하고 이해하는 즉시, 그들은 처음에는 비밀리에 그리고 후에는 공개적으로, 인민을 지지할 것입니다. 혁명은 생각하는 것의 반만큼도 어렵지 않습니다. 핵심은 혁명의 상을 끊임없이 전면에 두고 항상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행동할 기회가 어떻게든 올 것이란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윌리엄 :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나는 믿겠네. 하지만 혁명은 아무 쓸모도 없고 모든 건 천천히 개선될 것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잭 : 사회주의가 진지하게 다뤄지기 시작한 뒤로 중산층은 사회주의를 매우 두려워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들은 폭풍의 방향을 틀고 인민을 기만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했습니다. 황제를 포함한 모든 이가 사회주의자를 자칭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주의”가 무슨 가치가 있는지 설명드리죠. 우리 동지 중에도 상류층의 관심에 경도되고 혁명의 대의를 저버린 채 얻을 수 있는 과실에 유혹된 배신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법적 수단을 사용하고 모두 어느 정도 사회주의적이라고 말하는 정치 정당과의 연합을 주장합니다. 하원의 하코트Harcourt라는 의원이 “우리 모두 어느 정도 사회주의자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 작자는 혁명가를 바보나 더 부정적으로 봅니다. 일부는 여전히 혁명을 원한다고 말하면서 하원 의원이 되기를 더 간절히 원합니다. 그 누가 아저씨에게 혁명은 필요 없다고 말하고 하원 의원과 지방 의원 임명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한다면. 중산층 정당과 공동의 목적을 갖는 것에 대해 말한다면. 그가 중산층 사람이거나, 중산층 사람이 되길 원한다면. 그럴 경우 그에게 꺼지라고 말하세요. 자신을 사회주의라 착각하는 자 중에는 선한 의도를 갖고 정말로 그렇게 행하려는 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정말로 선을 행사하고 있다 믿는 이가 아저씨를 반쯤 죽을 때까지 마구 팬다면, 아저씨는 그의 손에서 방망이를 빼앗을 생각을 가장 먼저 할 겁니다. 그의 선한 의도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저씨가 빼앗은 방망이로 자기 머리통을 깨는 것을 막는 것뿐입니다.

윌리엄 : 바로 그걸세! 하지만 자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또 하나 생겼네. 자네가 “사회주의자”라고 할 때, 정확히 누굴 가리키는 건가? 자주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집산주의자,” “아나키스트”라는 말을 듣는데, 대체 그 단어들이 뭘 뜻하는지 나는 하나도 모르겠네.

잭 : 아, 그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눈치채시니 기쁩니다. 단어의 정의를 설명하는 것만한 것도 없죠. 들어보시죠. 사회주의자는 사회악의 근원은 재산이고, 재산이 철폐되지 않는 한 무지와, 노예제와, 정치적 불평등 그리고 매춘을 비롯한 인민을 끔찍한 상황에 놓는 그 어떤 악도 뿌리 뽑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입니다. 실제 필요에 의해 나타나는 무시무시한 고통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 사회주의자는 땅, 원자재, 기계 그리고 모든 생산수단이 소수의 손에 들어있기에 빈곤이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사회주의자가 믿기에, 이 소수는 노동자 계급 전체의 목숨을 사용할 수 있고, 아무것도 없는 프롤레타리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들 사이에서도 재산을 소유하기 위해 무한한 다툼과 경쟁 속에 놓여있습니다. 사회주의자는 사유재산, 즉 원인을 제거해 그 결과인 빈곤을 없앨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재산은 폐지될 수 있고 폐지돼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부의 구성과 분배는 인간의 진짜 이익에 따라 결정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상이 더 강했거나, 운이 좋았거나, 더 간악했다는 이유로 중산층이 자기 자신을 위해 주장하는 기득권에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래서 “사회주의자”라는 단어는 사회의 부는 모든 인간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고 재산의 소유자와 프롤레타리아, 부자와 가난한 자, 고용주와 고용인이 더 이상 있어선 안 된다고 믿는 모든 이를 일컫는 단어입니다.

윌리엄 : 그런 자네가 사회주의자임은 확실하군. 하지만 “코뮌주의자”와 “집산주의자”는 무슨 말인가?

잭 : “코뮌주의자”와 “집산주의자” 모두 “사회주의자”입니다. 하지만 둘은 재산이 공동으로 놓일 경우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산주의자는 노동자나 노동자 협회가 원자재와 생산수단에 대한 권리를 갖고 각자 자기가 생산한 것의 주인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생산물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지만, 죽은 이후에는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은 협회로 돌아갑니다.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자식도 자신의 노동과 그 과실을 즐길 권리가 있습니다. 단 한 가지라도 물려받을 수 있게 한다면, 그건 불평등과 특권의 첫걸음이겠죠. 아이들의 교육, 노약자의 부양 그리고 전반적인 공공사업에 관해선 각 노동자 협회는 공동체의 일원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제공해야 합니다.

코뮌주의자는 사람들 사이의 일이 잘 풀리기 위해서는, 인간이 서로를 사랑해야 하고 한 가족의 일원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재산은 공동화돼야 합니다. 가능한 생산성을 높이고 기계의 도움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동은 노동자들의 큰 집단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모든 종류의 땅과 기후를 최대한 활용하고 각 지역이 가장 잘 생산할 수 있는 것을 생산하기 위해, 그리고 다양한 나라 사이의 경쟁과 혐오를 피하기 위해, 전 세계의 인류 사이에 완벽한 연대를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나’와 ‘너’가 하는 것을 구분지어 혼돈을 유발하는 것을 감수하기보다는, 모두가 함께 일하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둬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각 개인은 모두를 위해 충분한 양이 생산될 수 있도록 사회에 자신의 최선을 다해 기여할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 자기가 필요한 것을 가져가고, 각자의 필요는 모두를 위해 충분히 생산되지 않은 것에 한해서만 제약을 받게 됩니다.

윌리엄 : 잠깐 기다리게, 자네! “연대”라면 무슨 말인가? 사람들 간의 연대가 있어야 한다고 자네가 말했지만, 난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못했네.

잭 : 들어보세요. 예를 들어 아저씨의 가족에서, 아저씨와 아저씨의 형제, 그리고 아내와 자식은 버는 모든 것을 공유합니다. 먹을 것을 조금 구하면 다 함께 먹고 모두가 먹을 만큼 충분하지 않으면 모두 조금 굶습니다. 가족 중 하나가 운이 좋아 평소보다 더 번다면, 그건 모두에게 좋은 것입니다. 반면에, 가족 중 하나가 실직하거나 병에 걸리면, 그건 모두에게 안 좋은 것입니다. 가족 중 실직한 사람은 나머지와 똑같이 식사하고 병든 사람은 그 누구보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죠. 따라서 아저씨의 가족에서는 서로의 일과 빵을 빼앗으려 하기보다는 서로를 도우려 합니다. 한 명의 기쁨은 모두의 기쁨이고 한 명의 불행은 모두의 불행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질투와 혐오를 멀리하게 되고, 이해관계가 갈라진 콩가루 집안에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 상호 애정이 발달합니다. 그것이 연대입니다. 진정으로 단합된 가족으로 존재하고 싶다면 이 연대를 인류 전체에 설립해야 합니다.

윌리엄 : 이해했네. 하지만 하던 얘기로 돌아가세. 말해보게, 자네는 집산주의자인가, 코뮌주의자인가?

잭 : 저는 코뮌주의잡니다. 왜냐하면, 서로 친구가 되기 위해 인민은 반쪽만 친구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집산주의는 경쟁과 혐오의 균을 남겨둡니다. 하지만 전 그것보다 더 멀리 갑니다. 각자 자기가 생산한 것으로 살 수 있다고 해도, 집산주의는 코뮌주의보다 열등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고립시키고 그의 힘과 공감 능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구두 수선공은 자기 구두를 먹을 수 없고 대장장이는 철로 살 수 없습니다. 또한 농부도 철을 다루고 도구를 생산하는 노동자 없이는 땅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각자 가지고 있는 것을 고려하며 여러 생산자 간의 거래를 조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구두 수선공이 자기 구두의 가치를 부풀려 구두를 거래할 때 최대한 많은 돈을 받으려는 것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입니다. 또 한편 농부는 그에게 최소한을 주려고 할 것이고요. 도대체 어떻게 이 상황을 관리한다는 말입니까? 제가 보기에 집산주의는 많은 문제를 만들고 혼돈을 초래하는 체제입니다. 반면에, 코뮌주의는 그 어떤 어려움도 일으키지 않을 겁니다. 모두 노동하고, 모두의 노동을 즐긴다면, 그렇다면 남는 건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내고 그것이 충분히 생산되도록 계획하는 것뿐입니다.

윌리엄 : 그렇다면 코뮌주의 아래에서는 그 어떤 돈도 원하지 않는 것인가?

잭 : 돈도 그것을 대신할 그 어떤 것도요. 생산을 필요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생산되는지에 대한 기록 말고는 말입니다. 유일하게 심각한 위험은 많은 사람이 일하기를 거부할 경우뿐입니다. 하지만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오늘날에는 힘들 뿐인 노동은 즐거운 것이 될 것이고 동시에 소수를 넘어선 윤리적 의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가 시작될 때 우리가 여태 받은 질 나쁜 교육의 결과로 일부 사람들이 일하기를 거부한다면, 그 사람들은 원자재와 간단한 도구만 주어진 채로 공동체 밖으로 내보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일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중요한 것은 땅, 원자재, 생산수단, 집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부가 공동으로 놓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성 방식에 대해선 인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실천만이 그들에게 최상의 체계를 보여줄 것입니다. 여러 지역에서는 집산주의를, 또 다른 여러 지역에서는 코뮌주의가 채택될 것이라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둘 다 실험에 놓이면, 둘 중 더 나은 것이 널리 도입될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누구도 다른 이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땅이나 생산수단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고, 만약 일어난다면, 무기를 동원해서라도 이를 막아야 합니다.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입니다.

윌리엄 : 그것도 이해했네. 하지만, 말해보게, “아나키즘”이란 무언가?

잭 : “아나키”란 “정부 없이”를 뜻합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정부는 중산층을 방어하는 것 외에는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익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가 직접 챙기는 것입니다. 우리를 복종시키는 법을 만들거나 변경할 하원 의원이나 지방 의원을 뽑는 대신, 우리는 우리 문제를 직접 토의할 것입니다. 다른 이가 우리의 결정을 이행할 필요가 있을 때 그에게 우리가 정한 대로 행동하도록 신신당부해야 합니다. 곧바로 해낼 수 없는 일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자에게 의뢰해 문제를 조사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뜻과 다르게 행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파견인은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고 법률을 강요할 권리를 갖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능력에 따라 선택된 사람으로, 어떤 권위도 없이 단순히 인민이 결정한 바를 실행하는 사람이 될 뿐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구두 수선공이 구두를 만들도록 의뢰받듯이, 누구는 학교를 개편하고, 누구는 도로를 만들고, 누구는 생산물의 교환을 관리할 것입니다.

윌리엄 : 부디 조금만 더 설명해주게. 어떻게 나 같은 무지한 노인네가 의원과 장관이 해내는 모든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잭 : 대체 그 의원과 장관이 뭘 하길래 아저씨가 그들이 하는 것을 할 수 없다고 한탄하시나요? 그들은 유산자의 이익을 위해 법을 만들고 공권력을 사용해 인민을 짓누릅니다. 그뿐입니다. 우리에게는 필요 없는 능력입니다. 장관과 의원은 좋고 유용한 일로 바쁘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특정 계층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하고 불필요하고 성가신 제정으로 진보를 가로막습니다. 예를 들어, 상류층은 철도에 매혹됐습니다. 하지만 왜 그럴까요? 엔지니어와, 정비공과 온갖 종류의 인부로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장관과 의원과 주주와 다른 기생충이 사라져도 기차는 변함없이 움직이지 않을까요? 우체국, 전신국, 항해국, 교육과 병원 등 직종에 관계없이 노동자에 의해 관리되는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는 해를 끼치기 위해 간섭할 뿐이죠. 정치인이 이해하는 정치는 우리에게 어려운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진지하게 인민의 실제 필요와는 아무 관계도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의 목표가 인민의 진짜 필요를 충족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보다 의원에게 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런던에 사는 하원 의원이 나라 안의 지방의 필요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우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도 그 언어를 할 수 없는 이들이 어떻게 다양한 직종과 산업의 이해관계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각자 자기가 알고 필요한 것에 신경을 썼다면 모든 건 매우 달랐을 것입니다. 일단 혁명이 일어나면 우리는 말하자면 아래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선전의 영향과 시대의 열정으로 각 지역이나 교구나 도시의 다양한 직종은 협회association를 이룰 것입니다. 그리고 한 직종이나 지역의 필요를 누가 이들보다 더 잘 이해하겠습니까? 그 이후 여러 직종이나 지역 사이에 협의가 필요할 때, 각각 특수한 회의에 보낼 대표자를 선출해 다양한 필요와 욕구의 조화를 이루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정은 언제나 인민의 이익이 방치되지 않도록, 그들이 대표하는 유권자의 동의 아래 이뤄질 것입니다. 그렇게 인류는 점진적으로 조화를 이룰 것입니다.

윌리엄 : 하지만 한 나라나 협회가 나머지와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수가 당연히 우세를 점하게 되지 않겠나?

잭 : 자동적인 우세는 아닙니다. 진실과 정의 앞에선 숫자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백 명, 천 명, 혹은 모두에게 반대하는 단 한 명이 옳을 수 있습니다. 실질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할 수 있는 걸 해야 합니다. 만장일치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대다수가 동의하는 방식이 그 동의한 집단 내에서 행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경험이 그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면 다른 이들도 그들을 모방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소수의 주장이 맞았던 것이 증명되고 그에 따른 행동을 취할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의 기반이 될 평등과 정의의 원칙은 위배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합의에 다다를 수 없는 문제는 그 수가 지극히 적을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이해관계의 분화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의 나라와 협회, 즉 같이 살아갈 사람들을 자유롭게 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또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안은 견해의 차이를 좁힐 수 없는 이론의 영역이 아니라,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실생활과 실증과학에 대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문제의 최선의 해결책이 경험을 통해 내려질 때, 다수결로 사람들을 짓누르는 방식보다는 어떻게 그들에게 해결책을 보여줘 설득할 것이냐가 문제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시민들이 씨앗을 뿌리는 계절을 정하기 위해 모인다면 비웃을 만한 일이지 않나요? 이미 경험으로 결정이 난 사안인데 말이죠. 완전히 고정된 안건이 아니라면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투표를 사용할 수 있죠. 모든 공적이고 사적인 일은 이렇게 다뤄질 것입니다.

윌리엄 : 하지만 누군가 단순한 황소고집과 방자함으로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반대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잭 : 그럴 경우 당연히 강제 조치를 취해야겠죠.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것이 부당한 것처럼, 그 반대도 상당히 부당하겠죠. 그리고 소수가 들고 일어날 권리를 가지고 있듯이, 다수에게는 자신들을 방어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어느 곳에서나 인간은 원자재와 생산수단에 대한 양도 불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물론 이는 완전히 만족스러운 해결책은 아닙니다. 협회에서 쫓겨난 개인은 많은 사회적 이익을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적 이익은 많은 사람의 협동을 통해서만 만들 수 있기에, 고립된 사람 또는 무리는 이를 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선호하십니까? 이 불평을 늘어놓는 자는 다른 여러 사람의 바람이 자신의 바람을 위해 희생되기를 정당하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연대와 형제애와 상호부조 그리고 필요에 따른 상호 고려와 지지가 성립되면 시민 독재나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장담하건대 인간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그들 사이에는 연대가 꽃필 것입니다. 압제와 내전은 모두에게 악입니다. 연대만이 우리 이상이 현실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고, 평화와 번창과 보편적인 자유를 가져올 것입니다. 또한 진보가 인간을 단결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더 독립적이고 자급할 수 있게 만든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땅 위로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선 철도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는 많은 사람들의 공동의 노동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아나키” 아래에서 여행자는 여전히 자기 필요를 다수가 최선이라 정한 우리의 필요와 규정에 맞춰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어떤 도로에서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혼자서 운전할 수 있는 기차를 만든다면, 모두 다른 이의 규정에 맞출 필요 없이 자기가 원하는 곳을 원하는 때에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그렇거나 미래에 그렇게 될 수천 가지의 다른 것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따라서 진보의 성향은 사람들 간의 특정한 관계를 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덕적 연대”와 “물질적 독립”을 향한 것이요.

윌리엄 : 그런 것이군. 그럼 자네는 사회주의자고, 사회주의자 중에서 자네는 코뮌주의자이며 아나키스트인 것이야. 하지만 자네가 국제주의자라고도 들었네. 그건 무슨 말인가?

잭 : 국제 노동자 협회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30여 년 전, 전 문명국가의 노동자 간의 협회가 세워졌습니다. 모든 땅의 노동자가 유산자 때문에 겪는 불의와 착취를 함께 논하고 보편적인 사회 혁명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함께 행동할 목적으로 말이죠. 특정 문명 수준에 다다른 각국의 노동자는 서로 비슷한 방법으로 착취당하고 지배계층은 대중을 짓밟기 위해 서로 뭉쳐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세계 모든 곳의 노동자의 공동의 이익은 국가적 차이보다 더 강력합니다. 그리고 착취자들이 협동하는 것처럼 노동자들도 함께 행동해야지만 자본주의의 멍에를 떨쳐낼 수 있습니다. 국제 노동자 협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노동자를 뒤흔드는 거대한 노동운동은 그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오늘날 중산층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는 국제 사회주의 아나키스트 혁명당International Socialist Anarchist Revolutionary Party 같은 여러 나라의 사회주의 정당도 그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이 정당의 목표는 아나키스트 사회주의의 신념을 널리 알리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유산자나 국가로부터 자의적인 합의를 찾는 것과 점진적인 헌법적 개혁은 희망이 없음을 보이는 것. 자신의 권리에 대한 의식을 향해 인민을 깨우고 봉기의 기상을 일깨우는 것. 사회 혁명, 즉 모든 정부를 파괴하고 모든 부를 공동의 것으로 하도록 부추기는 것입니다. 이 강령에 동의하고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동참하려는 자는 누구든 이 정당의 일원입니다. 이 정당은 우두머리도 권위도 없습니다. 오로지 같은 목적을 위해 싸우는 자들 사이에서 임의적이고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각 일원은 자기가 원하는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필요한 수단을 최선이라 생각되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퍼뜨릴 수 있습니다. 물론, 정당의 강령과 전략에 반대되지 않는 선에서요.

윌리엄 : 그렇다면 사회주의, 아나키즘, 혁명적 신념에 동의하는 모든 이들이 이 정당의 일원인가?

잭 : 아닙니다. 누군가는 우리 강령에 완전히 동의할 수 있겠지만, 무슨 이유에서든 강령에 동의하는 대중과 효과적인 연대와 협동의 관계를 이루지 않고, 혼자서 또는 소수의 조직원과 행동하는 것을 선호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이 일부 개인이나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효과적일 수 있지만, 일반적인 방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고립은 약점이고 형제애와 조화가 있어야 하는 곳에 반감과 경쟁심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사상을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 투쟁하는 남녀모두 친구이고 동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상의 진실에 대해서는 확신하지만 그들이 옳다고 믿는 것을 퍼뜨리려 하지 않고 소신을 비밀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죠, 이들이 이론상으로 사회주의자나 아나키스트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와 생각이 같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들의 신념은 매우 약함이 틀림없습니다. 아니면 겁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고요. 자신과 자기 주변인에게 해로운 악을 봤고 그 해결책을 안다 생각하는 인간이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선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말이죠. 진실을 알지 못하는 자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자는 비정한 겁쟁이일 뿐입니다.

윌리엄 : 자네가 맞네. 자네가 한 말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생각해보겠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라는 확신이 생겼을 때, 나는 그 정당에 가입하겠네. 그리고 나 또한 그 신성한 진실을 퍼뜨리겠네. 그리고 상류층이 나를 비열하거나 바보라고 부르면, 나는 그에게 나만큼 일하고 고통받은 뒤에나 입을 열 권리를 얻을 것이라고 말하겠네.

윌리엄 : 아, 잭, 자네 맞지? 만나서 반갑네. 자네와 몇 마디 나누기 위해서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네. 오, 잭! 잭! 내가 자네에 대해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자네가 시골에 살 때는 착한 아이였지. 동갑내기 젊은이들에게 아주 좋은 본보기였지. 가여운 자네 부친이 아직 살아만 계셨더라면...

잭 : 윌리엄, 어째서 제게 그런 식으로 말하시는 건가요? 제가 아저씨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 나무라시나요? 그리고 왜 제 가여운 아버지께서 제게 실망하셨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윌리엄 : 내 말을 듣고 마음 상하지 말게나, 잭. 나는 늙은이이고 자네를 위해서 말하는 것이라네. 게다가 난 자네 아버지 앤드류와 어찌나 좋은 친구였는지 자네가 잘못된 길로 방황하는 것을 보니 자네가 마치 내 아들인마냥 화가 나. 특히 자네 아버지가 자네에게 기대하던 바와 자네에게 좋은 앞날을 남기려고 했던 희생들을 생각하면 말이야.

잭 : 하지만 윌리엄,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정직한 일꾼이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저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고, 장담하건대 저는 항상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니 어째서 제 아버지께서 저를 부끄러워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저는 최선을 다해서 배우고 발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 어머니와 저는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악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를 이렇게 다그치십니까?

윌리엄 : 아, 바로 그걸세! 나는 자네가 열심히 일하고 이웃을 돕는다는 것을 충분히 잘 알고 있네. 자네는 좋은 사람일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자네를 칭찬하네. 하지만 그럼에도 자네는 여러 번 투옥됐어. 사람들은 자네가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다고, 자네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하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자네를 위할 뿐이고 망설임 없이 자네에게 말을 할 걸세. 잭, 이 노인의 조언을 듣게. 정치는 아무 할 일도 없는 이들에게 양보하고 자네는 일에 집중하고 옳은 일은 하는 데에만 집중하라는 내 말을 새겨들어야 하네. 그것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과 마음을 잃게 될 걸세. 내 말 듣고 나쁜 친구를 버리시게. 모두가 알다시피, 그런 친구들이 자네 같은 불쌍한 젊은이를 그릇된 길로 이끄는 게 아닌가.

잭 : 윌리엄, 제 동료는 뛰어난 동료들입니다. 정말로요. 그들이 먹는 빵은 땀으로, 그리고 가끔은 그들의 눈물에 젖어있어요. 지배자들이나 그들을 헐뜯죠. 우리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빨아들이려 하고, 우리가 유복해져서 그들의 횡포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우리를 불한당이나 죄수로 취급하는 그 지배자들 말입니다. 제 동료들과 제가 투옥된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정당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우리는 다시 들어갈 것이고, 어쩌면 더 나쁜 일이 우리에게 닥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불의와 고통을 파괴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처럼 평생을 일하고 배고픔에 시달리는 윌리엄 당신 같은 사람,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때 죽을 자리를 찾아 구빈원에 들어가게 될 당신 같은 사람은, 최소한 상류층과 국가의 편에 서서는 안 됩니다. 가난한 자들의 삶을 개선하려는 사람들을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윌리엄 : 친애하는 잭, 세상이 아주 안 좋게 돌아가는 건 알지만, 그런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건 안짱다리를 가진 개의 다리를 곧게 펴려는 것과 같네. 그러니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것을 받아들이고, 최소한 빵 한 조각이 결코 부족하지 않도록 하느님께 기도하세.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존재했고, 노동을 위해 태어난 우리는 일해야 하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것에 만족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공공의 평화를 어지럽히고 우리의 사명을 해칠 것이야.

잭 : 우리의 사명이라고요! 아저씨가 신사라 부르는 이들을 보세요. 우선, 그들은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고, 그들은 우리의 이마의 땀으로 사치스럽고 게으르게 살고 있으면서 우리에게는 짐승처럼 일하지 않고는 빵 한 조각도 벌 수 없게 합니다. 그런 다음, 만약 우리가 우리의 희생으로 그들의 배를 불린다는 사실에 흔쾌히 복종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나쁘고 정직하지 못한 놈이라 부르고, 경찰은 우리를 감옥으로, 성직자는 우리를 지옥으로 보냅니다. 들어보세요, 윌리엄. 진짜 악당이며 나쁜 놈들은 다른 사람들을 억압함으로써 살아가는 놈들입니다. 그들은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을 손에 넣었고, 노동자들을 착취합니다. 노동자들은 마치 양떼처럼 털을 깎이고 도살까지 당하죠. 그럼에도 주변인의 생명력을 갉아먹은 적 없는 아저씨는 이런 짓을 일삼는 자들의 편에 서서 저희를 핍박한다고요? 정부가 그들의 편에 서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정부는 부자의 이익을 위해 부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의 편에 서게 마련이지만, 노동자, 우리의 친형제가 단지 우리가 빵과 자유를 갖기를 원한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등을 돌려야 할까요? 아! 만약 제가 가난한 이들을 오랫동안 눌러왔던 비참함, 노예 상태, 그리고 모욕적인 관습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저는 가장 나쁜 사람, 즉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적게 가진 자는 스스로를 인류의 억압자의 도구로 만든 가난한 자라고 말했을 겁니다. 최소한 저희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현실을 만들기 위해 저희가 가진 약간의 빵과 자유를 잃을 위험을 감수합니다.

윌리엄 : 음, 듣기에는 좋은 소리구만.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좋은 일은 있을 수 없으며,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뜻에 복종해야 하네.

잭 : 이런, 윌리엄, 우리가 이치에 맞는 말을 하려고 한다면, 신은 논외입니다. 신의 이름은 동료를 속이고 억압하려는 모든 이들의 구실과 명분으로 쓰입니다. 왕은 신이 자신에게 통치할 권리를 준 척하고, 두 왕이 하나의 나라의 왕위를 다툴 때, 그들은 둘 다 신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떠벌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가장 많은 병사나 가장 좋은 무기를 가진 자에게 승리를 쥐여 줍니다. 가진 자, 착취자, 독점자는 모두 신을 이야기합니다.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 터키의 신부들은 모두 신의 사도를 자칭합니다. 그리고 신의 이름으로 그들은 서로 전쟁을 하고 각자 자신의 방앗간으로 곡식을 가져오려고 합니다. 그들은 모두 신이 자기들에게 모든 것을 주었고, 남은 우리에게는 불행과 고된 노동을 선고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번 삶과 다음 삶에도 낙원을 가지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생에 지옥을 갖고 현생을 순종하는 노예로 보내야만 다음 생에 낙원을 가질 것이라 합니다. 그래놓고 아저씨는 제게 신이 바로 그렇게 의도하셨고 그것이 신의 참뜻이라고 하시면, 저는 그 신이 매우 악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지 않아야 하지만 각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세상이 돌아가는 바를 논할 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충실하여, 우리와 우리 동료들을 위해 이 삶에서 작은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성직자 자신이 모든 이는 신의 자녀이며 그러므로 형제라고 말하는 건 아저씨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윌리엄 : 잭, 도시에서 글을 배우고 나서부터 변호사까지 곤혹스럽게 할 만한 말투를 갖게 됐군. 하지만 이제 말해보게. 정녕 그들이 말하는 대로, 재산을 가진 모든 이들을 약탈하려 한다는 말이 사실인가?

잭 : 좋아요! 드디어 요점에 도달했군요. 아뇨,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우린 아무것도 훔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대중이 부자의 재산을 가져가서 모두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둑질이 아니라, 그저 대중이 자신의 것을 다시 가져가는 것입니다.

윌리엄 : 뭐라고! 그 신사들의 재산이 우리 것이라는 말인가?

잭 : 물론이죠. 우리 재산입니다. 모두의 재산입니다. 누가 그것을 부자에게 주었습니까? 그들은 어떻게 그것을 얻었을까요? 그들은 무슨 권리로 그것을 장악하고 유지합니까?

윌리엄 : 하지만 그것은 그의 조상이 남긴 것이네.

잭 : 그리고 그 조상에게는 누가 줬죠? 들어보세요. 가장 강하고 운이 좋은 사람들이 그들의 힘이나 행운을 이용하여 모든 것을 차지했고, 그들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일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과 동시대의 사람들 대부분을 억압하고 굶기며 혼자 게으름 피우며 사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의 아들과 손자에게 약탈한 부를 남겨줬습니다. 그렇게 다음 세대를 그들의 자손의 노예가 되는 운명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 자손들이 나태와 오랜 권력 행사로 인해 너무 쇠약해져서, 조상이 오래전에 했던 일을 오늘날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음에도 불구하고요. 이 모든 것이 아저씨에게는 정당해 보이나요?

윌리엄 : 무력으로 부를 얻은 것이라면 그렇지 않지. 하지만 상류층은 자신의 노동으로 재산을 얻었다고 말하지. 나는 어떤 사람이 일해 번 것을 빼앗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네.

잭 : 언제나 같은 이야기죠! 일하지 않고 일한 적이 없는 사람이 한결같이 ‘노동의 이름으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누구의 노동으로 지구와 철과, 석탄과 돌을 만들어집니까? 아니면 어떻게 이런 것들이 존재하게 됐습니까? 우리 모두 이 세상에 왔을 때 발견했고,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것들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만약 부자가 자기만을 위해 공기를 독점한 뒤, 우리에게는 가장 더러운 공기를 조금밖에 주지 않으면서, 그마저 우리의 노동을 지불한 뒤 사용하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지구와 공기의 유일한 차이점은 그들이 지구를 손에 쥐고 나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공기로는 그리 할 수 없었지만, 만약 가능했다면, 그들은 땅을 다루는 것처럼 공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할 겁니다. 제 말을 믿으세요.

윌리엄 : 맞네. 지당하네. 땅을 비롯한 모든 것은 누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니 모두의 것이어야 하네. 하지만 저절로 생겨나지 않은 것도 있지.

잭 : 그렇죠, 사람이 일해서 만든 것도 있고, 사람이 손으로 개간하지 않으면 땅 자체가 거의 가치가 없겠죠. 하지만 공정성을 따지자면, 이런 것들은 그것들을 생산하는 이들의 것이어야 합니다. 도대체 무슨 기적에 의해 그것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의 소유가 된 걸까요?

윌리엄 : 하지만 상류층은 그들의 아버지들이 일했고 저축했다고 말하네.

잭 : 반대로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들이 다른 사람들을 일하게 만들었다고 자백해야 합니다. 오늘날 그렇듯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요. 역사는 우리에게 노동자의 운명은 계속해서 비참했고 이웃을 착취하지 않고 정직하게 노력한 사람은 결코 유의미한 저축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일반적으로 그런 사람은 자신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할 만큼 충분히 벌지 못했습니다. 눈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세요. 노동자가 생산하는 모든 것이 주인의 손에 넘어가지 않습니까? 한 사람이 개발되지 않은 늪지대를 단 몇 파운드에 사들인 뒤 사람을 구해 그곳을 경작하게 하고, 그들에게 간신히 먹고살 만큼밖에 주지 않는 반면, 본인은 가만히 도시를 벗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몇 년 후, 이 황무지는 원래 가치의 백배인 정원이 됩니다. 소유주의 자식은 이 재산을 물려받고선, 자기 아버지의 노력의 성과를 누리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정작 거기에서 정말 고생하고 고통 받은 자들의 자식은 계속해서 고생하고 고통 받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윌리엄 : 하지만 자네 말 대로 세상이 정말로 항상 그랬다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고용주라고 다른 수가 있는 건 아니네.

잭 : 저는 모든 걸 상류층에게 이로운 사실이 되도록 이해할 준비가 됐습니다. 재산을 소유하는 모든 이는 전부 일하고 저축한 자의 자식이고, 노동자는 모두 게으름뱅이의 자식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이것은 분명히 말도 안 되는 가정이라는 점을 아저씨도 이해하시겠죠. 하지만 실제로 그랬다 해도, 현재의 사회 구조는 정의로울까요? 만일 아저씨가 일하고 저는 게으른 개라면, 제가 게으름 때문에 벌을 받는 건 마땅합니다. 그러나 정직한 일꾼일 수도 있는 제 자식이, 아저씨의 자식을 게으름과 풍족함 속에 살게 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윌리엄 : 훌륭한 논리라는 점을 난 부정하지 않네. 하지만 재산을 가진 자는 상류층이고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해야 하네. 왜냐하면 그들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네.

잭 : 그들이 부를 가지고 있다면, 이는 그들이 부를 힘으로 취하고 다른 사람의 노동의 열매를 착취함으로써 부를 불려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를 취한 방법으로 또한 부를 잃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서로 싸워 왔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입에서 빵을 빼앗으려고 했고, 각자 자기 동료를 복속시켜서 짐승으로 삼는 것을 행복이라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상황에 끝을 낼 때가 도래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싸워서 얻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다툼으로 얻은 유일한 수확은 가난, 노예, 범죄, 매춘, 그리고 때때로 전쟁과 혁명이라고 불리는 피 보는 것들뿐이었습니다. 대신에 우리가 서로 합의하고, 사랑하고, 도울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악행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많이 가진 자와 아무것도 없는 자는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가능한 모든 사람들이 잘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지배하는 것과 일하지 않고 사는 것에 익숙한 부자는 구조의 변화를 위한 외침을 귀담아듣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 알맞게 대처할 것입니다. 만약 부자가 사람들 사이에 증오와 불평등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모두가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보다 좋은 건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그가 자기와 자기 아버지의 폭력과 도둑질로 얻은 열매를 계속 누릴 권리를 계속해서 주장한다면, 그는 최악의 선택을 내린 것입니다. 부자가 가진 것은 무력으로 가져간 것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무력으로 찾아올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이 합의점에 도달한다면, 그들은 부자보다 강력합니다.

윌리엄 : 하지만 상류층 없이 우린 어떻게 살란 말인가? 누가 우리에게 일감을 준다는 말인가?

잭 : 이런 질문이라뇨! 매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계시잖아요. 땅을 파고,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아저씨가. 옥수수를 타곡하고, 가축에게 먹이를 주고, 더 맛있는 치즈를 만드는 아저씨 본인이 제게 어떻게 우리가 상류층 없이 살 수 있느냐 물어보십니까? 그럴 바엔, 차라리 상류층이 그에게 옷을 입혀주고 밥도 먹여주기 위해 도시와 촌에서 노역하는 불쌍한 우리 노동자 없이 어떻게 살 것인지 물어보시죠. 방금 아저씨는 우리를 살 수 있게 해주는 고용주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저씨는 남 덕에 사는 것은 정작 그들이라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그들이 먹는 모든 빵은 아저씨 자녀의 빵을 빼앗은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의 아내에게 주는 모든 선물은 아저씨의 가난, 빈곤, 추위, 심지어는 아저씨 자녀의 매춘을 뜻한다는 사실을요? 그들이 무엇을 만듭니까? 아무것도요. 그러므로 그들이 소비하는 것은 노동자로부터 빼앗은 것입니다. 모든 농민이 내일 사라진다고 가정합시다. 땅을 갈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고, 모두가 굶어 죽을 것입니다. 제화공이 사라지면 신발도 없어지고, 석공이 사라지면 집을 지을 사람도 없어집니다. 만약 각 종류의 노동자가 사라진다면, 차례대로 각 생산 부문은 사라질 것이고 우리는 유용하거나 필요한 것 없이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상류층을 없애면 무슨 해악이 있겠습니까! 그건 메뚜기 떼가 사라지는 것과 같을 겁니다.

윌리엄 : 그래, 바로 우리가 모든 것을 생산하지. 하지만 예를 들어서 내가 땅도 가축도 씨앗도 없다면 어떻게 옥수수 농사를 지을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는 고용주에게 의지하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다고 확신하네.

잭 : 제발, 윌리엄, 우리 서로 말이 통하고 있는 게 맞습니까? 우리가 일하고 살기 위해 우리는 지배자로부터 빼앗아야 한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땅, 도구, 씨앗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요. 저는 지배자가 노동의 땅과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한, 노동자는 항상 복종해야 하며 노예 상태와 가난 외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부르주아의 재산을 빼앗는 것이 최우선이 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지 않고선 세상은 결코 회복될 수 없습니다.

윌리엄 : 자네가 말했지, 자네가 옳다고.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내게는 너무나 새로워 좀 혼란스럽네. 그러니 자네가 어떻게 할 것인지 한 번 설명해보게. 부자들에게서 뺏은 재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역시, 분배해야겠지?

잭 : 아뇨, 아닙니다. 그런 건 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재산을 나눠 가지고 지금의 소유자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저씨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거나 악당이라고 믿으셔도 좋습니다.

윌리엄 : 그럴 경우 전혀 이해가 안 되는군.

잭 : 충분히 자명합니다. 우리는 단지 모든 것을 공통으로 하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일해야 하고 모두가 가능한 한 잘 살아야 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합니다. 일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이 세상에서 살 수 없습니다. 스스로 일하지 않으면 다른 이의 노동에 의해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부당하고 해롭습니다. 하지만 물론, 아저씨는 제가 ‘모두가 일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일하는 것이 가능한 모든 이들을 말한다는 점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불구자, 환자 그리고 노인들은 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 감정은 그 누구도 고통받게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 모두 늙고, 언제든 불구가 되거나 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도 그렇죠. 자 이제 잘 생각해보면, 모든 부는, 그러니까 인간에게 유용한 모든 것은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땅, 기계를 비롯하여 철, 나무, 돌, 이동 수단 등을 포함한 모든 노동수단입니다. 이는 우리가 일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공동의 것이어야 합니다. 노동의 방법은 나중에 다루죠. 저는 공동으로 일하는 것이 최선이라 믿습니다. 그렇게 하면 더 적은 피로감으로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직종에서 각자 개별로 일해야만 했다면, 우리는 인간의 노동을 크게 단순화하고 줄여주는 기계를 사용하는 것을 포기해야 했을 겁니다. 나아가, 인간이 서로의 입에서 빵을 빼앗을 필요가 없을 때, 그들은 고양이나 개처럼 되지 않고 함께 있는 것에 기쁨을 느낄 것입니다. 물론 혼자 일하기로 선택한 이는 그렇게 하도록 둘 것입니다. 핵심은 그 누구도 일하지 않고, 그래서 다른 이들이 그를 위해 일하도록 강요당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각자가 일을 할 환경이 갖춰진 상황이라면 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당연히 남의 종이 되는 것을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의 종류의 다른 하나는 인간의 욕구를 직접적으로 충족시키는 것들입니다. 예컨대 의식주 말입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공동으로 소유되고 분배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다음 추수 때까지, 그리고 산업이 새로운 생산물을 공급할 때까지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죠. 프롤레타리아를 굶겨 먹고 사는 게으른 고용주가 없을 혁명 이후에 생산될 것들에 대해서는, 각국의 노동자가 서로 동의한 대로 나눌 것입니다. 그들이 공동으로 일하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두고자 한다면, 그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그 경우에 그들은 생산이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키도록, 그리고 소비가 모두에게 가장 큰 행복을 보장하도록 (생산과 소비를) 규제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각자가 생산에의 기여를 계산해서 그와 동등한 양을 가져가야 합니다. 이 계산은 다소 어렵고, 저는 개인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이렇게 시작한 이들도 비례분배의 어려움을 느끼고 모든 것을 공동의 것으로 만드는 주장에 더 우호적이게 될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빵, 집, 물과 같은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한 사람의 노동량과는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위해 보장돼야 합니다. 어떤 방법이 채택되든, 누구는 부자로, 누구는 굶주리는 가난뱅이로 태어나게 하는 재산의 상속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각자가 자기가 생산한 것의 절대적인 주인으로 인정받고 본인 명의의 저축을 허용하더라도, 그렇게 축적된 부는 그가 사망한 즉시 공동체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이들은 최고의 성장과 배움을 보장받도록 모두의 노력으로 양육되고 교육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정의도 평등도 있을 수 없고, 생산수단에 대한 각각의 권리의 원칙도 침해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땅과 기계를 주고는 그것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조건-즉, 교육-을 마련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성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성은 남성과 동등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성별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을 일컫는 것입니다.

윌리엄 : 다만 문제가 하나 있네. 가난한 사람을 약탈하고 굶주리게 한 부자의 재산을 빼앗는 건 아무렴, 좋네. 하지만 열심히 일하고 저축한 이가 작은 밭을 사거나 작은 가게를 열려고 돈을 모았다면, 자네는 무슨 권리로 그에게서 그의 노동의 결실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

잭 : 자본가와 정부가 생산물을 쓸어가는 요즘에는 흔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쨌든, 저는 아저씨에게 사람 각자가 자재와 노동수단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따라서, 자기가 직접 경작하는 약간의 땅이 있다면 그는 그대로 간섭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최고의 도구와 거름 그리고 생산량을 최대한 증폭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받을 것입니다. 당연히 모든 것을 공동의 것으로 하는 게 가장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 서로 비슷한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은 코뮌주의 체계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강요를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공동 재산과 노동 덕분에 모든 게 잘 풀릴 것입니다. 또한,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편리하기 때문에 지금보다도 더 많은 부와 일이 생길 것입니다.

윌리엄 : 기계일세! 우리는 바로 기계를 불태워야 하네! 바로 기계가 우리 팔을 부러뜨리고 우리의 빵을 빼앗네. 이곳 시골에 기계가 오면, 임금이 내려가고, 우리 중 일부는 일을 잃고 다른 곳으로 가야만 할 것이라 장담하지. 도시에서는 더 심할 것일세. 만약 기계가 없다면 상류층은 우리의 노동력을 더 필요로 해서 우리는 조금 더 잘 살았을 것일세.

잭 : 윌리엄, 기계가 가난과 실업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건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건 기계가 부자의 소유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만약 기계가 노동자의 소유였다면, 현실은 그 반대였겠죠. 기계는 인간 일반을 편안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결국 기계는 우리 대신에, 우리보다 더 빨리 일을 하니까요. 기계 덕분에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일해야 할 필요가 없고,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고통스러운 일로 벌 받지 않을 것입니다. 기계가 모든 생산 과정에 도입됐고 모두의 소유였다면 단 몇 시간의 쉽고 간단한 일만으로 모든 소비를 충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각 노동자는 지식을 쌓고 인간관계를 가꿀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과학과 문명의 산물을 즐기며 행복한 삶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기억하세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아저씨는 소유주가 기계를 파괴하려는 사람으로부터 기계를 보호하는 만큼, 기계를 차지하려는 사람으로부터도 기계를 보호하려 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 것입니다. 따라서 두 경우 모두 똑같은 노력을 하고 똑같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기계를 빼앗기보다 부수는 것은 완전히 어리석은 일이라는 겁니다. 옥수수와 호스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면 아저씨는 그것들을 파괴하겠습니까? 당연히 아니죠! 자, 우리는 기계도 똑같이 대해야 합니다. 만약 기계가 고용주의 손에 있다면 우리의 가난과 노예 상태에 도움이 될 것이고, 우리의 손에 있다면 부와 자유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윌리엄 : 하지만 그러한 체제가 돌아가려면 모든 사람이 기꺼이 일해야 하지.

잭 : 물론이죠.

윌리엄 : 그리고 일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고생은 개도 싫어하네.

잭 : 아저씨는 오늘날 사회와 혁명 이후의 사회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개도 힘든 일을 즐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낼 수 있습니까?

윌리엄 : 나 말인가? 아니, 나는 일에 익숙하네. 할 일이 없을 때 내 손은 뭐라도 하고 싶어 근질거리지. 하지만 하루 종일 주점에서 카드놀이를 하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빈둥거리는 이들도 있네.

잭 : 오늘날은 그렇겠지만, 혁명 이후에는 다를 겁니다. 그 이유를 설명드리죠. 오늘날 노동은 불쾌하고, 보수가 적으며, 업신여겨집니다. 오늘날 노동자는 거의 죽기 직전이거나 반쯤 굶어 죽을 지경인데, 그는 짐승 취급받습니다. 노동자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는 십중팔구 구빈원에서 일생을 마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계속되는 학대와 굴욕에 시달리면서 자기 삶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가족을 돌볼 수 없습니다. 반면에 일하지 않는 자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편하게 지냅니다.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보고 존경합니다. 모든 즐거움은 그의 몫입니다. 노동자 사이에서도, 가장 편한 일을 가장 적게 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벌고, 다른 이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여겨집니다. 사람들이 일에 넌더리가 나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열망하는 것이 놀라운 일인가요? 하지만 노동이 인간에게 적합한 환경에서, 적당한 시간 동안, 건강을 존중하는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노동자가 자기 가족과 모든 인간의 안녕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존중받고 싶은 자는 반드시 노동자가 돼야 하고 게으른 자는 오늘날의 간첩이나 매춘부만큼이나 멸시를 받는다면. 그렇다면 과연 누가 쓸모 있고 사랑받는 것을 저버리고 몸과 마음에 파괴적인 나태에서 살고 싶겠습니까? 심지어 몇몇 드문 예외를 제외한 오늘날에도, 모든 사람은 본능적으로 간첩이나 매춘부가 되는 가능성을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땅을 가꿔서 일하는 것보다 이러한 비열한 소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습니다. 일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국가의 보호도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직업은 가증스럽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이들은 그런 일을 추구하는 불명예보다는 가난을 선호합니다. 예외는 있습니다. 악함을 선호하는 나약하고 타락한 괴물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악명과 빈곤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을 함으로써 편안함과 대중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데, 누가 악명 높고 비열한 삶을 선택하겠습니까? 확실히 그런 자는 미친 사람 일 겁니다. 그리고 그 게으름뱅이는 공개적인 비난을 받으리라 의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은 본질적으로 사회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게으름뱅이는 공동체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일에 기여하지 않으며, 타인의 생산에 의존해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질서의 조화를 깨뜨리고 과거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불만 가득한 집단의 요소가 될 것입니다.

집단은 개인과 같습니다. 집단은 자기 자신과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사용하는 것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또한 자기에게 해를 끼치거나 해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증오하고 경멸합니다. 집단은 속아 넘어갈 수도 있고, 너무 자주 속아 넘어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의 경우에는 그 어떠한 오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을 하지 않고 타인을 희생시켜 먹고 마시는 사람이 나머지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대낮처럼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한번, 아저씨가 어느 집단과 모든 일을 함께 하고, 생산물을 나눠 갖는다고 가정합시다. 물론 아저씨는 약하거나 숙련되지 않은 동료를 배려하시겠죠. 하지만 게으름뱅이의 경우 그는 스스로 집단을 떠나거나 벗어났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의 어깨를 보태 힘을 더하는 쪽으로 삶을 바꾸지 않겠습니까? 공동체 일부 구성원의 게으름이 공동체에 심각한 위험이 될 경우 일어날 일입니다. 일하지 않는 자 때문에 나머지가 일을 할 수 없다면 -물론 그렇게 될 가능성은 낮아보이지만- 그들은 단순히 공동체에서 추방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원자재와 노동수단 말고는 그 어떤 것에 대한 권리가 없기 때문에, 살고 싶다면 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윌리엄 :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네, 자네. 그럼 말해보게, 모두가 밭에서 일해야 하나?

잭 : 왜 그래야 하죠? 사람들은 빵과 맥주와 고기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집, 옷, 책, 그리고 모든 직종의 노동자가 생산하는 모든 것을 원합니다. 누구도 혼자서 자신의 모든 필요를 충족할 수 없습니다. 땅을 갈기 위해서라도, 저희는 대장장이와 도구 제작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나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철을 파내는 광부, 집과 가게를 짓는 석공 등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나요? 그러므로 결론은 모두가 땅을 일궈야 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직종의 다양성은 각자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을 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렇게 노동은 운동이며 간절히 원하는 즐길 거리가 될 것입니다.

윌리엄 : 그럼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직종을 고를 수 있는 것인가?

잭 : 물론이죠. 다만, 일부 직종이 일손난에 시달리는 가운데 다른 직종은 일손이 넘쳐나서는 안 되겠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할 것이니, 저희는 정말로 필요한 모든 것이 생산됨과 동시에 개인의 바람이 충족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목적이 불분명한 일을 빵 껍데기만을 주며 강제하는 주인이 없을 때, 그것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윌리엄 : 그렇게 현실이 될 것이라 말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네. 나는 그 누구도 불쾌한 일을 하려들지 않으리라 생각하네. 나는 모두 변호사나 의사가 될 것이라 보네. 누가 밭을 일구겠는가? 누가 목숨과 건강을 걸고 광산으로 내려가겠는가? 누가 어두컴컴한 하수구로 내려가 청소하겠는가?

잭 : 변호사는 논외로 두시죠. 변호사와 성직자는 사회의 고름 정도에 지나지 않고 혁명이 이를 치유할 것입니다. 이웃을 희생해 진행되는 직업 말고 쓸모있는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자고요. 그렇지 않으면 부지런한 도둑도 노동자가 됩니다. 오늘날 저희는 어느 직종을 다른 직종보다 선호합니다. 그건 우리의 취향과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취득하기 더 쉽거나, 소득이 더 좋거나, 그러길 바라거나 또는 그 직종에서의 취업이 가장 잘 보장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다른 일보다 더 불쾌한지는 이런 점을 고려한 다음에나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어느 한 사람의 직종 선택은 태생이나, 운이나 사회적 선입견에 의해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농사꾼의 일은 가장 가난한 도시민조차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농사 자체에는 불쾌한 요소가 없습니다. 그리고 밭도 밭만의 묘미가 있죠.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문학을 읽으면 농촌 생활에 매우 긍정적인 시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책을 쓰는 시인은 밭을 갈아본 적도 없다는 거죠. 농민은 반 굶어가며 일하고,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아무 존중도 받지 못해 도시의 가장 불행한 사람마저 그와 자리를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데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아저씨는 어째서 누가 농민이 되길 바라십니까? 촌에서 태어난 저희도 최대한 빨리 그곳을 벗어나려 합니다. 왜냐하면 어디서 뭘 하든 이곳보다는 나을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희가 원하는 대로, 안식을 취하면서 자유롭고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다면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농촌을 벗어나겠습니까? 다른 직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더 어렵고 더 필요한 일일수록 보수가 더 적고, 더 멸시받고 더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서 행해져야만 하죠. 예를 들어, 금세공인을 방문하면 그가 일하는 곳은, 저희가 노동하는 이 망할 곳보다 깨끗하고, 환기가 잘 되고, 노동시간이 길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생산하는 것의 대부분을 고용주가 취해 임금이 좋지 못하더라도, 다른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그는 오후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는 작업복을 벗고 원하는 곳을 눈치 보지 않고 찾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칼장수를 방문한다면, 그는 작업장에서 형편없는 임금을 받으며 몇 년 있으면 삶을 끝내버릴 유독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일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일을 마치고 그가 신사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면, 그는 망신당하지 않으면 운이 좋은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누구든 금세공이 되는 것을 칼장수가 되는 것보다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펜 말고 다른 도구는 사용하지도 않는 노동자의 경우는 따질 필요도 없고요. 생각해보세요. 질 낮은 기사를 쓰는 사람이 농사꾼보다 임금을 열 배는 더 많이 받고 더 존중받습니다. 기자, 엔지니어, 의사, 예술가, 교수는 자신의 일을 잘 하는 것으로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식자공, 벽돌공, 수선공 등의 온갖 노동자와 심지어 일부 교사와 정신노동자는 굶으며 혹사당하며 일합니다. 저는 자연을 정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문명인이 되고, 더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의사와 엔지니어와 화학자와 교사는 모두 농사꾼과 육체노동자만큼 현대 사회에 있어 중요합니다. 저는 단지 모든 필요한 노동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 노동자가 일을 함에 있어 동등한 만족감을 얻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그 자체로 큰 기쁨이 되고 무식한 자를 억누를 수 있는 거대한 우월함을 부여하는 지적 노동은, 일부의 손이 아닌 모두의 손에 닿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윌리엄 : 하지만, 자네가 말하는 바와 같이 지적 노동이 큰 기쁨이고 그것을 행하는 자에게 무식한 자 위에 설 수 있는 거대한 우월함을 부여한다면 모두가 지적 노동을 하고 싶지 않을까? 나 또한 다른 누구만큼이나 그렇고. 그렇다면 누가 육체노동을 할 것이란 말인가?

잭 : 모두가 해야 합니다. 문학과 과학을 공부함과 동시에 육체노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머리와 손을 사용하며 일해야 할 것입니다. 이 두 종류의 노동은, 서로를 방해하기 보다는 서로를 보강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모든 기관을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뇌만큼이나 근육 역시 인간의 기관이죠. 지성이 발달했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육체노동을 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건강한 사람은, 육신을 건강하게 단련하는 사람만큼 머리가 깨어있고 밝은 상태에 있습니다. 나아가 두 종류의 노동 모두 필수적인 만큼, 그리고 지적 노동이 육체노동보다 쾌적하고 인간의 자의식을 일깨워 스스로의 존엄성을 깨닫게 만드는 만큼, 인류의 일부는 과도한 육체노동의 형벌에 처하고 그렇지 않은 소수는 권력을 의미하는 과학의 특권을 누린다는 것은 정의롭지 않습니다. 따라서 다시 말하겠습니다. 모두가 육체노동과 지적 노동을 해야 합니다.

윌리엄 : 그건 나도 이해할 수 있네. 하지만 쉬운 육체노동과 어려운 육체노동이 있네. 어떤 것은 아름답고, 어떤 것은 끔찍하네. 자 그럼, 누가 광부가 되고 또는 누가 청소부가 되겠는가?

잭 : 아저씨, 어떤 발명과 연구가 매일 진행되는지 알기만 했다면, 육체노동이 그것을 불쾌하고 해롭고 힘들게 만드는 조건 없이 행해질 수 있으리란 사실을 알 것입니다. 단지 스스로 일하지 않아서 노동자의 편의를 생각하지 않는 자에 의해 노동의 과정이 조직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발적으로 어떤 일을 하기로 선택한 노동자들이 기꺼이 그 일을 할 겁니다.

이것이 당장 오늘 가능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모두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연구와 노력은 노동을 덜 힘들고 더 즐겁게 만드는데 집중될 것입니다. 그래도 힘든 작업에 대해서는 일부 특별한 이득을 부여해서 불평등을 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사람들이 공공을 위해, 공동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면, 가족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형제애와 동의의 마음이 그들 가운데 솟아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만을 위한 길을 찾지 않고 오히려 가장 힘든 일을 대신해서 하려 할 것입니다.

윌리엄 : 그래, 그렇다 치지. 하지만 그리 되지 않는다면?

잭 : 물론,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자진해서 하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 남을 수 있습니다. 그 경우, 우리 모두가 각자 조금씩 분담하여 그것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하루나 일 년에 일주일을 맡는 그런 식으로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그것을 행할 방법은 반드시 찾아질 것입니다.

윌리엄 : 그래, 듣고 나니 설득되는 것 같네. 하지만 아직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네. 상류층의 재산을 빼앗는 것은 큰일 같네. 나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방법으로는 할 수 없는가?

잭 :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부자가 남아있는 한 그들은 독불장군처럼 우리의 이익은 고려하지도 않고 자신만을 챙길 것입니다. 애초부터 그래왔듯이요. 하지만 왜 상류층의 재산을 빼앗기를 주저하시나요? 그게 불공평하고 그릇된 일이라 생각하시기 때문일까요?

윌리엄 : 아니, 그렇지 않네. 자네 말을 듣고 나니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 것은 매우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되네. 그들이 먹어 치우고 있는 우리들 몸을 되찾아오는 것이니. 그리고 우리는 그 부를 우리 자신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서 찾아오는 것 아닌가?

잭 : 정확합니다. 그리고 문제를 좀 더 자세히 바라보면 부자에게도 득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부리고, 거드름과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그만둬야 할 것입니다. 그는 일을 해야 할 것이지만, 노동자와 힘을 합해 일을 한다면 그것은 유용할 뿐만 아니라 유쾌한 것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부자는 사냥을 가지 않나요? 말을 타거나, 체조를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운동을 해 육체적 활동은 배불리 먹은 건강한 인간에게 필요하고 즐거운 활동이라는 사실을 보이지 않나요? 단순히 유흥을 위해 사용하던 힘을 생산을 위해 사용하는 것 말고는 그의 삶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건강으로 인한 얼마나 많은 이점이 있는데요! 우리 눈으로 보는 것들을 예로 듭시다. 일부 부자는 자기 집에서 영주 놀이를 할 수 있지만, 길거리는 우리에게처럼 그에게도 끔찍하고 더럽습니다. 빈민가에서 피어나는 안 좋은 공기는 우리 모두를 병들게 합니다. 그들의 사유재산으로는 온 나라를 개선할 수 없지만,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간단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가난은 그의 삶에 끊임없는 위협이고 그에게 수 만 가지 방법으로 간접적으로 작용합니다. 난폭한 혁명의 위협을 제외하고도요. 그러니 부자의 재산을 빼앗는 것은 그에게 오직 이롭기만 한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는 이 사실을 이해하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죠. 왜냐하면 그는 명령을 내리기를 즐기고 가난한 자가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을 즐기니까요. 하지만 중요한가요? 그가 우리와 타협을 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최악의 상황만이 기다립니다. 그가 협조하도록 강요하는 방법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윌리엄 : 그래, 좋아. 하지만 그걸 조금씩 조금씩, 상호 합의로 할 수는 없는 건가? 재산은 가진 자들에게 남겨주되, 임금을 올리고 우리를 인간처럼 대한다는 조건으로 말이야. 그런 다음, 점진적으로 우리도 무언가를 축적하고 우리도 작은 땅을 사고 유산자가 된다면 모든 것을 공동으로 두는 거야, 자네 말 대로 말이지. 이런 말을 하는 다른 젊은이가 있던 것 같은데.

잭 : 잘 들으세요! 우호적인 방법으로 일을 푸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유산 계급이 자신의 재산을 자의로 돌려놓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저씨도 알다시피,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무 쓸모도 없죠. 사유재산이 존재하는 한, 그러니까 땅이 모두의 것이 아닌 ‘베드로’나 ‘바울로’의 것인 한, 가난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고 모든 것은 안 좋아지기만 할 것입니다. 사유재산 아래서는 언제나 모두 각자의 방앗간에서 일하려고만 합니다. 유산 계급은 노동자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만을 주려고 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각자 자신의 생산물을 최고가로 팔려고 하고, 각 구매자는 또 한편으로 최소한의 값에 사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대규모로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는 지주와 생산자와 거대 상인은 기계를 마련하고, 시장이 이로울 때를 이용하고, 판매하기 위한 최적의 때를 기다리거나 때때론 손해를 보면서도 매물을 내놓습니다. 그렇게 작은 규모의 소유주와 소상인은 가난해져 그들과 그 자식들은 일급을 받으며 일하러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입니다. 그렇게 매일 우리가 보듯이, 혼자서 또는 적은 수의 장인과 일하는 자는 잠깐의 경쟁 후 장사를 접고 공장으로 일하러 가게 됩니다. 농사를 위한 충분한 자본을 구하지 못하고 십일조와 세금마저 낼 수 없는 소농은 대지주에게 토지와 집을 팔아야 합니다. 마음씨 착한 고용주가 진정으로 자기 노동자를 위했다면, 그는 단순히 경쟁으로 인해 망하는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배고픔은 노동자들을 서로 경쟁하는 쪽으로 몹니다. 그리고 항상 일에 필요한 것보다 많은 일손이 존재하다 보니, 그들은 항상 서로의 입에서 빵을 빼앗고 있죠. 이는 해야 하는 일이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특정 순간에 그 일을 함으로써 고용주에게 득이 되는 일이 얼마 없다는 것이죠. 이 상황 덕분에 진보는 불행이 됩니다. 기계가 발명되는 즉시 몇몇 사람들이 일자리에서 해고됩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벌지 못하고 예전처럼 소비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다른 노동자의 돈벌이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치죠. 미국에서는 방대한 양의 땅덩이가 경작되고 많은 양의 곡물이 생산됩니다. 당연히 지주는 미국에 있는 모두가 먹을 것이 충분한지 묻지 않고 그 곡식을 이곳으로 보내 이득을 봅니다. 이곳의 곡물 가격은 낮지만 가난한 자는 그 이득을 취하지 못합니다. 낮은 가격과 경쟁할 수 없는 유럽의 지주는 가장 생산적인 토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경작하지 않고 그러면 다수의 농민이 일을 잃게 되니까요. 단 한 푼도 없는 사람에게 값싼 빵은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윌리엄 : 아, 이제야 이해했네! 해외에서 곡물이 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들었네. 우리나라로 음식이 못 들어오도록 막는 건 악질이고 상류층과 농부가 서로 짜고 인민을 굶기려 한다 생각했네. 하지만 이제서야 그들은 그들만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해했네.

잭 : 아뇨, 아닙니다. 곡물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다른 관점에서 매우 안 좋은 일입니다. 외부로의 경쟁에 대한 압박이 없다면 지주와 농부는 자신들이 원하는 값에 팔았을 것이고….

윌리엄 :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잭 : 해야 할 일이요?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모든 것을 공동으로 둬야 합니다. 그렇게 돼야 생산물이 많을수록 좋을 것입니다.

윌리엄 : 하지만 이제 말해보게. 재산의 주인과 이런 계약을 세우면 어떨지. 그들은 토지와 자본을 제공하고 우리는 노동을 제공하는 것으로 말일세. 생산물은 그들과 우리들이 함께 나눠 갖는 걸세. 이건 어떻게 생각하나?

잭 : 우선, 아저씨가 나눠 가지려 한다고 해도 십중팔구 아저씨의 주인은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계약을 유산자에게 강요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경우, 왜 절반으로만 만족하나요? 왜 부당함과 기생을 계속적으로 허용하고 생산의 증가를 제시할 뿐인 체계로 만족하나요? 일하지 않는 자가 노동자가 생산한 것의 절반을 가져갈 수 있는 무슨 권리가 있나요? 또한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고용주가 생산량의 절반을 가져갈 뿐만 아니라 생산 총량이 실제 가능한 최대치에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유재산과 고립된 노동이 있는 곳에서는 공동 생산되는 곳보다 적게 생산되니까요. 바위를 움직일 때 따로 혼자서 시도하는 백 명의 일꾼은 성공하지 못하지만, 힘을 합친 두세 명은 바위를 간단히 들어 올릴 수 있는 것처럼요. 누군가 핀을 만들고 싶을 때 저는 그가 핀을 한 시간 안에 만들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협동하는 열 명은 하루에 수천 개의 핀을 만들 수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계급적 편견에 경도된 경제학자들 다수는 빈곤이 상류층이 재산을 장악한 결과가 아니라 자원의 희소성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해왔습니다. 그들이 말하길, 이 희소성에 의해 자원이 모든 인간에게 분배되기에 부족할 것이랍니다. 이는 경제학자와 그 추종자들이 빈곤은 그 어떠한 대책으로도 막을 수 없는 불가피한 것이라 결론지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단 한마디도 믿지 마십쇼. 오늘날의 사회 구조에서도 땅과 산업의 산물은 모든 이가 편히 지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합니다. 충분하지 않다면 이는 고용주의 탓입니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벌 수 있는지 외에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상품을 파괴하거나 썩게 둡니다. 그는 자원이 충분하지 않은 척하면서 심지어는 더 많은 양의 땅을 경작하지 않은 채 두고 여러 노동자를 할 일 없이 둡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도 일부 경제학 학파는 모든 토지가 가장 영리한 방법으로 경작되더라도, 대지의 생산력은 한정적이라고 말합니다. 인구는 제한없이 증가하고요. 그래서 식량생산은 항상 고정적인 반면 인구는 끊임없이 증가하여 어느 순간 기아가 발생할 거라는 거죠. 이 학파가 결론 내리길, 사회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가난한 자가 적은 수의 자식을 갖는 것입니다. 제가 임대법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 학파의 제안은 우리 사회악의 치료제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구성을 바꾸고 모든 땅을 경작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나 인구가 지나치게 빨리 증가하고 있다 여겨지면 어떻게 조정할지 의논할 수 있습니다.

자, 유산자와 무산자 사이의 생산물 공유에 대한 논의로 돌아갑시다. 이런 공유제도가 프랑스 일부 농경지역에 존재했었다고 하더군요. 토스카나Tuscany에서는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지만 점차 없어지고 있습니다. 지주가 일급을 지급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더 이득이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기계와 과학적 문화와 수입 곡물 때문에 오늘날 주인들은 대규모 농작을 해야 하고 임금노동자를 사용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죠. 이 체제가 계속된다면, 재산은 더 적은 수의 사람의 손에 들어갈 것이고 노동자는 기계와 빠른 생산 속도에 의해 완전히 비참한 상태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주인이랄 수 있는 소수의 금융가와 자본가, 기계를 다루는 일부 노동자, 그리고 앞서 말한 거인들을 섬기고 방어하는 다수의 하인과 경찰을 갖게 될 겁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굶어 죽거나 구호로 연명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이미 볼 수 있죠. 작은 토지는 사라지고 있고 실업자 수는 증가합니다. 상류층은, 두려움에서인지 연민에서인지, 무료 급식소를 차리고 구세군the schemes of General Booth을 운영하는 데 열심입니다. 사람들은 과거 수도원 앞에서 했던 것처럼 부유한 자선가나 지역 위원회에 빵을 구걸하는 상태로 전락하기 싫다면, 하루빨리 토지와 기계를 쟁취하고 자신들이 계획한 대로 일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윌리엄 : 하지만 정부가 부자에게 강요해 가난한 이가 굶지 않게 한다면 어떻겠나?

잭 : 진부한 얘기입니다, 윌리엄! 정부도 상류층으로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률을 만들까요? 가난한 자가 정부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해도, 부자가 다시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수단을 남겨둘 이유가 됩니까? 장담하건대,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다면 가난한 자는 어떤 돌발적인 사건을 통해 순간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부자가 반드시 권력을 쥐게 됩니다. 바로 이 이유에서, 우리가 단 한 순간이라도 우위를 잡게 된다면, 우리는 부자로부터 재산을 빼앗아야 합니다. 그래야 부자가 원상 복귀할 수단이 없게 할 수 있습니다.

윌리엄 : 이해했네. 우리는 진정한 공화국이 필요하네. 모든 이를 동등하게 만들고, 일하는 자는 밥을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는 굶는 것이네. 바보 같은 이 늙은이를 용서하게. 자네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네.

잭 : 자, 자, 아저씨! “공화국”이라면 아저씨는 당연히 “사회 혁명”을 일컫는 것이고 아저씨를 이해하는 자에게는 아무 문제 없겠죠. 하지만 이건 서툰 표현입니다. 보통 “공화국”이라 불리는 것은 아저씨가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공화정은 다른 모든 정부와 다를 것 없는 정부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단지 왕 대신 그와 같은 권력을 쥔 대통령과 장관이 있을 뿐이죠. 해협 너머의 상황에서 잘 볼 수 있죠. 그리고 설령 프랑스인들이 그 급진파가 약속한 것과 같은 민주공화국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들은 더 잘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두 개의 의회 대신 국민의회 하나만 갖게 되겠지만, 의원 양반들의 달콤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인민은 여전히 군인이 되고 노예처럼 일하게 되지 않습니까?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는 한, 부자는 항상 우위를 쥐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공화국 아래 살건 왕정 아래 살건 사유재산으로부터 나오는 결과는 항상 똑같이 존재할 것입니다. 경제 관계가 경쟁의 통제하에 있는 한, 재산은 소수의 손안에 있을 것이고 기계는 노동자로부터 일을 뺏을 것이고 대중은 빈곤에 빠질 것입니다. 존재하는 공화국 중 하나라도 노동계층의 삶을 정말로 개선했습니까?

윌리엄 : 정말 그렇군, 그래! 난 항상 공화정은 평등을 뜻한다 생각했건만!

잭 : 네, 공화주의자는 그렇게 말하죠. 그들이 말하기를, “진정으로 민주주의적인 공화국 아래에서 법을 만드는 의원은 전체 인민에 의해 선출됩니다. 결과적으로 인민이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의원을 더 좋은 의원으로 바꾸고 모든 것은 해결됩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가 대다수이기에,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는 바로 그들입니다.” 공화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상당히 다르죠. 가난한 자의 빈곤은 그를 무지하고 미신적인 상태로 만듭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자신에게 진짜로 이로운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한, 그는 그 상태 그대로 남을 것입니다. 아저씨와 저는 남보다 좀 더 벌 수 있을 만큼 운이 좋았고 조금이나마 공부할 수 있어 우리에게 이로운 것을 이해하는 지력과 고용주의 복수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현상이 유지되는 한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혁명 중에는 한 명의 용감한 자가 여러 겁먹은 자들만큼의 역할을 해내고, 혼자서는 절대로 봉기할 기운이 없는 이들을 끌어들입니다. 하지만 투표함 앞에서는 인격과 기운은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단순히 숫자만이 중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재의 상태에서 이 수는 매일 빵을 먹을 수 있고 마음대로 그 빵을 나누거나 숨길 수 있는 자에게로 갑니다. 눈치채지 못하셨나요? 오늘날 대부분 유권자는 가난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기들을 대표하고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기 계층의 사람을 뽑는 걸 얼마나 자주 보셨습니까?

윌리엄 : 그래, 대부분은 지주나 목사나 고용주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 들지 않지. 그랬다면, 그들은 아마 해고되거나 집에서 쫓겨났을 거야.

잭 : 보통선거권에 기대하는 희망적인 전망과 반대의 상황 아닙니까? 사람들은 반드시 중산층의 사람을 의회로 보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의원은 항상 인민을 최대한 종속시키고 순종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아무리 가난한 자들이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노동자를 의회에 보내도, 그렇게 부패한 곳에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시도를 한 소수는 그 어떤 국가에서도 그 수가 그렇게 의미 있지 않았습니다. 다음 혁명이 오면, 인민은 민주주의자와 공화주의자에 의해 항상 그래왔듯 기만당해선 안 됩니다. 사람들은 공화국이 가능한 최고의 조직이며 그들의 상태를 놀랍도록 개선할 것이라 믿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에 언제나 공화국을 약속받는 순간 무기를 내렸습니다. 다음 시기에 인민은 빈말에 만족하지 말아야 하고, 단호하게 재산을 쟁취해야 합니다.

윌리엄 : 맞는 말이네. 우리는 너무 많이 기만당했네. 이제 눈을 뜰 때가 됐네. 하지만 언제나 정부는 필요하네. 명령을 내릴 사람이 없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간단 말인가?

잭 : 왜 명령을 받아야 하는 건가요? 왜 우리 일을 우리가 스스로 관리할 수 없나요? 지배하는 자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인민을 배신합니다. 권력은 가장 선한 사람마저 자만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두머리를 거부해야 하는 주요한 이유입니다. 인간은 양 떼처럼 끌려다니기를 멈춰야 합니다.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존엄성과 힘을 자각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교육받고, 자유와 자기 일에 책임지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인민은 자기 자신을 위해 행동하고 그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내버려져야 합니다. 자주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겠지만, 그 결과를 직접 겪고, 자기가 실수를 했고 다른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간섭받지 않는 인민이 자기 자신에게 입힐 수 있는 해는 최고의 정부가 입힐 해의 만분의 일만큼도 안 될 것입니다. 아이가 걷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넘어질 가능성을 두려워 말고 혼자 걷게 내버려둬야 합니다.

윌리엄 : 그래 맞네. 하지만 아이가 걷기 전에는 다리에 조금이라도 힘이 있어야 하네. 힘이 하나도 없다면 어미의 품에 안겨야 하네.

잭 : 맞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전혀 어머니와 같지 않습니다. 한 나라를 개선하고 개발하는 건 정부가 아닙니다. 실제로, 사회의 진보는 거의 항상 정부의 반대 세력에 의해서나 정부와 무관하게 이뤄집니다. 정부가 하는 일은 대중이 필요하고 바라기 시작한 것을 법의 형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마저 지배와 독점으로 망치고 말죠. 인민은 서로 다른 진보의 단계에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문명의 단계에서든, 심지어 야만의 상태에서도 인민은 자기 가운데 생겨난 정부 없이 자기 일을 더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한, 아저씨는 가장 영리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로 이뤄진 정부를 선호하십니다. 그런 건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정부는 가장 돈이 많은 자들로 직접적으로 이뤄지거나 그들의 이해를 대변합니다. 그리고 권력의 행사는 가장 선한 영혼도 타락시킵니다. 지금까지 최고의 인품을 가진 자가 정부에 들어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시죠. 그는 더 이상 인민의 필요를 이해하지 못하고, 정치가 낳은 이해관계에 시간을 허비하고, 사회적 평등에 대한 시각의 부재로 타락하고, 듣지도 못한 것에 대한 법을 만들기 위해 자기가 진정으로 유능한 행동 영역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다른 존재보다 우월하다 믿게 되고, 인민을 감시하고 좌절시키는 것 외에는 돌아보지 않는 계층을 만듭니다. 다른 직종과 지역의 노동자와 합의를 통해 노동자의 일은 노동자가 직접 관리하는 것이 더욱, 아니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영국과 유럽을 넘어서 전 세계와 그렇게 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서로 형제이고 서로를 돕는데 관심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윌리엄 : 그래,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사악한 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도둑과 강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잭 : 우선, 사유재산과 무지가 더 이상 없을 때 우리는 그런 류의 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걱정이 남았다고 가정해도, 그 걱정이 정부와 경찰을 갖는 이유가 될까요? 우리 스스로가 도둑과 강도를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없나요? 오늘날처럼 결백한 자와 죄가 있는 자 모두를 학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없게 한 뒤, 최선을 다해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겁니다.

윌리엄 : 그럼 우리가 “사회주의”를 얻게 된다면, 모두가 행복하고 만족할 것이며, 사악함과 혐오와 질투와 매춘과 전쟁과 부당함이 없을 것이라는 말인가?

잭 : 인류가 얼마나 안녕할지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단 나아질 것이라는 건 압니다. 아시다시피, 인간은 개선을 추구할 것이고 그렇게 이뤄진 진보는 일부가 아닌 모두를 위하게 될 것입니다.

윌리엄 : 하지만 이 모든 게 언제 일어날 것이란 말인가? 난 늙었고 세상이 지금 이 상태로 영원히 있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난 지금, 정의의 날을 보지 못하고 죽고 싶진 않네.

잭 : 언제 일어날 것이냐고요? 모르겠습니다. 저희 손에 달렸죠.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할수록 변화는 더 빨리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미리 말해둬야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미 좋은 진보가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사회주의”를 설교하는 이는 극히 소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보, 미치광이 또는 방화범으로 몰렸습니다. 오늘날에는 이 사상을 이해하는 자는 많습니다. 과거의 가난한 자는 침묵 속에 고통받거나 배고픔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의 비극의 원인이나 해결책에 대해 알지도 못한 채 말입니다. 그렇게 학살당하거나 서로를 학살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전 세계에서 공통된 이해관계를 가지고 고용주와 정부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생각으로 소란과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들은 자신의 힘 말고는 의지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그들의 고용주들이 속해 있는 모든 정당이 똑같이 자신들의 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지금이 우리의 생각을 퍼뜨려야 할 시기적절한 때입니다. 문제를 이해하는 모든 이가 더 가까이 연합해야 합니다. 들끓고 있는 대중을 선동합시다. 모든 불만과 소동과 반란으로 우리의 이익을 찾읍시다. 두려움과 망설임 없이 뜨거운 철을 망치로 내리칩시다. 그렇게 되면 중산층은 끝이 날 것이고 행복의 통치가 시작될 것입니다.

윌리엄 : 좋네. 다만 비용을 고려해야 하네. 고용주의 재산을 가져오겠다고 말하기는 쉽네. 하지만 경찰이, 군대가 있네. 생각해보니, 수갑과 총칼은 무엇보다도 중산층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게 맞구만.

잭 : 그건 지극히 자명합니다. 하지만 무기를 사용하고 화약과 멜리나이트로 우리를 노예로 잡아두려는 건 중산층 정부인만큼, 우리 또한 현대의 과학적인 전쟁기구로 그들과 같은 수단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거대한 다수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사회주의의 이점을 이해하고 경험하기 시작한다면, 지구상 그 어떠한 힘으로도 그들을 지금 이 상태로 남아있게 강압할 수 없습니다. 노동하고 모든 것을 만드는 건 가난한 이들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세요. 단지 그 중 큰 일부가 일을 멈춘다면, 큰 공황이 일어나 얼마 안 가 혁명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리고 군인의 다수도 가난한 사람으로, 그들은 배고픔에 의해 자신의 형제에게 상처를 입히고 도축하는 일로 자신을 팔아버리고 있죠. 진실을 마주하고 이해하는 즉시, 그들은 처음에는 비밀리에 그리고 후에는 공개적으로, 인민을 지지할 것입니다. 혁명은 생각하는 것의 반만큼도 어렵지 않습니다. 핵심은 혁명의 상을 끊임없이 전면에 두고 항상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행동할 기회가 어떻게든 올 것이란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윌리엄 :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나는 믿겠네. 하지만 혁명은 아무 쓸모도 없고 모든 건 천천히 개선될 것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잭 : 사회주의가 진지하게 다뤄지기 시작한 뒤로 중산층은 사회주의를 매우 두려워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들은 폭풍의 방향을 틀고 인민을 기만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했습니다. 황제를 포함한 모든 이가 사회주의자를 자칭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주의”가 무슨 가치가 있는지 설명드리죠. 우리 동지 중에도 상류층의 관심에 경도되고 혁명의 대의를 저버린 채 얻을 수 있는 과실에 유혹된 배신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법적 수단을 사용하고 모두 어느 정도 사회주의적이라고 말하는 정치 정당과의 연합을 주장합니다. 하원의 하코트Harcourt라는 의원이 “우리 모두 어느 정도 사회주의자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 작자는 혁명가를 바보나 더 부정적으로 봅니다. 일부는 여전히 혁명을 원한다고 말하면서 하원 의원이 되기를 더 간절히 원합니다. 그 누가 아저씨에게 혁명은 필요 없다고 말하고 하원 의원과 지방 의원 임명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한다면. 중산층 정당과 공동의 목적을 갖는 것에 대해 말한다면. 그가 중산층 사람이거나, 중산층 사람이 되길 원한다면. 그럴 경우 그에게 꺼지라고 말하세요. 자신을 사회주의라 착각하는 자 중에는 선한 의도를 갖고 정말로 그렇게 행하려는 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정말로 선을 행사하고 있다 믿는 이가 아저씨를 반쯤 죽을 때까지 마구 팬다면, 아저씨는 그의 손에서 방망이를 빼앗을 생각을 가장 먼저 할 겁니다. 그의 선한 의도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저씨가 빼앗은 방망이로 자기 머리통을 깨는 것을 막는 것뿐입니다.

윌리엄 : 바로 그걸세! 하지만 자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또 하나 생겼네. 자네가 “사회주의자”라고 할 때, 정확히 누굴 가리키는 건가? 자주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집산주의자,” “아나키스트”라는 말을 듣는데, 대체 그 단어들이 뭘 뜻하는지 나는 하나도 모르겠네.

잭 : 아, 그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눈치채시니 기쁩니다. 단어의 정의를 설명하는 것만한 것도 없죠. 들어보시죠. 사회주의자는 사회악의 근원은 재산이고, 재산이 철폐되지 않는 한 무지와, 노예제와, 정치적 불평등 그리고 매춘을 비롯한 인민을 끔찍한 상황에 놓는 그 어떤 악도 뿌리 뽑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입니다. 실제 필요에 의해 나타나는 무시무시한 고통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 사회주의자는 땅, 원자재, 기계 그리고 모든 생산수단이 소수의 손에 들어있기에 빈곤이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사회주의자가 믿기에, 이 소수는 노동자 계급 전체의 목숨을 사용할 수 있고, 아무것도 없는 프롤레타리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들 사이에서도 재산을 소유하기 위해 무한한 다툼과 경쟁 속에 놓여있습니다. 사회주의자는 사유재산, 즉 원인을 제거해 그 결과인 빈곤을 없앨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재산은 폐지될 수 있고 폐지돼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부의 구성과 분배는 인간의 진짜 이익에 따라 결정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상이 더 강했거나, 운이 좋았거나, 더 간악했다는 이유로 중산층이 자기 자신을 위해 주장하는 기득권에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래서 “사회주의자”라는 단어는 사회의 부는 모든 인간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고 재산의 소유자와 프롤레타리아, 부자와 가난한 자, 고용주와 고용인이 더 이상 있어선 안 된다고 믿는 모든 이를 일컫는 단어입니다.

윌리엄 : 그런 자네가 사회주의자임은 확실하군. 하지만 “코뮌주의자”와 “집산주의자”는 무슨 말인가?

잭 : “코뮌주의자”와 “집산주의자” 모두 “사회주의자”입니다. 하지만 둘은 재산이 공동으로 놓일 경우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산주의자는 노동자나 노동자 협회가 원자재와 생산수단에 대한 권리를 갖고 각자 자기가 생산한 것의 주인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생산물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지만, 죽은 이후에는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은 협회로 돌아갑니다.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자식도 자신의 노동과 그 과실을 즐길 권리가 있습니다. 단 한 가지라도 물려받을 수 있게 한다면, 그건 불평등과 특권의 첫걸음이겠죠. 아이들의 교육, 노약자의 부양 그리고 전반적인 공공사업에 관해선 각 노동자 협회는 공동체의 일원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제공해야 합니다.

코뮌주의자는 사람들 사이의 일이 잘 풀리기 위해서는, 인간이 서로를 사랑해야 하고 한 가족의 일원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재산은 공동화돼야 합니다. 가능한 생산성을 높이고 기계의 도움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동은 노동자들의 큰 집단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모든 종류의 땅과 기후를 최대한 활용하고 각 지역이 가장 잘 생산할 수 있는 것을 생산하기 위해, 그리고 다양한 나라 사이의 경쟁과 혐오를 피하기 위해, 전 세계의 인류 사이에 완벽한 연대를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나’와 ‘너’가 하는 것을 구분지어 혼돈을 유발하는 것을 감수하기보다는, 모두가 함께 일하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둬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각 개인은 모두를 위해 충분한 양이 생산될 수 있도록 사회에 자신의 최선을 다해 기여할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 자기가 필요한 것을 가져가고, 각자의 필요는 모두를 위해 충분히 생산되지 않은 것에 한해서만 제약을 받게 됩니다.

윌리엄 : 잠깐 기다리게, 자네! “연대”라면 무슨 말인가? 사람들 간의 연대가 있어야 한다고 자네가 말했지만, 난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못했네.

잭 : 들어보세요. 예를 들어 아저씨의 가족에서, 아저씨와 아저씨의 형제, 그리고 아내와 자식은 버는 모든 것을 공유합니다. 먹을 것을 조금 구하면 다 함께 먹고 모두가 먹을 만큼 충분하지 않으면 모두 조금 굶습니다. 가족 중 하나가 운이 좋아 평소보다 더 번다면, 그건 모두에게 좋은 것입니다. 반면에, 가족 중 하나가 실직하거나 병에 걸리면, 그건 모두에게 안 좋은 것입니다. 가족 중 실직한 사람은 나머지와 똑같이 식사하고 병든 사람은 그 누구보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죠. 따라서 아저씨의 가족에서는 서로의 일과 빵을 빼앗으려 하기보다는 서로를 도우려 합니다. 한 명의 기쁨은 모두의 기쁨이고 한 명의 불행은 모두의 불행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질투와 혐오를 멀리하게 되고, 이해관계가 갈라진 콩가루 집안에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 상호 애정이 발달합니다. 그것이 연대입니다. 진정으로 단합된 가족으로 존재하고 싶다면 이 연대를 인류 전체에 설립해야 합니다.

윌리엄 : 이해했네. 하지만 하던 얘기로 돌아가세. 말해보게, 자네는 집산주의자인가, 코뮌주의자인가?

잭 : 저는 코뮌주의잡니다. 왜냐하면, 서로 친구가 되기 위해 인민은 반쪽만 친구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집산주의는 경쟁과 혐오의 균을 남겨둡니다. 하지만 전 그것보다 더 멀리 갑니다. 각자 자기가 생산한 것으로 살 수 있다고 해도, 집산주의는 코뮌주의보다 열등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고립시키고 그의 힘과 공감 능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구두 수선공은 자기 구두를 먹을 수 없고 대장장이는 철로 살 수 없습니다. 또한 농부도 철을 다루고 도구를 생산하는 노동자 없이는 땅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각자 가지고 있는 것을 고려하며 여러 생산자 간의 거래를 조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구두 수선공이 자기 구두의 가치를 부풀려 구두를 거래할 때 최대한 많은 돈을 받으려는 것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입니다. 또 한편 농부는 그에게 최소한을 주려고 할 것이고요. 도대체 어떻게 이 상황을 관리한다는 말입니까? 제가 보기에 집산주의는 많은 문제를 만들고 혼돈을 초래하는 체제입니다. 반면에, 코뮌주의는 그 어떤 어려움도 일으키지 않을 겁니다. 모두 노동하고, 모두의 노동을 즐긴다면, 그렇다면 남는 건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내고 그것이 충분히 생산되도록 계획하는 것뿐입니다.

윌리엄 : 그렇다면 코뮌주의 아래에서는 그 어떤 돈도 원하지 않는 것인가?

잭 : 돈도 그것을 대신할 그 어떤 것도요. 생산을 필요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생산되는지에 대한 기록 말고는 말입니다. 유일하게 심각한 위험은 많은 사람이 일하기를 거부할 경우뿐입니다. 하지만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오늘날에는 힘들 뿐인 노동은 즐거운 것이 될 것이고 동시에 소수를 넘어선 윤리적 의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가 시작될 때 우리가 여태 받은 질 나쁜 교육의 결과로 일부 사람들이 일하기를 거부한다면, 그 사람들은 원자재와 간단한 도구만 주어진 채로 공동체 밖으로 내보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일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중요한 것은 땅, 원자재, 생산수단, 집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부가 공동으로 놓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성 방식에 대해선 인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실천만이 그들에게 최상의 체계를 보여줄 것입니다. 여러 지역에서는 집산주의를, 또 다른 여러 지역에서는 코뮌주의가 채택될 것이라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둘 다 실험에 놓이면, 둘 중 더 나은 것이 널리 도입될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누구도 다른 이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땅이나 생산수단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고, 만약 일어난다면, 무기를 동원해서라도 이를 막아야 합니다.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입니다.

윌리엄 : 그것도 이해했네. 하지만, 말해보게, “아나키즘”이란 무언가?

잭 : “아나키”란 “정부 없이”를 뜻합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정부는 중산층을 방어하는 것 외에는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익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가 직접 챙기는 것입니다. 우리를 복종시키는 법을 만들거나 변경할 하원 의원이나 지방 의원을 뽑는 대신, 우리는 우리 문제를 직접 토의할 것입니다. 다른 이가 우리의 결정을 이행할 필요가 있을 때 그에게 우리가 정한 대로 행동하도록 신신당부해야 합니다. 곧바로 해낼 수 없는 일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자에게 의뢰해 문제를 조사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뜻과 다르게 행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파견인은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고 법률을 강요할 권리를 갖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능력에 따라 선택된 사람으로, 어떤 권위도 없이 단순히 인민이 결정한 바를 실행하는 사람이 될 뿐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구두 수선공이 구두를 만들도록 의뢰받듯이, 누구는 학교를 개편하고, 누구는 도로를 만들고, 누구는 생산물의 교환을 관리할 것입니다.

윌리엄 : 부디 조금만 더 설명해주게. 어떻게 나 같은 무지한 노인네가 의원과 장관이 해내는 모든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잭 : 대체 그 의원과 장관이 뭘 하길래 아저씨가 그들이 하는 것을 할 수 없다고 한탄하시나요? 그들은 유산자의 이익을 위해 법을 만들고 공권력을 사용해 인민을 짓누릅니다. 그뿐입니다. 우리에게는 필요 없는 능력입니다. 장관과 의원은 좋고 유용한 일로 바쁘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특정 계층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하고 불필요하고 성가신 제정으로 진보를 가로막습니다. 예를 들어, 상류층은 철도에 매혹됐습니다. 하지만 왜 그럴까요? 엔지니어와, 정비공과 온갖 종류의 인부로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장관과 의원과 주주와 다른 기생충이 사라져도 기차는 변함없이 움직이지 않을까요? 우체국, 전신국, 항해국, 교육과 병원 등 직종에 관계없이 노동자에 의해 관리되는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는 해를 끼치기 위해 간섭할 뿐이죠. 정치인이 이해하는 정치는 우리에게 어려운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진지하게 인민의 실제 필요와는 아무 관계도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의 목표가 인민의 진짜 필요를 충족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보다 의원에게 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런던에 사는 하원 의원이 나라 안의 지방의 필요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우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도 그 언어를 할 수 없는 이들이 어떻게 다양한 직종과 산업의 이해관계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각자 자기가 알고 필요한 것에 신경을 썼다면 모든 건 매우 달랐을 것입니다. 일단 혁명이 일어나면 우리는 말하자면 아래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선전의 영향과 시대의 열정으로 각 지역이나 교구나 도시의 다양한 직종은 협회association를 이룰 것입니다. 그리고 한 직종이나 지역의 필요를 누가 이들보다 더 잘 이해하겠습니까? 그 이후 여러 직종이나 지역 사이에 협의가 필요할 때, 각각 특수한 회의에 보낼 대표자를 선출해 다양한 필요와 욕구의 조화를 이루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정은 언제나 인민의 이익이 방치되지 않도록, 그들이 대표하는 유권자의 동의 아래 이뤄질 것입니다. 그렇게 인류는 점진적으로 조화를 이룰 것입니다.

윌리엄 : 하지만 한 나라나 협회가 나머지와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수가 당연히 우세를 점하게 되지 않겠나?

잭 : 자동적인 우세는 아닙니다. 진실과 정의 앞에선 숫자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백 명, 천 명, 혹은 모두에게 반대하는 단 한 명이 옳을 수 있습니다. 실질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할 수 있는 걸 해야 합니다. 만장일치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대다수가 동의하는 방식이 그 동의한 집단 내에서 행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경험이 그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면 다른 이들도 그들을 모방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소수의 주장이 맞았던 것이 증명되고 그에 따른 행동을 취할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의 기반이 될 평등과 정의의 원칙은 위배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합의에 다다를 수 없는 문제는 그 수가 지극히 적을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이해관계의 분화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의 나라와 협회, 즉 같이 살아갈 사람들을 자유롭게 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또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안은 견해의 차이를 좁힐 수 없는 이론의 영역이 아니라,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실생활과 실증과학에 대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문제의 최선의 해결책이 경험을 통해 내려질 때, 다수결로 사람들을 짓누르는 방식보다는 어떻게 그들에게 해결책을 보여줘 설득할 것이냐가 문제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시민들이 씨앗을 뿌리는 계절을 정하기 위해 모인다면 비웃을 만한 일이지 않나요? 이미 경험으로 결정이 난 사안인데 말이죠. 완전히 고정된 안건이 아니라면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투표를 사용할 수 있죠. 모든 공적이고 사적인 일은 이렇게 다뤄질 것입니다.

윌리엄 : 하지만 누군가 단순한 황소고집과 방자함으로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반대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잭 : 그럴 경우 당연히 강제 조치를 취해야겠죠.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것이 부당한 것처럼, 그 반대도 상당히 부당하겠죠. 그리고 소수가 들고 일어날 권리를 가지고 있듯이, 다수에게는 자신들을 방어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어느 곳에서나 인간은 원자재와 생산수단에 대한 양도 불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물론 이는 완전히 만족스러운 해결책은 아닙니다. 협회에서 쫓겨난 개인은 많은 사회적 이익을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적 이익은 많은 사람의 협동을 통해서만 만들 수 있기에, 고립된 사람 또는 무리는 이를 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선호하십니까? 이 불평을 늘어놓는 자는 다른 여러 사람의 바람이 자신의 바람을 위해 희생되기를 정당하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연대와 형제애와 상호부조 그리고 필요에 따른 상호 고려와 지지가 성립되면 시민 독재나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장담하건대 인간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그들 사이에는 연대가 꽃필 것입니다. 압제와 내전은 모두에게 악입니다. 연대만이 우리 이상이 현실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고, 평화와 번창과 보편적인 자유를 가져올 것입니다. 또한 진보가 인간을 단결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더 독립적이고 자급할 수 있게 만든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땅 위로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선 철도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는 많은 사람들의 공동의 노동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아나키” 아래에서 여행자는 여전히 자기 필요를 다수가 최선이라 정한 우리의 필요와 규정에 맞춰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어떤 도로에서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혼자서 운전할 수 있는 기차를 만든다면, 모두 다른 이의 규정에 맞출 필요 없이 자기가 원하는 곳을 원하는 때에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그렇거나 미래에 그렇게 될 수천 가지의 다른 것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따라서 진보의 성향은 사람들 간의 특정한 관계를 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덕적 연대”와 “물질적 독립”을 향한 것이요.

윌리엄 : 그런 것이군. 그럼 자네는 사회주의자고, 사회주의자 중에서 자네는 코뮌주의자이며 아나키스트인 것이야. 하지만 자네가 국제주의자라고도 들었네. 그건 무슨 말인가?

잭 : 국제 노동자 협회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30여 년 전, 전 문명국가의 노동자 간의 협회가 세워졌습니다. 모든 땅의 노동자가 유산자 때문에 겪는 불의와 착취를 함께 논하고 보편적인 사회 혁명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함께 행동할 목적으로 말이죠. 특정 문명 수준에 다다른 각국의 노동자는 서로 비슷한 방법으로 착취당하고 지배계층은 대중을 짓밟기 위해 서로 뭉쳐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세계 모든 곳의 노동자의 공동의 이익은 국가적 차이보다 더 강력합니다. 그리고 착취자들이 협동하는 것처럼 노동자들도 함께 행동해야지만 자본주의의 멍에를 떨쳐낼 수 있습니다. 국제 노동자 협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노동자를 뒤흔드는 거대한 노동운동은 그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오늘날 중산층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는 국제 사회주의 아나키스트 혁명당International Socialist Anarchist Revolutionary Party 같은 여러 나라의 사회주의 정당도 그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이 정당의 목표는 아나키스트 사회주의의 신념을 널리 알리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유산자나 국가로부터 자의적인 합의를 찾는 것과 점진적인 헌법적 개혁은 희망이 없음을 보이는 것. 자신의 권리에 대한 의식을 향해 인민을 깨우고 봉기의 기상을 일깨우는 것. 사회 혁명, 즉 모든 정부를 파괴하고 모든 부를 공동의 것으로 하도록 부추기는 것입니다. 이 강령에 동의하고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동참하려는 자는 누구든 이 정당의 일원입니다. 이 정당은 우두머리도 권위도 없습니다. 오로지 같은 목적을 위해 싸우는 자들 사이에서 임의적이고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각 일원은 자기가 원하는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필요한 수단을 최선이라 생각되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퍼뜨릴 수 있습니다. 물론, 정당의 강령과 전략에 반대되지 않는 선에서요.

윌리엄 : 그렇다면 사회주의, 아나키즘, 혁명적 신념에 동의하는 모든 이들이 이 정당의 일원인가?

잭 : 아닙니다. 누군가는 우리 강령에 완전히 동의할 수 있겠지만, 무슨 이유에서든 강령에 동의하는 대중과 효과적인 연대와 협동의 관계를 이루지 않고, 혼자서 또는 소수의 조직원과 행동하는 것을 선호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이 일부 개인이나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효과적일 수 있지만, 일반적인 방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고립은 약점이고 형제애와 조화가 있어야 하는 곳에 반감과 경쟁심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사상을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 투쟁하는 남녀모두 친구이고 동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상의 진실에 대해서는 확신하지만 그들이 옳다고 믿는 것을 퍼뜨리려 하지 않고 소신을 비밀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죠, 이들이 이론상으로 사회주의자나 아나키스트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와 생각이 같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들의 신념은 매우 약함이 틀림없습니다. 아니면 겁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고요. 자신과 자기 주변인에게 해로운 악을 봤고 그 해결책을 안다 생각하는 인간이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선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말이죠. 진실을 알지 못하는 자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자는 비정한 겁쟁이일 뿐입니다.

윌리엄 : 자네가 맞네. 자네가 한 말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생각해보겠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라는 확신이 생겼을 때, 나는 그 정당에 가입하겠네. 그리고 나 또한 그 신성한 진실을 퍼뜨리겠네. 그리고 상류층이 나를 비열하거나 바보라고 부르면, 나는 그에게 나만큼 일하고 고통받은 뒤에나 입을 열 권리를 얻을 것이라고 말하겠네.

두 농부의 대화 : 아나키에 관해

서론

에리코 말라테스타가 쓴 이 소책자는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판본과 번역본이 있으며, 이는 이 소책자의 중요성과 정합성이 널리 인정받고 있음을 입증한다.

『두 농부의 대화』는 말라테스타의 다른 작품들처럼 겸손한 어조를 공유하는데, 대화라는 형식을 통해 이를 더 잘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지난 19세기 말 이탈리아 북부에서 정치에 관심이 많은 한 농민이 그렇지 않은 다른 농민과 했을 법한 대화다. 이 책은 심제로 교훈을 주고자 하는 작품이기에 교육하고자 하는 의도를 숨기지 않지만 이런 류의 문학 작품이 종종 지니는 가식을 피하는 데는 성공한다. 말라테스타의 의도는 아나키스트 운동(당시 국제 사회주의 아나키스트 혁명당)에, 프롤레타리아화 되어 가는 단계에 있던 농민과 소규모 장인들을 위한 기민한 선전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즉, 지난 세기 말 산업발전의 신기루에 이끌려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들을 팽창시켰던 굶주린 대중들을 위한 것이다.

1884년의 피렌체는 20년 전 바쿠닌의 혁명적 활동이 있었던 때로부터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도시화는 가시적인 현상이 되었다. 자본주의적 착취의 기제에 의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가득했다. 통일 직후 젊은 이탈리아 부르주아 계급은 손쉽게 사업들을 독점했고, 그 이후 디플레이션의 시기가 뒤따랐다. 빈곤이 증가했고 굶주린 사람들은 반항을 꿈꾸며 부를 악마와 같이 보았다.

말라테스타의 목표는 반란이다. 특정 문제에 대한 연구는 결코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회 혁명 이후 아나키스트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유토피아적 비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말라테스타가 계속해서 우리의 관심을 다시 끌어당기며 반복되는 질문, 즉 가난한 사람들이 부富를 획득하는 것과 그것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것에 대한 문제이다.

“…우리는 대중 사이에 불을 지피고, 불만과 운동, 반란을 이용하여 강력한 타격을 가할 것이다. 우리는 두렵지 않으며, 곧 부르주아적인 재앙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행복한 삶이 정착되기 시작될 것이다.”

이 문구는 이 팸플릿에 포함된 말라테스타의 분석, 그 최고 목표점을 나타낸다. 이 구절에 비춰보면 다양한 논쟁과 이론적 질문은 다른 의미와 관점을 갖게 된다. 생산, 기계, 작업, 계획, 가격 책정 기제, 정부, 국가, 그리고 추상적 용어로 여겨지는 혁명과 같은 개별적인 문제들은, 수없이 많은 동지들에 의해 아나키즘의 참된 의미의 한 부분으로 각각 다루어질 수 있다. 여기서 이 문제들은 다른 색채를 띤다. 말라테스타는 양심의 고통 속에 있는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를 설득하는 것이나, 마르스크로 이래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는 경제학자와 학문적인 논쟁을 하는 데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정부나 국가 없는 사회 구조의 가능성을 고려하는 사회주의자를 곤란에 빠뜨릴 생각도 없다. 그의 목표는 농민, 노동자, 소외된 프롤레타리아 독자들에게 착취와 억압의 기제, 이념과 정치의 사기적 체계를 이야기하고 그들 계급의 적에 대한 투쟁을 일으키게 하고 궁극적으로 반란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염두에 두지 않는 사람들은 이 팸플릿의 깊은 의미를 왜곡한다. 사회학 논문을 읽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참된 혁명적 문학을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라테스타가 제안한 해결책의 한계에 관한 논쟁은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독점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그의 독특하고 명쾌한 분석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아나키즘적 사회가 불가피하다고 결론짓는 것이나, 계획의 필요성을 예견한 것 등에서 말라테스타가 극복하지 못했던 모순점을 발견할 수 있다. 말라테스타의 작품을 “업데이트”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며, 그의 작품을 “구시대적”이라고 선언하기 위해 모순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시도 역시 무의미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팸플릿은 여전히 유효하고, 이것이 쓰인 목표, 즉 착취당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뒤처진 계층을 반란으로 이끄는 데에 훌륭하게 부합한다. 이것은 투쟁의 도구이지, 아나키즘 이론의 설명서가 아니다. 따라서 이 팸플릿에서 나타나는 비전의 명확성은 여러 성과 없는 이론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제적 반란과 수용에 의해서 절정을 맞이해야 한다.

알프레도 M. 보난노

1981년 5월 3일

두 농부의 대화

베르트 : 아! 조르조, 자네인가? 만나서 반갑네. 이전부터 자네와 이야기 좀 하고 싶었다네. 아, 조르조, 조르조! 자네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네! 시골에 살 때부터 좋은 청년이었고,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꽤 모범이 되었다더군. 만약 가엾은 자네 아버지가 살아 계시기만 했다면….

조르조 : 베르트 아저씨, 왜 그러시죠? 제게 왜 그렇게 말씀하시죠? 그리고 제 아버지께서 저한테 불만이었을 거라니요?

베르트 : 기분 상하지 말게, 조르조. 난 늙었고, 자넬 위해서 말하는 걸세. 게다가, 나는 자네 아버지인 안드레아와 오랜 친구였고 자네가 그렇게 안타까운 꼴이 된 것을 보니 마치 내 아들이 그런 것 같더군. 특히 자네 아버지가 자네에게 가졌던 희망과 좋은 양육을 위해 그가 한 희생을 생각하면 말이지.

조르조 :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저는 정직한 노동자가 아닌가요? 저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어요. 정반대로 저는 항상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선善은 행해왔는데, 아버지가 저를 부끄러워하다니요? 저는 배우고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악에 대해 동지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왜 저를 이런 식으로 대하시죠?

베르트 : 아, 바로 그거야! 자네가 성실히 일하고 이웃을 돕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네. 자네는 좋은 청년이지, 지역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말하더군. 하지만 자네는 감옥에 여러 번 있지 않았나? 그리고 경찰이 자네를 감시하고 있고 자네와 대화하는 것만 보여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하더군. 하지만 나는 자네가 좋으니 이렇게 말하겠네. 조르조, 이 노인의 충고를 받아들이게. 정치는 할 일 없는 상류층에게 맡기고 그저 받아들이게. 그것이 평화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일세. 그렇지 않으면 몸과 마음을 잃게 될 걸세. 들어보게.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게. 모두가 그놈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자식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네.

조르조 : 아저씨 믿어주세요. 제 동지들은 모두 정직한 사람들이에요. 그들이 먹는 빵은 땀과 눈물로 얻은 겁니다. 우리의 마지막 피 한 방울마저 빨아먹는 사장들의 말을 무시해야 해요. 그들은 우리가 불평만 한다며 훌리건이라고 부르고, 우리가 우리의 상황을 개선하고 그들을 성토하여 그들의 폭정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범죄자라고 불러요. 저와 제 동료들이 감옥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옳은 이유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거기 가게 되거나, 아니면 더 나쁜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불의와 가난을 파괴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아저씨도 평생을 일하고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양로원에 들어가게 될지 모르잖아요. 적어도 가난한 자들의 많은 부분을 개선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사장들과 정부의 편에 서서는 안 됩니다.

베르트 : 이보게 조르조, 나는 세상이 옳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네만, 그걸 바꾸는 건 거의 불가능할 일일세. 그러니 그냥 상황을 받아들이고 하느님께 기도하세. 우리에게 빵 한 조각이라도 내려주시길 바라면서 말이지.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은 늘 있었고, 일하기 위해 태어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만족해야 하네. 그래야 평화롭게 살 수 있고 우리의 명예를 지킬 수 있어.

조르조 : 아저씨는 명예 타령을 하고 있군요! 땅 주인을 보세요. 그들은 우리를 빵 한 조각을 위해 짐승처럼 일하게 한 다음, 부와 방탕에 낭비하죠. 그들은 우리가 정직한 사람이라면 이 모든 것을 웃으며 참아내고 불평도 하지 않고 자기들의 등에 살이 찌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러지 않고 우리 또한 사람이며 일하는 사람은 먹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들은 우리가 악하고 부정직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경찰은 우리를 감옥에 집어넣고, 성직자들은 우리를 지옥으로 보낼 겁니다.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베르트 아저씨. 아저씨는 노동자고, 동료들을 착취하려고 한 적이 없어요. 진짜 악당들, 명예롭지 못한 자들은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을 장악하고 가난을 통해 사람들을 털 깎이고 도살되게끔 허용하는 양떼마냥 만드는 불의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아저씨는 우리를 비판하면서 그들 편에 서시나요? 그들은 자신들의 정부를 상류층들로 구성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또한 노동자들,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에게 등을 돌리도록 만들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에게도 빵과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아! 강제적 노예제로 인한 여러 세기 동안의 가난과 무지가 아니었다면, 저는 가장 품위가 낮은 사람들은 인류의 억압자들을 지지하는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겁니다. 물론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할 수 있도록 비참한 빵 껍질과 우리가 가진 자유의 조각이 주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으니까요.

베르트 : 그래그래, 좋은 말들이네. 하지만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서 제대로 될 수 있는 일은 없네. 자네는 날 설득할 수 없어. 교구 사제가 자네와 동지들을 이단자 무리라고 말하는 걸 들었네. 공부를 오랫동안 해오고 신문을 읽는 안토니오 신부는 자네와 자네 동지들 모두가 미친 난동꾼들이며,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일하고 싶지 않아 하고, 노동자들에게 좋은 일을 하는 대신 집주인들이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을 막고 있다고 말하더군.

조르조 : 아저씨, 우리가 이성적으로 대화하고 싶다면 하느님과 신자들은 여기서 제외할 필요가 있어요. 동족을 속이고 억압하려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이름을 구실과 명분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왕들은 신이 그들에게 통치할 권리를 주었다고 말하고, 두 왕이 나라에서 대립할 때면 양쪽 모두 신이 자신을 보냈다고 말합니다. 신은 항상 가장 많은 군인과 최고의 무기를 가진 사람들의 편이죠. 재산을 소유한 자, 폭리를 취하는 자, 사업을 독점한 자 모두가 신을 말합니다. 그리고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 터키의 사제들과 장관들은 각각 자신들이 신의 대리인이라고 말하고, 신의 이름으로 서로 전쟁을 벌이면서 자신들의 둥지를 틀려고 노력해요. 아무도 가난한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아요.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주셨고, 우리에게는 가난과 끝도 없는 노동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낙원을 갖게 될 것이고 다음 세상에서도 낙원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저세상에서만 낙원을 받게 될 겁니다. 그것도 우리가 순종적인 노예가 되고 그들이 우리에게 장소를 허락한다는 경우에만 말이죠. 들어보세요. 저는 양심의 문제를 다루고 싶지 않아요. 모든 사람은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아는 한, 저는 하느님이나 성직자들이 우리에게 하는 어떤 이야기도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항상 기득권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성직자들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건 아무도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꼴이죠. 저 역시 동화 속 세계를 창조할 수 있고, 저를 믿지 않는 사람은 영원한 불길에 놓일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만약 제가 그랬다면 아저씨는 제가 사기꾼이라고 말했겠지요. 하지만 만약 제가 한 아이를 잡아서 다른 누구도 반박하지 않는 상태에서 같은 말을 반복한다면, 그 아이는 자라서 신부를 믿는 것처럼 저를 믿을 겁니다.

어쨌든, 아저씨가 편할 대로 믿으세요. 하지만 아저씨의 하느님이 아저씨가 굶주리기를 원하고, 아저씨의 자녀들이 음식과 의료의 부족으로 병들고 발육부진 상태로 자라기를 원하며, 아저씨의 딸들이 향수 냄새나는 젊은 주인의 정부가 되는 길에 놓이기를 원한다고 말하지는 마세요. 그런 하느님은 암살자니까요.

만약 신이 있다면, 신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 자신과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계속해 나가자고요. 다음에 만약 신이 있고 그가 정의롭다면, 우리가 고통을 주거나 다른 사람들이 계속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보다 선을 행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될 겁니다. 교구 사제의 말마따나 우리가 모두 형제이고 하느님의 피조물이라면 말이죠.

제 말을 믿어주세요. 오늘 하느님께서는 아저씨가 가난하다고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만약 내일 아저씨가 어떤 식으로든 많은 돈을 모으는 데 성공한다면 아저씨는 즉시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권리를 얻을 것이고, 농민들을 학대할 수 있겠고, 가난한 소녀들의 명예를 빼앗을 수 있겠죠. 그리고 하느님은 아저씨의 고용주가 계속 그렇게 했던 것처럼 아저씨도 그렇게 하게 둘 겁니다.

베르트 : 이거 참 야단났군! 자네가 읽고 쓰는 법을 배운 이후로 자네 이야기를 들으니 변호사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구만. 자네 말에 등골이 오싹해지는군. 주인집 아들이 내 딸 로지나를 볼 때 눈이 밝아지는 걸 봤다네. 오! 만약 내 로지나가…. 아! 다른 이야기를 하세.

나는 늙었고 이곳이 비열하고 비참한 세상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불량배가 되고 싶지도 않다네. 말해보게. 자네가 토지를 가진 모든 사람으로부터 그것을 빼앗고 싶어 하는 것이 사실인가?

조르조 : 맞아요! 그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거예요! 가난한 사람들과 관련된 것을 알고 싶을 때는, 절대로 땅 주인에게 묻지 마세요. 아무도 자기 이익에 반하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아저씨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겁니다. 아나키스트들이 뭘 원하는지 알고 싶다면 안토니오 신부 같은 성직자가 아니라 저와 제 동지들에게 물어보세요. 대신, 신부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왜 우리는 감자나 먹고 있어야 하는지 물어보세요. (감자가 있기나 하다면 말이죠.) 반쯤 닫힌 예약 좌석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신부님은 어떤 여자와 로스트비프를 먹고 있는데 말이죠. 그에게 왜 그가 평소에는 지주들만 만나고 삼킬 만한 것이 있을 때만 우리에게 오는지 물어보세요. 왜 항상 지주나 경찰이 옳다고 하는지, 그리고 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는 핑계로 가난한 사람들의 입에서 빵을 빼앗고서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어떤 일도 하지 않는지, 왜 다른 사람의 희생에 기대서 사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지 물어보세요. 다음에 젊고 힘이 세고, 공부를 하고 카페에서 카드놀이를 하거나 주민 회의에서 거들먹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안토니오 신부를 보게 되면,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에 대해 더 이상 지분거리지 말고 고된 일들과 가난에 대해 조금 알아보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말해 주세요.

베르트 : 그건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앞서 얘기했던 것으로 돌아가지. 자네가 다른 사람의 토지를 빼앗고 싶어 한다는 것이 사실인가?

조르조 :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가져가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이 지주들로부터 토지를 되찾아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공유하기를 원할 뿐이죠.

만약 이렇게 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토지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우리의 것인 토지를 되찾는 것입니다.

베르트 : 그럼 토지가 정말 우리들의 것이란 말인가?

조르조 : 물론, 토지는 모든 사람의 것입니다. 누가 그것을 지주에게 주었죠? 그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했나요? 그들이 그것을 소유하고 지킬 수 있는 권리가 어디에 있죠?

베르트 : 그들의 조상들이 물려줬지.

조르조 : 그럼 누가 조상에게 그것을 주었을까요? 확실히,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하고 운이 좋았고,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차지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일하도록 강요했고, 그들 주변의 많은 사람을 억압하고 굶주리게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훔친 재산을 그들의 자손 대대로 물려주었습니다. 그 결과 미래의 인류 전체를, 게으름으로 나약해졌지만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는 그들 후손들의 노예로 전락시켰습니다. 그들이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고 그들의 아버지처럼 힘으로 그것을 붙잡고 싶어 한다는 사실만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미안함을 느꼈겠죠.

이 모든 게 올바르다고 보이시나요?

베르트 : 그들이 부당하게 땅을 빼앗았다면, 올바르지 않네. 하지만 지주들은 토지를 얻기 위해 일했다고 말하지. 나는 그들이 스스로 노력해서 이룬 것을 빼앗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네.

조르조 : 아, 네! 똑같은 옛날이야기군요! 일하지 않고 일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항상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말을 하죠.

자, 금속, 석탄, 돌 등이 어디서 나오죠? 그것들은 신에 의해 만들어졌거나 자연의 자발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확실히, 우리가 세상에 나왔을 때 우리 모두가 그것들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것들은 모든 사람에 의해 이용되어야 하죠. 만약 지주들이 공기를 마음대로 가져가고, 우리는 땀과 노동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 하고, 적은 양의 가장 더러운 공기만 허용한다면, 아저씨는 뭐라고 말할 건가요? 공기와 땅의 유일한 차이점은, 땅에 대해서는 쪼갤 방법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방법을 찾는다면, 그들은 땅에 그랬던 것처럼 공기에 대해서도 똑같이 할 겁니다.

베르트 : 사실이네. 그게 맞는 것 같구만. 대지와 자연의 모든 것은 모든 사람의 것이어야 하네. 하지만 모든 것이 바로 우리 눈앞에서 발견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조르조 : 물론 많은 것들이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졌지만, 사실 인간의 노력으로 개간되고 경작되지 않았다면 땅 자체는 큰 가치가 없었겠죠. 개간되고 경작된 것들은 그것들을 생산한 사람의 것이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것들을 생산하기 위해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의 손에 그것들이 있을 수 있을까요?

베르트 : 하지만 지주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일을 하고 노예를 부렸다고 말하더군.

조르조 :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오늘날과 똑같이 급여 없이 그들을 위해 일하도록 강요했다고 말해야 합니다. 역사는 노동자들의 상황이 항상 비참했고, 정확히 지금처럼,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지 않고서는 저축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배고픔을 채울 만큼도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아저씨의 눈앞에 있는 현실을 보세요.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모든 것은 그저 구경만 하는 사장의 손에 들어가지 않나요?

오늘날 그들은 늪지대 한 곳을 싸게 삽니다. 그들은 그 위에 사람들을 고용하고, 노동자들이 굶어 죽는 것을 면할 수 있을 만큼만 준 다음, 도시에 가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냅니다. 몇 년 후, 이 쓸모없는 땅은 처음 가격의 100배에 달하는 정원이 됩니다. 이 보물을 물려받은 아들들은 아버지의 업적으로 이득을 보고 있다고 할 것이고, 정말 일하고 고생한 사람들의 아들들은 계속 일하고 고생할 거에요. 아저씨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베르트 : 하지만… 세상이 정말 그렇게 굴러온 것이라면, 지주의 소유는 전혀 없어야 할 테지.

조르조 : 좋아요, 그럼 최대한 지주에게 유리하도록 가정해 볼게요. 그들이 모두 과거에 직접 일을 하고 저축한 사람들의 아들이고, 노동자들은 모두 게으른 낭비꾼들이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제가 하는 말이 황당하다는 걸 아시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사회조직이 더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저씨는 열심히 일하고 내가 게으름을 피운다면 내가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 내 아이들도 벌을 받아야 한다거나, 아저씨의 아이들을 부유하고 풍요롭게 유지하기 위해 일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굶어 죽어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베르트 : 자네의 주장은 좋은 생각이고,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지주들은 땅을 가지고 있고, 장기적으로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게 아니겠나? 왜냐하면 그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단이 없었을 테니 말이야.

조르조 : 그들은 그 땅을 폭력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땅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들 노동의 열매를 마음대로 가져가면서 번창해 왔어요.

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가져갔으니, 다시 돌려줄 수도 있는 거죠.

지금까지 사람들은 서로 전쟁을 해왔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입에서 빵을 낚아채려 했고, 노동자를 짐승처럼 부리기 위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일을 끝낼 때에요. 전쟁으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시대를 지나면서 가난, 노예제, 범죄, 매춘, 그리고 때때로 전쟁이나 혁명이라고 불리는 유혈사태가 있었습니다. 서로 잘 지내고, 사랑하고, 도와주면서, 우리는 더 이상 그 많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과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로 나뉘지 않을 거고,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명령을 내릴 뿐 일하지 않고 사는 것에 익숙한 부자들이 제도를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은 충분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겁니다. 만약 그들이 사랑을 통해서든 공포를 통해서든 사람들 사이에 더 이상 증오와 불의가 없어야 하고 모든 사람이 일을 분담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로 결정한다면 훨씬 더 좋겠지요. 반면에, 만약 그들이 우리를 억누르고 그들의 조상들, 그들 폭력과 절도의 결과를 계속 즐기고 싶다면, 그들에게는 훨씬 더 나쁜 일이 될 겁니다. 그들은 무력으로 그들이 지닌 모든 것을 차지했고, 그렇기에 우리는 무력으로 그들에게서 그것을 되찾을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동의하기만 한다면, 가장 강한 것은 우리입니다.

베르트 : 하지만 더 이상 땅 주인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겠는가? 누가 우리에게 일거리를 주겠나?

조르조 : 어처구니가 없군요! 보세요! 아저씨는 그 답을 매일 보고 있어요.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수확을 거두고, 밀을 갈아서 헛간으로 운반하는 것은 아저씨 자신이잖아요. 와인, 기름, 치즈를 만드는 건 아저씨인데 지주들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냐고 물어보신다니요? 차라리 땅과 도시의 일꾼들,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불쌍한 우리가 아니었다면 지주들이 어떻게 살아남았겠느냐고 묻는 게 맞을 겁니다.

몇 분 전에 아저씨는 사장들이 살아갈 수단을 준다는 이유로 감사하고 싶다고 했죠. 아저씨는 그들이 우리 노동의 결과를 빼앗아 가는 것을 모르시겠어요? 그들이 입에 넣은 모든 빵 조각은 우리 아이들에게서 훔쳐 간 것입니다. 그들이 여자들에게 주는 모든 선물은 가난, 배고픔, 추위,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재능을 팔아버린 대가를 상징합니다.

지주들이 무엇을 생산하죠?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그들이 소비하는 모든 것은 노동자들로부터 훔쳐간 것입니다.

내일 모든 일꾼들이 밭에서 사라진다고 상상해 보세요. 땅 위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으면 지주들은 굶주릴 겁니다. 구두장이가 사라지면 신발이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을 겁니다. 집 짓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집을 지을 수 없겠지요. 모든 계층의 노동자들이 사라지면 생산의 한 부문이 사라질 거고, 사람들은 유용하고 필요한 모든 것 없이 지내야 할 겁니다.

하지만 만약 지주들이 사라진다면 어떤 피해가 있을까요? 그냥 메뚜기떼가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베르트 : 그래, 우리가 모든 것을 생산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게 땅, 동물, 씨앗이 없다면 어떻게 옥수수를 재배할 수 있겠는가? 내가 말했듯이 탈출구는 없다네. 우리는 사장들 밑에서 일해야 해.

조르조 : 오, 아저씨, 이미 답을 아시잖아요? 우리는 지주로부터 필요한 것, 즉 땅, 도구, 씨앗 등 모든 것을 가져와야 합니다.

땅과 작동시킬 기계가 지주의 손에 있는 한, 노동자들은 항상 억압당할 것이고 가난과 노예제밖에는 모를 겁니다. 그러니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주로부터 땅을 되찾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에요.

베르트 : 맞네, 자네가 이미 말했지. 하지만 어떻게 말인가? 이 모든 것이 내게는 너무 생소해서 머리가 어지럽구만.

하지만 자네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설명해주게. 지주들에게서 빼앗을 이 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한 사람이 차지하기에는 많지 않나?

조르조 : 당연히 그렇죠! 누군가가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이 절반이나 그 이상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무지하거나 나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베르트 : 그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잘 이해가 안 되는군.

조르조 : 보세요, 꽤 간단해요. 우리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모든 사람은 일을 해야 하고 모든 사람은 가능한 한 잘 살아야 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하지요. 일을 하지 않고는 이 세상을 살 수 없기 때문에 한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키며 살아야 합니다. 그건 불공평하고 해롭습니다. 제가 모든 사람이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그 모든 사람은 일을 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고, 그들에게 알맞은 양을 의미합니다. 절뚝거리는 사람, 약자, 노인은 사회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누구도 고통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늙을 것이고, 불구가 되거나 쇠약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도 그렇게 될 수 있죠.

자, 잘 생각해보면, 인간의 사용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부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토지, 기계, 도구, 교통수단, 천연자원 등을 포함하는 부분은 필수적이고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공유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사용하고 그에 관한 노동을 조직하는 방법에 관한 한, 그것은 모두가 결정할 것입니다. 더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좋은 해결책은 공동으로 일하는 겁니다. 사실, 공동으로 일하는 것은 모두에게 환영받을 겁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스스로 일하는 것은 일을 가볍고 즐거운 것으로 줄여주는 기계 없이 일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들이 더 이상 서로의 입에서 빵을 빼앗을 필요가 없을 때 그들은 고양이나 개처럼 행동하는 것을 멈추고, 함께 살아가며 공동으로 일하는 것을 즐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든, 가령 어떤 사람들은 따로 일하기를 선호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본질적인 것은 일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일부를 위한 일을 강요함으로써 살아가는 사람이 없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은 필요한 것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할 필요가 없으니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사회적 부의 두 번째는 음식, 옷, 주택과 같이 인간이 직접 소비하는 것들이 포함됩니다. 이것들 중 이미 존재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가 새로운 수확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식으로 공유되고 분배되어야 하며, 우리는 산업에 의해 새로운 상품이 생산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굶주린 노동자의 노고로 살아갈 놀고먹는 고용주가 더 이상 없을 때, 혁명 이후 생산되는 것은 각 지역 노동자들이 원하는 대로 분배될 겁니다. 함께 일하고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그런 식으로 생산은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최대한의 즐거움을 보장하도록 조정될 수 있고 그렇게 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개인이 생산한 것을 장부에 기록하여 각자가 그들이 한 일의 양에 따라 상품을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이는 계산하기 어렵겠지요. 사실 저는 그게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비례분배의 난해함을 이해하게 되면 모든 것을 공동으로 두겠다는 생각이 좀 더 쉽게 받아들여질 겁니다.

어떤 경우에도 모든 사람은 빵, 주택, 물 등과 같은 기본적인 필요에 대해서는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의 질과는 별개로 확실히 보장받아야 합니다. 어떤 형태의 조직이 채택되든,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편안하고 다른 사람들은 배고픔과 욕망을 갈구하는 것,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부유하게 태어나고 다른 사람들은 가난하게 태어난다는 것은 잘못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세습이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이 생산하고 구할 수 있는 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가 죽었을 때 그의 모든 저축은 지역사회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또 다른 편으로는, 젊은이들은 그들의 능력을 최고조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의 비용을 통해 길러지고 교육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정의도 평등도 없을 것이고, 모두가 노동의 도구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원칙은 침해될 겁니다. 왜냐하면 학문과 도덕적 힘은 진정한 노동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토지와 기계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모든 사람에게 그것들을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성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람man, uomo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성별의 구별 없이 인간을 의미합니다.

베르트 : 그래도 뭔가 걸리는군. 가난한 사람들을 강탈하고 굶주리게 한 지주들로부터 재산을 빼앗는 것은 충분히 공평한 것 같네. 그러나 만약 누군가가 열심히 일하고 저축을 해서 돈을 따로 모아놓고 1에이커나 2에이커 되는 작은 가게를 산다면, 어떤 권리로 그에게서 이것을 빼앗을 수 있겠나?

조르조 : 애초에 그렇게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울 겁니다. 자본가와 정부가 생산물을 최대한 활용하는 오늘날에는 노동력을 절약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아시다시피, 몇 년 동안 열심히 일한 뒤에도 아저씨는 여전히 예전처럼 가난합니다. 게다가 저는 이미 각자가 원자재와 도구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만약 누군가가 자기 손으로 스스로 얻은 작은 땅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아주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그가 완벽한 도구, 거름 그리고 대지로부터 최대한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 받았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군요. 물론, 그 사람이 모든 것을 공동으로 두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사리사욕은 모든 사람에게 공동 소유 체제의 이점을 드러내 줄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모든 사람은 혼자 하는 것보다 땅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고, 특히 새로운 기계의 발명으로부터 고립된 작업은 점점 덜 생산적이게 될 것입니다.

베르트 : 아, 기계! 그것들은 모두 파괴되어야 하네! 그것들은 노동자들을 망치고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일을 빼앗고 있어. 여기 이 지역에서도 볼 수 있지. 새 기계가 도착할 때마다 우리의 임금은 줄어들고 우리 중 일부는 해고되고 어딘가에서 굶어 죽을 수밖에 없게끔 놓이지. 마을에서는 더 심하고. 적어도 기계가 없다면 지주들은 우리의 노동력을 더 필요로 하겠고, 우리의 상황은 조금 더 나아질 걸세.

조르조 : 기계가 가난과 일손 부족의 원인 중 하나라고 믿는 건 아저씨 말이 맞아요. 하지만 이것은 기계가 사장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만약 그것들이 노동자들의 것이라면 결과는 정반대일 겁니다. 기계들은 인간 복리의 주된 원천이 될 거에요. 사실, 기본적으로 기계는 우리 대신, 또 우리보다 더 빠르게 일합니다. 기계들 덕분에 인간은 더 이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몇 시간씩 일하거나 초인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기계가 생산의 모든 분야에 사용되고 모든 사람에게 속한다면, 소비의 모든 요건은 몇 시간의 빛과 건강하고 즐거운 일로 충족될 수 있고, 모든 노동자는 과학과 문명의 정복으로부터 이익을 얻으며 공부하고, 우정을 쌓고, 한 마디로 삶을 즐기고 공부할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기계들을 파괴할 것이 아니라 빼앗아야 합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지주들이 기계를 지키려 할 것이라는 겁니다. 심지어 기계를 빼앗으려는 사람들을 이용해 기계를 파괴하려는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기계를 지키려 할 수도 있죠. 그래서 위험도가 동등하다면, 그것들을 빼앗는 대신 파괴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일 겁니다. 아저씨는 곡식과 집이 지주들 손에서는 아주 많은 이들의 가난과 노예제를 의미하지만 우리 손에서는 부와 자유가 될 것인데도 그것들을 파괴하시겠어요?

베르트 : 하지만 이 체제가 작동하려면 모든 사람이 기꺼이 이 체제에 따라야 하겠지. 그렇지 않나?

조르조 : 물론이죠.

베르트 : 그런데 만약 어떤 일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며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일은 힘들고 아무도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네.

조르조 : 아저씨는 오늘날의 사회를 혁명 이후에 존재할 사회와 혼동하고 계십니다. 힘든 일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죠. 하지만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며칠을 보낼 수 있을까요?

베르트 : 나는 아닐세. 왜냐하면 나는 힘든 일에 익숙하고 할 일이 없을 때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지. 하지만 술집에서 카드놀이를 하거나 뽐내면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지.

조르조 : 오늘날은 그렇죠. 하지만 혁명 이후에는 더 이상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리지요. 오늘날 노동은 힘들고, 보수가 나쁘고, 모두에게 경멸받습니다. 오늘날 노동하는 사람은 누구나 지치고, 배고프고, 짐승 취급받아야 합니다. 노동자에게는 희망이 없고, 결국 병원이나 심지어 감옥에 가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노동자는 자기 마음대로 가족을 돌볼 수 없어요. 노동자는 삶에서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학대와 굴욕을 겪습니다. 반면에 노동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일하도록 하는 사람들은 가능한 모든 편안함을 즐기고 높이 평가받습니다. 심지어 노동자들 사이에서 더 가벼운 일을 하고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이 더 높이 평가받는 일도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자기 의지에 반하여 노동하고, 가능한 한 그것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 이상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기계들의 도움으로 인간적이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노동을 할 때, 그리고 노동자가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 또 공동체 전체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 때 그것은 사회에서 존중받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 되고, 오늘날 간첩과 포주들이 경멸당하는 것처럼 게으름은 경멸받게 될 겁니다. 그러면 누가 게으름 피우며 살기 위해 자신이 사랑받는 것을 아는 기쁨을 포기하겠습니까? 심지어 오늘날에도, 몇 가지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은 간첩이나 포주라는 직업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는 혐오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노동이 거의 또는 전혀 개입되지 않고 당국에 의해 다소 직접적인 보호가 주어지는 이러한 비참한 상황에서는 그것이 땅을 경작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심각한 도덕적 타락의 징후이고 고통과 악惡만을 낳기 때문에 비열한 직업입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은 수치보다 가난을 선호합니다. 분명히 예외가 있습니다. 비열함을 선호하는 나약하고 부패한 이들이 있지만, 그것은 항상 수치과 가난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노동을 함으로써 행복과 동료들의 존경을 확신한다면 누가 비열로 고통받는 삶을 선택하겠습니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인간의 정상적인 본성에 상당히 반할 것이고 광기로 간주되어 다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의심하지 마십시오. 노동은 모든 사회의 기초적 필수이기에 게으름에 대한 대중의 저항은 분명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아무 기여 없이 다른 사람의 생산물로 살아가며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의 조화를 깨뜨리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소수의 불만족스러운 사람 중 하나가 될 겁니다. 집단 역시 개인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유용한 사람 또는 유용하다고 믿는 사람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사람들은 실수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먹고 마시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에 잘못 나아갈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생산물을 동등하게 나누는 실험을 진행해 보세요. 아저씨는 약하고 능력 없는 사람들은 배려하겠지만, 그 실험을 꺼려하는 사람들은 삶이 힘들어져서 아저씨를 떠나거나 노동하기로 결심할 겁니다. 이는 소수의 무관심이 눈에 띄는 피해를 줄 수 있을 때 사회 전반에서 벌어질 일입니다.

그리고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 때문에 모든 것이 지연되면 치료법은 쉽게 찾을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들은 공동체에서 추방되고 원자재와 도구에 대한 권리만 갖게 될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살아남고자 한다면 일을 해야만 할 겁니다.

베르트 : 이제야 납득이 가는군. …하지만 말해보게, 모두가 땅을 경작해야 하나?

조르조 : 어째서요? 우리는 빵, 와인, 고기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주택, 옷, 도로, 책, 사실 모든 업종의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모든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혼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흙을 파내는 것 말고도, 도구를 만드는 데 대장장이가 필요하고, 쇠를 캐는 광부가 필요하고, 집과 헛간을 짓는 건축가가 필요하지 않나요? 그래서 이것은 땅을 일구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용한 일을 하기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의 문제입니다.

직업의 다양성은 각자가 자신의 성향에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줄 것이고, 따라서 적어도 가능한 한, 노동은 운동의 하나가 되고, 매우 훌륭한 오락이 될 겁니다.

베르트 : 그럼 각자 원하는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건가?

조르조 : 네, 하지만 한 종류의 직업에서 일하는 사람이 너무 많고, 다른 종류의 직업이 부족하게 될 경우는 주의할 필요가 있죠. 일은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모든 욕구가 충족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가능한 한 전반의 이익과 개인의 선호도를 조화해야 합니다. 더 이상 사장이 빵 부스러기 몇 개 때문에 일하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자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베르트 : 자네는 모든 사람이 노력할 거라고 말하지만, 나는 아무도 힘든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사람들은 모두 변호사와 의사가 되고 싶어 할 걸세. 그럼 누가 땅을 갈지? 누가 광산에서 그들의 건강과 생명을 걸고 싶겠나? 누가 하수구와 거름으로 더러워지고 싶겠어?

조르조 : 변호사에 관한 건 제쳐두겠습니다. 그들은 성직자들처럼 썩은 고름입니다. 사회 혁명은 그들을 완전히 없앨 거에요. 이웃에게 해를 끼치려고 하는 것이 아닌 유용한 일에 관해서 이야기하죠. 그러지 않으면 가끔 큰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거리의 암살자조차도 노동자가 될 겁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직업을 다른 직업보다 선호합니다. 그것이 우리 능력에 더러 적합하거나 우리가 하고 싶은 일에 더 부합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배우는 것이 더 쉽고, 우리가 그것을 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며, 단지 그 일이 다른 것들보다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태어날 때부터 우연과 사회적 편견에 의해 선택이 강요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도시 주민도 땅을 갈기 위해 몸을 굽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 중 가난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농업에 대해 본질적으로 혐오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들판에서의 삶도 즐거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시인들의 글을 읽는다면, 그들이 시골 생활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겁니다. 하지만 사실 책을 내는 시인들은 결코 땅을 경작해본 적이 없고, 실제로 땅을 경작하는 경우에는 피곤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굶주림으로 죽으며, 짐승보다 더 못 살게 되고, 가치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마지막 도시 부랑자는 농민으로 불리는 것을 범죄처럼 여길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기꺼이 땅을 일구기를 원하겠어요? 여기서 태어난 우리 스스로가 오히려 할 수 있는 한 빨리 그만둡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우리가 무엇을 하든 더 높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위해 일하고 땅의 행복과 자유와 존중을 일하는 가운데 발견한다면 우리 중 누가 들판을 떠나겠습니까?

이는 모든 업종에서 같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상황에서, 더 많은 이들이 필요한 일자리일수록 더 나쁜 급여를 받고, 더 피곤하고 비인간적인 조건에 놓이며 더 경멸당합니다. 예를 들어 금 세공인의 작업장에 들어가 보면 적어도 우리가 사는 역겨운 오두막집에 비한다면 그곳은 깨끗하고, 통풍이 잘 되며, 겨울에는 난방이 잘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노동 일수가 지나치게 길지도 않고 노동자들의 급여도 적당합니다. 그러고 나서 저녁은 휴식을 취하며 보내는데, 그들이 작업복을 벗었을 때 그들은 사람들이 그들을 쳐다보거나 그들을 조롱하지 않는 상태로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반면 광산으로 내려가 보면, 아저씨는 가난한 사람들이 역한 공기 가운데 지하에서 일하고 보잘것없는 임금으로 몇 년 동안 그들의 삶을 날리는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다음 만약 광부가 퇴근한 뒤 감히 신사들과 같은 장소에 드나들면, 그는 운이 좋아야 조롱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광부보다 금 세공인이 되기를 더 선호한다면 우리는 그걸 놀랍게 여기나요?

펜밖에 모르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요. 생각해보세요! 말장난과 달콤한 시 구절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농장 노동자보다 10배나 더 많이 벌고 모든 정직한 노동자들보다 위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예컨대 기자들은 우아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구두 수선공은 더러운 지하실에서 일합니다. 엔지니어, 의사, 예술가, 그리고 교사들은 일자리가 있고 일을 잘한다면 상류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건축가, 간호사, 직공, 넓게는 일반 노동자와 초등 교사는 굶주리며 살고, 심지어 과로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육체노동만이 유용하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공부는 인간에게 자연을 이기고 스스로를 문명화하고 더 많은 자유와 안녕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주고, 의사, 엔지니어, 화학자, 학교 교장은 농장 노동자들과 다른 노동자들만큼이나 인간 사회에 유용하고 필요합니다. 저는 단지 모든 유용한 직업들이 동등하게 평가되어야 하고, 노동자들이 그것을 하는 것에 대해 동등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하며,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이자 머리로 일하지 않고 무지한 채로 있는 사람에 비해 인간에게 큰 우월감을 주는 지적 업무는 소수의 특권이 아닌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르트 : 하지만 만약 자네 말처럼 머리로 일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고 무지한 사람들보다 유리한 것이라면 분명 모든 사람은 공부를 하고 싶어 할 테고, 나는 그런 첫 번째 사람이 될 걸세. 그럼 육체노동은 누가 하겠는가?

조르조 : 모두죠.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문학과 과학을 함양하는 동시에 수작업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머리와 손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일은 서로를 손해 입히기는커녕 서로를 돕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근육뿐만 아니라 뇌까지 모든 장기를 운동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능이 발달하고 사고에 익숙한 사람은 수작업도 더 잘 해냅니다. 그리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힘을 발휘할 때처럼 건강한 사람은 또한 더 민첩하고 통찰력 있는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두 가지가 필요한 것은, 하나는 다른 것보다 더 즐겁고 인식과 존엄성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오직 육체노동에만 매달리고, 다른 이들만 과학의 특권을, 즉 명령할 특권을 지니게 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는 육체노동을, 어느 정도는 지식노동을 해야 합니다.

베르트 : 그건 이해할 수 있네. 하지만 힘든 육체노동과 쉬운 육체노동이 있고, 어떤 것은 불쾌하고 어떤 것은 쉽지. 예를 들어 광부나 청소부는 누가 하겠나?

조르조 : 아저씨가 매일 어떤 발명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만 안다면, 지금이라도 노동의 조직이 스스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따라서 노동자들의 안락함에 신경 쓴다면 모든 육체노동은 괜찮은 조건으로 수행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일들을 선호하는 노동자들이 항상 있을 거구요. 그게 바로 현재입니다. 모두가 일을 해야 하고, 모두의 노력과 연구가 노동을 더 쉽고 즐겁게 만드는 쪽으로 향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어떤 직업이 다른 직업보다 더 힘들다고 해도, 사람들은 특별한 이점을 통해 그 차이를 보상하려고 할 겁니다. 또 우리는 모두가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일할 때, 형제애와 준수의 정신이 생겨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마치 가족 안에서처럼, 서로가 가장 무거운 일을 떠맡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베르트 :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이 모든 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조르조 : 흠,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작업이 완료되지 않고 아무도 자신의 자유 의지로 작업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가 그걸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하루, 매년 일주일씩, 또는 다른 방식으로 작업하는 겁니다. 그리고 만약 어떤 것이 정말로 모두에게 필요하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그걸 할 수 있는 방법은 항상 발견될 겁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군인이 되어 우리가 알지 못하고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은 다른 사람들과 싸우거나, 우리 형제들과 친구들을 상대로 싸우지 않습니까?

우리 자신의 즐거움과 모두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하는 편이 더 낫겠지요.

베르트 : 날 설득하기 시작했다는 것 알고 있나? 그런데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는 게 있네. 상류층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는 그 일 말일세. 잘은 모르겠지만… 그걸 피할 수는 없을까?

조르조 : 어떻게 하고 싶으신 건가요? 지주들이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는 한,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를 신경 쓰지 않고 명령을 내리고 자신의 이익만을 돌보는 사람들이 될 겁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지주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오면 안 되는 거죠? 아직도 아저씨는 그것이 불공평하고 사악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베르트 : 아니, 자네가 다 말해주지 않았나. 그게 오히려 축복인 것 같구만. 왜냐하면 우리가 지주들에게서 재산을 빼앗아 온다면 그들이 오랫동안 빨아먹었던 우리의 피를 되찾게 될 테니 말일세. 그리고 우리가 그들에게서 그것을 빼앗아 온다면, 그건 우리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의 이익을 위해 공동으로 두는 것이지. 그렇지?

조르조 : 물론입니다. 사실, 아저씨가 깊게 그에 대해 생각해보신다면, 지주들은 그로부터 이익을 얻으리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분명, 그들은 지휘하는 일과 거만하고 굴고 게으름 피우는 걸 포기해야 할 겁니다. 그들은 노동해야 하겠지만, 기계의 도움을 받으며 노동자들의 복리를 염두에 둔다면 그 일은 가볍고 즐거운 운동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사냥을 가고 달리기를 하고 체조와 많은 운동을 하면서 근육 운동이 모든 건강하고 잘 먹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이고 즐거운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지 않나요? 그래서 이는 그들이 오늘날 취미로 하고 있는 일을 생산을 위해 하게끔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신사들은 전반적인 복리와 개선된 문명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이점을 느끼겠어요! 예를 들어 우리 마을을 보세요. 그곳에 있는 소수의 지주는 부유하며 마치 어린 왕자처럼 행동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도로는 우리에게 그런 것처럼 그들에게도 불쾌하고 더럽지요. 우리 집과 이웃 늪에서 나오는 악취 나는 공기 또한 그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의 무지 때문에 그들 역시 잔인한 환경에 놓이는 거죠. 어떻게 하면 그들이 사재를 털어 시골을 개선하고, 도로를 만들고, 불을 밝힐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소비재의 조악해지는 걸 피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과학과 산업의 모든 진보에서 이익을 얻게 될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이 협력해서 작업한다면 그 수행은 매우 간단해질 겁니다. 그리고 그들의 허영심은 사회가 위축되는데 어떻게 채워지겠습니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바리케이드 뒤에서 계속되는 총격의 위험과 혁명의 공포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가난에 빠뜨리고 그들 가족을 굶주림, 범죄 또는 매춘에 노출시킬 재앙에 대한 생각이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까? 재산을 소유한 사람들로부터 재산을 빼앗음으로써, 우리는 그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큰 호의를 베풀고 있습니다.

지주들은 명령을 내리고 싶어 하기에,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과는 서로 다른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요? 만약 그들이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들에게 몹시 더 나쁜 일이 될 겁니다.

베르트 : 그건 다 좋네. 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군. 차근차근 진행하면 안 되겠나? 임금을 올려주고 우리를 인간답게 대한다는 조건으로 지주들에게 땅을 맡겨보세. 그러면 우리는 차츰 저축해서 땅을 살 수 있고, 그러고 나서 우리가 모두 지주가 되면 자네 말대로 모든 일을 공동으로 할 수 있겠지. 그런 제안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네만.

조르조 : 들어보세요.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주들이 그들의 땅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땅을 내놓는다면 무력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어요, 아저씨도 저만큼 잘 알고 계시잖아요.

사유재산이 존재하는 한, 땅과 다른 모든 것이 모든 사람의 소유가 아닌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의 소유가 되는 한, 가난이 늘 있을 거고, 실제로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질 겁니다. 사유재산 아래서는 서로 자기 방앗간으로 물을 끌어오려고 하고, 지주들은 노동자들에게 가능한 한 적게 주려 할 뿐만 아니라 늘 서로 싸우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은 서로 자기가 받을 수 있는 최고 가격으로 자기 상품을 팔려고 하고 가능한 한 적은 가격에 구매하려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지주, 제조업자, 대형 상인은 도매로 상품을 생산 및 구매하고, 기계를 공급하고, 유리한 시장 조건을 이용해서 적절한 판매 시기를 기다리거나 심지어 일시적으로 손해를 보고 판매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취약한 소유자들과 상점 주인들을 망하게 만듭니다. 후자는 점차 빈곤에 빠지고 그들 또는 그 아이들은 비정규 노동을 강요받게 됩니다. (이건 우리가 매일 보고 있는 일이죠.) 이런 식으로, 혼자 일하거나 작은 작업장에서 몇몇 장인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힘든 싸움 끝에 가게를 닫고 큰 공장에 일자리를 찾으러 가야 합니다. 세금조차 낼 수 없는 영세 소유주들은 집과 밭을 대지주 등에 팔아야 합니다. 이렇게, 비록 어떤 선량한 고용주가 노동자들의 환경을 개선하기를 원한다고 해도 그는 경쟁으로 인해 파산할 망해버릴 게 분명합니다.

반면 배고픔에 쫓긴 노동자들은 서로 경쟁해야 하고, 노동에 대한 수요보다 더 많은 일손이 있기 때문에(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장들이 자기에게 맞는 인원만을 고용해서) 서로의 입에서 빵을 가로채야 하고, 아저씨가 아무리 적은 돈으로라도 일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늘 더 적은 돈을 위해 기꺼이 일할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진보를 향한 모든 발걸음이 재앙이 됩니다. 새로운 기계가 발명됩니다. 많은 노동자가 즉시 일자리를 잃고 수입을 끊기며 소비할 수 없고, 따라서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일자리를 빼앗습니다. 미국에서는 넓은 땅이 경작되고 많은 곡물이 생산됩니다. 지주들은 미국 사람들이 먹을 것이 충분한지에 상관하지 않고 곡물을 더 높은 가격으로 팔기 위해 곡물을 유럽으로 보냅니다. 여기서 곡물은 덜 비싸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더 나아지기는커녕 더 가난해집니다. 왜냐하면 유럽 지주들은 곡물 가격이 너무 낮아 더 이상 가치가 없기 때문에 땅을 경작하지 않거나 땅이 가장 비옥한 일부에서만 경작하기 때문에 많은 수의 농민들이 일자리를 잃습니다. 빵이 싼 건 사실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빵을 사는 데 필요한 돈을 거의 벌지 못하죠.

베르트 : 아! 이제 알겠네. 지주들이 외국에서 들어오는 곡식을 원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게 하느님의 축복을 거절하는 죄를 지는 것이 아니었군. 지주들이 사람들을 굶기고 싶어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들이 하는 말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군, 그래.

조르조 : 아니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곡물이 들어오지 않으면 다른 점에서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주들은 외부와의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그들이 원하는 대로 물건을 팔고….

베르트 : 그리고?

조르조 : 그리고라니요? 저는 이미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공유되어야 한다고요. 그럴수록 우리는 더 잘 살게 될 겁니다. 만약 새로운 기계들이 발명되든 생산량이 증가하든 혹은 더 적은 일을 하든 무엇이든 간에 그건 늘 모든 사람에게 아주 많은 이득을 가져다줍니다. 예를 들어 어떤 마을이 너무 많은 곡물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에게 식량을 일부 보낸다면 우리는 우리가 생산하는 것 중 일부를 그들에게 보낼 겁니다. 그렇게 모두가 이득을 얻게 될 겁니다.

베르트 : 하지만… 우리가 지주들과 물건을 공유한다면? 만약 그들이 토지와 자본을 내놓고 우리가 그 일을 한다면, 우리는 생산물을 공유하게 되겠지.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조르조 : 첫째, 아저씨는 기꺼이 공유하겠지만, 아저씨의 고용주는 분명 공유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모든 걸 포기하게 하는 것만큼이나 공유하게 하는 데도 무력 사용이 필요할 거에요. 그렇다면 왜 사안을 대충 처리하고 부정과 기생이 계속되는 걸 허용하며 생산을 방해하는 체제에 만족해야 하는 걸까요?

그러면 다시 묻겠습니다. 몇몇 사람이 노동자가 생산한 것의 절반을 직접 일하지도 않고 가져갈 권리가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이미 말씀드렸듯 생산물 절반이 지주에게 돌아갈 뿐만 아니라, 생산물 전체도 훨씬 열등한 품질로 생산됩니다. 작업이 공동으로 수행되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공동 관심에 따라 일이 진행될 때 얻어질 결과물보다 말이죠. 그건 마치 바위를 움직이려는 것과 같습니다. 1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차례로 시도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고, 다 함께 시도해도 그럴 겁니다. 오히려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노력에 맞서려고 노력할 겁니다. 이와 달리 서너 명의 사람들이 힘을 합쳐 레버와 다른 적절한 도구를 사용하면 쉽게 들어 올릴 수 있습니다. 만약 아저씨 혼자 핀을 만들기 시작한다면, 아저씨가 한 시간 안에 그걸 끝낼 수 있을지 어떻게 알겠어요? 반면 공동으로 일하는 10사람은 하루에 수천 개의 핀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더 많은 기계가 발명됨에 따라 더 많은 작업이 공동으로 수행될 겁니다. 발전은 반가워할 만한 것이죠.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저는 종종 제기되는 이의에 대답하고 싶습니다.

경제학자들(과학의 이름을 빌려 여러 헛소리와 거짓말을 엮어 상류층이 다른 사람의 땀으로 먹고 살 권리가 있다는 걸 증명하는 사람들)과 배불리 먹고 사는 모든 학식 있는 사람들은 흔히 가난은 사장이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이 한정되어 있어 모두에게 돌아가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결국 가난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그에 반항해봐야 소용없다고 하죠. 신부들은 모든 게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며 유순하고 복종하라고 합니다. 경제학자들은 그게 자연의 법칙이라고 말하죠. 하지만 절대 믿지 마세요. 물론 오늘날 공업과 농업이 생산하는 것들이 소수 사람들만이 누리는 좋은 음식과 안락함을 모두에게 제공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장들이 전체의 이익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에게 유리한 시기를 노리고 팔기 좋은 상품만 생산하며 때로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상품을 파괴하는 작금의 체제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부족하다고 말하는 동시에 광활한 땅을 경작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많은 노동자를 실직시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땅이 경작되고 모든 사람이 알려진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일한다고 해도 토지의 생산성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똑같이 가난이 돌아올 거라고 대답합니다. 사람들은 아이를 더 많이 낳겠지만 식량 생산은 고정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인구는 무한히 증가하고 식량 부족이 계속될 거라구요. 그래서 그들은 사회적 병폐에 대한 유일한 치료법은 가난한 사람들이 아이를 갖지 않거나, 적어도 합리적으로 잘 키울 수 있는 몇몇 사람들만 아이를 갖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먼 미래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습니다. 인구 증가가 자발적이든 그렇지 않든 인위적으로 멈출 필요 없이 자연스레 한계에 봉착할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종種 단위의 발달로 인한 지적 능력의 향상, 여성의 해방 및 전반적 복리의 증가로 인해 생식의 필요성이 점차 감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오늘날 실제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고 지금의 빈곤 원인과 관련이 없습니다.

오늘날 가난은 인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조직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갖지 않는다는 치료법은 아무것도 치료하지 못할 겁니다. 우리는 땅이 넓고 인구가 적은 나라에서도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들만큼이나 가난한 이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사적 소유로 인한 그 모든 장애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생산은 인구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빈곤의 심화는 가난한 사람들의 소비와 관한 과잉 생산으로 발생하는 겁니다. 창고에 생산되었지만 구매자를 찾지 못한 상품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실직 상태입니다. 경작지는 곡물이 남아돌아서 황무지로 방치됐습니다. 가격이 떨어져 농작물을 심는 게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한 지주들은 농민들이 일자리를 잃고 배를 주리든 말든 신경 쓰지 않지요.

따라서 우선 우리는 사회 조직을 바꾸고, 모든 땅을 경작하고, 모두의 이익을 위해 생산과 소비를 조직하고, 새로운 방법과 혁신에 자유로운 통치를 맡겨야 하며, 아직 사람이 살지 않는 세상의 모든 거대한 부분을 차지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모든 계획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정말 너무 많은 것처럼 보일 때, 그때에야 비로소 그 순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생식에 제한을 두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런 제한은 다른 사람들의 노동으로 풍요롭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고 제한 없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원하는 제한된 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지켜져야 합니다. 더구나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한 그들은 그들 눈앞에 가난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보일 때에도 상품의 전체적인 부족에 대해 우려할 수 없기 때문에, 즉 사장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하기 때문에 출산에 대한 제한을 가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내일이 불확실하고, 자연히 근시안적이게 되고 무관심합니다. 모든 사람이 식량 부족으로 똑같이 고통받을 때에만 인간의 힘으로는 강제할 수 없는, 자발적으로 부과된 제한이 성공할 수 있겠죠.

어쨌든 다시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생산물 분배 문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저씨는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건가요? 사장들은 그들이 그렇게 남아있는 한, 그들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을 고용하도록 강요받지 않을 겁니다.

참여 또는 메타야쥬metayage[작물 공유 제도(토지 경작 후 지주와 생산물을 나누는 임대, 소작 체제도-역자 주)]라고 불리는 분배 제도는 한때 남유럽 많은 지역에서 농장 노동을 위해 존재했고, 오늘날에도 토스카나와 같은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점차 사라지고 있고, 토스카나에서도 사라질 겁니다. 지주들이 임금노동자를 사용하는 편이 더 이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계, 과학 농업 및 수입과 함께 토지 소유자들이 노동력을 고용하는 것이 필연적인 일이 되었고, 제때 거기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경쟁을 통해 빈곤하게 전락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만약 우리가 현 제도를 계속 사용한다면, 재산은 여전히 소수의 손에만 있을 것이고, 기계와 가속화된 생산 방법의 결과로 노동자는 시궁창에 던져질 겁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몇몇 거대 지주가 생기게 되겠지요. 기계 수리를 위해 일꾼 몇몇을 두게 되고, 그다음에는 집안일을 하는 하인과 경찰이 지주를 방어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대중은 배고픔 때문에 죽거나 자비를 빌며 살아가게 될 거구요. 벌써 보입니다. 소규모 지주는 사라지고, 실업자가 늘어나고, 지주들은 배고픔으로 죽을지도 모르는 모든 이에 대한 두려움이나 연민을 통해 무료 급식소와 다른 자선 사업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과거 수도원 문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지주의 집이나 지방자치단체에 수프 한 접시를 구걸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싶지 않다면, 유일한 방법은 토지와 기계를 점유하고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베르트 : 하지만 만약 정부가 지주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지 말라고 강제하는 새로운 법을 만든다면 어떻겠나?

조르조 : 원점으로 돌아왔네요. 정부는 지주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들은 결코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을 만들지 않을 겁니다. 만약 가난한 사람들이 지휘권을 가지고 있다면, 왜 반쪽 짜리 일을 하면서 지주들이 우리를 다시 지배할 수 있게끔 내버려 두겠어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가난한 사람들은 반란을 일으키는 잠시 동안은 호통을 치지만 결국 명령을 내리는 건 항상 부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잠시라도 가장 강하게 될 수 있다면 부자들에게서 당장 그 재산을 빼앗아야 할 거고, 그렇게 해서 그들이 예전처럼 상황을 되돌려 놓을 수 없게 해야 합니다.

베르트 : 이제 모든 것을 이해했네. 우리는 좋은 공화국을 만들어야 하지.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일하는 사람은 먹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굶주리게…. 아! 내가 나이가 많아서 미안하네. 이런 멋진 시간들을 보게 될 젊은이들은 참 운이 좋구만.

조르조 : 진정하세요, 아저씨. 공화국은 사회 혁명을 의미하고, 그래서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사람에게는 아저씨가 옳을 겁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스스로를 나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공화국은 실제로 아저씨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화국은 지금과 같은 정부가 있고, 국왕 대신 그와 같은 권한을 가진 대통령과 장관들이 있을 뿐이에요. 왕이 제거된 뒤에도 정부는 여전히 공화국이라고 불립니다. 종교재판, 고문, 노예제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말이에요! 이탈리아에서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공화국을 원한다면 이런 변화들이 더해져야 할 겁니다. 양원제兩院制 의회 대신 단원제單院制 의회만 있어야 하고, 투표는 돈이 있거나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외에는 별 게 없어요. 군 복무를 중단하고, 세금을 낮추고, 학교를 짓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 같은 나머지 것들은 지주 대리인들의 마음이 내킨다면 모두 지켜질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약에 관해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공화주의자가 필요 없어요. 왜냐하면 후보들은 선거 때에는 온 세상을 다 줄 것처럼 약속하고서는 선출된 후에는 그 주제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 모든 게 공염불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한, 부자들이 항상 지배할 겁니다. 공화국이든 군주제든 사유 재산이 낳는 결과는 항상 같을 거에요. 경쟁은 모든 경제적 관계를 규제하고, 따라서 재산은 소수의 손에 집중되고 기계는 노동자를 대신하며 대중은 우리가 말했듯이 굶주림으로 죽거나 자선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데 그칠 겁니다.

우리는 이제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도 공화국이 있었고 지금도 공화국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국민들의 상황을 개선하지 못했습니다.

베르트 : 이것 참 야단났군! 나는 공화국이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했네!

조르조 : 공화주의자들은 그렇게 말하고 다니죠. 그들의 주장은 법률을 제정하는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더 나은 의원들을 뽑고, 그러면 모든 것이 정리된다는 겁니다.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수가 많고, 그러니 궁극적으로 그들이 지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릅니다. 가난한 사람들, 정확히는 가난하기 때문에 무지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은 성직자와 사장들이 원하는 대로 투표합니다. 경제적 자립과 자신의 이익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는 한 계속 그렇게 투표할 거에요.

아저씨와 저에게 만약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특별한 행운이 있었고 조금 더 공부할 수 있었다면 우리 자신의 이익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지주들의 복수에 맞설 힘을 가질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계속되는 한 대중은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을 거에요. 네, 투표함 앞에 서는 건 결코 혁명과 같지 않습니다. 혁명에서는 용감하고 지적인 한 사람이 소심한 백 사람 몫을 해내고, 혼자서는 결코 반항할 힘이 없었을 많은 이를 그 뒤로 끌어당기죠. 투표함 앞에서 중요한 건 숫자이고, 그건 성직자, 지주, 정부가 있는 한 그 숫자는 항상 지옥과 낙원을 나누는 성직자들, 기분에 따라 빵을 줬다 뺏는 지주들, 부정을 위해, 또 사람들을 협박하기 위해 경찰을 고용한 정부를 위한 것이 될 겁니다. 그리고 모르세요? 오늘날 대다수 유권자는 가난하지만 투표할 때 무얼 하나요? 그들을 잘 알고 그들의 이익을 지키기를 원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선출하나요?

베르트 : 무슨 소리! 그들은 지주에게 누구에게 투표할지 물어보고 시키는 대로 한다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해고될 걸세.

조르조 : 아시겠죠? 그렇다면 아저씨는 보통선거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시나요? 사람들은 지주들을 의회에 보낼 거고, 지주들이 거기 도착하면 지금처럼 사람들을 무지하게 놔두고 노예로 만들도록 행동할 거란 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공화국은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정면으로 부술 수 있는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요. 지주들의 재산을 수용하고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주는 겁니다. 사람들이 모든 것이 자기 것이며 스스로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이 땅을 즐기는 방법, 또 땅을 돌보는 법도 알게 될 겁니다.

베르트 : 나도 그렇게 믿네! 하지만 농부들은 공화국을 자네가 말하는 의미로 생각하지 않을 걸세. 사실, 나는 이제 우리가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것이 자네가 아나키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이해했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공화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이름이 무슨 상관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 제대로 되는 것이지.

조르조 : 맞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위험이 있어요. 만약 사람들이 공화정이 그들에게 좋다고 계속 믿는다면, 더 이상 참을 수 없고 혁명을 시작할 수 없는 날이 왔을 때 공화주의자들은 즉시 공화정을 선포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 의원들을 지명할 수 있다고 말하며 그들을 만족시킬 겁니다. 왜냐하면 곧 모든 것이 통제될 거니까요.

언제나 그렇듯 잘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은 총을 버리고 음악을 즐기며 야단법석을 떨 겁니다. 한편 지주들은 모두 공화당이 될 거고, 사람에게 많은 돈을 마구 써대며 큰 축제를 꾸릴 거에요.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조금 올려주고 권력을 잡을 겁니다. 그런 다음 폭풍이 점차 진정되도록 놔두고 사람들에게 제동을 걸게끔 군대를 준비할 거에요. 사람들은 언젠가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피를 쏟았으며 이전보다 더 가난해졌다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

그러는 대신, 대중이 반란을 일으켜 승리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만큼 우선 기회를 잡으면 코뮌주의를 바로 적용하고 거짓 약속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야 합니다. 집과 땅, 공장을 점유해 직접 재산을 점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화국을 말하는 사람은 누구든 적으로 취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1859년과 1860년에 일어났던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겁니다.

말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 사람들을 항상 속아 넘어가게 하는 것 역시 말입니다!

베르트 : 자네 말이 맞네. 우리는 너무 자주 희생되었지. 이제 눈을 뜰 때가 됐네.

하지만 늘 정부는 필요성할 걸세. 지휘하는 사람 없이 어떻게 잘 해나갈 수 있겠나?

조르조 : 왜 우리가 명령을 받아야 하죠? 왜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일을 처리하지 못할까요?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무지와 악행을 일삼으며 늘 사람들을 배신합니다. 권력은 사람들 머리 꼭대기에 서죠. 우리는 순한 양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지배가 없어져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존엄성과 힘을 깨닫기를 원하고 배우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소수가 내리는 명령은 다른 이들을 복종하도록 가르칩니다. 설령 좋은 정부라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나쁜 정부보다 더 부패하고 약해질 겁니다. 그 어느 때보다 쿠데타가 쉬워질 거고, 성취된 개선 사항들을 부수고 특권과 폭정을 다시 세울 거에요. 사람들이 자유와 자신의 이익을 관리하는 법에 대해 교육받기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 행동하고, 그들이 행하는 좋은 행동과 나쁜 행동에 대한 책임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실수도 많이 하겠지만 잘못한 결과를 이해하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할 거에요. 사람들이 스스로의 능력을 발휘할 때 스스로 입을 피해는 가장 좋은 정부의 그것에 비하면 천분의 일에 불과할 겁니다. 아이가 걷는 법을 배우려면 몇 차례 부딪히거나 넘어지는 걸 겁내지 말고 스스로 걷게 놔둬야 하니까요.

베르트 : 맞네. 하지만 아이가 혼자 걷을 때까지는 이미 다리에 어느 정도의 힘이 있거나 아니면 어머니 품에 머물러야 해.

조르조 : 맞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어머니와 전혀 비슷하지 않고, 결코 국민들을 증진시키고 튼튼하게 하지 못할 겁니다. 사실 사회적 진보는 거의 항상 정부에 맞서면서, 혹은 정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집니다. 후자일 경우 정부는 점점 더 대중의 필요와 의지를 법률로 바꾸어 지배나 독점하려는 마음으로 진보를 깨뜨립니다.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진보되어 있지만, 그들이 어떤 문명 단계에 있든, 심지어 원시적인 상태에 있더라도 사람들은 항상 그들이 만들어낸 어떤 정부보다도 스스로의 이익을 더 잘 깨닫고는 했지요.

아저씨는 정부가 가장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대개 직접, 혹은 위임으로 대부분 돈 많은 사람들로 구성됩니다. 혹 정부가 똑똑한 사람들로 구성된다면 어떨까요? 더 나은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사람들 사이에 머물면 그들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사용할 겁니다. 만약 그들이 정부로 들어간다면 그들은 더 이상 사람들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정치에 의해 만들어진 이익, 즉 사회의 진정한 필요를 바라보기보다는 권력을 잡으려는 욕망에 끌립니다. 그들은 경쟁과 통제의 결여로 부패하고,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에 대해 법으로 지시할 권한을 갖추고 있는 곳들로부터 마음이 어수선해지죠. 가장 훌륭하고 지적인 사람마저 결국 더 높은 무언가를 믿게 되고, 사람들을 착취하고 억압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만큼만 사람들을 돌보는 계급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니 우리가 사는 곳과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작업에서 시작해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다른 모든 곳의 교환할 곳 및 지역과 점차 합의를 이루는 편이 우리 스스로의 이익을 돌본다면 더 낫고 확실할 겁니다. 사람들은 모두 형제이고, 서로를 사랑하고 돕고자 하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베르트 : 그래, 자네가 옳다고 생각되기 시작했네. 하지만 범죄자들, 도둑들, 파괴자들은?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나?

조르조 : 우선 더 이상 가난과 무지가 없게 되면, 그런 모든 불량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일부가 남게 된다 해도, 그게 정부와 경찰을 두어야 할 이유가 될까요? 우리는 다른 이들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을 혼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지금 죄인들과 무고한 사람들에게 그러는 것처럼 그들에게 고문을 가하지는 않을 거에요.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우리에게 어떠한 피해도 입힐 수 없는 위치에 두고, 올바른 길로 되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베르트 : 그렇다면 아나키 사회가 되면 모두가 행복하고 만족하게 되고, 가난, 증오, 질투, 매춘, 전쟁, 불의가 더 이상 없게 된다는 건가?

조르조 : 저는 인간의 행복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모두가 가능한 한 잘 살게 되고 계속해 개선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 개선은 더 이상 오늘날처럼 소수에게만 유리하고 많은 사람에게는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이익이 될 거에요.

베르트 : 나도 그러길 바라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되겠나? 세상이 계속해서 이렇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았으지만 나는 늙었으네. 정의로운 날을 단 하루도 못 본 채 죽고 싶지는 않아.

조르조 : 언제가 될까요? 제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건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이 눈뜨게 하기 위해 더 많은 일들을 할수록 그건 더 빨리 이루어지겠지요.

이미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사회주의를 설파한 몇몇 사람들은 무지하거나 미쳤거나 악당처럼 여겨졌지만, 오늘날 그 사상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굶주림으로 어쩔 수 없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그들의 아픔이 왜, 어디서 오는지 알지 못하고, 지주들을 위해 서로 죽이거나 해쳤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가 격앙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장들과 정부를 없애고 오직 자기 힘에 의지한다는 마음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마침내 지주들이 흩어져 있는 모든 정당이 똑같이 그들의 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때가 무르익었으니 선전을 실천으로 옮기고, 문제를 이해한 사람들을 가까이 모아야 합니다. 우리는 대중 가운데 타오르는 불을 지피고, 불만과 운동, 반란을 이용해 거센 타격을 가할 겁니다. 우리는 두렵지 않고, 곧 부르주아적 재앙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행복한 삶이 정착되기 시작할 겁니다.

베르트 : 아주 좋네. 그렇지만 속단하지 말도록 하세. 지주들로부터 땅을 빼앗는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경찰과 군인들이 있네. 그리고 생각건대, 나는 그들의 수갑과 칼, 총이 다른 무엇보다도 오로지 지주들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게 두렵네.

조르조 :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베르트 아저씨. 경찰과 군대는 사람들을 제압하고 지주들의 평온을 보장하기 위해 거기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총과 대포를 가지고 있는 한 우리가 맨손으로 싸워야 할 이유는 없지요. 우리도 총을 다룰 줄 알고, 예리하고 용감하게 총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화약, 다이너마이트, 모든 폭발물, 선동 선전물, 그리고 만약 정부가 사람들을 노예로 붙잡는다면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쟁취할 수천의 도구들이 있어요. 바리케이드, 지뢰, 폭탄, 화염병은 우리가 군대에 저항할 수단이고, 우리는 그걸 사용하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수와 기도로는 혁명을 할 수는 없다는 걸 모두 잘 알고 있지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절대다수이니 그들이 사회주의의 장점을 이해하고 맛본다면 그들을 그대로 머물게 할 만큼 강력한 힘은 세상에 없을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노동하고 모든 것을 생산하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그들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일을 중단한다면 엄청난 붕괴와 공황이 일어날 거고, 그러면 혁명은 당장 유일한 해결책으로 모습을 드러낼 거에요. 군인들은 대개 가난한 집안 출신들이지만 억지로 형제들을 잡는 돼지나 사형 집행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고 깨닫자마자 처음에는 비밀리에, 그런 다음 공공연하게 공감할 거에요. 또 아저씨는 그들에게 혁명이 언뜻 보이는 것만큼 어렵지 않다고 설득하겠죠.

가장 중요한 건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고, 늘 혁명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끊임없이 혁명을 준비해야 함을 기억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반드시 나타나리라는 걸 의심하지 마세요.

베르트 :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나도 자네가 옳다고 믿네. 하지만 혁명은 소용없는 것이고, 모든 게 저절로 성숙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더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조르조 : 사회주의가 힘을 얻은 순간부터 부르주아지, 즉 지주들은 정말로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폭풍을 피하고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모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모두가 사회주의자라고 떠들어 댑니다. 심지어 황제들까지도요…. 아저씨는 그들이 어떤 사회주의를 만들어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아아, 부르주아 계급의 아첨에 이끌려 몇몇 반역자들이 우리 동지들 사이에서 나타났는데, 그건 혁명적 대의를 포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에 이끌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합법적인 방법, 선거, 정당들―그들이 그들 동족이라 말하는―과의 동맹을 설파하는 데 노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르주아지 가운데 자리를 잡고 혁명을 원하는 사람들을 미치광이나 그보다 나쁜 사람처럼 대하지요. 많은 사람이 그들 역시 혁명을 원한다고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는커녕… 그들은 국회의원으로 뽑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누군가 아저씨에게 혁명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거나 정당 혹은 지방의원에 투표하거나 부르주아지의 어떤 파벌에 동의하는지 말하거든, 만약 그가 아저씨처럼 노동하는 아저씨의 동지 중 한 명이라면 그의 실수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세요. 반대로 그가 부르주아이거나 부르주아가 되는 길을 찾으려 하는 사람이라면 그를 적으로 여기고 가던 길을 계속 가세요.

어쨌든, 당분간은 이 정도로 충분할 것 같네요.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이야기하지요. 안녕히 계세요.

베르트 : 잘 가게. 내가 많은 걸 이해하도록 도와줘서 기쁘네, 내가 왜 자네가 말해준 것처럼 이전에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안 되는군. 조심히 가게.

베르트 : 잠깐! 여기 온 김에 목이 마르지 않게 술이나 한 잔 하러 가세, 그리고 좀 더 물어볼 게 있네.

자네가 말한 모든 것을 이해하네…. 스스로 생각해보고 더 설득할 수 있도록 노력도 할 거야. 하지만 자네는 논의할 때 내가 흔히 들었던, 이해하지 못해서 혼란스러웠던 어려운 단어들을 거의 쓰지 않았지. 예를 들어, 나는 자네가 코뮌주의자, 사회주의자, 국제주의자internationalist, 집산주의자, 아나키스트 등등이라고 들었네. 그 단어들이 정확히 무얼 의미하는지, 그리고 자네는 진짜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겠나?

조르조 : 아! 맞습니다, 제게 이런 질문을 한 건 잘하신 겁니다. 왜냐하면 단어들은 다른 사람들과 동의하거나 구별하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그것들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큰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니까요. 사회주의자는 빈곤이 모든 사회악의 주원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고, 가난이 파괴되기 전까지는 무지, 노예제, 정치적 불평등, 매춘 또는 사람들을 그렇게 끔찍한 상태로 억압하는 어떤 악도 파괴할 방법이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은 빈곤이 땅과 모든 원자재, 기계, 그리고 모든 작업 도구가 소수 개인들의 것이라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믿지요. 그래서 그 소수가 모든 노동 계급의 삶과 죽음을 규제하고 프롤레타리아와 지속적인 투쟁과 경쟁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끼리 서로 재산을 가로채기도 하죠. 사회주의자들은 개인의 재산, 즉 원인을 철폐함으로써 그 결과인 빈곤이 함께 철폐되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 재산은 철폐될 수 있으며 또 반드시 철폐되어야 하는데, 생산과 분배는 지주들이 자랑하는 특권인 소위 상속이라는 것을 배제한 채 사람들의 이익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들으셨듯이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적 부가 모든 사람을 위해 제공되기를 원하며 더 이상 유산계급이나 프롤레타리아, 부자나 가난한 사람, 고용주나 피고용인이 존재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한때 이것은 유명했던 것이었고, 한 명의 사회주의자보다 오히려 백만 명의 살인자가 더 있기를 바라는 지주들로부터 박해받고 증오받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얘기했듯이 지주들과 그렇게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온갖 박해와 중상모략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가 앞으로 나아가고 사람들이 눈뜨기 시작하는 것을 보자 그들은 사람들을 더 성공적으로 속이기 위해 질문을 혼동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자기도 사회주의자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또한 사람들의 이익을 원했기 때문에, 빈곤을 파괴하거나 줄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했거든요. 먼저 그들은 사회적 문제, 즉 빈곤과 빈곤에서 파생되는 다른 모든 악에 대한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사회주의가 그들을 두렵게 하고 있기에 그들은 사회적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회주의자라고 말합니다. 마치 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병을 연구하는 사람도 의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아저씨는 오늘날 공화주의자, 왕당파, 성직자, 고리대금업자, 판사, 경찰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의 사회주의는 한 마디로, 사람들을 저지하거나 심지어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그들이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게끔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가짜 사회주의자들 가운데는 확실히 자기가 선을 행하고 있다고 믿는 선의를 지닌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만약 자신이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누군가가 아저씨를 때리기 시작하면 아저씨는 우선 그의 손에서 막대기를 뺏어야 할 거고, 그의 선한 의도는 그가 막대기를 빼앗겼을 때 그의 머리가 박살 나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누군가 아저씨에게 자신이 사회주의자라고 말한다면 그에게 재산을 모두와 공유해야 하니 재산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그것을 가져오라고 말해보세요. 대답이 ‘예’라면 그를 형제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다면 조심하세요. 적이 아저씨 앞에 있는 거니까요.

베르트 : 그러니까 자네는 사회주의자구만. 그건 알겠네. 그러면 코뮌주의자나 집산주의자는 무얼 의미하는 건가? 조르조 : 코뮌주의자와 집산주의자는 모두 사회주의자들이지만, 재산이 공유된 뒤에 무얼 해야 하는지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억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그걸 이미 말했습니다. 집산주의자들은 모든 노동자, 혹은 더 낫게는 모든 노동자 협회가 노동을 위한 원자재와 도구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각자가 노동의 생산물을 소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은 그것을 사용하거나 간직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일하도록 만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그것으로 합니다. 그런 다음 그들이 죽었을 때 그들이 무언가를 저축해뒀다면 이것은 다시 지역 사회로 돌아갑니다. 그들의 자녀들도 당연히 일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상속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불평등과 특권으로 돌아가는 첫걸음이 될 겁니다. 학습과 어린이, 노인 및 환자의 간호, 도로, 급수, 조명, 공중위생 등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에 관한 한 모든 노동자 협회는 이러한 업무를 수행한 사람들에게 보상하기 위해 많은 것을 제공할 겁니다.

반면에 코뮌주의자들은 더 빠르게 길을 갑니다. 그들은 사람이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한 대가족의 구성원으로 여겨야 하니 재산은 공유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생산적으로 기계로부터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일을 해야 하니까요. 왜냐하면 모든 다양한 토양과 대기 조건으로부터 이익을 얻기 위해서, 각각의 장소들이 그것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생산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고, 다른 나라들과 가장 부유한 장소로 달려가는 사람들 사이의 경쟁과 증오를 피하기 위해서, 전 세계의 사람들 사이에서 ‘완벽한 연대’를 확립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품의 어떤 부분을 누가 만들었는지 구분해내는 것은 나쁜 일일 겁니다. 아저씨가 한 일과 내가 한 일로 몫을 구분하려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대신에 우리 모두 일을 해서 모든 것을 공동으로 하자는 거지요. 그렇게 하면 각자는 모든 사람을 위해 충분히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힘이 닿는 한 사회에 모든 걸 제공할 겁니다. 그런 다음 각자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가져갈 수 있을 거고, 물론 부족한 것들은 서로 자제할 겁니다.

베르트 : 천천히 하세. 먼저 연대라는 말 뜻을 설명해 주게. 자네는 모든 사람 사이에 완벽한 연대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만.

조르조 : 자, 예를 들어, 아저씨네 가족 사이에는 아저씨와 형제들, 아들들이 버는 모든 것을 합치지요. 그런 다음 음식을 사서 함께 먹습니다. 양이 부족하면 다들 조금 덜 먹을 거구요.

이러면 운이 좋거나, 조금 더 벌 수 있으면 모두에게 좋겠지요. 반면 누군가 일자리를 잃어도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만약 누군가 아프면 더 많은 비용이 듭니다. 그래서 가족끼리는 서로의 입에서 빵을 빼앗으려고 하는 대신 서로 도우려고 하지요. 왜냐하면 한 사람의 행복이 모두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고통이 모두의 고통인 것처럼요. 이렇게 하면 증오와 질투는 존재할 수 없고, 이해관계로 갈라진 가족에게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호혜적인 애정이 자라납니다.

이것을 연대라고 부릅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가족일 때 존재하는 관계이고, 모든 사람 사이에 확립되어야 할 것이지요.

베르트 : 이해했네. 이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서, 자네는 코뮌주의자인가, 집산주의자인가?

조르조 : 저는 개인적으로 코뮌주의자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보기에 친구가 되려 할 때, 그걸 반쪽짜리 방법으로 하는 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집산주의는 여전히 경쟁과 증오의 씨앗을 남깁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지요. 각자 자신이 직접 생산한 것을 먹고 살 수 있게 되면 집산주의는 여전히 코뮌주의보다 열등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건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따라서 그들의 힘과 연대를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작동이야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예컨대 구두장이라고 해서 신발을 먹을 수는 없고, 대장장이라고 철을 먹을 수는 없으며, 농부는 기계를 만들기 위해 쇠를 캐는 노동자 없이는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만들거나 땅을 경작할 수도 없기에 여러 생산자 간 교환을 조직하고 각자 한 일을 기억해야 하겠죠. 그래서 구두장이는 신발 한 켤레와 교환하는 데 가능한 한 많은 돈을 요구할 것이고, 농장 노동자는 가능한 한 적게 주려 할 겁니다. 도대체 누가 그걸 납득할 수 있겠어요? 제가 보기에 집산주의는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우리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는 속임수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반면 코뮌주의는 그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요. 모두가 일을 하고, 모두가 모두의 노동으로 이익을 얻습니다. 각자가 만족하고 충분히 생산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기만 하면 됩니다.

베르트 : 그렇다면 코뮌주의에서는 돈이 필요 없겠나?

조르조 : 돈은 물론이거니와 그걸 대체할 것도 필요 없을 겁니다. 늘 필요한 수준의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물품과 생산된 물품의 등록부만 있으면 되지요.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게 유일한 어려움이겠지만, 저는 이미 오늘날 심각한 문제인 노동이 어떻게 즐거움이 되고 동시에 도덕적 의무가 될 수 있는지 말씀드렸습니다. 바보 같은 사람들만이 그러기를 거부하겠지요. 그리고 만약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그러니까 우리의 형편없는 교육과 빈곤 때문에 새로운 사회가 제대로 조직되고 새로운 필요에 비례해 생산량이 증가하기 전에 만약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그들이 상황을 어렵게 할 만큼 많이 있다면, 그들에게 스스로 일할 수 있는 재료와 도구를 주면서 공동체 밖으로 쫓아낼 수밖에는 없을 겁니다. 그러면 그들 역시 먹고살고자 하면 일하기 시작하겠지요.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더욱이 우리가 무엇보다 원하는 것은 토지와 함께 원자재, 작업 도구, 집, 그리고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부와 함께 토지를 공유하는 겁니다. 그때 그 조직과 생산의 분배에 관한 것들에 있어 사람들은 스스로 원하는 걸 하겠지요. 실제로 무언가를 하기 시작할 때에야 비로소 가장 좋은 방법이 발견됩니다. 코뮌주의가 한 곳에서 확립되면 다른 곳에서도 분명 확립될 겁니다. 그러면 점차 모두가 가장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체제를 받아들이겠지요.

중요한 건,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토지와 생산도구를 다루는 것에 대해 명령하지 않는다는 것임을 기억하세요. 이런 일이 일어나면 무기를 들고서라도 조심하고 막아야 할 겁니다. 나머지는 저절로 흘러갈 거에요.

베르트 : 이것들도 이해했네. 이제 말해보게나, 아나키란 무언가?

조르조 : 아나키는 정부가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정부는 지주들을 보호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우리 이익에 관한 한 가장 좋은 것은 아무도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고 우리가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죠? 우리를 억압하는 법률을 만드는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을 선출하는 대신, 우리는 우리 일들을 스스로 돌보고 그것들을 어떻게 할지 결정할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누군가에게 계획을 맡겨야 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행동하라고 미리 말할 겁니다. 우리에게 아직 생소한 문제라면 우리는 그 일을 잘 알고, 연구하고, 제안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맡기는 거지요.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결정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겁니다. 따라서 우리 대표들은 우리가 우리에게 명령할 권리를 준 누군가가 아니라 발생할 수 있는 각각의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가장 유능한 사람들 가운데서 선택되겠지요. 그들에게 지휘권은 없고, 그저 모두가 원하는 것을 수행할 직무만이 있을 겁니다. 예컨대 누군가 학교를 조직하거나, 도로를 구획하거나, 생산물을 교환하는 일을 하게 될 텐데, 그건 구두장이에게 신발 한 켤레를 맡기는 것과 같은 방식인 거지요.

이게 아나키입니다. 이외에도 모든 걸 설명하고자 한다면 제가 여태 다른 것들에 대해 한 만큼 이야기를 해야할 거에요.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길게 이야기하지요.

베르트 : 괜찮네, 다만 그동안 내게 좀 설명해 주게. 자네가 원하는 건 뭔가? 이제서야 궁금해지는구만.

나처럼 무지한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정치라 부르는 모든 걸 이해하고, 장관들이나 국회의원들이 하는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건지 좀 설명해 주게.

조르조 : 그런데 장관, 국회의원들이 뭘 그렇게 잘해서 못 할까 걱정해야 하나요? 그들은 법을 만들고, 사람들을 억압하기 위한 세력을 조직하고, 사장들이 행하는 착취를 보장합니다. 그게 다에요. 그런 걸 하는 데 학문은 필요 없습니다.

장관과 국회의원들이 좋고 필요한 다른 일도 하는 건 사실이지요. 하지만 축복받은 계층의 이익을 위해 그걸 관리하거나 쓸모없고 억압적인 규율로 일의 진행을 방해하는 일에 관여하는 건 실제적인 노동을 하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 양반님들은 철도 사업에 간섭하지만, 철도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데 주주들이 필요하지 않듯이 그들도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기술자, 정비공, 노동자, 그리고 여러 종류의 기술이 필요한 것의 전부고, 장관, 국회의원, 그리고 다른 기생충들이 완전히 사라진대도 항상 그곳에 있을 겁니다.

우편, 전화, 해운, 공공 교육, 병원도 마찬가지에요. 이것들은 우체국 직원, 선원, 학교 교사, 의사 같은 여러 종류의 노동자들에 의해 수행되며, 정부는 방해하고, 부수고, 착취하기 위해 개입합니다.

정부 사람들이 의도하고 수행하는 정치는 우리에게 어려운 예술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노동자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관심이 있고, 사람들의 진정한 이익과 아무 관련 없는, 단지 속이고 지배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가능한 최선의 방법으로 사람들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문제였다면 의원들의 상황은 우리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겁니다.

사실 늘 의회 안에만 있는 의원들이 전국의 모든 도시와 마을에 필요한 것에 대해서 무언가 알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거나 더 쓸데없는 일로 계속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교환의 필요성을 이해하기를 어떻게 기대하겠어요? 만약 각자 자신이 알고 있는 것, 각자 느끼고 공유할 필요를 생각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겁니다.

혁명이 달성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작업을 해야 하겠지요. 사람들은 공동체별로 나뉘고, 각 공동체에는 연대와 선전의 자극을 통해 즉시 협회로 구성될 다양한 거래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누가 아저씨보다 아저씨의 코뮌과 아저씨 거래를 통한 이익에 대해 더 잘 알겠어요?

한 개 이상의 코뮌 또는 거래가 합의에 도달하는 일이 문제가 될 경우, 각 대표는 상대측 회의에 가서 다양한 요구와 필요를 조화시키려고 노력할 겁니다. 그 결과에 대한 심의는 구성원의 이익이 묻힐 위험이 없는 방식으로 늘 권한을 위임한 사람들의 통제와 승인을 받을 거구요.

이렇게 해서 점차 우리는 인류 전체의 합의로 나아가게 될 겁니다.

베르트 : 하지만 마을이나 협회에서 사람들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사안을 보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겠나? 가장 수가 많은 쪽이 이기게 되지 않을까?

조르조 :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실과 정의에 관한 문제에서 숫자는 중요하지 않고, 종종 한 사람이 백 명이나 십만 명을 상대로도 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겁니다. 모든 건 만장일치에 도달하기 위해 행해지고, 이것이 불가능할 때, 사람들은 투표를 해서 다수가 원하는 것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기반으로 하는 평등과 정의의 원칙을 침범할 수 없다는 걸 존중해 중재자 역할을 할 제삼자의 손에 결정을 맡기겠지요.

하지만 투표나 중재자가 없이는 합의할 수 없는 문제란 실제로는 거의 없고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각자가 자기 영역과 협회를 선택하듯이 더 이상 오늘날처럼 이해관계로 분열되지 않을 거에요. 다시 말해 그들은 가장 잘 지낼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을 선택하고, 이는 언제나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상시 변하는 의견의 영역이 아닌 과학의 긍정적 영역에 속하는 명백한 것 가운데서 선택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더 나아갈수록 투표는 쓸모없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겠지요. 사실 투표는 꽤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경험을 통해 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이 발견되었을 때, 모두의 요구를 가장 잘 충족할 해결책이 발견되었을 때, 그건 수적 다수로 반대 의견을 분쇄하는 게 아니라 증명을 통해 설득하는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만약 농부들이 씨앗을 뿌리기 가장 좋은 계절을 투표하자고 요구받는다면 그들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것을 하자고 하니 웃어 버리지 않을까요?

공공 및 민간 공익사업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겁니다.

베르트 : 하지만 그럼에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모두의 이익을 위해 내린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쩌겠나?

조르조 : 그렇다면 당연히 강제적인 조치가 필요하겠지요.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일이 부당하다고 해서 그 반대가 일어나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소수가 반란을 일으킬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다수도 방어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를 좋아하실지 모르겠지만, 억압해야 하겠지요.

사람들은 어디서나 그리고 모든 면에서 원자재와 노동 도구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지기에 늘 다른 이들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일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게 만족스러운 해결책이 아닌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반동적인 이들로부터 고립된 개인이나 집단은 얻을 수 없었던 많은 사회적 이점들을 빼앗아야 하는데, 이는 큰 집단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뭘 바라시나요? 반동적인 이들조차도 다수의 뜻이 소수의 뜻에 희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못할 겁니다.

저를 믿으세요. 연대, 형제애, 사랑을 넘어서, 상호부조를 넘어서, 그리고 필요에 따른 상호 관용 너머에는 폭정과 내전 밖에는 없습니다. 폭정과 내전은 모두에게 피해를 주기에 사람들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게 되자마자 우리의 이상만이 실현되는, 그걸 통해 평화, 행복 및 보편적인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연대로 나아가리라는 확신을 가지세요.

또한 진보를 향한 발걸음은 사람들을 단결하게끔 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람들이 더 독립적이고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하는 경향도 있다는 데 주목하세요. 예를 들어 오늘날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서는 철도를 이용해야 합니다. 이를 구축하고 기능하도록 하려면 많은 사람이 모여야만 하고, 심지어 아나키적인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많은 이들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통신망, 시간표 및 다른 규칙에 적응할 의무가 있지요. 만약 내일 누군가 혼자서 길에서 스스로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위험하지 않게 운전할 수 있는 기관차를 발명해낸다면 더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쓸 필요가 없을 테고,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어디든 여행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 혹은 앞으로 할 수 있는 수없이 많은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보를 향한 발걸음의 경향은 도덕적 연대, 물질적 독립이라는 공식으로 정의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베르트 : 좋네. 그래서 자네는 사회주의자이고 사회주의자 가운데서도 코뮌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로구만. 그럼 왜 또 자네를 국제주의자라고 부르는 겐가?

조르조 : 사회주의자들은 국제주의자라고도 불렸는데, 근대 사회주의의 첫 표출이 《인터내셔널The International》이라고 간략하게 부르기도 하는 《국제노동자협회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였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전 세계 노동자 단결을 목표로 1864년 시작된 이 협회는 처음에는 매우 불확실한 계획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정립 과정에서 그것은 다양한 분파로 나뉘었고 그것의 가장 앞선 분파는 제가 아저씨에게 설명하려고 했던 아나키즘적 사회주의의 원칙을 공식화하고 주장하기까지 했습니다.

현재 이 협회는 죽어 있는데, 한편으로는 박해받고 추방당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부 분열 및 현장과 대조되는 의견들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로부터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노동자 운동과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회주의 정당 및 부르주아 세계에 치명타를 가하기 위해 조직된 《국제 사회주의 아나키즘 혁명당International socialist anarchist revolutionary party》이 탄생했지요.

이 당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아나키즘적 사회주의의 원칙을 전파하고, 사장이나 정부의 자발적 양보 또는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개혁 같은 모든 헛된 희망에 맞서 싸우며, 대중에게 그들의 권리와 반란 정신에 대한 인식을 다시 일깨우고, 그들이 사회 혁명을 일으키도록 촉구하는 것을, 그러니까 정치권력, 즉 정부의 파괴와 현존하는 모든 부를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 계획을 받아들이고 수행하기 위해 맞서 싸우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여기 속하지요. 이 당은 어떤 종류의 지도자나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고, 같은 목적을 위한 투사들 간의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합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모두는 스스로 잘 맞는다고 생각이 드는 이들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자기가 선호하는 수단을 실천하고, 자신의 특수한 사상을 전파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지닙니다. 그가 당의 전반적인 전술에 위배되지 않는 한, 어떤 경우에도 그는 당의 일원으로 여겨지지요.

베르트 : 그럼 사회주의적-아나키즘적-혁명주의적 원칙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두 이 당의 일원인가?

조르조 : 아닙니다, 어떤 이는 우리 계획에 완전히 동의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어떠한 이유로든 계획을 받아들이는 대다수 사람과 연대 및 효과적인 협력의 유대를 맺지 않고 혼자서 혹은 소수의 동지와 함께 투쟁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지요. 이 역시 몇몇 이들과 달성하고자 하는 특정 즉각적 목적을 위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일반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습니다. 고립은 약점을 낳고 형제애와 합의가 필요한 곳에 반감과 경쟁심을 일으키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우리는 항상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쟁취하려는 사상을 위해 싸우는 모두를 친구이자 동지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상이 진실됨을 확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확장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고 집에 머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생각을 지녔기에, 사상적으로는 사회주의자나 아나키스트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신념이 약하고 무기력한 영혼을 가지고 있음이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신과 동료들을 괴롭히는 끔찍한 병폐를 보고 이런 악을 끝낼 수 있는 치료법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면, 마음이라는 게 있다면, 어떻게 활동하지 않고 가만 있을 수 있겠어요?

진실에 무지한 사람은 죄가 없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도 모르는 척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실로 죄가 있는 사람이지요.

베르트 : 자네 말이 맞아, 그리고 자네가 말한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확신이 들면 나도 당에 가입해 이 거룩한 진실을 전파하고 싶네. 그때 지주들이 나를 악당이나 범죄자라고 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와서 나처럼 일하고 고생한 다음에나 말할 권리가 있다고 하겠어.

카페에서

영어판 서문

말라테스타는 1897년 3월부터 이 책에 담긴 일련의 대화들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안코나Ancona에 숨어 정기 간행물 「선동L’Agitazione」을 제작하고 있었다. 훗날 루이지 파브리(Luigi Fabbri)는 이 시기의 말라테스타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이 책의 1922년 판(Bologna, Edizioni di Volontà) 서문에 적고 있다. 그리고 1961년에 출간한 재판(Torino, Sargraf)에서는 말라테스타의 이러한 모습도 소개된다. 말라테스타는 수염을 말끔히 밀어 변장을 하고 입에 파이프를 물고 도심에서 돌아다니면서, 그의 안전을 걱정해 다른 곳으로 피하기를 바라는 친구들을 향해 뻔뻔스럽게 웃어줬다는 것이다.

이 대화에 관한 구상은 바로 이러한 이유로 제안되었다. 말라테스타가 평상시에 자신과 같은 위험인물들의 소굴이 아니라 오히려 카페에 종종 들른다는 사실 말이다. 실제로 정기적으로 카페에 드나들던 사람들 중에는 경찰관도 있었는데, 그조차 손을 뻗치면 닿을 곳에 의외의 소득이 있다는 걸 모르고서 말라테스타와의 대화에 빠져들고는 했다. 도시의 아나키스트들이 여러 차례 재판에 연루되며 동료 시민들에게 선전 공세를 계속 퍼부어온 터라 당시 아나키즘은 확실히 중요한 대화거리 중 하나였다.

대화는 재판 이야기와 말라테스타 자신의 경험을 다루는 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복잡한 사상을 간단명료한 언어로 묘사해서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말라테스타의 특별한 능력과 딱 들어맞는 문학적인 형태로 이루어졌다. 대화라는 형식은 말라테스타가 자신의 아나키스트 관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는 조건으로 독자들과 그런 주장의 정치적 의미와 실제 적용 가능성을 소통하는 데 목적을 두면서도 상대의 생각을 토론할 수 있게 했다. 더구나 대화의 장점 중 하나는 허수아비가 없다는 점이다. 대화를 통해 아나키즘에 대한 엄밀한 조사가 성실히 진행됐고, 때로는 상대방이 아나키즘의 약점이자 취약함이라고 여기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것은 그에 대한 말라테스타의 기운찬 변호를 아주 설득력 있게 만들었다.

1897년 말이 되자 안코나의 경찰이 말라테스타를 알아보고 추적해왔다. 말라테스타는 체포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 그 즉시 말라테스타는 잡지와 미완성의 대화 모두를 단념하고 대신 연이어 강연회를 열었다. 1898년에는 가택연금을 당하고, 1899년 3월에는 해외로 달아나면서 또다시 망명객이 되었다. 대화는 10회로 중단되었고 이대로 잡지와 팸플릿으로 출판되었다.

앞선 10편의 대화에서 주요한 등장인물들은 말라테스타의 분신인 아나키스트 조르조와 부유한 부르주아지인 프로스페로, 카페 주인인 체사레, 치안판사인 암브로조다. 따라서 말라테스타는 폭넓은 사회적 스펙트럼에서 각자의 다양한 정치적인 입장과 견해를 대변할 수 있었다. 프로스페로가 부자와 기득권층을 대변한다면 체사레는 소지주와 중간계급을 대변한다. 이들은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조르조의 설득을 흔쾌히 받아들이지만 그 해결책이 현재의 사회질서를 붕괴시키지 않아야만 한다는 걱정도 드러낸다. 암브로조는 법과 자유주의 국가의 대변자이고 권리와 정의에 관한 공인된 사상을 대변한다. 암브로조는 조르조의 주요한 반대자로서 인간 본성과 인간 행동에 관한 상식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암브로조는 불가피한 현실의 명령이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인정하자면서 (자유에 관한) 완화된 자유주의적 권리 이론을 말한다. 말라테스타는 이렇게 다양한 관점들을 포괄하고 암브로조의 견해가 유도하는 수많은 비판에 응답하면서 아나키스트 세계관을 능숙하고 상세하게 그릴 수 있었다.

이 짧은 원고를 통해 말라테스타는 아나키즘적 코뮌주의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모두 소개하면서 주요한 반대 입장의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특히 관심의 초점이 맞춰지는 내용은 사적 소유와 소유권이라는 주제다.

두 번째 대화와 세 번째, 네 번째 대화에서는 빈곤의 원인이 사유재산제도의 본질과 그와 연관된 계급구조에 있다는 주장이 펼쳐진다. 또한 맬서스의 견해와 자유무역에 대한 논의를 다루면서 사적 소유의 권리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강력한 공격을 가한다. 동시에 소유제도의 완전한 변화와 정부 없는 사회의 창조라는 생각이 소개된다.

다섯 번째 대화에서는 소유와 소유권의 기원이 다루어진다. 조르조는 만일 착취가 사라지려면 소유권이 폐지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여섯 번째 대화에서 공동소유가 주장되고 코뮌주의에 관한 생각이 등장한다.

이 코뮌주의에 관한 토론은 일곱 번째 대화에서도 이어지는데, 추상적인 자유abstract liberty에 기대어 코뮌주의를 전제적이고 억압적인 체제로 간주하는 암브로조의 입장이 다루어진다. 조르조는 아나키즘적 사회를 결사체들의 자발적이고 복합적인 연합으로 묘사하면서 그 입장을 반박하고, 그 과정에서 아나키스트의 자유로운 코뮌주의라는 형식과 권위주의 학파의 형식을 대비시킨다.

여덟 번째 대화에서는 정부와 국가의 문제, 그리고 그것들 없이도 사회가 움직일 수 있는 방법으로 초점이 이동한다. 이 장에서는 의회정치와 대의제도를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자유로운 동의와 자발적인 대표 파견으로 유지되는 사회질서로서 아나키즘을 옹호한다.

아홉 번째 대화에서 앞선 논쟁이 계속된다. 정부 없는 사회를 반대하는 입장이 반복되고, 이에 대해 조르조는 여섯 번째 대화에서 처음 소개되었던 상호부조의 보편성에 관한 크로포트킨의 주장을 더욱 발전시키는 형태로 대응한다. 열 번째 대화에서는 성과 사랑, 가족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페미니즘과 관련된 여러 주제를 다루면서 성의 불평등을 낳는 원래의 기반들을 설득력 있게 해체한다.

1899년에 10회로 대화를 중단한 뒤, 14년이 지난 1913년에 말라테스타는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이 시기에 말라테스타는 또다시 안코나에 자리를 잡고 새로운 잡지인 「의지Volontà」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말라테스타는 이 잡지에 원래의 열 편의 대화를 편집하고 수정해서 싣고 네 편의 대화를 추가했다. 열한 번째와 열두 번째 대화에서 조르조의 대화 상대자였던 체사레와 프로스페로, 암브로조가 다시 등장한다.

열한 번째 대화에서는 범죄 행위에 관해 토론한다. 정부와 법, 그리고 법정이나 교도소가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범죄자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조르조는 이것이 코뮌의 방식으로 다루어져야만 한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토론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비에 대한 이야기와 아무도 원치 않는 직업을 맡아야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간다. 모두가 시인이 되고자 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코뮌의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특히 하기 싫은) 일을 교대로 하고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열두 번째 대화에서는 혁명이라는 만일의 사태를 분석해본다. 혁명은 현재의 질서가 폭력으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기득권 계급은 공포에 질리지 않은 한 결코 손에 쥔 권력을 놓지 않으리라는 점에서, 폭력 혁명이라는 슬픈 필연성으로 향한다.

열세 번째 대화에서 우리는 새로운 인물인 젊은 공화주의자 빈첸초를 만난다. 토론은 (사회) 변화에 대한 공화주의적 접근의 장점과 한계를 다루는 것으로 이어진다. 공화주의의 주요한 약점은 그것이 정부와 민주적인 대표 체계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아나키즘의 입장에서는, 공화주의가 현재의 정치체제라는 악惡에 여전히 붙잡혀 있기에 그 지지자들이 믿는 만큼 급진적이지 않다.

1913년에 새로 추가한 대화들 가운데 마지막 편인 열네 번째 대화에서는, 다시 혁명이라는 주제로 돌아간다. 조르조는 국가와 정부를 제거하려는 아나키즘의 열망이 역사에서 새로운 요인이고, 단순히 정권의 변화를 목표로 삼았던 이전의 혁명과 완전히 다르면서 더 심오한 변화를 계획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다시 정치적인 사건이 이 대화를 가로막는다. 1914년 6월에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폭풍의 기운이 드리우고, ‘붉은 주간Red Week’으로 알려지는 심각한 대중봉기가 마르케Marches와 로마냐Romagna에서 일어난다. 말라테스타는 이 대중봉기에 개입했고 그 결과 런던으로 망명하게 된다. 6년이 지나 말라테스타는 이탈리아로 돌아왔고 밀라노Milano에 머물면서 「신인류Umanità Nova」라는 신문을 편집했다.

파브리는 말라테스타가 당시 매우 바빠서 예전의 대화 원고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고 새로운 대화를 추가할 의지도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파브리는 말라테스타와 2주를 보낸 어느 손님이 이 계획을 계속하도록 설득했다고 언급하는데, 그 신비로운 손님이란 파브리 자신이었음이 분명하다. 그 결과 전체의 결론 장이라기보다는 이야기들의 속편이라고 볼만 한 세 번의 대화가 더 이루어졌다.

이 마지막 세 편의 대화를 살펴보면 이전 주제들이 일부 재등장하기도 하는데, 현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몇 개의 새로운 주제들이 관심을 끈다. 열다섯 번째 대화에서는 노동자인 지노와 함께 국가가 없는 사회에서 사회질서가 위태로워지리라는 평범한 사람들의 공포와 더불어 경찰의 필요성에 관해 토론한다. 말라테스타는 아나키스트 조르조를 통해 자신의 이전 저작인 『아나키Anarchy』에서 늑대나 범죄자가 없다면 공무원들 각 기구의 생존이 위험해지기에, 늑대 사냥꾼이 늑대를 기른다고 일컬어지는 것처럼 범죄자를 만드는 것은 바로 경찰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회의 안전이 공동체의 책임이라는 점을 다시금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 주제가 이미 열한 번째 대화에서도 다루어졌다는 사실은 그가 이 주제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을 나타낸다.

열여섯 번째 대화에서 우리는 전쟁으로 불구가 된 상이군인 피포를 만나는데, 그와 민족주의 및 애국주의라는 문제를 다루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말라테스타의 논점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계급을 분열시키고 파괴하는 민족주의에 맞서 계급연대를 호소한 레닌의 목소리를 되풀이한다. 조르조는 애국주의가 단순히 부르주아 계급이 기존의 소유 질서에 대한 노동계급의 지지를 모집하는 장치에 불과하며, 이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의 영토적 야망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마지막 열일곱 번째 대화에서는 사회주의자인 루이지가 등장해서 의회 사회주의나 권위주의적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을 구별하기 위한 내용의 토론을 이어간다. 이 토론은 의회노선과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이 진화 사회주의라고 불렀던 형태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핵심으로 다루면서 혁명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일련의 대화들을 이 책과 같은 형태로 엮는 일은 1920년 10월 끝났다. 10월 16일 말라테스타는 체포되었고 산비토레San Vittore의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의 아파트에서 무기와 폭발물을 찾으려는 대대적인 경찰 수색이 있었지만 이 대화의 초고는 발견되지 않았거나 발견되고도 무시된 듯하다. 이 초고는 1922년 파브리의 서문을 포함해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말라테스타의 대화는 아나키스트 정치이론에 중대한 공헌을 한 책일 뿐 아니라 중요한 역사적 문헌이다. 또한 무려 23년 이상의 시간에 걸쳐 작성된 이 대화는 격동의 시기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논평이다. 특히 유럽을 가로지르는 좌파의 선전과 조직이 두드러졌던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세계는 제2차 인터내셔널, 볼셰비즘의 성장, 제1차 세계대전, 파시즘의 탄생, 1904년과 1917년의 러시아혁명을 목격했다. 이런 사건들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 대화들은 그 사건들이 제기했던 많은 주제를 생생한 토론의 형태로 보여주고 있다. 실질적인 의미에서 말라테스타는 아나키스트 이론을 그 시대에 관한 생생한 논평으로 정교하게 다듬었다. 이는 지적이고 독창적이며, 진정 예술적인 작품이다.

2005년 폴 너시 브레이(Paul Nursey-Bray)

1장

프로스페로 : 물론… 당연히… 우리는 그 점을 잘 알아. 배고픔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 몸을 파는 여인들, 보살핌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지. 넌 항상 같은 것을 말해. 그러니 지루해지지. 나는 젤라또를 좀 편하게 먹고 싶은데… 분명 우리 사회에는 기아, 무지, 전쟁, 범죄, 전염병, 끔찍한 재난 같은 많은 악惡이 있어. 그래서 어쨌는데? 왜 네가 관심을 갖는 거지?

미켈레 : 미켈레 : 뭐라고요? 왜 내가 관심을 가지냐고요? 당신에게는 편안한 집과 먹을거리가 가득 차려진 식탁과 시키는 일을 해주는 하인이 있지요. 하긴 당신이야 모든 것이 쾌적하겠죠. 당신과 당신 가족이나 재산이 무사하다면 세계가 무너진대도 상관없겠죠. 정말 당신이 조금이라도 인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프로스페로 : 만, 됐어…. 잔소리하지 말라고…. 이봐 청년, 화내지 말라고. 내가 감정이 없고 다른 사람의 불행에 무관심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내 마음도 아프다고(웨이터, 여기 코냑과 담배 하나만!). 마음이 아프다니깐. 그런데 심각한 사회문제들은 감상으로는 해결되지 않아. 자연법은 변하지 않는 것이고 위대한 연설이나 눈물을 흘리는 감상으로는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할 수도 없어. 현명한 사람은 운명을 받아들이고, 무의미한 꿈을 좇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서 최선을 다하지.

미켈레 : 미켈레 : 네? 우리가 자연법을 다루고 있었던가요?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이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그 자연법이라면 어쩌죠? 나는 그런 상위법들을 지지하는 연설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는데요.

프로스페로 : , 물론. 네가 만나는 사람들을 잘 알아. 네가 진정한 친구로 선택한 그 불한당 같은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트들에게 내 대신 말해달라고. 그런 놈들의 사악한 이론을 실험하려는 무리들에 대비해서 우리는 좋은 군인과 훌륭한 경찰을 가지고 있다고.

미켈레 : 미켈레 : 이런! 당신이 군인과 경찰을 끌어들일 셈이라면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군요. 그건 내 생각이 잘못임을 증명하기 위해 주먹다짐을 하자는 거잖아요, 별다른 논리가 없더라도 잔인한 폭력에는 의지하지 마세요. 내일이면 당신이 약자의 입장에 설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면 어떻겠어요?

프로스페로 : 떻겠냐구? 글쎄, 그런 불행이 온다면 많은 혼란이 있겠지. 사악한 열정과 학살, 약탈이 벌어지고. 그러면 모든 것이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겠지. 아마 소수의 가난한 사람들은 부유해지고 몇몇 부유한 사람들은 빈곤해지겠지만 전체적으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세상은 변할 수 없으니까. 일단 한 번 데려와 봐. 네가 어울리는 아나키스트 선동가들 중 한 놈이라도 내게 데려다만 주면, 너는 내가 그놈의 주장을 어떻게 깨부수는지 보게 될 거야. 그들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머릿속을 채울 수 있는 건 너 같이 머리가 비어있는 사람들뿐이야. 내게도 그런 어리석은 말들이 먹히는지를 보라고.

미켈레 : 미켈레 : 좋아요. 사회주의자나 아나키스트의 원리를 고집하는 친구들 중 한명을 데려오지요. 당신이 그와 즐겁게 토론을 벌이면 좋겠군요. 그전까지는 저와 토론해보시죠. 저는 오늘날 만들어진 사회가 상식이나 품위를 거스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으니까요. 자, 당신은 아주 뚱뚱하고 또 건강하니 약간 흥분하더라도 건강에 아무 지장 없을 거에요. 오히려 당신의 소화를 돕겠죠.

프로스페로 : 아, 그렇다면 토론해보자고. 하지만 이건 알고 있게. 더 많이 배우고 현명한 이들의 소관인 문제들에 대해 되는대로 생각을 뱉어내는 대신에 공부나 더 하는 것이 자네에게 이로울 걸세. 자네가 더 여물고 20년 후에나 보는 게 어떤가?

미켈레 : 미켈레 : 이러는 것이 당신이 더 공부를 많이 했다고 증명하지는 않아요. 당신이 지금까지 말한 걸로 판단해보면, 당신이 더 많이 공부를 했다손 치더라도 그로부터 더 많이 깨달은 것 같지는 않네요.

프로스페로 : 봐 청년. 거참, 나를 좀 존중해달라고.

미켈레 : 미켈레 : 좋아요, 당신을 존중하지요. 그러나 나이를 걸고넘어지진 말자고요. 당신도 내 말에 반대한답시고 경찰을 부르려는 건 아닐 텐데요. 주장이란 게 늙거나 어려지는 건 아니잖아요? 주장은 단지 좋고 나쁨의 문제라고요.

프로스페로 : 아, 좋아.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을 들어볼까 그럼?

미켈레 : 미켈레 : 나는 괭이질하고 씨를 뿌리고 추수하는 농부들이 충분한 빵과 와인과 고기를 갖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어요. 왜 집을 짓는 벽돌공이 비를 피할 집을 갖지 못할까요. 왜 제화공이 해진 신발을 신을까요. 달리 말하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흥청망청 거리는데도, 정작 직접 일해서 모든 것을 생산해내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인 필수품마저 부족한 걸까요. 나는 이해할 수 없어요. 경작되지 않는 땅이 많이 있고 그 땅을 일굴 수 있다면 기뻐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누군가는 굶주리게 되는 이유를 말이에요. 그리고 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벽돌공이 실업자인 이유를요. 또 신발과 옷을 비롯한 일상생활의 필수품들이 한참 부족한데도 많은 제화공, 제봉사들이 일이 없어 놀고 있는 이유를요.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당신은 어떤 자연법이 이런 부조리들을 설명하고 정당화 할 수 있는지 말할 수 있나요?

프로스페로 : 할 나위 없이 단순하고 분명하게 말해줄게. 생산을 하려면 인간의 노동력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땅과 자원, 도구, 가게, 기계가 필요하지. 그리고 상품이 만들어져서 시장으로 배달되는 동안 생계를 유지할 수단들도 필요하다고. 간단히 말해서 네게는 자본이 필요해. 너의 농민과 노동자들은 달랑 노동력만 가지고 있어. 그러니 땅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의 요청이 없다면 그들은 일할 수 없어. 소수의 우리들은 잠시 땅을 경작하지 않은 채 남겨두거나 자본을 쓰지 않더라도 괜찮지. 반면에 다수의 노동자들은 언제나 당장 필요한 것들로 인해 압박감을 느끼지.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원할 때,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편한 기간 동안 일해야만 하는 거야.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 그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들이 일한다고 해서 이익이 나지 않는다는 게 계산된다면, 노동자들은 비록 자기가 만들 수 있는 그 물건이 꼭 필요하더라도 그저 놀아야만 하지. 이제 만족하나? 내가 이걸 더 분명하게 설명해야 하나?

미켈레 : 미켈레 : 분명 모두들 당신 말을 솔직하다고 여길 거에요. 더 궁금할 게 없군요. 그러나 무슨 권리로 소수의 사람들만이 땅을 가지나요? 자본이 소수의 사람들 손에, 특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손에 있는 이유는 무엇이죠?

프로스페로 : , 그래, 그래.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 다른 사람들이 네 말에 반대하며 떠들어댔을 어설픈 주장들도 알 것 같고. 소유자의 권리는 그들이 땅을 비옥하게 개량했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노동을 자본으로 변환시킴으로써 얻어지는 저축분에서 생기지. 더 솔직하게 말할까? 이 모든 상황은 역사적인 사실의 결과이자 수백 년의 인류 역사의 결과로 지금처럼 만들어진 거야. 인간이라는 존재는 끊임없는 투쟁을 겪어왔고 지금도 겪고 있고 앞으로도 항상 겪을 거야. 운이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누군가 손해를 보는 만큼 누군가는 이득을 보겠지. 승자에게도 불행이 있을지니! 이건 거스를 수 없는 위대한 자연법이라고. 어쩌겠어. 다른 누군가가 내 돈으로 배불리 먹는 동안 나는 내 걸 빼앗겨서 가난에 허덕여야 할까?

미켈레 : 미켈레 : 그건 내가 정확히 원하는 바는 아니에요. 그러나 이런 건 생각해보겠어요.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다수라는 점을 이용해서, 삶이 투쟁이고 권리가 사실에서 나온다는 당신 이론에 따라 당신의 땅과 자본을 빼앗고 새로운 권리를 만들어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만들겠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어쩌겠어요?

프로스페로 : , 그건 분명 복잡한 문제군. 그러나 다음 기회에 계속 이야기하자고. 지금 나는 극장에 가야 해서 말이야. 좋은 밤 보내시게나.

2장

암브로조 : 프로스페로 씨, 지금은 우리 훌륭한 보수주의자들만 있으니 내 말 들어보세요. 지난 저녁에 당신이 그 멍청한 녀석, 미켈레와 말할 때 나는 끼어들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은 그런 대화가 우리의 제도를 옹호할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은 거의 아나키스트처럼 보이던데!

프로스페로 : 거 원, 나는 절대 아니야!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암브로조 : 당신 이야기의 핵심은 현재의 모든 사회기구가 힘에 의지한다는 점이었고, 그래서 이 기구를 힘으로 파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논리를 제공했으니까요.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시민사회, 권리, 도덕, 종교들을 지배하는 최상의 원리는 도대체 어떻게 되었나요?

프로스페로 : 신은 역시 권리를 항상 입에 달고 사는군. 그 나쁜 버릇은 당신 직업 탓이겠지. 생각해보라고. 내일 정부가 국유화에 관한 법령을 발표한다면, 당신은 오늘 아나키스트들을 비난하는 것과 똑같이 태연하게 사적 소유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것이오. 그러고는 언제나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권리라는 최상의 원리들에 의지하겠지. 아시겠소, 이건 단지 어떻게 부르는가의 문제라고. 당신은 권리를 말하고 나는 힘을 말하지.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신성한 경찰이야. 그걸 자기편에 두는 쪽이 옳은 거야.

암브로조 : 이봐요, 프로스페로 씨. 궤변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매번 당신의 보수적인 본능을 억누르는 건 불가능해 보이는군요.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씩이나 되는 당신 같은 사람들의 그러한 관점들이 질서를 위협하는 최악의 적들에게 얼마나 많은 논리들을 제공하는지를 모르고 있군요. 나를 믿으세요. 우리끼리 언쟁하는 건 적어도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그만둬야 해요. 사나운 광풍이 격동의 시대에 몰아치고 있으니 우리의 제도를 방어하기 위해 모두 단결하자고요. 우리의 위협받는 이익을 돌보기 위해 단결하자고요.

프로스페로 : 결하자고? 좋고말고. 그러나 강력한 조치가 없다면, 그리고 당신이 자유주의적 원칙들을 사용하는 걸 중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할 텐데.

암브로조 : 오, 물론이죠. 우리에게는 강하게 적용되는 엄격한 법이 필요해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요. 힘으로는 대중을 오랫동안 복종시킬 수 없어요. 특히 오늘날에는요. 선전에는 선전으로 맞설 필요가 있고, 우리가 올바르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설득할 필요가 있어요.

프로스페로 : 신 농담을 정말 잘하시네! 불쌍한 친구여, 우리의 공동이익을 위해 부디 선전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생각하시길. 보수주의자들이 선전을 한다면 그건 위험한 말이지. 당신의 선전은 언제나 사회주의자나 아나키스트, 뭐 이름이야 어찌 됐든, 그들이 자기편이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이득이 될 거라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가서 너희들이 먹지 못하는 건 정당하다고 설득해보시오. 더군다나 그들이 식량을 생산하는 사람들인데도 말이야! 그들이 생각해보지 않고 그저 자신들의 몫에 대해 신과 주인에게 계속 감사하도록 두는 일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라고. 그러나 자신들의 처지를 돌아보기 시작하는 그 순간 그건 끝이야. 그들은 당신과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적이 될 거야. 절대로 안 돼! 우리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선전을 피해야만 하고 합법적이든 아니든, 때로는 법을 어기더라도, 신문을 폐간시켜야만 한다고.

암브로조 : 그건 맞아요, 맞아.

프로스페로 : 든 집회를 금지하고 모든 단체들을 해산시켜야 해. 머리로 생각하는 놈들은 모조리 감옥에 보내야 하고.

체사레 : 좀 침착하세요. 그 열정이 당신을 집어삼키겠어요. 이걸 기억해야죠. 더 좋았던 시기에 다른 정부들이 당신이 말하는 조치들을 취했었다가 결국 붕괴해버렸다는 사실 말이에요.

암브로조 : 쉿, 쉿! 저기 미켈레가 아나키스트와 함께 와요. 작년에 불온한 성명서 때문에 저 아나키스트에게 6개월 형을 선고했어요. 사실 법적으로 보면 문제없는 성명서였는데…. 허나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어요? 죄를 범하려는 의도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사회를 보호해야 하잖아요!

미켈레 : 미켈레 : 안녕하세요, 여러분. 지난밤 프로스페로 씨가 던진 도전장을 받아들인 아나키스트 친구 한 명을 소개할게요.

프로스페로 : 전은 무슨 도전! 우리는 단지 시간을 보내려고 친구들끼리 토론했던 것뿐이야. 그래도 궁금하긴 하네. 어디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사상인 아나키즘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한번 설명해보시오.

조르조 : 나는 아나키즘 선생이 아니고 이 주제로 강의를 하기 위해 온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내 사상을 옹호할 수는 있지요. 더구나 (암브로조 치안판사를 보면서 비꼬는 어조로) 여기 이 신사 분은 틀림없이 아나키즘에 관해 저보다 더 많이 알고 계시겠죠. 이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나키즘이라며 유죄 판결을 내렸으니까요. 게다가 분명 양심적인 분이실 테니 무엇보다도 관련된 논리들을 충분히 연구하지 않은 채 그렇게 했을 리는 없겠죠.

체사레 : 이봐요, 인신공격은 하지 말고 아나키즘에 관해 이야기할 거라면 지금 당장 시작합시다. 실은 나 역시 상황이 나빠지고 있고 조치가 취해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어요. 그러나 몽상가가 될 필요는 없고,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는 폭력을 피해야만 합니다. 분명 정부는 노동자들의 주장을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정부는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국가산업을 보호하고 상업을 권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조르조 : 이 어설픈 정부에게 바라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네요. 그러나 정부는 노동자들의 이익에 관심이 없을 겁니다. 그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요.

체사레 : 그것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인가요? 실제로 지금까지 정부는 능력이 부족했고 아마도 국가의 재난을 바로잡으려는 욕구가 거의 없었죠. 그러나 앞으로의 계몽적이고 양심적인 장관들이라면 다를 수 있어요.

조르조 : 아니지요. 그건 장관 한두 명의 문제가 아니죠. 그건 모든 정부, 즉 어제와 오늘과 미래의 정부가 공통적으로 가진 문제이지요. 정부는 가진 자들에게서 나오고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가진 자들의 지지를 필요로 해요. 정부의 구성원들이 바로 가진 자들이니까요. 그러니 정부가 어떻게 노동자들의 이익을 만족시킬 수 있겠어요? 한편으로 정부는 설령 그러고 싶어도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사회문제는 한 정부가 해결할 수 없는 총체적인 원인들의 결과이고, 사실상 그런 원인들이 정부의 성격과 방침을 결정하기 때문이죠.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는 정부에게 방어 임무를 준 체제 전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만 합니다. 당신이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주자고 말했죠. 그러나 그런 일자리가 없다면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정부가 사람들에게 쓸모없는 일자리를 제공한다면 누가 사람들에게 돈을 줄까요? 사람들의 채워지지 않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가 생산을 통제할까요? 뭐, 그렇게만 되면 가진 자들은 노동자들에게서 빼앗은 생산물을 팔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스스로 가진 자이기를 그만두려 할 겁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정부는 가진 자들이 독점해온 땅과 자본을 빼앗으려 들 테니까요. 당신도 잘 알겠지만, 정부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겠죠. 결국 노동자와 농민, 특권을 빼앗긴 사람들이 이런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겁니다. 산업과 상업을 보호하자는 당신 말도 그래요. 정부는 기껏해야 다른 계급에게 손해를 입히면서 특정 산업계급을 지원하고, 다른 지역의 무역업자를 희생시켜서 특정 지역의 무역업자를 지원할 수 있을 뿐이죠.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실현되지 않고 다소의 편애와 부조리, 그리고 한층 비생산적인 지출만이 남지요. 모두를 보호하는 정부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정부는 어떤 것도 생산하지 못하고 다른 이가 생산한 부를 이전시킬 수 있을 뿐이니까요.

체사레 :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정부가 일을 하려고 들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다면 어떤 조치가 가능합니까? 당신이 혁명을 일으키더라도 당신은 다른 형태의 정부를 만들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당신은 모든 정부가 똑같다고 말했지요. 그렇다면 혁명 이후에도 모든 건 예전과 똑같을 겁니다.

조르조 : 만일 우리의 혁명이 단지 정부만을 바꾼다면 당신 말이 옳을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소유제도의 완전한 변화, 생산과 교환체제의 완전한 변화를 원합니다. 쓸모없고 해롭고 기생하는 기관인 정부와 관련해서는 우리는 무엇도 원하지 않습니다. 정부, 달리 말해 사회를 위에서 지배하고 자신의 의지를 강제로 요구할 수단을 가진 기관이 존재하는 한, 진정한 해방도 사람들 사이의 평화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당신은 내가 아나키스트고 아나키가 정부 없는 사회를 뜻한다는 점을 알고 있겠지요.

체사레 : 당신은 무슨 말을 하고 겁니까? 정부 없는 사회라니! 어떻게 그런 사회가 존재할 수 있나요? 누가 법을 만드나요? 누가 법을 집행하나요?

조르조 : 당신은 우리가 원하는 바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듯하네요. 본론을 벗어나는 시간 낭비를 피하려면 내가 짧지만 체계적으로 우리의 계획을 설명하도록 해주세요. 그런 뒤에야 서로에게 이득이 될 사안을 토론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지금은 너무 늦었어요. 다음 기회에 계속하죠.

3장

체사레 : 오늘은 우리가 정부 없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주시겠죠?

조르조 : 최선을 다하죠.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지금의 사회가 어떻게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 그리고 사회 구성을 바꾸는 것이 정말 필요한 일인지에 대해 집중해봅시다. 우리가 사는 사회를 봐요. 우리 눈에 띄는 첫 번째 현상은 대중에게 고통을 주는 빈곤, 많든 적든 모두에게 부담을 주는 미래의 불확실성, 굶주림을 이기기 위해 모든 이가 다른 모든 이에 대해 싸우는 무자비한 투쟁입니다.

암브로조 : 이봐요, 당신은 계속 그런 사회의 악들에 관해 말하려는 듯한데, 불행히도 그런 사례는 너무 많아요. 하지만 그런 나열은 목적에 맞지 않고, 모든 걸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지 못해요. 인류를 괴롭히는 건 빈곤만이 아니라 전염병과 콜레라, 지진 등도 있어요. 당신이 그런 자연에 맞서 혁명을 지휘하고 싶다면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죠. 나쁜 일은 자연적으로 일어나기 마련이니까요.

조르조 : 그렇지만 사실상 빈곤이 현재의 사회기구 모델에서 생긴다는 점을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군요. 더 평등하고 합리적으로 조직된 사회에서는 빈곤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요. 우리가 악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 그 해결책도 없다면, 글쎄요, 우리가 그와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겠지요. 그러나 해결책이 발견되면 곧바로 그것을 실천하는 일은 모든 이의 관심이자 의무입니다.

암브로조 : 그것이 당신의 실수입니다. 빈곤은 인간 의지와 인간의 법이 어쩔 수 없는 원인에서 생겨요. 빈곤은 (모든)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킬 만큼 충분한 생산물을 공급하지 못하는 자연의 부족함 때문에 생기죠. 동물을 보면서 자본주의의 악명이나 전제적인 정부를 비난할 수 없어요. 동물은 먹을 것을 위해 싸워야만 하고 때때로 굶주려 죽으니까요. 찬장이 텅 비었어요. 그런 때라고요. 진실은 세상에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통제할 수 있고 아이들을 기를 수 없는 조건에서 아이를 갖지 않는다면…. 맬서스를 읽어보셨죠?

조르조 : 네, 조금요. 그러나 맬서스의 책을 읽어보지 않았어도 변하는 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책은 읽지 않았더라도, 당신이 참으로 뻔뻔한 말을 했다는 것은 말해야겠네요! 빈곤이 자연의 부족함 때문에 생긴다고 당신이 말했는데, 경작되지 않는 땅이 있다는 건 당신도 알고 있겠죠?

암브로조 : 경작되지 않는 땅이 있다면 그건 그 땅이 경작될 수 없거나 경작하는 데 드는 비용만큼 충분히 생산할 수 없다는 걸 뜻하겠지요.

조르조 : 그렇게 믿으세요? 실험을 한다 치고 농민에게 땅을 주면, 당신은 그들이 어떤 정원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게 될 겁니다. 이런, 당신은 이 정도로 진지하게 고려한 적 없죠? 그런 땅 대부분은 농업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고 화학 기술과 농업 기술이 거의 없던 시기에도 경작되었다구요! 오늘날에는 심지어 돌도 비옥한 땅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세요? 가장 현실적인 농경학자들조차도 이탈리아 같은 땅도 합리적으로 경작된다면 1억 명이라는 엄청난 인구를 유지할 수 있다고 계산했던 사실을 모르세요? 땅이 경작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진짜 이유는, 그리고 경작되는 땅이 원래 생산할 수 있는 것보다 적은 양을 생산하는 이유는-더 나아진 경작법을 적용할 수 있는데도 말이죠- 가진 자들이 생산량의 증가에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진 자들은 대중의 복리를 걱정하지 않아요. 그들은 팔기 위해 생산하지요. 그들은 물건이 많으면 가격이 떨어지고 이윤이 줄어든다는 점을, 그러면 물건이 희소해서 자기들 마음에 드는 가격에 팔 수 있을 때보다 훨씬 낮은 값에 팔아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어요. 이런 일은 농업과 관련된 상품에서만 일어나지 않아요. 사람들이 일하는 모든 분야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보죠. 모든 도시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지저분한 헛간에서 위생이나 도덕을 고려받지 못한 채 우글우글 떼 지어 살도록 강제되고 있어요. 이런 조건에서는 청결을 유지하고 인간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없죠.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요? 집이 없어서일까요? 왜 모든 사람을 위한 튼튼하고 편안하며 아름다운 집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오직 일자리만을 바라지만 고용되지 못한 벽돌공, 목수, 건축가들 역시 많이 있죠. 그러면 왜 이런 자원과 인력들이 유휴 생산력idle capacity으로 남아있는 걸까요? 집을 짓는 데 활용된다면 모두에게 이익이 될 텐데 말이죠. 그 이유는 간단하지요. 만일 집이 무수히 많다면 임대료는 떨어지겠지요. 이미 집을 가진 자들이 사실 다른 집을 지을 수단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같은 사람들이고, 그들이 단지 가난한 자들의 지지를 얻는 것밖에 안 되는 임대료가 떨어지는 일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요.

체사레 :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나라를 괴롭히는 고통스러운 일들을 설명할 때 잘못 생각하는 부분도 있어요. 땅이 덜 개간되거나 놀고 있고, 사업이 망하고, 빈곤이 널리 퍼진 이유는 부르주아지의 열의가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자본가들은 소심하거나 무식해서 산업을 발전시킬 방법을 찾거나 알려고 하지 않아요. 지주들은 노력하지 않고 할아버지들이 썼던 방법을 버리려고 하지 않아요. 상인들은 새로운 판매처를 찾으려고 하지 않아요. 정부는 민간의 기업 개척을 격려하기는커녕 재정정책과 어리석은 관세정책으로 그것을 방해하고 그들을 초보적인 단계에 머무르게 하고 있어요. 프랑스와 영국, 독일을 보세요.

조르조 : 부르주아지가 나태하고 무식하다는 점엔 저도 동의해요. 그러나 우리 부르주아지의 열등함은 세계시장을 정복하려는 투쟁에서 다른 나라의 부르주아지에게 패배한 이유만을 설명해 줄 뿐이죠. 그 열등함은 민중이 굶주리는 이유를 설명해 주지 못해요. 그 분명한 증거는 빈곤과 일자리의 부족과 그 밖의 사회적인 악들이 이탈리아보다 훨씬 더 활동적이고 지적인 부르주아지가 있는 나라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노동자들이 조직화나 저항, 반란을 통해 더 나은 생활 조건을 획득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회적인 악들은 보통 산업이 더 발전된 나라들에서 더 심각하지요. 자본주의는 어디에서나 똑같습니다. 스스로 살아남고 확산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불공평한 부족 현상을 계속 필요로 합니다. 자본주의는 그 가격들을 유지하고자 하며, 어떤 조건에서건 일하려는 굶주린 대중을 만들 필요가 있으니까요. 사실 당신도 알다시피, 한 국가에서 생산이 활발한 경우 그것은 생산자에게 소비를 진작시킬 수단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항상 해외시장에 판매하는 걸 목적으로 하죠. 국내 소비가 증가한다면 그것은 노동자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이런 상황에서 이득을 볼 수 있고 그 결과 더 많은 상품을 구매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지요. 이런저런 이유로 생산한 물건을 해외시장이 더 이상 구매하지 못하게 되면, 위기가 닥치고 작업이 중단되고 임금이 삭감되고 끔찍한 빈곤이 다시 대혼란을 야기합니다. 어쩌면 대다수에게 모든 것이 부족한 이 같은 나라에서는 (수출보다) 자신의 소비를 위해 일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겠죠! 그러나 그러면 자본가들은 정말 그 나라를 떠나고 싶겠죠!

암브로조 : 그러면 당신은 그것이 모두 자본주의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까?

조르조 : 당연히 그렇죠.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소수의 사람이 땅과 생산도구를 독점하고 자신들의 의지를 노동자에게 강요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 아래에서는 대중의 필요를 고려하며 그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생산하는 대신, 고용주의 이득을 위해 생산이 조절되지요. 당신이 지금까지 부르주아지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생각해 낸 모든 정당화 논리는 완전히 잘못되었거나 대부분 거짓말이에요. 조금 전에도 당신은 빈곤이 물건이 부족해서라고 말했죠. 다른 예로 실업의 문제에 직면해서도 당신은 이렇게 말하겠죠. 창고가 꽉 찼다고, 상품이 팔리지 않는다고, 가진 자들이 물건을 내다 버리기 위해 사람을 고용할 수는 없다고 말이에요. 사실 이 말은 체계의 부조리를 대표하는 말입니다. 창고가 꽉 차서, 땅을 경작할 필요가 없어서, 또는 지주가 땅을 경작하는 걸 원치 않아서 우리는 굶주려 죽으니까요. 신발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제화공은 일하지 못하고 너덜너덜해진 신발을 신고 돌아다니니까요. 이런 식이지요.

암브로조 : 그러면 자본가는 굶주려 죽어야 하나요?

조르조 : 이런, 절대로 아닙니다! 자본가도 다른 사람들처럼 일하면 되지요. 이 말이 모질게 들릴지 모르지만 당신은 잘 먹어야 일이 위험하지 않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인간 본성의 요구이자 실현이라는 점을 당신에게 실제로 증명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내일 일하러 가야하고 시간이 이미 늦었으니 다음에 보는 게 공평하겠죠. 그럼 이만.

4장

체사레 : 나도 당신 의견에 동의하오. 당신은 정확하게 사안을 설명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군요. 정말 당신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의 사회질서에는 분명히 어떤 부조리함이 있어요. 예를 들어 관세정책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좋은 품질의 빵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굶주림이나 그로 인한 병으로 죽어가고 있는데도 정부는 미국에서 곡식을 수입하는 걸 어렵게 만들어요. 미국은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보다 많이 가지고 있고 기꺼이 우리에게 곡식을 팔려고 할 텐데요. 단지 먹고 싶어 하지 않아서 굶주리는 것처럼 보여요. 그렇지만….

조르조 : 정말 그래요, 정부는 굶주리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밀을 대규모로 기르는 사람들도 굶주리지 않죠. 정부는 그런 이들의 이익에 맞춰 밀에 관세를 부과하고요. 만일 굶주리는 사람들이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다면, 그들은 밀을 거부하지 않을 겁니다.

체사레 : 이런 종류의 논쟁이 평범한 사람들도 사안을 넓게 바라보고 반정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만든다는 점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문제의 모든 측면에 주목해야만 합니다. 아까 당신이 내 말을 끊었을 때 막 말하려던 참이었어요. 가진 자들의 이해관계가 수입세를 매기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반대로 자유로이 물건이 오간다면 우리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에서 밀과 고기를 생산할 수 있는 미국인들이 결국 우리 시장 전체를 장악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농부들이 어떡해야 하나요? 가진 자들이 파산하겠지만 노동자들은 더 나쁜 처지가 될지 몰라요. 빵 가격은 떨어지겠지요. 그러나 그 돈을 벌 방법조차 없다면 당신은 여전히 굶어 죽게 되겠죠. 게다가 상품의 가격이 싸든 비싸든 간에 미국인들은 대가를 받고 싶어 할 텐데, 이탈리아에서 우리가 생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지불할 건가요? 당신은 이탈리아에서 우리 땅과 기후에 맞는 곡식을 재배해서 그것을 외국과 교환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와인이나 오렌지나 꽃 같은 것들이죠. 그러나 우리가 좋은 조건에서 생산할 수 있는 것들을 외국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쓸모가 없거나 스스로도 생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원치 않는다면 어떡하죠? 생산체계를 바꾸려면 자본과 지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은 말할 필요가 없겠죠? 그러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할까요?

조르조 : 벽해요! 잘 알고 있군요. 자유무역은 보호무역주의보다도 빈곤이라는 문제의 해결책이 더욱더 못돼요. 자유무역은 소비자에게 이롭지만 생산자에게 해롭고, 반대로 보호무역주의는 보호받는 생산자에게 이롭지만 소비자에게 해롭죠. 그리고 노동자가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언제나 같은 상황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가 폐지될 때까지 이런 상황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겁니다. 노동자가 소유자의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일한다면, 모든 나라는 각자의 필요를 충족시킬 만큼 충분히 생산할 수 있고, 토질과 기후, 자원의 이용가능성, 주민의 선호 등을 고려해서 생산적인 노동을 분배하기 위해 다른 나라와 협약을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가능한 적게 노력하면서도 최상의 것을 즐기기 위해서요.

체사레 : 그렇죠, 하지만 그건 공상에 지나지 않아요.

조르조 : 지금은 그런 생각이 공상일 수 있어요. 그러나 대중이 자신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깨닫는 순간 그 꿈은 곧장 현실로 변하게 될 겁니다. 그 길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은 누군가의 이기주의와 무지뿐입니다.

체사레 : 다른 장애물도 있지요. 당신은 가진 자들만 사라지면 금이 남아돌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군요.

조르조 : 그건 내가 말하려는 바가 아니에요. 오히려 나는 자본주의가 유지시켜온 이 결핍된 조건을 극복하고 모든 이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대규모로 생산을 조직하려면, 당신이 더 많이 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부족한 것은 일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가능성입니다. 우리는 몇몇 게으름뱅이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이유로 현재의 체제를 불평하는 게 아닙니다. 비록 그런 일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지 않는 건 분명하지만요. 우리는 일자리를 통제하고, 우리가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모두를 위해 풍부하게 생산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그러한 게으름뱅이들 때문에 현재의 체제에 관해 불평하고 있는 거라고요.

체사레 : 너무 과장하시네요. 가진 자들이 물자의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대개는 그들에게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해요. 땅과 자연 자원이 생산에 충분한 건 아니에요. 아시다시피 노동자들이 일할 때엔 그들에게 줄 도구와 기계, 토지, 자산, 한마디로 자본이 필요해요. 이 자본은 느린 속도로만 축적되죠. 얼마나 많은 사업이 묻혀있고, 궤도에 오르다가도 자본이 부족해서 실패하는지요! 당신이 바라듯이 사회 혁명이 일어난다면 그 결과를 상상할 수 있나요? 자본이 파괴되면 뒤이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나고 총체적인 빈곤이 발생할 겁니다.

조르조 : 그건 잘못된 생각이고 현재의 질서를 옹호하는 자들의 또 다른 거짓말입니다. 즉 자본이 부족하다는 거짓말이지요. 자본을 독점해온 사람들 때문에 여러 가지 일에서 자본이 부족할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사회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면 경작되지 않는 땅이 많은 것처럼 이 사회에 많은 양의 잠자는 자본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될 겁니다. 얼마나 많은 기계들이 녹슬고 있고 얼마나 많은 공장들의 문이 닫혀 있는지, 얼마나 많은 집들이 비어있는지를 알잖아요. 노동자들이 일하는 동안 그들에게 영양을 공급할 음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실업 상태에 있을 때에도 당연히 먹어야 합니다. 나쁜 음식으로 때우는 노동자들이래도 고용주들이 자신들을 필요로 할 때 곧바로 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노동자들이 일하지 않는 건 생계 수단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만일 노동자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그들은 (그런 조건이 정말 필요하다면) 실업 상태일 때처럼 견디며 살지언정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을 받아들일 겁니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은 일시적으로는 먹고살기 부족하지만 결국 그 뒤에 빈곤과 복종이라는 사회 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이 사실은 오랜 시간 동안 증명되어왔고, 지진이 한 도시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을 때도 증명되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는 이전보다 더 아름답게 재건되었고 재난의 흔적은 남지 않았어요. 당시 가진 자들과 자본가들은 사람들을 고용하는 데 관심을 뒀고 자원은 신속하게 마련되었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도시가 재건되었지요. 그전에 자본가와 가진 자들은 몇 채의 ‘노동자 주택’을 지을 자원이 부족하다고 계속 주장했었죠. 혁명 기간 동안 발생할지 모를 자본의 파괴에 관해서라면 사회적 재산의 공동소유를 목적으로 삼는 의식적인 운동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어요. 대중은 자신들의 것이 될 자본을 파괴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 어떤 경우든 지진처럼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분명 일이 최상의 상태로 진행되기 전에 어려움이 생길 겁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두 가지 심각한 장애물만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건 민중의 의식 부족과 경찰입니다.

암브로조 : 잠깐, 조금 더 얘기해주시오. 자본과 일, 생산, 소비 등에 관해서는 말하면서 권리나 정의, 도덕, 종교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소? 땅과 자본을 가장 잘 이용하는 방법에 관해 논쟁하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더 중요한 건 도덕의 문제이지요. 나 역시 모든 이가 잘 살길 바라지만 그런 유토피아에 다다르기 위해 도덕법칙을 어겨야만 한다면, 그리고 모든 시민사회가 의지하는 영원한 권리의 원리를 부정해야만 한다면, 나는 오늘날의 고통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더 바라겠소! 더구나 세계를 조절하는 최고 의지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라고요. 세계는 자기 힘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분명 세계를 초월한 어떤 것이 존재합니다. 분명히 당신은 신이나 천국이나 지옥조차 믿지 않을 수 있으니 그것에 관해 말하지는 않겠소. 내 말은 이 세계를 초월해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세계의 명백한 부조리에 대한 보상을 찾을 수 있는 어떤 것이 분명히 있다는 거죠. 당신은 우주에 이미 만들어진 조화를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당신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어요. 우리는 그것에 복종할 수밖에 없소. 이번 한 번만이라도 대중을 선동하는 일을 그만두시오. 그리고 재산을 적게 가진 자의 마음에 공허한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그만두시오. 유감스럽게도 폐허 속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불씨를 부채질하는 일을 그만두시오. 당신을 비롯한 근대의 야만인들은 심각한 사회변동을 일으켜 우리 선조들과 우리 자신의 명예인 문명을 파괴하고 싶겠죠? 당신이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면, 가난한 자의 고통을 가능한 많이 덜어주고 싶다면, 그들에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따르라고 말하시오. 왜냐하면 참된 행복은 만족에 있으니까요. 결국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십자가를 지고 있어요. 그리고 모든 계급은 각각의 시련과 의무를 가지는 거죠. 가장 행복한 사람이 반드시 부유하게 사는 사람은 아니란 말이오.

조르조 : 이보시오, 친애하는 판사님, ‘위대한 원리’에 관한 고백이나 상투적인 분노는 잠깐 접어두시죠. 이곳은 법정이 아니에요. 지금 이 순간은 내게 판결을 내리지 않아도 돼요. 당신 말을 들으니 당신이 권리를 빼앗긴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누구라도 알아맞힐 수 있겠군요. 가난한 자의 체념은 그들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말 유용하죠. 우선, 당신도 믿지 않는 초월적이고 종교적인 주장은 접어두길 부탁합니다. 우주의 신비에 관해서는 나는 아는 바가 없고 당신도 더 이상은 모르겠지요. 그러니 그걸 토론하는 건 무의미합니다. 그 밖에도 조물주에 대한 믿음, 창조자이자 조화의 아버지인 신에 대한 믿음이 당신을 위한 안전한 무기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언제나 부유한 자들의 편이고 그들을 위해 일하는 사제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이 가난한 자의 의무라는 생각을 이끌어낸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에 맞서 정의와 평등을 위한 권리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그렇게 생각되어왔듯이 말이죠. 만일 신이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면 우리 모두가 친척입니다. 신은 자신의 아이들 중 몇몇이 다른 아이들을 착취하고 박해하는 걸 원하지 않을 겁니다. 부자와 지배자들은 신의 저주를 받은 다수의 카인들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그만두죠.

암브로조 :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당신에게 무의미할 터이니 당신이 원한다면 그만 말하지요. 그런데 당신은 권리와 도덕, 상위의 정의를 인정했어요.

조르조 : 들어보시오. 권리와 정의, 도덕이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억압과 불행을 요구하고 유지시킨다면 나는 권리와 정의와 도덕이 거짓말이고 기득권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악명 높은 무기일 뿐이라고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에게 말할 수 있어요. 당신이 그 말들로 나타내는 바를 실제로 그 말로 의미하는 순간 그건 거짓말이자 악명 높은 무기일 뿐이에요. 권리와 정의, 도덕은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한 최고로 이로운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고,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들은 오만한 행동이나 부조리와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개념이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해온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양심에서 형성되고 지속되어 힘을 키워옴으로써 인간 존재의 필요성과 인간의 사회적 협력의 발전에 답하고 있음은 분명한 진실입니다. 도덕과 정의의 추상적인 원리들에 대한 당신의 해석으로는, 처량한 궤변이 아닌 이상, 당신 자신도 현재의 사회제도를 옹호할 수 없습니다.

암브로조 : 정말 당신은 뻔뻔하군요. 내가 보기엔 당신의 얘기는 소유의 권리를 부정하기에 충분치 않아요. 그런데도 당신은 우리의 원리들로 그것을 옹호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군요.

조르조 : 네, 맞습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다음번에 그걸 증명하지요.

5장

조르조 : 친애하는 판사님. 내가 잘못 듣지 않았다면 우리는 소유의 권리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지요?

암브로조 : 그럼요, 약탈과 도둑질을 제안하는 주장을 당신이 어떻게 정의와 도덕의 이름으로 옹호할지 정말 궁금하군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소유물을 안전하게 지키지 못하는 사회는 더 이상 사회일 수 없어요. 금방이라도 서로를 잡아먹을 사나운 짐승들의 무리겠지요.

조르조 : 그런 상황이 바로 오늘날의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당신은 우리가 약탈하고 도둑질한다고 비난하고 있어요. 하지만 끊임없이 노동자를 약탈하고 노동자에게서 노동의 결실을 도둑질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가진 자들이 아닌가요?

암브로조 :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최선이라 믿는 방식으로 물자를 활용하지요.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자유로이 처리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가진 자들은 그럴 권리를 가지고 있소. 소유자와 노동자는 노동의 대가에 관해 자유로이 계약을 맺고 계약이 맺어지면 어느 누구도 불평할 수 없는 거요. 자선행위가 심각한 문제들, 부당한 문제들을 개선시킬 수 있지만 권리는 건드릴 수 없는 것으로 남아야만 하오.

조르조 : 이런, 당신은 ‘자유로운’ 계약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라고요! 일하지 못하는 노동자는 먹을 수 없으니, 그의 자유는 도둑들에게 공격당한 여행자의 자유와 같아요. 그는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지갑을 포기했지요.

암브로조 : 그건 그렇소. 그러나 각자가 소유를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처분할 권리를 부정하기 위해 그런 논리를 이용할 수는 없어요.

조르조 : 각자의 소유, 각자의 소유라! 그러나 지주들이 땅과 농작물을 자기 것이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자본가들은 인간의 활동이 만드는 다른 자본과 생산수단을 자기 것이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소유가 생긴 게 아닐까요?

암브로조 : 법이 그런 권리를 승인합니다.

조르조 : 아! 만일 그것이 유일한 법이라면, 거리의 자객도 암살하고 도둑질할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요. 그는 이런 권리들을 승인하는 몇 개의 법조항을 제정하기만 하면 되지요. 달리 보면 이것이 바로 지배계급이 완수해온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범해진 권리 침해를 정당화하는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새로운 착취수단으로 만들었죠. 만일 당신의 ‘최상의 원리들’이 법전에 의지한다면, 내일 사유재산의 폐지를 선포하는 법이 만들어지는 걸로 충분할 겁니다. 그러면 오늘 당신이 도둑질과 약탈이라 말하는 것이 곧바로 ‘최상의 원리들’로 변할 겁니다.

암브로조 : 오! 하지만 법은 정당해야만 하오! 법은 권리와 도덕의 원리들을 따라야만 하고 억제되지 않는 일시적인 변덕 등으로 끝나면 안 된단 말이오. 또….

조르조 : 맞아요. 법이 권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리가 법을 정당화하는 것이지요. 대체 어떤 권리에 의해 현재 존재하는 모든 부, 즉 자연적인 부와 인간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부 모두가 소수의 사람에게 속하고, 권리를 박탈당한 대다수 사람들에 대한 생사여탈권이 그들에게 주어지는 겁니까?

암브로조 : 그것은 자기 활동의 생산물을 자유로이 처분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갖고 있고, 반드시 가져야 하는 권리요. 이것은 인류에게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권리가 없다면 문명은 가능하지 않았을 거요.

조르조 : 설마요! 여기서 노동의 권리를 옹호하는 분을 지금 만났군요. 브라보, 진심입니다! 그러나 말해주시죠. 어찌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는 걸까요? 막상 실제 재산은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속해 있는데 말이죠. 당신 이론의 논리를 따르면 현재의 가진 자들이 도둑놈들이라고 생각되지 않나요? 그래서 정의를 실현하려면 가진 자들이 노동자들에게서 빼앗은 부를 돌려주기 위해, 그들의 재산을 빼앗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나요?

암브로조 : 만일 일하지 않는 가진 자들이 존재한다면, 그건 그나 그들의 선조들이 남보다 앞서 일한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저축하는 장점과 자신들의 저축이 결실을 맺게 할 재주를 가졌어요.

조르조 : 저런, 법에 따라 근근이 살 만큼만 버는 노동자, 벌이와 지출이 똑같은 노동자를 생각해보시길! 당신은 재산의 기원이 합법이든 불법이든 폭력과 강도질, 도둑질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러나 누군가가 일해서 생산한 것을 절약하고 싶어 한다면 그렇게 가정해보지요. 그가 나중에 그것을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즐기길 원한다면 그건 좋아요.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그의 저축이, 당신 말대로 결실을 맺기 시작하면, 관점이 완전히 바뀌죠. 결실을 맺는다는 건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고 그들이 생산한 것의 일부를 빼앗는 것을 의미해요. 이것은 어떤 재화를 저장하고 그 비용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파는 것을 의미해요. 이것은 투기를 위해 일부러 부족함을 만드는 걸 뜻해요.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싼 임금에 일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그들이 자유로이 일해서 만든 살림살이의 가치를 줄이는 것을 뜻해요. 그리고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다른 많은 비슷한 사안들이 있죠. 그것들은 재산이 노골적이고 공개적인 강도질에서 나오지 않을 때에도 가진 자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다른 사람의 노동을 자신에게 득이 되게 만든다는 점을 보여주죠. (우리가 양보해서) 자신의 노동과 재능으로 약간의 자본을 모았다면 다른 사람이 일해서 만든 것을 강탈할 수 있고 당신은 그게 정당하다고 여기는 건가요? 나아가 자신의 후세에게 노동자를 등쳐먹으며 나태하게 살아갈 권리를 물려주는 게 정당한가요? 소수의 근면하고 검소한 사람이 약간의 자본을 축적했다는 이유로―저는 이게 당신 입장의 핵심이라 생각하는데요―대다수 인류가 끝없는 가난에 시달리고 짐승처럼 생활해야 한다는 일이 정당해 보이나요? 다른 한편, 어떤 이가 다른 사람을 착취하지 않고 자기 근육과 머리를 써서 열심히 일했더라도, 심지어 그런 사람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사회 전체의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협력 없이 필요한 것 이상을 생산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이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거나 생존 수단을 빼앗을 권한을 가진다는 점을 뜻하지 않아요. 만약 어떤 이가 해안가를 따라 도로를 만든다고 해도, 그 사실 때문에, 그들이 다른 이가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할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어요. 어떤 이가 그 지역의 모든 토지를 비옥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그들이 그 지역의 모든 거주민을 굶겨 죽일 수는 없듯이 말이죠. 어떤 이가 새롭고 강력한 생산수단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의 규칙에 사람들이 복종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그 발명품을 사용할 권리는 없어요. 더욱이 그들의 후손들에게 무수히 계승되어 미래의 다른 세대까지 지배하고 착취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권리도 없는 거죠. 그리고 나는 노동자나 노동자의 자식들이 그런 소유권자가 되는 순간에도 이 생각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오래전부터 귀족이었던 자들과 졸부들을 포함해 우리 사회에서 모든 신사들의 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말해드린다면 좋겠어요?

암브로조 : 오, 음. 개인적인 문제는 접어두자고요. 만약 의심스런 방법으로 부를 획득한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소유권을 부정할 근거는 되지 못하잖소. 과거는 과거이고, 지난 일들을 다시 캐는 건 이롭지 않으니까.

조르조 : 당신이 원하는 게 그거라면 이 문제는 묻어두지요. 개인의 소유권이 폐지되어야 하는 건 다른 이유에서거든요. 다소 의문스러운 방법으로 획득되어서라기보다는, 소유권이 다른 사람의 노동을 착취할 권리와 수단을 보장하고 궁극적으로 대다수 사람이 소수의 사람에게 의존하게 만든다는 이유에서 폐지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건 그렇고 당신의 저축 이론에 따르면 개인의 토지소유권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나요? 그 권리가 소유권자나 그들의 선조의 노동으로 만들어졌다고는 당신이 말하지 않았는데요.

암브로조 : 그건 이렇소. 개간되지 않고 메마른 땅은 가치가 없지. 사람들이 그것을 점유하고 개간하고 수확을 만들면 자연적으로 그 곡물에 대한 권리를 가져요. 땅에 대한 노동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생산되지 않을 테니까.

조르조 : 맞아요. 그건 노동자들이 자기 노동의 성과에 대해 갖는 권리죠. 그러나 이 권리는 그가 더 이상 땅을 일구지 않을 때 중지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자, 그럼 땅을 가진 현재의 소유권자가 거의 일하지 않거나 일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면서도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일하지 못하도록 하는 건 어떤가요? 한 번도 경작되지 않은 땅이 사적으로 소유되는 것은요? 이런 경우에도 노동이 소유권이고 소유권의 기원이 땅을 개간한 것일 수 있나요? 사적 소유권의 기원은 폭력이라는 점은 땅만이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일에도 진실입니다. 그리고 권리와 무력이 동일하다는 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 점을 정당화하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겁니다. 단 하루라도 당신이 최하층의 사람이 된다면 하늘이 돕길 기대해야 할 겁니다.

암브로조 : 잠시만요. 당신은 사회적인 유용성, 시민사회에 고유한 필요라는 점을 놓쳤소. 소유권이 없다면 안전도 없고 정규 일자리도 없을 겁니다. 사회도 혼돈 속에 해체되겠죠.

조르조 : 이런, 사회적인 유용성을 말하는군요. 앞서 대화를 시작할 때 소유권이 만든 피해에 관해 논의를 집중하겠다고 말했는데, 당신은 추상적인 권리를 다루는 논쟁을 다시 불러들이는군요! 이제 밤이라 저는 가야겠네요. 다음번에 다시 이야기하죠.

6장

조르조 : 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어보세요. 누군가가 지난 밤 우리가 나눴던 대화를 신문사에 얘기했더군요. 그것을 신문에 싣고 난 뒤 신문은 탄압을 받고 있습니다.

암브로조 : 아!

조르조 : 물론 당신은 아무것도 몰랐겠죠. 당신은 기가 막히게도 자기 생각은 확실하다고 주장하면서 시민들이 우리의 토론을 듣는 것은 매우 걱정하지요. 신문은 당신과 나의 주장을 성실하게 죄다 기록했어요. 이제 시민들이 현재의 사회적인 규칙들이 만들어진 합리적인 배경을 인식할 수 있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하찮은 비판을 바로잡게 되었으니 기뻐할 일입니다. 대신에 당신은 사람들의 입을 막고 침묵하게 만들었군요.

암브로조 : 나는 조금도 개입하지 않았소. 나는 사법부에 속해 있지 행정부에 속한 게 아니라오.

조르조 : 그렇죠. 아무렴요! 그렇지만 당신은 그들과 동료이고 당신이 퍼뜨리는 생각과 (그들의 생각은) 같겠지요. 만약 나의 말이 당신을 노엽게 만든다면 얘기하세요. 다른 곳에 가서 수다를 떨 테니까요.

암브로조 : 아니오, 그렇지 않소. 나는 오히려 토론하고 싶소. 계속합시다. 원한다면 금지명령과 관련해서 검찰관에게 좋게 말해보겠소. 어쨌거나 현재의 법에서는 누구에게나 토로할 권리가 있다고요.

조르조 : 그렇다면 다시 시작하지요. 지난번에 우리는 현재의 기본적인 실정법, 달리 말해 민법으로 인정되는 소유권을 옹호하다가 정의에 관한 이야기, 사회적인 유용성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갔지요. 괜찮다면 그와 관련된 생각들을 내가 짧게 정리하지요. 내가 보기에 사적 소유권은 노골적인 폭력과 사기, 다른 사람들의 노동에 대한 합법적인 착취에 의존하는 부당하고 비도덕적인 권리입니다. 그것은 생산을 방해하고, 땅과 노동에서 얻어지는 것으로 모든 이의 필요가 충족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또한 대중을 빈곤하게 만들고, 근대사회를 어지럽히는 증오와 범죄와 수많은 악을 조장합니다. 그렇기에 사적 소유권은 해로운 것입니다. 이런 이유들로 사적 소유권을 폐지하고 공동소유에 바탕을 둔 소유체제로 대체하길 바라죠. 그래야 일정한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최대한의 생활을 누릴 수 있을 테니까요.

암브로조 : 솔직히 당신이 공동소유라는 (결론에) 이르는 방식을 이해 못하겠어요. 당신의 설명에 따르면, 폭력과 다른 사람의 노동에 대한 착취에서 소유권이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당신은 자본가들이 자신의 이윤만 따지며 생산을 통제하고, 공적인 필요를 만족시키는 데 드는 노동자들의 노력을 줄일 생각을 않는다고 말했죠. 당신은 직접 경작하지 않는 사람이 땅에서 소득을 얻을 권리를 부정했고요. 또 자기 돈을 굴려서 이득을 얻거나 건설이나 다른 산업에 투자해서 이득을 취할 권리 역시 부정했지요. 그렇지만 당신은 자기 노동의 생산물에 대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했고, 사실상 그걸 옹호했소. 따라서 꼼꼼히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당신은 이런 기준들에 따라 소유라는 개념의 타당성에 도전하고, 돈과 사적인 소득에 대한 권리를 폐지하자고 요구할 수 있소. 심지어 지금의 사회를 타파하고 기꺼이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땅과 생산수단을 나눠주자고 요구할 수도 있소. 그러나 당신은 코뮌주의를 주장할 수는 없소. 개인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생산물에 대한 개인적 소유권은 항상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오. 당신의 해방된 노동자들이 곧장 이득이 없어도 일해야 하는 미래에도 안전하길 원한다면, 그들이 사용할 토지와 생산수단에 대한 개인 소유를 인정해야만 하니까.

조르조 : 좋아요. 이거 재미있군요. 당신은 사회주의의 높은 파도에 휩쓸리고 있군요. 당신은 우리와는 다른 사회주의 학파에 속해 있지만 그것도 사회주의입니다. 사회주의자 치안판사라니 흥미로운 현상이네요.

암브로조 : 아니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오. 나는 단지 당신 논리의 모순을 지적하고 당신이 코뮌주의자가 아니라 소유의 분배를 지지하는 상호주의자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오. 그리고 소유를 작은 몫으로 나누는 일은, 보다 큰 기업이 등장하지 못하게 하며 그로 인해 엄청난 빈곤이 이어질 거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군요.

조르조 : 나는 상호주의자가 아니고 소유의 분배를 지지하는 사람도 아니랍니다. 내가 아는 한 다른 근대 사회주의자들도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소유의 분배는 자본가의 손에 전부를 넘겨주는 것보다는 덜 나쁘겠지요. 그렇지만 이 분배가 가능하다 해도 생산에 큰 해를 입힐 것이라는 점은 나도 알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이런 분배는 지속될 수 없고 다시금 거대한 부의 형성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대중의 프롤레타리아화, 더 나쁘다면 빈곤과 착취로 이어지겠지요. 나는 노동자가 자기 노동의 생산물 전체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말했어요. 그러나 나는 이 권리가 추상적인 정의의 공식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착취를 없애고 모든 사람이 자신들이 합의한 관행에 따라 일하고 자기 노동의 성과를 즐겨야 한다는 점을 뜻해요. 노동자는 혼자서 자기를 위해서만 사는 고립된 존재가 아니에요. 노동자는 다른 노동자와 서비스를 계속 교환하며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죠. 그리고 노동자는 다른 노동자의 권리와 자기의 권리를 조절해야만 해요. 더구나 기름진 토지, 생산도구의 질, 지리적인 이점, 사회 환경에서 오는 장단점의 차이가 커서 각 노동자나 노동자 집단의 각기 다른 생산성을 (미리)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노동자 개인이 투여한 정확한 노동력을 정하기 어렵고 생산방법이 근대화될수록 더 그렇지요. 따라서 해결책은 각 개인의 권리를 엄격하게 존중하는 것에서 찾아질 수 없습니다. 우애적인 동의와 연대에서 발견되어야 하죠.

암브로조 : 그러나 거기에는 자유가 없지 않소.

조르조 : 오히려 그곳에서야말로 분명 자유가 존재할 겁니다. 자유주의자라 불리는 당신은 자유를 무언가를 하기 위한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권리라 부릅니다. 당신은 웃지도 얼굴 붉히지도 않는 채로, 필요한 음식을 구할 수 없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도 먹을 자유가 있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반대로 우리는 자유를 무언가를 할 가능성이라 부릅니다. 정녕 참된 자유라면 그것은 사람들 사이의 합의나 서로에게 제공하는 지지가 늘어날수록 더욱 중요해집니다.

암브로조 : 당신은 만약 소유가 나눠진다면, 대규모 축적이 곧 회복되고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소. 왜 그렇소?

조르조 : 모든 이가 똑같이 나눈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목적이니까요. 땅의 종류가 각기 다르고, 어떤 이는 적게 일하고 많이 생산하는데, 다른 이는 많이 일하지만 적게 생산하니까요. 지역마다의 장단점도 다르고요. 사람마다의 육체적, 지적 차이도 크니까요. 그러니까 이런 차이에서 경쟁과 투쟁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겠죠. 좋은 땅, 좋은 도구, 좋은 장소가 가장 강하고 지적이거나 가장 간교한 사람에게 가겠죠. 따라서 재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최고로 좋은 물질적인 수단을 손에 넣으면서 이들은 재빨리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려 할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자리에서 시작하니 그들은 쉽게 힘을 키우면서 약자를 착취하고 독점하는 새로운 과정을 만들어 부르주아 사회를 다시 구성할 겁니다.

암브로조 : 정말 진지하게 묻는 건데, 그렇다면 당신은 코뮌주의자요? 당신은 각 개인의 몫이 양도될 수 없도록 하고 약자를 위한 보장제도를 마련하는 법을 원하는 거죠?

조르조 : 당신은 무엇이든 법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군요. 당신은 진정한 치안판사네요. 법은 강자에게 이롭게만 만들어지거나 폐지된다고요. 조금이라도 강한 사람들은 법을 파괴하고, 훨씬 더 강한 사람들은 법을 폐지하고는 그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다른 법을 만들지요.

암브로조 : 그래서요?

조르조 : 이미 말했듯이 대중들 사이의 다툼을 합의와 연대로 대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개인의 소유를 폐지하는 게 반드시 필요해요.

암브로조 : 성인聖人들만 살아야 아무런 문제가 안 생기겠군. 모든 것이 모든 이에게 속하고,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일을 할 수 있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을 나눌 수 있다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 이런, 축복의 땅이네! 정말 좋은 삶이야! 얼마나 멋진 정신병원이야! 하! 하! 하!

조르조 : 야만적인 폭력을 감수하는 사회를 효과적으로 지키길 원한다는 당신의 구상을 생각하면, 그렇게 마냥 웃지는 못할 텐데요. 그래요, 신사 양반. 나는 코뮌주의자요. 당신은 코뮌주의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군요. 다음번엔 당신을 납득시키도록 노력하지요. 그럼, 안녕히.

7장

암브로조 : 당신이 말하는 코뮌주의가 무엇인지 설명을 더 듣고 싶소.

조르조 : 기꺼이 그러지요. 코뮌주의는 오늘날의 사회처럼 자연적인 이득을 독점하기 위해 서로 싸우고 서로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대신에, 대중이 모두에게 가장 이롭도록 서로 연합하고 협력하도록 사회를 조직하는 방법이지요. 땅과 광산, 모든 자연 자원이 모두의 것이라는 원리, 이전 세대가 축적한 부와 자산이 모두에게 속한다는 원리에서 시작하는데, 코뮌주의에서 대중은 함께 일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하고 싶어 합니다.

암브로조 : 알겠어요. 그것은 아나키스트 재판 때 발견되었던 선전물에 적혀 있던 내용이군요. 모든 이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생산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한다, 사람 각자는 자기 능력껏 제공하고 필요한 것을 받는다, 이걸 원하는군요. 안 그래요?

조르조 : 사실 그건 우리가 자주 되풀이해서 말하는 원리이지요. 그러나 그 원리가 코뮌주의 사회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보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분명히 코뮌주의는 모든 필요를 만족시키는 절대적인 원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필요는 무한해서 그것을 만족시킬 방법보다 더 빠르게 늘어나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의 만족감은 생산 능력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공동체가 초과적인 필요, 달리 말하면 소수의 사람들의 변덕스런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생산되는 효용에 비해 과도하게 일해야 한다는 건 유익하지도 정당하지도 않습니다. 물건을 생산하는 과정에 사람의 힘을 완전히 사용하자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니까요. 말 그대로 그건 한 사람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하는 것을 의미하죠. 그런 건 인류애를 파괴하면서 인간의 만족감을 극대화시키는 걸 의미할 뿐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가능한 만큼 최선의 삶을 사는 겁니다. 모든 이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만족을 얻는 거죠. 그런 상태를 정확하게 묘사할 이론적인 공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우리가 사회에서 사장과 경찰을 위한 환경을 없앴을 때 대중은 서로를 가족이라 여기고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대신에 서로 도우려 할 겁니다. 사회적 삶을 위한 실천적인 방식이 곧 발견될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알고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상황이 나아지도록 조금씩 수정해 나갈 겁니다.

암브로조 : 알겠어요. 프랑스에서 온 당신 동지들이 말했던 “일하는 만큼 가져간다prise au tas”는 주장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군요. 각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생산하고 난 뒤 더미에 던져두거나 공동체 창고로 가져가는 것 말이죠. 그리고 각자는 자신이 좋아하고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더미에서 가진다. 이런 건가요?

조르조 : 당신이 이 주제에 제법 관심을 갖기 시작했군요. 우리를 감옥으로 보냈을 때, 관례대로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주의 깊게 재판 문서를 읽은 것 같군요. 모든 치안판사나 경찰들이 그렇게 한다면, 조사를 빌미로 그들이 우리에게 훔쳐 간 것들이 조금은 유용하게 활용되겠군요! 하여튼 다시 토론으로 돌아갑시다. 더미에서 취한다는 구호는 말의 형식일 뿐입니다. 이 표현은 오늘날의 시장 정신을 박애와 연대의 정신으로 대체한다는 의도를 드러낸 겁니다. 그렇지만 이 표현은 확실히 사회 구성의 방법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못합니다. 아마도 당신은 우리 중에서 이런 구호를 말 그대로 이해하는 사람을 봤을 수 있어요. 그들은 일이 언제나 자동적으로 수행될 거라 생각하고 생산물이 많고 다양해져서 생산과 소비에 관한 규칙이 무의미해질 거라고 예상하니까요.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말했듯이, 인류는 항상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필요를 가집니다. 이런 필요가 발전으로 이끄는 박차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반깁니다. 다만, 그렇게 생각할지라도 실제 필요를 계산하여 가능한 최소한의 노력으로 그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조직하지 않고, 모든 가능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맹목적으로 생산하는 것은 에너지를 어리석게 낭비하는 겁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해결책은 인민의 협력에, 우리가 평등의 조건을 얻고 연대감에 고무되었을 때 실현될 인민의 공개적이거나 암묵적인 동의에 있습니다. 구호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우리 계획의 본질 속으로 들어와 주시오. 구호란 것이 강령의 정신을 받아들이려 노력하지만 다른 정파들처럼 우리도 간결하고 분명한 것보다 폭넓게 표현하려다 보니 다소 애매해지기 마련이에요.

암브로조 : 하지만 코뮌주의가 자유와 인간의 개성을 부정한다는 점은 깨닫지 못한 거요? 아마도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거의 발전하지 못한 인간도 행복을 느끼고, 그들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물질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었던 인류 초기에는 코뮌주의가 존재할 수 있었겠죠. 아마도 (코뮌주의는) 인간의 열정을 억압하려 들고 개인을 종교 공동체로 통합하는 걸 자랑스러워하거나 복종을 최고의 의무라며 주장하는 곳인 종교 공동체나 수도원의 질서에서나 가능할 거요. 그러니 근대인을 골치 아프게 하지만 고상하게도 만드는 독립성과 자유에 대한 욕구를 가진 사회, 자유로운 개인의 활동이 낳은 위대한 문명이 개화된 근대사회에서 코뮌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겁니다. 모든 활동이 마비될 겁니다. 모두가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고 자신의 개성을 옹호할 수 있는 경쟁을 약속하는 일은 사라질 거요.

조르조 : 계속해봅시다. 그러나 말을 낭비하지는 맙시다. 유명한 말이 있지요…. “뻔뻔스러움과 무책임만이 숱하게 남았구나. 굶주려 죽는 사람의 자유와 개성이라니! 잔혹한 역설이어라! 심오한 위선이어라!” 절대다수가 짐승처럼 사는 사회, 노동자가 결핍과 굶주림으로 죽는 사회,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수천 수백만씩 죽는 사회, 여성이 굶주림으로 몸을 파는 사회, 무지가 이성을 혼탁하게 만드는 사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재능을 팔고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사회, 아무도 내일을 확신할 수 없는 사회. 당신은 이런 사회를 옹호하고 있어요. 그런 당신이 자유와 개성을 감히 입에 담다니요? 아마 자신의 개성을 발전시킬 자유와 가능성이 당신들 소수의 기득권층에게는 있겠지요. 그리고 아마 그들 사이에서도 기회의 차이가 있겠죠. 이 특권 계층들도 모든 사회적 삶을 오염시키는 사람 간의 투쟁의 똑같은 희생잡니다. 서로 신뢰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에 살 수 있다면 그들도 실질적인 이득을 볼 겁니다. 그런데도 연대가 개인의 자유와 발전을 해칠 거라는 생각을 고집할 건가요? 가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으면서도―언제든 당신이 원할 때 토론하겠지만―당신은 그 신성한 제도, 그 주춧돌에 대한 일상적이고 전통적인 찬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군요. 좋아요. 항상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매우 찬양하는 가족에서는 가족 간의 사랑과 연대가 넘쳐납니다. 당신은 서로 사랑하고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함께 일하는 대신에 서로 빼앗고 미워하고 공격할 때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이 더 자유로워지고 그들의 개성이 더 발전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암브로조 : 하지만 사회를 가족처럼 조절하며 코뮌주의 사회의 기능을 조직하고 만들려면 엄청난 중앙집중화와 철의 군주, 전지전능한 국가가 필요할 겁니다. 모든 사회적인 부를 처분하고 해야만 하는 일과 소비할 수 있는 물품을 모두에게 할당할 수 있는 정부야말로 얼마나 억압적이겠소!

조르조 : 분명히 당신이 상상한 것처럼 코뮌주의가 소수의 권위주의 학파가 고안한 방식으로 실현된다면 성과 없이, 어쩌면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전제정으로 끝이 날 겁니다. 그것은 불가피하게 엄청난 반발을 불러올 것이고요.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코뮌주의에는 그런 점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코뮌주의, 당신이 이 말을 공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나키즘을 원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아래에서 위로 자유롭게 조직되는 코뮌주의를 원합니다. 결사체에 모이는 개인들로 시작해서 조금씩 더 복잡한 단계의 결사체들의 연합으로 성장하고, 마침내 협동과 연대라는 보편적인 협정으로 모든 인류를 끌어안는 코뮌주의를 원합니다. 이 코뮌주의가 자유롭게 조직되듯이, 그것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의지도 자유롭게 유지되어야만 하지요.

암브로조 : 그렇지만 그게 가능하려면 모든 사람이 천사나 이타주의자여야 하겠지! 하지만 대중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이고 사악하고 위선적이고 게으르단 말이오.

조르조 : 분명히 코뮌주의가 가능하려면, 한편으로 사회성을 향한 충동과 다른 한편으로 각자의 이해관계를 분명히 알고 있기에 서로의 나쁜 뜻을 참지 않고 서로 마음을 맞추고 상호부조를 실천하려는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불가능성만을 생각하는 관점을 버리면, 지금도 이런 상태가 일상적이고 흔하다는 걸 알 수 있지요. 현재의 사회 구조가 계급과 개인 사이에 적대와 갈등을 야기하는 원인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사회가 계속 유지될 수 있고 말 그대로 서로를 잡아먹는 늑대 무리로 타락하지 않는 것은, 그 모든 순간에 드러나는, 심지어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수많은 연대와 공감, 헌신, 희생의 활동을 낳는 인간의 심오한 사회적 본능 때문입니다. 사회를 해체시키는 요인들이 내부에서 작동함에도 사회를 지속시키는 것은 바로 이 본능이라고요. 본성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이자 이타적이에요. 나는 이미 사회에 앞서 생물학적으로 결정된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인간이 이기적이지 않다면, 즉 인간이 자기보존의 본능을 가지지 않는다면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겠지요. 그리고 만일 인간이 이타적이지 않다면, 다시 말해 아이에 대한 사랑을 깨달으면서 처음으로 드러내는 본능,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들은 (자연계의) 한 종種으로 존재할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도 사회적인 삶을 발전시키지도 못할 겁니다. 이기적인 감성과 이타적인 감성이 공존하고, 지금 사회가 이 두 감성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오늘날 누구에게도 만족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심지어 특권을 가진 사람에게도 똑같이 해당됩니다. 반면 코뮌주의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가 섞이는 사회 구조이지요. 모든 사람에게 이롭기에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일 겁니다.

암브로조 : 당신이 말한 대로라면 그렇겠지. 그러나 코뮌주의 사회가 부과하는 의무에 적응하는 방법을 모든 사람이 원하고 또 알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하나? 예를 들어 사람들이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물론 당신은 모든 상황에 대한 이론적인 답을 가지고 있겠지. 당신의 주장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으로. 그리고 당신은 노동이 생명체의 욕구이자 즐거움이고 모든 사람이 그런 즐거움을 가능한 한 많이 누리려 할 거라고 말하겠지.

조르조 : 그렇게 말하는 내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는 걸 알겠군요.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내게 생명체의 욕구와 즐거움인 것은 운동, 즉 신경과 근육의 활동이죠. 그러나 노동은 신체 외부의 객관적인 목적을 위해 규율에 따르는 활동입니다. 누군가가 말타기를 원할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양배추를 재배해야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인간이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에 적응할 수 있고 또 적응한다고 믿어요. 노동을 통해 얻은 물품들이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고 어느 누구도 자신을 위해 일하도록 타인에게 강요할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모든 사람은 노동의 필요성을 인정할 것이고 노동이 덜 피곤하지만 더 생산적으로 나아지는 구조, 즉 코뮌주의 구조를 좋아할 겁니다. 코뮌주의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을 조직하며 직접 일하고, 그러면서 그 일을 가볍고 즐겁게 만드는 모습을 생각해보세요. 코뮌주의에서는 게으름이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다고 비난할 공개적인 여론이 자연스럽게 발달할 거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럼에도 빈둥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어떠한 큰 해악을 끼치지 못하는 참을 수 있을 만한 소수의 구성원일 겁니다.

암브로조 : 하지만 당신의 낙관적인 예측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빈둥거리면 어떻게 하시겠소? 당신은 그들을 지원할 거요? 만일 그렇게 한다면 당신이 부르주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지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텐데!

조르조 : 실제로는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지요. 왜냐하면 부르주아지는 우리가 생산하는 것을 차지할 뿐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생산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게으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힐 만한 수가 된다면, 우리가 게으름뱅이를 부양해야 한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을 겁니다. 게으름과 타인에게 기생하는 생활 습관이 지배를 욕망하는 것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점 때문이죠. 코뮌주의는 자유로운 협약이에요. 그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코뮌주의 밖에서 지내면 돼요.

암브로조 :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는 새로운 계급이 생기는 건 아니오?

조르조 : 천만에요. 모든 사람이 땅과 생산수단, 그리고 인류가 도달한 문명의 단계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이득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니까요. 어떤 이가 코뮌주의의 삶이나 그것이 요구하는 의무를 인정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건 그들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합의에 이를 것이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쁜 상태에 처해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면, 코뮌주의의 우월성을 깨닫고 코뮌주의자와 연합하게 될 겁니다.

암브로조 : 그래서 누군가는 코뮌주의를 인정하지 않기로 자유로이 선택한다면?

조르조 : 당연히 그럴 수 있어요. 누구라도 자연 자원이나 이전 세대가 축적한 상품에 관해 코뮌주의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질 거라구요. 참, 어이가 없군요! 나는 계속 자유로운 협약과 자유로운 코뮌주의에 관해 말했어요. 어떻게 반대가 없는 자유를 생각할 수 있어요?

암브로조 : 그렇다면 당신의 생각을 힘으로 강요하지는 않소?

조르조 : 당신 미쳤군. 경찰이나 치안판사를 데려올 셈이오?

암브로조 : 음, 그게 어때서. 모든 사람이 자유로이 자신의 꿈을 추구한다면서!

조르조 : 큰 실수를 범하지 말길! 사상을 강요하는 것과 도둑이나 폭력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권리를 되찾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요.

암브로조 : 아, 그렇다면 당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단 말이오?

조르조 : 그 점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군요. 재판장에서 고발항목을 나열하는 건 당신에게 이로운 일이겠죠. 당신에게 분명하게 말해줄 것은 대중이 자신의 권리를 의식하고 이 상황을 끝내고자 한다면, 당신은 더욱더 거칠게 다뤄질 위험을 안게 된다는 거요. 그런데 이 역시 당신의 저항에 달려 있어요. 당신이 선한 의도로 포기하면 모든 것이 평화롭고 친절하게 진행될 겁니다. 반대로 당신이 비뚤어진다면, 최악을 경험하게 될 거요. 잘 가요.

8장

암브로조 : 솔직히, 자유로운 코뮌주의에 관한 당신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할수록 당신이 정말 독특한 사람이라고 생각돼요.

조르조 : 왜 그렇죠?

암브로조 : 당신은 항상 노동과 즐거움, 조화, 협약에 관해 말하지, 사회적인 권위나 정부에 관해서는 절대로 말하지 않으니까요. 누가 사회생활을 조절할까요? 누가 통치자가 될까요? 정부는 어떻게 구성될까요? 누가 선거로 당선될까요? 대체 어떤 방식으로 법이 존중되고 범죄자가 처벌될까요? 어떤 방식으로 다양한 권력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로 구성될까요?

조르조 : 우리는 그 모든 권력을 어떻게 할지 몰라요. 우리는 정부를 원하지 않는다고요. 아직도 내가 아나키스트라는 점을 모르나요?

암브로조 : 글쎄, 나는 당신이 독창적인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나는 코뮌주의를 이해할 수 있고 모든 점에서 잘 계몽된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면 많은 이득을 볼 수 있다고 인정해요. 그 정부는 모든 이들이 법을 따르도록 만들 만한 힘을 가져야겠죠. 그런데 정부도 없고 법도 없다니! 대체 어떤 혼란이 뒤따를까요?

조르조 : 그 점은 이미 예측했는데요. 처음에 당신은 강력하고 중앙집권화된 정부가 필요하다고 말했기 때문에 코뮌주의와 대립했지요. 이제 당신은 정부 없는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심지어 코뮌주의를 인정하기도 했는데, 정부가 철권을 휘두르는 한에서 그렇다고 하네요. 간단히 말해 다른 무엇보다도 당신을 두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자유에요!

암브로조 : 갈수록 태산이군요! 확실한 건 정부 없는 사회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에요. 어떻게 당신은 그 모든 일이 규칙이나 어떤 조절 없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하죠? 누구는 배의 키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다른 사람은 왼쪽으로 돌리려고 한다면 배가 뒤집히지 않고 멀쩡할까요?

조르조 : 나는 규칙과 조절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나는 정부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내가 말한 정부는 법을 만들고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는 권력입니다.

암브로조 : 만일 그 정부가 선거로 구성된다면 대중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겠소? 당신은 뭐가 불만인 거요?

조르조 : 그건 거짓말에 지나지 않아요. 일반적이고 추상적이며 대중적인 의지는 형이상학적인 상상에 지나지 않아요. 공공公共은 대중으로 구성되고 각기 다른 기질과 환경에 따라 대중은 수천 개의 다양하고 다른 의지를 지니고 있어요. 투표함이라는 마법 상자를 통해 뽑아낼 수 있다고 기대되는, 모두에게 공통된 일반의지는 사실 부당한 것이에요. 그건 한 개인이 주어진 시간 동안 생길 수 있는 모든 문제는 다른 누군가의 뜻에 따라 처리하도록 위임하더라도 불가능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도 자신들의 의지가 각기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될지를 미리 말할 수 없기 때문이죠. 대체 어느 누가 요구안을 만드는 바로 그 순간에조차 벌써 이미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대변할 수 있을까요? 선거가 진행되는 방식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모든 대중이 교육받고 독립적이라서 투표가 완전히 의식적이고 자유롭다고 가정하더라도 투표가 이루어지는 방식에 관해서는 말할 게 있어요. 예를 들어, 당신은 이해관계를 잘 보장하고 당신의 생각을 실현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투표할 수 있겠죠. 이건 이미 상당 부분 패배를 인정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많은 생각과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에 모든 사안에 관해 항상 당신처럼 생각하는 사람을 만날 방법을 알 수 없으니까요. 즉 당신이 지지를 보내고 지배를 받을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불가능해요. 당신의 후보는 당선되기 어려울 거고 당신의 의지는 소위 대중의 의지로 모이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면 당선되었을 때를 생각해봅시다. 지금 상황에서 이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요? 꿈도 꾸기 어려울 겁니다. 그는 무수히 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일 뿐이고(예를 들어 이탈리아 의회 535석 중 1석), 사실상 당신은 당신의 위임을 받은 적 없는 다수의 사람에게 지배될 겁니다. 그리고 이 다수(매우 다양하거나 서로 모순되는 위임을 받았고, 어떤 특별한 요구가 없다면 일상적으로 권력을 대리하는 다수)는 설령 그들이 원하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일반의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되는대로 하거나, 특정한 순간에 자신들을 지배하는 자의 바람대로 행동하거나 그들의 바람을 따를 겁니다. 이봐요, 이제 정부가 대중의 뜻을 대변한다는 이 케케묵은 변명을 이제는 포기하자고요. 어떤 특정한 순간에 모든 사람이 동의할 만한 보편적인 질서에 관한 물음은 분명 필요하겠지요. 그렇지만 그것이 정부의 목적일까요? 모든 사람이 무언가를 원한다면 그들은 그것을 규칙으로 만들면 된다니까요.

암브로조 : 간단히 요약하자면 당신은 어떤 규칙이, 생활의 규범이 있을 필요를 인정하는군요. 누가 그것을 만듭니까?

조르조 : 관련된 당사자들이지요. 그러면 그들은 그 규칙들을 반드시 따를 겁니다.

암브로조 : 누가 규칙을 따르도록 강제하나요?

조르조 : 아무도 필요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자유롭게 받아들이고 자유로이 따르는 규범들을 말하고 있으니까요. 내가 말하는 규범을 혼동하지 마세요. 이 규범은 연대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모든 이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져야만 한다는 점을 고려한 실천적인 관습이니까요. 이 규범은 소수가 만들어서 모든 사람에게 힘으로 강요하는 법과 다르답니다. 우리는 법이 아니라 자유로운 협약을 원해요.

암브로조 : 만일 누군가가 협약을 어긴다면?

조르조 : 왜 자신이 함께 만든 협약을 깨려 할까요? 그래도 어떤 범죄가 발생한다면 그 범죄는 협약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고 수정되어야 한다는 징조로 활용될 겁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은 더 나은 협약을 고민할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누구도 불행하지 않은 모두의 이익이기 때문이죠.

암브로조 : 당신은 모든 이가 자급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소규모이고 기본적이며 제한된 원시사회를 갈망하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조르조 : 천만에요. 사회관계들이 다각화되고 더 복잡해진 순간부터 인류는 도덕적이고 물질적인 만족을 더 많이 경험하고 있지요. 우리는 가능한 한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를 추구할 겁니다.

암브로조 : 그렇다면 당신은 합의를 만들기 위해 기능을 위임하고 역할을 할당하고 대표를 임명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조르조 : 그렇겠죠. 하지만 이것이 정부를 세우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정부가 법을 만들고 법을 강요한다면, 자유로운 사회에서 권력의 위임은 아주 특수하고 일시적인 일이자 한정된 의무입니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권력의 위임은 어떠한 권위나 특별한 보상을 받을 권리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리인의 결정은 언제나 그들이 대변하는 사람들의 승인을 받아야만 합니다.

암브로조 : 그런데 당신은 모든 이가 항상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는군요. 당신의 사회질서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조르조 : 어떠한 것이든 협약을 만들 사람들이 그것을 가장 잘 적용할 것이고, 우리는 서로를 괴롭히지 않는 합의에 이를 겁니다.

암브로조 : 만약 외부의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싶어 한다면?

조르조 : 그렇다면 우리 자신을 방어하겠죠.

암브로조 : 아! 그런 방위의 필요성 때문에 새로운 정부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은 생각하지 않나요?

조르조 : 확실히 그 점도 생각하지요. 정확히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가장 심각한 갈등의 원인이 제거될 때까지 아나키즘이 가능하지 않다고 늘 말해왔어요. 사회협약이 모든 이의 이익에 기여하고 연대의 정신이 인류 사회에 무르익을 때까지 말이죠. 만약 당신이 사적 소유와 그 소유에서 비롯된 다른 사회제도들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채 오늘 당장 아나키즘을 실현하려 한다면 즉각 내전이 터져서 정부, 심지어 독재 정부조차 축복으로 감사히 받아들여질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아나키즘을 실현하는 동시에 사적 소유를 폐지한다면, 그때는 갈등의 원인들을 극복하면서 우리는 합의에 이를 겁니다. 왜냐하면 그 합의로 모든 이가 이득을 보기 때문이죠. 무엇보다도 제도는 대중이 그것을 관리하는 한에서만 가치를 가진다는 점을 이해해야 해요. 자유로운 협약의 힘이 중요한 아나키즘은 특히, 대중이 연대의 이득을 이해하지 못하고 동의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존재할 수 없어요. 우리가 널리 선전을 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죠.

9장

암브로조 : 당신의 아나키즘 코뮌주의로 돌아가도 될까요? 솔직히 나는 참을 수가 없어요.

조르조 : 아! 그렇고말고요. 국가와 가진 자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법전을 끼고 살아온 당신이니 국가와 가진 자들이 없는 사회, 더 이상 반란도 없고 굶주린 대중을 노예선으로 보낼 일도 없는 사회란 분명히 딴 세상처럼 보일 겁니다. 하지만 그런 관점을 버리고 싶다면, 당신이 선입견을 극복할 힘을 가지고 있고 편견 없이 이 사안을 바라본다면, 사회의 목적이 모든 사람의 행복이어야 한다는 점을 쉽게 이해할 겁니다. 그러면 아나키즘 코뮌주의가 해결책이라는 생각을 반드시 받아들일 겁니다. 반대로 사회가 대다수를 희생시켜 충성스런 개인들만이 즐거움을 누리도록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한다면, 글쎄요….

암브로조 : 아뇨, 아니에요. 사회가 모든 이의 행복을 목표로 삼아야만 한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당신의 시스템을 받아들일 수가 없소.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 관점을 속속들이 알기 어려워. 이 토론에 관심을 가진 뒤로 적어도 내 나름대로는 당신이 원하는 바를 분명히 이해하고 싶었는데. 그렇지만 당신의 결론은 너무 유토피아적인 것 같아. 너무….

조르조 : 간단히 말해서 내 설명 중에 모호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무엇이죠?

암브로조 : 뭐랄까. 잘 모르겠어. 전체 시스템이랄까…. 일단 우리가 합의하지 못할 권리의 문제는 남겨두고 당신이 주장하듯이 우리 모두가 현재의 부를 동등하게 즐길 권리를 가진다고 생각해봅시다. 나는 코뮌주의가 가장 빠르고 아마도 최선의 합의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요. 그러나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점은 정부 없는 사회에요. 당신은 결사체 구성원들의 자유 의지로 전체 체계를 구성하자고 말하거든.

조르조 : 정확하게 보셨네요.

암브로조 : 바로 그게 잘못된 생각이지. 사회는 위계질서와 규율, 집단에 대한 개인의 복종을 뜻하거든요. 권위 없이는 어떤 사회도 가능하지 않아요.

조르조 : 정확히 그 반대죠. 엄밀한 의미로 따지면 사회는 평등한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할 수 있어요. 이런 평등이 즐거움과 편리함을 찾으려는 대중의 협약을 가능하게 합니다. 평등한 사람들은 서로에게 복종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사회의 본질이라고 여기는 위계질서와 복종의 관계는 노예와 주인의 관계에요. 바라건대 당신은 가축이 가축을 소유한 사람의 동지가 아니듯이 노예는 확실히 주인의 동지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해요.

암브로조 : 당신은 각각의 개인이 원하는 바대로 행동하는 사회를 진심으로 믿고 있군요.

조르조 : 대중이 그 사회에 살기를 원하고, 그래서 사회적 삶의 필요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렇지요.

암브로조 : 만약 그들이 원치 않는다면?

조르조 : 그렇다면 사회는 가능하지 않지요. 하지만 적어도 근대적인 의미에서 인류가 물질적인 필요와 도덕적인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건 사회 안에서만 가능하죠. 그렇기에 인간이 생명과 행복의 전제조건을 포기할 거라고 가정하는 건 좀 이상하지요. 사람들이 추상적인 용어로 사안을 토론할 때에는 합의를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생기고 그 일이 모든 이와 연관된 일이라면 다를 겁니다. 자신의 의지를 타인에게 강요하고 자기식대로 일하도록 억압할 수단을 가진 사람이 없는 한, 편협함과 어리석음은 곧 사라질 것이고, 대중은 서로 타협하며 가능하다면 모든 이를 최대한 만족시킬 일을 할 겁니다. 인류애를 향한 의지가 없다면 인류도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만 해요. 우리가 처한 모든 문제는 이 의지를 바꾸는 겁니다. 이것은 서로 전쟁을 벌이고, 서로 증오하고, 서로 착취하는 것이 모든 것을 잃게 만든다는 점을 대중이 이해하도록 만드는 걸 의미합니다. 그리고 대중이 서로 돕고 연대하는 사회질서를 바라도록 설득하는 걸 의미하죠.

암브로조 : 그래서 모든 이가 그렇게 설득되고 그런 의지를 가질 때까지 당신의 아나키즘 코뮌주의를 실현하는 건 미뤄지겠군요.

조르조 : 아, 아닙니다. 농담이 과하군요! 의지를 결정하는 건 바로 사회적 환경이라고요. 작금의 상황이 계속되는 한 이 사회의 절대다수는 사회가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될 수 없다고 믿을 겁니다.

암브로조 : 그러면요?

조르조 : 그래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코뮌주의와 아나키즘을 만들 겁니다. 그렇게 할 만큼 충분한 수가 되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우리가 스스로 잘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그들도 우리를 따라 할 겁니다. 아니면 적어도 우리는, 코뮌주의와 아나키즘을 완수할 수 없다고 하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의지를 바꾸는 한 방법으로 사회의 조건을 변화시키려 노력할 겁니다. 사람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의지를 성장시킬 수 있는 그런 조건으로 말이죠. 의지와 그를 둘러싼 사회 상황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상에 다가서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어떤 일이든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이 점은 분명하게 이해했으면 해요. 우리는 누군가의 의지를 억압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의지나 대중의 의지를 억압하는 것도 원하지 않아요. 우리는 폭력으로 대중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소수에 맞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일단 우리 힘으로 모두를 위한 해방이 실현되면, 즉 자본이 해방되어 땅과 생산수단의 이용에 관한 권리가 확보되면, 우리는 말과 다양한 사례들의 힘에만 의존하여 우리의 이상을 실현할 겁니다.

암브로조 : 좋아요. 단순히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합의를 통한 그런 방식으로 우리가 스스로 지배하는 사회에 도달할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그렇다면 선례가 없지 않겠지요?

조르조 : 당신의 생각만큼 많지는 않겠지요. 사실 본질적으로는 언제나 그럴 수밖에 없지요. 즉, 사회의 한 부분으로 사실상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들, 인류의 가장 하층으로 떨어진 패배한 사람들, 지배당하는 사람들,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요. 오늘날에도 그래요. 지배당하는 계급에서만큼 지배하는 계급에서도 사회적 삶의 본질적인 부분들은 개인들의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합의, 자발적인 합의를 통해 실현됩니다. 관습이나 명예, 약속의 존중, 여론에 대한 두려움, 정직, 사랑, 연민, 예의범절 같은 것들이죠. 법이나 정부의 간섭 없이도 말이에요. 법과 정부는 우리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맺을 때에만 필요해집니다. 평등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모든 사람이 경찰을 부르거나 법정으로 가는 걸 부끄러워할 겁니다! 모든 국민을 지배자 한 명의 종처럼 취급하는 독재국가에서는 어느 누구도 주권의 의지를 가지지 못합니다. 주권을 가진 자는 대중을 계속 복종하는 인간으로 만들 필요가 있겠지요. 그러나 점차 외부인이 들어오고 기존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지배계급이 되면서, (이들이) 정부 체제에 직접 참여하거나 부를 소유하죠. 그러니까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는 모든 지배자의 의지를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입법부와 행정부 전체는, 법과 군대, 경찰, 판사 등을 갖춘 정부 전체는 대중을 통제하고 착취를 보장하는 쪽으로만 활용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가진 자들도 그들 스스로 합의하는 게 더 쉽고 경제적이라는 점을 알게 되어 국가를 없앨 겁니다. 부르주아지 스스로도 똑같이 말해요. 부르주아지는 군대와 경찰이 없다면 인민이 (자신들의) 파티를 망칠 거라는 점을 잠시 잊어버린 것 같군요. 계급 차별을 없애고 더 이상 통제를 받아야 하는 노예가 없다고 보장하는 순간, 더 이상 국가는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암브로조 : 과장하지 마요. 국가는 모두에게 이로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국가는 교육을 시키고 공중보건을 돌보고 시민의 생명을 지키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요. 이런 게 의미 없다거나 해롭다고는 말하지 마시오!

조르조 : 이런, 국가가 보통 일하는 방식대로군요.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진실은 그런 일을 실제로 하는 건 항상 노동자라는 점이죠. 조정자를 자처하는 국가는 그런 서비스를 지배의 도구로 바꾸고 지배자와 가진 자들의 특혜로 전환시키죠. 대중이 교육에의 열망을 가지고 가르칠 능력이 있는 교사가 있다면 교육은 확산될 겁니다. 대중이 공중위생의 규칙을 알고 판단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으면, 사람들에게 충고할 의사가 있으면, 공중보건은 확립됩니다. 대중이 생명과 인간의 자유를 신성한 것으로 여기면, 야만적인 사례를 만드는 판사와 경찰이 없으면, 시민의 생명은 안전해집니다. 대중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공공서비스는 조직될 겁니다. 국가는 아무것도 만들지 못합니다. 잘해야 국가는 남아도는 잉여일 뿐이고 에너지를 의미 없이 낭비합니다. 그냥 쓸모없기만 해도 좋으련만!

암브로조 : 이쯤에서 마치죠. 어쨌든 당신 말은 충분히 알겠어요. 이야기를 되짚어보고 싶군요. 다시 만날 때까지….

10장

암브로조 : 대화를 나누면서 당신이 했던 이야기들을 되짚어봤어요. 이제 논쟁을 관둬야겠어요. 패배를 인정하는 건 아니에요. 당신의 주장대로라면 미래는 당연히 당신 편이겠죠.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판사이고 법이 존재하는 한 법을 존중해야 하며 법이 존중되도록 보장해야 해요. 이해하시겠지만….

조르조 : 잘 이해했어요. 그래요. 그렇게 말하고 싶으면 그러세요. 법을 없애는 건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요. 당신은 양심과 반대로 행동하는 의무에서 자유로워지세요.

암브로조 : 잠깐, 진정해요.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나는 약간 다른 설명을 하고 싶어요. 아마도 우리는 사회의 소유제도와 정치기관의 문제에 합의할 수 있을 거에요. 결국 그것들은 수없이 많이 변했고 아마도 다시 변하게 될 역사적인 구성물이죠. 그런데 당신의 끊임없는 공격 대상에는 몇몇 신성한 제도, 인류의 심오한 감정도 포함되어 있어요. 예를 들자면 가족과 조국 같은 것이죠. 예를 들어 당신은 모든 걸 공유하고 싶겠죠. 자연히 여자도 공유할 거고 첩도 만들 거고. 안 그래요?

조르조 : 잘 들으시오. 당신이 나와 토론을 하고 싶다면 제발 어리석은 소리 좀 관두시오. 썰렁하다고요. 우리가 다루는 문제는 매우 진지하니 그런 천박한 농담 말라고요!

암브로조 : 하지만 나는 심각한데요. 여자를 어떻게 할 거요?

조르조 : 이거 점점 더 안 좋아지는군요. 당신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네요. 여자를 공유한다고! 왜 남자도 공유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나요? 당신의 생각을 설명할 유일한 방법은 당신이 뿌리 깊은 편견에 따라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당신에게는 여성이 가축이나 남성의 성적 쾌락을 위한 도구쯤으로 이 세계에 나온 존재라는 말이죠. 그래서 당신은 여성이 마치 물건인 것처럼 말하고 우리가 물건을 사용하듯이 여성의 운명을 결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거라고요. 그러나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는 우리에게, 남성이 누리는 모든 권리와 자원을 즐기고 즐겨야만 한다고 보는 우리에게 “당신은 여성과 무엇을 할 건가요?”라는 물음은 의미 없는 얘기에요. 대신 이렇게 물어야죠. “여성은 무엇을 할까요?” 그러면 나는 여성은 여성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것이라고 답할 겁니다. 그리고 여성도 사회에서 생활하기 위해 남성과 똑같은 필요를 가지기 때문에, 여성이 자기 자신이나 모두에게 가장 이로운 방향으로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동료 남성이나 여성들과 합의하고 싶어 할 거라는 건 분명합니다.

암브로조 : 알겠어요. 당신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다고 생각하는군요. 그렇지만 여성의 신체를 해부하고 생리를 연구한 많은 과학자는 자연적인 능력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해요.

조르조 : 네, 물론이죠. 어떤 주장이든 그 뒤에는 언제나 과학자가 있지요. 어떤 과학자들이 여성의 열등함을 주장한다면 반대로 다른 과학자들은 여성의 이해 능력과 발전 능력이 남성과 똑같다고 주장하지요. 만약 오늘날 여성이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능력이 부족해 보인다면 그건 여성이 받은 교육과 여성이 사는 환경 탓입니다. 당신이 주의 깊게 관찰했다면, 어떤 과학자들은, 특히 남성이 열등한 존재라고 주장하는 여성 과학자들은 여성을 육체적으로 힘든 일에서 해방시키고 어떠한 방법으로든 여성이 자기 능력을 자유로이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는 점을 깨달았을 겁니다. 이런 생각은 미국에서 오래전부터 주장되어온 것이죠. 그렇지만 무슨 상관이에요. 이것은 과학적인 문제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 맹세와 인간의 이상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능력을 개발할 모든 수단과 자유를 여성에게 제공하면 기대하던 일을 보게 될 겁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다거나 여성이 대체로 지적이라면, 실제로 그 사실이 증명될 겁니다. 사실적인 증거에 바탕을 둔 긍정적인 자료들을 얻게 되니 과학도 이득을 볼 겁니다.

암브로조 : 당신은 개인의 타고난 능력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건가요?

조르조 : 그런 능력이 특권을 만든다면 그렇지요. 자연적으로 똑같은 두 사람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요. 하지만 우리는 모든 사람의 사회적인 평등을, 달리 말하면 평등한 자원과 동등한 기회를 주장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평등이 인류 역사에서 발전되어온 정의와 박애라는 감정에 호응할 뿐 아니라 그 사람이 강하든 약하든 모든 이의 이득을 보장하리라는 점을 생각합니다. 심지어 남성들 사이에서도 더 지적인 사람과 덜 지적인 사람은 있죠. 그렇다고 그것이 어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점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금발이 흑발보다 더 뛰어나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원형 두개골을 가진 인종이 평평한 두개골을 가진 인종보다 뛰어나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체적인 사실을 따른다면 그 논쟁은 분명히 과학에 이롭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감정 상태와 인류의 이상을 고려할 때, 금발의 사람과 뾰족한 머리의 사람이, 갈색 머리 사람과 납작한 머리나 다른 식의 두개골을 가진 사람을 지배해야 한다고 꾸미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지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암브로조 : 좋아요, 가족의 문제로 넘어갑시다. 당신은 가족을 폐지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구성하길 원하나요?

조르조 : 보세요. 가족과 관련된 일이라면 우리는 경제적인 관계, 성적인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고려할 필요가 있어요. 가족이 경제 기구인 한에서 사적 소유가 폐지되면 결과적으로 유산도 지속될 이유를 갖지 못하고 사실상 사라질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족은 노동계급으로 구성된 대다수 인민에게 이미 폐지된 겁니다.

암브로조 : 성적인 관계와 관련해서는요? 당신은 자유연애를 원하나요?

조르조 : 이봐요! 노예들의 연애가 정말 가능하리라고 봐요? 꾸며낸 연애, 강요된 연애가 있듯이 강요된 동거도 이해관계나 사회적인 편리함 때문에 생깁니다. 아마도 종교나 도덕의 신념 때문에 결혼이라는 굴레를 존중하려는 남성, 여성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면 참된 사랑이 존재할 수 없고 말로 설명될 수도 없어요.

암브로조 : 그건 사실이지만 사랑의 신이 고무시킨 환상을 모든 사람이 좇는다면 더 이상 도덕은 존재하지 못하고 세계도 매춘굴로 변할 겁니다.

조르조 : 도덕에 관해서라면 당신은 제도의 결과들을 자랑할 수 있겠죠! 간통, 온갖 종류의 거짓말, 오랫동안 간직한 증오심, 아내를 죽인 남편, 남편에게 독을 먹인 아내, 유아 살해, 스캔들과 가족의 말다툼 속에서 자란 아이 등등. 자유로운 연애가 위협한다며 두려워하는 것은 이런 도덕인가요? 오늘날의 세계는 매춘굴입니다. 왜냐하면 종종 여성은 굶주림 때문에 자신의 몸을 팔도록 강요당하니까요. 종종 이해관계만을 계산해서 맺어진 결혼은 평생 사랑이 끼어들 자리가 전혀 없거나 액세서리처럼 끼어드는 관계입니다. 정당하고 독립적으로 살 방법을 모든 이가 가지고, 여성이 자기 몸과 관련한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편견과 종교, 노예제에서 파생된 남성과 여성을 얽어매는 관습 그리고 그것을 영원히 지속시키려는 것들을 없애야 해요. 그러면 성관계도 사랑으로 채워지고 개인과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올 겁니다.

암브로조 : 간단히 말해 당신은 영원하거나 일시적인 성관계를 좋아하는군요? 이혼이나 각양각색의 성관계, 난잡한 성관계도 원하나요?

조르조 : 우리는 자유를 원하지요. 지금까지의 성관계는 잔혹한 폭력, 경제적인 필요, 종교적인 편견 그리고 법적인 규제 때문에 심한 고통을 받았어요. 그것이 개인과 인류의 육체적이고 도덕적인 행복과 가장 잘 어울리는 성관계 형태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걸 불가능하게 했죠. 분명히 오늘날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작위적이고 억압적으로 만드는 조건들을 제거하면 곧바로 즐겁게 성을 즐기는 방법과 성적인 도덕이 확립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법이 아니라 경험에 바탕을 둔 신념 때문에 존중될 것이고 우리와 인류의 행복을 보장할 겁니다. 이것은 자유의 영향으로서만 실현될 수 있어요.

암브로조 : 아이들은요?

조르조 : 일단 우리가 재산을 공유하고 견고한 도덕적, 물질적 기초에 따라 사회적 연대의 원리를 확립하면, 아이들의 양육은 공동체의 책임이 되고 아이들의 교육은 모든 이의 관심과 책임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만 해요. 아마도 모든 남성과 여성은 모든 아이를 사랑할 겁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자기 자식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쏟는 부모라도, 자기 자식들이 사회 전체의 도움으로 성장하고 교육받으며 걱정 없이 미래를 살아간다는 점을 알고 기뻐할 겁니다.

암브로조 : 그렇지만 적어도 자식들에 대한 부모의 권리는 존중되어야 하는 것 아니오?

조르조 : 자식들에 대한 권리는 의무라고 봐야겠지요. 부모는 자식들에 대한 많은 권리들, 예를 들어 아이들을 지도하고 돌보고 사랑하고 걱정할 많은 권리들을 갖지요. 보통 부모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식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필요를 충족시키는 건 보통 그들의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이걸 누가 침해할 것이라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주 소수의 특이한 부모들만이 자기 아이들에 대한 사랑에 인색하고 돌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육아에서 해방시킨다는 점에 만족할 겁니다.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권리라는 말이 아이들을 학대하고 더럽히고 착취할 권리를 의미한다면 나는 그 권리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사회라는 이름값을 하려면 어떤 사회도 그러한 것들을 인정하고 참아내서는 안 됩니다.

암브로조 : 그러나 양육을 공동체의 책임으로 넘기면 인구 증가를 유발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이 살아가기에 충분하지 않게 될 테죠. 물론 당신은 맬서스의 인구증가론에 관해 듣기를 원치 않고 그것이 부당하다고 하겠지만요.

조르조 : 현재의 빈곤이 인구과잉 때문이라고 주장하거나 맬서스의 산아제한 방법에 따라 해결책을 제안하려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은 다음번에 설명하지요. 하지만 인구문제의 심각성은 기꺼이 인정하겠어요. 그리고 미래에 새로이 태어날 모든 아이가 원조를 받을 경우 실질적인 인구과잉 때문에 빈곤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하지요. 해방되고 교육을 받은 사람은 지나치게 빠른 인구 증가를 조절할 것이고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들이 진지하게 생각할 거라는 점도 덧붙이고 싶어요. 단, 가진 자들의 탐욕이 낳은 생산품의 매점과 특권과 빈곤의 모든 사회적인 원인들이 사라지는 때에만 말이죠. 그럴 때만이 모든 사람은 살아있는 생명과 생산 능력, 쓸모 있는 공간 사이의 균형을 잡을 필요성을 단순하고 분명하게 알게 될 겁니다.

암브로조 : 만약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요?

조르조 : 그건 그들에게 최악의 선택이겠죠! 당신은 궁금하지 않은 거군요. 인류의 행복을 돌보는 건 신성하거나 자연적인 섭리가 아닙니다. 대중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용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하면서 자기 자신의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당신은 항상 말하지요. “그들이 원치 않는다면 어쩌죠?”, 이렇게요. 그럴 경우 그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고 자신들을 둘러싼 냉혹한 폭력에 항상 노출될 겁니다. 그래요, 그게 현실이죠. 대중은 자유로워지기 위해 무얼 하면 되는지 모르거나, 설령 알더라도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하기를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노예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빨리 대중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라 믿지요. 그러면 대중은 자유로워질 겁니다.

11장

암브로조 : 요전에 당신은 모든 것이 의지에 달려 있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만약 대중이 자유로워지길 원한다면, 평등한 사회에 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말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대중은 아주 불행해진다고 말이죠. 만약 그들 모두가 똑같은 것을 원한다면 이 말이 옳겠지요. 하지만 어떤 사람은 아나키 속에 살고 싶고 다른 사람은 정부의 보호를 받고 싶다면, 어떤 사람은 공동체의 필요를 고려할 준비가 되어 있고 다른 사람은 사회적 삶의 이득만을 누리고 이에 따른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미칠 피해는 생각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만 하려고 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하물며 사회적인 의무를 결정하고 강요할 정부도 없다면요?

조르조 : 만일 정부가 있다면 지배자나 그들의 정당의 의지, 그들과 유착된 이해관계가 승리를 거두겠지요. 모든 사람의 뜻을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들겠지요. 힘을 가진 파벌은 다른 사람의 의지를 무시하거나 파괴하기 위해 자신의 자원을 사용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기 위해 사회 전체의 힘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어요. 노동계급이 정부의 병사가 되고 자본가들의 노예노동자인 오늘날의 현실이지요. 이미 나는 당신에게 말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살 수단을 가진 사회를 원합니다. 그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위해 일하라고 강요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지를 따르라고 다른 사람을 강요할 수도 없지요. 모든 사람을 위한 자유와 모든 사람을 위한 생산수단이라는 두 개의 원리가 실현되는 순간, 그 밖의 모든 건 상황의 힘에 따라 자연적으로 진행될 겁니다. 새로운 사회는 모든 사람의 이해관계와 가장 일치하는 방향으로 조직될 겁니다.

암브로조 : 누군가 노골적인 폭력을 사용하려 든다면요?

조르조 : 그런 사람들은 정부나 정부의 하수인일 것이고, 우리는 힘으로 그들과 맞설 겁니다. 만일 오늘날 우리가 정부에 맞서 혁명을 일으키길 원한다면 그것은 무기력하게 새로운 억압자들에게 복종하지 않겠다는 것임을 알았으면 해요. 만약 억압자들이 이긴다면 혁명은 실패할 것이고, 다시 시작되어야 합니다.

암브로조 : 그런데 당신도 인간의 의지나 능력보다 우월한 원리들,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는 몇 가지 윤리적인 원리들을 분명히 인정하는 것 아닌가요? 어떤 도덕 같은 것들을?

조르조 : 인간의 의지보다 우월한 그 도덕이란 것이 뭘까요? 누가 그것을 정하나요? 어디서 그 도덕이 내려오나요? 도덕은 시간과 지역, 계급, 환경에 따라 변합니다. 도덕은 주어진 순간, 주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최선의 행동이라고 여기는 것을 나타냅니다. 간단히 말해서 각자에게 좋은 도덕은 물질적이거나 정서적인 면에서 그들이 좋아하거나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과 일치합니다. 당신의 도덕은 준법, 즉 당신 계급이 누리는 특권에 따르라고 명령하는 것이고, 우리의 도덕은 억압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고 모든 이의 행복을 찾으라고 요구하지요. 우리에게 모든 도덕적인 규범들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암브로조 : 범죄자들도요? 당신은 범죄자들의 자유도 존중할 건가요?

조르조 : 우리는 범죄 행위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믿어요. 많은 범죄자가 강력해져서 오늘날 가진 자들과 지배자들이 그러하듯 안정된 기반 위에 자신들의 지배를 조직하는 때에는,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려는 혁명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범죄 행위가 적절하지 않은 행동이나 병과 같은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라면, 우리는 그 원인을 찾고 적절한 처방전을 제공할 겁니다.

암브로조 : 그러는 사이에는요? 당신에게도 경찰력과 치안판사, 법전, 감옥 등이 필요할 겁니다.

조르조 : 그러니까 당신은 정부를 재구성하자고, 오늘날 우리가 사는 억압적인 상태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거군요. 사실 범죄에 따른 중요한 손해는 몇몇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회적이고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에요. 그보다는 권위를 구성할 기회를 제공하고, 그런 구실을 만들 기회로 활용되는 겁니다. 사회를 보호한다는 표면적인 구실로 억누르고 억압하는 거죠. 이미 우리는 경찰과 치안판사의 목적을 알고 있고, 그들이 수많은 범죄의 대책이라기보다는 원인이 되어온 과정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원인을 제거해서 범죄를 없애려 할 겁니다. 범죄자의 흔적이 남아있을 때 직접적으로 연관된 집단은 범죄자를 학대하는 특별한 기능을 누군가에게 위임하지 않으면서 범죄자들이 해를 입힐 수 없는 곳에 그들을 가둘 생각을 해야 합니다. 당신도 인간에게 보호를 요청했던 말馬의 이야기를 알고 있겠죠. 그 말의 등에 다시 사람을 앉힐 건가요?

암브로조 : 좋소. 지금은 정보를 얻고 싶을 뿐 토론하고 싶진 않아요. 다른 이야기를 해보죠. 당신의 사회에서 모든 이가 사회적으로 평등하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모든 이는 똑같이 교육을 받을 권리와 똑같이 발전할 권리를 가지고 있겠지요. 모든 이는 자기 삶을 선택할 완전한 자유를 누리겠죠. 그렇다면 필요한 일들을 어떻게 제공할 생각이죠? 그곳에도 즐거운 일자리와 고된 일자리, 건강한 일자리와 유해한 일자리가 있을 겁니다. 자연히 사람들은 더 나은 일자리를 선택할 겁니다. 가끔씩 가장 절실히 필요한 일들은 누가 할까요? 그리고 가장 크게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구분될 테죠. 모든 사람은 의사나 지식인, 시인이 되고 싶어 하지 농사를 짓고 신발을 만들고 싶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조르조 : 당신은 오늘날의 도덕과 물질적인 조건들이 계속 유지될 거라 가정하면서 미래사회를, 평등과 자유,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대와 자유로운 협약이 이루어지는 사회로 예견하려 하네요. 그러니 당연히 일을 그르치지요. 모든 사람이 적절한 수단을 가지면 모든 사람은 자신의 타고난 능력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의 물질적이고 지적인 발전에 도달할 겁니다. 그들은 지적인 즐거움과 생산적인 노동에 기꺼이 나설 겁니다. 육체와 두뇌는 조화롭게 발전될 것이고, 능력과 성향에 따라 각기 다른 차원에서 모든 사람은 과학자가 되거나 문학을 쓰는 지식인이 되거나 노동자가 될 겁니다. 그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수천 명의 의사와 기술자, 지식인, 예술가들이 넓고 비옥한 섬으로 이주해서 작업 도구를 제공받은 뒤 남겨질 경우를 상상해 보세요. 그들이 자기 손으로 일하지 않고 굶어 죽을 거라 생각하나요? 협약을 만들고 자신들의 성향과 능력에 따라 일을 나누는 것보다 서로를 죽일 거라 생각하나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이 있다면 모두가 차례차례 돌아가며 할 겁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유해하고 즐겁지 않은 일자리를 안전하고 즐거운 것으로 만들 방법을 찾을 겁니다.

암브로조 : 됐어요, 됐어.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엄청나게 많지만 당신은 완전한 유토피아를 방황하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이상적인 방법을 찾을 것 같군요. 당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제안할 방법과 수단에 관해 말해주면 더 좋겠어요.

조르조 : 기꺼이 그러지요. 궁극적인 목적을 가리키는 방법으로서 이상理想이 유용하고 필연적이더라도 가장 시급한 문제는 오늘과 가까운 미래에 해야만 하는 일이겠죠. 다음번엔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죠.

12장

암브로조 : 오늘 밤엔 당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아나키즘을 실현하기 위해 생각해둔 방법들을 이야기해주시오. 상상할 수는 있어요. 폭탄, 학살, 즉결 처형, 약탈과 방화, 비슷한 행동들요.

조르조 : 판사 나리, 번지수를 잘못 짚었어요. 정부 관료나 아프리카나 아시아, 국내의 다른 지역을 개화시키라고 유럽 군대에게 명령하는 사람과 그동안 대화해 온 거에요? 그건 내 방식이 아니에요. 나를 믿어요.

체사레 : 친애하는 판사님, 결국 우리 아나키스트 친구는 자신이 많은 꿈을 꾸지만 합리적인 청년임을 증명하네요. 이 친구는 사회가 자연스레 발전하고 교육이 확산되고 과학과 생산이 발전하면서 이상이 실현될 때까지 기다릴 만큼 합리적이라는군요. 결국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아나키즘이 실현되고 있고 실현될 거라면, 그 필연적인 도래를 피하기 위해 골머리 썩을 필요는 없어요. 아, 너무 멀리 나갔군요! 평화롭게 살자고요.

조르조 : 하지만 자아도취에 빠지는 건 좋지 않아요. 체사레 선생, 나는 과학에 관해서든 다른 것에 관해서든 진화를 믿지 않아요.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고요! 더 나쁜 건 헛된 기다림일지 모른다고요! 인간의 진화는 인류의 의지에 따라 진행되고, 진화가 내가 말했던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두 개의 계급으로 영원히 나누어진 사회로 향하기보다 반드시 해방을 향할 수밖에 없다고 보장할 자연법은 없어요.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의식적이고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지배자에게 저항하지 않는 한, 어떤 사회 상태든 충분한 근거들을 가지기 때문에 영원히 지속될 수 있어요.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사회의 힘을 배치하고 관리하는 사람의 기술은 모든 정권에서 나타났던 분열과 자동적인 붕괴의 요소들을 언제나 조절할 수 있거든요. 그런 위기의 순간에도 해독제 기능을 할 재건과 지속력이라는 반대되는 요소들이 있거든요. 나는 선생에게 증명할 수 있어요. 시간이 좀 주어진다면 부르주아지가 이런 자연적인 경향과 자신들의 죽음을 기대하는 사화주의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말이죠. 과학은 선과 악 모두에게 이용될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에요. 그리고 현재의 불평등한 조건 아래에서는 억압당하는 사람들보다 특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접근이 쉽고 더 유용하죠. 적어도 피상적인 지식을 넘어서는 교육은 권리를 박탈당한 대중에게 거의 쓸모없거나 접근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들에게 교육은 교육자들이나 교육자들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들이 택한 방식으로만 실시될 수 있습니다.

암브로조 : 그러면 남는 건 결국 폭력이군!

조르조 : 다시 말하면 혁명이지요.

암브로조 : 폭력 혁명? 무장봉기?

조르조 : 바로 그렇지요.

암브로조 : 그러니까 폭탄들을….

조르조 : 암브로조 선생, 명심하세요. 당신은 치안판사이지만 이곳이 법정이 아니라는 점을 되풀이해서 말하고 싶지는 않군요. 적어도 지금 당장은 내가 피고인이 아니란 말이오. 당신은 내 입에서 경솔한 주장을 끌어내고 싶겠지만. 혁명은 당신과 같은 지배계급이 폭력을 고집하고 평화롭게 항복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폭력적이게 될 겁니다. 그래서 총성이 들리고 폭탄이 터지고, 멀리 당신 군대의 폭탄과 탄약을 저장한 곳이 폭발할 겁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겠죠. 당신이 좋다면, 기술적인 질문들은 기술자들에게 맡기고 싶군요. 당신에게 보장할 수 있는 건 폭력의 사용이 우리에게 달려있는 한, 당신네들이 우리에게 강요해온 폭력은 투쟁의 필요에 따라 제한된 형태를 넘어서지 않을 거라는 점이요. 즉, 무엇보다도 폭력은 당신이 저항하는 정도에 따라 결정될 겁니다. 최악의 경우가 발생한다면 그건 당신이 사람들에게 제공해온 유혈이 낭자한 교육과 당신의 완강함 탓일 겁니다.

체사레 : 그렇지만 당신의 무리가 정말 소수라면 어떻게 혁명을 일으킬 거죠?

조르조 : 아주 소수의 사람으로도 가능하지요. 정말 그러길 바라는 것 같은데, 당신에게서 달콤한 환상을 빼앗고 싶진 않네요. 그건 우리의 수를 계속 두 배씩 늘려가야 한다는 점을 뜻합니다. 무언가를 더할 기회가 없을 때에도 우리의 분명한 숙제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알고 그 일을 하면서 개입하는, 의식화된 소수의 개인들을 모으기 위해 선전을 활용하는 겁니다. 우리의 과업은 사건이 터졌을 때 대중이, 가능한 대다수 대중이 올바른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준비시키는 겁니다. 우리가 말하는 올바른 방향이란 현재 사회의 부를 쥐고 있는 자들의 부를 몰수하고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특권과 새로운 정부의 구성을 가로막으며 노동자의 활동으로 직접 생산과 분배를, 사회적 삶 전체를 다시 조직하는 겁니다.

체사레 : 만약 사건이 터지지 않는다면요?

조르조 : 글쎄, 우리는 일이 터지도록 만들 방법을 찾겠지요.

프로스페로 : 친구, 정말 대단한 몽상가군! 우리가 아직도 석기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나 보구먼. 현대식 무기와 전술은 네가 나서기도 전에 너희들을 박살 낼 거라고.

조르조 : 반드시 그렇지는 않아. 새로운 무기와 전술이 적절한 대응을 방해할 수는 있겠지. 다시 말하건대 이런 무기는 실제로 대중의 아들들 손에 있고 징병제를 강요하는 당신은 모든 이에게 무기를 다루는 법을 가르치고 있소. 반란자들이 충분히 모이는 날이 온다면 당신이 정말 얼마나 무기력할지 상상해 보시길! 전기공이자 가스배관공이고, 기관차를 몰고 폭탄을 만들고 지뢰를 만드는 건 우리 노동계급, 억압당하는 계급이야. 자동차와 비행기를 몰고 군인이 되는 것도 우리들이고. 불행하게도 우리 자신들로부터 당신네들을 보호하는 것도 우리지. 당신은 당신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동의로만 살아남는다고. 그들의 의식이 깨어나는 걸 조심하라고. 그리고 당신도 알다시피 아나키스트들 모두가 자기 자신의 활동을 통제하고, 경찰은 진짜 위험이 존재하는 곳을 제외한 곳만 감시하고는 한다고. 하지만 반란의 기술에 대해 어떤 방침을 제공할 의도는 없다고. 그건 당신과 관계없는 사안이겠지. 좋은 밤 되라고.

13장

빈첸초 : 가 대화에 좀 끼어들어도 될까요?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제 의견도 좀 이야기하고 싶군요. 조르조 동지는 아나키즘에 관해 말하면서 아나키즘은 강제 없이 대중의 의지에 따라 자유로이 도래해야만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동지는 대중의 의지에 자유로운 배출구를 마련하기 위해 오늘날 대중의 의지를 억누르고 배신하는 군주정이나 군사정권에 맞서 봉기를 일으키고 그것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이것은 공화주의자들이, 적어도 혁명적 공화주의자들이, 말하자면 진정한 공화주의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이기도 해요. 그렇다면 왜 당신은 자신을 공화주의자라고 선언하지 않나요? 공화국에서는 대중이 주권자이니,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아는 대중이라면 아나키즘을 택하고 아나키즘을 실현할 겁니다.

조르조 : 사실 나는 항상 대중의 의지가 아니라 인류애의 의지에 관해 말해왔어요. 내가 대중의 의지라고 말했다면 그건 하나의 어법이고 언어를 정확하지 않게 사용한 겁니다. 이 대화에서 모두 바로잡아야겠네요.

빈첸초 : 언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게 무슨 말이죠? 공화국은 인류애로 구성되는 것 아닌가요?

조르조 : 이건 단지 단어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건 내용의 문제이지요. 대중의 정부를 뜻하는 민주주의와 정부가 아니라 각자와 모두를 위한 자유를 뜻하는 아나키즘에는 차이가 있어요. 대중은 분명 인간애로 구성되고 각각의 대중이 선택하는 독립적이고 의식적인 하나의 결합체이지만 각자는 상황에 따라 서로의 힘을 강화하거나 무효화하는, 차례로 서로를 강화하거나 중화시키는 각자만의 감성과 이해관계, 열망, 특수의지를 갖잖아요! 한 개인이나 집단이나 계급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잘 무장된 의지는 자신의 의지를 전체의 의지인 것처럼 지배하고 강요하고 관철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어요. 사실 인민의 의지 자체라고 불리는 것은 지배하는 자의 의지이거나, 또는 어느 누군가의 의지에 정확하게 일치하지도 않고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산술적인 계산들의 기묘한 결과물입니다. 그 자신의 주장에서도 민주주의자들, 즉 공화주의자들(이들이야말로 참된 민주주의자이기 때문에)은 소위 대중의 정부가 대표들을 통해 의지를 드러내고 집행하는 다수의 정부일 뿐이라고 이미 인정했어요. 따라서 소수의 ‘주권’은 실행에 옮길 수 없는 단지 명목적인 권리입니다. 종종 국민 중 가장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사람들이자 ‘소수’인 이들은 이해관계나 이념의 공동체로 단합될 경우 산술적인 다수가 될 수도 있고 한 명의 지도자에게 복종하면서 많은 파벌과 대립하기도 합니다. 이런데도 그 후보들을 당선시켜서 다수의 이름으로 지배하는 정당은 실제로 다수의 의지를 표현하는 정부일까요? (작고 고립된 독립 코뮌이 아닌 모든 공화국에서 요청되는) 의회 체제의 운영에서 각각의 대표들은 지역구를 대변하는 유일한 사람이자 다수의 유일한 사람,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백 명, 수천 명을 대변하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결국 이들은 유권자 대다수의 의지를 대변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제 공화주의 체제가 모든 사람의 의지를 실행할 수 있는지 아닌지의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적어도 당신이 원하는 바를 내게 말하면 좋겠어요. 당신은 이 공화국이 무엇을 하기를 바라는 겁니까? 공화국은 어떤 사회제도들을 실현하나요?

빈첸초 : 음, 그건 분명하죠. 제가 원하는 건, 그리고 모든 참된 공화주의자들이 원하는 건 사회정의, 노동자들의 해방, 평등, 자유, 박애죠.

손님 : 그건 프랑스나 스위스, 미국에 이미 있는 것들이네요.

빈첸초 : 그 나라들은 참된 공화국이 아니에요. 당신은 우리가 추구하는 참된 공화국이 아니라 수많은 정부, 부르주아 정부, 공화국의 이름을 내건 전 세계의 군사정부, 종교정부에 냉소를 보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에 반대할 때 나는 무언가 완전히 다른 소위 아나키스트들을 인용할 거에요.

조르조 : 잘 말했어요. 하지만 왜 지금 존재하는 공화국들이 참된 공화국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보죠? 사실 당신의 이상이자 우리의 이상인 평등과 자유, 박애로 시작된 거의 모든 일들이 기득권 체계로 귀결되죠. 그 체계 안에서 노동자들은 극단적으로 착취당하고, 자본가들은 매우 강력한 힘을 갖습니다. 엄청나게 억압받는 대중과 군주정처럼 완전히 불신받는 정부가 단단하게 자리를 잡아가죠. 정치제도들, 사회의 통제기관들, 헌법의 승인을 받은 개인권과 집단의 권리들은 당신의 공화국에서도 똑같이 존재할 겁니다. 결과들이 나쁘거나 주로 매우 부정적으로 변하는 이유는 뭘까요? 당신네 공화국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빈첸초 : 왜냐면… 음….

조르조 : 내가 이유를 말해줄까요? 그 공화국에서도 대중의 경제적인 조건은 실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에요. 기득권층과 노동계급으로 분열된 사회가 그대로 남아있으면 실질적인 지배권은,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권리를 가지지 못한 대다수 대중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들 손에 있는 거죠. 자연히 기득권층은 공화국을 탄생시킨 혁명의 열정에 흔들려왔어도 최대한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려 하지요. 그래서 모든 것은 이전에 존재하던 상태로 돌아갑니다. 단, 그 차이를 만드는 발전과정은 정부의 형태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 의식의 성장에, 노동자 자신의 힘에 대한 자신감의 성장에 달려 있을 겁니다. 그 힘으로 대중은 매번 정부를 붕괴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빈첸초 : 우리도 경제적인 문제의 중요성을 절대적으로 인정합니다. 우리는 부자의 어깨에 공공지출의 부담을 더 지우는 누진세를 만들고 보호관세를 폐지하고 경작하지 않는 땅에 세금을 부과할 겁니다. 최저임금제도와 최고한도 가격을 확립하고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법을 제정할 겁니다.

조르조 : 당신이 그 모든 일을 실시하더라도 자본가들은 또다시 그 조치들을 무력화시키거나 그것을 자신들의 이득으로 만들 방법을 찾을 겁니다.

빈첸초 : 그럴 경우 당연히 우리는 보상 없이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코뮌주의를 세울 겁니다. 그럼 만족하시나요?

조르조 : 아니, 노동자들의 직접적이고 자발적인 협력이 아니라 정부의 의지로 만들어진 코뮌주의는 내게 아무런 끌림이 없어요.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그건 인간 사회가 복종해온 가장 숨 막히는 전제정치가 될 수 있어요. 그러나 당신은 이렇게 말하겠죠. 우리가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라고 말이죠. 마치 공화국이 선포될 때 당신이 공화주의자라는 사실 때문에 정부의 일원이 될 것처럼요. 공화국은 당신이 인민주권이라 부른 체계이고 이 주권은 보통선거를 통해서만 표현되고 공화주의 정부는 국민투표로 지명된 사람들로 구성될 겁니다. 그리고 혁명적인 방식으로 자본가들의 재산을 몰수해서 그들의 힘을 파괴하는 공화주의 혁명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처음 만들어진 공화주의 (제헌)의회는 자본가들과 어울릴 겁니다. 제헌의회는 혁명의 폭풍의 영향을 체감할 수 있을 만큼 가깝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 수 있지만, 분명히 그다음 의회는 자본가들이 바라는 대로 움직일 겁니다. 그리고 혁명이 우연히라도 만들 수 있었던 어떤 좋은 것이든 파괴당할 겁니다.

빈첸초 : 설령 그렇더라도 아나키즘은 오늘날 가능하지 않으니, 언제까지 갈지 모를 군주정을 묵묵히 지지해야만 하나요?

조르조 :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저항운동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든다는 조건으로 우리가 당신네들에 요청하는 협력을 고려할 수 있지요. 자연히 우리가 저항운동에 제공하려고 할 노력의 범위는 당신들보다 훨씬 넓어질 겁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 우리 모두를 억누르는 지배의 굴레를 벗어던진다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없애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우리는 알게 될 겁니다. 그동안 우리는 함께 널리 선전하고 다음의 혁명운동이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훈련을 시작하도록 대중을 준비시키는 데 노력합시다. 더 나은 진전을 향한 길을 분명하고 단순하게 만듭시다.

14장

체사레 : 다시 평소대로 대화를 해볼까요. 분명히 지금 당장 당신의 흥미를 가장 끄는 부분은 봉기겠죠. 그 점은 나도 인정해요. 아무리 어렵게 보여도 조만간 봉기는 계획되고 승리할 겁니다. 본질적으로 정부는 군대에 의존합니다. 어쩔 수 없이 막사에 들어간 징집된 병사는 영 믿을 수 없는 병력입니다. 대중의 광범위한 봉기에 직면하면 대중의 편인 병사들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규율의 매력과 두려움이 무너지자마자 병사들은 해산하거나 대중에게 결합할 겁니다. 따라서 나는 노동자와 병사들, 내일 병사가 될 청년들에게 끊임없이 선전해서 경제위기나 패전, 총파업, 기근 등 정부를 무너뜨리기에 좋은 상황에서 이득을 누릴 위치를 점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해요. 그렇지만 그다음은요? 당신은 말하죠. 대중 스스로 결정하고 조직할 거라고. 하지만 그건 말일 뿐이에요. 아마도 벌어질 일은 어쩌면 무질서나 대학살과 같은 짧거나 긴 혼란일 테고, 그 뒤에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겁니다. 정부가 새로운 질서를 다시 만들 겁니다. 모든 건 예전으로 돌아갈 겁니다. 이런 에너지 낭비가 무슨 소용인가요?

조르조 : 당신이 언급한 대로 일이 진행되더라도 봉기는 결코 쓸모 없지 않아요. 혁명 이후에는 상황이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해요. 왜냐하면 대중이 자유의 시간을 경험했고 자신들의 힘을 판단했으니까요. 그래서 또다시 예전의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설령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다고 한들, 어떠한 만족감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안전하게 권력을 쥘 수 없다고 느낄 것이고, 보통 혁명의 해석자나 계승자라는 이름을 빌려 집권을 정당화하려 할 겁니다. 물론 정부가 정한 실질적인 과제는 혁명이 더 진행되는 것을 막고 지배의 목적을 위해 혁명의 성과를 제한하고 대체할 겁니다. 이것이 지난 모든 혁명에서 나타났던 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 혁명에서 한결 더 나아지리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체사레 : 어째서요?

조르조 : 과거의 혁명들에서 모든 혁명가들, 모든 혁명의 선구자들과 주역들은 법으로 사회를 바꾸기를 원했고 이런 법률을 만들고 강제할 수 있는 정부를 원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정부를 만드는 것이 불가피했죠. 즉, 새로운 정부는 다른 무엇보다도 통치governing, 즉 권력의 집중을 가장 먼저 생각했고, 이를 위해 영원히 권력을 쥐겠다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진 하나의 정당과 하나의 특권계급을 구성하는 것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역사에 새로운 요인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아나키스트들이 대변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주 분명하게 정부를 반대하는 목적을 가진 혁명가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정부의 설립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반대에 직면할 겁니다. 더구나 과거의 혁명가들은 법을 수단으로 삼아 자신들이 바라던 사회변화를 이루기를 원했습니다. 과거의 혁명가들은 자신이 제안할 수 있는 기본적인 협력을 위해서만 대중을 호출했고, 대중이 더 희망할 수 있는 바와 자신들의 열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자연히 대중은 스스로를 파괴하기 쉬웠고 매일의 사회적 삶을 재조직할 필요가 생기자 스스로 정부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선전과 노동자 조직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를 알고 대중과 뒤섞여서 당장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고 솔선수범할 수 있는 자기의식적인 소수를 구성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요. 정부와는 거리를 둘 겁니다.

체사레 : 잘 알겠어요. 그러나 당신들은 소수파로만 남을 것이기에 아마도 대다수 지역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고, 정부가 예전처럼 세워질 것이니 당신은 그걸 견뎌야 할 겁니다.

조르조 : 정부가 다시 성공적으로 세워졌다면 그럴 법도 하지요. 우리가 정부를 견뎌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알고 있어요. 이 점을 잘 생각하세요. 과거의 혁명들은 새로운 정부를 세우는 것을 최우선의 관심사로 두었고 질서는 이 정부가 수립된 뒤로 미뤄졌습니다. 그러는 동안 상황은 사실상 똑같아졌고, 산업과 상업에의 간섭으로 대중의 경제적인 조건은 더 나빠졌습니다. 따라서 대중은 순식간에 이 모든 것에 싫증을 내게 됩니다. 하루빨리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를 원하고, 대중의 봉기를 더 오래 지속시키길 원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끊고, 그들에게 적개심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부자의 사병이든 약삭빠르고 대담한 정치인이든 이미 버려졌던 주권자이든, 질서를 회복할 능력을 증명한 사람은 그 누구든 대중으로부터 평화 유지자이자 해방자로 찬사를 받을 겁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혁명을 이해하고자 해요. 우리는 혁명이 목표로 삼는 사회변화가 처음 봉기했을 때부터 실현되길 원합니다. 우리는 대중이 지금 존재하는 부를 당장 점유하길 원합니다. 신사들의 대저택을 공공의 소유로 선언하고,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조치로 모든 주민에게 최소한의 주거를 보장하는 동시에 필요한 많은 새로운 집들을 짓도록 건축가 조합의 활동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모든 가용한 식재료를 공동체의 소유로 만들고 언제나 자발적인 활동과 공공의 참된 통제를 통해 모두를 위한 평등한 분배를 조직합니다. 우리는 농업 노동자들이 경작되지 않는 땅과 지주의 땅을 점유하기를 원하고 그렇게 하여 지주들의 땅이 이제 노동자들에게 속함을 보장합니다. 우리는 노동자들이 공장주의 명령을 스스로 거부하고 자기 자신과 공공公共을 위해 계속 생산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그 즉시 다양한 생산조합과 각기 다른 코뮌들 사이에 교환관계를 만들길 원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사적 소유나 국가지배와 관련된 모든 권리와 흔적을 태우고 파괴하길 원합니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첫 순간부터 대중이 혁명의 이로움을 느끼도록 만들고 싶고 그렇게 함으로 과거의 질서가 다시 세워질 수 없도록 상황을 막을 겁니다.

체사레 : 그 모든 게 쉽게 되리라 생각하세요?

조르조 : 아니오. 나는 직면할 그 모든 어려움을 잘 알고 있어요. 우리의 계획이 동시에 모든 곳에 적용될 수 없다는 점도 잘 알고, 그 계획을 적용한 곳에서 수많은 논쟁과 실수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계획을 적용하려는 사람들이, 가능해 보이는 어느 곳에서든지 계획을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단 한 가지 사실은, 이 시점에서 혁명이 더 이상 단순한 정치적인 변화일 수 없음을, 사회적 삶 전반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이룰 준비가 되고 있음을 이미 증명하고 있어요. 더구나 부르주아지는 18세기 말 위대한 프랑스 혁명에서 아주 미세한 정도이지만 그와 비슷한 역할을 했고 구체제는 제국과 왕정복고의 시도에도 다시 수립될 수 없었습니다.

체사레 : 당신의 의도가 선하든 악하든 간에 정부가 세워진다면 당신의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고 당신도 다른 모든 사람처럼 법에 복종해야 할 겁니다.

조르조 : 왜 그렇다고 보죠? 하나 혹은 여러 정부가 세워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 가능성이 높습니다. 명령을 내리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복종하고 싶어 하니까요! 하지만 이 정부가 자기 존재를 내세우고 자신을 받아들이게 만들고 정식 정부가 될 방법을 찾는 것은 무척 어려울 겁니다. 만약 지금 세기에 충분한 수의 혁명가들이 있다면, 그들은 강하고 안정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방법을 찾는 새로운 정부를 막는 일에 대중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점을 충분히 깨닫고 있습니다. 정부는 군인을 필요로 하는데, 우리는 가능한 대중이 군대를 거부하도록 모든 일을 할 겁니다. 정부는 돈을 필요로 하는데, 우리는 누구도 세금을 내지 않고 그 신용을 인정하지 않도록 설득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할 겁니다. 이탈리아에는 혁명가들이 제법 많은 지역과 지방자치단체가 있습니다. 그곳의 노동자들은 정부를 거부하고 정부의 대리인이나 대표자를 보내는 것 역시 거부하면서, 자신의 자율성을 선언하고 자기 삶을 직접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지역과 지방자치단체들은 혁명적인 영향력의 중심이 될 겁니다. 우리가 재빠르게 행동하면서 정부가 무장하고 자신을 강화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면 어떤 정부도 무기력해질 겁니다.

체사레 : 그건 내전이군요!

조르조 : 물론이죠. 우리도 평화를 원하고 평화를 갈망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평화에 대한 열망을 위해 혁명을 희생시키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는 이 길을 통해서만 참되고 영원한 평화에 이를 수 있기에 혁명을 희생시키지 않을 겁니다.

15장

지노 : 저녁마다 사회문제를 토론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여기 신사분들의 허락을 받아 우리 친구 조르조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군. 너희 아나키스트들이 경찰을 없애고 싶어 한다는 게 사실이야?

조르조 : 물론이지! 너는 동의하지 않아? 네가 경찰들의 친구였던 적도 있나?

지노 : 너도 알다시피 나는 그들의 친구가 아니지. 하지만 나는 살인범이나 도둑의 친구도 아니야. 나는 내 재산과 내 생명을 잘 보호받고 싶어.

조르조 : 그 보호자들로부터 너를 보호해줄 사람은 누구지? 사람들이 아무 이유 없이 도둑이나 살인자가 된다고 생각하나? 보호한다는 구실로 우리를 억압하고, 억지로 빼앗고, 모든 도둑과 살인자들보다 천 배는 더 많은 피해를 입히는 갱단에게 너의 목을 바치는 게 안전을 확보할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나? 그보다는 다른 사람의 빵을 빼앗지 않고도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방식으로 사는 것으로, 모두가 교육받고 자신을 발전시키며 시기와 증오, 복수의 사악한 열정을 마음속에서 떨쳐버릴 수 있는 방식으로 사는 것으로, 악의 원인을 더 잘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지노 : 바보 같은 소리 말라구!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악하고, 법이나 판사, 군대, 경찰이 막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로를 늑대처럼 먹어 치울 거야.

조르조 : 설령 그럴지라도 그것조차 타인에게 명령하고 타인의 자유를 다룰 권력을 누군가에게 주지 않아야 하는 좋은 이유가 될 수 있어. 모든 사람에게 맞서 싸우도록 강요당하는 개인은, 평균적인 힘을 가진 각 개인은, 투쟁에서 똑같은 위험을 겪을 것이고 승자나 패자 둘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하지만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 적어도 정글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맹수의 사나운 감정을 즐길 수도 있고. 설령 우리가 자발적으로 소수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의지를 강요할 권리와 권력을 줘야 하더라도, 인간이 서로를 잡아먹도록 되어 있다는 단순한 논리에 따르는 건 노예와 빈곤으로 이끌도록 투표하는 것과 같다고. 그리고 친구, 너는 자신을 속이고 있어. 인류는 사회 조건에 따라 선하거나 악해져. 인류에게 공통된 것은 자기보존의 본능과 행복에의 열망, 자기 자신의 힘을 완전히 발전시키려는 열망이야. 잘 살기 위해 네가 다른 사람을 가혹하게 대해야만 하는 사회라면,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유혹에 저항하는 데 꼭 필요한 힘을 가질 거야. 하지만 동료들과 함께 행복하고 발전적인 조건을 갖춘 사회에 살게 된다면 오늘날 선해지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그 사회에서는 악해지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거야.

지노 : 좋아. 그럴 듯하게 들리는군. 그러나 사회변화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경찰은 범죄를 막아야 해.

조르조 : 막는다고?

지노 : 그럼. 경찰은 수많은 범죄를 예방하고 미처 예방할 수 없었던 불법행위들의 가해자들을 재판해서 처벌하잖아.

조르조 : 말도 안 되는 소리. 경찰이 범죄의 양과 질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어. 사실 치안판사와 경찰이나 감옥이 상당 부분 개혁되고 경찰의 수가 줄거나 늘어나더라도, 대중의 경제적이고 도덕적인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 범죄는 계속될 거야. 반면에 가진 자와 노동자의 관계가 아주 조금이라도 바뀌거나, 밀이나 기타 생활필수품의 가격이 조금이라도 바뀌거나, 위기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거나, 우리의 사상이 대중에게 새로운 희망의 미소를 줄 새 지평을 열거나 하면, 그 즉시 범죄의 수가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데 미치는 효과가 증명될 거야. 경찰이 범죄자를 잡을 수 있으면 감옥에 보낸다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이것이 새로운 불법행위를 막지는 못하기 때문에 악은 계속 가중되고 인간에게 필요하지 않은 고통을 가하게 돼. 경찰이 범죄자를 성공적으로 체포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이건 경찰이 공격을 유발하고 공공을 괴롭히는 행동들과 비슷한 거야. 경찰이 행하는 기능 자체는 경찰이 공공 전체를 의심하게 만들고, 공공과 싸우도록 만드는 것이지. 이러면서 경찰은 인류를 사냥하는 자들이 되지. 이건 범죄 행위의 몇 가지 ‘중요한’ 원인들을 찾으려는 경찰의 야심을 자극하고 때때로 매우 반사회적인 본능을 실현하도록 이끄는 특수한 심성을 만들어. 범죄를 예방하거나 조사하는 경찰관리가 승진을 위해 자기 존재를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고 오히려 범죄를 유발하거나 범죄를 만드는 사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아.

지노 : 그렇지만 경찰관 자체가 범죄자와 같다니! 그런 일이 가끔 일어나지만 경찰관 모두가 항상 가장 뛰어난 사람 중에서 뽑히는 건 아니니 더더욱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보통은….

조르조 : 보통은 성장배경이 뚜렷한 영향을 미치지만 비뚤어진 직업관이 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조차 공격하게 만들지. 말해 봐. 어떤 사람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범죄자인지 천사인지에 상관없이 상급자가 지목한 누군가를 괴롭히고 체포하고 고문하는 것으로 봉급을 받는 사람들의 도덕은 어떻게 될까? 경찰의 도덕에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지노 : 음, 아마도….

조르조 : 그 질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다시 말해 경찰이 억제하거나 예방한다는 소위 불법행위들에 관해서 몇 마디 덧붙이지. 분명 법이 처벌하는 행동들 중에는 어떤 경우에도 나쁜 행동인 것도 있어. 하지만 빈곤이 대중을 야만과 절망에 빠뜨린 상태에서 생겨난 예외들도 있거든. 그렇지만 보통 처벌되는 행동들은 상위층의 특권을 공격하는 행동이나 정부의 권력 행사를 공격하는 행동들이야. 효과적이든 그렇지 않든 이런 식으로 경찰은 전체로서의 사회가 아니라 상위층을 보호하고 대중의 복종심을 유지시키는 데 기여해. 너는 도둑에 관해 말했어. 노동자의 노동의 생산물을 빼앗아 부를 얻는 가진 자들보다 더한 도둑은 누구일까? 살인자에 관해 말했지. 명령하고 일하지 않으면서 생활하는 특권을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의 학살은 말할 것도 없고 수백만 노동자의 끔찍한 궁핍과 때 이른 죽음의 원인을 제공하는 자본가보다 더한 살인자는 누구일까? 자신이 처한 끔찍한 조건들 때문에 범죄로 내몰리는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죄를 짓고 더 위험한 이런 도둑과 살인자들은 마땅히 경찰의 관심사가 되어야 하겠지.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야!

지노 : 간단히 말하자면 너는 혁명이 이루어지는 순간, 인류가 갑자기 수많은 작은 천사들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군. 모두가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며 서로 돕는 그런 천사들의 세상. 더 이상 증오나 질시도 없을 지구상의 천국. 말도 안 돼!

조르조 : 천만에. 도덕의 변화가 갑자기 이루어지리라 믿지는 않아. 물론 빵이 확보되고 자유가 달성되었다는 단순한 사실로 인해 엄청난 변화가 생기겠지. 하지만 노예 상태와 대중 간의 싸움이라는 오래된 영향이 우리 속에 뿌리내리게 만든 그 모든 나쁜 열정은 한꺼번에 사라지지는 않을 거야. 폭력으로 타인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사람들, 자기 자신을 위한 특권을 만들기에 좋은 조건을 활용하고 싶은 사람들, 오늘날 일하기를 강요당하는 노예 상태에서 생긴 일에 대한 혐오를 가진 사람들 등에게는 여전히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지노 : 혁명 이후에도 우리는 범죄자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하는 거로군?

조르조 : 아마도. 만일 굶주림으로 죽어가기보다는 저항하려는 사람을 범죄자로 간주하고 있다면, 하물며 현재의 사회 구조를 공격하며 더 나은 것으로 대체하려는 사람을 범죄자로 간주하는 거라면 더더욱 잘못된 거지. 하지만 모두에게 해를 입히려는 사람, 타인의 인격적인 고결함과 자유, 행복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은 범죄자이지.

지노 : 좋아, 그러니 너도 항상 경찰을 필요로 하겠군.

조르조 : 천만에. 게으름과 폭력을 위한 학교를 열고 살인자 집단을 만들어서 소수의 폭력적인 사람과 어리석은 자들, 타락한 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는 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야. 그들은 시민을 범죄를 저지를 만한 인물로 간주하는 데 익숙해질 거고 자기 승진과 직업을 위해 대중을 사냥할 거야.

지노 : 그럼 어쩌라고!

조르조 : 글쎄. 우리 스스로 방어해야지.

지노 :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조르조 : 나는 대중이 사회를 보호하는 특별한 기능을 누군가에게 위임하지 않고도 스스로 방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그것이 유일하게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확신해. 말해봐! 내일 경찰의 추적을 당하는 사람이 네게 온다면, 그를 고발하겠어?

지노 : 아니, 미쳤어? 그가 가장 나쁜 살인자라도 그건 아니지. 내가 경찰관인 줄 알아?

조르조 : 아! 경찰관이라는 직업은 끔찍한 것임에 틀림없지. 자존감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 일을 하는 걸 명예롭지 않게 생각할 거야. 아마 경찰관이 사회에 유용하고 필요하다고 여겨질 때조차도 그럴 거야. 이제 말해봐. 전염병에 걸린 아픈 사람이나 위험한 미친 사람을 우연히 만난다면 그들을 병원에 데려다줄 건가?

지노 : 그럼.

조르조 : 힘을 써서라도?

지노 : 물론이야. 그들을 내버려 두면 많은 사람에게 해를 입힐 수 있으니까!

조르조 : 필요하다면 힘을 써서라도 미친 사람이나 전염병에 걸린 사람을 병원으로 데려가면서도, 왜 살인자를 고발하는 데는 많은 관심을 쏟지 않나?

지노 : 음, 환자를 돌보는 건 명예롭고 인도주의적인 일로 생각하지만 살인의 경우라면 썩 내키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경찰을 찾게 되잖아….

조르조 : 경찰이 맨 처음 하는 일은 시민이 사회적인 안전으로부터 손을 떼게 만드는 것임을 이미 잘 알고 있잖아. 사실상 경찰은 시민들을 경찰이 적법하게 또는 부당하게 박해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잖아.

지노 : 어떤 사람을 병원에 데려다줄 때는 그들을 고쳐줄 의사의 손에 그 사람을 맡기는 것이지. 그래서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때는 자유롭게 되리라는 걸 잘 알아. 어떤 경우에도, 심지어 고칠 수 없는 경우라도 의사들은 고통을 덜어주려 할 거고 딱 필요한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치료로 괴롭히지는 않을 거야. 만약 의사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겠지. 왜냐하면 대중은 병원에서 치료받아야지 고문을 당하면 안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니까. 반대로 만약 누군가 경찰에게 어떤 사람을 넘겨준다면 경찰은 그들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고 기소하려는 욕심으로 수사를 해. 그래서 사랑스럽게 돌보면서 더 나은 삶을 만들기보다는 그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지. 그리고 감옥에서 경찰은 고통을 주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더 나쁘게 만들어서 감옥에 가기 전의 상태보다 사회에 더 위험한 적으로 만들어서 그들을 풀어주겠지. 그러니 급진적인 개혁을 통해서 이것을 바꿀 수 있겠지.

조르조 : 친구, 개혁을 하거나 제도를 파괴하려면 다른 무엇보다도 그것을 보존하는 데 관심을 가진 집단을 만들면 안 된다고. 대중을 감옥으로 보내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대중을 두들겨 패는 직업을 수행하는 경찰(내가 말하는 경찰에는 치안판사도 포함되는데)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공공과 반대되는 존재로 여길 거야. 그들은 사냥꾼이 사냥대회를 쫓아다닐 때와 같은 욕망으로 진짜 범죄자나 가짜 범죄자를 열정적으로 추적하지. 그러나 동시에 더 많은 범죄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경찰의 이해관계야. 왜냐하면 범죄자는 자신들의 존재 근거니까. 범죄자의 수와 위험성이 더 커질수록 경찰의 권력과 사회적인 중요성도 커지니까! 합리적으로 범죄를 다루려면, 범죄의 원인을 캐서 가능한 한 없애기 위해 모든 방법을 실제로 사용하려면, 이 과제는 범죄의 존재가 권력과 소득의 근원인 사람들이 아니라 범죄에 노출되어 있고 범죄로 고통받는 사람들, 다시 말해 공공 전체에게 맡겨져야만 한다고.

지노 : 그래, 네가 맞는 것 같아.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16장

피포 : 제 그만!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을 끊어야겠어요. 아주 다양한 의견들이 논의되고 있지만 본질적인 질문, 즉 조국에 대한 질문, 우리 이탈리아의 위대함과 영광을 지키는 문제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겠죠? 열불이 나서 내가 말해야겠군요. 조르조와 루이지(청년 사회주의자)를 제외한, 프로스페로, 체사레, 빈첸초, 그리고 이 자리의 모든 분들은 요란스럽게 이탈리아에 대한 사랑을 주장했고, 암브로조는 자기가 모든 사람의 편이라고 말했어요. 이 토론에서 우리는 엄마에 관한 이야기는 해도 이탈리아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네요. 이미 이해된 것이고 어떤 토론의 어떤 주장보다도 우월한 것이니,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 것이겠죠. 제발 제가 우리의 애국심을 의심하지 않게 해줘요. 조르조의 애국심도 말이죠.

조르조 : 아뇨, 내 애국심은 확실히 의심스러워요. 나는 애국자가 아니니까요.

피포 : 이미 눈치챘어. 당신은 이탈리아를 타도하자고 외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지. 당신의 나라를 욕보이고 패배시키고 외국의 지배하에 두고 싶어 하는 것 같더군.

조르조 : 천만에요. 그건 우리에 대한 편견을 사람들에게 심어줘서 대중을 속이려는 사람들이 주로 쓰는 비방이에요. 선한 마음 탓에 이 헛소리를 믿는 사람들까지 배제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다만 무지와 이해 부족 때문이니까요. 우리는 어떤 종류의 지배도 원하지 않아요. 따라서 이탈리아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기를 원하지 않듯이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것도 원하지 않아요. 우리는 전 세계를 모국으로 여기고 모든 인류를 형제, 자매로 생각해요. 따라서 우리가 사는 나라를 파괴하고 모욕하기를 원한다는 건 정말 헛소리에요. 이 나라에서 우리는 친구를 사귀고, 이 언어는 우리가 말하는 최선의 언어입니다. 우리는 일과 사상, 감정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나라의 것을 최대한 활용하고 우리도 나라에 최상의 것을 제공하죠.

암브로조 : 이 나라가 바로 조국인데 당신은 계속 이를 저주하고 있잖소.

조르조 : 우리는 조국이나 다른 누군가의 나라도 저주하지 않아요. 우리는 애국심에, 당신이 애국심이라 부르는 것에, 국가의 오만함에, 다른 나라에 대한 적개심을 설교하는 것에 저주를 퍼부을 뿐이죠. (애국심은) 사악한 자본가의 이익과 지배자나 시시한 정치인들의 절제되지 않는 야망을 위해 저주받은 전쟁통에 대중을 빠뜨리려는 핑계에요.

빈첸초 : 천천히, 천천히 말해줘요…. 만약 나라에 대한 사랑이 실제로는, 그걸 핑곗거리로만 삼는 수많은 자본가와 군주제주의자들의 애국주의 따위를 뜻한다면, 당신이 맞아요. 그렇다면 저도 당신처럼 나라를 위해 아무런 위험도 무릅쓰지 않으면서 조국을 내세우며 노동자와 성실한 사람들의 땀과 피로 자기 배만 불리는 사람들을 경멸하고 진저리를 낼 겁니다. 그러나 정말 애국자인 사람들, 즉 희생해온 사람들, 나라를 위해 자기 재산, 자유, 생명을 바칠 준비가 된 사람들이 있어요. 공화주의자들이 항상 최고의 애국심에 불타올랐고 언제나 충직하게 책임을 졌다는 점을 아셔야 해요.

조르조 : 이념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사람들을 항상 존경해요. 하지만 공화주의자의 이상과 확실히 모든 정파에서 발견되는 헌신적인 애국자들도 이 점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졌어요. 애국심은 (공화주의) 이념의 실질적인 목적을 은폐하고 의식 없는 대중과 열정적인 청년을 동요시켜서 정부와 자본가들만 돕는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해요.

빈첸초 : 뭐라고, 낡은 방식이라고요? 나라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정서이고 결코 시대에 뒤처질 수 없는 거라고요.

조르조 : 당신이 나라에 대한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장 강한 도덕성을 가지고, 물질적인 행복을 가장 확실히 보장하는 나라, 그런 나라에 당신이 거는 애정입니다. 분명히 이것은 자연적이고 언제나 그렇게 남을 겁니다. 적어도 모든 사람이 전 세계 어느 곳에서건 실질적으로 자기 나라를 찾을 때까지 문명이 발전된다면 말이죠. 하지만 이것은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열등한 존재로 보게 만드는 ‘조국’의 신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이 신화는 조국이 다른 나라를 지배하길 원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당신이 소위 외국인의 일을 감사히 여기며 활용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우리 노동자들이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을 그 나라의 두목이나 경찰처럼 여기게 만들어요. 그 나라의 노동자들도 똑같은 이해관계와 열망을 공유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결국 지속적인 진보의 과정이 만들어온 국제주의적이고 사해동포적인 감정은 지금도 발전되고 있어요. 여러 정서적이고 물질적인 이유로 당신은 태어난 마을이나 지역에 더 애착을 느낄 수 있죠. 그러나 그게 당신이 편협하거나 지역에 묶여 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아요. 당신이 이탈리아인인 것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필요하다면 이탈리아 전체의 이익을 지역이나 마을의 이익보다 우위에 둘 수도 있어요. 코뮌에서부터 민족으로 나라라는 개념을 확장하는 것이 진보라고 믿는다면, 왜 나아가 인류의 보편적인 사랑과 모든 대중의 우애와 협동을 위해 전 세계를 껴안지 못할까요? 오늘날 국가들의 관계는, 즉 천연자원 및 농업과 산업 생산물들의 교환은, 이미 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나라가 다른 나라들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거나 더 나쁘게는 다른 나라들과 갈등을 일으키길 원한다면, 그것은 나라의 존재 자체가 약화되고 완전히 실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 연구와 일의 종류, 경제적인 위치 때문에 이미 자신을 진정 세계시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세계적으로 위대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전 지구적이고 초국가적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해요. 과학은 공통된 것이고 예술도 마찬가지죠. 종교도 어느 나라에서 생겼든 인류의 가장 위대한 정신적인 활동입니다. 암브로조 씨가 말했듯이 모든 사람이 모든 인간에게 그 개념을 적용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권리와 도덕도 보편적입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 발견되었든 새로운 진리나 어떤 발명, 인간 두뇌의 독창적인 산물은 인류 전체에게 유용하고 또 그래야 합니다. 고립으로 돌아가는 것은, 인간들의 경쟁과 적대로 돌아가는 것은, 편협하고 염세적인 애국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인류를 평화와 우애의 미래로 인도하는 위대한 진보의 흐름 밖으로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문명의 밖으로 나가 문명에 반대하도록 만들 겁니다.

체사레 : 항상 평화와 박애를 말하는데요, 실질적인 질문을 하나 할게요. 예를 들어 독일이나 프랑스가 우리의 예술적인 유적을 파괴하기 위해 밀라노나 로마, 나폴리로 온다면, 우리 국민을 죽이거나 억압하기 위해 온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당신은 가만히 있을 건가요?

조르조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나는 분명히 (그 문제를) 아주 깊이 고민하고 있고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할 거에요.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나는 이탈리아인들이 파괴하고 억압하고 죽이기 위해서 파리와 빈, 베를린 또는 리비아로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똑같이 무엇이든 할 거에요.

체사레 : 정말 둘 다를 똑같이 고민하나요?

조르조 : 아마도 실제로는 아니겠죠.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잘못된 일들에 더 슬퍼하지요. 내 친구들이 많은 곳이 이탈리아이고 이탈리아를 더 잘 알기 때문에 내 감정이 더욱 깊고 직접적이니까요. 하지만 이것이 베를린에서 벌어지는 잘못된 일들이 밀라노에서 벌어지는 일들보다 더 나쁘지 않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아요. 그건 그들이 형제를 죽이고 친구를 죽이는 것과 같지요. 확실히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그들이 죽였을 때보다 아는 사람이 죽었을 때 더 고통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친구를 죽이는 것보다 덜 나쁜 범죄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잖아요.

피포 : 맞아. 그러나 독일이 앞으로 밀라노를 침략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했지?

조르조 :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사실 내 친구들과 나는 분쟁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했지만요. 정작 유용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할 수 없었거든요.

피포 : 대체 무슨 말이오?

조르조 : 단순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장들과 억압자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처지, 우리 형제들을 죽여서 그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처지에 있다는 걸 발견했죠. 우리가 그렇듯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도 그들의 사장들과 억압자들 때문에 도살장으로 끌려갑니다. 그러니 우리는 진정한 적인 자들, 즉 우리 사장들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거부해야 하지요. 일단 우리가 내부의 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우리는 사장들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의 나라를 방어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에 맞서 파병되는 외국의 노동자들에게 우애의 손을 내밀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에게 맞서 자신들의 지배자들에게 계속 봉사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방어할 겁니다.

암브로조 : 당신은 국가가 계급의 이해관계 이상이라는 점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에만, 당신 계급의 이해관계에만 관심을 쏟는군요. 조건의 차이와 그 모든 계급의 적대관계가 존재하더라도 같은 나라의 모든 대중을 단결시키는 어떤 감정과 전통과 이해관계들이 있어요. 한편 그 근원에는 자긍심이 있지요. 당신은 이탈리아인이라는 점을, 문명을 세계에 전하고 심지어 오늘날에도 아무튼 진보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라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진 않나요? 게르만족의 야만에 맞서 라틴 문명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하나요?

조르조 : 제발 이 나라와 저 나라의 문명이나 야만주의에 관해서는 말하지 맙시다. 만일 노동자들이 당신네 ‘라틴 문명’의 진가를 인정할 수 없다면, 그건 당신들의 잘못이라고, 노동자들에게서 스스로 학습할 수단을 빼앗은 부르주아지의 잘못이라고 즉각 답할 수 있어요. 노동자들을 무지에 가두고 있으면서 무언가에 열광하기를 원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엉뚱한 소리 말아요. 아마도 지난 몇 년 동안 당신 자신은 독일에서 온 무언가에 감탄하면서도, 독일인들이 다른 어느 나라 사람보다도 더 야만적이라고 우리가 믿기를 원할 테지요? 만일 내일 정치 상황이 변하고 자본가들의 이해관계가 달라진다면 당신은 다시 한번 독일인들이 문명의 최전선에 있고 프랑스인이나 영국인이 야만적이라고 말할 겁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발전되려면, 그 나라는 자신의 문명을 확산시키고 뒤처진 동료를 도와야 하는 한편 그 우월한 위치에서 억압하고 착취하며 이득을 취하지 말아야 해요. 왜냐하면 권력의 남용은 부패와 타락으로 이끄니까요.

암브로조 : 어떤 경우든 계급과의 경쟁보다 상위의 가치인 민족적 단결을 존중해야 합니다.

조르조 : 이해해요. 당신을 특히 유혹하는 것이 바로 이 민족적 단결이라는 핑계일 테니까요. 우리가 특히 맞서 싸우려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민족적 단결이고요. 민족적 단결은 자본가와 노동자, 억압하는 자와 억압당하는 자의 단결을 뜻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억압을 당하는 사람들이 이 복종의 상태를 묵인하는 거지요.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는 고용주들의 이해관계와 반대되고 특수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일시적인 합의를 구할 때도, 인간해방과 미래의 모든 진보가 노동자와 가진 자의 투쟁으로 결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는 노동자들을 적대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억압을 완전히 끝내는 방향으로 향해야 하니까요. 당신은 여전히 민족주의라는 거짓말로 노동자들을 속이려고 해요. 하지만 헛된 일이에요. 노동자들은 이미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이 동지이고 국내외의 모든 자본가와 모든 정부가 노동자들의 적임을 알고 있어요. 이만 나는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 내 말을 듣는 치안판사나 가진 자들 어느 누구도 납득시키지 못했다는 점을 알아요. 그렇지만 아마도 나와 같은 노동계급인 피포나 빈첸초, 루이지에게는 헛된 말이 아니었기를.

17장

루이지 : 여기 모인 사람들이 다들 자기 의견을 말했으니 나도 의견을 말해도 될까요? 몇 가지 생각이 드는데요, 우선 저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거부와 아나키스트를 구분하고 싶어요.

조르조 : 그 말은 아주 놀라운데요. 우리는 모두 노동자이기에 우리 자신을 친구이자 동지로 여길 수 있고 그렇게 생각해야만 해요. 하지만 당신은 아나키스트가 사회주의자의 적이라고 믿는 듯하군요. 오히려 우리는 사회주의자들의 친구이자 조력자라고요. 알려진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을 대립시켜왔고 여전히 대립시키려고 해도, 진실은 이렇죠. 만약 사회주의가, 인간이 우애롭게 사는 사회, 모든 이의 행복이 각 개인의 행복을 위한 조건이 되는 사회, 누구도 노예가 되거나 착취당하지 않고 각자가 자신을 발전시키는 가능한 최대의 수단을 가진 사회, 문명과 공동노동의 모든 혜택을 평화롭게 누릴 수단을 가진 사회, 또는 그런 사회에 대한 열망을 뜻한다면, 우리도 사회주의자, 가장 급진적이고 일관된 사회주의자로 인정되어야 해요. 결국 많은 동지들을 감옥으로 보내는 암브로조 선생조차도 우리가 솔선수범해서 사회주의를 도입하고 설명하고 선전하고 있음을 알고 있어요. 우리가 그 이름을 조금씩 버리고 단지 아나키스트로 우리 자신을 부르게 된다면, 그건 인간의 본성과 모순되는 이론을 우리의 이념, 우리의 방법론과 조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한데도, 사회주의를 그런 뒤엉키고 편의적인 이론으로 설득하고 그렇게 만들려고 시도하는 독재적이고 의회주의적인 다른 정파가 우리 주위에 있기 때문이에요.

루이지 : 사실 당신의 주장을 이해했고 특히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같은 많은 점에 분명히 동의합니다. 그러나 모든 점에 동의하지는 않아요. 첫째, 오직 아나키스트들만이 혁명을 믿으면서 아마도 옛날에나 필요했을 법한 폭력적인 방식을 대체해온 더 고상한 투쟁 방법들을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폭력 혁명으로 결론이 난다고 하더라도 질서를 잡고 모든 일을 자의적인 행동이나 대중의 열정에 남겨놓지 않을 새로운 정부가 필요할 겁니다.

조르조 : 글쎄요, 더 토론해봅시다.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특권을 폐지하는 것이,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이, 힘에 의존하지 않고 부르주아지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진심으로 믿나요? 가진 자와 지배자들이 저항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폭력을 사용하지도 않고서, 우리에게 항복하면서 희생제물 역할을 맡을 거라고 착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르게 생각한다면 여기 이 신사들에게 물어보세요. 그들은 할 수 있다면 아주 기뻐하며 순식간에 당신과 나를 제거할 겁니다.

루이지 : 아뇨, 그런 환상을 품지는 않아요. 그러나 오늘날 노동자들이 유권자의 대다수이고 공직선거나 정치인을 뽑는 선거에서 투표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자의식과 의지를 가진다면 너무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신들이 믿을 수 있는 사회주의자들이 집권하도록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봐요. 당신이 원한다면 심지어 아나키스트들도 땅과 가게를 국유화하고 사회주의를 도입하는 좋은 법률을 만들 수 있어요.

조르조 : 물론 노동자들이 자의식을 가지고 헌신적이라면요! 하지만 자기 문제의 원인과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이해할 만큼 충분히 발전된다면, 노동자들이 자신을 해방하기로 진심으로 결의한다면, 혁명의 최소한의 폭력이나 폭력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어요. 그렇다면 노동자 스스로 자신이 바라는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나타나는 권력의 유혹에 중독되고 부패하지 않는다면, 사회적인 필요를 제공할 수도 없고 유권자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도 없는 사람들을 의회나 정부로 보낼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부분의 노동자는 자기의식적이거나 헌신적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물질적인 조건이 먼저 나아지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도덕적으로 해방할 가능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조건에서 살고 있어요. 그래서 사회변화는 운이 좋은 환경 탓에 공통된 수준 이상으로 자기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소수집단의 솔선수범과 활동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소수집단은 결국 뒤처진 대중을 끌어당길 수 있는 유력한 세력이 될 겁니다. 이 사실에 주목하면 노동계급이 깨달은 도덕적이고 물질적인 조건들 때문에, 자본가계급과 정부가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조건들을 항상 의회에서 성공적으로 확보했다는 점을 당신도 금방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들이 보통선거권을 양보하고 선거를 실시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만일 자본가계급과 정부가 법적으로 소유권을 박탈당할 위험을 알아챈다면, 그들은 가장 먼저 법률상의 의무를 벗어나 자신들이 대중의 의지라고 부른 것에 폭력을 가할 겁니다. 법률이 실수로 자신들에 맞서게 되는 모든 경우에서 그들은 이미 그렇게 했어요.

루이지 :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사회주의 의원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언젠가 그들은 다수가 될 거라고요.

조르조 :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이 의회에 입성하는 순간, 그 즉시 길들여지고 현존 질서를 위협하던 사람에서 현존 질서의 협력자와 지지자로 변한다는 걸 모르겠어요? 결국 사회주의자를 의회로 보내서 부르주아지의 종으로 만드는 거죠. 왜냐하면 가장 활동적이고 능력 있고 대중적인 사람이 대중의 심장에서 나와 자본가의 환경으로 보내지는 일이기 때문이죠. 더구나 이미 말했듯이 사회주의 의원의 수가 정말 위협적이면 정부는 그들을 의회에서 총검으로 몰아내고 보통선거권을 금지할 겁니다.

루이지 : 언제나 극단적인 위기로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에 당신이 그렇게 보는 것 같아요. 진실은 그 반대입니다. 세계는 매 순간 조금씩 점진적으로 진화하고 있어요. 노동계급은 자신을 교육하고 조직하고 법을 결정하고 만드는 의회로 대표들을 보냄으로써, 자본가계급에게서 권력을 넘겨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는 순간 우리가 열망하는 새로운 사회가 세워질 겁니다. 모든 문명화된 나라에서 사회주의자 의원의 수가 늘어나고 자연히 대중적인 지지도 역시 높아지고 있어요. 언젠가 그들은 분명 다수가 될 것이고 자본가계급과 그들의 정부가 평화적으로 물러나지 않고 대중의 의지를 폭력으로 억압하려 든다면 우리는 폭력에 폭력으로 답할 겁니다. 시간이 필요해요. 자연법칙과 역사의 법칙을 거스르려 하는 건 쓸모없고 위험한 일이에요.

조르조 : 루이지 동지, 자연법칙은 변호인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자연법칙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지요. 대중은 부지런히 그 법칙을 발견하고 좋은 쪽이나 나쁜 쪽으로 그 발견을 이용하지요. 하지만 이해관계를 가진 분파(우리의 경우 자본가계급을 옹호하는 경제학자와 사회학자들)들이 자연법칙으로 묘사하려는 사회적인 사실들을 자연법칙으로 받아들이는 걸 경계해야 해요. ‘역사법칙’에 관한 한, 그 법칙은 역사가 만들어진 뒤에 구성됩니다. 그러니 역사부터 먼저 만들어보자고요. 자연적인 요인과 인위적인 요인이 무수히 영향을 미치기에 세계는 서서히 또는 빨리 움직이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합니다. 그리고 항상 똑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지속적인 진화를 확신하는 건 오류입니다. 현재 사회가 지속적이고 느리게 진화하고 있다는 건 분명 사실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진화는 변화를 의미하고, 만약 어떤 변화가 우리에게 좋은 방향으로, 인류가 공동체와 자유라는 더 나은 이상을 향해 발전하는 것을 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반대로 다른 변화는 현재의 제도를 강화하거나 이미 실현된 진보를 후퇴시키고 취소하려 듭니다. 대중이 서로 대립하는 한 어떤 성과도 지속되지 못하고 사회 조직의 진보도 결정적인 승리를 장담할 수 없어요. 우리는 진보의 모든 요소를 활용하고 장려해야만 하고 퇴행적이고 보수적인 세력과 싸우며 그들을 방해하고 약화해야 해요. 오늘날 인류의 운명은 노동자와 착취하는 자들 사이의 투쟁에 달려 있어요. 두 적대적인 계급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어떠한 형태의 화해도, 자본가와 노동자, 정부와 대중 사이에 의도적으로 수행되거나 사회분쟁을 약화한다는 명분과 의도로 맺어진 어떠한 형태의 협력도, 억압하는 자의 계급에게 유리하고, 붕괴하는 제도를 강화하고, 가장 나쁘게는 대중을 분열시키는 데 기여할 뿐입니다. 가장 선진적인 노동계급도 대다수 대중의 열악한 처지와 종속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산업과 금융, 정치의 지배자들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새로운 특권계급으로 변할 겁니다. 당신은 진화를 이야기하면서 대중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류가 사회주의에,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의 평등한 이해관계를 위해 만들어진 사회에, 모든 사람에게 생산수단이 속하는 사회에, 모든 사람이 일하고 문명의 모든 이득을 평등하게 즐길 사회에 이르는 게 불가피하고 필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사회주의는 대중이 원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할 때만 실현될 겁니다. 다른 경우라면 사회주의 대신에, 사회 상황은 결국 두 계급의 차이가 더 멀어지고 더 영원해질 수 있어요. 그러면서 인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인종으로, 귀족과 노예로 나뉘고 그 중간에 있는 계급은 지성과 야만적인 폭력을 결합하면서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더 굳건히 만드는 데 기여할 겁니다. 아니면 그곳에서는 경제위기와 주기적인 전쟁으로 인한 개혁의 변질, 상태의 악화와 같은 현재의 끊임없는 투쟁 상태가 지속될 겁니다. 실제로 우리가 상황을 자연적인 흐름에 맡긴다면 아마도 사회는 우리가 원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특권계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현재의 지배자들에게 이롭게 만들어진 안정적인 균형상태로 나아갈 겁니다. 왜냐하면 강자들이, 상대방보다 확실한 이점을 가지고 경쟁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투쟁의 과정에서 언제나 이득을 보는 것이 자연적이니까요.

루이지 : 당신이 맞는 것 같아요.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가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즉 교육, 조직화, 정치투쟁 등을 모두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

조르조 : 맞아요, 모든 방법을 말이죠. 그렇지만 우리의 목적을 실현할 모든 방법이어야지요. 그리고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당연히 교육이에요. 왜냐하면 우리 개개인이 의식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의식이나 감각을 깨우지 못한다면, 우리의 의지를 고무시키지 못한다면 진보는 불가능하니까요. 교육이 절대 책으로만 배우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그것도 필요하지만 노동계급이 접근하기에 쉽지 않으니까요. 그보다 교육은 사회와의 의식적인 연결과 선전, 토론, 공공의 사안에 대한 관심,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진보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 배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개인적인 교육을 모두가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충분할 수 있어요. 하지만 불행히도 그건 가능하지 않아요. 대중은 그들이 사는 환경의 영향을 받고 지배당합니다. 어떤 이는 환경에 의해 구성된다고까지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환경이 적합하지 않으면 환경과 싸워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어떤 순간에도 타고난 능력이나 특별히 좋은 조건 때문에 환경을 극복하고 환경에 대처하고 환경을 계속 변화시킬 수 있는 소수의 개인들이 있습니다. 의식적인 소수가 얼음을 깨고 외부 환경을 폭력적으로 바꿔야만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조직화’는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죠. 사장들과 싸우고 그들과 합의하지 않기 위해 활용한다는 조건에서 말이지요. ‘정치투쟁’은 분명히 정부에 대한 투쟁과 정부에 대한 비협조를 뜻합니다. 잘 보세요. 자본주의 체제를 조금 더 낫게 바꾸고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서 그 체제를 인정하고 영원히 지속시키려 한다면, 일정한 정도의 합의나 협력도 이루어질 수 있어요. 그러나 진정 이 체제를 무너뜨리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분명하게 그 체제 바깥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맞서나가야 합니다. 혁명이 필연적이며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혁명을 통해서만 해결될 것이라는 점을 알았다면, 대중에게 희생이나 피 튀기는 투쟁 없이 해방될 수 있다는 거짓 희망을 주는 대신에 정신적, 물질적으로 지금부터 우리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루이지 : 좋아요. 당신이 옳고, 혁명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해보자고요. 똑같이 말하는 사회주의자들도 많아요. 그러나 혁명을 지도하고 조직하기 위해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언제나 필요할 겁니다.

조르조 : 왜요? 대중 속에 충분한 수의 혁명가들, 투쟁과 삶의 요구를 공급할 수 있는 육체노동자와 비육체노동자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혁명은 시작되지 못할 것이고 시작되더라도 승리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충분한 수가 존재하더라도 정부라는 것은 대중의 솔선수범을 가로막고 실질적으로 혁명 그 자체를 질식시키는 데에 이로울 뿐입니다. 사실 의회정부나 독재정부가 무얼 할 수 있을까요? 그 정부는 다른 무엇보다도 정부로서의 자기 존재를 고려하고 보장해야 합니다. 달리 말해 경쟁자에게 맞서 자신을 지키고 자기 뜻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누르기 위해 무장한 군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자기 존재를 알리고 갈등상태에 있는 의지와 이해관계를 회유하기 위해 공부하고, 중재하려 하고, 법을 만듭니다.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요. 그러는 동안에도 살아가야 합니다. 어느 한쪽의 소유권이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손으로 넘어가면, 모든 사람에게 필수품을 제공할 필요가 있기에. 이 노동자들은 지배자의 결정을 기다리지 말고 매일매일 일상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겁니다. 따라서 이제 지배자들은 자신의 무용함을 선언하고 노동자로서 군중과 섞일 수 있게 될 겁니다. 아니면 소유는 계속 가진 자들의 손에 남을 것이어서,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부를 소유하고 배치하며 사회적인 삶을 사실상 지배할 겁니다. (통치하거나 통치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아나키스트와 다르게) 사회주의자들로 구성된 새로운 정부는 자본가계급의 바람에 복종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빠른 속도로 붕괴될 겁니다. 나는 이제 떠나야겠어요. 언제 돌아오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이 점에 관해 장황하게 떠들지는 못하겠어요. 다시 만나려면 한참 걸릴 겁니다. 내가 말한 것을 생각해보세요. 돌아왔을 때 새로운 동지를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모두들 안녕.

말라테스타에 관하여

에리코 말라테스타(Errico Malatesta)는 아나키스트 선전가와 이론가 가운데, 그의 저작들의 놀라울 만큼의 명쾌함과 솔직함, 그리고 그의 아나키즘의 기초가 되는 실제적 측면 양쪽으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중요성은 크로포트킨의 아나키즘에서 너무나 명백히 보이는 운명론과 지나친 낙관주의의 함정에 결코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말라테스타에게 아나키즘은 마치 마법같이, 사전 논의나 준비 없이 언젠가 일어날 미래의 유토피아에 대한 철학이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전 생애에 걸쳐 실제적인 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아나키즘은 구체적인 것이었으며,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싸워 쟁취해야 할 것이었다.

에리코 말라테스타는 1853년 나폴리 근처의 카푸아에서 태어났다. 나폴리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10대에 그는 마치니(Giuseppe Mazzini)의 공화주의에 영향을 받았고, 1871년에는 파리 코뮌에 대한 열정과 카르멜로 팔라디노와의 우정을 통해 《국제노동자협회》 나폴리 지부에 합류했다. 다음 해 그는 바쿠닌을 알게 되었고, 그와 함께 《인터내셔널》 상티미에St. Imier 총회에 참석했다.

1872년과 1876년 사이 말라테스타는 바쿠닌, 카피에로, 코스타와 긴밀히 협력하며 이탈리아 전역에 국제주의Internationalist 선전을 퍼뜨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로 인해 그는 1873년에 6개월, 1874년에서 1875년 사이 다시 1년 동안 투옥되었다.

1877년 4월 말라테스타, 카피에로, 러시아 스테프냐크 등 30명의 동료들이 베네벤토 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붉은 깃발과 검은 깃발을 앞세운 무장 집단은 마테세 산맥으로 진군해 곧 별다른 저항 없이 레티노 마을을 점령했고 열정적인 환영을 받았다. 무기와 수용된 물품들이 사람들에게 분배되었고 세금이 반환되었으며 공문서가 파기되었다. 다음날 갈로 마을도 비슷한 방식으로 접수되었다. 불행히도 그들이 갈로를 떠날 때 국제주의자들은 정부군에 의해 포위되어 모두 체포되었다. 재판에 넘겨지기까지 1년 넘게 감옥에 갇혀 있던 모든 피고인은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죄판결 이후 말라테스타는 나폴리로 돌아왔으나 경찰의 지속적인 감시로 이탈리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폴리에서 그는 이집트로 갔으나 이탈리아 영사에 의해 추방되었다. 시리아, 터키, 이탈리아 입국을 조직적으로 거부당한 뒤 그는 프랑스 선박에서 일하다 마침내 마르세유에 상륙했다. 그는 마르세유에서 제네바로 가 크로포트킨이 「반란La Révolte」을 발간하는 것을 도왔다. 스위스에서 추방된 말라테스타는 잠시 루마니아에서 일했고, 그 뒤 프랑스와 벨기에를 거쳐 1880년 말 런던에 도착했다. 런던에서 그는 아이스크림 판매원으로 일하다, 이후 기계공으로 일하는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런던에 있는 동안 그는 1881년 《인터내셔널》 총회에 참가해 《아나키스트 인터내셔널Anarchist International》을 만들었다.

1882년 런던을 떠난 말라테스타는 이집트로 가 이집트인들과 함께 영국 식민주의자들에 맞서 싸웠다. 이듬해 그는 비밀리에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피렌체에 정착한 그는 이탈리아에서 발행된 최초의 본격적인 아나키즘 선전 신문인 주간 「사회문제La Questione Sociale」를 창간했다. 말라테스타의 글 가운데 가장 인기 있고 널리 읽힌 팸플릿 『두 농부의 대화Fra Contadini』는 1884년 「사회문제」에 실렸다. 같은 해 그는 체포되어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을 기다리는 동안 나폴리로 가서 (많은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자들이 그랬듯) 콜레라 전염병 희생자들의 간호를 도왔다.

감옥을 피하기 위해 다시 한번 이탈리아를 탈출할 수밖에 없던 말라테스타는 남아메리카로 향했다. 1885년부터 1889년까지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거주하며 (몬테비데오로의 몇 차례 여행을 제외하면) 그곳에서 「사회문제」 출판을 재개했고, 아르헨티나 최초의 전투적 노동조합인 《제빵사 노동조합Baker‘s Union》을 설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89년 유럽으로 돌아온 그는 잠시 니스에 머물다가 런던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게 되기 전 새로운 신문인 「결사L’Associazione」를 발행했다. 이후 8년 동안 그는 런던을 자신의 거점으로 삼고,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를 비밀리에 빈번히 방문했으며, 타리다 델 마르몰(Tarrida del Marmol)과 함께 두 차례의 스페인 순회 강연을 했다. 런던에 있는 동안 그는 『선택의 시간In tempo di elezione』과 『아나키L‘Anarchia』를 포함한 몇몇 중요한 팸플릿을 작성했다.

1897년 말라테스타는 이탈리아 정부에 의해 사면되어 공개적으로 이탈리아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안코나에 정착한 그는 새로운 신문인 「선동L'Agitazione」을 펴냈다. 하지만 이듬해 체포되어 6개월의 징역형, 이어서 섬으로의 5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처음에는 우스티카 섬으로, 이후 람페두사 섬으로 이송되어, 그곳에서 극적인 탈출을 감행해 1899년 몰타를 거쳐 런던으로 돌아갔다. 같은 해 그는 미국에서 수개월을 보내며 뉴저지 주 패터슨에서 「사회문제」의 출판을 재개했다. 그 뒤 웨스트 호보켄에서의 회의에서 연설을 하던 중, 그는 조직에 대한 그의 접근법에 동의하지 않는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에 의해 다리에 총을 맞았다. 말라테스타는 미국에서 쿠바를 거쳐 런던으로 돌아왔다.

다시금 런던에 도착한 그는 기계공 업무를 재개해 이즐링턴에서 작은 작업장을 운영했다. 1900년에서 1913년 사이 그는 모두 이탈리아어로 된 신문을 여럿 발간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들은 「원인과 결과Cause ed effetti」(1900), 「인터내셔널L'Internazionale」(1900), 그리고 「사회 혁명La rivoluzione sociale」(1902)이었다. 1907년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국제 아나키스트 총회에 참석해 혁명적 생디칼리즘 문제에 관해 모나트(Pierre Monatte)에 격렬히 반대했다. 1912년 말라테스타는 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명예훼손 혐의로 국외 추방되었다. 사람들의 거센 항의가 국외 추방이 집행되는 것을 막았다.

1913년 말라테스타는 이탈리아로 돌아와 1914년 8월 전쟁이 발발해 런던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안코나에서 「의지Volontà」를 발행했다.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그는 미래의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를 만났는데, 그는 당시 사회주의 신문 「전진Avanti」의 편집장이었다.

전쟁 동안 저명한 인물들, 특히 크로포트킨과 그레이브(Jean Grave)가 협상국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여 아나키즘 운동에 많은 혼란을 초래했다. 말라테스타는 언제나처럼 아나키즘적 이상에 충실했기에 전쟁을 강력히 반대했고, 전쟁에의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 아나키스트 선언의 서명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친정부 아나키스트Pro-Government Anarchists〉나 〈아나키스트로서의 원칙을 잊었는가?Have Anarchists Forgotten their Principles〉 등의 기사로 크로포트킨의 입장에 대응했다.

1919년 말라테스타는 마지막으로 이탈리아로 돌아와 열렬한 환대와 함께 제노바로 상륙했다. 그는 즉시 투쟁에 뛰어들었다. 밀라노에 정착한 그는 새로 창간된 일간지 「신인류Umanità Nova」의 편집장을 수락했고, 곧 50,000부가 발행되었다. 1920년 7월 그는 자신이 작성한 계획을 환대하며 채택한 《이탈리아 아나키스트 연합Unione Anarchica Italiana》의 제2차 총회에 참가했다. 다음 달 그는 토리노와 밀라노의 공장 점거를 지원했다. 그해 말 그는 80명의 다른 아나키스트 투사들과 함께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지고 석방되기까지 거의 1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석방되자마자 그는 로마로 가 무솔리니의 로마로의 행진(카보우르 광장에서 파시스트들에 의해 말라테스타의 초상화가 불태워진) 이후 폐쇄할 수밖에 없게 될 때까지 「신인류」를 계속 편집했다.

「신인류」를 폐간하며 말라테스타는 기계 수리 및 전기 설비의 작은 작업장을 열었지만, 경찰이 그의 고객들을 괴롭히기 시작하자 문을 닫아야 했다.

1924년에 그는 격월 비평지 「생각과 의지Pensiero e Volontà」의 편집을 시작하고, 1926년 다른 반파시즘 출판물과 함께 폐간될 때까지 그의 몇 가지 그의 최고 저작을 게재했다.

1926년 말, 수개월에 걸친 경찰의 괴롭힘 뒤 말라테스타는 가택연금에 처했다. 사실상 그의 집에 투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의연히 제네바의 「각성le réveil」과 뉴욕의 「길들지 않는 이들의 모임L'Adunata dei refrattari」을 주축으로 아나키스트 언론에 계속 기고했다. 1932년 초 그는 호흡기 질환으로 앓아누워 같은 해 7월, 7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데이비드 풀(David Poole)

후기

에리코 말라테스타는 1853년에 태어나 1932년에 사망하기까지 생애 전반을 아나키스트 혁명가로서 살았다. 다수의 신문과 잡지에 편집을 맡으며 대중에게 사상을 전달하고자 하였고 말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실천하였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격동의 시기에서 정면으로 대응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사상을 설명하는 것에 탁월한 재능이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런 재능을 살려 책에 실린 작품들을 집필했다. 그는 대화의 형식을 선택하여 아나키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질 만한 오해들을 논파한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을 아나키즘적 코뮌주의의 결론으로 효과적으로 이끌고 있다.

때문에 실제 있을 법한 대화라기보다는 다소 작위적인 면이 있고, 그것이 쓰인 시기상(당시로서는 최신의 반응이었겠지만) 지금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지금의 현실에 일대일로 대응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현재적으로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하며 그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하자면 ‘역사적인 관점’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대와 공간을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 말라테스타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본주의의 시대에 태어났고 태어나자마나 특정 국가에 속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시공간이 규정하는 여러 규칙들을 무의식적으로 학습하며 그것에 맞춰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어떤 것이 이미 존재하고 익숙하다고 해서 당연한 것이 될 수는 없다. 모든 것에는 역사가 있다. 이 말은 지금의 ‘당연한’ 모습을 하게 되기까지의 맥락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말라테스타의 글은 우리에게 이 맥락에 대해 일깨워준다.

국가가 ‘반드시’ 존재하여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인류 역사에서 국가 이외의 가능성은 없었는가?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는 것이 정당한가? 지구에서 재산이 될 수 있는 자원들은 왜 지금의 소유주들에게 속해 있는가? 그것이 100% 그들의 정당한 노력의 결과인가?

말라테스타의 글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이런 질문들을 통해 국가와 자본의 시발점을 추적해 들어가다 보면 우리는 거기에 원초적인 폭력이 먼저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자유로운 계약상태라는 것은 없었다. 최초에 폭력이 먼저 존재했고 그 위에 국가와 자본이 덧칠되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저 역사적으로 그렇게 형성되었을 뿐이다. 이 말을 반대로 뒤집으면 지금의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변화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이 ‘역사적인 관점’이다.

말라테스타의 글을 통해 이미 존재하고 있는 국가, 자본, 기업, 법, 제도, 군대, 경찰 등에 대한 오해를 풀어가며 이를 배울 수 있다. 그가 제시하는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스스로를 점검해보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다.

2023년 1월 13일 초판 1쇄 발행 에리코 말라테스타 지음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 번역 상호부조 편집 펴낸 곳 : 상호부조 출판신고 : 2021년 10월 22일 제2021-000136호 주소: 서울시 종로구 수표로 81, 302호 이메일: malangkism@kakao.com ISBN: 979-11-97745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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